쇼트웨이브의 비난에, 남자의 얼굴근육은 마치 화살이라도 맞은 것처럼 경악스런 표정을 연출했다. 라텍스로 만든 분장가면 못지않은 신축성이었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뇨.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초대한 손님들에게 지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아가씨들께도 마찬가지구요. 다만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할 곳에 책임을 진다는 입장입니다."
남자가 입을 열자, 얇고 날카로운 콧수염이 펜싱의 역공격 기술의 일종인 꽁뜨르 아따크를 구사하듯 위 아래로 춤을 췄다.
"아가씨들. 일단 엄밀히 말해서 이곳은 아직까지 저승은 아닙니다. 네, 물론 저승에 아주 가깝긴 하죠. 저승까지는 그저 종이처럼 얇은 막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한숨만 크게 쉬어도 그 막은 찢어지고 저승의 입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건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장애가 없어요. 그냥 그렇다는 걸 염두에 두시면 될 뿐 너무 괘념치 않으셔도 될 일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저승을 옆에 두고 살아가는 셈이니까요. 그것은 아가씨들이 살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는 탈수기가 물을 뱉어내듯 청산유수로 말을 뱉어냈다.
"칼을 약간 잘못 놀리던가, 친구들끼리 좀 심하게 싸운다던가, 아니면 조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던가, 조금 약기운이 센 약을 삼킨다거나, 심지어 길을 걷다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도 재수가 없으면 여러분 앞에 저승이 떡하니 입을 벌리기 마련이지요. 중요한 것은 저승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여기가 저승이냐 아니냐 하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가씨들은 걱정하실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여긴 저승이 아니니까요. 아가씨들이 살던 세계와는 많이 다르시겠지만 좀 계셔보시면 그래도 있을 만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실 거예요. 튼실한 공간 구조와 법칙이 지배하고 있답니다."
남자가 어디서 꺼냈는지 가마에 타고 있을 때 물고 있던 짧은 파이프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벌써 대번에 걱정이 줄어들지 않으세요? 그리고 제가 아까 아가씨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던 초대장에 관해선데요. 저는 그 초대장이 왜 아가씨들을 이곳으로 끌고 들어온 거라고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손님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손님들은 그저 초대장을 한장 받으셨을 뿐이세요. 오시고 안오시는 문제는 전적으로 손님들께 달려있지요. 방문을 하지 않겠다는게 손님들의 의견이라면, 우린 억지로 손님들을 끌고 오지 않습니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뭔가 오해가 있는게 분명해요. 초대장에 손이 달리지 않은 이상 아가씨들을 이곳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얘기는, 글쎄요..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쇼트웨이브는 담배도 끼어있지 않는 파이프를 남자가 무엇에 쓰려고 가지고 다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며 팔짱을 끼었다.
"걱정이 줄어들지 않느냐구요? 글쎄, 뭐라고 할까요. 인큐베이터 같으세요, 아저씨는요. 아저씨 말을 듣다보니, 원래부터 있었던 걱정거리는 튼튼하게 자리를 잡구요, 거기다 더해서 새로운 의심까지 새록새록 자라나는군요. 밀림 속을 헤매는 기분이예요. 여기가요."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아저씨 의견대로라면 우리는 여기가 저승이 아닌 걸 고마와해야 할 지경이군요. 하지만 말이죠, 여기가 저승이건 아니건간에 결국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구요, 바로 그런 상황이 우리를 대단히 고통스럽게 만든다는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여기가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해도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예요. 원해서 온 것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저희가 이곳에 머무른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도 여기가 그닥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기엔 아주 충분한 시간이었죠. 아저씨가 자랑하시던 이쪽 세계의 튼실한 공간구조와 법칙이란 것도, 저희가 겪어보니 프레디만 빠졌다 뿐이지 완전히 나이트메어 시리즈 수준이더군요."
뭔가 말할 듯 입을 열려는 남자를 무시하며 쇼트웨이브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꾸 초대장에 손이 달리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시는데요, 물론 초대장이 일반적인 초대장이라면 그렇겠지요. 가령 범고래씨의 환갑잔치가 열릴 예정이오니 참석해 주세요 라든가 우리 귀여운 물두꺼비가 첫 돐을 맞았으니 같이 기뻐해 주세요 하는 것처럼 평범한 초대장 말이죠. 하지만 아저씨가 말씀하시는 초대장은 이런 범주의 것이 아니었어요. 아니, 초대장이라고 볼 수 조차 없는 것이었죠. 그건 버섯찌게 집을 소개하는 페이지였다구요. 아저씨가 초대장을 보내신다면요, 적어도 이런 문구가 들어있어야 해요. 저승에서의 5박6일 칵테일 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모래가 휘몰아치는 황야의 불구덩이 속에서 용암을 뒤섞은 버닝 칵테일 한잔. 독버섯 찌게와 각종 맹수들의 습격을 직접 경험할 귀중한 기회도 드림. 아시겠어요? 그런게 초대장이라구요. 물론 그러셨다면 우리는 여기로 오는 대신 그것을 들고 경찰서로 갔을테죠."
아이버슨이 페이크 드리블을 시도할 때 농구공을 두드리는 템포와 비슷한 박자로, 남자가 횡경막을 경련시키며 농구공을 토하는 것처럼 숨차게 웃음을 토해냈다.
"진짜 아가씨들, 재치덩어리셔요. 말씀을 얼마나 재밌게 하시는지. 우리 시의 홍보담당으로 채용하고 싶을 정도랍니다. 제가 시장이라면 말이지요. 아, 정말 즐겁군요. 매력. 매력. 매력 만점이세요."
남자가 숨을 몰아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가요? 초대장이 버섯찌게 집을 소개하는 광고지였다는게. 그게 사실이라면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어째서 초대장이 그런 식으로 발송이 됐을까."
쇼트웨이브가 얼굴을 찌푸렸다.
"진짜 몰라서 그러시는 건가요? 아니면 알면서도 시치미 떼시는 건가요. 아까 저희가 책을 드렸을때 그 페이지를 보지 않으셨나요?"
남자는 커튼이 닫히는 바람에 옆집 아가씨가 옷벗는 광경을 아슬아슬하게 못 보게 된 사람처럼 아픔과 안타까움이 교차되는 표정을 지어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초대장이 딸려 오길래 그냥 그것이려니 했지 뭡니까.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이 만든 초대장인 건 확실했습니다. 제 손길에 반응했으니까요."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셨겠죠. 어쩐지 서둘러 불태우시더라구요. 아저씨는 계속해서 오해다, 착오다, 못 봤다 이러시는데, 그럼 더 근사한 얘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또 무슨 얘기가 있습니까?"
"그럼요. 그 초대장이란 것이 줄줄이 일으킨 사건들을 꿰면, 아마도 비엔나 소시지를 30미터쯤 엮을 수 있을거예요. 아까 그 종이가 버섯찌게 집을 소개하는 페이지라는 건 말씀을 드렸었죠? 일단 버섯찌게 집은 버섯찌게 집이 아니었어요. 그곳은 한옥 지붕으로 돔을 씌운 야구장이더군요. 물론 저희는 순진하게도 그 종이에 써 있는 대로 그곳이 버섯찌게 집이라고 믿고 들어가서 버섯찌게를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어떤 할머니께서 나오셔서 저희한테 독버섯을 먹이시지 뭐예요. 덕분에 저흰 거기서 죽었죠. 겁을 집어먹은 저희가 하도 우왕좌왕하니까 그 꼬락서니가 불쌍했던지, 거기 계시던 분이 걱정말라고 하시더군요. 죽어도 죽은게 아니라나요. 알쏭달쏭한 얘기를 늘어놓으시면서 우리가 가져온 책자에 있던 그 종이, 그러니까 아저씨 초대장 말이예요. 그게 사실은 부적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우리를 꼬여내고 사로잡는 아주 강력한 부적이요."
그녀가 손바닥을 탁 쳤다.
"자, 이게 다 뭘 뜻하는 건지 이제 감이 잡히시나요? 한마디로 말해서 그 초대장엔 손이 있었다는 얘기죠. 우리가 꼼짝없이 잡혀서 끌려들어올 만큼 커다란 손이요."
쇼트웨이브가 남자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 잠시 말을 끊었다. 그가 말을 하려고 하자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잠깐만요, 재미있는 일이 조금 더 남았어요. 식사를 끝낸 다음, 할머니께서는 재수없는 일에 엮여서 기분이 나쁘시다면서 저희를 쫓아내셨지요. 누군가가 저희를 죽이는 일에 할머니를 이용했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께서는 저희가 부적에 끌려 온 것을 모른 채로, 이런 일에 흔히 사용되는 버섯을 저희한테 먹이신거죠. 저희를 이 세계에 적응시키려구요. 그리고 나선 이상하다 싶으니까 저희가 어떻게 온 건지 확인해 보고는, 더이상 손을 섞기 싫어져서 저희를 쫓아낸 거지요."
쇼트웨이브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일이 대충 이렇게 된 거지요. 부적은 저희를 나포하고, 이상한 할머니 댁으로 유인해서 간접적이나마 살해당하도록 만들었죠. 저희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우연찮게도 제천시로 나가는 표지판이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났어요. 그걸 따라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약간 기울여 귓볼에 매달린 귀걸이를 살짝 매만졌다.
"아저씨 말대로 그게 단지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초대장이었다면, 그 집에 계시던 분이랑 아저씨 중 한 분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되는군요."
쇼트웨이브는 디지털퍼머를 바라보았다.
"넌 아저씨 말을 믿니?"
"아니."
"나도 그래."
쇼트웨이브가 다시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쩌죠. 우린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남자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버섯찌게 집에 할머니가 계셨다면 혹시 마고 할머니 아니었나요?"
쇼트웨이브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네, 그 페이지에 그렇게 써있더군요. 마고 할머니 버섯찌게라나요. 아시는 분이신가 부죠? 혹시 단골이셨나요."
남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뻔뻔함이 엿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누가 마고 할머니를 모르겠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 알겠습니다. 초대장이 왜 아가씨들을 마고 할머니 댁으로 보냈는지 말이지요."
쇼트웨이브가 냉담하게 대꾸했다.
"이젠 초대장이 제 맘대로 손님들이 갈 곳을 정한다는 얘기를 하시려는 건가요?"
"아, 그런건 아니구요. 아가씨들이 살던 세계에서 이 곳으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소정의 절차가 필요한데, 초대장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제시되어 있었던 거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지요."
"무슨 뜻인가요?"
"쉽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저 역시 아가씨들이 살던 세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거기서 만약 다른 나라에 살던 친척이 아가씨들을 초대했다고 합시다. 대략적인 절차를 생각해 보시라구요. 비행기를 탄다면 우선 친척이 사는 나라의 공항에서 내려야겠지요? 그리고 공항검색대를 통과하셔야겠고 여러가지 검사와 비준을 받으실 겁니다. 이것들은 그 나라에 입국하기 위한 필수 절차인 것이지요."
남자는 손바닥을 위 아래로 뒤집으며 부드럽고 커다란 제스쳐를 취했다.
"이 곳도 마찬가지랍니다. 아가씨들이 이 곳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가 있어요. 생기를 죽이는 일이지요. 그것을 살해되었다고 표현하셨는데 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살아있는 기색을 좀 없앤것 뿐이예요. 아가씨들이 살해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는, 무엇보다 아가씨들께서 지금 여기서 저랑 얘기하고 있다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렇게 생기를 없애주는 곳이 마고 할머니 댁입니다. 말하자면 그곳은 공항이란 말입니다. 아가씨들은 공항검색대를 통과한 거구요. 비로서 이 곳에 있을 자격을 얻은 거지요. 집이 야구장만하다고 하셨죠? 옛날에는 그곳에 사람들이 꽉꽉 차 있었어요. 아가씨들이 살던 세계가 지금보다 신화의 영역과 소통이 더 원활했을 당시였지요. 대단히 커다랗고 번화한 성이었습니다."
남자가 약간 화가 난다는 듯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마고 할머니의 말은 상식을 벗어난 데가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마고 할머니를 살인청부업이라도 시킨 것처럼 악용한 것으로 말했던 모양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식의 표현이 용납된다면, 아까 예를 든 친척은 아가씨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공항검색대를 악용한 것이라는 표현도 성립할텐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고요, 단지 그 초대장은 아가씨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빠르고 경제적인 길을 연결시켜 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해 주시는게 맞는 거지요."
쇼트웨이브가 기가 막힌 나머지 실소를 터뜨렸다.
"공항검색대라..그 얘기를 들으면 마고 할머니란 분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군요. 그러니까 그 할머니는 월급도 안 받고 무보수로, 이 까다로운 세계의 입국검사를 하신다는 거군요. 좋아요. 그럴 수 있어요. 아저씨 말을 인정할 수 있다구요. 단 이것 하나만 가능하다면요."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아저씨의 말처럼 이게 초대가 맞고, 독버섯을 먹은 것도 공항검색에 불과한 거라면, 우리를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내시는 것도 별 문제는 없겠군요."
남자가 엔드라인 근처에서 쿼터백의 패스를 기다리는 런닝백처럼 초조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야 물론입니다."
그녀들이 깜짝 놀랐다. 다시한번 디지털퍼머가 물었다.
"돌아갈 수 있다구요?"
"그렇다니까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가, 너무나 짧고 단정적인 남자의 말이 사뭇 의심스럽다는 어투로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정말인가요. 잠시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거짓말은 아니시겠죠?"
"그럴리가요. 금새 들통날 일을..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원래 사시던 세계로 가는 방법이 있어요."
남자가 짧은 담뱃대의 끝을 잡고 손바닥을 두드렸다.
"사실은 아까 잠깐 말씀드렸던 일 말입니다만, 생각나시지요? 가시면서 말씀드릴 일이 있다고 했던거요."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던거요?"
"예, 기억하시는군요. 그 일이요. 그런데 그 일이 그쪽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막히게 되지요. 돌아가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건 중요하게 의논을 해 봐야 될 사안입니다."
쇼트웨이브가 손을 들어 남자의 말을 저지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돌아갈 생각이 있으면 아저씨께서 시키는 일을 해라, 이건가요? 그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그 일을 시키시려고 저희를 부른 거였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초대는 초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사실 아가씨들이 내키지 않으면 그 일을 안하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돌아가실 길이 있는지를 우리가 최대한 열심히 연구해 보도록 하지요. 그동안 아가씨들의 체류는 우리가 모두 책임을 지구요."
"다른 방법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건가요?"
"아니요, 연구해 본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발견된 예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겠지요. 내일 당장 발견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고.."
쇼트웨이브가 말을 가로챘다.
"어쩌면 10년 후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못 찾을 수도 있구요. 아저씨가 사용하시는 어법은 정말 난해하군요. 6차함수의 근을 구하는 것보다 더 끔찍해요. 결국 돌아가고 싶으면 아저씨가 시키는 일을 하라는 것으로 낙착이 되는 거잖아요."
쇼트웨이브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일이란게 뭐지요?"
남자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단호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 일이 뭔지는 여기서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기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 이 주위는 대단히 불안한 상태입니다. 위험이 코앞까지 닥쳐왔어요. 계속해서 말씀 드리지만 우리는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시로요. 아가씨들도 마찬가지구요."
그가 검은 눈을 빛내며 그녀들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를 믿으십시오. 집으로 꼭 돌아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쇼트웨이브가 그를 노려보다가 얼굴을 돌려 디지털퍼머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말없이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디지털퍼머는 보일듯 말듯 쇼트웨이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쇼트웨이브가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이 결심을 한 듯 그에게 말했다.
"알겠어요. 가보지요."
남자가 안도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럼 가마에 타시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쇼트웨이브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흰 저희 차를 이용할 거예요. 먼저 출발하시면 저희가 뒤따라 갈께요."
남자가 고개를 빼고 그녀들 뒤를 바라보았다.
"차라면 저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유리창이 달린 새로운 냉장고 모델인줄 알았습니다. 아, 과연 바퀴가 달려있군요. 그나저나 많이 망가진거 같은데 움직이긴 하는 건가요?"
쇼트웨이브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아주 잘 움직이구요. 남의 차 흉보는거 그만 하시고 이제라도 출발하시면, 태생이 냉장고가 아니라는걸 보여드릴 수 있겠는데요."
남자가 작게 웃었다.
"아니, 흉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차에 타시는 것보다는 우리 가마에 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 시에 들어가시면 처음 와보시는 아가씨들로서는 길을 잃으실 가능성이 크세요."
"그렇게 도시가 복잡한가요?"
"아니요. 도시는 단순한데 아가씨들이 이제껏 겪어보셨던 공간과는 약간 다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반드시 당황하실 거예요."
쇼트웨이브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저는 저 차를 여기에 버리고 갈 수 없어요. 이미 저 차는 저희 생명을 여러번 구해줬거든요. 그냥 단순한 물건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저 차를 운반해서 가지요."
"운전하시기가 좀 불편하실텐데요."
"괜찮습니다. 운전하지 않을 거거든요."
그가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 중에서 몇 명을 골라냈다. 지목된 남자들이 가마의 옆구리에서 길다란 봉처럼 생긴 가마채를 두 개 끄집어 냈다. 그들이 쭈볏쭈볏 앞으로 나왔지만 왠지 무척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그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괜찮아. 저 아가씨들도 밖에 서 있잖아. 잠깐 나가서 들고 들어오면 돼. 그리고 빨리 여길 뜨자구. 잠깐 동안이면 아무 문제 없어. 자, 서둘러."
남자들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삼키는 어린아이처럼 싫은 기색을 완연히 내비치며 카펫 끝으로 다가왔다. 제일 앞쪽에 있는 한 사람이 염산에 발을 담그는 양 조심스럽게 발끝을 땅바닥에 대었다. 그리고는 한밤 중에 담을 넘다가 담장에 얹혀져 있는 기와를 떨어뜨린 도둑놈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쇼트웨이브가 한마디 했다.
"이러다가 밤새겠군요. 길을 잃더라도 저희가 몰고 가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그러자 남자가 그들을 독려했다.
"자자, 이보게들. 이게 무슨 창피한 짓이야, 아가씨들 앞에서. 자네들이 자꾸 이러면 아가씨들이 우리를 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테니 나를 믿으라구. 어서 가서 들고 와. 더 지체하면 시장님께 다 말씀드릴거니까."
시장님한테 고자질하겠다는 얘기가 위력을 발휘했다. 그들이 더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카펫 밖으로 나가 차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여전히 불안한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빠르고 기계적인 동작으로 가마채를 차 밑으로 넣은 다음 앞바퀴 쪽에 걸어서 반대편에 있는 동료와 나눠 잡았다. 또 하나의 가마채를 든 사람이, 이번엔 뒷바퀴 쪽에 그것을 넣어 마찬가지 방법을 통해 반대편 동료와 2인 1조로 가마채를 함께 잡았다. 그녀들은 단지 4명이서 차 한대를 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그런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남자들은 발포 스티렌 수지로 만들어진 상자를 드는 것처럼 가뿐하게 차를 들어올렸다.
"자, 이제 타시지요."
그가 그녀들을 향해 닭고기 수프 속을 떠도는 짚신벌레 만큼이나 환한 미소를 보냈으나, 그녀들은 그것을 애써 외면한채 잠자코 가마에 올랐다. 남자 역시 가마에 올라 그녀들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같이 온 일행을 향해 외쳤다.
"출발하세."
펜트하우스를 향해 올라가는 고속 엘리베이터처럼 지체없이 가마가 들려졌다. 출렁이는 느낌이 마치 밑이 없는 바닥을 향해 내려앉는 바이킹을 탄 것같아 그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난간을 움켜 잡았다. 남자가 빈 파이프를 물고서 편안히 다리를 꼬았다.
가마가 출발했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뇨.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초대한 손님들에게 지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아가씨들께도 마찬가지구요. 다만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할 곳에 책임을 진다는 입장입니다."
남자가 입을 열자, 얇고 날카로운 콧수염이 펜싱의 역공격 기술의 일종인 꽁뜨르 아따크를 구사하듯 위 아래로 춤을 췄다.
"아가씨들. 일단 엄밀히 말해서 이곳은 아직까지 저승은 아닙니다. 네, 물론 저승에 아주 가깝긴 하죠. 저승까지는 그저 종이처럼 얇은 막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한숨만 크게 쉬어도 그 막은 찢어지고 저승의 입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건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장애가 없어요. 그냥 그렇다는 걸 염두에 두시면 될 뿐 너무 괘념치 않으셔도 될 일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저승을 옆에 두고 살아가는 셈이니까요. 그것은 아가씨들이 살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는 탈수기가 물을 뱉어내듯 청산유수로 말을 뱉어냈다.
"칼을 약간 잘못 놀리던가, 친구들끼리 좀 심하게 싸운다던가, 아니면 조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던가, 조금 약기운이 센 약을 삼킨다거나, 심지어 길을 걷다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도 재수가 없으면 여러분 앞에 저승이 떡하니 입을 벌리기 마련이지요. 중요한 것은 저승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여기가 저승이냐 아니냐 하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가씨들은 걱정하실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여긴 저승이 아니니까요. 아가씨들이 살던 세계와는 많이 다르시겠지만 좀 계셔보시면 그래도 있을 만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실 거예요. 튼실한 공간 구조와 법칙이 지배하고 있답니다."
남자가 어디서 꺼냈는지 가마에 타고 있을 때 물고 있던 짧은 파이프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벌써 대번에 걱정이 줄어들지 않으세요? 그리고 제가 아까 아가씨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던 초대장에 관해선데요. 저는 그 초대장이 왜 아가씨들을 이곳으로 끌고 들어온 거라고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손님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손님들은 그저 초대장을 한장 받으셨을 뿐이세요. 오시고 안오시는 문제는 전적으로 손님들께 달려있지요. 방문을 하지 않겠다는게 손님들의 의견이라면, 우린 억지로 손님들을 끌고 오지 않습니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뭔가 오해가 있는게 분명해요. 초대장에 손이 달리지 않은 이상 아가씨들을 이곳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얘기는, 글쎄요..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쇼트웨이브는 담배도 끼어있지 않는 파이프를 남자가 무엇에 쓰려고 가지고 다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며 팔짱을 끼었다.
"걱정이 줄어들지 않느냐구요? 글쎄, 뭐라고 할까요. 인큐베이터 같으세요, 아저씨는요. 아저씨 말을 듣다보니, 원래부터 있었던 걱정거리는 튼튼하게 자리를 잡구요, 거기다 더해서 새로운 의심까지 새록새록 자라나는군요. 밀림 속을 헤매는 기분이예요. 여기가요."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아저씨 의견대로라면 우리는 여기가 저승이 아닌 걸 고마와해야 할 지경이군요. 하지만 말이죠, 여기가 저승이건 아니건간에 결국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구요, 바로 그런 상황이 우리를 대단히 고통스럽게 만든다는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여기가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해도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예요. 원해서 온 것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저희가 이곳에 머무른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도 여기가 그닥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기엔 아주 충분한 시간이었죠. 아저씨가 자랑하시던 이쪽 세계의 튼실한 공간구조와 법칙이란 것도, 저희가 겪어보니 프레디만 빠졌다 뿐이지 완전히 나이트메어 시리즈 수준이더군요."
뭔가 말할 듯 입을 열려는 남자를 무시하며 쇼트웨이브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꾸 초대장에 손이 달리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시는데요, 물론 초대장이 일반적인 초대장이라면 그렇겠지요. 가령 범고래씨의 환갑잔치가 열릴 예정이오니 참석해 주세요 라든가 우리 귀여운 물두꺼비가 첫 돐을 맞았으니 같이 기뻐해 주세요 하는 것처럼 평범한 초대장 말이죠. 하지만 아저씨가 말씀하시는 초대장은 이런 범주의 것이 아니었어요. 아니, 초대장이라고 볼 수 조차 없는 것이었죠. 그건 버섯찌게 집을 소개하는 페이지였다구요. 아저씨가 초대장을 보내신다면요, 적어도 이런 문구가 들어있어야 해요. 저승에서의 5박6일 칵테일 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모래가 휘몰아치는 황야의 불구덩이 속에서 용암을 뒤섞은 버닝 칵테일 한잔. 독버섯 찌게와 각종 맹수들의 습격을 직접 경험할 귀중한 기회도 드림. 아시겠어요? 그런게 초대장이라구요. 물론 그러셨다면 우리는 여기로 오는 대신 그것을 들고 경찰서로 갔을테죠."
아이버슨이 페이크 드리블을 시도할 때 농구공을 두드리는 템포와 비슷한 박자로, 남자가 횡경막을 경련시키며 농구공을 토하는 것처럼 숨차게 웃음을 토해냈다.
"진짜 아가씨들, 재치덩어리셔요. 말씀을 얼마나 재밌게 하시는지. 우리 시의 홍보담당으로 채용하고 싶을 정도랍니다. 제가 시장이라면 말이지요. 아, 정말 즐겁군요. 매력. 매력. 매력 만점이세요."
남자가 숨을 몰아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가요? 초대장이 버섯찌게 집을 소개하는 광고지였다는게. 그게 사실이라면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어째서 초대장이 그런 식으로 발송이 됐을까."
쇼트웨이브가 얼굴을 찌푸렸다.
"진짜 몰라서 그러시는 건가요? 아니면 알면서도 시치미 떼시는 건가요. 아까 저희가 책을 드렸을때 그 페이지를 보지 않으셨나요?"
남자는 커튼이 닫히는 바람에 옆집 아가씨가 옷벗는 광경을 아슬아슬하게 못 보게 된 사람처럼 아픔과 안타까움이 교차되는 표정을 지어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초대장이 딸려 오길래 그냥 그것이려니 했지 뭡니까.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이 만든 초대장인 건 확실했습니다. 제 손길에 반응했으니까요."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셨겠죠. 어쩐지 서둘러 불태우시더라구요. 아저씨는 계속해서 오해다, 착오다, 못 봤다 이러시는데, 그럼 더 근사한 얘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또 무슨 얘기가 있습니까?"
"그럼요. 그 초대장이란 것이 줄줄이 일으킨 사건들을 꿰면, 아마도 비엔나 소시지를 30미터쯤 엮을 수 있을거예요. 아까 그 종이가 버섯찌게 집을 소개하는 페이지라는 건 말씀을 드렸었죠? 일단 버섯찌게 집은 버섯찌게 집이 아니었어요. 그곳은 한옥 지붕으로 돔을 씌운 야구장이더군요. 물론 저희는 순진하게도 그 종이에 써 있는 대로 그곳이 버섯찌게 집이라고 믿고 들어가서 버섯찌게를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어떤 할머니께서 나오셔서 저희한테 독버섯을 먹이시지 뭐예요. 덕분에 저흰 거기서 죽었죠. 겁을 집어먹은 저희가 하도 우왕좌왕하니까 그 꼬락서니가 불쌍했던지, 거기 계시던 분이 걱정말라고 하시더군요. 죽어도 죽은게 아니라나요. 알쏭달쏭한 얘기를 늘어놓으시면서 우리가 가져온 책자에 있던 그 종이, 그러니까 아저씨 초대장 말이예요. 그게 사실은 부적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우리를 꼬여내고 사로잡는 아주 강력한 부적이요."
그녀가 손바닥을 탁 쳤다.
"자, 이게 다 뭘 뜻하는 건지 이제 감이 잡히시나요? 한마디로 말해서 그 초대장엔 손이 있었다는 얘기죠. 우리가 꼼짝없이 잡혀서 끌려들어올 만큼 커다란 손이요."
쇼트웨이브가 남자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 잠시 말을 끊었다. 그가 말을 하려고 하자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잠깐만요, 재미있는 일이 조금 더 남았어요. 식사를 끝낸 다음, 할머니께서는 재수없는 일에 엮여서 기분이 나쁘시다면서 저희를 쫓아내셨지요. 누군가가 저희를 죽이는 일에 할머니를 이용했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께서는 저희가 부적에 끌려 온 것을 모른 채로, 이런 일에 흔히 사용되는 버섯을 저희한테 먹이신거죠. 저희를 이 세계에 적응시키려구요. 그리고 나선 이상하다 싶으니까 저희가 어떻게 온 건지 확인해 보고는, 더이상 손을 섞기 싫어져서 저희를 쫓아낸 거지요."
쇼트웨이브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일이 대충 이렇게 된 거지요. 부적은 저희를 나포하고, 이상한 할머니 댁으로 유인해서 간접적이나마 살해당하도록 만들었죠. 저희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우연찮게도 제천시로 나가는 표지판이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났어요. 그걸 따라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약간 기울여 귓볼에 매달린 귀걸이를 살짝 매만졌다.
"아저씨 말대로 그게 단지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초대장이었다면, 그 집에 계시던 분이랑 아저씨 중 한 분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되는군요."
쇼트웨이브는 디지털퍼머를 바라보았다.
"넌 아저씨 말을 믿니?"
"아니."
"나도 그래."
쇼트웨이브가 다시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쩌죠. 우린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남자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버섯찌게 집에 할머니가 계셨다면 혹시 마고 할머니 아니었나요?"
쇼트웨이브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네, 그 페이지에 그렇게 써있더군요. 마고 할머니 버섯찌게라나요. 아시는 분이신가 부죠? 혹시 단골이셨나요."
남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뻔뻔함이 엿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누가 마고 할머니를 모르겠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 알겠습니다. 초대장이 왜 아가씨들을 마고 할머니 댁으로 보냈는지 말이지요."
쇼트웨이브가 냉담하게 대꾸했다.
"이젠 초대장이 제 맘대로 손님들이 갈 곳을 정한다는 얘기를 하시려는 건가요?"
"아, 그런건 아니구요. 아가씨들이 살던 세계에서 이 곳으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소정의 절차가 필요한데, 초대장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제시되어 있었던 거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지요."
"무슨 뜻인가요?"
"쉽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저 역시 아가씨들이 살던 세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거기서 만약 다른 나라에 살던 친척이 아가씨들을 초대했다고 합시다. 대략적인 절차를 생각해 보시라구요. 비행기를 탄다면 우선 친척이 사는 나라의 공항에서 내려야겠지요? 그리고 공항검색대를 통과하셔야겠고 여러가지 검사와 비준을 받으실 겁니다. 이것들은 그 나라에 입국하기 위한 필수 절차인 것이지요."
남자는 손바닥을 위 아래로 뒤집으며 부드럽고 커다란 제스쳐를 취했다.
"이 곳도 마찬가지랍니다. 아가씨들이 이 곳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가 있어요. 생기를 죽이는 일이지요. 그것을 살해되었다고 표현하셨는데 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살아있는 기색을 좀 없앤것 뿐이예요. 아가씨들이 살해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는, 무엇보다 아가씨들께서 지금 여기서 저랑 얘기하고 있다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렇게 생기를 없애주는 곳이 마고 할머니 댁입니다. 말하자면 그곳은 공항이란 말입니다. 아가씨들은 공항검색대를 통과한 거구요. 비로서 이 곳에 있을 자격을 얻은 거지요. 집이 야구장만하다고 하셨죠? 옛날에는 그곳에 사람들이 꽉꽉 차 있었어요. 아가씨들이 살던 세계가 지금보다 신화의 영역과 소통이 더 원활했을 당시였지요. 대단히 커다랗고 번화한 성이었습니다."
남자가 약간 화가 난다는 듯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마고 할머니의 말은 상식을 벗어난 데가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마고 할머니를 살인청부업이라도 시킨 것처럼 악용한 것으로 말했던 모양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식의 표현이 용납된다면, 아까 예를 든 친척은 아가씨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공항검색대를 악용한 것이라는 표현도 성립할텐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고요, 단지 그 초대장은 아가씨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빠르고 경제적인 길을 연결시켜 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해 주시는게 맞는 거지요."
쇼트웨이브가 기가 막힌 나머지 실소를 터뜨렸다.
"공항검색대라..그 얘기를 들으면 마고 할머니란 분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군요. 그러니까 그 할머니는 월급도 안 받고 무보수로, 이 까다로운 세계의 입국검사를 하신다는 거군요. 좋아요. 그럴 수 있어요. 아저씨 말을 인정할 수 있다구요. 단 이것 하나만 가능하다면요."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아저씨의 말처럼 이게 초대가 맞고, 독버섯을 먹은 것도 공항검색에 불과한 거라면, 우리를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내시는 것도 별 문제는 없겠군요."
남자가 엔드라인 근처에서 쿼터백의 패스를 기다리는 런닝백처럼 초조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야 물론입니다."
그녀들이 깜짝 놀랐다. 다시한번 디지털퍼머가 물었다.
"돌아갈 수 있다구요?"
"그렇다니까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가, 너무나 짧고 단정적인 남자의 말이 사뭇 의심스럽다는 어투로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정말인가요. 잠시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거짓말은 아니시겠죠?"
"그럴리가요. 금새 들통날 일을..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원래 사시던 세계로 가는 방법이 있어요."
남자가 짧은 담뱃대의 끝을 잡고 손바닥을 두드렸다.
"사실은 아까 잠깐 말씀드렸던 일 말입니다만, 생각나시지요? 가시면서 말씀드릴 일이 있다고 했던거요."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던거요?"
"예, 기억하시는군요. 그 일이요. 그런데 그 일이 그쪽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막히게 되지요. 돌아가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건 중요하게 의논을 해 봐야 될 사안입니다."
쇼트웨이브가 손을 들어 남자의 말을 저지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돌아갈 생각이 있으면 아저씨께서 시키는 일을 해라, 이건가요? 그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그 일을 시키시려고 저희를 부른 거였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초대는 초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사실 아가씨들이 내키지 않으면 그 일을 안하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돌아가실 길이 있는지를 우리가 최대한 열심히 연구해 보도록 하지요. 그동안 아가씨들의 체류는 우리가 모두 책임을 지구요."
"다른 방법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건가요?"
"아니요, 연구해 본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발견된 예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겠지요. 내일 당장 발견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고.."
쇼트웨이브가 말을 가로챘다.
"어쩌면 10년 후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못 찾을 수도 있구요. 아저씨가 사용하시는 어법은 정말 난해하군요. 6차함수의 근을 구하는 것보다 더 끔찍해요. 결국 돌아가고 싶으면 아저씨가 시키는 일을 하라는 것으로 낙착이 되는 거잖아요."
쇼트웨이브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일이란게 뭐지요?"
남자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단호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 일이 뭔지는 여기서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기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 이 주위는 대단히 불안한 상태입니다. 위험이 코앞까지 닥쳐왔어요. 계속해서 말씀 드리지만 우리는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시로요. 아가씨들도 마찬가지구요."
그가 검은 눈을 빛내며 그녀들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를 믿으십시오. 집으로 꼭 돌아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쇼트웨이브가 그를 노려보다가 얼굴을 돌려 디지털퍼머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말없이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디지털퍼머는 보일듯 말듯 쇼트웨이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쇼트웨이브가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이 결심을 한 듯 그에게 말했다.
"알겠어요. 가보지요."
남자가 안도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럼 가마에 타시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쇼트웨이브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흰 저희 차를 이용할 거예요. 먼저 출발하시면 저희가 뒤따라 갈께요."
남자가 고개를 빼고 그녀들 뒤를 바라보았다.
"차라면 저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유리창이 달린 새로운 냉장고 모델인줄 알았습니다. 아, 과연 바퀴가 달려있군요. 그나저나 많이 망가진거 같은데 움직이긴 하는 건가요?"
쇼트웨이브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아주 잘 움직이구요. 남의 차 흉보는거 그만 하시고 이제라도 출발하시면, 태생이 냉장고가 아니라는걸 보여드릴 수 있겠는데요."
남자가 작게 웃었다.
"아니, 흉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차에 타시는 것보다는 우리 가마에 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 시에 들어가시면 처음 와보시는 아가씨들로서는 길을 잃으실 가능성이 크세요."
"그렇게 도시가 복잡한가요?"
"아니요. 도시는 단순한데 아가씨들이 이제껏 겪어보셨던 공간과는 약간 다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반드시 당황하실 거예요."
쇼트웨이브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저는 저 차를 여기에 버리고 갈 수 없어요. 이미 저 차는 저희 생명을 여러번 구해줬거든요. 그냥 단순한 물건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저 차를 운반해서 가지요."
"운전하시기가 좀 불편하실텐데요."
"괜찮습니다. 운전하지 않을 거거든요."
그가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 중에서 몇 명을 골라냈다. 지목된 남자들이 가마의 옆구리에서 길다란 봉처럼 생긴 가마채를 두 개 끄집어 냈다. 그들이 쭈볏쭈볏 앞으로 나왔지만 왠지 무척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그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괜찮아. 저 아가씨들도 밖에 서 있잖아. 잠깐 나가서 들고 들어오면 돼. 그리고 빨리 여길 뜨자구. 잠깐 동안이면 아무 문제 없어. 자, 서둘러."
남자들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삼키는 어린아이처럼 싫은 기색을 완연히 내비치며 카펫 끝으로 다가왔다. 제일 앞쪽에 있는 한 사람이 염산에 발을 담그는 양 조심스럽게 발끝을 땅바닥에 대었다. 그리고는 한밤 중에 담을 넘다가 담장에 얹혀져 있는 기와를 떨어뜨린 도둑놈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쇼트웨이브가 한마디 했다.
"이러다가 밤새겠군요. 길을 잃더라도 저희가 몰고 가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그러자 남자가 그들을 독려했다.
"자자, 이보게들. 이게 무슨 창피한 짓이야, 아가씨들 앞에서. 자네들이 자꾸 이러면 아가씨들이 우리를 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테니 나를 믿으라구. 어서 가서 들고 와. 더 지체하면 시장님께 다 말씀드릴거니까."
시장님한테 고자질하겠다는 얘기가 위력을 발휘했다. 그들이 더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카펫 밖으로 나가 차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여전히 불안한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빠르고 기계적인 동작으로 가마채를 차 밑으로 넣은 다음 앞바퀴 쪽에 걸어서 반대편에 있는 동료와 나눠 잡았다. 또 하나의 가마채를 든 사람이, 이번엔 뒷바퀴 쪽에 그것을 넣어 마찬가지 방법을 통해 반대편 동료와 2인 1조로 가마채를 함께 잡았다. 그녀들은 단지 4명이서 차 한대를 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그런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남자들은 발포 스티렌 수지로 만들어진 상자를 드는 것처럼 가뿐하게 차를 들어올렸다.
"자, 이제 타시지요."
그가 그녀들을 향해 닭고기 수프 속을 떠도는 짚신벌레 만큼이나 환한 미소를 보냈으나, 그녀들은 그것을 애써 외면한채 잠자코 가마에 올랐다. 남자 역시 가마에 올라 그녀들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같이 온 일행을 향해 외쳤다.
"출발하세."
펜트하우스를 향해 올라가는 고속 엘리베이터처럼 지체없이 가마가 들려졌다. 출렁이는 느낌이 마치 밑이 없는 바닥을 향해 내려앉는 바이킹을 탄 것같아 그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난간을 움켜 잡았다. 남자가 빈 파이프를 물고서 편안히 다리를 꼬았다.
가마가 출발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
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태그 | |||
황진이-무료한국야동,일본야동,중국야동,성인야설,토렌트,성인야사,애니야동
야동토렌트, 국산야동토렌트, 성인토렌트, 한국야동, 중국야동토렌트, 19금토렌트 |
추천 0 비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