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차츰 물에 삶은 스파게티처럼 연한 음색으로 잦아 들어갔고, 마지막 음식을 남기고 있는 요리사들의 움직임도 처음에 비해 한결 한가하게 변했다.
쇼트웨이브는 덜어온 파테 드 소몽을 한 조각 입에 넣고 씹었다. 디지털퍼머는 이미 차려진 음식을 반 이상 먹어치우고 있었는데, 식도락의 취미가 있는 그녀로서는 해변에 폭사되는 자외선처럼 미뢰를 향해 쏟아지는 놀라운 맛들의 융단 폭격을 얌전히 견뎌내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쇼트웨이브도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음식들의 감미로움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들이 제공한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방금 시식한 파테 드 소몽 또한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이한 식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음식을 덮고 있는 파이의 바삭함과 그 안에 넣은 파르세의 부드러움이 주는 대조로 인해, 그녀는 토사를 굴착하기 위해 푹신한 모래 위를 지나가는 초대형 파워셔블의 강력한 캐터필러가 입 안에 달려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적당히 익힌 연어 구이에서 풍겨나오는, 케모마일을 닮은 달콤한 사과향이 쇼트웨이브의 기도를 가득 채웠다. 씹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빠르게 사라지는 음식을 그녀는 긴 밧줄 삼키듯 오랫동안 천천히 식도로 넘겼다.
디지털퍼머는 나머지 음식을 차례차례 먹어 버리고서는 우아한 동작으로 들고 있던 포크를 접시 옆에 내려놓았다.
"집사님,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아까 공연을 한다던 칠선녀들, 진짜 선녀들인가요."
집사는 기원전 3000년 경부터 만들었다던 고대 스메리안 치즈처럼 푸석푸석 낡아버린 눈빛으로 디지털퍼머를 쳐다보았다.
"미안합니다만 큰아가씨. 진짜와 가짜의 구별은 더이상 무의미합니다. 물론 말씀하시는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큰 아가씨께서 진짜 선녀냐고 묻는 의중에는, 칠선녀가 정말 극락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며 살고 있는 그 선녀들이냐라는 의미가 담겨있겠지요? 단지 그것만 물어보시는 거라면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진짜 선녀라고 보셔도 무방해요. 그렇지만 더 깊은 것을 물어보신다면, 그러니까 질문을 바꿔 진짜인가 가짜인가 보다는 무엇인가를 물으신다면, 해답이 점차 모호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극락이란 무엇인가를 물어보신다면, 그것을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그곳에서 온 칠선녀가 어떤 존재인지가 갈리게 되는 겁니다. 아가씨들께서는 극락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나요?"
그때 공교롭게도 아침 식사의 마지막 순서로 만든 음식이, 비쩍 곯은 염소를 닮은 말라깽이 요리사에 의해 식탁에 차려졌다.
그것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예쁜 오두막 집 모양으로 만들어진 크림치즈 무스였다. 쓰러질 것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진 오래된 벽은 초컬릿으로 만들어진 통나무를 사용했고, 황토빛 바닥은 블루베리 잼을 바른 파트 쉬크레를, 머랭으로 구워진 지붕에는 눈이 쌓인 것처럼 듬뿍 딸기 분말이 뿌려져 있었다.
바나나 크림으로 짜여진 작은 문을 열면, 집 안에서 요정이라도 나올 것 같은 크림치즈 무스의 모습에 그녀들은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디지털퍼머는 그것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포크를 든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쇼트웨이브가 나이프를 들어 과감하게 오두막의 한 귀퉁이를 헐어내 디지털퍼머의 접시에 담아 주었다. 포크레인에 의해 철거되는 판자촌처럼 한 쪽이 허물어진 오두막을 보며 디지털퍼머가 울상을 지었다. 쇼트웨이브는 디지털퍼머의 애절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굴뚝 쪽의 모퉁이를 다시 잘라서 자신의 접시에 담았다.
"극락이 뭐냐고 물으셨나요? 글쎄요,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한 세계가 아닌가요. 언제나 즐거움만 가득한."
집사가 쇼트웨이브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것보세요. 벌써부터 매우 모호한 얘기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행복이란 말도 그렇고, 언제나 즐겁다는 말도 그렇지요. 영원히라는 말은 더욱 더 파악하기 힘듭니다. 행복이라게 뭔가요, 어떻게 해야 행복한가요.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행복한 사람이 있을테고 단지 그것뿐이라면 우리 역시 이곳에 극락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행복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행복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타인과 상충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쇼트웨이브는 잘라온 무스를 찍어 굴뚝 모양의 초컬릿과 함께 입에 넣었다. 숨을 채 들이쉬기도 전에 고소한 크림치즈 맛의 무스 조각은 신선한 사향초 향기만을 남긴 채 녹아서 없어졌다. 저절로 감탄이 터지는 맛이었다.
디지털퍼머는 이제 주저없이 오두막을 반토막 내어 접시에 담아갔다. 집사는 반쯤 남아있는 물잔에 다시 물을 따라주며 말을 이었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 보지요. 만약 어떤 남자가 길을 걷다가 예쁜 여자를 발견하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내키는 대로 그녀와 성교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고 합시다. 제가 아는 한 대다수의 남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여자와 마음대로 섹스할 수 있다면 대단히 행복해할 것입니다. 분명히 남자에겐 그곳이 극락이겠지요."
집사가 느닷없이 들이댄, 대단히 극악하고 저질스러워 보이는 사례에 그녀들은 급소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깜짝 놀랐으나, 정작 집사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자 쪽에서는 어떤가요. 그 나라에서 지켜야 하는 어떤 의무감에서 남자의 요청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행복할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요? 이 말은 누군가에게 행복하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역이 된다는 걸 뜻합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행복은 이런 식입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디지털퍼머가 정색을 하고 반문했다.
"무슨 소리세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서로가 약간씩 양보할 수도 있잖아요. 나를 위해서 희생하는 누군가가 고역이 되지 않도록요. 그럼으로써 서로가 행복해 진다면 좋은 거 아닐까요. 이런 걸 저희가 살던 곳에서는 윈윈 전략이라고 하는데요."
집사가 콧수염 끝을 만져 날카로운 부리처럼 다듬었다.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약간 양보를 하시겠다구요. 뭐,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만 언제까지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극락의 행복은 아까 작은 아가씨께서 말씀하신대로 영원히 무한정으로 누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아가씨들께서 선한 마음으로 약간 양보를 하는 것으로는 택도 없다는 뜻입니다."
집사는 짝짓기 철을 만난 개똥지빠귀처럼 지저귀는 도중에도 그녀들의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 것을 알아채자, 고개를 돌려 요리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마칠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는지 요리사들은 늘어놓은 도구들을 챙기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합니다. 그건 한 사람 만의 극락을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개인 소유의 스위트 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신 만의 극락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소유주를 위한 완벽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 소유주가 좋아할 만한 가상의 존재들을 가득 채워넣는 거지요. 단, 그 극락 안에는 소유주를 제외하고는 진짜 존재란 없습니다. 모조리 가상이란 말입니다. 그럴 수 밖에요. 다른 존재가 존재하는 순간 그 존재에게는 극락의 주인을 위한 희생이 강요되니까요. 그렇다면 극락이 아니겠지요. 말하자면 극락은 즐거움과 행복으로만 가득 찬 곳이니까요."
집사는 손을 맞부딪히며 요점에 밑줄 쫙 긋는 선생님처럼 힘을 주었다.
"자, 이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껏 진짜냐 가짜냐를 따졌습니다. 그런데 극락이 존재한다면 가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가상으로 존재하는 극락이 진짜 극락일까요, 가짜 극락일까요. 다시 묻겠습니다. 진짜 극락은 가짜여야 한다. 이 명제가 맞는 것일까요, 틀린 것일까요."
집사가 한 열흘가량 수조에 담가 놓은 혀넙치처럼 맛이 간 눈동자를 하고는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것 때문에 제가 처음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은 무의미하다고 말입니다. 칠선녀들은 선녀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물으신다면 저는 그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지겹지만 성의를 봐서 대꾸해 준다는 표정으로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정의를 바꾼다면요. 그러니까 극락이란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해 성취된 깨달음의 세계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집사가 턱을 만지며 대답했다.
"아하. 행복같은 모호한 단어를 빼버리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만 그런다고 하더라도 행복에서 몇 걸음 더 나가지 못합니다. 작은 아가씨가 말씀하신 이번 정의에서는 깨달음이란 말이 매우 모호합니다. 행복이란 말처럼요. 얼마나 모호하냐 하면, 부처님이 오신 이래 그 깨달음이란 것이 무언지 정확히 파악한 사람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이 갈만큼 모호하단 말이지요. 열 손가락이라는 표현도 사실 매우 관대한 것입니다. 저는 깨달음을 정확히 얻은 사람이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 깨달음이 뭔지 모른다는 소립니다. 그러니 모호하지요. 결국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개인적인 성취로 놓아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요리사가 늘어놓았던 칼들을 집더니 꽤 먼거리에 있는 다른 편 요리사에게 마치 저글링을 하듯이 차례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 같았지만, 칼들은 똑같은 궤적으로 똑같은 회전을 하며 날아갔고, 상대편 요리사는 칼의 손잡이 쪽을 정확하게 받아 칼집에 챙겨넣었다.
집사는 이 기묘한 서커스를 이미 여러 번 보아 왔던 양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작은 아가씨의 새로운 정의에 따르면, 극락은 깨달음이라는 것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경우엔 깨달음이 매우 개인적인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고승들이 사바세계가 극락정토이고, 현실세계와 극락세계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장난을 한 것이 아니구요, 고승들 자신이 개인적으로 깨달은 극락을 표현한 것입니다. 극락이 현실세계와 같다면 그걸 진짜냐 가짜냐 시비거는 것은 아주 부질없는 짓이지요."
결론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로 돌아오자 디지털퍼머는 드디어 짜증이 났다.
"정말 답답한 소리군요. 전 단지 칠선녀가 진짜냐는 걸 물은 것 뿐인데요."
"집사님 말씀은 그런 걸 확인하려 들지 말라는 뜻이야."
쇼트웨이브가 잠자코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집사는 정곡을 찔렀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들이 식사를 끝내자 들려오던 음악이 따라서 멈췄다. 쇼트웨이브가 잠깐 공중을 노려보고 나서 말했다.
"어제 집사님께선 저희에게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제천시에 오면 얘기해 주신다고 했는데 이제 그 일에 대해서 얘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집사가 머리를 만졌다.
"그 일이요, 네.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작은 아가씨께선 그게 어떤 일인지 좀 짐작이 가시나요?"
"아뇨. 제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집사님께서 말씀 안해주시는데 알 리가 없죠. 다만 어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저희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거 같던데요."
집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건 시장님과도 관계가 있지요."
디지털퍼머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래요, 시장님께서 저희를 보고 싶어했다고 하셨잖아요. 바쁘신가요? 언제쯤 만나게 되나요."
집사가 아무 말 없이 그녀들을 바라보다가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듯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게 참 말씀드리기 힘든 문제라서요. 이건 우리 시의 안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가씨들과 저의 안위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아가씨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실 수 있도록 우리가 사는 모습을 먼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우리 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이 곳이 나름대로 얼마나 멋진 곳인지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저희가 그걸 아는게 집사님이 말한 일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런 것을 봄으로 해서, 아가씨들께서 우리 시와 여기 살고 있는 시민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애정을 갖게 된다면, 아마 제가 일을 부탁하는데 좀 더 당위성을 갖게 되겠지요. 아가씨들께서 그 일을 하시겠다고 수락하시면 시장님을 뵙게 될 겁니다."
그녀들은 버마재비가 언제 먹이를 해치우는지 관찰하는 곤충학자처럼 뚫어지게 집사를 바라보았다.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언제쯤 저희한테 그 일이란게 뭔지 말씀해 주시겠다는 소린가요?"
"하루 우리 시를 관광하시고, 오늘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얘기하는게 어떨까 싶은데요."
그녀들이 100킬로그램 짜리 덤벨을 들어올린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자 집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 드신것 같군요. 식사가 맛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이라 매우 단촐하게 차렸는데. 이따 저녁에는 좀 더 푸짐한 식사를 차려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잠시 방으로 돌아가셨다가 준비가 되면 의림지를 가시도록 하지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잠깐 차에 좀 가봐야겠어요. 챙길 것들이 있거든요."
집사가 약간 과장된 몸짓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신가요. 그럼 차로 안내해 드리지요. 차는 오늘 아침, 뒤쪽 뜰로 옮겨 놓았습니다."
쇼트웨이브는 덜어온 파테 드 소몽을 한 조각 입에 넣고 씹었다. 디지털퍼머는 이미 차려진 음식을 반 이상 먹어치우고 있었는데, 식도락의 취미가 있는 그녀로서는 해변에 폭사되는 자외선처럼 미뢰를 향해 쏟아지는 놀라운 맛들의 융단 폭격을 얌전히 견뎌내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쇼트웨이브도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음식들의 감미로움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들이 제공한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방금 시식한 파테 드 소몽 또한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이한 식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음식을 덮고 있는 파이의 바삭함과 그 안에 넣은 파르세의 부드러움이 주는 대조로 인해, 그녀는 토사를 굴착하기 위해 푹신한 모래 위를 지나가는 초대형 파워셔블의 강력한 캐터필러가 입 안에 달려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적당히 익힌 연어 구이에서 풍겨나오는, 케모마일을 닮은 달콤한 사과향이 쇼트웨이브의 기도를 가득 채웠다. 씹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빠르게 사라지는 음식을 그녀는 긴 밧줄 삼키듯 오랫동안 천천히 식도로 넘겼다.
디지털퍼머는 나머지 음식을 차례차례 먹어 버리고서는 우아한 동작으로 들고 있던 포크를 접시 옆에 내려놓았다.
"집사님,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아까 공연을 한다던 칠선녀들, 진짜 선녀들인가요."
집사는 기원전 3000년 경부터 만들었다던 고대 스메리안 치즈처럼 푸석푸석 낡아버린 눈빛으로 디지털퍼머를 쳐다보았다.
"미안합니다만 큰아가씨. 진짜와 가짜의 구별은 더이상 무의미합니다. 물론 말씀하시는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큰 아가씨께서 진짜 선녀냐고 묻는 의중에는, 칠선녀가 정말 극락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며 살고 있는 그 선녀들이냐라는 의미가 담겨있겠지요? 단지 그것만 물어보시는 거라면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진짜 선녀라고 보셔도 무방해요. 그렇지만 더 깊은 것을 물어보신다면, 그러니까 질문을 바꿔 진짜인가 가짜인가 보다는 무엇인가를 물으신다면, 해답이 점차 모호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극락이란 무엇인가를 물어보신다면, 그것을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그곳에서 온 칠선녀가 어떤 존재인지가 갈리게 되는 겁니다. 아가씨들께서는 극락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나요?"
그때 공교롭게도 아침 식사의 마지막 순서로 만든 음식이, 비쩍 곯은 염소를 닮은 말라깽이 요리사에 의해 식탁에 차려졌다.
그것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예쁜 오두막 집 모양으로 만들어진 크림치즈 무스였다. 쓰러질 것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진 오래된 벽은 초컬릿으로 만들어진 통나무를 사용했고, 황토빛 바닥은 블루베리 잼을 바른 파트 쉬크레를, 머랭으로 구워진 지붕에는 눈이 쌓인 것처럼 듬뿍 딸기 분말이 뿌려져 있었다.
바나나 크림으로 짜여진 작은 문을 열면, 집 안에서 요정이라도 나올 것 같은 크림치즈 무스의 모습에 그녀들은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디지털퍼머는 그것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포크를 든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쇼트웨이브가 나이프를 들어 과감하게 오두막의 한 귀퉁이를 헐어내 디지털퍼머의 접시에 담아 주었다. 포크레인에 의해 철거되는 판자촌처럼 한 쪽이 허물어진 오두막을 보며 디지털퍼머가 울상을 지었다. 쇼트웨이브는 디지털퍼머의 애절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굴뚝 쪽의 모퉁이를 다시 잘라서 자신의 접시에 담았다.
"극락이 뭐냐고 물으셨나요? 글쎄요,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한 세계가 아닌가요. 언제나 즐거움만 가득한."
집사가 쇼트웨이브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것보세요. 벌써부터 매우 모호한 얘기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행복이란 말도 그렇고, 언제나 즐겁다는 말도 그렇지요. 영원히라는 말은 더욱 더 파악하기 힘듭니다. 행복이라게 뭔가요, 어떻게 해야 행복한가요.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행복한 사람이 있을테고 단지 그것뿐이라면 우리 역시 이곳에 극락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행복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행복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타인과 상충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쇼트웨이브는 잘라온 무스를 찍어 굴뚝 모양의 초컬릿과 함께 입에 넣었다. 숨을 채 들이쉬기도 전에 고소한 크림치즈 맛의 무스 조각은 신선한 사향초 향기만을 남긴 채 녹아서 없어졌다. 저절로 감탄이 터지는 맛이었다.
디지털퍼머는 이제 주저없이 오두막을 반토막 내어 접시에 담아갔다. 집사는 반쯤 남아있는 물잔에 다시 물을 따라주며 말을 이었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 보지요. 만약 어떤 남자가 길을 걷다가 예쁜 여자를 발견하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내키는 대로 그녀와 성교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고 합시다. 제가 아는 한 대다수의 남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여자와 마음대로 섹스할 수 있다면 대단히 행복해할 것입니다. 분명히 남자에겐 그곳이 극락이겠지요."
집사가 느닷없이 들이댄, 대단히 극악하고 저질스러워 보이는 사례에 그녀들은 급소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깜짝 놀랐으나, 정작 집사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자 쪽에서는 어떤가요. 그 나라에서 지켜야 하는 어떤 의무감에서 남자의 요청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행복할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요? 이 말은 누군가에게 행복하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역이 된다는 걸 뜻합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행복은 이런 식입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디지털퍼머가 정색을 하고 반문했다.
"무슨 소리세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서로가 약간씩 양보할 수도 있잖아요. 나를 위해서 희생하는 누군가가 고역이 되지 않도록요. 그럼으로써 서로가 행복해 진다면 좋은 거 아닐까요. 이런 걸 저희가 살던 곳에서는 윈윈 전략이라고 하는데요."
집사가 콧수염 끝을 만져 날카로운 부리처럼 다듬었다.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약간 양보를 하시겠다구요. 뭐,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만 언제까지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극락의 행복은 아까 작은 아가씨께서 말씀하신대로 영원히 무한정으로 누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아가씨들께서 선한 마음으로 약간 양보를 하는 것으로는 택도 없다는 뜻입니다."
집사는 짝짓기 철을 만난 개똥지빠귀처럼 지저귀는 도중에도 그녀들의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 것을 알아채자, 고개를 돌려 요리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마칠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는지 요리사들은 늘어놓은 도구들을 챙기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합니다. 그건 한 사람 만의 극락을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개인 소유의 스위트 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신 만의 극락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소유주를 위한 완벽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 소유주가 좋아할 만한 가상의 존재들을 가득 채워넣는 거지요. 단, 그 극락 안에는 소유주를 제외하고는 진짜 존재란 없습니다. 모조리 가상이란 말입니다. 그럴 수 밖에요. 다른 존재가 존재하는 순간 그 존재에게는 극락의 주인을 위한 희생이 강요되니까요. 그렇다면 극락이 아니겠지요. 말하자면 극락은 즐거움과 행복으로만 가득 찬 곳이니까요."
집사는 손을 맞부딪히며 요점에 밑줄 쫙 긋는 선생님처럼 힘을 주었다.
"자, 이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껏 진짜냐 가짜냐를 따졌습니다. 그런데 극락이 존재한다면 가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가상으로 존재하는 극락이 진짜 극락일까요, 가짜 극락일까요. 다시 묻겠습니다. 진짜 극락은 가짜여야 한다. 이 명제가 맞는 것일까요, 틀린 것일까요."
집사가 한 열흘가량 수조에 담가 놓은 혀넙치처럼 맛이 간 눈동자를 하고는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것 때문에 제가 처음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은 무의미하다고 말입니다. 칠선녀들은 선녀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물으신다면 저는 그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지겹지만 성의를 봐서 대꾸해 준다는 표정으로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정의를 바꾼다면요. 그러니까 극락이란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해 성취된 깨달음의 세계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집사가 턱을 만지며 대답했다.
"아하. 행복같은 모호한 단어를 빼버리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만 그런다고 하더라도 행복에서 몇 걸음 더 나가지 못합니다. 작은 아가씨가 말씀하신 이번 정의에서는 깨달음이란 말이 매우 모호합니다. 행복이란 말처럼요. 얼마나 모호하냐 하면, 부처님이 오신 이래 그 깨달음이란 것이 무언지 정확히 파악한 사람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이 갈만큼 모호하단 말이지요. 열 손가락이라는 표현도 사실 매우 관대한 것입니다. 저는 깨달음을 정확히 얻은 사람이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 깨달음이 뭔지 모른다는 소립니다. 그러니 모호하지요. 결국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개인적인 성취로 놓아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요리사가 늘어놓았던 칼들을 집더니 꽤 먼거리에 있는 다른 편 요리사에게 마치 저글링을 하듯이 차례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 같았지만, 칼들은 똑같은 궤적으로 똑같은 회전을 하며 날아갔고, 상대편 요리사는 칼의 손잡이 쪽을 정확하게 받아 칼집에 챙겨넣었다.
집사는 이 기묘한 서커스를 이미 여러 번 보아 왔던 양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작은 아가씨의 새로운 정의에 따르면, 극락은 깨달음이라는 것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경우엔 깨달음이 매우 개인적인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고승들이 사바세계가 극락정토이고, 현실세계와 극락세계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장난을 한 것이 아니구요, 고승들 자신이 개인적으로 깨달은 극락을 표현한 것입니다. 극락이 현실세계와 같다면 그걸 진짜냐 가짜냐 시비거는 것은 아주 부질없는 짓이지요."
결론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로 돌아오자 디지털퍼머는 드디어 짜증이 났다.
"정말 답답한 소리군요. 전 단지 칠선녀가 진짜냐는 걸 물은 것 뿐인데요."
"집사님 말씀은 그런 걸 확인하려 들지 말라는 뜻이야."
쇼트웨이브가 잠자코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집사는 정곡을 찔렀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들이 식사를 끝내자 들려오던 음악이 따라서 멈췄다. 쇼트웨이브가 잠깐 공중을 노려보고 나서 말했다.
"어제 집사님께선 저희에게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제천시에 오면 얘기해 주신다고 했는데 이제 그 일에 대해서 얘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집사가 머리를 만졌다.
"그 일이요, 네.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작은 아가씨께선 그게 어떤 일인지 좀 짐작이 가시나요?"
"아뇨. 제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집사님께서 말씀 안해주시는데 알 리가 없죠. 다만 어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저희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거 같던데요."
집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건 시장님과도 관계가 있지요."
디지털퍼머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래요, 시장님께서 저희를 보고 싶어했다고 하셨잖아요. 바쁘신가요? 언제쯤 만나게 되나요."
집사가 아무 말 없이 그녀들을 바라보다가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듯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게 참 말씀드리기 힘든 문제라서요. 이건 우리 시의 안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가씨들과 저의 안위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아가씨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실 수 있도록 우리가 사는 모습을 먼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우리 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이 곳이 나름대로 얼마나 멋진 곳인지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저희가 그걸 아는게 집사님이 말한 일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런 것을 봄으로 해서, 아가씨들께서 우리 시와 여기 살고 있는 시민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애정을 갖게 된다면, 아마 제가 일을 부탁하는데 좀 더 당위성을 갖게 되겠지요. 아가씨들께서 그 일을 하시겠다고 수락하시면 시장님을 뵙게 될 겁니다."
그녀들은 버마재비가 언제 먹이를 해치우는지 관찰하는 곤충학자처럼 뚫어지게 집사를 바라보았다.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언제쯤 저희한테 그 일이란게 뭔지 말씀해 주시겠다는 소린가요?"
"하루 우리 시를 관광하시고, 오늘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얘기하는게 어떨까 싶은데요."
그녀들이 100킬로그램 짜리 덤벨을 들어올린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자 집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 드신것 같군요. 식사가 맛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이라 매우 단촐하게 차렸는데. 이따 저녁에는 좀 더 푸짐한 식사를 차려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잠시 방으로 돌아가셨다가 준비가 되면 의림지를 가시도록 하지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잠깐 차에 좀 가봐야겠어요. 챙길 것들이 있거든요."
집사가 약간 과장된 몸짓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신가요. 그럼 차로 안내해 드리지요. 차는 오늘 아침, 뒤쪽 뜰로 옮겨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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