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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56 500회 0건
“으으음…”

눈을 뜨니 뭔가 말캉말캉하고도 미묘하게 딱딱한 것이 입속에 들어와있다.
그날 사건 이후 펑펑 우는 유키를 달래기 위해 뭐든지 해주겠다고 했던 루이는 ‘결혼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굳이 그런 부탁도 필요 없었던게 사실 루이 역시 마음이 있었던 참이어서 길드 형님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등에지고 둘은 결혼에 골인하려고 했다.
문제는 덤으로 데려왔던 엘리스.
유키와 다르게 수많은 남자에게 파티 시작부터 루이가 다른 여자 열 두 명을(유키 포함 13명) 작살내는 동안 실컷 당해버린 그녀는 하루를 더 앓아 누워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유키는 야근을 했고, 출장 나갔던 루이는 엘리스를 한번 더 앓아 눕게 했다.
뭐… 야근을 하고 앞으로 자기 남편이 될 남자를 기쁘게 해줄 생각으로 예쁜 속옷을 사들고 온 유키는 거의 죽어가는 엘리스를 발견했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결혼은 보류. 그런 이유로 오늘은 4일째가 되었다.

입 속에 들어온 뭔가 기분 좋은 것을 쪽쪽 빨면서 슬슬 잠이 깨려고 하는데 아득한 꿈결 너머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아닌가?

“루이! 아침 식사…”
“아…”

입을 벌리자 타액에 흠뻑 젖은 하얀 유방이 음란하게 늘어졌다.

“루우…이이…”

아주 무시무시한 다크포스를 뿜어내는 그녀.

“유키가… 아니었구나. 하하… 하하… 이게 왜 내 입속에…”
“으오오오오오!”
“잠깐! 칼은 내려놓고…. 아악!”



“그래서 아침부터 화나신 거로구만.”
“아시겠어요? 애초에 잘 지내는 저희들 집에 누님이 눌러앉은게 잘못이라구요. 거기서 구해드렸으면 얌전히 돌아가셔야죠. 솔직히 이건 민폐라구요.”
“미안. 미안. 그건 그렇고 말콤씨 계셔?”
“안쪽에 계세요. 기분이 상당히 안좋으신 것 같으니까 조심하는게 좋을거예요.”

루이의 안내를 받고 사무실 안쪽의 지부장실에 들어서자 그나마 어색하게나마 웃던 미소마저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졌다.
남은 건 뭔가 말하기 미묘한 긴장감과 미안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

“확실히 특별한 어쌔신이라는 이야긴 들었지만 이건 정말 의외군. 그래 하고 싶은 말은?”
“적지만 이번 일에 대한 사과입니다.”

센트럴 소속의 황금 은행장.
이거라면 확실히 일반적인 용병 기준으로도 꽤 큰 돈이다.

“흥. 그래봤자 거의 써버렸겠지. 그렇지 않나?”
“확실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제 이것 외에는…”
“넌 우리 길드 전체를 속이고 백작을 죽일 계획을 했다. 그것만으로 넌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 몰랐나?”
“…………..”

말 없이 커피를 들어올리는 엘리스.
그것은 비웃음도 비굴함도 아니다.
그저 담담히 커피를 비운 그녀는 백을 들고 일어섰을 뿐이다.

“조직에서도 방출 당했다고 들었다.”
“은행장은 두고 가겠습니다. 그라센 길드를 자칫 위험하게 한것도 죄송하고, 루이씨나 유키씨에게 위험한 일을 시킨 것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를 여기서 죽이는 것은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무기질의 인형처럼 감정의 조각조차 느낄 수 없어진 그녀가 길드를 나섰다.
유키는 아직도 골이났는지 볼을 통통하게 부풀리고 있고, 루이는 뭔가 머뭇거리고 있지만 결국엔 의자에 앉아버리고 말았다.

“후… 정말 성가신 여자군. 어이 루이!”



독과 단검의 전통적인 암살자인 스승은 어느날 공작을 암살하라는 의뢰를 거절했다.
후작이면 몰라도 공작은 국왕 다음가는 강력한 권위자.
말 그대로 그의 주변은 사람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것도 하나 하나가 뛰어난 기사들… 결국 스승은 여자 암살자를 보내기로 했다.
본래 남자 최대의 독은 여자.
여자 암살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미모를 지닌 녀석을 골라 놈을 처치하라고 보냈다.
애초에 여자는 레이디라는 그늘에 숨어 몸 이곳 저곳에 무기를 숨길 방법이 많으니까… 이 방법은 통할거라고 스승은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는 간단히 들키고 말았다.
숨겨간 무기는 둘째치고 암살자로써 단련된 여자의 몸은 일반적인 여성과 크게 다르다.
암살자의 훈련은 다이어트나 스트레칭이나 체조와는 크게 다르니까… 몸의 근육 비율이라던가 체지방 비율 등등이 완전히 달랐던 것.
그래서 스승은 육체적인 수련을 거의 하지 않은 암살자를 키워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스승에게 있어 일종의 도전.
그래서 선택된 것이 바로 엘리스였다.
가만히 있어도 눈에 확 띄는 외모에 운동과는 무관해 보이는 우아한 어깨선과 평생 펜 보다 무거운걸 들어들어본 없을 것 같은 가늘고 긴 손가락.
하지만 이만한 외모를 갖추고도 그녀는 독을 사용할 줄 모른다.
그것은 스승의 엄명에 의해 지켜진 룰.
이유는 모르지만 스승이 명령했다는 것만으로 이유는 충분했다. 그녀는 정말로 독에도 손대지 않았고, 육체적인 단련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배운 것은 마법.
스승의 설명은 이랬다.
-무기를 이용한 암살법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육체를 발달시킨다. 그래서 아예 숨어버리지 않는 이상 여자 암살자는 몸에 ‘나는 뭔가를 익히고 있어요!’라고 외치는 꼴이지. 그렇다고 독이 좋은가? 이것도 곤란한게 어지간한 귀족가문에는 독의 냄새에 민감한 사냥개들이 있어. 그래서 아무리 씻고 씻고 또 씻어도 금새 들키고 말아. 그래서 네겐 독을 배우지 못하게 한거다. 하지만 마법은 틀려. 몸에 흔적이 남지도 않고 냄새도 배이지 않는다. 무기를 숨길 필요도 없는데다 확실하게 죽일 수 있지.-

대신 살아서 빠져나올 확률이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는 설명을 빼먹은 스승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스승을 처음 만날 당시 자신은 매우 굶주려서 지금 생각하면 그때 죽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왕 죽은 목숨 스승을 위해 쓰겠다고 생각했고, 그걸 위해 이 나이에 모르는 남자에게 당하는것도 마지 않았다.
물론 떠나오면서 스승에게 처녀를 바쳤었다. 하지만…

‘막상 버림받으니까 조금 섭섭하네.’

어떤 암살자는 조직에서 버림을 받고도 타겟을 처치하고 나서 처형당했다고 하지만 그녀에겐 그럴 능력도, 기회도 없는데다 별로 그럴 마음도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이런 시장통에 널려있는 과자나 먹으면서 구경하는게 좋아하는 그런 여자였다.
그래서 적어도 마지막 정도는 이런곳에서 죽고 싶었다.
다만 자그마한 소망이 있다면 누군가가 죽어버린 자신의 시체를 마구 밟지는 않았으면 하는…

“누나! 사과 사세요!”
“미안해. 누나가 지금 돈이 없어서..”

그녀는 사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본래 가난하게 살았던 터라 이것저것 가리지도 않았지만 스승이 굶주려 죽어가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준 게 아직 파란 풋사과.
생각해보면 참 멋대가리 없는 스승이다.

“아우우우… 이거 꼭 팔아야 하는데…”
“미안.”

꼬마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없는건 없는 거다.

‘그나저나 이 계절에 어떻게 사과를…’

그렇게 생각하며 걷던 그녀가 돌연 우뚝 멈췄다.
씁쓸하게 웃는 입술.
다시 생각해도 자신은 암살자로써 실격인 인간이다.
애초에 태어나면서부터 음모에 쩔은 인간이 아니고서는 이 바닥에서 살 수 없는건데 자신은 사람을 죽이는걸로 먹고 살 정도로 독하지 못하다.

“미안하지만 꼬마야. 이걸로 어떻게 안되겠니?”

가슴 계곡 사이에 숨겨놨던건 마법 스틱.
보통사람이 본다면 이쑤시개도 아닌 정체 불명의 막대기일 뿐이다.

“아! 그것도 좋아요!”
“우훗… 착한 꼬마구나. 하지만 다음번에 이랬다간 울프에게 혼날거야.”

그녀가 멀어져갔다.
손에는 빨간 사과를 들고…
그리고 소년의 입가가 기묘하게 분노로 비틀어졌다.
울프는 그의 훈련교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임무 종료. 귀환합니다.]
[멍청한 놈.]

마지막은 뭔가 따뜻해지는 장소에서 죽고 싶었다.
뭐… 도중에 목욕탕이라던가 호떡집이 있긴 했지만 발가벗고 죽어선 왠지 꼴사납고 호떡집에서 죽다간 죽은 다음에 얼굴을 철판에 대고 지져버릴 가능성이 있다. 여자로써 그건 좀 패스.
그런 이유로 골라잡은 곳이 햇볕 잘 드는 신전 앞인데…

‘그래도 신인데 평생 신전 근처도 안오던 인간이 마지막에 여기서 죽는다고 뭐라 하진 않겠지?’

신이 들었다면 ‘남의 가게 앞에서 갑자기 죽으면 장사에 방해돼요!’라고 할만한 생각을 해가며 그녀는 신전 계단에 엉덩이를 걸쳤다.

“나참… 그렇게 인사도 없이 가버리면 곤란하다구요!”
“아… 유키씨…”
“아! 맛있어 보이는 사과 발견!”
“아앗!”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이 ‘앗’하는 순간에 사과를 뺏겨버린 엘리스.
다급한 마음에 유키의 허리에 테클을 넣어봤지만 결국 바닥을 구른건 엘리스 뿐이다.

“어머나… 당신 정말로 암살자?”
“………”

아무리 육체 단련을 안했다곤 하지만 이건 진짜 암살계의 수치다.
스승이 봤다면 저런 인간 모른다고 딱 잡아뗄게 분명하고 그런 반응은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일게 분명하다.
아니… 애초에 그녀 혼자 특별교육이니 동료라고 부를 녀석도 없다.

“용케 그 실력으로 백작님을 암살하려 했구나.”
“냅둬! 어차피 난 실험용 쥐야. 마법사형 암살자가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 실험하는 실험용 쥐!”
“그럼 쥐 한 마리 잡으려고 너희 길드가 전면전을 일으킬 염려는 없다는거네?”
“그렇지. 쥐는 잡아버리면 그만이니까. 웃!”
“어머! 정말 둔하구나.”

다시 한번 사과를 뺏으려고 했지만 역시나 실패.
스승님이 봤다면 할복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크으윽… 기본적인 훈련 정도는 받게 해달라고 하는건데…’

‘중요한 핵심인물 한 명만 처리하면 네 몫은 다 하는 거니 마법공부만 해라!’고 말해버린 스승님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몰라서 이런 장난 하는 것 같은데 이 주위에 쫙 깔렸거든? 내 동료들… 부탁이니까 그 사과 돌려줘.”
“이건 루이의 호적부 사본이야. 백보 양보해서 이렇게 해주는 거니까 감사하도록 해.”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유키가 건넨 호적부 사본을 던지려는 엘리스.
하지만 애초에 그녀가 읽지 않을거라는걸 짐작하고 있던 유키였다.
호적부 사본은 근처에 있는 누군가가 읽어주기 바래서 떼어 온 것.

“성명 : 루이 프리드리히. 성별 : 남성. 생년월일 : 대륙력 317년 13월 22일. 작위여부 : 준남작. 가족 관계 : 부인 유키 프리드리히, 엘리스 프리드리히. 자녀 없음.”
“무슨…”
“축하해. 넌 이제 준남작 부인이야. 이제부터 널 죽이는 녀석은 남작 부인을 살해한 범인이 되는거야.”
“그런다고 조직이 포기할 것 같아?”
“그리고… 네 조직에 대한 정보는 우리 길드 정보 열람실에 비치됐어. 길드로썬 아주 좋은 상황이지. 아무리 암살 길드의 꼬리를 잡았다 해도 그걸 파내려면 돈이 들어가는데 의뢰인이 없어서야 추적할 이유가 없거든? 그런데 남작 부인이 보기 좋게 살해당한다면 영지 관리실에서도 현상금을 걸지 않을 수 없어. 그럼 자연스럽게 우리 길드가 나서는 거지.”
“그건…”
“애써 죽은 척해가며 연기 하는 것보다 루이랑 사이 좋게 지내는게 좋을거야.”
“그건…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지옥이겠군.”

머리 위에 생긴 다크 서클에 짓눌려버린 엘리스.
그녀의 말에 유키 역시 마찬가지로 다크서클을 짊어지고 축 쳐졌다.

“일단 이대 일이니 어떻게든 될지도…”

그녀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날 루이의 손에… 아니 무기에 작살난 열 두명의 여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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