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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55 387회 0건
“왕의 제전?”
“네. 애초에 알토르가 루이님을 부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죠.”
“그게 뭔데?”
“매년 한번씩 인간의 왕 아돌 디 엘 프로메테우스께서 각 영지의 영주를 무작위로 불러 그자의 영주됨을 알아보는 일종의 시험입니다.”
“떨어지면?”
“영지가 날아가는거죠.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이런 작은 영지의 영주 따위는 만.나.주.지.도. 않으실테니까요.”
“하긴. 그래서 일단 출석 체크만 하면 그만이라 이거지?”
“시간도 때워야죠. 휴가라 생각하고 편안히 다녀오세요. 그때까지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산.더.미. 같은 서류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서류의 산에 둘러싸인 쉘이 방긋 방긋 웃는 얼굴로 이마에 굵은 힘줄을 팍 잡으며 말했다.

“호오~ 그래? 그럼 난 마.음.껏. 놀다 와야겠군. 엘리스와 유키에게 연락해! 센트럴에서 만나자고! 지난번에 못한 신혼여행겸 만나는 거니까 단.단히. 각오하라고! 그리고 이왕이면 콘돔 한 박스도 챙겨주겠어?”
“아아… 챙겨드리죠! 이왕이면 야광이 좋겠죠? 사모님이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잘 아는군. 그러는 자넨 핑크색을 좋아했던가?”
“어머! 오해가 생길 것 같은 말씀은 삼가해주시겠어요? 저는 엠보싱이 좋거든요?”

뭐… 대화의 내용이 조금 이상한 것 같지만 어찌됐건 일단은 프리드리히 영지의 군사, 재판, 행정권을 모두 갖고 있는 루이와 그의 전속 비서의 대화다.
그저 오래 붙어 먹으려면 들어도 못들은 척 하는게 상책이다.



쉘의 예언은 적중했다.
인간의 왕께서는 저어어어어어어~ 변방 구석의 밴댕이 소갈딱지만한 프리드리히 영지 따위는 진작에 잊어먹었는지 첫날 대면식때 300명의 영주들과 함께 배알하고 나서는 언제 왕을 만나러 오라는 말조차 남기지 않은채 식이 끝나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루이가 바랬던 것.
‘아싸~’하는 심정으로 유키게에 마법 통신을 걸었다.

[유키~ 싸랑해애~ 오 마이 허니이~]

전국의 고귀한 솔로 들이 일제히 닭으로 변신하며 다윈 만세를 부르짖을법한 소리를 서슴없이 내뱉는 루이.
그때 마침 왕성 외성 안쪽에서 루이를 기다리고 있던 쉘이 순간 등을 돌리며 입술을 모아 소리나지 않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쉬바.’
[하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
[유키?]
[루우이이~ 우에에에에엥…]
[왜? 무슨 일 있는거야?]
[@$#%^(&*)]

에… 그러니까… 레이디가 내기에는 상당히 민망한 소리를 그녀는 내버렸다.
그러니까 비강 내에 채워진 염증을 폐를 이용한 공기 압력을 이용해 비강 밖으로 밀어내는 작업에 나오는 이 소음은… 소위 ‘코 푸는 소리’로 알려져 있다.

[어이 어이… 애들도 아니고…]
[후에에엥… 어떡해애?]
[무슨 일인데?]
[배 잘못탓어.]
[아… 그러니까… 배?]

지도를 펼쳐 보여주지 못하는게 정말 가슴 아프게 유감스럽다.
프레임의 북동부에 위치한 가이난의 해역은 동해 뿐이다.
그런데 유키의 본가는 가이난의 서쪽 끝인 센터우르 접경지대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는 아무리 실수를 해도 배를 잘못 탈 일은 없다는 것.(배가 없으니까.)
심지어 그녀의 본가에서 센트럴까지 가는 데에는 큰 강줄기를 만나는 일도 없어서 하다못해 나룻배라도 잘못 탈 일이 없는데 그녀는 지금 배를 잘못 탔다고 한다.

[응. 여기 오르비(가이난 북쪽 끝의 항구)라는 곳인데, 센트럴로 가는 배(센트럴로 가는 배 따위 없습니다.)를 타야 하는데 잘못해서 마르비(가이난 남쪽 끝의 항구)라는 곳으로 가는 배를 타버렸어.]
[………….]
[저기… 루이?]
[………….]
[꺄아! 돌고래다아~!]
“…………”

‘뚝! 콱콱콱콱!’
들고 있던 마법 스틱을 뚝 꺽더니 마구마구 밟아주는 루이.
차라리 웃으려면 웃을 것이지 얼굴을 통통하게 부풀려서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고있는 쉘이 훨씬 더 얄미워 보인다.

“흥! 미안하지만 내겐 부인이 둘이나 있거든!”
“호오… 그러세요? 이건 여자의 감인데 그 사모님께서도 오시지 못할 것 같네요.”
“흥이다! 그러니까… 통신 번호가… 016-8338-2706(진짜 무작위로 찍은 번호입니다!).”
[여어! 엘리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거기서지 못하겠느냐 엘리스으!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사부님이라면 서겠어요?!]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에 기겁을 하며 젓가락을 떼어내는 루이.
(분질러버린 마법스틱 대신 젓가락으로 마법통신을 하고 있었다.)

[저기… 여… 여보세요? 거기 엘리스 아닌가요?]
[아우우우우… 사부님! 잘못했어요오! 다시는 사부님 방에 안갈테니까아… 꺄아아아악! 치직… 치직…]
[저기요~ 여보세요~]
[이 고얀녀석! 내가 좋아하는 화병을 깨뜨려? 너 같은건 10년 동안 토끼뜀만 뛰게 해주겠다아아아!]

‘치직! 뚜우.. 뚜우.. 뚜우.. 뚜우..’
엘리스 사부님의 괴성을 마지막으로 엘리스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살짝 벌어진 루이의 입술 사이로 연기처럼 새어 나오는 허연 루이의 영혼.
마치 다 타버린 연탄재처럼 되어버린 루이의 어깨를 쉘이 툭툭 두드렸다.

“사부님! 굿W!”



왕성을 나오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일이었다.
처음엔 왕성 외벽 밖에 웬 사람이 저렇게 많이 늘어서 있나 생각했다.
알고보니 그들은 소위 명문 귀족가에서 나온 하인들.
그들의 일은 간단했다.
아무 영주나 붙잡고 자기네 주인은 어느 어느 백작인데 우리 영주님이 개최하는 파티에 안오면 앞으로 조온나 피곤해질 것이다.라는 내용의 아주 유익한 쪽지를 전해주는 것.
더불어 초대장은 옵션이다.
아무튼 그런식으로 받은 초대장이 대충 20장.

사랑하는 부인 두 명이 동시에 못오게 되었다는 사실에 이미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루이는 비틀비틀 마차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고, 루이를 대신해 즐거운 마음으로 그 초대장을 몽땅 챙긴 쉘은 즐거운 마음으로 루이의 뒤를 따라붙었다.
이유는 간단.
루이랑 같이 다니면 프로메테우스 영주 앞으로 되어 있는 마차, 호텔, 식당을 모두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센트럴에서 부담하는 것인데다 국왕과의 면담자리에 부족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쓴 물건이라 모든게 극상의 최고급이다.



“랄라라~ 랄라라~”

소녀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했는지 즐겁게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루이의 파티 참석 스케줄을 짜고 있는 쉘과…

“흐어어어어어…”

인생 다 살았다는 표정으로 쇼파에 늘어져 있는 루이.
아무튼 그녀만의 사무능력을 200% 발휘해서 러브리하고 큐트하고 카와이한 귀여운 모양의 초 빡빡한 파티 스케줄표를 작성한 쉘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걸 루이의 양복 주머니에 푹 꽂아주곤…

“저는 이제부터 쇼.핑.을. 즐기러 가겠어요. 영주님은 이제부터 즐거운~ 파티를 즐겨보셔요. 오~호호호호호!”

마녀 같은 웃음을 날려주며 사라진 쉘.
프리드리히령에서 죽어라 서무 작업만 하고 있어야 할 그녀가 왜 여기 있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을 위해 설명한다.
그녀는 맨 처음의 루이와의 대화 이후 초 강렬한 다크포스를 너울너울 뿌리며 단 1분도 쉬지 않고 일을 해댔고, 결국 순식간에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정리한 그녀는 사무실 직원들을 들들 볶아 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 직원들이 오죽 피곤했겠는가?
결국 궁리 끝에 영주가 센트럴까지 가는데 비서가 따라가지 않는건 말이 안된다며 휴가비까지 끊어주며 센트럴까지 가서 영주님을 보좌하고 남는 시간 동안 ‘쇼핑’이라도 즐기다 오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어.쩔.수.없.이(그녀는 이 부분을 강조해달라고 했다.) 루이와 함께 마차타고 센트럴까지 와서 루이를 보좌(조수는 왕성 내부까지 들어갈 수 없으므로 왕성 외곽성벽 안쪽에서 시간만 죽이다가) 루이를 숙소로 데려다 주고는 지금 쇼핑을 즐기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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