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 흐흑, 흐흑"

몸을 절반으로 찢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거칠디 거친 움직임에 폭풍우에 떠있는 배처럼 아무런 곳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흔들렸다.
넋이 나간 듯 미리안의 두 눈은 풀려 있었다.
지릿지릿함이 미리안의 하체에서부터 시작되어 다리와 팔을 거쳐 손끝 발끝까지 지지고 지나갔다.
잔잔한 물결은 실개천이 모여 강을 이루듯이 흐름을 만들었다.
그 흐름은 미리안에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릴 정도를 쾌감을 주면서 아래를 통해 그레이에게 빠져나갔다.

"아흑,..제발 그만.."

미리안이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애원을 하면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광기에 ?싸인 그레이는 양손으로 미리안의 허리를 잡아 더욱 깊고 가득히 짓이겨 들어갔다.
점점 그레이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아아아아"

미리안은 몸속의 가득 채우며 쏟아지는 느낌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휴..."

그레이는 바닥에 누워있는 미리안의 위에 그대로 포겨져서 한숨을 내쉬었다. 둘의 몸은 한몸인 것처럼 한치의 틈도 없이 붙어 있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미리안의 부드러운 등의 촉촉함과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미리안 다리의 부드러움이 결코 꿈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미리안의 몸속 깊은 곳에서의 떨림이 그녀를 점령하고 있는 그레이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몸이 합쳐진 그대로 그레이는 심호흡하기 시작하였다.
미리안을 공격하던 자신의 힘과 스피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광기에 휩싸여서 움직였을 때 그저 본능에 따라서 움직였을 뿐 몸은 자신의 지배에 벗어나 있었다.
어깨의 상처에서도 이제는 따금따금함만이 느껴질 뿐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몸속 깊은 곳의 진기가 깨어지고 바닥이 난 불쾌감이 아랫배에서 밀려 올라왔다. 머릿속에 새겨졌던 경전과 같은 내용을 되새기기 시작하였다.

처음의 단계는 그저 "빨아드림"을 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의 것을 가져오기에 쉽고 간단하게 높은 곳으로 올려다 줄 것 같지만 결코 그러하지 못하다. 과도한 "빨아드림"은 자신의 근원을 삭혀서 오히려 하지 않음만 못하게 된다.
"뿜어냄"은 느리고 힘드나 자신의 잠력를 끊임없이 자극해줌으로써 본래의 기운의 그릇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
"어울림"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으로 단순한 주고받음이 아니라 하나됨을 의미한다.
"어울림"의 경지에서 "도"를 얻는다면 능히 몸을 섞지 않고도 의지만으로도 하나됨을 누릴 수 있다.

그레이는 머릿속에 새겨진 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저 흐릿한 의미로만 이해가 되어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 망령이 머릿속에 새겨준 기술이 자신을 살린 것만은 확실하였다.

그레이의 아래에 깔린 미리안의 몸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하였다. 눈은 하얗게 뒤집혔고 천천히 식어가기 시작하였다.
평상시의 그레이이었다면 그레이가 최대한 흡수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해도 미리안 역시 오랜 시간 몸을 단련한 여인이기에 극히 일부의 기운만을 흡수하거나 전혀 기운을 흡수하지 못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레이가 잠력을 폭발시켜 텅 비어버린 상태이었기에 생명력이 가득 차 있는 미리안과 연결되자마자 홍수에 둑이 터져버리듯이 밀려들어 간 것이었다. 그리고 폭발된 잠력이 기운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해 미리안 바닥끝의 기운까지 그레이에게 흡수되어버렸다.

머릿속의 경전에 의하면 자신은 생명체로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기운을 소모해서 단시간에 큰 힘을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쉽게 보충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성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 들여서 그 소모된 부분을 메워도 보충되는 부분은 적은 양에 불과하고 나머지 부분은 그저 모래로 쌓은 벽으로 큰 파도를 막은 것처럼 천천히 ?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어울림"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면 오랜 시간 동안 기술을 수련하여 조금씩 회복하는 방법밖에 없는 듯하였다.

그레이는 미리안이 죽던지 말든지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살려두는 것이 위험했다.
하지만 현재 위치는 사람이 사는 마을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미리안이 죽고 나면 여자를 구할 수 없었다.

그레이는 천천히 빼앗은 기운 일부를 미리안에게 밀어넣었다.
시체처럼 차가워져 가던 미리안의 몸이 조금씩 따뜻해져 갔다.
그레이는 급한 상태를 넘기자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흐윽"

미리안의 아래에서 그레이가 남긴 진한 애액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미리안의 두 발과 두 다리를 꽉 묶은 후에 주변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 묶었다. 동굴 근처에 놓아두었던 배낭과 쓸만한 것을 들고 미리안을 묶어둔 나무 근처로 돌아왔다.
주변에 작은 함정과 야생동물이 싫어하는 향기가 나는 약초를 뿌렸다.
배낭에서 건조식량을 꺼내어 먹었다. 그레이는 명상을 하면서 머릿속에 남은 것을 천천히 되새기기 시작하였다.




"아..앙"

집안에 묶여 있던 미리안이 다가온 그레이에게 아양을 떨기 시작하였다.
그레이는 미리안의 앞에 끓인 스튜를 내밀었다. 미리안은 천천히 스푼으로 떠먹였다.
시체가 되어 버릴 뻔 했던 미리안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마치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음식조차 제대로 집어먹지 못해서 먹어주어야 했다.
그레이가 다가가면 처음에는 입만 뻐금거리면서 공포에 떠는 미리안이었다.
하지만 그 회수가 반복되면서 미리안의 얼굴에도 홍조가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오히려 그레이가 다가가면 기대하는 듯 어깨에 살며시 기대어왔다.

미리안을 데리고 그레이가 살던 집으로 돌아온 지도 한 달이 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잠력의 부족으로 갈증에 휩싸였던 그레이도 미리안을 이용해서 수련하면 할수록 그 횟수나 갈증의 정도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미리안 역시 처음에는 혼자서 식사조차 못하더니 조금씩 돌아오는 듯 이제는 혼자서도 곧잘 음식을 먹었다.





미리안이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천천히 그레이에게 몸을 기대어왔다. 이제는 그레이에게 매달리는 미리안이었다.

"하아,.."

천천히 그레이가 몸을 포개자 기쁜 듯 몸을 깊숙이 밀어넣는 미리안이었다.
진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미리안의 두 팔이 그레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레이의 기운이 미리안에게 밀려들어가 물결을 만들고 그 물결은 다시 그레이에게 돌아갔다.
충실히 밀려드는 쾌감에 미리안의 긴 머리카락이 마구 흔들렸다.
순간 미리안의 두 눈이 떠졌다.
입에서 단내가 느껴지는 신음이 터져나왔지만 눈빛은 차갑고도 고요하였다. 그레이의 품에 안긴 채 미리안의 두 손이 천천히 그레이의 몸을 스다듬었다. 그레이는 미리안의 귀를 핥고 있었기에 그 눈빛을 보지 못하였다.
애무하는 하는 듯 움직이던 손을 올려 그레이의 목을 두 손으로 잡았다.
고민하는 듯 미리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레이는 그저 미리안의 몸을 탐하며 깊고 충실한 움직임만을 계속할 뿐이었다.
차갑던 미리안의 두 눈이 감겼다.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레이의 목을 잡던 손으로 그레이의 머리를 잡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다음 날 사냥에서 돌아온 그레이가 본 것은 텅 빈 공간이었다.
미리안을 묶어두었던 끈을 끊어져 있었다. 여행용 배낭 하나, 검과 몇 가지 식량과 약간의 돈이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