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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48 518회 0건
리자드맨을 처치하고 손톱을 털어내는 예린을 이리아스는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일반적인 묘인족의 방식은 육체의 강인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데 조금은 달라 보이는 예린의 움직임에 기묘한 느낌이 든 것이었다.
예린은 그런 이리아스의 시선에 마주하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수호자가 쫓기다니 그 정도로 강한 리자드맨이 있어?"

예린은 이리아스를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런 그녀를 상처 입게 할 정도의 강자라면 어느 정도일지 추측이 되지 않았다.
이리아스의 창백해진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리자드맨에게 당한 것이 아닙니다. 이 상처는 엘프에게 …. 아마도 세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세뇌?"

예린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엘프는 종족 자체가 정신력이 대단한 종족이기 때문이었다.
수호자가 아닌 훈련을 받지 않는 일반 엘프라고 해도 현혹에 대한 저항력은 다른 종족에 비해 월등하게 강했다.

"그런데 동료분을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아, 그레이? 괜찮아. 그레이는 나보다 강해. 조금 있으면 올 거야."

"상처는 괜찮아?"

"그게 … 오래걸릴 것 같습니다만"

이리아스의 부상은 외형의 상처가 아니었다. 이루이네에게 내장을 직격 당해서 몸의 맥이 끊어지고 뒤틀려버렸다.
인간이었다면 단번에 힘을 쓸 수 없는 회복이 불가능한 폐인이 되어버렸겠지만 이리아스는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몸이라 자연의 기운이 풍만하고 안정적인 곳에서 요양한다면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런 상태를 회복하는 엘프 고유의 치유법은 식물의 씨앗이 땅속에서 지내는 것처럼 신진대사를 느리게 하고 자연과의 일체감을 통해서 꾸준하게 기운을 재생시키는 것이었다. 부작용도 적고 후유증도 남지 않지만 느리게 회복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리아스의 원래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일 년이 걸릴지 삼 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이루이네가 어떻게 될지,아니 이루이네뿐만 아니라 리자드맨들에게 또 다른 동족이 희생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레이, 이리 와봐"

어느새 주변으로 다가온 그레이가 대화에 참가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자 예린은 조금 씁스래한 기분이었다.
예린은 이미 그레이를 자신의 수컷으로 인정하고 함께 하려 하는 데, 이리아스가 은연중에 그레이보다는 자신과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숲의 종족끼리만 어울리려고 하는 엘프를 느꼈는지 한걸음 뒤에서 방관하는 듯한 그레이의 행동도 이내 못마땅한 예린이었다.

"여기 좀 봐줘"

예린은 일부러 그레이의 손을 이끌어 이리아스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순간 이리아스의 어깨가 움찔하였지만 예린은 무시하고 그레이의 손을 이리아스의 목에 이끌었다 .

"이리아스, 긴장을 풀어, 그레이가 기운을 다독거리는 것은 잘해."

예린이 수련중에 기운을 전개하던 도중에 흐름이 엉켰을 때 그레이가 도와준 적이 있었다.
자신의 엉킨 기운을 그레이가 따뜻하게 만져주면서 풀어주던 것이 기억이 난 예린은 지금 이리아스의 상태도 그레이가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효과가 있어서 회복된다면 리자드맨을 상대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은 뻔했다.

"으흠,"

이리아스를 쓰다듬던 그레이의 손길이 떠났다.
기운이 작은 자가 기운이 큰 자의 흐름에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큰 자의 흐름에 기운이 작은 자가 휩쓸려 같이 위험할 수가 있었다.
평상시 이리아스라면 그레이가 기운을 이리아스에 접해서 영향을 주려고 해도 이리아스의 그릇이 훨씬 크기에 아무런 영향을 못 주었겠지만 지금은 이리아스가 부상을 당한 상태이었다.

"원기의 회복은 이리아스님의 생명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만, 미세한 흐름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예린을 흘깃 보고 나서는 뒷말을 이었다.

"다만 피부가 접촉 해야 해."

이리아스의 얼굴에 잠시 고민의 빛이 어리더니 이내 고개가 끄덕였다.
인간에게 몸을 접하는 부끄러움과 동족을 보호하는 것, 두 가지 중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는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명백한 것이었다. 잠시 부끄럽더라도 힘을 빨리 회복될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리아스이었다.

"그럼 치료를 부탁합니다."

그레이는 다시 이리아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

공주님처럼 안겨버린 이리아스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리아스를 안은 그레이가 치료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출발하자 예린도 그 뒤를 따랐다.

"으흠."

예린은 고향마을의 복수를 위해서는 수호자 엘프와 함께 리자드맨을 상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 내렸다. 혹 치료 후에 이리아스가 상태가 좋아지더라도 바로 전투에 참가하기에 힘들 수도 있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이리아스가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예린도 그레이가 여성과 함께 하고 나면 강해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레이라도 더 강해진다면 복수가 더 쉬워질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레이에게 이리아스를 안게 할 생각이었지만 이리아스에게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강인한 수컷에게 여러 암컷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묘인족과는 다르게 엘프의 경우에는 남녀의 인연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속이는 것은 아니아."

분명히 그레이가 만져주면 기운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시작은 만져줌일 뿐이었지만 그 끝은 뜨겁게 끝났다는 것을 이리아스에게 말을 안 했을 뿐이었다.




늪지대를 벗어나 숲으로 이동하였다.
이리아스는 그레이에게 안긴 채 손끝으로 자연력이 충만한 방향을 가리켰고 이내 아름드리나무가 주변을 가득 매운 곳에 도착하였다.

"기의 다독거림… 인간의 치유법이라…"

엘프라면 이런 자연력이 충만한 곳에서 나무와 자연에 동화되어 새싹이 돋아나듯이 상처를 회복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엘프보다도 격렬하게 사는 존재, 그렇기에 정적인 재생이 아니라 동적인 다독거림을 이용하는 것일까 추측해 보는 이리아스이었다.

천천히 이리아스의 모든 옷이 벗겨졌다.
어차피 자연과 동화하는 엘프의 치유법을 시행할 때도 옷은 입지 않기에 별다른 의문은 들지 않았지만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인간의 느낌일까, 남자의 느낌일까, 거친 산짐승과 같은 짙은 내음이 그레이에게서 느껴지기 시작해 더욱 어색해졌다.
더우이 그 내음이 자신의 알몸을 보고 나서 확연히 진해졌기에 당황스러웠다.
같은 엘프에게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짙음이 이리아스의 창백한 볼을 붉게 만들었다.

"이건 마치 남녀의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같아."

조금씩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해 거부감을 나타내려고 하는 순간, 그레이의 목소리가 이리아스에게 흘러들었다.

"일단 기운이 어울릴 수 있는지 알아본다. 편하게 받아드려."

그레이의 손이 누워있는 이리아스의 맨 어깨에 다았다. 평상시라면 그레이가 존대에서 평대로 바꿔버린 것에 의문을 표했겠지만 어깨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따뜻함에 할 말을 잊어버린 이리아스이었다.

그레이 역시 상당히 긴장한 상태이었다.
머릿속에 남겨진 것에 의하면 자신보다 기운이 강한 자와 함께 어울리는 것은 "어울림"의 경지가 낮은 상태에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고 특히 그 강한 자가 적개심을 품고 있을 때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마라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치유를 위해서는 그레이, 자신이 이리아스의 기운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일단 주도권을 가지고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말투부터 평대로 바꾸었다.
더욱이 눈앞에서 순백의 나신을 드러내고 있는 여인이 부끄러움에 볼이 붉게 변하자 이제는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이 가슴속 지릿한 소유욕을 자극시킴을 느끼면서 어깨에 올린 손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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