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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47 537회 0건
"오."
집사가 입에서 당장 느낌표라도 튀어나올 것 같이 똑 부러지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종종 작은 아가씨의 질문은 군함새의 클렙토패러사이티즘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그 유명한 공중 도적질 말입니다. 열대조와 같은 작은 바닷새들의 먹이를 공중에서 강탈하는 군함새의 무서운 속도와 놀라운 정확성, 창의적인 비행솜씨..갑자기 그런 장면이 상상되거든요."
집사는 춤을 추는 것 같은 스텝으로 가마를 향해 걸어가며 혼자만이 맡을 수 있는 어떤 냄새라도 맡는 것처럼 코를 킁킁댔다. 평소보다 반 옥타브 정도 높은 목소리였다.
"아가씨 질문이 너무 예리해서 그런 생각이 든다는 뜻입니다. 예감이랄지, 추측이랄지 작은 아가씨는 그런게 대단히 발달되어 있으신거 같습니다. 주변을 겉돌지 않고 핵심을 찌르는 능력이 있어요. 질문의 예봉이 군함새 부리처럼 날카롭지요."
집사는 새의 부리처럼 손가락을 구부려 입에 갖다대고는 먹이를 쪼는 흉내를 냈다. 그러나 이내 큰 실수를 했다는 듯이 손을 벌리고 웃어댔다.
"이런 이런.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기껏 강도질로 연명하는 보잘것 없는 새에 비유하다니 내가 미쳤군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 새의 비행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아가씨들과 견줄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지요."
갑자기 집사는 걸음을 멈추고 과장된 동작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아니,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새가 추상적이나마 아가씨들의 미모를 그럴싸하게 은유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군함새 목주머니랍니다. 갈라파우치라고 부르는 주머니 말이예요."
집사는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한 비유를 끌어대며 소리높여 웃음을 터뜨렸다. 디지털퍼머가 질린다는 얼굴로 쇼트웨이브와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곧 가마 옆에 도착했다. 가마의 긴 손잡이에 정렬하여 있던 가마꾼들이 일행이 타기를 기다리며 가마를 들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집사는 아직 가마에 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주머니 자체가 아니라 목주머니의 색깔입니다. 그건 몇 천개의 섬세한 깃털이 표현해내는 단일한 붉은 색이지요. 보는 이의 눈동자를 태워버릴 것만 같은 휘도만발의 열광적인 스펙트럼. 이처럼 순도 높은 카민색 보다 더 적절하게 아가씨들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보신 적 있습니까, 군함새가 짝짓기를 하는 광경을요."
집사가 턱을 들며 눈을 가늘게 떴다.
"군함새가 짝짓기를 하기 위해 붉은 목주머니를 잔뜩 부풀린 채 벼랑끝 바위턱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단 한 올의 잡스런 깃털도 섞이지 않은 선연한 핏빛을 마주하게 되지요. 우리는 거기서 스트로브를 발광시킨 것처럼 눈이 아플만큼 순수한 아름다움을 알게 됩니다. 마치 아가씨들의 얼굴과 몸에 압축되어 있는 강렬한 아름다움처럼요."

집사의 말은 언뜻 들으면 칭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도색잡지의 한 페이지처럼 음란한 어감을 띠고 있어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쇼트웨이브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천만에요. 저희한테 그런 선연한 아름다움이 있을 리가 없죠. 아무래도 집사님께서 커피 한잔에 너무 취하신거 같네요. 도에 넘치는 칭찬은 오히려 욕이 된답니다."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냐는 듯이 집사는 두 팔을 허우적댔다.
"도에 넘치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즉흥적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 아가씨들을 처음 봤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아마도 지중해의 따가운 태양 아래 연녹색 올리브가 자라는 그 옛날 이오니아 땅에 아가씨들이 살고 계셨더라면 트로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파리스 왕자가 그의 황금사과를 비너스에게 바칠 리 없었을테니까요. 그건 분명히 아가씨들 차지였을 겁니다."
집사는 구한말 인기 변사라도 되는 것처럼 온갖 구태의연한 수식어를 동원하며 뻔뻔스러운 아부를 기름지게 주워섬겼다. 이처럼 정신없이 노골적인 말을 하는데는, 중독과 해독이 번갈아 가며 집사의 신경계에 저질러놓은 일대 교통혼잡에 큰 원인이 있을 터였다. 그는 다리를 번쩍 들어 가마에 올라타고는 그녀들이 편안히 앉을 수 있도록 멀찍이 떨어져 주었다. 그녀들이 따라서 자리에 앉자 가마꾼들이 가마를 들었다. 집사가 가마잡이 선두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너무 늦었어. 이러다 쇼케이스가 끝나 버리겠군. 빨리들 가세."
가마가 서둘러 출발하자 꽃잎이 날리듯 너울거리는 관성 탓에 균형이 흩트러진 그녀들이 난간을 붙잡았다.

"글쎄요. 파리스가 과수원을 했다면 모를까, 과연 황금사과를 얼마나 가졌길래 저희한테까지 차례가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알 수 없지만 우연하게도 그 왕자랑 이름이 똑같은 도시(주: 파리)에 있던 건물이 여기에도 지어져 있다는게 정말 이상하지 않으세요?"
질문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벗어났기 때문에 쇼트웨이브는 원래 주제로 화제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집사는 여전히 초점이 안맞는 들뜬 눈빛으로 웃음을 흘려대고 있었지만 간간히 두통이 일어나는지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러댔다.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하기도 하였거니와 가마가 달리면서 바람을 쐬고 있는 것이 집사의 취기를 가라 앉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 뭐가 이상하다구요? 아,아."
집사가 쇼트웨이브의 말장난을 뒤늦게 이해하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네. 저 건물은 물랑루즈가 맞습니다. 파리에서 명성을 날리던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정밀 복원한 건축이지요. 우리는 사실 건축물을 본따 짓더라도 대부분 많은 상상력을 가미하는 편이고 이런 식으로 복원만 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만..저 물랑루즈는 트러스의 형태나 플레이트의 구조, 사개맞춤이나 연귀맞춤 같은 판재의 조립방식 하나에도 조금의 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옮겨졌습니다."
집사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말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흠."
집사가 옆머리를 누르며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건물의 용도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저 곳은..말하자면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니까요. 과시용이 아니었지요. 게다가 이용자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도 아닙니다. 원래의 물랑루즈처럼 술을 먹거나 공연을 볼 수 있는 극장은 더더욱 아니었구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쇼트웨이브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이용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건물이라니 그런 것도 있나요?"
"좀 아이러니 하지요? 하지만 물론 그런 건물들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피라밋이 되겠지요. 이용불가의 고압적 거대 건축물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옛날 왕들의 무덤같은 것들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오호라."
쇼트웨이브의 눈이 빛을 발했다.
"그렇다면 물랑루즈엔 보관은 해야 하지만 보여주어서는 안될 무엇이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군요. 왕들의 무덤처럼 말이죠."
"나 이것 참.."
집사가 열이 오른 얼굴을 손으로 비볐다. 잠시 눈을 깜박이며 그녀들을 쳐다보던 집사가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빨리 정신을 차려야지 안되겠군요. 작은 아가씨 질문에 촐랑촐랑 대답을 하다가는 목이 몇 개라도 모자라겠습니다."

쇼트웨이브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집사님이 저희한테 뭘 말씀하신게 있다구..기껏해야 물랑루즈가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라는거 말고 뭐 있나요."
쇼트웨이브가 그렇지 않냐는 듯이 디지털퍼머를 바라보자 디지털퍼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그게 무슨 큰 비밀을 누설한 거라고 모가지를 다 걱정하시나요. 집사님답지 않으세요."
그녀들은 마주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집사는 몸을 죽 펴서 크게 난간에 기대더니 잠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가마는 어느덧 시내 외곽에 와 있었는데 처음보다 상당히 빨라진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상수리 나무의 검은 그림자가 일행을 스치고 지나갔다. 집사가 다시 그녀들을 향해 얼굴을 돌렸을 때는 어느 정도 침착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한결 차분해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어느 도시나 오래된 기억을 보존하는 곳이 있습니다. 우연히 남아있는 어떤 골목이라든가, 아니면 집중적으로 관리되는 전통가옥이라든가..그렇지요? 도시의 기억이라는 것은 개인들의 내밀한 추억 이상의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한명 한명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구성원들 전체가 공통적으로 얽혀있는 역사적인 시간을 함축하고 있으니까요."
쇼트웨이브가 방금 통과한 굴절공간의 진득한 쇼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서리를 치며 물었다.
"그렇다면 아까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과거의 기억이란게 이 도시의 역사를 말하는 건가요, 저 물랑루즈는 그 역사를 보관하는 거구요?"
"음..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말하자면 박물관이나 향토 전시관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 싶습니다."
못 미덥다는 눈초리로 그녀가 말했다.
"설마 향토 전시관 정도를 굳이 볼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집사가 두 손을 벌렸다.
"언제 내가 저 곳을 볼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요? 그건 작은 아가씨께서 넘겨 짚으신 거구요, 단지 내가 말한 것은 저 곳이 이용자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건물은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그녀는 다소곳이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 집사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럼 저희가 한번 구경해도 상관없으시겠네요."
그러자 집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됩니다."
"왜요? 볼 수 없게 만든건 아니라면서요."
집사가 손바닥을 좍 펴서 방어막을 치듯 그녀들을 향해 흔들었다.
"아직까지 아가씨들께 허락이 나진 않았어요. 뭐라고 하셔도 현재까지 아가씨들께서는 손님이시니까요. 물론 나중에 충분히 우리와 가까와지면 그곳을 보셔도 상관없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힘들어요."
쇼트웨이브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나 앉았다. 디지털퍼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특별히 저렇게 목조건물로 지으실 이유가 있었나요?"
"물랑루즈니까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 건물은 물랑루즈를 그대로 옮긴 겁니다."
디지털퍼머는 입술 끝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질문을 좀 바꿔서 다시 하자면 도시의 역사를 보관하는 건물이 특별히 물랑루즈일 필요가 있었나 하는 거예요."
집사가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한 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물랑루즈가 아니면 대체 뭐가 되어야 하지요? 내가 너무 결과론적으로 얘기하는 건가요? 아님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탓에 더욱 좋은 건물이 있음에도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지 못하는 건가요."
물론 특별히 다른 아이디어가 그녀들에게 있을 리 없었다. 일행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줄창 연결되던 아케이드가 띄엄띄엄 끊었졌다 이어지길 반복했다. 집들은 점차로 낮은 층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그나마 아무 장식이 없는 사각형의 벽돌창고 같은 건물들로 이어질 즈음에는 인적 또한 끊겨서 주변은 버려진 마을처럼 황량한 풍경이 되어갔다. 가마는 굴절된 공간을 몇 번 통과했고 그때마다 그녀들은 배멀미를 할 때처럼 구역질을 일으키는 평형감각의 상실을 참아내야 했다.
마지막 건물을 지나치자 가로수도 따라 끝나고, 민들레처럼 잎이 톱니모양으로 갈라진 작은 꽃들이 집단적으로 엉겨있는 넓은 들판지대가 나왔다. 완만한 구릉을 이룬 들판이 야트막한 두 개의 산으로 막히고, 거기서 조금 더 가자 잿빛으로 출렁이는 호수가 나왔다. 호수의 끄트머리를 가리키며 집사가 말했다.
"의림지입니다."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가자 호수의 전면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녀들은 그 아득한 크기에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개의 야트막한 산은 단지 입구에 불과했던 것으로, 의림지는 제천시를 분지로 구획했던 거대한 산맥 사이로 이어져 자신의 면적을 최대한 부풀리고 있었다. 호수의 건너편 기슭이 가물거리며 아지랑이쳤다.
"저 커다란 산은 용두산이라고 부르는데 이 의림지는 용두산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막아 만든 겁니다. 둘레가 30킬로미터 정도 되고요, 저수지 면적은 20 평방 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글쎄, 이것을 저수지라고 부를 수 있는건가..디지털퍼머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초거대 규모의 저수지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저희 세계에서 보았던 의림지와 크기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데요."
쇼트웨이브가 저수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면적으로 따지자면 거의 200배 정도 더 크지요."
이제는 완연히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집사가 소풍을 나온 한량처럼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저수지의 물은 불투명하게 굽이쳤는데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자그마한 팔랑개비들을 벌려놓은 듯이 제각각 두서없이 소용돌이치며 부대꼈다.
저수지의 가장자리를 지지하기 위해 빙 둘러 쌓은 축대는 벌집모양으로 자른 응회암으로, 저수지 경계면을 따라 구불구불하지만 마치 폴리카보네이트 쉬트처럼 판판하고 빈틈없이 축조되어 있었다. 가마가 달리고 있는 길은 저수지의 둑과 만나 그 경계를 따라 휘어지고 있었다. 둑 아래로는 석회색의 파도가 밀려와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시큼한 물비린내를 머금은 차가운 바람이 그녀들을 쓸고 지나갔다. 수령이 오래된 듯한 소나무 숲이 둑 반대편에 병풍처럼 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저수지의 중앙에는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띄엄띄엄 심겨져 있는 자그마한 섬이 있었으며 그 섬으로 통하는 하나뿐인 목조 다리가 커다란 무지개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라 둑과 섬을 잇고 있었다. 다리 앞에는 나무로 된 문이 한 채 다리를 지키는 호위처럼 서 있었는데 단지 들보와 기둥만으로 지어진 것으로 출입을 단속할 수 있는 개폐식 문은 아니었다. 들보 위엔 홑처마로 된 장중한 팔작지붕이 얹혀 있었고 지붕 끝에는 새날개 모양의 치미가 뾰족하게 올라가 있었다. 길은 그 문 앞에서 끝나고 있었다. 집사가 섬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간신히 쇼케이스가 시작할 시간에 맞춘 모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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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23
서명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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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무료한국야동,일본야동,중국야동,성인야설,토렌트,성인야사,애니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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