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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47 559회 0건
카페의 문 앞엔 화살촉 머리 부분부터 화살깃 끝까지 모조리 은빛으로 채색된 작은 화살그림 하나가 비스듬히 그려져 있었다. 화살촉은 날카로운 세모꼴이 아니라 타원에 가까운 둥근 형태여서 보기엔 귀엽게 보였으나 실제로 그런 것에 맞는다면 뭉툭한 쇠꿉으로 두드려 맞는 것과 다름이 없을테니 뼈 부러지기 딱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살의 끝부분에 그려진 깃은 아주 세심하게 표현된 꿩깃이었다. 원형 모양의 꿩 깃털 무늬가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집사는 마뜩한 얼굴로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실내는 썰렁했다. 물론 손님도 없었거니와 일곱평 남짓한 면적에 둥근 테이블 두개와 그에 딸린 의자 몇개, 그리고 커피를 만들거나 혼자 온 손님이 앉아서 마실 수 있도록 기다랗게 한쪽을 막아 만들어 놓은 바 외에 특별한 가구나 장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낮이었고 전면에 설치한 쇼윈도우에서 빛이 들어오고는 있었지만 채광량이 워낙 적어 테이블마다 하나씩 양초를 켜서 카페 안을 밝히고 있었다. 참나무로 만들어져 굵직하고 육중한 느낌이 드는 바 너머엔 칸칸이 도구나 그릇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선반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 이 카페 분위기와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 바리스타 한 명이 쪽진 머리를 하고 눈을 껌벅이며 서 있었다. 여자는 이런 곳에 웬 손님이 왔냐는 듯 뜨아한 표정으로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일행을 쳐다보았다.
집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 앞으로 다가가 말을 타듯 의자에 올라 앉았다.
"안녕하세요?"
뒤따라온 디지털퍼머가 웃으며 귀염성 있는 말투로 여자에게 말을 붙였다. 여자는 당황한 듯 집사를 쳐다보았다.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드시게요?"
여자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네."
당연한 소릴 다 한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디지털퍼머가 말했다. 디지털퍼머와 쇼트웨이브도 바 앞에 놓여있는 높은 의자에 걸터 앉았다.
가게를 둘러보며 쇼트웨이브가 물었다.
"여긴 어떤 것들을 팔아요?"
여자는 그 간단한 질문이, 마치 공해에 찌들어 죽어가는 지구를 살려낼 청정 에너지원을 열흘 안에 찾아내라는 요구나 되는 것처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비수를 꺼내듯이 기다란 손가락을 하나 펴서 가슴 앞에 내밀었다.
"저희는..오직 한가지 메뉴만을 취급해요."
"예?"
눈썹을 모으며 디지털퍼머가 물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한가지 밖에 안 팔아요?"
여자는 누가 볼세라 얼른 손가락을 치우고는 두 손을 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네.."
여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디지털퍼머와 쇼트웨이브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설마 그 하나가 아메리칸은 아니겠죠?"
쇼트웨이브가 말하자 디지털퍼머가 웃었다.
"아메리칸..요?"
여자가 또다시 백지처럼 하얗게 표정을 지우며 물었다. 집사는 옆에서 듣고 있기가 지루한지 모자를 벗어들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쇼트웨이브는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음..아니예요. 그럼 여기선 어떤 커피를 파시는데요?"
여자가 입을 움찔움찔거렸다.
"바트라..예요."
"바트라?"
디지털퍼머가 되물었다.
"처음 듣는 커핀데.."
여자가 가만히 있자 쇼트웨이브가 물었다.
"맛있어요?"
그러자 여자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갑자기 생기를 띠며 약간 자랑이 섞인 미소마저 짓는 것이었다. 여자의 얼굴은 꼭 잔잔한 호수에 바위를 던져 파랑이 일어난 것 같았다. 그녀가 대답했다.
"죽여줘요."
쇼트웨이브와 디지털퍼머는 여자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진 나머지 얼굴을 마주 보고는 실소를 터뜨렸다.
"좋아요. 그거 주세요."

여자는 바 밑에서 녹색 유리로 만들어진 둥근 알콜램프를 꺼내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바 주위를 밝히던 굵은 양초를 들어 램프 심지에 불을 붙였다. 파란색 불꽃이 일자 그녀는 그 위에 삼발이를 세우고 펠리컨 주둥이를 닮은 길죽한 놋주전자를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한 쪽 귀퉁이에서 미세망으로 만들어진 로스터를 꺼내 한웅큼 원두를 채워놓고, 허리를 숙여 바 밑에 설치된 서랍을 열고는 네모나게 생긴 작은 멧돌을 한쌍 꺼내놓았다.
"이게 뭘까?"
여자가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디지털퍼머가 멧돌을 가리키며 쇼트웨이브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건 원두 분쇄기예요."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깝다는 듯한 얼굴로 집사가 대답했다. 디지털퍼머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멧돌로 원두를 갈아요?"
집사가 한 일자로 입술을 다물어 보였다.
"뭘로 갈면 어떻습니까. 절구에 빻아도 가루만 잘 내면 되지요."

여자는 뒤로 돌아 선반 속에서 검은색 나무 상자를 하나 꺼내와 질긴 마로 만들어진 두터운 장갑을 끼고는 상자의 뚜껑을 열고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여자는 한쪽 눈을 찡그리더니 아주 조심스레 상자 속에서 노란 색의 물체 하나를 잡아올렸다. 그건 개구리였다.
디지털퍼머가 당황해서 옆을 쳐다보자 역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쇼트웨이브의 얼굴이 보였다. 여자는 여러 모양의 그릇들이 포개져 쌓여있는 찬장 속에서 유리로 된 조그만 종지를 하나 꺼내 놓더니 감자 깎는 칼과 비슷하게 생긴 커터기를 들고 개구리의 등껍질을 얇게 벗기기 시작했다. 개구리는 온 몸을 뒤틀어대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카페가 떠나가라 꽥꽥댔다. 그녀들이 질겁을 해서 몸을 뒤로 뺐다.
껍질이 벗겨진 상처에서는 투명한 액이 몇 방울 흘러나왔는데 여자는 종지를 들어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껍질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액이 종지의 1/3 정도를 채우자 여자는 종지를 내려놓고는 소금통에서 소금을 집어 세례라도 주듯이 개구리 등에 몇번 뿌려댔다. 개구리가 네 발을 버둥거리면서 또다시 죽겠다고 꽥꽥댔지만 여자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개구리를 상자에 다시 집어넣고 미리 잡아놓았던 벌레 몇 마리를 인심쓰듯 던져넣었다.

"대체 이게 뭐하는 거지요?"
하얗게 질린 디지털퍼머가 소리쳤다. 여자는 디지털퍼머를 한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끓고 있는 놋주전자를 내려놓고, 원두가 담긴 망 로스터를 불 위에 올려 원두를 굽기 시작했다.
"원료를 마련하는 중 입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집사가 대답했다. 디지털퍼머가 얼굴을 찡그렸다.
"원료라니요, 무슨 원료요?"
"바트라를 만드는 원료지 뭐겠어요."
심드렁한 말투로 집사가 말했다. 원두 볶는 냄새가 카페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혹시 말이예요."
쇼트웨이브가 입술을 축이며 말을 꺼냈다. 집사가 돌아보았다.
"저 개구리 이름이 화살 개구리 아닌가요? 독화살 개구리라고도 하는.."
집사가 재미있다는 듯이 싱글거렸다.
"이것 참 계속 감탄하게 만드시는군요. 맞습니다. 독화살 개구리예요."
쇼트웨이브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어떻게 알았어?"
디지털퍼머가 물었다.
"옛날에..한번 들어봤던 적이 있었어."
쇼트웨이브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문 앞에 화살그림이 있고 게다가 커피 이름이 바트라라고 하길래.."
"바트라가 무슨 뜻인데?"
쇼트웨이브는 개구리를 넣어둔 상자를 바라보았다.
"바트라는 줄임말인거 같아. 내 생각이 맞다면 원래 이름은 바트라초일거야, 바트라초 톡신. 맞나요, 집사님?"
집사가 껄껄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확하세요."
집사가 바에 몸을 약간 기대며 디지털퍼머를 보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바트라는 화살 개구리의 독 이름인 바트라초에서 딴 것입니다. 화살 개구리의 독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바트라초는 그 중 제일 강력한 것이지요. 화살 개구리라는 이름도 옛날 사람들이 이 개구리의 독을 화살에 묻혀 사용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랍니다."
쇼트웨이브가 유리 종지를 가리켰다.
"저 액체겠군요. 화살 개구리의 독 말이예요."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볶아진 원두를 내려놓고 뚜껑을 덮어 알콜램프를 껐다. 그리고 네모나게 생긴 멧돌을 그릇에 받쳐놓고 윗돌을 들어낸 후 망 로스터를 기울여 볶은 원두를 밑돌에 깔았다.

디지털퍼머가 밑돌 위에 가지런히 원두알을 정렬하는 여자를 보며 불안한 목소리로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나요. 저 독을 커피에 타는 건가요?"
여자는 커피를 만드는 일처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에 절대 잡담따윈 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처럼 계속해서 아무 말도 없었고 이젠 그녀의 대변인 노릇에 재미를 붙인 것 같은 집사가 대신 대답했다.
"그렇죠. 그래서 커피 이름이 바트라인거지요."
디지털퍼머가 소리를 높였다.
"아니 독을 타면 어떡해요. 마신 사람이 죽잖아요."
집사가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서 아까 카페 주인이 말했잖습니까. 죽여준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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