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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48 565회 0건
쇼트웨이브가 엎어져 있는 집사의 연두색 셔츠 뒷 목부분 칼라를 잡아당겨 힘껏 끌어내렸다.
그 서슬에 앞단추가 풀리면서 셔츠의 가슴이 집사의 턱까지 올라왔다. 셔츠의 목은 뒤로 넓게 잡아당겨져 등 위쪽이 훤히 드러났는데 한 눈에도 승모근이 고릴라처럼 두툼하고 튼튼하게 발달된 것이 보였다.
여자는 보통 간호사들이 인젝션을 하기 위해 주사기를 쥐는 방법으로 주사기를 잡지 않았다. 그보다는 공포영화에 나오는 처키 인형이 난도질을 하기 위해 식칼을 잡는 것처럼 주사기를 거꾸로 말아 쥐는 것이었다. 여자는 주사기를 귀 옆까지 올려들고 다른 한 손으로 집사의 목 뒷쪽과 등으로 이어지는 뼈를 더듬어 주사기를 찌를 곳을 찾기 시작했다.
너무나 길어 비현실적으로 보일만큼 비죽 튀어나온 주사기 바늘이 촛불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번쩍였다. 불순물 없는 24K 순금 창으로 느껴질 만큼 날카로운 그 빛에 그녀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만약 그걸로 엉덩이를 찌른다면 그녀들처럼 날씬한 여성들은 아마 바늘이 배 밖으로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찌를 곳을 확정한 후 여자는 왼손을 등에서 떼었다. 집사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는지 얼굴을 바에 박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깨를 바닥에 누르세요."
여자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그녀들은 집사의 어깨를 한 쪽씩 붙잡았다.
그 순간 여자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칼을 꽂듯 주사기를 휘둘러 집사의 등에 깊숙히 바늘을 내리꽂았다. 마치 도축할 돼지의 멱을 따는 백정처럼 잔인하고도 깨끗한 동작이었다. 여자의 번개처럼 빠른 솜씨에 그녀들은 놀람을 비명으로 표현할 틈조차 없었다.
주사기가 박힌 지점은 경추가 흉추로 이어지는 척추골 사이 추간 디스크의 틈이었다. 내부의 압력으로 주사액이 들어가지 않자 여자는 주사기를 단단히 거머쥐고는 손바닥으로 플런져를 힘껏 누르기 시작했다. 가는 주사기 바늘이 척주 상단에 단단히 박힌채로 이리 휘청 저리 휘청대는 것이 보였다. 반응이 없던 집사가 경련을 하듯이 몸을 푸들거렸다. 그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집사를 눌렀다.
쪼그라든 폐가 갑자기 확장되기라도 한 듯 그 늘어난 부피를 공기로 채워넣겠다는 것처럼 집사의 입이 굴뚝처럼 벌어져 크게 숨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식도 안 쪽에서 부엌 싱크대에 물이 빠져내려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척주 내부의 압력이 상당한지 주사를 놓던 여자의 얼굴이 찌푸려지며 땀이 배어나왔다.
여자가 플런저를 누르던 손을 떼어 갑자기 집사의 경동맥 부근을 내리쳤다. 박수를 치는 듯한 소리가 쩍쩍 들려왔다. 집사의 목이 빨갛게 변하며 동맥 핏줄이 굵게 튀어나오자 여자는 다시 주사기에 집중해서 플런저를 눌러댔는데 얼마나 힘을 써대는지 폐차장 압착기가 고물차를 납작하게 짓이기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였다.
그것은 그녀들이 이제껏 봐왔던 치료방법 중 가장 거칠고 소름끼치는 응급처치여서 보다 못한 디지털퍼머가 소리쳤다.
"좀 살살하세요. 그러다가 주사기 부러지겠어요."
하지만 여자는 마지막 남은 주사액을 광란에 빠진 집사의 신경더미에 퍼부어넣기 위해 온 몸의 힘을 집중하느라 용을 쓰는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집사는 도요새가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 퍼덕였고 그녀들은 모든 체중을 실어 그를 눌러야했다.
마침내 플런저가 주사기 끝에 닿자 여자는 재빨리 주사기를 빼냈다. 다행히도 주사기 바늘이 부러져 척추 틈에 박히진 않은 모양이었다.
"끝났어요. 놓지말고 조금 더 잡고 계세요."
하지만 그런 말이 없었어도 집사가 토끼 사춘이나 된 것처럼 펄쩍이며 몸을 들썩여댔기 때문에 그녀들은 섣부르게 그에게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여자는 빈 주사기를 바구니에 담고 조용히 커피잔과 사용한 커피 용구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약간 시간이 지나자 집사의 경련이 잦아들면서 작지만 안정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집사를 잡은 어깨에서 손을 뗐다. 집사는 더이상 몸부림을 치지 않았다.
"괜찮은 거예요, 이 아저씨?"
디지털퍼머가 땀을 씻으며 여자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매우 만족스런 반응이예요. 본인도 그럴 거예요."
여자가 바를 정리하며 말했다.
"만족스럽다구요? 이게?"
디지털퍼머가 집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죽을 뻔 했잖아요. 이런 부작용이 만족스럽다니요."
여자는 디지털퍼머의 불만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정리를 하던 손을 부지런히 놀릴 뿐이었다. 그녀들이 이 무뚝뚝한 여자에게서 결국 어떤 말도 듣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했을 때 여자가 말했다.
"부작용이라..글쎄요, 한번 이렇게 생각해 봐요. 싱싱한 오렌지를 깨물었을 때나 막 따낸 레몬을 씹었을 때 과일의 새콤한 맛에 침이 가득 고이고 눈물이 핑 돌면서 몸이 떨릴 때가 있지요? 그건 여러분 혀 속의 수소이온 채널이, 과즙에 들어있던 산 속에서 하이드로늄 이온을 찾아낼 때 느끼는 감각이죠. 말하자면 신 맛을 느낀 거예요. 하지만 보세요. 신 맛을 느꼈다고 해서 몸을 떨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과잉반응이죠. 적절치 못한 거라구요. 그렇다면 그게 부작용일까요? 그 쓸데없는 과잉반응이 말이예요."
여자는 오히려 대답을 구하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쇼트웨이브는 문득 이 여자의 눈이 집사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중을 파악할 수 없는, 소멸된 존재의 찌꺼기 같은 눈빛이었다.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이게 그거랑 어떻게 같아요?"
디지털퍼머가 소리높여 대꾸했을 때 갑자기 옆에서 에어크리너 주입구에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모래밭에서 걷다가 지친 낙타가 내는 것 같은 긴 한숨이었다. 그리고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히..같은 겁니다.."
그녀들이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집사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 맛에 못 견뎌 몸을 떨든, 해독주사의 효과에 못 이겨 몸을 떨든 둘 다 자율신경계가 일으키는 몸의 자발적인 반응이거든요."
누워있긴 했지만 정신은 한참 전에 돌아온 모양이었는지 집사는 그녀들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는 몸을 완전히 이완시킨 채 눈을 껌벅이며 곧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맥없이 앉아서는 뒷 목을 어루만졌다. 그녀들이 그를 쳐다보며 가만히 있자 집사는 뻣뻣한 목을 좌우로 흔들어 근육을 풀어주었다.
"살아났나봐. 멀쩡해."
디지털퍼머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으신거예요?"
쇼트웨이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에 부딪힌 것처럼 집사가 그녀를 휙 돌아보았는데 그의 표정이 평상시와 다르게 어딘가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집사의 허망한 눈동자는 분명히 쇼트웨이브를 쳐다보고 있긴 하였지만 그녀의 얼굴에 정확히 초점을 잡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뒤통수 너머 어딘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정말 오랫만에 마셔보는 바트라여서.."
집사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멍청한 것 같기도 하고 미친 것 같기도 한 웃음이었다. 집사의 눈이 고열에 시달린 고양이 눈처럼 들떠 올라 묘한 생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여자가 행주로 바를 닦으며 그들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한동안 저럴 거예요. 바트라를 마시고 나면 기분이 상당히 고양되거든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쓸데없는 말을 하는군."
집사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여자에게 고개를 돌렸으나 곧 주머니 넉넉한 술꾼처럼 헤셀헤셀 풀어지며 웃어댔다.
"여하튼 마담의 솜씨는 더 좋아진거 같아. 이렇게까지 끓어오르기는 처음인데, 응? 순도를 더 높인건가."
여자는 무뚝뚝한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요? 좋아졌다니 다행이군요."
"정말이야. 뭐랄까. 순백의 화염으로 머릿속을 지지는 것 같다고 할까."
집사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한쪽 바퀴가 빠져 달아난 트레일러처럼 시끄러웠다. 여자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사가 갑자기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수자가 작곡한 행진곡인 사관후보생의 한 구절이었다. 흔히 있는 일이었는지 주인 여자는 집사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팔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던 그가 굵직한 바리톤으로 풍부한 성량을 자랑이라도 하듯 마지막 소절을 길게 늘어뜨리더니 노래를 마치며 그녀들을 향해 크게 절을 했다. 그녀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가시지요. 아가씨들. 너무 오래 지체하셨습니다. 10마리의 백마들이 끄는 호박마차가 아까부터 아가씨들을 기다리고 있습지요. 말들이 하품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아가씨들, 제일 앞 쪽의 두 마리를 주목해서 봐주세요."
마치 백마 10마리가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집사가 허공에 손짓하며 키득거렸다.
"한 마리는 페가수스이고, 날개 보이시죠, 또 하나는 유니콘입니다. 뿔이 멋진 말이지요. 이 놈들을 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만, 제가 직접 마부가 되어 멋진 폭스트롯 스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참, 우리의 마차는 태양을 돌아오는 아폴론 정기 역마차입니다."
말을 마친 집사가 제 말이 우스웠는지 어깨를 흔들며 폭소를 터뜨렸다.
"미친거 아냐?"
겁에 질린 것같은 목소리로 디지털퍼머가 소곤거렸다.
"미친건 아니예요. 단지 흥분상태라 어릿광대 짓을 하는 것 뿐이죠. 곧 정상적으로 돌아올거예요."
행주질을 마친 여자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껄껄대는 집사의 웃음소리가 문 쪽에서 들리는 바람에 돌아보니 어느새 집사는 카페의 문을 열고 있었다. 쇼트웨이브가 디지털퍼머에게 눈짓을 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들이 문으로 걸어가며 인사를 하려고 뒤를 돌아 보았지만 여자는 그들의 방문을 이미 잊어버린 듯이 바 위에서 타고 있는 양초를 새 것으로 교환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던 가마와 가마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쇼트웨이브는 얼른 집사를 따라 붙었다. 디지털퍼머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집사님,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요."
집사가 쇼트웨이브를 돌아보았다. 집사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져 있었는데 로또에 당첨이 되었어도 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 같았다.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아가씨. 지식의 불은 레테의 강에서도 꺼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하늘의 별들이 천구에 걸린 이유를 질문하신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쇼트웨이브가 귀염성 있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렇게 대단한 문제까지 궁금하진 않아요. 제가 궁금한건 아주 간단한 거예요."
그녀는 카페 건너편에 있던 목조건물을 가리켰다.
"저 집 말이죠, 제가 보기엔 물랑루즈 같은데 맞지요? 저게 여기 왜 있는 거지요?"
디지털퍼머는 아까부터 쇼트웨이브가 그 건물에 관심을 보이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녀는 쇼트웨이브가 왜 갑자기 집사를 따라붙었는지 이제야 눈치챘다. 아마도 집사가 약에 취해 기분이 좋아진 지금, 평소라면 알려주지 않았을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똑똑한 년..디지털퍼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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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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