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화도(春畵圖)-
‘파발이요----‘
동헌을 가로지르며, 이내 뜨끈뜨끈한 파발이 동헌의 앞마당으로 당도했다. 이방은 이내 파발꾼으로부터 전통을 들려 받아, 현감인 나에게 올리고….
‘그래, 이 포고령은 어느 시점으로부터 발현된다고 하였더냐?’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여 현감께서 지역유지와 숙의 하시어 결정하시라는 엄명입니다.’
‘그래, 알았다. 먼 길에 수고가 많았다. 어서 마필을 반회하고 숙소에서 쉬도록 하라.’
고을의 현감으로서 이런 파발을 받는 다는 것은 저으기 께름직 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무슨 살인범을 수배하네 같은 것이라면 모를까 미풍과 양속에 대한 일들은 지역 유지와의 토론에 있어서 언제나 끝이 나질 않았던 전례를 미루어 볼 때, 더욱이 그러 했으니…
‘이방은 듣게나.’
‘네-이’
‘명일, 동헌에서 약주나 한 순배 들자고 동리 어른들게 전갈을 좀 돌리게나. 이 일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말일세.’
‘아니, 그래도 무신 일인지는?’
‘어허, 함구 하라고 일렀질 않느냐!’
이방은 깨갱하며, 이내 동헌을 튀어 나간다. 내일의 논의는 아무래도 불을 튀길 것이 뻔히 보이고 있었기에….
‘공사가 다망허실 터인데, 어찌 저희들까지 이렇게 불러 주시다니요,…’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서 좌정하시지요.’
마을의 어른들이 대충 자리를 하였을 때, 나는 눈짓으로 동헌의 문을 닫으라고 일렀다. 왜냐하면 동헌의 뒷채 라고는 해도 민원을 올리려 들어오는 사람들이 짐짓 듣기라도 한다면 좋을 일이 못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른들을 모시게 된 것은 위로부터 내려온 포고령 때문 이옵니다.’
나는 이방의 손에 들려 모든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읽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모든 이들의 손을 거쳐가며, 포고령이 읽혀지고 나니 모두들 말들이 없었다.
‘저 혼자 내용을 고지하여, 발표하여도 그만 입지요. 허나, 이것은 미풍과 양속에 관련된 것이기는 하나, 정히 손대기는 어려운 것이라….어르신들의 고견을 여쭙고자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잘 허셨네. 역시 일을 보는 안목이 탁월 허시네 그랴.’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김대감의 맞장구가 먼저 튀어 나왔다. 그가 이어서 말을 받았다.
‘여기 계신 분들도 다들 인정 허시는 것이 있으실 줄로 압니다만, 이 춘화도라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우리의 곁에 있었사옵니까? 아니,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춘화도 한장 보지 않고 나이 잡수신 어른 계시던가요? 이제 와서 이것을 법으로 금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패가 있지요.’
‘누가 아니랍니까? 어디 춘화도가 한 두푼 엽쩐으로 구경이나 가당합니까? 이거야 말로 우리 양반들의 즐거운 화류문물의 하나인데, 이것을 조정에서 잡는다고 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양반님 네들의 멱살을 틀어쥐거나, 역모의 무리로 몰기 위한 얇팍한 계략일 듯 싶은데요…’
지금은 조정에서 낙향하여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판서의 반발이었다. 그는 당쟁의 희생물 이었기에 이번 포고령을 조정의 음모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가고 싶은 눈치였다.
‘허허… 이렇게 발끈해서야, 어디 토론이 되겠소? 조정의 일은 나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발상도 여기서는 필요할 듯 싶소.’
장성한 아들이 조정에서 국록을 먹고 있다는 윤초시의 뼈대 있는 말투였다.
‘아니, 윤초시 한번 생각 좀 해 보시게. 춘화도를 막는다고 그게 어찌 쉽사리 될 듯 싶으신가? 아랫것들은 그나마 춘화도 없이도 그 놈의 오입질, 잘도 허두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소리 잘하기로 유명하고, 글재주 뛰어난 풍류객 많기로 소문난 청향(淸香)입니다요. 이 청향 고을의 또 다른 출중한 점은 화서에 능한 분들이 많이 배출 되었다는 점 입지요. 그 분들도 이 춘화도 한점씩 청탁으로 그려오지 않으신 분들이 없는데, 그럼 이번 차제에 그런 분들 까지 모두 옥살이를 시켜야 한단 말입니까?’
‘아니, 그런 말은 아닙지요. 포고령이 발효되면, 그 시기부터 춘화도를 제작, 배포, 거간하는 이들을 처벌한다고 되어 있지, 소급해서 사전에 배포된 춘화도에 대한 얘기는 포고령에 없었지요. 이점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자리에 어르신들을 모신 것은 과연 현재 춘화도는 어떤 용도에서 사용되어지고 있으며, 누가 거간의 밧줄을 당기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거야, 우리 양반들 아닌가? 어디 상것들이 춘화도 구경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것들이야, 소 접붙이는 것만 봐도 아랫도리를 까 내리는 것들인데, 우리 같은 고고한 풍류를 즐길 머리통이나 있겠어? 내 언제 보니, 뒷간에 가다 말고,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 짓거리를 하는 작태를 그려놓고, 용두질을 치는 하인 놈을 본적도 있다네. 허 참….’
좌중이 웃음을 머금었다.
‘아니 그뿐 인줄 아시오? 내 하인 놈 중에 장쇠 라는 놈이 있는데, 소 접붙이는 뒤켠 에서 씨근덕대는 모습을 한자라도 가까이 구경 허려고 눈깔을 갖다 대다가 그만, 소 뒷발에 채여서 반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않합니까?’
‘자자, 농찌거리는 예서 그치고, 우리 진중하게 의논 한번 해 봅시다.’
정판서께서 좌중을 제어했다.
‘이 일은 쉽게 넘겨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 일쎄. 예를 들자면 우리 양반님 네들의 기방출입을 예로 든다 할 수 있겠지. 자고로 기방에서 머리를 올려 주려면 누가 필요한가? 우리 양반들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 일을 대신할 사람이 있겠느냐 말일세. 머리를 올린다는 말은 세세히 설명하질 않아도 잘 아실 것이네만, 만일 이 머리를 올리는 행위를 단지 머리만 올리게 하는 것으로 법으로 정하고, 실제 이루어져야 할 이불 속의 행사는 미풍에 저해되니, 관가에서 시행토록 한다면 누가 기방에 출입하겠는가 말이야? 우리네 양반들이 기방의 출입을 금하면, 기방은 금새 논바닥에 물 빠지듯이 바닥이 쩌억 갈라지며,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양반의 풍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게 될 것이야. 그것 뿐인가?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일세. 기방이라도 통해야 양반들의 돈줄이 돌고 돌아 고을의 살림이 피어나지 않겠느냐 이 말이라고 내 말은….만일 이 포고령이 시행되고 나면 아마도, 이 고을의 양반들은 줄줄이 굴비 두름 엮이듯이 관가로 끌려 갈 테니, 두고 보게나.’
좌중이 웅성댔다.
‘어르신들의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포고령의 고지문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있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기에 첨언 드리옵니다.
중략하고….이런 연유로 미풍에 저해할 만한 극독과도 같은 춘화도의 패륜행위가 이제는 어린 청년과 유년기 학동들의 건전한 사상을 피폐케 하는 고로, 이에….
라는 부분 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양반댁에 태어나, 사랑채에서 부친, 서책정리 한번 안 해 본 사람 있음 나와 보시게나. 다 어릴 적부터 훔쳐보고, 어깨 너머로 기웃대며, 다 보고 자라온 우리들 아닌가? 아니, 우리의 머릿 속이 다 그 춘화도로 어 문드러 졌다면 도대체 나라는 누가 일으키고, 급제는 누가 했다 하든가? 원,별, 개똥 같은 소리 다 들어 보겠네. 자고로 될성 싶은 남새는 떡잎부터 안다고, 춘화도 땜시 골로 갈 인간들은 예전에 벌써 아랫도리 까 번지고 오입으로 나선다 이거요, 내 말, 틀리요?’
김대감이 입에 침을 튀겼다. 청향고을의 유래를 강조했던 산수화의 대가 무천 김사홍 옹이 말을 이었다.
‘우선은 우리만이라도 단도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정의 의도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춘화도를 문제 삼는 것인지, 아니면 당나라를 통해 유입되는 춘화도들을 걸구치는 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 놈의 여편네 들이 온통 사재끼는 통에….’
‘글쎄요. 춘화도라고만 되어있지, 구지 어느 경로로 유입 되었다든가, 어느 곳에서 제작 되었다는 것에 대한 원산지 유첨에 대한 제약은 없었으니, 아마도 춘화도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해당한다고 봐야 옳겠지요.’
무천 옹의 발언이 계속되었다.
‘허허, 이런 망발이 있을 수 있나? 어찌 우리의 손으로 그려진 춘화도와 당나라의 뙤놈 손으로 그려진 것을 같은 부류로 칠 수 있단 말인지…내는 알다가도 모를 것이네. 자 보게나, 내가 가져왔네 그랴.’
품에서 꺼낸 것은 자신이 그린 듯한 춘화도 였다. 그 종류가 서너 가지가 넘는 것이었고, 어떻게 품속에 소지하고 들어왔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자 보게나, 이것은 춘화가 그려진 부채 일세, 찌는 듯한 복날, 이 부채로 바람을 부치면 사향가루 냄새가 솔솔 나는 것이, 운치가 격이 있질 않나? 그리고 이건 또 어떤가? 이건 이름은 밝힐 수 없네만 어느 청상의 규방에 불려가 그려낸 것인데, 내가 기념으로 갖고 왔지. 보게나 이게 바로 속곳일세. 이걸 걸치고 남정네 앞에 턱 서면 어느 사내가 용솟음치지 않을 수 있으리! 자, 그리고, 이건 당나라에서 넘어온 화첩 이고, 이건 내가 손수 그린 걸세, 아마도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사랑채에는 모두 한질, 아니 여러 질이 비치되어 있을 걸세, 아니 그런가? 한번 비교해 보게나. 우리 것이 얼마나 다른지를….’
좌중은 감탄과 더불어 시셋말로 방물장수가 은밀히 지니고 다니던 당나라에서 유입된 화첩과 무천옹이 그린 춘화첩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림 안의 풍경을 잘 보게나. 이게 주막집이지, 우리네 사는 사랑채 같은 고즈넉함이 있나? 그리고 이년의 붉어진 뺨 좀 보소. 월매나 천시런 색감인지….내가 그린 화첩에는 저런 년은 없으이. 정숙한 규방의 규수가 연정에 휩싸여 사랑하는 낭군에게 오로지 일편단심의 화염으로 도화빛에 물든 색감 이외에는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이야. 어디 우리네의 춘화도를 뙤놈의 것과 동질시 한단 말인가? 이건 천부당 만부당한 언질이 아니고 무엇이냔 말이여?’
그 말은 맞았다. 벌써 내용에서부터 다른 것이 당나라의 것은 내용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남녀상렬지사 만을 표시하였을 뿐, 무천옹이 그린 것과는 그 내용부터가 질적으로 달랐다. 그림과 그림의 중간에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연정을 찬미하는 시조가 구구절절이 적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러한 교합의 상태를 이루기 까지 거쳐 왔을 두 사람의 연인에 대한 연상이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었다. 또한 사랑채에서 잘 아는 부부끼리 흔히 행하여져 왔던 일남이녀합(一男二女合) 이랄지, 삼남일녀합(三男一女合) 같은 은밀한 풍속에 대한 것도 자세히 그려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현재의 시대상을 곧바로 가늠케 하는 명쾌함이 따르고 있었다.
‘어르신의 지적, 정말 감읍할 따름입니다. 저도 나라의 녹을 먹고는 있지만, 저도 무천옹께서 손수 그리신 작화를 소싯적부터 소지하고 있었음을 이 자리에서 토설하는 바입니다.’
나는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현감의 자리에 있었다고는 하나 이런 천차의 격이 나고 있는 춘화도를 한테 싸잡아 포고령으로 묶어 둔다는 것은 어째 앞뒤가 맞지 않았기에…
‘그럼 어르신 어찌 하여야 좋겠습니까?’
‘좌중의 의견을 좀더 들어보지.’
이제 한 풀이 꺾였는지 윤초시가 조정을 위한다는 발언은 쏙 빼 놓고 마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현 시국에서 가장 춘화도의 수요가 많은 곳은 어디 이겠습니까? 당연히 양반댁 이지요. 그것도 규방 아니겠습니까?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작정이신지요?’
그건 맞았다. 춘화도는 규방의 규수들이 혼례를 앞두고 친정 에미들이 앞 다투어 구입하여 첫날밤을 교육 시키기 위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채에서 어른 들이 대하는 춘화도는 그와는 질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달랐으나, 물량면으로 그 쪽으로 쏠리는 시세를 묵과할 수도 없는 처지 였다.
‘한번 예를 들어 봅시다. 어느 양가댁 친정 에미가 고래로 내려오는 전통대로 초야를 버텨내게 할 참으로 춘화도를 구입했다는 사실이 발각 나서 동헌으로 끌려 온다면, 그 혼사는 무엇이 되겠으며,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처자의 심사는 또 어찌 되겠누?’
그것도 문제는 문제 였다.
‘현감의 결단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오.’
모두의 눈빛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포고령에 의지해서 방을 붙이고 나면, 이눔 저눔 할 거 없이 춘화도를 거간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관가에 고발하기 바쁠 것이고, 옥문은 줄창 바빠져 아마도 민원을 해결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 뻔했다. 가뜩이나 양반과 아랫것들 사이의 비분한 밀통이 발각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시점에, 그런 이유로 관가에 끌려오는 양반들을 목격하는 아랫것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고, 이것은 단순한 춘화도의 문제를 넘어서서 뿌리를 뒤 흔들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이 고을의 현감으로서 이 포고령의 시행시기를 무제한, 잠정, 제한함을 좌중 여러분께 고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조정에 상소를 올려 포고령의 부당함을 알리고, 우리 만의 살아있는, 유구한 춘화도의 계승 발전을 도모함은 물론, 외세의 저질 춘화바람에 대항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유지하야, 빛나는 춘화문물을 자손 만대에 물려줄 것임을 강변하고자 합니다. 결단코 본인은 조정의 이 포고령이 부당한 의도에서 발현된 무지한 소치임을 인정합니다. 또한 조정의 압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분연히 일어나 우리 청향 고을 만이라도 넘치는 운치와 풍류로 다듬어진 춘화만개의 도원경이 되기를 목숨 바쳐 지켜나갈 것임을 고하는 바입니다.’
좌중이 흐뭇한 눈길로 탁자를 소소히 내려치며, 찬동의 표시를 내고 있었다.
‘탕탕’
‘어?…..음냐…..’
‘미스터 김? 또 잠든 거야? 날밤 쫌 깠다고 그렇게 침을 흘리면서 자나? 어서 빨리 서버 프로그램 업데이트 해야지, 사람들이 필터링 땜시 돌아버리겠다고 난리가 아니라니깐? 어서 빨리 일어나! 잠만 퍼 자지 말고…으이그, 지겨운 그놈의 필터링!’
나는 잠에서 깨어나 침까지 흘린 입가를 훔치며, 소라의 많은 가입자들을 위한 또 한번의 숨바꼭질을 위해서 서버의 프로그램을 매만진다. 필터링의 망령을 운치 있게 삑싸리를 멕일 방법이 그렇게 없나? 나는 나의 아둔한 머리를 뒤흔들면서 그 꿈의 뒷자락에 매달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 밤이 새도록….
-끝-
P.S.:필터링 이라는 좇 같은 개지랄을 떨고 있는 것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써 보았습니다. 헐….
‘파발이요----‘
동헌을 가로지르며, 이내 뜨끈뜨끈한 파발이 동헌의 앞마당으로 당도했다. 이방은 이내 파발꾼으로부터 전통을 들려 받아, 현감인 나에게 올리고….
‘그래, 이 포고령은 어느 시점으로부터 발현된다고 하였더냐?’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여 현감께서 지역유지와 숙의 하시어 결정하시라는 엄명입니다.’
‘그래, 알았다. 먼 길에 수고가 많았다. 어서 마필을 반회하고 숙소에서 쉬도록 하라.’
고을의 현감으로서 이런 파발을 받는 다는 것은 저으기 께름직 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무슨 살인범을 수배하네 같은 것이라면 모를까 미풍과 양속에 대한 일들은 지역 유지와의 토론에 있어서 언제나 끝이 나질 않았던 전례를 미루어 볼 때, 더욱이 그러 했으니…
‘이방은 듣게나.’
‘네-이’
‘명일, 동헌에서 약주나 한 순배 들자고 동리 어른들게 전갈을 좀 돌리게나. 이 일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말일세.’
‘아니, 그래도 무신 일인지는?’
‘어허, 함구 하라고 일렀질 않느냐!’
이방은 깨갱하며, 이내 동헌을 튀어 나간다. 내일의 논의는 아무래도 불을 튀길 것이 뻔히 보이고 있었기에….
‘공사가 다망허실 터인데, 어찌 저희들까지 이렇게 불러 주시다니요,…’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서 좌정하시지요.’
마을의 어른들이 대충 자리를 하였을 때, 나는 눈짓으로 동헌의 문을 닫으라고 일렀다. 왜냐하면 동헌의 뒷채 라고는 해도 민원을 올리려 들어오는 사람들이 짐짓 듣기라도 한다면 좋을 일이 못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른들을 모시게 된 것은 위로부터 내려온 포고령 때문 이옵니다.’
나는 이방의 손에 들려 모든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읽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모든 이들의 손을 거쳐가며, 포고령이 읽혀지고 나니 모두들 말들이 없었다.
‘저 혼자 내용을 고지하여, 발표하여도 그만 입지요. 허나, 이것은 미풍과 양속에 관련된 것이기는 하나, 정히 손대기는 어려운 것이라….어르신들의 고견을 여쭙고자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잘 허셨네. 역시 일을 보는 안목이 탁월 허시네 그랴.’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김대감의 맞장구가 먼저 튀어 나왔다. 그가 이어서 말을 받았다.
‘여기 계신 분들도 다들 인정 허시는 것이 있으실 줄로 압니다만, 이 춘화도라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우리의 곁에 있었사옵니까? 아니,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춘화도 한장 보지 않고 나이 잡수신 어른 계시던가요? 이제 와서 이것을 법으로 금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패가 있지요.’
‘누가 아니랍니까? 어디 춘화도가 한 두푼 엽쩐으로 구경이나 가당합니까? 이거야 말로 우리 양반들의 즐거운 화류문물의 하나인데, 이것을 조정에서 잡는다고 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양반님 네들의 멱살을 틀어쥐거나, 역모의 무리로 몰기 위한 얇팍한 계략일 듯 싶은데요…’
지금은 조정에서 낙향하여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판서의 반발이었다. 그는 당쟁의 희생물 이었기에 이번 포고령을 조정의 음모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가고 싶은 눈치였다.
‘허허… 이렇게 발끈해서야, 어디 토론이 되겠소? 조정의 일은 나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발상도 여기서는 필요할 듯 싶소.’
장성한 아들이 조정에서 국록을 먹고 있다는 윤초시의 뼈대 있는 말투였다.
‘아니, 윤초시 한번 생각 좀 해 보시게. 춘화도를 막는다고 그게 어찌 쉽사리 될 듯 싶으신가? 아랫것들은 그나마 춘화도 없이도 그 놈의 오입질, 잘도 허두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소리 잘하기로 유명하고, 글재주 뛰어난 풍류객 많기로 소문난 청향(淸香)입니다요. 이 청향 고을의 또 다른 출중한 점은 화서에 능한 분들이 많이 배출 되었다는 점 입지요. 그 분들도 이 춘화도 한점씩 청탁으로 그려오지 않으신 분들이 없는데, 그럼 이번 차제에 그런 분들 까지 모두 옥살이를 시켜야 한단 말입니까?’
‘아니, 그런 말은 아닙지요. 포고령이 발효되면, 그 시기부터 춘화도를 제작, 배포, 거간하는 이들을 처벌한다고 되어 있지, 소급해서 사전에 배포된 춘화도에 대한 얘기는 포고령에 없었지요. 이점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자리에 어르신들을 모신 것은 과연 현재 춘화도는 어떤 용도에서 사용되어지고 있으며, 누가 거간의 밧줄을 당기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거야, 우리 양반들 아닌가? 어디 상것들이 춘화도 구경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것들이야, 소 접붙이는 것만 봐도 아랫도리를 까 내리는 것들인데, 우리 같은 고고한 풍류를 즐길 머리통이나 있겠어? 내 언제 보니, 뒷간에 가다 말고,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 짓거리를 하는 작태를 그려놓고, 용두질을 치는 하인 놈을 본적도 있다네. 허 참….’
좌중이 웃음을 머금었다.
‘아니 그뿐 인줄 아시오? 내 하인 놈 중에 장쇠 라는 놈이 있는데, 소 접붙이는 뒤켠 에서 씨근덕대는 모습을 한자라도 가까이 구경 허려고 눈깔을 갖다 대다가 그만, 소 뒷발에 채여서 반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않합니까?’
‘자자, 농찌거리는 예서 그치고, 우리 진중하게 의논 한번 해 봅시다.’
정판서께서 좌중을 제어했다.
‘이 일은 쉽게 넘겨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 일쎄. 예를 들자면 우리 양반님 네들의 기방출입을 예로 든다 할 수 있겠지. 자고로 기방에서 머리를 올려 주려면 누가 필요한가? 우리 양반들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 일을 대신할 사람이 있겠느냐 말일세. 머리를 올린다는 말은 세세히 설명하질 않아도 잘 아실 것이네만, 만일 이 머리를 올리는 행위를 단지 머리만 올리게 하는 것으로 법으로 정하고, 실제 이루어져야 할 이불 속의 행사는 미풍에 저해되니, 관가에서 시행토록 한다면 누가 기방에 출입하겠는가 말이야? 우리네 양반들이 기방의 출입을 금하면, 기방은 금새 논바닥에 물 빠지듯이 바닥이 쩌억 갈라지며,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양반의 풍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게 될 것이야. 그것 뿐인가?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일세. 기방이라도 통해야 양반들의 돈줄이 돌고 돌아 고을의 살림이 피어나지 않겠느냐 이 말이라고 내 말은….만일 이 포고령이 시행되고 나면 아마도, 이 고을의 양반들은 줄줄이 굴비 두름 엮이듯이 관가로 끌려 갈 테니, 두고 보게나.’
좌중이 웅성댔다.
‘어르신들의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포고령의 고지문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있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기에 첨언 드리옵니다.
중략하고….이런 연유로 미풍에 저해할 만한 극독과도 같은 춘화도의 패륜행위가 이제는 어린 청년과 유년기 학동들의 건전한 사상을 피폐케 하는 고로, 이에….
라는 부분 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양반댁에 태어나, 사랑채에서 부친, 서책정리 한번 안 해 본 사람 있음 나와 보시게나. 다 어릴 적부터 훔쳐보고, 어깨 너머로 기웃대며, 다 보고 자라온 우리들 아닌가? 아니, 우리의 머릿 속이 다 그 춘화도로 어 문드러 졌다면 도대체 나라는 누가 일으키고, 급제는 누가 했다 하든가? 원,별, 개똥 같은 소리 다 들어 보겠네. 자고로 될성 싶은 남새는 떡잎부터 안다고, 춘화도 땜시 골로 갈 인간들은 예전에 벌써 아랫도리 까 번지고 오입으로 나선다 이거요, 내 말, 틀리요?’
김대감이 입에 침을 튀겼다. 청향고을의 유래를 강조했던 산수화의 대가 무천 김사홍 옹이 말을 이었다.
‘우선은 우리만이라도 단도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정의 의도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춘화도를 문제 삼는 것인지, 아니면 당나라를 통해 유입되는 춘화도들을 걸구치는 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 놈의 여편네 들이 온통 사재끼는 통에….’
‘글쎄요. 춘화도라고만 되어있지, 구지 어느 경로로 유입 되었다든가, 어느 곳에서 제작 되었다는 것에 대한 원산지 유첨에 대한 제약은 없었으니, 아마도 춘화도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해당한다고 봐야 옳겠지요.’
무천 옹의 발언이 계속되었다.
‘허허, 이런 망발이 있을 수 있나? 어찌 우리의 손으로 그려진 춘화도와 당나라의 뙤놈 손으로 그려진 것을 같은 부류로 칠 수 있단 말인지…내는 알다가도 모를 것이네. 자 보게나, 내가 가져왔네 그랴.’
품에서 꺼낸 것은 자신이 그린 듯한 춘화도 였다. 그 종류가 서너 가지가 넘는 것이었고, 어떻게 품속에 소지하고 들어왔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자 보게나, 이것은 춘화가 그려진 부채 일세, 찌는 듯한 복날, 이 부채로 바람을 부치면 사향가루 냄새가 솔솔 나는 것이, 운치가 격이 있질 않나? 그리고 이건 또 어떤가? 이건 이름은 밝힐 수 없네만 어느 청상의 규방에 불려가 그려낸 것인데, 내가 기념으로 갖고 왔지. 보게나 이게 바로 속곳일세. 이걸 걸치고 남정네 앞에 턱 서면 어느 사내가 용솟음치지 않을 수 있으리! 자, 그리고, 이건 당나라에서 넘어온 화첩 이고, 이건 내가 손수 그린 걸세, 아마도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사랑채에는 모두 한질, 아니 여러 질이 비치되어 있을 걸세, 아니 그런가? 한번 비교해 보게나. 우리 것이 얼마나 다른지를….’
좌중은 감탄과 더불어 시셋말로 방물장수가 은밀히 지니고 다니던 당나라에서 유입된 화첩과 무천옹이 그린 춘화첩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림 안의 풍경을 잘 보게나. 이게 주막집이지, 우리네 사는 사랑채 같은 고즈넉함이 있나? 그리고 이년의 붉어진 뺨 좀 보소. 월매나 천시런 색감인지….내가 그린 화첩에는 저런 년은 없으이. 정숙한 규방의 규수가 연정에 휩싸여 사랑하는 낭군에게 오로지 일편단심의 화염으로 도화빛에 물든 색감 이외에는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이야. 어디 우리네의 춘화도를 뙤놈의 것과 동질시 한단 말인가? 이건 천부당 만부당한 언질이 아니고 무엇이냔 말이여?’
그 말은 맞았다. 벌써 내용에서부터 다른 것이 당나라의 것은 내용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남녀상렬지사 만을 표시하였을 뿐, 무천옹이 그린 것과는 그 내용부터가 질적으로 달랐다. 그림과 그림의 중간에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연정을 찬미하는 시조가 구구절절이 적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러한 교합의 상태를 이루기 까지 거쳐 왔을 두 사람의 연인에 대한 연상이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었다. 또한 사랑채에서 잘 아는 부부끼리 흔히 행하여져 왔던 일남이녀합(一男二女合) 이랄지, 삼남일녀합(三男一女合) 같은 은밀한 풍속에 대한 것도 자세히 그려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현재의 시대상을 곧바로 가늠케 하는 명쾌함이 따르고 있었다.
‘어르신의 지적, 정말 감읍할 따름입니다. 저도 나라의 녹을 먹고는 있지만, 저도 무천옹께서 손수 그리신 작화를 소싯적부터 소지하고 있었음을 이 자리에서 토설하는 바입니다.’
나는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현감의 자리에 있었다고는 하나 이런 천차의 격이 나고 있는 춘화도를 한테 싸잡아 포고령으로 묶어 둔다는 것은 어째 앞뒤가 맞지 않았기에…
‘그럼 어르신 어찌 하여야 좋겠습니까?’
‘좌중의 의견을 좀더 들어보지.’
이제 한 풀이 꺾였는지 윤초시가 조정을 위한다는 발언은 쏙 빼 놓고 마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현 시국에서 가장 춘화도의 수요가 많은 곳은 어디 이겠습니까? 당연히 양반댁 이지요. 그것도 규방 아니겠습니까?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작정이신지요?’
그건 맞았다. 춘화도는 규방의 규수들이 혼례를 앞두고 친정 에미들이 앞 다투어 구입하여 첫날밤을 교육 시키기 위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채에서 어른 들이 대하는 춘화도는 그와는 질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달랐으나, 물량면으로 그 쪽으로 쏠리는 시세를 묵과할 수도 없는 처지 였다.
‘한번 예를 들어 봅시다. 어느 양가댁 친정 에미가 고래로 내려오는 전통대로 초야를 버텨내게 할 참으로 춘화도를 구입했다는 사실이 발각 나서 동헌으로 끌려 온다면, 그 혼사는 무엇이 되겠으며,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처자의 심사는 또 어찌 되겠누?’
그것도 문제는 문제 였다.
‘현감의 결단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오.’
모두의 눈빛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포고령에 의지해서 방을 붙이고 나면, 이눔 저눔 할 거 없이 춘화도를 거간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관가에 고발하기 바쁠 것이고, 옥문은 줄창 바빠져 아마도 민원을 해결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 뻔했다. 가뜩이나 양반과 아랫것들 사이의 비분한 밀통이 발각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시점에, 그런 이유로 관가에 끌려오는 양반들을 목격하는 아랫것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고, 이것은 단순한 춘화도의 문제를 넘어서서 뿌리를 뒤 흔들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이 고을의 현감으로서 이 포고령의 시행시기를 무제한, 잠정, 제한함을 좌중 여러분께 고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조정에 상소를 올려 포고령의 부당함을 알리고, 우리 만의 살아있는, 유구한 춘화도의 계승 발전을 도모함은 물론, 외세의 저질 춘화바람에 대항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유지하야, 빛나는 춘화문물을 자손 만대에 물려줄 것임을 강변하고자 합니다. 결단코 본인은 조정의 이 포고령이 부당한 의도에서 발현된 무지한 소치임을 인정합니다. 또한 조정의 압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분연히 일어나 우리 청향 고을 만이라도 넘치는 운치와 풍류로 다듬어진 춘화만개의 도원경이 되기를 목숨 바쳐 지켜나갈 것임을 고하는 바입니다.’
좌중이 흐뭇한 눈길로 탁자를 소소히 내려치며, 찬동의 표시를 내고 있었다.
‘탕탕’
‘어?…..음냐…..’
‘미스터 김? 또 잠든 거야? 날밤 쫌 깠다고 그렇게 침을 흘리면서 자나? 어서 빨리 서버 프로그램 업데이트 해야지, 사람들이 필터링 땜시 돌아버리겠다고 난리가 아니라니깐? 어서 빨리 일어나! 잠만 퍼 자지 말고…으이그, 지겨운 그놈의 필터링!’
나는 잠에서 깨어나 침까지 흘린 입가를 훔치며, 소라의 많은 가입자들을 위한 또 한번의 숨바꼭질을 위해서 서버의 프로그램을 매만진다. 필터링의 망령을 운치 있게 삑싸리를 멕일 방법이 그렇게 없나? 나는 나의 아둔한 머리를 뒤흔들면서 그 꿈의 뒷자락에 매달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 밤이 새도록….
-끝-
P.S.:필터링 이라는 좇 같은 개지랄을 떨고 있는 것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써 보았습니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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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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