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접속하니 낯선 침대가 나를 반긴다.
오, 이게 내 방인가?
딱딱한 침대와 불편한 베게, 거친 담요등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지만 왠지 가슴이 설레어온다.
이게 바로 우주 함대식 침실이란 말이지?
나는 방을 자세하게 둘러보았다.
벽은 금속 재질인데 처음보는 금속이였다.
매끈매끈.
손가락을 구부려서 두들겨 봤더니, 딱딱하는 소리가 난다.
꽤나 두꺼운 판으로 이루어진듯하다.
가구들도 꽤나 색다른 모양이다.
불은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모르지만 방안을 은은히 밝히고 있었고, 가구들도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갈한 분위기에서 왠지모를 우아함까지?
내가 그렇게 미래의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는 사이에, 삐익하면서 나의 방문이 옆으로 스르륵 열렸다.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빛.
아 눈부셔.
"이봐요, 일어날 시간이... 어라? 일어나 있었잖아?"
바깥쪽이 너무 환해서 잠시동안 머리가 아플정도의 빛이 내 망막을 자극했다.
"일어나 있었으면 불이라도 켜놀것이지 생긴것 답게 음침하기는."
사람의 실루엣이 불빛을 등시고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게 여인인듯하다.
하긴 여인일 수밖에는 없겠지.
나말고 사내가 있을리가 없으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차분히 살폈다.
빛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그림자가 점점 지워지고 본 모습이 드러난다.
키는 대략 165cm정도 될까?
머리는 어깨까지 겨우오는 짧은 단발이였고, 외모는 굉장히 귀엽지만 눈이 크고 눈썹이 치겨올라가서 말괄량이 같이 보인다.
마네킹일때는 잘 몰랐지만 역시나 굉장히 예쁜 얼굴이다.
딱 이상적인 소꿉친구의 외향이다.
좋아좋아.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거에요! 빨리 나오지 못합니까?!"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방문을 나섰다.
방을 나서자 마자 붕 뜨는 나의 몸.
와... 이게 무중력이라는건가?
다리가 편안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너무 풀어지는 느낌이 왠지 싫다.
"가죠."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벽에 있는 손잡이를 붙잡았다.
에스칼레이터의 손잡이 같이 생긴것이 위잉하고 움직인다.
위를 잡으면 왼쪽으로 가는것 같다.
그녀를 따라서 나도 위쪽 손잡이를 잡는다.
손이 휙 움직이고 나의 몸이 따라서 딸려간다.
오오 이거 잼있잖아?
"멈춰 바보!"
"자동운동손잡이", 즉 "오토핸드레일"이 신기해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나는 멈춰있는 그녀와 충돌하고 말았다.
퉁!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와 함께 공중을 3바퀴정도를 구르게 되었다.
가슴이 조금 아프지만 공중에서 빙글빙글도는 느낌이 꽤나 재미있었다.
"아야! 멍청아!"
누가 멍청이야!
나는 발끈해서 외쳤다.
"누구긴 누구야! 바로..."
"아스날 소위! 그이상은 하극상이다."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열리더니 순간 눈이 환해질 정도의 금발 거유미인이 등장했다.
이게 문인가 보다.
그냥 벽에 몇개의 버튼이 옆에 붙어 있어서 못찾고 휙 지나칠 정도였다.
이거 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못찾을지도?
"지크!"
아스날이 갑작스럽게 거수경례를 했다.
나도 얼떨결에 같이 거수경례를 한다.
뭐야, 나에게는 저런거 안했잖아!
"지크. 레이군, 오늘은 조금 늦었네."
거유미인이 손을 내리자 나도 같이 손을 내렸다.
그런데 레이 중위가 누구지?
나는 고개를 휘휘 돌려보았지만 이곳에 있는건 아스날 소위와 금발 거유미인뿐.
설마 레이라는게 내 이름인가?
"아문로 중위께선 취침중이셨습니다."
아스날 소위를 보니, 나를 향해 혀를 내밀고 있었다.
뭐야, 고자질한거야?
뭐 그건 그렇다치고 설마 내 이름이 "아문로 레이"는 아니겠지?
그건 "기동전사 간담"의 주인공 이름이잖아.
"어제의 전투가 많이 피곤했나보네, 하긴 레이군이 파괴한 적기가 무려 3대가 넘었으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연이에요, 우연. 이런 얼치기가 무슨."
"소위!"
아무래도 저 아스날 소위는 나에게 쌓인게 많나보다.
그리고 반대로 거유미인은 나에게 약간 호감이 있는 모양이고.
"자, 일단 들어와. 검진을 해보자."
"옛!"
조심스레 아스날의 뒤를 따라서 방안으로 들어가보니, 전체적으로 하얀색이였고 이상한 기계들과 침대가 있는게, 마치 병원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미래식 병원이겠지만.
역시 금발미녀는 "베이 세쉬" 대위인가 보다.
기억에 문제가 있나, 지금 생각나다니.
"그럼 그쪽에 누워."
손가락으로 이상한 기계속을 가르킨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저기 세쉬 대위님.
그러자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날 돌아본다.
"세쉬 대위님이라니 레이군, 틀렸잖아. 그냥 세쉬 누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나는 또다시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을 정정한다.
세쉬 누님, 여기에 누워야 하나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두 사람이 크게 놀랐다.
나는 그 반응에 오히려 놀라서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뭐지?
"처,처음이야. 정말로 세쉬 누님이라고 할줄은 몰랐네?"
"평소에도 이상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한 것 같네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냥 나를 놀린 것 같았다.
제길 당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야돼, 알았지 레이군?"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면서 재빨리 기계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아스날의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두고보자 아스날 소위.
"그럼 시작한다, 레이군."
기계가 닫혔고 뭔가 이상한 빛들이 내 몸 구석구석을 비추기 시작했다.
이것도 MRI같은건가?
그렇게 2분뒤쯤 기계가 열렸고, 나는 그 기계를 나왔다.
금방 끝나네.
"좋아, 다음은 아스날 소위 차례야."
세쉬가 어떤 기계의 입력판을 잠시 두들기더니, 기계 속에서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아마 소독하는 모양이다.
연기가 가시자 아스날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아, 레이군은 가지말고 잠깐 기다려줘."
갈생각도 없는 나였기에 순순히 한쪽에 있는 침대에 걸터 앉았다.
그러자 세쉬가 손에 어떤 투명한 플라스틱판 같은 것을 들고 다가온다.
그리고 내 옆에 살포시 앉으면서 그 플라스틱판을 내 앞에 두고 손가락을 콕 눌렀다.
놀랍게도 플라스틱판이 빛을 내면서 어떤 글들과 도표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미래의 테크놀로지인가!
나는 신기한 기분으로 그것을 감상했다.
"이건 어제 기록되었던 실제 전투에서 나온 레이군의 몸 상태야. 자, 이걸 봐봐."
그녀가 한쪽의 그래프를 가리켰고 나는 그쪽을 보았다.
그 그래프는 전부 거의 끝에 위치해 있었는데, 하나만 거의 바닥을 기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게 뭘 뜻하는거지?
밑의 글자를 바라보니, 왼쪽부터 근력, 지구력, 동체시력, 반사속도, 지각속도, 연산속도, 몰입도라고 되어있었다.
그중 몰입도만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물었다.
몰입도가 뭔가요?
"... 몰라?"
모르는데 어쩌라구.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면서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녀는 입을 가리고 풋하고 웃었다.
"역시 레이군은 귀엽다니까."
귀여워?
내가?
그런 소리를 성인이 된 뒤에는 처음들어본 나였다.
어려서는 가끔 들어봤지만.
"몰입도는 간담과 얼마나 일체화 했는지 나타내는 거잖아. 한마디로 간담을 제 몸처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 상황에 얼마나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게 바로 몰입도야."
왜 로봇을 자기 몸처럼 소중히 여겨야 하는거지?
몰입도가 왜 필요한건지 모르겠네.
나의 말에 그녀는 인상을 구기고 나의 옆구리를 팍하고 찔렀다.
억!
"레이군이 그러니까 몰입도가 안높지! 몰입도가 간담을 컨트롤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데! 네가 이러면 점점 몰입도는 낮아진다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머리 벗겨지겠네 몇번이나 머리를 긁는거야.
나는 머리 긁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간담은 잘 조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녀가 너무 나에게 밀착해 있어서 그녀 코와 나의 코가 닿을 정도에서 말하니 그녀가 얼굴을 살짝 붉힌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서 대답한다.
"무,물론 레이군의 실력이야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몰입도만 더 높이면 좋겠다 이거지."
"지금 둘이 뭐 하는거에요?"
고개를 돌리니, 검사가 다 끝났는지 기계에서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는 아스날 소위였다.
뭐하냐니, 그냥 대화를...
어라, 내 손이 언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거지?
몸은 언제 이렇게 붙어있던거야?
이건 꼭 내가 세쉬 대위를...
"저번 전투에서 나온 레이 중위의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었을뿐이야."
세쉬 대위는 나의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면서 오히려 나의 목에 팔을 둘러온다.
"그러는 도중에 조금 친밀해진 것뿐이고, 그것에 관해서 소위가 신경쓸일은 없다고 보는데?"
아스날에게 보란듯이 오히려 나에게 더욱 밀착해온다.
가슴이 팔에 닿아서 기분 좋은 감촉을 선사해준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곤, 아스날은 한번 코웃음을 치고 기계에서 나와서 밖으로 나갔다.
"그렇죠, 저야 상관없으니 잘들 해 보세요.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아스날이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쿡쿡하고 웃으며 나에게 두른 팔을 풀었다.
"쿡, 정말 레이 중위와 아스날 소위는 귀엽다니까."
그냥 놀린것 뿐이였나?
쳇, 나는 벌써 준비 오케인데 말이지.
나는 벌써 부풀어있는 성기를 애써 진정시켰다.
"자, 레이군도 나가봐."
그녀에게 등을 떠밀리면서 나는 뭔가 당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이거.
그렇게 밖으로 쫓겨나고 그 방의 문이 닫혔다.
밖에는 의외로 아스날이 가지않고 서 있었다.
"더 즐기고 나오시지요, 중위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오토핸드벨트를 잡고 휘익 사라진다.
... 뭐야 이건.
아무래도 여기 적응하려면 조금더 걸릴듯 싶다.
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면서 아스날이 간 방향과 반대로 향했다.
탐험이다.
이 함선이 생각보다 큰 모양인지, 방을 스무개는 넘게 지나서야 겨우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끝은 이 함선을 조종하는 조종실.
나는 벽에 붙어있는 파란빛을 내고 있는 네모난 곳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일자로 빛이 뿜어지더니 나의 손바닥을 훑었다.
스캔하는 중이다.
이내 삐빅하는 소리와 함게 문이 3개로 갈라지면서 착착 접혔다.
오, 카메라같아.
조종실 안쪽을 보니 굉장한 장관이다.
여러개의 모니터와, 공중에 떠있는 플라스틱 입력판들, 그리고 내가 알 수 없는 계산공식과 기호들.
마지막으로 전면에 펼쳐진 광대한 우주.
그 아름다운 장면에 나는 넋을 잃었다.
"아문로 중위, 여긴 어쩐일이지요?"
나의 감상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굉장히 감미로운 미성이라서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돌아보자, 그곳에는 진짜 황금색의 곱슬머리를 가진 파란눈의 여인이 서있었다.
이야, 이게 바로 진짜 미인이지.
그녀는 내가 본 여인들중 2번째로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옷또한 여러 장식들과 훈장들로 삐까번적하게 장식되어 있어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보여 주었다.
분명 그녀는 체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름이였던 것 같은데.
내가 우물쭈물 말을 못하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쉰다.
"체라츠토프 로우 에우파히 레흐시나로프. 그새 까먹은건가요?"
인간적으로 너무 심하잖아 그런 이름이라니.
"후우... 짧게는 체라츠 R.A 레흐시나로프라 부른다고도 했을텐데요."
미안합니다, 체라츠 중위.
"... 누가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했었나요?"
눈을 약간 치켜뜬 모양이 조금 화난 모양이다.
나는 얼른 말을 고쳤다.
미안합니다, 레흐시나로프 중위.
"사과를 받아주도록 하죠. 근데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신건가요?"
그대를 보고싶어서... 라고 하기에는 아직 그녀를 너무 모른다.
나는 뭐라고 할까 생각했다.
"어라, 레이 중위 아닌가? 여긴 어쩐일이지?"
내가 함장이다라고 스타일로 표현하고 있는 분이 바로 거기 계셨다.
이름이 아마 마리아 였던가?
그녀의 얼굴을 보니 갑작스럽게 핑계거리가 생각난다.
사실은 오늘 저에게 특별한 임무가 있나 없나 묻고자해서 찾아왔습니다, 함장님.
"응? 그런건 굳이 직접 오지 않아도..."
나는 얼른 그녀의 말를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별일이 없다면 "간담"을 시험 착승해도 될까해서요.
나의 말에 마리아 함장과 체라츠 중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갑작스럽게 왜 그러는거지?"
나는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제 전투중에 잠시 "간담"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저의 단순한 착각인지, 아니면 진짜 뭔가 "이상"을 느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함장님.
"중위, "간담"은 그런 가벼운 이유로 출격시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단순히 중위의 느낌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니까. 간담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비싼 무기다, 중위."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엄하게 나를 질책한다.
음, "간담"을 타고 연습해 봐야하는데 어쩐다...
사실 핑계거리로 아무거나 줏어 뱉은것 뿐이지만 생각해보니, 연습을 해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든다.
아무것도 모르고 확 전투가 일어나면, 큰일 아닌가.
괜히 더 걱정이 드는 나였다.
"... 함장님, 승인해 주시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체라츠 중위가 갑작스럽게 내 편을 들고 나섰다.
음, 이 아가씨도 나에게 호감을?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간담의 조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릅니다. 만일 간담의 조종에 문제가 생긴다면, 전략을 세우는데 차질이 생기겠지요. 게다가 지금 저희에게는 간담이 3대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문로 중위는 저희 파일럿을 이끄는 편대장입니다. 만일 그의 조종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일반 파일럿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전 전략참모로서 그의 의견이 타당하다 생각합니다."
그런게 아니였군.
"하지만, 지금 그것을 발견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지 않겠나?"
함장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젖는다.
"먼저 아는것하고 나중에 아는것은 전투의 승패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요. 당연히 먼저 아는게 더 이롭습니다."
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수긍을 한다.
"알겠네, 아문로 중위. 한시간 후에 출격하겠네, 삼십분 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도록. 그리고 하는김에 다른 파일럿들도 함께 출격하도록."
옛!
나는 거수경례를 취하면서 우렁차게 외쳤다.
신난다!
내가 전투로봇을 타보게 되는구나.
오, 이게 내 방인가?
딱딱한 침대와 불편한 베게, 거친 담요등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지만 왠지 가슴이 설레어온다.
이게 바로 우주 함대식 침실이란 말이지?
나는 방을 자세하게 둘러보았다.
벽은 금속 재질인데 처음보는 금속이였다.
매끈매끈.
손가락을 구부려서 두들겨 봤더니, 딱딱하는 소리가 난다.
꽤나 두꺼운 판으로 이루어진듯하다.
가구들도 꽤나 색다른 모양이다.
불은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모르지만 방안을 은은히 밝히고 있었고, 가구들도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갈한 분위기에서 왠지모를 우아함까지?
내가 그렇게 미래의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는 사이에, 삐익하면서 나의 방문이 옆으로 스르륵 열렸다.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빛.
아 눈부셔.
"이봐요, 일어날 시간이... 어라? 일어나 있었잖아?"
바깥쪽이 너무 환해서 잠시동안 머리가 아플정도의 빛이 내 망막을 자극했다.
"일어나 있었으면 불이라도 켜놀것이지 생긴것 답게 음침하기는."
사람의 실루엣이 불빛을 등시고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게 여인인듯하다.
하긴 여인일 수밖에는 없겠지.
나말고 사내가 있을리가 없으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차분히 살폈다.
빛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그림자가 점점 지워지고 본 모습이 드러난다.
키는 대략 165cm정도 될까?
머리는 어깨까지 겨우오는 짧은 단발이였고, 외모는 굉장히 귀엽지만 눈이 크고 눈썹이 치겨올라가서 말괄량이 같이 보인다.
마네킹일때는 잘 몰랐지만 역시나 굉장히 예쁜 얼굴이다.
딱 이상적인 소꿉친구의 외향이다.
좋아좋아.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거에요! 빨리 나오지 못합니까?!"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방문을 나섰다.
방을 나서자 마자 붕 뜨는 나의 몸.
와... 이게 무중력이라는건가?
다리가 편안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너무 풀어지는 느낌이 왠지 싫다.
"가죠."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벽에 있는 손잡이를 붙잡았다.
에스칼레이터의 손잡이 같이 생긴것이 위잉하고 움직인다.
위를 잡으면 왼쪽으로 가는것 같다.
그녀를 따라서 나도 위쪽 손잡이를 잡는다.
손이 휙 움직이고 나의 몸이 따라서 딸려간다.
오오 이거 잼있잖아?
"멈춰 바보!"
"자동운동손잡이", 즉 "오토핸드레일"이 신기해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나는 멈춰있는 그녀와 충돌하고 말았다.
퉁!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와 함께 공중을 3바퀴정도를 구르게 되었다.
가슴이 조금 아프지만 공중에서 빙글빙글도는 느낌이 꽤나 재미있었다.
"아야! 멍청아!"
누가 멍청이야!
나는 발끈해서 외쳤다.
"누구긴 누구야! 바로..."
"아스날 소위! 그이상은 하극상이다."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열리더니 순간 눈이 환해질 정도의 금발 거유미인이 등장했다.
이게 문인가 보다.
그냥 벽에 몇개의 버튼이 옆에 붙어 있어서 못찾고 휙 지나칠 정도였다.
이거 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못찾을지도?
"지크!"
아스날이 갑작스럽게 거수경례를 했다.
나도 얼떨결에 같이 거수경례를 한다.
뭐야, 나에게는 저런거 안했잖아!
"지크. 레이군, 오늘은 조금 늦었네."
거유미인이 손을 내리자 나도 같이 손을 내렸다.
그런데 레이 중위가 누구지?
나는 고개를 휘휘 돌려보았지만 이곳에 있는건 아스날 소위와 금발 거유미인뿐.
설마 레이라는게 내 이름인가?
"아문로 중위께선 취침중이셨습니다."
아스날 소위를 보니, 나를 향해 혀를 내밀고 있었다.
뭐야, 고자질한거야?
뭐 그건 그렇다치고 설마 내 이름이 "아문로 레이"는 아니겠지?
그건 "기동전사 간담"의 주인공 이름이잖아.
"어제의 전투가 많이 피곤했나보네, 하긴 레이군이 파괴한 적기가 무려 3대가 넘었으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연이에요, 우연. 이런 얼치기가 무슨."
"소위!"
아무래도 저 아스날 소위는 나에게 쌓인게 많나보다.
그리고 반대로 거유미인은 나에게 약간 호감이 있는 모양이고.
"자, 일단 들어와. 검진을 해보자."
"옛!"
조심스레 아스날의 뒤를 따라서 방안으로 들어가보니, 전체적으로 하얀색이였고 이상한 기계들과 침대가 있는게, 마치 병원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미래식 병원이겠지만.
역시 금발미녀는 "베이 세쉬" 대위인가 보다.
기억에 문제가 있나, 지금 생각나다니.
"그럼 그쪽에 누워."
손가락으로 이상한 기계속을 가르킨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저기 세쉬 대위님.
그러자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날 돌아본다.
"세쉬 대위님이라니 레이군, 틀렸잖아. 그냥 세쉬 누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나는 또다시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을 정정한다.
세쉬 누님, 여기에 누워야 하나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두 사람이 크게 놀랐다.
나는 그 반응에 오히려 놀라서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뭐지?
"처,처음이야. 정말로 세쉬 누님이라고 할줄은 몰랐네?"
"평소에도 이상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한 것 같네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냥 나를 놀린 것 같았다.
제길 당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야돼, 알았지 레이군?"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면서 재빨리 기계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아스날의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두고보자 아스날 소위.
"그럼 시작한다, 레이군."
기계가 닫혔고 뭔가 이상한 빛들이 내 몸 구석구석을 비추기 시작했다.
이것도 MRI같은건가?
그렇게 2분뒤쯤 기계가 열렸고, 나는 그 기계를 나왔다.
금방 끝나네.
"좋아, 다음은 아스날 소위 차례야."
세쉬가 어떤 기계의 입력판을 잠시 두들기더니, 기계 속에서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아마 소독하는 모양이다.
연기가 가시자 아스날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아, 레이군은 가지말고 잠깐 기다려줘."
갈생각도 없는 나였기에 순순히 한쪽에 있는 침대에 걸터 앉았다.
그러자 세쉬가 손에 어떤 투명한 플라스틱판 같은 것을 들고 다가온다.
그리고 내 옆에 살포시 앉으면서 그 플라스틱판을 내 앞에 두고 손가락을 콕 눌렀다.
놀랍게도 플라스틱판이 빛을 내면서 어떤 글들과 도표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미래의 테크놀로지인가!
나는 신기한 기분으로 그것을 감상했다.
"이건 어제 기록되었던 실제 전투에서 나온 레이군의 몸 상태야. 자, 이걸 봐봐."
그녀가 한쪽의 그래프를 가리켰고 나는 그쪽을 보았다.
그 그래프는 전부 거의 끝에 위치해 있었는데, 하나만 거의 바닥을 기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게 뭘 뜻하는거지?
밑의 글자를 바라보니, 왼쪽부터 근력, 지구력, 동체시력, 반사속도, 지각속도, 연산속도, 몰입도라고 되어있었다.
그중 몰입도만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물었다.
몰입도가 뭔가요?
"... 몰라?"
모르는데 어쩌라구.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면서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녀는 입을 가리고 풋하고 웃었다.
"역시 레이군은 귀엽다니까."
귀여워?
내가?
그런 소리를 성인이 된 뒤에는 처음들어본 나였다.
어려서는 가끔 들어봤지만.
"몰입도는 간담과 얼마나 일체화 했는지 나타내는 거잖아. 한마디로 간담을 제 몸처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 상황에 얼마나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게 바로 몰입도야."
왜 로봇을 자기 몸처럼 소중히 여겨야 하는거지?
몰입도가 왜 필요한건지 모르겠네.
나의 말에 그녀는 인상을 구기고 나의 옆구리를 팍하고 찔렀다.
억!
"레이군이 그러니까 몰입도가 안높지! 몰입도가 간담을 컨트롤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데! 네가 이러면 점점 몰입도는 낮아진다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머리 벗겨지겠네 몇번이나 머리를 긁는거야.
나는 머리 긁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간담은 잘 조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녀가 너무 나에게 밀착해 있어서 그녀 코와 나의 코가 닿을 정도에서 말하니 그녀가 얼굴을 살짝 붉힌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서 대답한다.
"무,물론 레이군의 실력이야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몰입도만 더 높이면 좋겠다 이거지."
"지금 둘이 뭐 하는거에요?"
고개를 돌리니, 검사가 다 끝났는지 기계에서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는 아스날 소위였다.
뭐하냐니, 그냥 대화를...
어라, 내 손이 언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거지?
몸은 언제 이렇게 붙어있던거야?
이건 꼭 내가 세쉬 대위를...
"저번 전투에서 나온 레이 중위의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었을뿐이야."
세쉬 대위는 나의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면서 오히려 나의 목에 팔을 둘러온다.
"그러는 도중에 조금 친밀해진 것뿐이고, 그것에 관해서 소위가 신경쓸일은 없다고 보는데?"
아스날에게 보란듯이 오히려 나에게 더욱 밀착해온다.
가슴이 팔에 닿아서 기분 좋은 감촉을 선사해준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곤, 아스날은 한번 코웃음을 치고 기계에서 나와서 밖으로 나갔다.
"그렇죠, 저야 상관없으니 잘들 해 보세요.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아스날이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쿡쿡하고 웃으며 나에게 두른 팔을 풀었다.
"쿡, 정말 레이 중위와 아스날 소위는 귀엽다니까."
그냥 놀린것 뿐이였나?
쳇, 나는 벌써 준비 오케인데 말이지.
나는 벌써 부풀어있는 성기를 애써 진정시켰다.
"자, 레이군도 나가봐."
그녀에게 등을 떠밀리면서 나는 뭔가 당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이거.
그렇게 밖으로 쫓겨나고 그 방의 문이 닫혔다.
밖에는 의외로 아스날이 가지않고 서 있었다.
"더 즐기고 나오시지요, 중위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오토핸드벨트를 잡고 휘익 사라진다.
... 뭐야 이건.
아무래도 여기 적응하려면 조금더 걸릴듯 싶다.
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면서 아스날이 간 방향과 반대로 향했다.
탐험이다.
이 함선이 생각보다 큰 모양인지, 방을 스무개는 넘게 지나서야 겨우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끝은 이 함선을 조종하는 조종실.
나는 벽에 붙어있는 파란빛을 내고 있는 네모난 곳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일자로 빛이 뿜어지더니 나의 손바닥을 훑었다.
스캔하는 중이다.
이내 삐빅하는 소리와 함게 문이 3개로 갈라지면서 착착 접혔다.
오, 카메라같아.
조종실 안쪽을 보니 굉장한 장관이다.
여러개의 모니터와, 공중에 떠있는 플라스틱 입력판들, 그리고 내가 알 수 없는 계산공식과 기호들.
마지막으로 전면에 펼쳐진 광대한 우주.
그 아름다운 장면에 나는 넋을 잃었다.
"아문로 중위, 여긴 어쩐일이지요?"
나의 감상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굉장히 감미로운 미성이라서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돌아보자, 그곳에는 진짜 황금색의 곱슬머리를 가진 파란눈의 여인이 서있었다.
이야, 이게 바로 진짜 미인이지.
그녀는 내가 본 여인들중 2번째로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옷또한 여러 장식들과 훈장들로 삐까번적하게 장식되어 있어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보여 주었다.
분명 그녀는 체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름이였던 것 같은데.
내가 우물쭈물 말을 못하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쉰다.
"체라츠토프 로우 에우파히 레흐시나로프. 그새 까먹은건가요?"
인간적으로 너무 심하잖아 그런 이름이라니.
"후우... 짧게는 체라츠 R.A 레흐시나로프라 부른다고도 했을텐데요."
미안합니다, 체라츠 중위.
"... 누가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했었나요?"
눈을 약간 치켜뜬 모양이 조금 화난 모양이다.
나는 얼른 말을 고쳤다.
미안합니다, 레흐시나로프 중위.
"사과를 받아주도록 하죠. 근데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신건가요?"
그대를 보고싶어서... 라고 하기에는 아직 그녀를 너무 모른다.
나는 뭐라고 할까 생각했다.
"어라, 레이 중위 아닌가? 여긴 어쩐일이지?"
내가 함장이다라고 스타일로 표현하고 있는 분이 바로 거기 계셨다.
이름이 아마 마리아 였던가?
그녀의 얼굴을 보니 갑작스럽게 핑계거리가 생각난다.
사실은 오늘 저에게 특별한 임무가 있나 없나 묻고자해서 찾아왔습니다, 함장님.
"응? 그런건 굳이 직접 오지 않아도..."
나는 얼른 그녀의 말를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별일이 없다면 "간담"을 시험 착승해도 될까해서요.
나의 말에 마리아 함장과 체라츠 중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갑작스럽게 왜 그러는거지?"
나는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제 전투중에 잠시 "간담"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저의 단순한 착각인지, 아니면 진짜 뭔가 "이상"을 느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함장님.
"중위, "간담"은 그런 가벼운 이유로 출격시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단순히 중위의 느낌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니까. 간담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비싼 무기다, 중위."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엄하게 나를 질책한다.
음, "간담"을 타고 연습해 봐야하는데 어쩐다...
사실 핑계거리로 아무거나 줏어 뱉은것 뿐이지만 생각해보니, 연습을 해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든다.
아무것도 모르고 확 전투가 일어나면, 큰일 아닌가.
괜히 더 걱정이 드는 나였다.
"... 함장님, 승인해 주시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체라츠 중위가 갑작스럽게 내 편을 들고 나섰다.
음, 이 아가씨도 나에게 호감을?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간담의 조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릅니다. 만일 간담의 조종에 문제가 생긴다면, 전략을 세우는데 차질이 생기겠지요. 게다가 지금 저희에게는 간담이 3대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문로 중위는 저희 파일럿을 이끄는 편대장입니다. 만일 그의 조종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일반 파일럿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전 전략참모로서 그의 의견이 타당하다 생각합니다."
그런게 아니였군.
"하지만, 지금 그것을 발견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지 않겠나?"
함장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젖는다.
"먼저 아는것하고 나중에 아는것은 전투의 승패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요. 당연히 먼저 아는게 더 이롭습니다."
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수긍을 한다.
"알겠네, 아문로 중위. 한시간 후에 출격하겠네, 삼십분 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도록. 그리고 하는김에 다른 파일럿들도 함께 출격하도록."
옛!
나는 거수경례를 취하면서 우렁차게 외쳤다.
신난다!
내가 전투로봇을 타보게 되는구나.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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