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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41 386회 0건
일행은 천천히 세리븐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의 입구에서 경비병들이 검문을 위해서 막아섰지만, 그레이가 후렌테르크 영주의 임무를 수행중이라는 증표를 보여주자 바로 물러났다.


여관을 잡고 길을 나선 일행은 그레이를 따라 약초가게를 찾았다.

딸랑딸랑-

그레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문에서 작은 종소리가 울려 방문자를 알렸다.
희끗희끗한 흰머리의 노인이 천천히 걸어나와 일행을 환하게 맞이하였다.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노인이 일행의 오래되고 단단한 차림새를 알아본 것이었다.
세리븐 마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흔하고 싼 약초를 사고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런 장거리 여행자들은 귀한 약초를 들고 오기도 하고 대량으로 사가기도 하기에 귀중한 고객이었다.

"어서 오시구려."

그레이는 상인의 인사말에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이내 일행을 돌아보았다.
상점 안의 물건들을 무심하게 쳐다보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히리네는 이리아스 근처를 맴돌면서도 호기심이 나는 듯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다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골라. 히리네도 필요한 약초가 있으면 골라봐."

그레이의 말에 이내 히리네는 상점에 널려져 있는 약초들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예린이나 이리아스도 기본적인 약초를 채집하고 사용하지만 모두 자신의 생활환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 위주이었다. 숲과 산맥에서 살기에 그 안에서 나는 약초를 이용할 뿐이었다.

예린과 이리아스가 아는 약초는 대부분 숲에서 나는 것들이고 그런 것이라면 이 약초가게에 있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보다는 훨씬 질이 안 좋은 것들이었기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치유사로서 배움이 있는 히리네의 경우는 달랐다. 예린과 이리아스는 숲에서는 나는 약초만 알아보고 사용법을 알지만, 히리네는 바닷가나 해초류, 사막 같은 건조한 곳처럼 기후와 풍토가 다른 곳에서 나는 약초도 알아보고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약초는 인간 마을에서는 흔하지만 엘프마을에서는 흔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리아스가 못 알아보고 무심히 넘어가는 약초를 히리네는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것이었다.

그레이는 금방 열중해서 약초를 살피는 모습에 잠깐 미소를 띠우고는 노인에게 다가섰다.

"약초를 팔고 싶습니다만,"

"그래요, 좋습니다. 어디 한번 봅시다."

그레이가 작은 배낭에서 약초가방을 꺼내어 주섬주섬 약초를 꺼내 보내주었다.
대부분이 엘프 마을 근처에서 채집한 것들이었다. 엘프 마을은 풍성한 생명의 기운이 있는 곳에 세워지기에 같은 종의 약초라도 품질이 월등히 좋았다.

"오, 대단한 여행자이신가 보구려. 멀리까지 여행하셨나 봅니다. 모두 깊고 풍성한 곳에서 자란 것들이군요."

"안목이 있으시군요. 그런 분이시라면 제대로 가격을 쳐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허허 염려하지마세요. 좋은 물건에는 좋은 가격을 치릅니다."

노인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레이는 가격 흥정을 하면서 떠도는 소문들을 묻기 시작하였다.

"요즘 조심해야 할 지역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저희는 산맥 깊숙이 사냥하러 다니는 편이라,"

" 호로이 지역에 리자드맨들이 흉포해졌다는 소문이 떠돌더니 요즘은 좀 잠잠한 듯합니다."
"그리고 리우 지역에 가실 거면 독감약이랑 항생제를 충분히 챙기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관리들이야 쉬쉬하지만, 질병이 펴진다는 소문이 있어요. 아예 그쪽으로 지나갈 일이 있으시면 돌아가시는 것이 더 좋겠지요."

약초가게나 여관, 무기를 수리해주는 대장간에서는 이러한 정보 교환이 당연한 듯이 이루어졌다. 여행자들이야 어디에 어떤 몬스터가 많아졌다는 소문 하나하나가 목숨과 수입에 연관되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 가게 주인들도 여행자들에게 이러한 정보를 주면 거래를 좋게 성사할 수 있기에 웃으면서 정보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흥정을 하던 그레이는 의아함을 느꼈다.

"이거 가격을 너무 높게 쳐주시는 것 같은데요?"

외상 치료에 쓰이는 약재의 가격을 다른 때보다 훨씬 높이 불렀기 때문이었다.

"아, 요즘 외상에 관련된 약이 비싸졌습니다. 오랫동안 산에 계셨다고 하셨죠? 그럼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후렌테르크 영지 근처에는 가지 마세요."

"네?"

그레이는 놀라 반문했다. 자신의 집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후렌테르크와 가르린 사이에서 전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약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읍니다."
"더우이 얼마나 흉흉한 지 살아서 빠져나온 난민도 얼마 안 된다는 소문이지요."

"으흠,"

나올 때만 해도 후렌테르크가 군사력이 강하긴 하였지만 가르린을 침략할 정도로 적극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레이이었다. 더우기 그 영주나 영주 아들에게서 직접 임무를 맡아서 수행한 적이 있기에 분위기는 파악하고 있었다.
내실을 다지는 분위기이었지 침략을 준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쟁 나기 전만 해도 가르린이 후렌테르크에 던비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이라고 이야기들 하더니만, 가르린 군대가 침략하자 금세 성마저 빼앗기고 ?겨나갔다고 합니다."

"네? 가르린 군대가 후렌테르크를 쳤다고요?"

믿을 수 없는 그레이이었다. 그레이가 직접 두 영지 내에서 사냥을 해보았기에 군사력은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지휘관의 능력, 군사 수, 경제력 모두 후렌테르크가 우월하다는 것이 그레이의 생각이었고 다른 이들의 평가도 비슷하였다.

"빠져나온 사람들도 별로 없다고 하셨습니까?"

노인이 고개가 끄덕이는 모습에 그레이는 시선을 이리아스에게 향했다.

"군사력이 약한 쪽에서 강한 쪽으로의 선공... 빠져나온 난민들이 적다는 것...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이야기"
"어쩌면 우리가 찾는 것이 있을 수도 ..."

이리아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레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후렌테르크, 사냥꾼으로 떠돌기만 하던 자신이 겨우 정착한 곳이었다.

"시엘, 유리안느"

늑대에게서 구해준 인연으로 억지스럽게 자신에게 안겼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마음마저 준 하녀 시엘, 아니 마법사를 따라 떠났으니 지금쯤은 마법사가 되어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작디 작은 몸으로 홀로 일어서려고 하던 유리안느,
촉촉한 느낌으로 모래에 물이 쓰며들 듯이 자신을 받아드리고, 귀족이지만 자신의 품안에서 흐느끼던 모습이 애처로웠던 소녀...

"제발,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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