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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40 353회 0건
"그레이, 어서 오게나."

레오나드가 환한 얼굴로 일행을 맞이하였다. 그동안 고생이 심했는지 갈색으로 그을린 얼굴에 피부는 버석해 보였지만, 그 모습이 굳은 의지를 띄는 눈빛과 합쳐지자 야전 지휘관으로 어울리는 모습으로 되었다.

이미 그레이는 레오나드에게 그저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었다. 그가 가져다준 정보와 몇몇 물품은 절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특히 마법적인 자료와 물품들은 영지로 메리엘 학파 마법사들을 데리고 와 협조를 얻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그레이와 의뢰를 하면서 그가 의뢰를 수행하면서 얻은 정보는 고용자에게 제공하고 습득한 물품은 그레이와 나눈다고 약속을 했었기에 이제는 재산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레이가 가지고 와서 지금은 마법사들에게 제공된 마법 도구만해도 영지에서 그레이에게 지급해야 될 대금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레오나드로서도 영지가 그 대금을 지급해야 되는 상황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성을 빼앗긴 상태, 당연히 지급이 힘들었다.
성을 다시 탈환해야 제대로 지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성의 탈환하는 것이 그레이에게도 자신의 재산을 되찾는 것이기에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인이라는 면에서도 마찬가지이었다. 전투를 앞둔 상황이라 한 사람의 무력이라도 아쉬운 판이었다. 그레이가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레오나드는 그레이에게 그동안 어떤 기연이 있었는 지 모르겠지만 무인으로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음이 느꼈다. 그와 함께 돌아온 일행 중에는 레오나드도 본 적이 있었던 오우거를 제압했던 엘프도 끼어 있었다. 그 둘만 해도 엄청난 전력이었다.

기사단과 기사단의 정면 승부라면 사실 그레이나 그 엘프가 전술상에 중요도가 적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조사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이번 전쟁은 군사력과 군사력의 정면충돌이 아니었다.
가르린측의 이마에 박아넣는 결정과 흑마법사, 그리고 후렌테르크 측에서는 메리엘 학파의 마법사.
이 변수가 있는 이상 일반적인 싸움과 달라질 것이다.

현재 분석한 결과로는 이마에 결정을 박아넣은 기사의 힘은 2배정도이었다. 전략과 전술이라면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다가 흑마법사가 강화마법을 시행하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넘었다.

기사단과 기사단끼리만 붙으면 후렌테르크가 유리하지만, 흑마법사가 붙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이전처럼 필패일 수밖에 없었다.
이쪽에 메리엘학파의 마법사들이 붙는다고 해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일 그레이의 일행이 상대 흑마법사을 제거해준다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아니 제거를 못 하더라도 기사단과 기사단이 맞붙을 때 흑마법사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잡고만 있더라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레오나드는 다시 한번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다른 일행들은 쉴 장소를 마련해주라는 지시를 부하들에게 내린 후 영주 로그너, 기사단의 지휘관과 메리엘 학파의 마법사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곳으로 그레이와 이리아스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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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와 이리아스가 긴 회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일행은 숙소의 거실에 모여 앉아 장비를 정비하고 있었다.
히리네는 한쪽 공간에 자신의 가방을 풀고 약초를 정리하고 있었고, 소녀의 모습을 한 몽령은 품 안의 아기를 안고 토닥거리고 있었다.
몽령은 여행 중에도 그레이와 같이 결정을 용해하거나 어둠의 힘을 수련할 때가 아니면 소녀의 모습으로 인간의 아기와 유사한 모습을 한 나기니를 안고 키웠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 기어다닐 정도로 자란 나기니 역시 몽령이랑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단검과 장비를 점검을 하던 예린이 고개를 들었다.
회의에서 후렌테르크 영지에서 얻은 정보를 듣고 왔을 테니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예린의 두 눈에서 불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예린이 기대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때?"

"리자드맨 마을의 일과 어쩌면 연관이 있을 것도 같아요."
"하지만, 묘인족이나 엘프에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어요."

이리아스의 답변에 기운이 빠지는 듯 예린이 온몸을 소파에 기대어더니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두 눈을 감은 예린은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레이의 손길을 느꼈다.

똑똑똑-

조용한 노크소리가 예린의 상념을 깨트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의 바른 깨끗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들어오세요."

이리아스의 대답에 문이 열렸다.
윤기가 넘치는 검은 머리의 여인이 천천히 걸어들어오더니 물기가 어린 눈으로 한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레이님... 돌아오셨군요."

"시엘"

시엘은 그레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대로 달려나가 그레이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는 하녀의 옷이 아닌 고급스러운 재질의 마법사의 로브를 걸친 시엘이었다. 이제는 마법사로서 의엿하게 자신의 위치를 굳혔고 이번 전쟁에 도움을 주려고 스승과 함께 온 것이었다.
시엘은 하녀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마법사가 되면서 세상일에 자신이 생겼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여유가 생겼다. 하녀인 신분이었다면 아무리 반가워도 그레이의 품속에 바로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레이가 떠나기 전에 이미 연인 사이라고 소문이 나서 모두가 알고 있더라도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가움만으로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시엘의 가장 중요한 사람인 유리안느가 납치를 당했고 그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이루던 시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의지가 되는 그레이를 만나자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

"유리안느님이... 유리안느님이..."

그레이가 어깨를 움츠리며 떠는 시엘의 등을 천천히 껴안아 위로하기 시작했다.

"들었어."
"하지만 걱정하지마. 구해낼 테니까."

그레이의 말에 시엘의 표정이 눈에 띄게 편해졌다.
하지만 거실의 분위기는 결코 편안하지 못했다.

"으흠"

이리아스가 들리는 듯 마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흥"

예린이 기묘한 표정을 지으면 그레이와 시엘을 쳐다보았다.

"아,"

시선에 가시가 있음을 느낀 시엘은 어색함에 그레이의 품 안에서 벗어났다.
그 때야 방안을 살폈다. 이종족의 아름다움에 놀라는 것도 잠깐이었다.
기묘한 파티의 구성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중에 남자는 그레이 혼자?"

거기에다가 이미 두 명의 이종족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은 질투이었다.
시엘의 시선이 그레이를 향하자 그레이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휴..."

시엘의 입에서도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이인족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모시는 유리안느가 그레이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내심 유리안느가 본부인이 되면 자신이 첩이 되어 함께 안기는 미래를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기간동안 경쟁자가 늘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미모의 이종족이라니...

시엘의 두 눈이 커졌다.

"저, 저 아기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몽령의 품에 안긴 나기니를 본 것이었다. 인간의 아기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마법사가 된 시엘의 감각에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엘은 이리아스와 아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레이를 쳐다보았다.
시엘은 눈빛으로 이리아스를 가리키며 그레이에게 물었다.

"저분과 그레이님의 아이인거예요?"

대답은 그레이가 아닌 이리아스에게서 튀어나왔다.

"아닙니다. 저도, 그레이도 관련 없습니다."

그 대답을 하는 이리아스의 표정이 미묘했다. 어쩌면 조금 슬퍼 보이기도 하였다.

"아, 죄송합니다.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시엘은 그레이의 아이가 아니라는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일행들에게 사과했다.
하녀를 불러 다과를 가져오게 하고 나가니을 위해서 이유식을 만들어오라고 시켰다.
그리고는 그레이 일행들과 이때까지의 일과 앞으로 계획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레이가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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