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시리즈 5부작 용안족(眼族)-
제 4 부 폭풍전야(暴風前夜)
가까스로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 보니 왼쪽 가슴이 뜨끔하게 저려왔다. 약간의 내상이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희연이가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 더 큰 걱정이었다. 모텔에서 잠에 빠져 있을 홍철이를 뒤돌아 볼 겨를도 없어 보였다. 나는 다급했다. 마계전령의 영력은 생각보다 막강한 것이 실감되고 보니, 무엇부터 찬찬히 따져보고 들어가야 할 지가 막막한 것이 사실 이었다. 령을 잡아챈 것도 아니고, 실제의 육신을 그 정도의 높이로 채어 간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내공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령은 나의 추격을 막기 위해 선방으로 파상장풍(波狀掌風)을 날린 직후라, 몸을 날려 사람을 붙들어 올릴 만큼의 공력이 채워지기에 너무나 짧은 순간 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왠간히 방비를 해서는 마계의 중앙을 치러 들어가기도 전에 문지기에게 조차 박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몸을 추스리자는 의미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도장으로 향했다. 한밤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어디인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간 희연이를 찾기 위해서는 이 밤을 그렇게 허비할 수 만은 없었다. 축시(畜時)를 넘기기 전에 나는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마계의 무간마청(無間魔廳)을 넘어야 한다. 대개 구천지령(九天之靈 : 마계의 도움으로 천도계를 이탈하여 인간계에 상주하는 모든 마귀, 요괴들의 통칭. 인간에게 접신하지 못하고 떠돌 경우에는 스스로의 영력이 소모되므로, 자신의 령을 볼모 삼아 마계에 충성을 맹세하고,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존재를 유지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됨)들 중에서 마계와 인간계를 넘나드는 새벽 3시를 전후해서 마계를 들어가 해가 다시 떨어질 때까지 보호를 받게 되는 그 본당이 바로 무간마청 이다. 이 무간마청을 넘지 않고는 마계의 본거지로 들어갈 수가 없다. 마계는 4초옥(初獄)과 9장릉(莊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옥은 그 위에 합참본부 같은 성격으로 버티고 있으면서 천상계에다 대고서리, 우리에게는 그런 조직이 있지도 않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곳이 바로 마계였다. 왜냐하면 유사시에 자신의 사족처럼 부리면서 사바세계를 자신의 영역으로 이끌려는 지옥의 순수 첨병부대로써 마계는 충실한 헌신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지옥은 천상계로 하여금 범접치 못하도록 비호를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9장릉은 이를 테면 마계의 일반 분류실이고, 4초옥은 마계의 VIP실을 의미했다. 9장릉과 4초옥은 일반령들이 죽은 후에 천상계의 검령(檢靈 : 죽어서 자신의 궤적을 검증 받아 죄값을 치뤄야 할지, 아니면 보다 안락한 곳으로 영전하게 될런지를 판단 받는 과정, 이 과정에서도 사람의 인격처럼 령도 령격이 있고, 권리가 있기에 검령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자의에 의해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짐)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자원 입소하는, 생전에 극악무도 했던 령들을 선별 분류하여 배치하게 되는 곳이 그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전에 악독했을 뿐이지 마계의 훈련과정을 거쳐 사바세계로 당장 내려 갈 수도 없었고, 외부에서 살아있는 육신을 소유한 령이 들어올 경우에는 대적할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그에 반하여, 인간계에서 천상계로 올라오지도 않은 채, 강한 원한과 마성을 지니고, 끊임없이 악행을 일삼는 천도거부령(天道拒否靈 : 49제가 지나도록 천상계로 들려 올려지는 천도령(天道令)을 거부하고 원한을 품어 이미 사바세계에 남아버린 악령이나 원귀를 일컬음) 들은 이 4초옥과 9장릉에 있질 않고, 노숙자처럼 무간마청에서 시간을 떼우든가, 평상시 처럼 빙의된 인간의 몸 속에서 은신하든지, 아니면, 마계본령(魔界本令 : 차후 저질러야 할 악행을 적은 미션자료)을 수령하여 다음 번에 저질러야 할 악행의 스케쥴 체크를 하는 조직폭력배의 행동대 같은 부류가 대부분 이었다. 그래서, 대개 무간마청을 넘는 것이 가장 큰 고비처럼 알려져 왔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아무도 무간마청을 넘질 못했기 때문이었고, 그 안에는 과연 어떤 장애물과 강적이 버티고 있을지 짐작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세상사 처럼 그렇게 령계에도 서로를 끊임없이 저울질 하면서, 살피고, 신경전을 벌이고, 서로의 밸런스가 깨질까 노심초사 하는 것은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것은 서로의 공존을 위한 세력의 균등한 분배라고 여겨지는 일종의 담합 이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지옥계와 천상계는 서로가 자신의 적들 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쪽에서 바라 본 상대의 존재일 뿐이지, 어느 누가 옳으냐 하는 것은 이미 판단이 불가하다는 것이 인간들의 사견이었다. 그 안에서 그 중간에 서 있는 나 같은 제령사는 천상계 쪽에서는 지옥계에서의 우군인 마계처럼 우군에 속했지만 이런 경우처럼 개인적인 의지로 힘의 균형을 건드려야 할 상황이 닥치면 천상계의 우군임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자기 자식이 아닌 것 마냥, 껄끄러운 중간자처럼 은근히 외면하면서 돌아서 버리는 천상계의 야속함도 있어온 것이 사실 이었다. 그에 비해서 마계에 속한 존재들은 나 같은 자유 방임의지를 갖고 있는 축에 속하지 않는 비교적 얌전한 충성을 지옥계 쪽에 맹세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마계의 명령체계 라든가 조직의 탄탄함은 제령사측 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천상계가 자랑하는 유일한 강점은 세상의 처음부터 있어 왔던 인간의 연약한 심사였다. 인간은 언제나 후회하기 마련 이었고, 기본 욕구나 행위에 약한 모습을 보여 왔기에 천상계는 그 면을 철저히 이용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배고픔, 슬픔, 죽음, 늙어감, 병듦 등에 약해지는 인간의 심리를 천상계는 죄로 인한 것이라는 자책감만을 심어주면 마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상계의 아군인 신앙의 지도자들에게 무릎을 꿇었고, 자신의 문명적인 상황을 백이십분 활용하여 악에 대항하는 것이 죄를 짓지 않고, 더 나아가 위에서 열거한 인간의 나약함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욕구와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스스로를 정의 내렸기에 어떻게 보면 무대뽀 정신으로 악행을 교과서처럼 행하는 마계의 수순에 비해서 천상계의 고단수는 더 효과적으로 인간사의 구섞 구섞에 파고들 수 있었다고 본다. 나는 지금 공교롭게도 스스로를 일으켜, 천상계와 지옥계가 이루어 놓은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나서고 있는 것이었다. 도장에 도착하고서 나는 문단속을 한 뒤에 내 방으로 들어가 오래된 상자 하나를 꺼냈다. 흑단목 으로 되어 있는 선릉대사님의 사리함.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열어보라고 하셨고, 나는 그 때가 지금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제령종사셨던 대사님께서 입적하시는 것과 동시에 전국에서는 연락한 바도 없는데, 이제까지 흩어져 있던 다른 제령종사 들께서 속속 사찰로 모이셨었다. 대사님의 사리를 수습하고, 나에게 까지 그 안의 내용을 보지 못하게 하시고, 부적으로 밀봉한 뒤에 남기셨던 그 분들의 한마디는 때가 되면 이것을 열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 뿐이셨다. 그 분들도 영기가 뛰어난 용안족 들을 점지 받아 세상 어느 구석에선가 나 같은 제령사를 키워내고 계신 분들 이셨다. 나는 합장을 한 뒤에 부적을 뜯었다. 매퀘한 먼지가 풀풀 날리면서 나는 상자를 열었다.
‘어?’
나는 대단한 무기나 선약(仙藥) 같은 것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상자를 열어보고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안에는 대사님의 진신사리와 함께 화선지에 곱게 쓴 편지 한 통만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편지를 열어 보았다.
‘무량지애(無量之愛)?’
단 네 글자 뿐이었다. 이게 무신 의미인지? 나는 곰곰히 그 의미를 되씹으면서 준비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너무도 촉박했고, 무간마청에서 그 셀 수도 없는 마령들을 모두 당해낼 수가 있을런지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다른 제령사들을 부른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 사사로운 개인의 일로 이렇게 지옥계와 천상계의 힘의 균형을 뒤흔드는 일에 쉽사리 동참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려니와, 그들 조차도 이런 마계와의 싸움에 휘말려 들기 싫어서 명분을 내세우며, 뒤로 물러설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오직 나 혼자서 풍파를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마계전령은 희연이의 육신을 모처에 감춰 놓은 뒤에 령만을 분리해서 무간마청 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나 같은 제령사 로서 내공을 쌓지않은 일반 생령들이 육신을 벗어나 무간마청이나 허공을 많은 시간 헤매고 다니다 보면, 령의 힘이 급속도로 약해져 그나마 육신과 연결되어 있는 혼줄이 끊어지고, 급기야 사망할 수도 있을 수 있기에 시간은 촌각을 다투고 있었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무간마청을 들어갈 것인가에 대해서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으로 마계의 문을 두드리느냐에 따라, 싸움의 승패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 이었다.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 되었다. 첫째로는 비격촌절괘(飛擊寸切掛) 같은 약진무공으로 생령의 상태, 그대로 진입하는 방법, 둘째로는 나한비장격술(漢秘藏激術) 이라는 무공을 이용해서 온몸이 현재 상태, 그대로 들어가는 법, 마지막으로 나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소환수(召還手 : 제령사의 분신술에 의해서 제령사의 공력을 이용해서 허상이기는 하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뛰어난 공격력과 방어력으로 마령을 제압하는 전사를 일컬음. 공격을 받을 때, 겉으로는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 제령사의 진기와 연결되어 있음으로 해서 죽음에 가까운 내상을 입을 수도 있는 단점이 있음.)를 이용해서 공격해 들어가는 방법, 또 한가지를 들 수 있다면 비격촌절괘나 나한비장격술 중 택일하여 소환수를 동시에 혼용하는 방법 정도가 될 것이었다. 그 각각은 진을 펼치면 다른 공격방법으로 절환 되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으며, 제 시간 내에 희연이를 구하지 못하고, 무간마청에 갇히게 될 경우에, 희연이나 나나 개죽음을 하기는 마찬가지 인 상황이었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시간을 벌려면 비격촌절괘를 써야 하지만 현세계에 내 육신을 놔 둔채, 령만으로 공격해 들어갈 경우에 시간을 멈출 수는 있어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공력의 소진량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성공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한비장격술을 이용해서 진입해 들어가면 비격촌절괘에 비해서 월등한 공력과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반면, 시간에 쫓기게 되기 때문에 한 수라도 공격이 삑사리가 날 경우, 헛점을 타고 적들의 공격이 쏟아져 내려, 자멸할 수도 있었다. 소환수의 경우에도 시간에 쫓기는 것은 마찬가지 였지만 위급한 경우, 목숨만은 건질 수 있다는 방패막이 있는 것은 사실 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 였다. 나는 나의 접전에 배수진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방법은 나한비장격술과 소환수를 같이 쓰는 것 밖에 없었다. 희연이를 살리지 못한다면 목숨을 부지 한들, 무슨 면목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며, 정의를 위해 제령을 한다는 나의 소명이자, 명분이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지 였기에…나한비장격술로 결정되고 나자, 나는 평소에 준비해 두었던 마방철갑(魔防鐵甲)을 입었다. 이것은 옷 안에 껴 입는 방탄복 같은 속내의로써 별다른 것은 없다. 불에도 잘 타고, 찢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령계의 접전에 있어서는 대포알도 막아내는 방어력을 자랑하는 나한무념주술(漢武念呪術)이 부적처럼 옷 위의 사방 빼곡히 신필로 적혀진 옷을 말한다. 신필이란 말은 부적을 적는데 있어서 신묘한 령의 기운을 붓끝으로 옮겨 부적을 적는 것을 말한다. 붓을 내가 들고 있으되, 부적의 내용은 령이 써댄다고나 할까? 나는 가끔 버스나 전철 안에서 깜짝깜짝 놀라고는 하는데, 공부한답시고 책 펴놓고, 자신도 모르듯이 손가락을 이리저리 이동하며 펜을 돌려대는 모습들 때문이었다. 어떤 것은 그렇질 않지만 개중에는 꼭 신이 들려 움직이면서 부적을 쓰는 것 같은 형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은 마방철갑이 가리지 못하는 두 손과 발, 그리고, 머리에 대한 방비였다. 두 팔목과 발목, 그리고 목에는 마령의 공격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진언부적을 띠와 함께 묵었고, 이마에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띠를 묶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평범한 인간계에서는 그냥 띠를 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령계로 접어들면 그 띠는 방어력과 함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발광(發光)을 하기 때문에 적들로 하여금 시야를 혼란하게 하고, 공력의 출수 시에도 정확한 초점을 맞출 수 없게 하는 묘법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간마청의 상황 때문 이기도 했다. 한도 끝도 없이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마령들을 상대로 공격의 진을 펼치려면 우선 소환수로 속전속결의 전략으로 각개격파를 해 나가야 하는데, 일일이 부적을 꺼내가며, 날려대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아니겠는가! 나는 거울로 살펴가면서 빈틈이 없는가를 다시 한번 살폈다. 이렇게 모든 방비를 한다고 할지라도 믿을 수 있는 것은 나의 내공 뿐이었다. 평생을 갈고 닦은 진기를 이번에 모두 소진할지도 모른다. 진기가 바닥에 다다르면 손발목과 목, 이마에 두른 부적은 방어력을 상실해서 보통 천조각이 되어 버리고, 마방철갑도 같은 꼴이 되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나는 그 마계전령을 제압해야 되고, 그가 잡아챈 희연이의 령을 되돌려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나는 그들의 물밀 같은 공격에 기력을 모두 소모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생령도 아닌 살아있는 육신으로 마계에서 죽어버렸으니, 사바세계도 천상계도 아닌, 묘한 공간에서 육신도 못 찾은 채, 령 조차도 꼼짝없이 붙들려 마계의 VIP로 대접 받으면서 하루 아침에 마계전사로 탈바꿈해 버릴 것이기에….
‘합!’
나는 주문을 외우면서 합장을 했다. 눈 앞에는 바늘구멍만한 공간이 가까스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온 방안에는 은 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고…..마계로 몸을 이동시키는 것이 이것과 매우 흡사했기에….마계는 멀리에 있는 것도, 하늘을 박차고 올라간다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마계는 세상 어느 곳에서 든지 그곳을 들어갈 수 있는 재주만 있다면 바로 우리의 곁에서 숨쉬고 있는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천상계에 속한 령과 마계에 속한 령과는 다른 방법으로 입구가 열리게 된다. 나 같은 제령사는 인간계를 넘어올 수도 있는 마계의 힘을 막아내면서 들어가야 하기에 간신히 나의 존재를 이동시킬 수 있는 구멍만이 열리지만, 마령은 대로를 활보하듯이 인간계로 문을 열어댄다. 이 경우는 마령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천상계를 뚫고 들어가려 할 때도 나와 마찬가지의 경우를 겪게 된다. 일종의 불문률 이랄까? 나는 나의 신체를 하나하나 미세한 크기로 잘게 나누어 구멍으로 밀어넣는다. 안개처럼 온 몸의 주위로 안개가 싸여가면서 나의 몸은 그 작은 구멍을 사이에 두고 저 반대편 차원의 마계에서 분리된 조각을 받아서는 차곡차곡 짜맞추는 것이다. 순식간에 나는 공간을 뛰어넘어 마계로 들어오게 됨을 느끼고, 내 공력이 말해 주듯이 빛이 거의 없는 마계의 공간을 내 부적들은 놀라운 빛의 강도로 밝게 비추어대기 시작한다. 마계의 공간은 땅도, 하늘도, 구조물도 없다. 그러나, 령들은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주변의 모습을 말 않해도 알아차렸고, 가도 되는 곳과 가서는 안 되는 곳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계에서는 걸어간다, 이동한다는 것은 통용 되지 않았다. 그 말은 무언고 하니, 예를 들어, 걸어간다고 하는 사실은 먼저 땅을 딛고 서 있다는 주변사실을 인정한 것이고, 땅을 딛고 서 있는 본인의 육신의 실체를 현실로 받아들인 다는 가정이 우선 서야 한다. 이러한 물질적인 교합 속에서 모든 인간의 오감은 자신이 정지하고, 또 움직인다는 사실을 정보입력에 의해 받아들이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바뀌어지는 풍경과 소리, 냄새, 느낌들의 다각적인 정보들을 뇌로 보내어 자신이 공간을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계나 령계 안에서는 그런 물리적 시공개념이 없기에, 령이 갖고 있는 생각과 사고의 목적의식 만으로 모든 행동과 변화가 가능하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면서 공중에 떠 있는 나 자신을 향해 무간마청을 향하라고 명령했다. 내 눈 앞에는 검은 그림자들의 무리가 한도 끝도 없이 너울거리는 바다처럼 펼쳐져 왔다. 빛을 잃고 사는 그 마령들 사이에 나타난, 빛을 온통 뿜어대는 육신을 걸머진 나의 모습은 가히 기절할 정도의 충격 이었을 게다. 내 앞에는 한 령이 쏜살같이 다가섰다.
‘어찌 생령도 아니고, 지옥계를 통하지도 않은 인간계의 생신(生身)이 이렇게 마계를 범접하는가?’
‘본인은 인간계에 거하는 사람으로서 이곳에 붙들려 있는 생령 하나를 찾으려고 하오. 그대들과 싸우거나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내가 찾고 있는 생령을 돌려주기만 부탁 드리는 바이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이곳은 생령이 거하는 곳이 아니니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 한데….’
‘그렇다면, 그 생령을 붙들고 있는 마계전령을 만날 수는 있겠소. 그리하면 얘기가 될 성 싶은데…’
나는 나의 뇌리에 남아있는 마계전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도 내 앞에서 무간마청의 진입을 막고 서 있는 문지기도 그 영상을 같이 보고 있을 것이었다.
‘오호라, 제령사 시로구만. 어서 오시오.’
그들 사이에는 암암리에 나의 출현을 예고 받고 있었는가 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보통의 생령이 마계에 접어들면 세간에 떠도는 것처럼 똥물에 튀기네, 고문을 당하네 하는 말도 않되는 말을 하고는 했지만 사실은 그렇질 않았다. 사람들이 죄를 지어 지옥에 가면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말들을 했고, 그게 구전으로 전해 내려 왔지만 사실은 달랐다. 지옥에 들려오는 죄지은 령들은 세상의 종국적인 파국을 맞기 전까지 천상계와의 공조체제에 의해서 일정기간의 자성기간과 체벌을 부여하는 것이 천상계와 다른 점이기는 했다. 어차피 윤회하지 않을 정도의 덕을 쌓아 더 이상 육신의 껍질을 쓰지 않아도 되는 령의 상태가 되었다면 모를까, 천상계도, 지옥계도 선입선출의 순서에 입각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령들을 자기들만의 교육방식과 재검증 루틴을 이용해서 다시 사바세계로 내몰고 있는 것은 동일했으니까. 지옥계의 방법이 잘못 오도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다분히 천상계의 물밑작업과 유언비어 날조가 덕을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 처절하리만치 무서운 맛을 표현할 길이 없기에,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서 가장 극악하다고 생각되는 처벌 방법을 도입해서 무슨 옛날 이야기처럼 전달한 것이 이제는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었다. 천상계와 다른 것은 사실이다. 지옥계에 접수된 령들은 우선 죄질에 따라 구분되어지고, 독특한 체벌과 자신의 전생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작업이 동시에 이루어 지게 된다. 그 체벌이란 것은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온 몸을 기름에 튀긴다든가, 하루종일 자신의 살을 잘라먹게 하고, 다음 날이면 또다시 자란 자기의 생살을 또 먹게 한다든가 하는 몬도가네 방식이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령이었다. 그 령들에게 사람들처럼 피부나 오감, 육신을 통한 고통의 주입은 있을 수도 없는 체벌법 이었고, 그건 부풀려진 뻥이었다. 그들의 체벌은 령들을 위한 특수 테크닉의 소산이었다. 이른바, 사고를 후려치는 방식이 그것이었다. 령의 상태에서 그들은 다시 또 육신의 껍질을 태어날 그날까지 죄질의 경중에 따른,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심리적 중압감과 괴로움, 불안, 초조, 상실감….이런 것들의 모음들을 주구장창 영혼의 사고 속에 때려 맞히는 것이었다. 인간이 이름 붙일 수 있는 고통의 심정을 고스란히 각을 떠서 잠이란 것도, 시간의 개념도 멈추어버린 지옥의 공간에서 어디 도망갈 구석도 없이 당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천상계로 낙점 받지 못하는 데에는 그 령의 근본에 있었다. 허나, 지옥도 영전의 혜택은 있었다. 계속되는 윤회의 삶 속에서 처음에는 연쇄살인범, 다음 생에서는 일급 살인범, 다음 생에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범, 다음 생애에서는 상해 치사범, 다음 생애에서는 사기범, 다음 생애에서는 소매치기…. 이렇게 생을 여러 번 거쳐 오면서 그들의 령은 범죄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근본을 갖고 태어났으나 끊임없는 지옥에서의 교화와 체벌의 무서움으로 다음 생애 에서는 조금 순해진 방향으로 길을 걷게 되는 령격의 상승이랄까, 아무튼 그런 격상이 있어 왔다. 그래서 종국에는 천상계로 령의 검증을 받아 지옥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 순서였다. 그에 반해서 마계는 그런 희망이 전혀 없는 영역이었다. 마계는 이미 자신의 윤회를 거부하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막살아 버리는 군집의 표상이라고 해야 옳았다. 그런 부류를 지옥계는 은근한 밑불로 부추켜 집단화 시키고, 천상계를 향해서 우리는 그런 일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면서 자신의 세상 지배를 꿈꾸며, 마계를 하인 부리듯 조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계도 자신의 존립을 위해 지옥계의 술책을 알면서도 서로가 공생의 묘를 밟아 나가는 철저한 이용심리에 의존하여, 지옥계의 은밀한 지령을 기꺼이 수행하고….그런 와중에 누가 옳고 그르냐 하는 것은 순식간에 판단근거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만드는 일이 종종 제령사 에게도 일어나곤 했다.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 났다고나 할까?
‘씨웅…..’
나는 일순 긴장했다. 내 주위에 펼쳐지는 령들의 너울거림이 다가옴을 느꼈다. 나는 인간의 신체를 들고 마계로 들어왔기에 그들의 현란한 유혹은 곧바로 나의 오감을 강타할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었다. 천도거부령이 마계를 접통 하는 순간에, 마계에서는 그 용기와 의지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쾌락삼매경(快三昧境)이라 부르는 령들의 위로잔치를 펼쳐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그들을 향한 마계, 아니, 지옥계의 첫 미끼이자, 영원한 늪의 선사라고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흡사 천상계의 모습이나 분위기와 닮아 있었지만, 그 위로 시연회의 내용은 극악하기 이를데 없는 광경의 표출이 줄을 잇는 것이 보통이었다. 인간이 세상사를 살아오면서 하지 말아야 할 모든 일들을 파노라마 처럼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행할 수 있는 환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친상간에, 강간에, 간통, 윤간, 수간 등을 아무런 제제 없이 즐길 수 있는 체험을 심어준다면 어떨까? 어떤 령이라도 그 미끼에 혹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계는 그 쾌락삼매경을 마약처럼 쥐고 흔들면서 이 기쁨을 더 맛보려면 마계본령을 철저히 수행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는데, 모든 마령 들은 그 지시에 순순히 따라가게 된다. 그토록 그 쾌락삼매경의 흔적과 체험은 깊이깊이 마령 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나의 주위에 마계전령을 맞닥뜨리기 전에 시험의 과정인지는 몰라도 령들이 둘러서면서 쾌락삼매경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진을 펼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시험 단계에서 조차 기력을 소모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었을 뿐더러, 그들의 진기소모 전략에 휘말리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둘러선 령들은 실제 여인들처럼 나의 주변에서 음탕한 웃음을 흘리면서 갖은 고혹적인 자태를 연출했다. 한번 상상해 보라. 절세 미녀들이, 그것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여자들이 발가벗고, 보지를 쩍쩍 벌린 채로 언제든지 잡아 잡수어 달라는 표정으로 나만을 애타게 올려다 보는 광경을…나는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표현해서는 안되고 있었다. 만일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에 그 욕구와 쾌락에 대한 빌미를 극대화 시킨 환영이 생성되어 다가오고, 급기야, 그 환영에서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빠져드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진언조차도 없이 머릿속을 비워가기 시작했다. 그런, 마계의 노력은 대단한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눈 앞의 모든 여자들의 모습은 일순, 몇 시간 전에 살을 섞었던 희연이의 모습으로 모두 바뀌어 있었다. 그 수 많은 희연이의 나체들 속에 괴물 같이 검붉게 핏줄이 툭툭 튀어나온 좇대를 두 손에 거머 쥔, 건장한 청년들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셀 수도 없이 달겨 들고 있었다. 나에 대한 또 다른 시험 이었다. 그들은 고통스러워 하는 수십, 수백의 희연이 에게 수백, 수천의 인원으로 달겨 들어, 보지에 박아대고, 입안에 좇을 두개씩 쳐 박고, 똥꾸녕은 좇 에다가 손까지 집어넣어 찢어 발기고 있었다. 무자비한 강간과 윤간, 그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그 와중에도 쾌락에 못 이겨 그 덮쳐 드는 남정네들을, 하나하나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 가며, 가랑이와 보지를 벌려주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온통 주위로 가득찬 뿍짝 대는 씹질과 좇질의 소음이 진짜처럼 들려왔고, 그들 사이에서 튀겨지는 좇물과 씹물의 방울들이 내 얼굴에 묻어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강호씨, 이 사람들이…헉헉…이렇게 내 보지를, 똥꾸녕을 벌창 내는데도 당신은 어째서 가만히만 있는 거죠? 윽윽윽…. 이렇게 보지가 시원할 정도로 당신도 쑤셔주면 안 되요?…어서 빨리요….제령사고, 나발이고, 다 집어 치우고… 나랑 어서 씹질 이나 하자니깐요!’
끈질기게 접근해 들어오면서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마성….그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알고 있었다. 한쪽의 구석에서는 또 다른 희연이의 보지를 쑤시다 못해 온몸을 입으로 물어 뜯고 있었다. 피가 철철 쏟아지면서 보지 앞에는 선지피가 물컹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들의 좇질은 한치도 여유를 두질 않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는 희연이의 보지와 똥꾸녕, 입안을 쑤셔댔다. 그래도 나의 일념을 부수어 뜨리지는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 갑자기 모든 환영이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주위에는 또다시 검게 드리워진 마령의 살기가 가득차 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는 그들의 쾌락 삼매경이 무위로 돌아감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마계전령은 모습을 드러내시오.’
검은 너울거림 속에서 몸을 드러낸 여자는 희연이를 채어간 마계전령이 분명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나한비장격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와 똑 같은 생육신의 몸으로….
‘옳게 찾아 오셨구려.’
‘이렇게 마계의 지역을 범접하고 싶은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음을 알려드리오. 어차피 나와 당신 간에 해결되어야 할 일이지, 나의 위에 버티고 있는 령계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할 의도는 어차피 불가능하기에…..’
‘역시 현명하신 제령사 양반 이구만. 역시 그렇지, 어떻게 마계와 지옥계로 연결된 그 거대한 세력에 흠집을 낼 수 있겠는가? 아니, 그런가? 그러나, 자네는 너무 먼 길을 와 버린 것이야. 그 동안 너무나 수 많은 우리의 가엾은 령들을 소산(消散 : 이 세상에서 영원히 그 령의 존재를 말살시켜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버리는 제령사의 행위) 시킨 당신의 죄 값은 마땅히 이쯤에서 처단 받아야 마땅하다고 보는데, 자네 의견은 어떠한가?’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서 범접치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어찌 그것을 나의 잘못이라 말 할 수 있겠는가?’
‘오호라,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시겠다? 어떤 령은 소멸 되도 좋고, 어떤 령은 영전해도 좋다고 어찌 제령사 나부랭이가 그 앞길을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소산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세상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오. 마계는 어차피 지옥계의 하수인에 불과한 존재라고 보는데, 어찌 지옥계의 하수인이 제령의 업무를 놓고 콩나라, 팥나라 할 수 있을지 나도 그게 의문이오만….’
‘하수인이라, 그럼 자네는 천상계의 하수인이 아니었던가? 자네와 나는 어차피 손바닥 뒤집기의 운명인 것을 누가 누구의 앞잡이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더 이상 긴말 하고 싶질 않소. 어서 희연이의 령이나 내어 놓으시지.’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무한량 너른 마계, 그것도 당신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마령으로 가득찬 무간마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가 본데, 어디 그렇게 섭섭하게 내어 줄 수야 없지.’
‘그럼 싸워 보기라도 하겠단 말인가?’
‘그럼, 자네의 진기야, 나와 같은 나한비장격술을 사용하고 있으니 시시각각 공력은 소진되어 갈 것이고, 소진이 안 된다 치더라도 인시를 넘기고 묘시에 다다를 때까지라도 결판이 안난다면 그나마 자네가 비집고 들어 온 마계초입구도 스스로 닫힐 터, 우리는 아쉬운 게 없다고 봐야 할 걸? 자네가 차고 있는 그 띠들이 자네를 우리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하겠으나, 우리에게는 승리를 위한 연료 표시계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우리야 자네의 기운이 떨어질 때까지 무한정으로 마령을 붙여놓고 즐기면 되거덩….거기다 자네가 여기서 죽고 나면, 그 신선한 시체와 령마저도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용안족의 후예인 뛰어난 제령사가 천상계를 위협할 만한 마계전사로 다시 태어날 터인데, 우리야 꿀릴게 하나도 없지. 이렇게 들어 온 이상, 도망갈 틈은 이제 없다고 단념하시지.’
마계전령의 말은 맞았다. 아마도 나의 전의를 꺾어놓기 위해 기선을 잡아 흔들어야 할 의도가 있기는 있었으되, 그 말 속에는 뼈아픈 칼이 숨쉬고 있음은 인정해야 했다. 나는 그들과 대적하기에 너무나 현격한 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이미 되돌아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둘러서 있는 마령들의 음침한 너울거림이 더 짙게 검어지면서 그 살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안 하나 할까?’
‘무어지?’
‘이곳에서 깨끗하게 제령사의 소명을 잊어버리고, 마계전사의 소임을 이어 받는다면 내 고히 사바세계로 돌려 보내주지. 그 년도 함께…..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마계전사의 소임을 받으려면 마접인침(魔接印針)을 받아야 함은 잘 알고 있을터….’
마접인침 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방임의지를 갖고 있는 인간에게 마계전사의 소명을 줄때에 부여하는 일종의 자물쇠로서 해당 인물의 뇌와 척추에 인간의 힘으로 제거 할 수 없는 마성의 침세례를 주는 것을 의미했다. 이 마접인침 세례를 당하게 되면 인간성은 완전히 돌변하게 되고, 마계의 지시를 지상명령으로 인식하고, 죄책감, 후회, 미련 같은 허접한 감상주의를 싸그리 심리 속에서 털어내게 하는 일종의 미혼주술의 하나를 의미했다. 껍질만 인간일 뿐, 인간성을 상실한 채, 마귀처럼 살아가게 되는 그런 인생….그 마접 인침 세례를 받게 되면, 설령 죽더라도 시체가 썩질 않고, 혼줄은 연결된 채로,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광란적인 만행을 저지르고 다닐 수 있게 되는 특징이 있었다. 게다가 이 마접인침을 받은 자는 지옥계가 천상계를 향해, 이미 생전에 지옥계쪽으로 생명부가 기접수 되어 천상계의 간섭이 불필요함을 천상계 쪽으로 통고하고, 바로 마계의 4초옥의 최상위 단계로 모셔오게 되는 것이었다. 지옥계의 입장으로 보면 그런 영광이 없었지만, 천상계 측에서는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수하를 그 능력과 출중함까지 더하여 마계의 손아귀로 빼앗기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서류조작을 예로 들어 천상계와 지옥계가 싸움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것이 서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담합이자, 권력의 일면이었다. 그 안에서 뛰어난 령의 힘을 과시하는 나 같은 용안족은 어떻게 보면 이쪽 저쪽으로 팔려 다니는 소모품과 같은 신세처럼 보일 때도 있곤 했다. 이번 처럼…..
‘제령의 소명을 욕되게 하지 마라. 내 여기서 죽을 지언정, 너희들의 손아귀에는 내 몸을 놓아주지 않을 터, 어서 희연이의 령이나 안전하게 잘 있는지 보여다오.’
‘그래? 아주 대단한 분 이시구만. 개죽음도 불사하겠다? 좋지. 어차피 결과야, 우리 손에 쥐어진 너의 시신과 영혼이겠지만 서도…. 앞을 잘 살펴 보시게, 자네가 애쓰실 동안 우리 마령 들께서 잘 갖고 놀고 있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고설랑…..’
눈 앞에 너울거리는 마령의 검은 파도 사이로 형틀에 묶인 것처럼 애처로운 모습의 희연이가 떠 올랐다. 그 주 위로 긴 혀를 갖고 있는 마령들이 들러 붙어 공중에 매달려 꼼짝 할 수 없는 희연이의 온 몸을 그 징그러운 혓바닥으로 쓸어 내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저 혓바닥 질 한번에 그냥 미쳐버리고 말지. 그런데 저 년, 보기보다 강단 있어! 저렇게 혀를 돌려대는 와중에 보지물 이나 질질 지릴 줄 알았지, 정신 똑바로 차려 있는 걸 좀 봐. 대단하질 않나? 역시 제령사가 탐 낼만한 인물이야… 낄낄낄……’
아니나 다를까 잘 보이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녀의 열려진 다리 틈 사이로 보이는 보지 살이 동그랗게 벌려져 있으면서 움찔 거리는 것이 아마도 그 길고 긴 혓바닥이 지금 그녀의 보짓살을 가르면서 씹구녕 깊숙히 쳐 박히고 있는 듯 싶었다. 온몸의 이곳 저곳은 방금 빨리운 듯한 피멍 자욱이 연속해서 드러나고 있었고…..그때 였다.
‘강호씨!’
어디에선가 들리는 목소리, 그녀 였다. 그러나, 마령 들은 듣질 못하고 있었다.
P.S.: 마계전사와 제령사 윤강호의 한판 결전으로 마무리되는 미니시리즈 용안족의 마지막 편 제 5 부 무량지애(無量之愛)로 이어집니다.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저에게 묻더군요. 왜 야설 같은 걸 쓰고 앉았느냐고요. 별다른 대답을 하질 못했습니다. 글쎄요. 술발이 거나하게 오른 오늘 저녁,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어째서 야설을 써야 하는지……글 쓰는 것에 오늘처럼 좌절을 느껴본 적이 없네요.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아무튼 우울한 밤입니다. 그럼 즐감 하시길…..
제 4 부 폭풍전야(暴風前夜)
가까스로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 보니 왼쪽 가슴이 뜨끔하게 저려왔다. 약간의 내상이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희연이가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 더 큰 걱정이었다. 모텔에서 잠에 빠져 있을 홍철이를 뒤돌아 볼 겨를도 없어 보였다. 나는 다급했다. 마계전령의 영력은 생각보다 막강한 것이 실감되고 보니, 무엇부터 찬찬히 따져보고 들어가야 할 지가 막막한 것이 사실 이었다. 령을 잡아챈 것도 아니고, 실제의 육신을 그 정도의 높이로 채어 간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내공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령은 나의 추격을 막기 위해 선방으로 파상장풍(波狀掌風)을 날린 직후라, 몸을 날려 사람을 붙들어 올릴 만큼의 공력이 채워지기에 너무나 짧은 순간 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왠간히 방비를 해서는 마계의 중앙을 치러 들어가기도 전에 문지기에게 조차 박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몸을 추스리자는 의미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도장으로 향했다. 한밤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어디인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간 희연이를 찾기 위해서는 이 밤을 그렇게 허비할 수 만은 없었다. 축시(畜時)를 넘기기 전에 나는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마계의 무간마청(無間魔廳)을 넘어야 한다. 대개 구천지령(九天之靈 : 마계의 도움으로 천도계를 이탈하여 인간계에 상주하는 모든 마귀, 요괴들의 통칭. 인간에게 접신하지 못하고 떠돌 경우에는 스스로의 영력이 소모되므로, 자신의 령을 볼모 삼아 마계에 충성을 맹세하고,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존재를 유지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됨)들 중에서 마계와 인간계를 넘나드는 새벽 3시를 전후해서 마계를 들어가 해가 다시 떨어질 때까지 보호를 받게 되는 그 본당이 바로 무간마청 이다. 이 무간마청을 넘지 않고는 마계의 본거지로 들어갈 수가 없다. 마계는 4초옥(初獄)과 9장릉(莊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옥은 그 위에 합참본부 같은 성격으로 버티고 있으면서 천상계에다 대고서리, 우리에게는 그런 조직이 있지도 않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곳이 바로 마계였다. 왜냐하면 유사시에 자신의 사족처럼 부리면서 사바세계를 자신의 영역으로 이끌려는 지옥의 순수 첨병부대로써 마계는 충실한 헌신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지옥은 천상계로 하여금 범접치 못하도록 비호를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9장릉은 이를 테면 마계의 일반 분류실이고, 4초옥은 마계의 VIP실을 의미했다. 9장릉과 4초옥은 일반령들이 죽은 후에 천상계의 검령(檢靈 : 죽어서 자신의 궤적을 검증 받아 죄값을 치뤄야 할지, 아니면 보다 안락한 곳으로 영전하게 될런지를 판단 받는 과정, 이 과정에서도 사람의 인격처럼 령도 령격이 있고, 권리가 있기에 검령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자의에 의해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짐)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자원 입소하는, 생전에 극악무도 했던 령들을 선별 분류하여 배치하게 되는 곳이 그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전에 악독했을 뿐이지 마계의 훈련과정을 거쳐 사바세계로 당장 내려 갈 수도 없었고, 외부에서 살아있는 육신을 소유한 령이 들어올 경우에는 대적할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그에 반하여, 인간계에서 천상계로 올라오지도 않은 채, 강한 원한과 마성을 지니고, 끊임없이 악행을 일삼는 천도거부령(天道拒否靈 : 49제가 지나도록 천상계로 들려 올려지는 천도령(天道令)을 거부하고 원한을 품어 이미 사바세계에 남아버린 악령이나 원귀를 일컬음) 들은 이 4초옥과 9장릉에 있질 않고, 노숙자처럼 무간마청에서 시간을 떼우든가, 평상시 처럼 빙의된 인간의 몸 속에서 은신하든지, 아니면, 마계본령(魔界本令 : 차후 저질러야 할 악행을 적은 미션자료)을 수령하여 다음 번에 저질러야 할 악행의 스케쥴 체크를 하는 조직폭력배의 행동대 같은 부류가 대부분 이었다. 그래서, 대개 무간마청을 넘는 것이 가장 큰 고비처럼 알려져 왔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아무도 무간마청을 넘질 못했기 때문이었고, 그 안에는 과연 어떤 장애물과 강적이 버티고 있을지 짐작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세상사 처럼 그렇게 령계에도 서로를 끊임없이 저울질 하면서, 살피고, 신경전을 벌이고, 서로의 밸런스가 깨질까 노심초사 하는 것은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것은 서로의 공존을 위한 세력의 균등한 분배라고 여겨지는 일종의 담합 이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지옥계와 천상계는 서로가 자신의 적들 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쪽에서 바라 본 상대의 존재일 뿐이지, 어느 누가 옳으냐 하는 것은 이미 판단이 불가하다는 것이 인간들의 사견이었다. 그 안에서 그 중간에 서 있는 나 같은 제령사는 천상계 쪽에서는 지옥계에서의 우군인 마계처럼 우군에 속했지만 이런 경우처럼 개인적인 의지로 힘의 균형을 건드려야 할 상황이 닥치면 천상계의 우군임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자기 자식이 아닌 것 마냥, 껄끄러운 중간자처럼 은근히 외면하면서 돌아서 버리는 천상계의 야속함도 있어온 것이 사실 이었다. 그에 비해서 마계에 속한 존재들은 나 같은 자유 방임의지를 갖고 있는 축에 속하지 않는 비교적 얌전한 충성을 지옥계 쪽에 맹세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마계의 명령체계 라든가 조직의 탄탄함은 제령사측 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천상계가 자랑하는 유일한 강점은 세상의 처음부터 있어 왔던 인간의 연약한 심사였다. 인간은 언제나 후회하기 마련 이었고, 기본 욕구나 행위에 약한 모습을 보여 왔기에 천상계는 그 면을 철저히 이용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배고픔, 슬픔, 죽음, 늙어감, 병듦 등에 약해지는 인간의 심리를 천상계는 죄로 인한 것이라는 자책감만을 심어주면 마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상계의 아군인 신앙의 지도자들에게 무릎을 꿇었고, 자신의 문명적인 상황을 백이십분 활용하여 악에 대항하는 것이 죄를 짓지 않고, 더 나아가 위에서 열거한 인간의 나약함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욕구와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스스로를 정의 내렸기에 어떻게 보면 무대뽀 정신으로 악행을 교과서처럼 행하는 마계의 수순에 비해서 천상계의 고단수는 더 효과적으로 인간사의 구섞 구섞에 파고들 수 있었다고 본다. 나는 지금 공교롭게도 스스로를 일으켜, 천상계와 지옥계가 이루어 놓은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나서고 있는 것이었다. 도장에 도착하고서 나는 문단속을 한 뒤에 내 방으로 들어가 오래된 상자 하나를 꺼냈다. 흑단목 으로 되어 있는 선릉대사님의 사리함.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열어보라고 하셨고, 나는 그 때가 지금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제령종사셨던 대사님께서 입적하시는 것과 동시에 전국에서는 연락한 바도 없는데, 이제까지 흩어져 있던 다른 제령종사 들께서 속속 사찰로 모이셨었다. 대사님의 사리를 수습하고, 나에게 까지 그 안의 내용을 보지 못하게 하시고, 부적으로 밀봉한 뒤에 남기셨던 그 분들의 한마디는 때가 되면 이것을 열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 뿐이셨다. 그 분들도 영기가 뛰어난 용안족 들을 점지 받아 세상 어느 구석에선가 나 같은 제령사를 키워내고 계신 분들 이셨다. 나는 합장을 한 뒤에 부적을 뜯었다. 매퀘한 먼지가 풀풀 날리면서 나는 상자를 열었다.
‘어?’
나는 대단한 무기나 선약(仙藥) 같은 것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상자를 열어보고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안에는 대사님의 진신사리와 함께 화선지에 곱게 쓴 편지 한 통만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편지를 열어 보았다.
‘무량지애(無量之愛)?’
단 네 글자 뿐이었다. 이게 무신 의미인지? 나는 곰곰히 그 의미를 되씹으면서 준비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너무도 촉박했고, 무간마청에서 그 셀 수도 없는 마령들을 모두 당해낼 수가 있을런지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다른 제령사들을 부른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 사사로운 개인의 일로 이렇게 지옥계와 천상계의 힘의 균형을 뒤흔드는 일에 쉽사리 동참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려니와, 그들 조차도 이런 마계와의 싸움에 휘말려 들기 싫어서 명분을 내세우며, 뒤로 물러설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오직 나 혼자서 풍파를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마계전령은 희연이의 육신을 모처에 감춰 놓은 뒤에 령만을 분리해서 무간마청 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나 같은 제령사 로서 내공을 쌓지않은 일반 생령들이 육신을 벗어나 무간마청이나 허공을 많은 시간 헤매고 다니다 보면, 령의 힘이 급속도로 약해져 그나마 육신과 연결되어 있는 혼줄이 끊어지고, 급기야 사망할 수도 있을 수 있기에 시간은 촌각을 다투고 있었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무간마청을 들어갈 것인가에 대해서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으로 마계의 문을 두드리느냐에 따라, 싸움의 승패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 이었다.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 되었다. 첫째로는 비격촌절괘(飛擊寸切掛) 같은 약진무공으로 생령의 상태, 그대로 진입하는 방법, 둘째로는 나한비장격술(漢秘藏激術) 이라는 무공을 이용해서 온몸이 현재 상태, 그대로 들어가는 법, 마지막으로 나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소환수(召還手 : 제령사의 분신술에 의해서 제령사의 공력을 이용해서 허상이기는 하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뛰어난 공격력과 방어력으로 마령을 제압하는 전사를 일컬음. 공격을 받을 때, 겉으로는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 제령사의 진기와 연결되어 있음으로 해서 죽음에 가까운 내상을 입을 수도 있는 단점이 있음.)를 이용해서 공격해 들어가는 방법, 또 한가지를 들 수 있다면 비격촌절괘나 나한비장격술 중 택일하여 소환수를 동시에 혼용하는 방법 정도가 될 것이었다. 그 각각은 진을 펼치면 다른 공격방법으로 절환 되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으며, 제 시간 내에 희연이를 구하지 못하고, 무간마청에 갇히게 될 경우에, 희연이나 나나 개죽음을 하기는 마찬가지 인 상황이었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시간을 벌려면 비격촌절괘를 써야 하지만 현세계에 내 육신을 놔 둔채, 령만으로 공격해 들어갈 경우에 시간을 멈출 수는 있어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공력의 소진량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성공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한비장격술을 이용해서 진입해 들어가면 비격촌절괘에 비해서 월등한 공력과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반면, 시간에 쫓기게 되기 때문에 한 수라도 공격이 삑사리가 날 경우, 헛점을 타고 적들의 공격이 쏟아져 내려, 자멸할 수도 있었다. 소환수의 경우에도 시간에 쫓기는 것은 마찬가지 였지만 위급한 경우, 목숨만은 건질 수 있다는 방패막이 있는 것은 사실 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 였다. 나는 나의 접전에 배수진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방법은 나한비장격술과 소환수를 같이 쓰는 것 밖에 없었다. 희연이를 살리지 못한다면 목숨을 부지 한들, 무슨 면목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며, 정의를 위해 제령을 한다는 나의 소명이자, 명분이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지 였기에…나한비장격술로 결정되고 나자, 나는 평소에 준비해 두었던 마방철갑(魔防鐵甲)을 입었다. 이것은 옷 안에 껴 입는 방탄복 같은 속내의로써 별다른 것은 없다. 불에도 잘 타고, 찢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령계의 접전에 있어서는 대포알도 막아내는 방어력을 자랑하는 나한무념주술(漢武念呪術)이 부적처럼 옷 위의 사방 빼곡히 신필로 적혀진 옷을 말한다. 신필이란 말은 부적을 적는데 있어서 신묘한 령의 기운을 붓끝으로 옮겨 부적을 적는 것을 말한다. 붓을 내가 들고 있으되, 부적의 내용은 령이 써댄다고나 할까? 나는 가끔 버스나 전철 안에서 깜짝깜짝 놀라고는 하는데, 공부한답시고 책 펴놓고, 자신도 모르듯이 손가락을 이리저리 이동하며 펜을 돌려대는 모습들 때문이었다. 어떤 것은 그렇질 않지만 개중에는 꼭 신이 들려 움직이면서 부적을 쓰는 것 같은 형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은 마방철갑이 가리지 못하는 두 손과 발, 그리고, 머리에 대한 방비였다. 두 팔목과 발목, 그리고 목에는 마령의 공격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진언부적을 띠와 함께 묵었고, 이마에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띠를 묶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평범한 인간계에서는 그냥 띠를 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령계로 접어들면 그 띠는 방어력과 함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발광(發光)을 하기 때문에 적들로 하여금 시야를 혼란하게 하고, 공력의 출수 시에도 정확한 초점을 맞출 수 없게 하는 묘법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간마청의 상황 때문 이기도 했다. 한도 끝도 없이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마령들을 상대로 공격의 진을 펼치려면 우선 소환수로 속전속결의 전략으로 각개격파를 해 나가야 하는데, 일일이 부적을 꺼내가며, 날려대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아니겠는가! 나는 거울로 살펴가면서 빈틈이 없는가를 다시 한번 살폈다. 이렇게 모든 방비를 한다고 할지라도 믿을 수 있는 것은 나의 내공 뿐이었다. 평생을 갈고 닦은 진기를 이번에 모두 소진할지도 모른다. 진기가 바닥에 다다르면 손발목과 목, 이마에 두른 부적은 방어력을 상실해서 보통 천조각이 되어 버리고, 마방철갑도 같은 꼴이 되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나는 그 마계전령을 제압해야 되고, 그가 잡아챈 희연이의 령을 되돌려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나는 그들의 물밀 같은 공격에 기력을 모두 소모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생령도 아닌 살아있는 육신으로 마계에서 죽어버렸으니, 사바세계도 천상계도 아닌, 묘한 공간에서 육신도 못 찾은 채, 령 조차도 꼼짝없이 붙들려 마계의 VIP로 대접 받으면서 하루 아침에 마계전사로 탈바꿈해 버릴 것이기에….
‘합!’
나는 주문을 외우면서 합장을 했다. 눈 앞에는 바늘구멍만한 공간이 가까스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온 방안에는 은 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고…..마계로 몸을 이동시키는 것이 이것과 매우 흡사했기에….마계는 멀리에 있는 것도, 하늘을 박차고 올라간다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마계는 세상 어느 곳에서 든지 그곳을 들어갈 수 있는 재주만 있다면 바로 우리의 곁에서 숨쉬고 있는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천상계에 속한 령과 마계에 속한 령과는 다른 방법으로 입구가 열리게 된다. 나 같은 제령사는 인간계를 넘어올 수도 있는 마계의 힘을 막아내면서 들어가야 하기에 간신히 나의 존재를 이동시킬 수 있는 구멍만이 열리지만, 마령은 대로를 활보하듯이 인간계로 문을 열어댄다. 이 경우는 마령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천상계를 뚫고 들어가려 할 때도 나와 마찬가지의 경우를 겪게 된다. 일종의 불문률 이랄까? 나는 나의 신체를 하나하나 미세한 크기로 잘게 나누어 구멍으로 밀어넣는다. 안개처럼 온 몸의 주위로 안개가 싸여가면서 나의 몸은 그 작은 구멍을 사이에 두고 저 반대편 차원의 마계에서 분리된 조각을 받아서는 차곡차곡 짜맞추는 것이다. 순식간에 나는 공간을 뛰어넘어 마계로 들어오게 됨을 느끼고, 내 공력이 말해 주듯이 빛이 거의 없는 마계의 공간을 내 부적들은 놀라운 빛의 강도로 밝게 비추어대기 시작한다. 마계의 공간은 땅도, 하늘도, 구조물도 없다. 그러나, 령들은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주변의 모습을 말 않해도 알아차렸고, 가도 되는 곳과 가서는 안 되는 곳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계에서는 걸어간다, 이동한다는 것은 통용 되지 않았다. 그 말은 무언고 하니, 예를 들어, 걸어간다고 하는 사실은 먼저 땅을 딛고 서 있다는 주변사실을 인정한 것이고, 땅을 딛고 서 있는 본인의 육신의 실체를 현실로 받아들인 다는 가정이 우선 서야 한다. 이러한 물질적인 교합 속에서 모든 인간의 오감은 자신이 정지하고, 또 움직인다는 사실을 정보입력에 의해 받아들이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바뀌어지는 풍경과 소리, 냄새, 느낌들의 다각적인 정보들을 뇌로 보내어 자신이 공간을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계나 령계 안에서는 그런 물리적 시공개념이 없기에, 령이 갖고 있는 생각과 사고의 목적의식 만으로 모든 행동과 변화가 가능하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면서 공중에 떠 있는 나 자신을 향해 무간마청을 향하라고 명령했다. 내 눈 앞에는 검은 그림자들의 무리가 한도 끝도 없이 너울거리는 바다처럼 펼쳐져 왔다. 빛을 잃고 사는 그 마령들 사이에 나타난, 빛을 온통 뿜어대는 육신을 걸머진 나의 모습은 가히 기절할 정도의 충격 이었을 게다. 내 앞에는 한 령이 쏜살같이 다가섰다.
‘어찌 생령도 아니고, 지옥계를 통하지도 않은 인간계의 생신(生身)이 이렇게 마계를 범접하는가?’
‘본인은 인간계에 거하는 사람으로서 이곳에 붙들려 있는 생령 하나를 찾으려고 하오. 그대들과 싸우거나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내가 찾고 있는 생령을 돌려주기만 부탁 드리는 바이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이곳은 생령이 거하는 곳이 아니니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 한데….’
‘그렇다면, 그 생령을 붙들고 있는 마계전령을 만날 수는 있겠소. 그리하면 얘기가 될 성 싶은데…’
나는 나의 뇌리에 남아있는 마계전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도 내 앞에서 무간마청의 진입을 막고 서 있는 문지기도 그 영상을 같이 보고 있을 것이었다.
‘오호라, 제령사 시로구만. 어서 오시오.’
그들 사이에는 암암리에 나의 출현을 예고 받고 있었는가 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보통의 생령이 마계에 접어들면 세간에 떠도는 것처럼 똥물에 튀기네, 고문을 당하네 하는 말도 않되는 말을 하고는 했지만 사실은 그렇질 않았다. 사람들이 죄를 지어 지옥에 가면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말들을 했고, 그게 구전으로 전해 내려 왔지만 사실은 달랐다. 지옥에 들려오는 죄지은 령들은 세상의 종국적인 파국을 맞기 전까지 천상계와의 공조체제에 의해서 일정기간의 자성기간과 체벌을 부여하는 것이 천상계와 다른 점이기는 했다. 어차피 윤회하지 않을 정도의 덕을 쌓아 더 이상 육신의 껍질을 쓰지 않아도 되는 령의 상태가 되었다면 모를까, 천상계도, 지옥계도 선입선출의 순서에 입각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령들을 자기들만의 교육방식과 재검증 루틴을 이용해서 다시 사바세계로 내몰고 있는 것은 동일했으니까. 지옥계의 방법이 잘못 오도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다분히 천상계의 물밑작업과 유언비어 날조가 덕을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 처절하리만치 무서운 맛을 표현할 길이 없기에,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서 가장 극악하다고 생각되는 처벌 방법을 도입해서 무슨 옛날 이야기처럼 전달한 것이 이제는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었다. 천상계와 다른 것은 사실이다. 지옥계에 접수된 령들은 우선 죄질에 따라 구분되어지고, 독특한 체벌과 자신의 전생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작업이 동시에 이루어 지게 된다. 그 체벌이란 것은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온 몸을 기름에 튀긴다든가, 하루종일 자신의 살을 잘라먹게 하고, 다음 날이면 또다시 자란 자기의 생살을 또 먹게 한다든가 하는 몬도가네 방식이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령이었다. 그 령들에게 사람들처럼 피부나 오감, 육신을 통한 고통의 주입은 있을 수도 없는 체벌법 이었고, 그건 부풀려진 뻥이었다. 그들의 체벌은 령들을 위한 특수 테크닉의 소산이었다. 이른바, 사고를 후려치는 방식이 그것이었다. 령의 상태에서 그들은 다시 또 육신의 껍질을 태어날 그날까지 죄질의 경중에 따른,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심리적 중압감과 괴로움, 불안, 초조, 상실감….이런 것들의 모음들을 주구장창 영혼의 사고 속에 때려 맞히는 것이었다. 인간이 이름 붙일 수 있는 고통의 심정을 고스란히 각을 떠서 잠이란 것도, 시간의 개념도 멈추어버린 지옥의 공간에서 어디 도망갈 구석도 없이 당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천상계로 낙점 받지 못하는 데에는 그 령의 근본에 있었다. 허나, 지옥도 영전의 혜택은 있었다. 계속되는 윤회의 삶 속에서 처음에는 연쇄살인범, 다음 생에서는 일급 살인범, 다음 생에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범, 다음 생애에서는 상해 치사범, 다음 생애에서는 사기범, 다음 생애에서는 소매치기…. 이렇게 생을 여러 번 거쳐 오면서 그들의 령은 범죄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근본을 갖고 태어났으나 끊임없는 지옥에서의 교화와 체벌의 무서움으로 다음 생애 에서는 조금 순해진 방향으로 길을 걷게 되는 령격의 상승이랄까, 아무튼 그런 격상이 있어 왔다. 그래서 종국에는 천상계로 령의 검증을 받아 지옥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 순서였다. 그에 반해서 마계는 그런 희망이 전혀 없는 영역이었다. 마계는 이미 자신의 윤회를 거부하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막살아 버리는 군집의 표상이라고 해야 옳았다. 그런 부류를 지옥계는 은근한 밑불로 부추켜 집단화 시키고, 천상계를 향해서 우리는 그런 일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면서 자신의 세상 지배를 꿈꾸며, 마계를 하인 부리듯 조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계도 자신의 존립을 위해 지옥계의 술책을 알면서도 서로가 공생의 묘를 밟아 나가는 철저한 이용심리에 의존하여, 지옥계의 은밀한 지령을 기꺼이 수행하고….그런 와중에 누가 옳고 그르냐 하는 것은 순식간에 판단근거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만드는 일이 종종 제령사 에게도 일어나곤 했다.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 났다고나 할까?
‘씨웅…..’
나는 일순 긴장했다. 내 주위에 펼쳐지는 령들의 너울거림이 다가옴을 느꼈다. 나는 인간의 신체를 들고 마계로 들어왔기에 그들의 현란한 유혹은 곧바로 나의 오감을 강타할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었다. 천도거부령이 마계를 접통 하는 순간에, 마계에서는 그 용기와 의지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쾌락삼매경(快三昧境)이라 부르는 령들의 위로잔치를 펼쳐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그들을 향한 마계, 아니, 지옥계의 첫 미끼이자, 영원한 늪의 선사라고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흡사 천상계의 모습이나 분위기와 닮아 있었지만, 그 위로 시연회의 내용은 극악하기 이를데 없는 광경의 표출이 줄을 잇는 것이 보통이었다. 인간이 세상사를 살아오면서 하지 말아야 할 모든 일들을 파노라마 처럼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행할 수 있는 환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친상간에, 강간에, 간통, 윤간, 수간 등을 아무런 제제 없이 즐길 수 있는 체험을 심어준다면 어떨까? 어떤 령이라도 그 미끼에 혹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계는 그 쾌락삼매경을 마약처럼 쥐고 흔들면서 이 기쁨을 더 맛보려면 마계본령을 철저히 수행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는데, 모든 마령 들은 그 지시에 순순히 따라가게 된다. 그토록 그 쾌락삼매경의 흔적과 체험은 깊이깊이 마령 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나의 주위에 마계전령을 맞닥뜨리기 전에 시험의 과정인지는 몰라도 령들이 둘러서면서 쾌락삼매경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진을 펼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시험 단계에서 조차 기력을 소모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었을 뿐더러, 그들의 진기소모 전략에 휘말리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둘러선 령들은 실제 여인들처럼 나의 주변에서 음탕한 웃음을 흘리면서 갖은 고혹적인 자태를 연출했다. 한번 상상해 보라. 절세 미녀들이, 그것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여자들이 발가벗고, 보지를 쩍쩍 벌린 채로 언제든지 잡아 잡수어 달라는 표정으로 나만을 애타게 올려다 보는 광경을…나는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표현해서는 안되고 있었다. 만일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에 그 욕구와 쾌락에 대한 빌미를 극대화 시킨 환영이 생성되어 다가오고, 급기야, 그 환영에서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빠져드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진언조차도 없이 머릿속을 비워가기 시작했다. 그런, 마계의 노력은 대단한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눈 앞의 모든 여자들의 모습은 일순, 몇 시간 전에 살을 섞었던 희연이의 모습으로 모두 바뀌어 있었다. 그 수 많은 희연이의 나체들 속에 괴물 같이 검붉게 핏줄이 툭툭 튀어나온 좇대를 두 손에 거머 쥔, 건장한 청년들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셀 수도 없이 달겨 들고 있었다. 나에 대한 또 다른 시험 이었다. 그들은 고통스러워 하는 수십, 수백의 희연이 에게 수백, 수천의 인원으로 달겨 들어, 보지에 박아대고, 입안에 좇을 두개씩 쳐 박고, 똥꾸녕은 좇 에다가 손까지 집어넣어 찢어 발기고 있었다. 무자비한 강간과 윤간, 그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그 와중에도 쾌락에 못 이겨 그 덮쳐 드는 남정네들을, 하나하나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 가며, 가랑이와 보지를 벌려주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온통 주위로 가득찬 뿍짝 대는 씹질과 좇질의 소음이 진짜처럼 들려왔고, 그들 사이에서 튀겨지는 좇물과 씹물의 방울들이 내 얼굴에 묻어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강호씨, 이 사람들이…헉헉…이렇게 내 보지를, 똥꾸녕을 벌창 내는데도 당신은 어째서 가만히만 있는 거죠? 윽윽윽…. 이렇게 보지가 시원할 정도로 당신도 쑤셔주면 안 되요?…어서 빨리요….제령사고, 나발이고, 다 집어 치우고… 나랑 어서 씹질 이나 하자니깐요!’
끈질기게 접근해 들어오면서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마성….그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알고 있었다. 한쪽의 구석에서는 또 다른 희연이의 보지를 쑤시다 못해 온몸을 입으로 물어 뜯고 있었다. 피가 철철 쏟아지면서 보지 앞에는 선지피가 물컹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들의 좇질은 한치도 여유를 두질 않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는 희연이의 보지와 똥꾸녕, 입안을 쑤셔댔다. 그래도 나의 일념을 부수어 뜨리지는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 갑자기 모든 환영이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주위에는 또다시 검게 드리워진 마령의 살기가 가득차 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는 그들의 쾌락 삼매경이 무위로 돌아감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마계전령은 모습을 드러내시오.’
검은 너울거림 속에서 몸을 드러낸 여자는 희연이를 채어간 마계전령이 분명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나한비장격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와 똑 같은 생육신의 몸으로….
‘옳게 찾아 오셨구려.’
‘이렇게 마계의 지역을 범접하고 싶은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음을 알려드리오. 어차피 나와 당신 간에 해결되어야 할 일이지, 나의 위에 버티고 있는 령계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할 의도는 어차피 불가능하기에…..’
‘역시 현명하신 제령사 양반 이구만. 역시 그렇지, 어떻게 마계와 지옥계로 연결된 그 거대한 세력에 흠집을 낼 수 있겠는가? 아니, 그런가? 그러나, 자네는 너무 먼 길을 와 버린 것이야. 그 동안 너무나 수 많은 우리의 가엾은 령들을 소산(消散 : 이 세상에서 영원히 그 령의 존재를 말살시켜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버리는 제령사의 행위) 시킨 당신의 죄 값은 마땅히 이쯤에서 처단 받아야 마땅하다고 보는데, 자네 의견은 어떠한가?’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서 범접치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어찌 그것을 나의 잘못이라 말 할 수 있겠는가?’
‘오호라,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시겠다? 어떤 령은 소멸 되도 좋고, 어떤 령은 영전해도 좋다고 어찌 제령사 나부랭이가 그 앞길을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소산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세상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오. 마계는 어차피 지옥계의 하수인에 불과한 존재라고 보는데, 어찌 지옥계의 하수인이 제령의 업무를 놓고 콩나라, 팥나라 할 수 있을지 나도 그게 의문이오만….’
‘하수인이라, 그럼 자네는 천상계의 하수인이 아니었던가? 자네와 나는 어차피 손바닥 뒤집기의 운명인 것을 누가 누구의 앞잡이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더 이상 긴말 하고 싶질 않소. 어서 희연이의 령이나 내어 놓으시지.’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무한량 너른 마계, 그것도 당신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마령으로 가득찬 무간마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가 본데, 어디 그렇게 섭섭하게 내어 줄 수야 없지.’
‘그럼 싸워 보기라도 하겠단 말인가?’
‘그럼, 자네의 진기야, 나와 같은 나한비장격술을 사용하고 있으니 시시각각 공력은 소진되어 갈 것이고, 소진이 안 된다 치더라도 인시를 넘기고 묘시에 다다를 때까지라도 결판이 안난다면 그나마 자네가 비집고 들어 온 마계초입구도 스스로 닫힐 터, 우리는 아쉬운 게 없다고 봐야 할 걸? 자네가 차고 있는 그 띠들이 자네를 우리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하겠으나, 우리에게는 승리를 위한 연료 표시계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우리야 자네의 기운이 떨어질 때까지 무한정으로 마령을 붙여놓고 즐기면 되거덩….거기다 자네가 여기서 죽고 나면, 그 신선한 시체와 령마저도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용안족의 후예인 뛰어난 제령사가 천상계를 위협할 만한 마계전사로 다시 태어날 터인데, 우리야 꿀릴게 하나도 없지. 이렇게 들어 온 이상, 도망갈 틈은 이제 없다고 단념하시지.’
마계전령의 말은 맞았다. 아마도 나의 전의를 꺾어놓기 위해 기선을 잡아 흔들어야 할 의도가 있기는 있었으되, 그 말 속에는 뼈아픈 칼이 숨쉬고 있음은 인정해야 했다. 나는 그들과 대적하기에 너무나 현격한 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이미 되돌아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둘러서 있는 마령들의 음침한 너울거림이 더 짙게 검어지면서 그 살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안 하나 할까?’
‘무어지?’
‘이곳에서 깨끗하게 제령사의 소명을 잊어버리고, 마계전사의 소임을 이어 받는다면 내 고히 사바세계로 돌려 보내주지. 그 년도 함께…..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마계전사의 소임을 받으려면 마접인침(魔接印針)을 받아야 함은 잘 알고 있을터….’
마접인침 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방임의지를 갖고 있는 인간에게 마계전사의 소명을 줄때에 부여하는 일종의 자물쇠로서 해당 인물의 뇌와 척추에 인간의 힘으로 제거 할 수 없는 마성의 침세례를 주는 것을 의미했다. 이 마접인침 세례를 당하게 되면 인간성은 완전히 돌변하게 되고, 마계의 지시를 지상명령으로 인식하고, 죄책감, 후회, 미련 같은 허접한 감상주의를 싸그리 심리 속에서 털어내게 하는 일종의 미혼주술의 하나를 의미했다. 껍질만 인간일 뿐, 인간성을 상실한 채, 마귀처럼 살아가게 되는 그런 인생….그 마접 인침 세례를 받게 되면, 설령 죽더라도 시체가 썩질 않고, 혼줄은 연결된 채로,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광란적인 만행을 저지르고 다닐 수 있게 되는 특징이 있었다. 게다가 이 마접인침을 받은 자는 지옥계가 천상계를 향해, 이미 생전에 지옥계쪽으로 생명부가 기접수 되어 천상계의 간섭이 불필요함을 천상계 쪽으로 통고하고, 바로 마계의 4초옥의 최상위 단계로 모셔오게 되는 것이었다. 지옥계의 입장으로 보면 그런 영광이 없었지만, 천상계 측에서는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수하를 그 능력과 출중함까지 더하여 마계의 손아귀로 빼앗기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서류조작을 예로 들어 천상계와 지옥계가 싸움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것이 서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담합이자, 권력의 일면이었다. 그 안에서 뛰어난 령의 힘을 과시하는 나 같은 용안족은 어떻게 보면 이쪽 저쪽으로 팔려 다니는 소모품과 같은 신세처럼 보일 때도 있곤 했다. 이번 처럼…..
‘제령의 소명을 욕되게 하지 마라. 내 여기서 죽을 지언정, 너희들의 손아귀에는 내 몸을 놓아주지 않을 터, 어서 희연이의 령이나 안전하게 잘 있는지 보여다오.’
‘그래? 아주 대단한 분 이시구만. 개죽음도 불사하겠다? 좋지. 어차피 결과야, 우리 손에 쥐어진 너의 시신과 영혼이겠지만 서도…. 앞을 잘 살펴 보시게, 자네가 애쓰실 동안 우리 마령 들께서 잘 갖고 놀고 있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고설랑…..’
눈 앞에 너울거리는 마령의 검은 파도 사이로 형틀에 묶인 것처럼 애처로운 모습의 희연이가 떠 올랐다. 그 주 위로 긴 혀를 갖고 있는 마령들이 들러 붙어 공중에 매달려 꼼짝 할 수 없는 희연이의 온 몸을 그 징그러운 혓바닥으로 쓸어 내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저 혓바닥 질 한번에 그냥 미쳐버리고 말지. 그런데 저 년, 보기보다 강단 있어! 저렇게 혀를 돌려대는 와중에 보지물 이나 질질 지릴 줄 알았지, 정신 똑바로 차려 있는 걸 좀 봐. 대단하질 않나? 역시 제령사가 탐 낼만한 인물이야… 낄낄낄……’
아니나 다를까 잘 보이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녀의 열려진 다리 틈 사이로 보이는 보지 살이 동그랗게 벌려져 있으면서 움찔 거리는 것이 아마도 그 길고 긴 혓바닥이 지금 그녀의 보짓살을 가르면서 씹구녕 깊숙히 쳐 박히고 있는 듯 싶었다. 온몸의 이곳 저곳은 방금 빨리운 듯한 피멍 자욱이 연속해서 드러나고 있었고…..그때 였다.
‘강호씨!’
어디에선가 들리는 목소리, 그녀 였다. 그러나, 마령 들은 듣질 못하고 있었다.
P.S.: 마계전사와 제령사 윤강호의 한판 결전으로 마무리되는 미니시리즈 용안족의 마지막 편 제 5 부 무량지애(無量之愛)로 이어집니다.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저에게 묻더군요. 왜 야설 같은 걸 쓰고 앉았느냐고요. 별다른 대답을 하질 못했습니다. 글쎄요. 술발이 거나하게 오른 오늘 저녁,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어째서 야설을 써야 하는지……글 쓰는 것에 오늘처럼 좌절을 느껴본 적이 없네요.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아무튼 우울한 밤입니다. 그럼 즐감 하시길…..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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