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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34 353회 0건
호-

아이리는 어깨를 움츠리며 두 손을 모아 입김을 불었다.
오한이 든 듯 살짝 떠는 어깨를 레오나드의 손이 토닥거렸다.

"음울하군."

레오나드도 역시 괜히 자신의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미 가르린성의 성 앞 마을까지 진군하였다.
여기까지 진격해오는 가운데, 그들이 만난 것은 가르린 수비군이 아니었다. 수많은 피난민만이 살 길을 찾아 헤매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져버린 가르린성은 폐허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미 악마로 변해버린 영주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아이리가 알아본 바로는 이제 이곳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여자들을 납치해 성안으로 데리고 가는 그들의 영주처럼 괴물로 변해버린 기사들이 전부이었다.

레오나드의 별동대는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전진하였다. 성 앞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성 앞 마을의 시가지로 진입하였다.
본진까지 모두 시가지로 들어섰을 때 검은 그림자가 마을의 건물 위에 어렸다.

"경계!"

선두에서 다급한 상황이 외쳐졌다. 건물 위에서 암흑으로 물든 다스크란과 그의 기사들이 걸어나왔다. 그리고 폭발하는 듯 나는 듯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전투인원만도 200명이 넘는 레오나드의 별동대로 돌진해 들어왔다.

"저런 미친"

레오나드는 응전을 명령하였다.
전투는 시작되었다.

둥둥둥-

전투를 알리는 북소리에 지휘군에 속해 호위를 받고 있었던 유리안느는 의연하게 허리를 곳곳이 세웠다. 그런 그녀의 허리에는 짧은 검이 매여져 있었다. 아직 몸속의 여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녀만의 능력으로 손끝으로 강기를 만들기는 힘들었다. 그렇기에 검을 준비한 것이었다.

와아-
예상 외의 장소인 성 진입로가 있는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레오나드가 침착하게 지휘를 하였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군사의 수는 오히려 레오나드쪽이 많았다.
들판에서라면 총 군사의 수로 표시되는 전투력에 따라서 승부가 갈리겠지만 시가지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단체의 힘보다도 개개인의 각각의 무력에 영향을 받았다.

"크흐흐흘"

다스크란의 광소가 흩날렸다.
들판에서 포위되어 싸우는 것이 아닌 시가지에서의 난전이라면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와 함께 한 기사들도 어둠에 물든 몸이었기에 많은 적을 상대함에도 오히려 레오나드의 별동대의 숫자를 줄여 갔다.

"덤벼라."

다스크란이 한 획을 그을 때마다 한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선두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광경을 지켜보던 레오나드에게 부관이 말했다.

"뒤로 물러야 합니다."

레오나드는 부관의 조언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전의 후렌테르크 성 수복 때와 비교할 수 없이 강해져 버린 다스크란의 힘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있었다.
레오나드가 보기에도 시가지에서는 개인 대 소수의 전투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그리고 저 다스크란은 소수의 힘이 아닌 다수의 군대로만 막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
결론은 퇴각해서 다른 전장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별동대의 변화를 다스크란은 놓치지 않았다.

"도망치려는 것인가. 쉽게는 안되지."

다스크란의 기사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각자 전투를 즐기며 싸우던 태세에서 이제는 후열로 치고 들어가 퇴각을 방해하는 움직임을 취했다.

< 아이스 볼트 >

높은음의 경쾌한 주문이 시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벌써 유리안느의 주변까지 난입한 기사에게 얼음조각이 날아갔다. 공격받은 기사는 잠시 몸을 떨더니 이내 몸을 회복하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칭-

가녀린 손에 들린 검이 기사의 검과 맞부딪혔다. 다행히 몸이 밀렸을 뿐 검을 놓치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안느와 기사의 힘의 차이는 명백하였다. 유리안느는 오히려 힘에 저항하지 않고 뒤로 굴렸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검을 마주하며 다음 공세에 대비하였다.

쿠쿵-

하지만, 기사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중갑옷의 가슴 부분에 화살이 삐져나와 있었다. 기사는 쓰러지면서도 자신의 심장을 관통한 화살을 보았다. 일반적인 화살이라면 중갑의 가슴 부위의 강화된 장갑을 뚫지 못한다. 아니 갑옷이 없더라도 어둠으로 강화된 기사의 피륙은 쉽게 상처 줄 수는 없었다.

화살을 쏘았던 그레이는 검과 방패가 맞부딪히는 전장을 그저 숲 속의 오솔길인 마냥 유유히 달려왔다. 그의 움직임은 물 흐르는 듯 자유로웠다.

"유리안느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그레이님 몸은 어떠세요?"

유리안느와 시엘의 대답과 물음이 쏟아졌다. 달라진 모습에 놀란 것이었다.

전장 가운데에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두 명의 기사가 돌격해 들어왔다.

양손검을 어깨 뒤로 들어 올린 채, 온 몸의 무게를 담아 짖누르듯이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그레이가 정면으로 다가섰다. 천천히 검을 뽑았다.
기사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달려오던 속도, 기사의 갑옷 무게, 기사의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합쳐진 일격은 바위도 부순다. 당연히 인간의 피육이 감당할 수 없기에 당연히 피할 줄 알았건만 무모하게 맞받아치려는 그레이를 비웃는 것이었다.

< 가로베기 >

그레이가 움직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 느려 보이는 세상에 깨끗한 회색의 선이 그어졌다. 그 선의 끝에서 반토막난 상체는 그 힘을 버리지 못해 잠시 허공에 머물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한 명의 기사를 처치한 그레이는 몸을 다른 기사가 다가오던 방향으로 숙였다가 몸을 내밀었다.
그 진각과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그의 검이 기사를 꿰뚫었다.

그레이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분노한 눈빛의 다스크란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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