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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34 294회 0건
태련의 한
4부

그렇게 사자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의 사연은 안타깝지만 절대 그자를 직접 찾아가서 해를 입힌다는 건 절대 안되오."

그놈을 떠올리니 울화가 치밀어서 사자에게 왜 안되느냐고 따졌다.

"간단하게 생각하시오. 만일 이 세상 모든 귀신들이 자기의 한을 직접 푼다고 이승의 세상을 헤집고 다닌다면
이 곳은 혼란에 빠질게 뻔하지 않소? 그리고 아무리 악인이라 한들 제 명이 있거늘, 만일에 한을 품은 귀신때문에
제 명을 다 살지 못하면 이 세상의 모든 순리를 역행하게 됨과 동시에 엄청난 충격과 혼란을 야기하게 되오."

사자는 이승의 모든 일은 마치 역사서처럼 이미 정해져 있으며 그것을 한낱 귀신에 불과한 존재들이 바꾸려
할때 감당할수 없는 재앙들이 생기며 그로 인해 아무 죄없는 이들이 해를 당하는 경우가 생긴다했다.

내가 그의 말에 동의하고 그런일은 없을것이라 맹세하자 사자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이 이 집에 있는 동안은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생각대로 할수있을 것이나 이승의 사람들에게 큰 해가 되는
것은 자제하시오"

"이 집에만 있을 수 있다면 어떻게 제 한을 풀 수있습니까?"

"그건 당신 능력껏 해야하지. 그럼 이만 난 갑니다..한을 풀게 된다면 그때 다시 데리러 오겠소."



................................................................................................................................................


마지막으로 사자가 한권의 책을 보여주었다. 그의 옷과 같은 검은 색의 표지를 한 책이었다.
책의 표지 안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책엔 내 일생이 담겨 있었다. 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부터
교통사고와 시인이 오빠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하나도 빠짐 없이 적혀있었다.

이승을 살면서 시인이 오빠에 대해서 몰랐던 일도 많이 알게 되었다.
시인이 오빠는 사실 자기가 자원해서 봉사를 했던게 아니라 성범죄를 저지른 후 법정에서 시킨 것이었으며
그런 그는 나란 존재에 대해 애초부터 조금의 감정도 없었고 오직 그가 노린 건 다달이 나에게 정부에서
보내주는 보조비...그리고 나의 몸..그런 내가 임신을 하자 나를 제거하고 증거인멸과 동시에 내 몇푼안되는
전재산을 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책의 마지막장에는 시인이 오빠가 나를 칼로 찔러 죽이고 집뒷마당에 파 묻는 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나...난...시인이 오빠와 함께 하는 동안은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듯이
그도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내 생에 마지막 행복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내게 단 한번뿐이었던 사랑이 모두 거짓이라고?....

...........................................................................................................................................

내게 책을 건네 받은 사자는 한이 풀리면 데리러 오겠노라고 다시 말하였고 그렇게 그는 사라졌다.

그냥 울었다. 아무 생각없이 울었다. 울다 지치면 내 시체로 돌아가 잠들고 깨어나면 집으로 들어가
계속 그렇게 울어댔다.

찌그러진 깡통처럼 구깃구깃 구겨진 내시체에 잠들기는 불편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난 그렇세 울다 지치면 잠들고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가끔 누군가가 와서 현관문을 두드리다
가곤 했지만 귀신인 내가 열어주면 괜한 사람 놀래킬것 같았고 또 열어주기도 싫었다.

그러던 어느날..난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집안구석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똑.똑.똑...>
"계십니까? 안에 아무도 안계세요?"

현관문에서 누군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거봐요..아무도 없다니까.."

"흠...안에 아무도 안계세요!!??"

"허..참 사람말을 못믿네.."

경찰인듯 했다. 안에서 인기척이 없자 경찰은 열쇠공을 불렀고 그렇게 현관문을 땄다.

"아주머니, 여기 누가 살았다구요?"

"아 어떤 처녀가 혼자 살고 있었지. 귀엽게 생기긴 했는데 다리가 불편했나봐. 밖에는 거의 안나가고 집에만
있었는데 아니 얼마전부터 밤에도 불이 계속 꺼져 있는 거야. 이상해다 했지..어디 멀리 갈데도 없는 거
같던데... 아 글쎄 근데 그 때부터 누가 우는 소리가 계속 그 쪽에서 들려...낮에는 잘 모르겠고
밤에는 잘 들리는데 아 이거 원 소름이 끼쳐서 말이야..에휴.."

"누가 찾아오는 사람들은 없었습니까?"

"뭐 밤에 누가 오긴 오는 거 같던데.. 누군진 몰라 나두."

그렇게 이웃집 아주머니와 경찰이 다녀간 후 제법 시간이 흘렀다.
중간에 한두번 경찰들이 다시 찾아와 집안을 곳곳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진 못했다. 단 한명의 가족이나
친척이 없던 내 소유의 집과 내 전재산은 모두 정부소유로 넘겨지는 걸 경찰들의 대화로 짐작할수 있었다.

얼마 후 모든 가구들과 잡동사니들도 경매로 싼 값에 팔려나가고 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집에서
혹시 누가 들을까봐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며 하루하루을 보내고 있었다.

...........................................................................................................................................


오늘은 아침부터 일꾼들이 이 집으로 이사짐을 날랐다.

드디어 경매로 집이 팔린건가?....

현관문을 들어서는 다정한 커플이 보인다.

"뭐 좀 작긴 하지만 어때? 괜찮지 누나?"

"응 아담하고 좋네...히힛"

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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