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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31 530회 0건
환관(宦官) 카이만
#00 프롤로그

"철혈시대", 혹은 "철혈전쟁"이라 불리며 중앙대륙을 휘감았던 100여년간의 기나긴 전쟁의 시대는 "가레온 레오노스"라는 이름의 위대한 영웅을 탄생시키곤 그 손에 의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그는 일개 기사의 몸에서 시작해 장군으로, 군주로, 그리고 마침내 중앙대륙을 통일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라서는대 성공했다. 허나 그 엄청난 업적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야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결국 가레온 레오노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 대륙과 서방 대륙에 진출하여 이를 평정하는대 성공했고, 수천년전에 멸망했다고 전해지는 고마도사(古魔道使)들의 마지막 마도제국 "사르가스"의 전설 이래 최초로 최초로 중앙과 서방 그리고 동방 대륙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완전한 대제국을 건설하는대 성공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패황 가레온", 그리고 그의 대제국 "레오니아"라 칭했다.

* * *

레오니아 제국 황도(皇都) "그레이트 레오니아"

제 1 황궁 소드 펠리스 어딘가의 복도끝에서 "뚜벅 뚜벅"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우윳빛 대리석바닥을 울리며 메아리쳐 흩어져가는 가운대 복도끝 어둠속에서부터 드디어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5"크린(약 165cm)"도 체 못되는 작은키에 볼품없어 보이는 염소수염을 짧게 기른 노인의 모습이었다.

온통 "트라카스"산 최고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과 역시 같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열을 지어 서 있는 반개식 공중복도의 밖으로는 "패황 가레온"이후 400여년간 증축되어온, 중앙대륙은 물론 동방과 서방의 모든 양식이 혼재된 첨탑과 건물들이 쭈욱 펼쳐져 있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허나 노인은 화려한 황금몰드가 세겨진 열주(柱) 저편에 펼쳐진 경치따위에는 한치의 관심도 없다는듯 느리지만 묵묵히 복도를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입은 옷은 고급비단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긴 하지만, 세계의 모든것을 지배하고 있는 대제국의 황궁에는 어울리지 않는 실용적이고 수수한 것이었다. 다만 별다른 장식도 없는 옷과는 그다지 어울려보이지 않는 두 개의 큼직한 문장이 양쪽 가슴에 금사와 화려한 색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오른쪽의 다섯손가락을 쭉 편 금빛건틀렛 문장은 "말리어스"가문의 문장이었고, 왼쪽에는 포효하는 금빛사자의 아가리에 붉은열쇄와 강철검이 X자 모양으로 교차된체 물려져 있는 문장이 있었는데, 이 문장이야 말로 레오니스 제국의 재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오셨습니까?"

공중복도의 반대편 끝에서 마치 거울처럼 번쩍번쩍하게 광택을낸 황금빛 예식용 갑옷을 걸친 거구의 남자가 나타나며 말했다.

"많이 기다리셨소이까? 이거 미안하오 이놈의 다리가 쑤셔서 도무지 빨리 걷질 못하겠구료. 하긴 이미 죽을 때가 한참 지났으니 말이오. 허허허..."

노인이 깡마른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치며 느릿하게 대꾸했다.

"아니 별말씀을 하십니다. 재상께서는 아직도 정정하시지요."

갑옷을 입은 남자는 호탕하게 대꾸하며 몸을 돌려 노인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고, 마침 그 때 한줄기의 바람이 불어 남자가 두른 망토가 휘날렸다. 그 망토의 중심에는 포효하는 금빛사자의 머리를 중심으로 7개의 검이 펼쳐져있는 문장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레오니아 제국 대장군의 문장이었다.

"내가 왜 장군을 불렀는지 아시겠소?"

노인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체 느릿하게, 하지만 뚜렷한 발음으로 말하자 금새 갑옷을 입은 사나이의 얼굴에서는 여유로움이 사라져버렸고, 긴장한 듯이 목소리를 살짝죽인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동방의 문제겠지요..."

"장군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노인의 질문에 사나이는 버릇처럼 한쪽눈을 살짝 찌뿌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애초에 그저 이 검 하나뿐이 모르던 촌놈이었습니만, 그런 놈이 폐하의 성은을 입... 아니 뭐 어쩌다가, 이런 자리에까지 오르게ㅤ營윱求? 헌데 막상 이런 저런 일을 해보고나니 "군(軍)"과 전쟁이란 철과 피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놈의 누런 쇠붙이로 하는것이란걸 깨닫게 되었지요."

사나이는 얼굴에 미묘한 쓴웃음을 머금은체 커다란 손으로 턱을 두어번 주억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별 달리 잃을 것도 없고, 별달리 쏟아 부을것도 없이, 그저 말 한마디로 100만 대군을 10년간 먹일 수 있는 재보가 굴러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에 무슨말을 달리 하겠습니까? 특히나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말이지요."

"허허... 솔직히 장군께서는 기사이자 이름높은 검사이시니 명예나 명분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소만, 이거참. 이몸이 죽으면 장군께서 재상직을 맡아보셔도 되겠소이다."

얼핏 그 말만을 따로놓고 보면 마치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릴수도 있는 말이었으나, 그 말의 어조와 노인의 표정을 보면 분명 그러한뜻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 말씀하시니 이거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허허허... 확실히 금화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지요. 황도에서만 일년에 13번이나 벌어지는 축제와, 7개의 투기장, 23개의 경기장, 55개의 극장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검투시합과 볼거리들, 붉은 사원과 푸른 사원에서 재공되는 향락, 이 모든것이 바로 금화의 힘에서 나오는거라오. 허나! 이젠 그 금화가 부족하다오. 결국 장군의 선택이 지금으로서는 현명하고 현실적인 선택이라 해야겠지... 하지만..."

노인이 말끝을 흐리자 사나이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재상께서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분명 명예나 명분으론 병사들의 배든, 텅빈지갑의 배든 불릴수 없다는게 맞긴 맞소만, 또한 그 명분 하나만으로 100만의 군대를 일으킬수도, 반대로 100만의 군대를 해산시킬수도 있는 것이라오."

"흠... 허나, 제국과 황제폐하의 광영은 절대적입니다. 100만이 아니라 그 열배 1000만의 대군이라 할지라도 감히 제국의 적따위가 될순 없지요. 이것은 티끌만큼의 허영과 오만도 섞여있지 않은 진실입니다."

"허허허... 물론 제국은 아직도 강하지. 하지만 한번 잃은 명예는 금화로 되찾을 수 없다네."

"이름뿐인 황위(皇位)를 가진다 한들 동방은 제국의 속국일뿐입니다."

"바로 제국의 그 이름이, 그 명예와 명분이 희미해져가고 있다는걸세..."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나이는 한쪽눈을 잔뜩 찌뿌린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재상어르신께서 지금 하신 말씀, 아주 위험한것같습니다만..."

제국의 이름이 무엇이겠는가? 제국의 명예란 무엇이겠는가? 이는 결국 황제를 뜻하는 것이오, 그것이 희미해져간다는 말에 담긴 의미는, 당연히 황권이 약해지고 있다는 뜻일것이다. 만약 제국이 서방대륙과같은 사회구조를 가진 곳이었다면 이 말은 그저 흔해빠진 정치적 판단이나 평가로 그칠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 중앙대륙에서, 곧 제국내에서 황제라는 존재는 피와 살을 지닌 생명이 아닌 절대신과 같은 불멸자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패황 가레온이 중앙대륙을 통일할 때, 그의 인상에 가장 깊이 남았던 나라가 바로 중앙대륙과 동방대륙의 접경에 위치했던 "샤드란" 제국이었다. 샤드란 제국은 일찌기부터 동방의 영향을 짙게 받아 중앙이나 서방대륙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키워왔었는데, 특히 그 사회구조는 절대적인 전제정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며 샤드란의 황제는 인간이 아닌 절대신의 아들로서 추앙받고 있었다.

샤드란제국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은 패황 가레온은 통일전쟁동안 꾸준히 그리고 철저한 계획하에서 자신의 신격화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지나치게 지방의 영향력이 짙은 귀족이나, 강력한 황족, 왕족의 핏줄은 완전히 말살시켜버렸고, 귀족과 제후의 지위를 제국에 소속된 관료로서 흡수해나가며, 서방 대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던 사회구조와 정치구조역시 동방의 전제정치구조로 다듬어 나갔다.

허나 역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황실과 황제, 곧 자기 자신의 신격화였다. 가레온은 황제가 된 다음은 물론 그전의 통일전쟁기간동안에도 쭈욱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처첩들을 들였으나, 그 들중 누구 하나도 황비의 자리에 오르진 못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들의 아이들, 곧 패왕 가레온의 핏줄을 타고난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레온은 자신의 핏줄을 타고난 아이들을 한대 모아 교육시키기 위한 기관을 만들어 그 이름을 "백궁(白宮)"이라 칭하였으며 그 자손들에겐 "황족"이 아니라 "백족(白族)"이란 이름을 주었다. 백족은 지방의 귀족이나 왕족의 적장자를 황도로 데려와 성인이 될때까지 교육시킨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흑족(黑族)"제도와 함께 제국의 축을 이루는 제도중 하나였다.

백족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젖을 떼자마자 백궁으로 거취를 옮겨 교육을 받기 시작해 18살이 되어 성인식을 마치고 나서야 공식적으로 "백족"의 칭호를 받아 세상으로 나올수 있었다. 그리고 백족들은 오로지 각자가 지닌 재능과 특기에 적합한 위치에 배치되었을뿐 그 어떤 특혜도 받지 못했다. 물론 외부에서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황자나 황손과 같은 명칭으로 불리며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황족이라는 인정을 받기도 했었지만, 그것이 세력으로 이어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백족의 자손 역시 백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 즉 백족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으로서 존재할뿐 그들에게 가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백족도 혼인을 할 수는 있었다. 허나 백족과 혼인한 여인들은 제 2황궁 "로즈 팰리스(장미궁)"에 들어가 영원히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그 아이들 역시 젖을 떼자마자 백궁으로 들어가서 그 누구도 아닌 독립된 한 사람의 백족으로 다시 태어날 뿐이었다.

가레온은 백족이란 절대신, 곧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고귀한존재들로서 신이 될 수 있는 자격과 가능성을 지닌 자들이라 말했다. 다시 말해 백족들은 교육과 단련을 통해 자신에게 내재된 신성을 갈고 닦으며,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저능함과 더러움은 억제하고 제거해 나가며 궁극에 이르러 지극히 개별적이고 홀로존재하며 유일무이한 존재 곧 절대신으로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족들중에서 완벽한 존재가 나타나면 황제, 즉 절대신은 연약한 백성들을 보살펴주는 과업을 인계해주고 천계로 돌아간다는 것이 가레온이 만들어낸 황위계승의 법칙이었다.

패황 가레온이 중앙과 동,서방의 모든 대륙을 통합한 완전한 대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히, 그가 세계의 흐름과 때를 타고났으며 이에 완벽하게 편승했다는 점과 그가 압도적인 무력과 다른이들보다 몇 발을 앞서는 지모 그리고 카리스마를 일신에 지닌 초인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허나 어찌보면 그의 가장큰 능력은 무력도 지력도 행운도 아닌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을 지닌자였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허허허... 장군의 충심을 믿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오."

노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정색을 하고 있는 사나이에게 말했지만, 사나이는 나직한 신음성을 삼킬 뿐이었다.

"으으음..."

"그리고 나는 장군이 황제폐하께서 어떤 "사람"이신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오. 이 제국의 그 누구보다 말이지요. 타락한 백족들과 사방에 웅크린체 숨어있는 음흉한 귀족들과 "흑족"들... 비록 이름뿐인 황위라 하더라도 동방에 제위를 돌려준다는 것은 제국이 그 이름을 잃어가는 상황을 가속시킬꺼라오. 물론 장군께서 말하셨듯 쇠하긴 하였으나 제국은 아직도 강대하니 크게 걱정할 것은 없을것이오, 최소한 이 노구가 죽고나서도 20년간은 말이오. 허나 그 다음에는..."

노인의 말이 끝나자 사나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반대하시는 뜻도 이유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재상께서도 이번 동방사절단에 "그 남자"가 포함되 있다는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아직 결정이 난것은 아니라지만 만약 이것이 "그 남자"의 뜻이라면 어쩌시렴니까?"

사나이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비아냥거림같은 것이 뭍어있었으나 과연 그것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결정은 오로지 황제 폐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오. 다만 우린 폐하께서 더욱 현명한 선택을 하시도록 도울 뿐... 그리고 그건 "그 남자"도 마찬가지요."

말을 마친 노인의 흔들림없는 두 눈을 바라본 사나이는 한쪽눈을 살짝 찌뿌린체 슬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잘알겠습니다! 그럼 어서 가보지요."

* * *

제 1궁전 검궁(劍宮), 소드 펠리스는 황도에서 가장 오래된 궁전으로 본디 전쟁을 위한 성으로서 건축된 것이었다. 그래서 소드 팰리스는 다른 궁전들이 지닌 우아함이나 화려함보다는 하늘 높이 우뚝솟은 첨탑들과 두껍고 튼튼한 성벽의 단순하고 실용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드 팰리스에는 황도 그레이트 레오니아와 나아가 레오니아 제국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소드팰리스의 중앙에 우뚝선 "소드 타워(검탑)"이었다. 소드 타워는 1000크린(약 350m)이 넘는 장대한 높이의 거탑으로, 최상부 에 오르면 황도 그레이트 레오니아가 한눈에 들어오는것은 물론이고 "테베론"강 저편의 도시 "라이온투스"까지도 보일 정도였다.

이 탑에는 "천공의 방"이란 곳이 있었는데 커다란 창문이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어서, 그 이름 그대로 마치 하늘위의 방과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패왕 가레온은 중요한 회의들을 이곳에서 진행하곤 했었다. 얼핏보면 천공의 방은 사방이 개방되어 있어서 기밀을 요하는 회의같은 것과는 어울릴것지 않아 보였지만, 그 창밖은 문자 그대로 하늘의 한가운대였으니 문제될 것은 없는 샘이었다.

패왕 가레온은 천공의 방이야 말로 가장 신에게 걸맞는 회의장소라 하며 좋아했지만, 제국의 세계제패가 이루어지고 통치가 안정된 지금, 이곳에서 회의가 열리는 일은 십년에 한 번이 채 못되었다. 천공의 방은 탑의 상부에 위치해 지상으로부터 거의 900크린(300m) 이상 떨어진곳이었으니 그저 오르내리는 일만해도 보통 번거로운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화려한 수도의 하늘속에서 항상 홀로 적막에 휩싸여 있던 이곳에 인기척, 그것도 무척이나 시끄럽고 독특한 인기척이 들려오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흐으응, 아아아앙, 하악 하악, 흐윽."

근육질의 굵직한 팔이 여인의 나긋나긋한 몸뚱이를 으스러뜨릴듯이 움켜잡은체 거칠게 위 아래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여인의 새하얗던 피부의 여기 저기에 사내의 거친 손자국이 빨갛게 남아있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색기를 더해주고 있었으며, 땀과 향유로 범벅이된 그녀의 몸뚱이는 음란하기 그지 없는 냄세를 풍겨대고 있었다.

"하아앙. 하아 하아..."

고음의 교성과 달콤한 신음소리가 철썩 철썩하며 살과 살이부딪히는 끈적한 마찰음과 함께 방안의 공기를 온통 휘감고 있었다. 하지만 방의 한편에서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왜 다들 말이 없나?"

의자에 앉아있던 근육질의 사나이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주저앉은 여인의 가느다란 허리를 한 손으로 움켜쥔체 거칠게 아래로 쑤셔박으며 말했다.

"폐하..."

누군가가 모기 왱왱거리는듯한 작은 목소리로 근육질의 사나이에게 말을 꺼내려했지만 곧 그만두고 만다. 그리고 이와 함께 커다란 타원형 탁자에 둘러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떨림이라고도 웅성거림이라도고 말하기 힘든 무척이나 미묘한 흔들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천공의방의 입구인 회전계단아래쪽에서 우렁찬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대 레오니아 제국 재상각하 "페르데 말리어스"공 입장이오"

"대 레오니아 제국 대장군각하 "루벤하트 클라이디우스"공 입장이오"

그리고 곧이어 회전계단을 통해 짤막한 염소수염을 기른 노인과 번쩍이는 황금빛 예식갑옷을 입은 거구의 남자가 나타났다.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예를 올리자 근육질의 사나이, 곧 레오니아의 6대 황제 "가이론 레오노스"는 가볍게 왼손을 들었다.

"황제폐하의 광영에 감사드립니다."

두 사람이 일어서기가 무섭게 황제는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어서오시오 재상. 이거 참 오랜만에 천공의 방에 오니까..."

황제는 재상에게 말을 건내는 것과 동시에 오른팔로 끌어안고 있던 붉은머리 여인의 몸뚱이를 다시 한번 들어올렸다가 세차게 자신의 사타구니를 향해 쑤셔박아놓고선 그녀의 몸을 흔드는 것처럼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려대자, 여인은 미친듯이 신음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확실히 색다른 재미가 있긴 하지만, 설마 재상이 이몸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주려고 부른건 아닐테고..."

재상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허허허... 실망시켜서 황송하옵니다만, 물론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흐음 그럼 뭐요?"

"동방에 나갔던 사절단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심드렁한 얼굴로 재상을 바라보던 황제가 갑자기 만면에 생기를 띠기 시작하며 말했다.

"호오. 그래? 언제쯤 도착한다던가?"

"아마도 두 달후쯤이 될것같습니다."

재상의 대답에 황제는 갑자기 얼굴에 잔뜩 실망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하아... 두 달?"

"뭐 그건 중요한일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동방에서 보내온 진언(進言)이옵니다만."

"뭔대? 내가 꼭 알아야하는 일인가?"

황제는 무척이나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재상의 진지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어쩔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으며 다시 말했다.

"알았네 알았어 말해봐."

"동방의 공왕(共王)이 동방부의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제위(帝位)의 칭함을 허가해 달라는 진언을 올렸습니다."

황제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제위라? 차라리 반란이라도 일으켜준다면 재미있겠군?"

"공왕이 보내온 진언에 의하면 만약 폐하께서 제위를 허가해주신다면, 당장 제국 라이온 금화 5000만 골드, 금괴 30000카트(30t), 사금 60000카트와 동방특산 흑철 500카트(500kg), 미스릴은 100카트, 그리고 황(黃)의 붉은 심장과, 청(靑)의 대화석 등을 포함한 각종 보석 10000카트, 흉(匈)족 전투노예700명, 홍루(紅樓)의 교육을 마친 여자노예 1000명, 그리고 동방부의 귀녀(貴女) 100명과 황, 청, 초(草), 백, 흑(黑)의 동방 5국 공주 다섯명, 그리고 백(白)국산 마정석 5000카트와 백국의 지보 풍호도(風狐刀)를 위시한 아티팩트(마법구)들을 바치고, 앞으로 10년간 조공을 2할 올려 바치겠다 했습니다."

황제가 자신의 사타구니 위에서 거친숨을 몰아쉬고 있던 붉은머리여인을 들어 내던지기라도 하듯 내려놓자,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여인들이 일제히 황제에게 달라붙어 그의 땀과 성기에 붙은 끈적한 애액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황제는 그들중 금빛머리를 한 여인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거칠게 찍어 눌러 그녀의 입술속으로 자신의 성기를 쑤셔넣고서는 말했다.

"호오, 그정도면 꽤나 많은 것같아보이는대?"

"제국의 세입으로 따져도 거의 몇 년분에 해당하는 금액이지요."

황제는 한 여인이 건낸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들이키고는 한참동안 말없이 재상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건냈다.

"흐음 제위와 황금이라,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재상?"

"폐하 그것은..."

황제의 물음에 재상은 두눈에 결연한 이채를 띠며 천천히, 하지만 뚜렷한 발음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환관장 "아논 카이만"공 입장이오!"

회전계단 아래쪽에서 입장을 알리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고, 천천히 돌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소리가 메아리치며 들려오기 시작했다.

* * *

주역(주인공이 아니라)인 카이만은 한참후에나 등장합니다.
일반적인 판타지소설과는 좀 다른 스타일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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