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의 성안으로 들어간 헨야는 지방행정부에 갈 때까지 쉬지 않고 집사에게 집요하게 캐물었다. 말씀 좀 해봐요~, 결국 아까 제가 물어본 건 아무것도 얘기 안하셨잖아요~. …. 집사님~! 뭐가 그렇게 큰 비밀이라서 그래요? 저 떼놓고 가실 작정이세요?! … …. 계속 대답이 없던 집사는 행정부 건물이 보이는 광장에 들어서자 으음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떼놓고 가시겠다고요?!”
“음…?”
“방금 고개 끄덕거리신 건 뭐에요?!”
이젠 거의 따지다시피 하는 헨야의 말에 집사는 무슨 말이냐는 듯 능청스럽게 쳐다보기만 했다.
“여기가 행정부구나 해서….”
“집사님…!!”
“어서 가자.”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
“궁금해…?”
“궁금하지 않구요!”
그는 가늘게 뜬 눈가에 웃음기를 떠올리며 그제야 헨야의 물음에 대답했다.
“샤몽 부족으로 갈 것이니라.”
여전히 뚱뚱한 ?렌의 치안관은 바슈미르 집안의 집사가 온다는 말에 조금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가, 막상 꼿꼿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집사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음…, 자…자네가 바슈미르 댁의 집사인가?”
“예, 나리. 아가씨를 뵙게 해주시지요.”
그를 위아래로 훑으며 치안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집사라고 하니, 보면 알겠지. 데려다 주게.”
“예.”
수하가 그 둘을 데리고 집무실을 나서자 치안관은 닫힌 문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사치고는 너무 고상해 보이는데…. 하긴 뭐, 바슈미르 댁 집사 정도면…. 복도 건너편의 방에 연금되어 있던 아이린은 뜻밖의 인물이 나타나자 반색을 하며 집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긴 어떻게 왔어?!”
“…?”
뒤로 물러서던 병사가 그녀의 반응에 멈칫했다.
“아가씨께서 이게 무슨 고생이십니까. 연금까지 당하시다니요.”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집사는 거의 감겨 있는 눈을 크게(?) 뜨면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 알리면 안 된다’며 악을 바락바락 쓰던 아이린이 너무 반갑게 그들을 맞자 집사를 안내했던 병사는 어딘가 미심쩍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린도 그제야 눈치를 채고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님께서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어서 가시지요.”
“뭐…, 그래. 알겠어.”
여전히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던 병사를 향해 집사가 짐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얼른 대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아직도 확인이 필요합니까?”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지금 곧 갖다 드리겠습니다!”
집사의 눈길을 정면으로 받자 병사는 찔끔하며 저도 모르게 위축되어 얼른 대답하고는 방을 나섰다. 아이린은 그가 나가자 얼른 얼굴을 바꾸며 집사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집사가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한율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알고 있는 거야?”
“아가씨, 잠시만….”
그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묻는 아이린을 진정시켰다. 헨야가 문을 슬쩍 열어 바깥 동정을 살피는 동안 집사는 아이린에게 앞으로의 일을 말했다.
“일단은 얼른 여기서 나가셔야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렌 성을 빠져나간 뒤에 해 드리지요. 궁금하시더라도 조금 참아주실 수 있죠?”
“응응…!”
일은 손쉽게 이루어졌다. 집사는 아이린을 데리고 ?렌 성의 서문으로 나와 론도 산맥을 향해 길을 잡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아이린은 집사의 말마따나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일단 따라갔다. 헨야는 주위를 살피다가 집사를 향해 전음마법으로 말을 걸었다.
‘의외로 쉽게 빠져나왔네요.’
‘….’
‘여차하면 행정부에서 소란을 피우려고 하셨던 거 아닌가요?’
‘큰 일 없이 나왔으니 다행인 거지.’
‘그런데…, 정말 아슈람으로 가실 거예요?’
‘…, 그렇다 하지 않느냐.’
‘한율은 정말 찾지 않으실 거예요?’
‘… ….’
‘집사님…!’
‘그러는 너야말로 왜 그렇게 한율 타령인 게냐? 잠자리 때문이냐?’
‘아, 무슨 말씀이세요…! 날 어떻게 보시고…!’
‘그만하거라. 갈 길이 바쁘다.’
해질녘이 되어 그들은 야트막한 산지에 들어섰다. 오후부터 날이 조금씩 흐려지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이린은 추위를 느끼는 듯 몸을 한 차례 떨며 외투를 여미었다. 나무가 우거져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이르자 집사는 말을 멈추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하자꾸나. 아가씨, 괜찮으시겠지요?”
“으응….”
시락에서나 살던 그녀는 많이 추운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덜덜 떨고 있었다.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하며 집사가 아이린의 등에 손을 댔다.
“어…?”
그의 손이 등에 닿는가 싶더니 금세 몸이 따끈하게 데워졌다. 아이린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집사를 쳐다보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불을 피우겠습니다. 그는 별다른 설명 없이 말에서 내렸다. 헨야는 이미 주위에서 말라서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으는 중이었다.
“뭘 하는 게냐? 어서 불부터 지피지 않고.”
“지금 준비하고 있잖아요.”
툴툴거리듯 대꾸한 그녀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
아이린은 그들이 하는 양을 말에 탄 채 지켜보고 있었다. 이어서 헨야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발롱드의 불꽃의 수호령이여, 그 정령의 검으로 내리시어 만물을 온기로 가득 채우리로다.’
단검이 점점 붉게 달아오르더니 한순간 확~ 하고 나뭇가지에서 불길이 올랐다. 아이린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집사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깟 장작불 붙이는데 주문까지 외워야겠느냐? 신비가 사라진 땅이 어쩌고 하실 땐 언제고…. 입을 비죽거리며 나뭇가지를 더 밀어놓는 헨야. 아이린은 그들 둘을 번갈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
“….”
“혹시…, 마법사…?”
“… …”
헨야는 입맛을 쩝 소리가 나도록 다시더니 집사를 쳐다봤다. 그 역시 대답없이 빙긋 웃어 보이기만 했다. 헨야가 잡아온 산짐승으로 식사를 하고 나자, 집사는 비로소 자신에 대해 제대로 소개를 했다. 아이린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기대에 찬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드리는 이야기는…, 믿기 어려우실 테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
“여기 이 아이는 헨야라고 합니다. 지금은 스르나 산맥의 깊숙한 곳으로 쫓겨난 샤몽 부족의 마법사지요.”
‘쫓겨난’이란 말에 발끈했지만, 헨야는 그저 이를 부득 갈기만 할 뿐 달리 항의(?)하지는 않았다. 그를 모른 척 하는 집사의 말이 이어졌다.
“제 이름은 지흥입니다. 한율이 자랐던 환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에…?!!”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린의 반응에 지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별다른 말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한율은 꽤 오랜 시간을 여행하면서 바이마샤르까지 왔었지요. 그건 아실 겁니다. 아가씨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한율에게는 스스로 풀어야만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숙명 같은 것이지요. 아무도 그것을 해결해줄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한율이 자신의 숙명과 맞서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입니다.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담뱃대를 꺼내들었다. 한율이 쓰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꽤 오래 흘렀는데…, 이제야 마법이고 뭐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이래가지고서야 언제쯤 이야기가 끝이 날는지….”
“…?”
“아닙니다. 혼잣말이에요. 하하….”
“한율님은 전에…, 만나야 할 분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
“혹시….”
“…. 네, 맞습니다. 바로 납니다.”
“우아…! 우와…!!”
아이린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나고 반가운지 감탄사를 연발했다.
“난 아가씨가 한율과 함께 하게 되길 바랐지요. 아가씨라면 그 아이가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보였으니까요.”
“한율님이 떠나기 전에, 평생 마도들에게 쫓기며 살아야 한다고, 어떤 주술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런 이야기도 했었나요…?”
“네, 떠나시기 전에….”
그녀는 한율 생각을 하자 잠시 표정에 그늘이 졌다. 어지간히도 좋아하나보다 싶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 자기는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사람이라서, 어딘가에 정착을 하지 못한다고 했었어요. 그리고 또…. 지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어…. 방금 한율님을 ‘그 아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저…, 실례지만 혹시 지금 나이가….”
아이린은 어느새 그에게 공대를 하고 있었다.
“정확한 나이는 잊어버렸지만…, 음…. 헨야야, 너희 부족장이 몇 살이지?”
“… ….”
“저희 부족은 햇수 따위는 세지 않는다고요. 지금은 서른다섯 예리나이시고요.”
“음. 그랬지. 예리나는 샤몽에서 자연의 나이를 세는 법이랍니다. 그럼 제가 환국에 있었을 때가 한 2천년 정도 전이로군요.”
“… ….”
더 놀랄 것도 없었다. 아이린은 그저 신기하다는 얼굴이었다. 헨야는 장작불을 쑤석거리다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마저 넣었다.
“하지만 한율이 서른셋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이제는 서른넷이 되었겠군요.”
그 말을 끝으로 지흥은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나뭇가지에 스치는 소리가 눈에 묻혀 사위가 조용해졌다. 타닥 탁 하고 장작 타는 소리만이 한동안 그들의 대화를 대신했다. 아이린은 고개를 들어 눈 내리는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마법사…, 2천년이나 살아온 사람…, 샤몽….”
그녀는 들었던 이야기들을 띄엄띄엄 되뇌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정말 책속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어요. 엄마가 가끔 옛날에 주술사들이나 마법사들을 봤던 이야기를 해주면 늘 신기했는데…. 전쟁 전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대요.”
“네, 그랬지요. 그때는 샤몽도 미키네오스나 바이마샤르 같은 데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부족 사람들이었습니다.”
“흥…. 바루나 같은 놈이 나서서 설치지만 않았어도….”
“어허….”
헨야가 툴툴거리자 지흥이 주의를 주었다. 그녀는 지지 않고 제 할 말을 계속했다. 왜요, 없는 얘기도 아닌데…. 그래도 이 녀석이….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바루나가 종교숙청이네 뭐네 해가면서 우리한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어요? 지들이 약해서 진 거지, 그게 왜 우리 탓이냐고. 로이나르가 미친놈이었지….
“로이나르…?”
“… …. 아가씨도 아시겠지요. 전쟁의 주범이라는….”
“네.”
“…. 역사 수업을 할 시간은 아니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무엇보다도 아가씨는 한율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게 궁금하시죠?”
“네! 한율님을 만나서 강해지려고요!”
“안될 걸요?”
“네…?”
딱 잘라서 약 올리듯 하는 지흥의 말에 아이린은 인상이 팍 구겨졌다. 헨야는 고개를 푹 숙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왜 안 되는데요? 따지듯 하는 아이린에게 지흥이 담뱃재를 탁탁 털며 답했다.
“아가씨는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무척 뛰어나요. 그래서 나는 한율의 조력자로 아가씨를 대마법사로 키워줄 생각인데….”
헨야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지흥을 빤히 쳐다봤다. 그 연유는커녕 헨야의 얼굴이 어떤지조차 모르는 아이린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밤이 깊어지고 아이린이 잠들고 난 뒤 헨야가 흉을 보듯 구시렁거렸다.
“조력자는 무슨…, 참 거짓말도 어쩜 그렇게 솔솔솔 잘 하세요?”
“넌 말투가 한율을 닮아가는구나.”
“말 돌리지 마세요.”
“어쨌든 마법사로 만들어준다는 건 사실이지 않느냐. 왜 그리 정색인고?”
“흥…. 그런데, 저 아이가 아슈람에서 잘 견딜 수 있을까요?”
“…?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거기 지루하잖아요. 차라리 우리 부족으로 데려가는 건 어때요?”
“… ….”
듣고 보니 그렇구나. 지흥의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헨야는 아무 말없이 자신에게 납득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빈정거렸다.
“곧 죽어도 잘못 생각했다거나 하는 말씀은 안 하시네요?”
“….”
“저것 봐, 저것 봐…. 인정은 하시죠?”
“… …. 다물라, 그 입….”
“관두시죠. 2천 년 전의 환인천황 폐.하.”
“다물지 못할까…?!”
“그 작은 눈으로 부랴려봤자지. 어쨌든 내일은 길을 다시 잡자구요.”
미키네오스의 왕도 팡그릿샤.
몇 차례의 회의가 진행되며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첫날 제기되었던, 그러니까 마검사에 대한 대항마로 내세울 신의 기사들을 그들은 ‘성스럽다’는 뜻의 ‘스비아타’로 명명했다. 그러니 마법력을 지닌 기사들은 모두 마검사가 아닌 스비아타로 분류되었고, 그 명단을 작성하는 일과 스비아타의 속성 양성을 위한 기관 설립이 추가로 제기되었다.
리토르나에게 문안을 올리러 찾아온 핫산은 첫 번째 회의에만 참석한 그녀를 몹시 부러워했다.
“정치를 오래 하신 것으로 아는데…, 바슈미르 의원께서 그런 것을 피곤해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바이마샤르 의회에서 하는 회의랑은 많이 다르다 보니…. 좀 피곤합니다.”
“…. 무척 말이 길지요, 아마….”
핫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쿡쿡쿡 하고 웃었다.
“신의 기사라고 하던가요? 스비아타…?”
“예. 그 명칭 정하는 것도 꽤 이야기가 많이 오갔습니다. 어느 지역의 언어를 써야 하느냐, 그게 관건이었지요. 결국은 맨 처음 이야기를 꺼낸 울리프 지역의 언어로 결정되긴 했습니다만….”
‘그런 소모적인 논쟁은 싫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전하께선 어찌 하실 생각이신지…?”
“… ….”
“이 사람이 보기에 위험해지실 일이야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전하께서 이곳에 오래 머무르실수록…,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대국의 체면에도 손상이 가지 않을까 하는데요….”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리토르나는 빙긋 웃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복잡하고 때로는 아슬아슬하기도 한 이곳 정국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답니다.”
굳이 황상의 밀명을 받아 특사자로서 머무른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바이마샤르는 오랜 시간 본국과 교역을 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는 있었으나, 핫산은 어디까지나 미키네오스가 주도하는 전쟁-그것도 잉그라드 령을 합법적으로(?) 침탈하고자 하는 전쟁을 위해 이곳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그야말로 적지에 갇히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이야기는 없지만…, 정벌의 규모가 론도 산맥 전체를 장악하는 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하의 본국 영토를 침범하게 되는 일 아닙니까….”
“아마 그렇게 되겠지요.”
“듣기로는 전하께서 친서를 써 주셨다던데, 사실입니까?”
“예. 지금쯤은 그것을 받아들고 사신이 황도에 당도했을 것입니다.”
“… …. 무섭도록 치밀한 사람이로군요, 정말….”
바루나 국왕의 철저함과 지략에 핫산은 혀를 내둘렀다. 리토르나는 찻잔을 비우고는 담담히 웃음 지을 뿐이었다.
“… …. 국왕 폐하로서도 국익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미키네오스로부터 대륙을 건너야만 하는 잉그라드까지는 아득할 정도로 먼 길이었다. 최단 거리인 론도 산맥을 통한다 해도, 산맥을 넘는 데만 몇 달이 걸릴 길이었다. 게다가 산세가 높고 지형이 험하여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을 찾기가 어려웠으니, 마도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은 차치하고서라도 사신단이 갈 만한 경로는 아니었다. 결국 미키네오스의 사신단은 바이마샤르와의 접경 지역에서 배를 타고 바닷길을 통해 잉그라드로 향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순풍이 불어주어 여섯 번의 안식일이 지날만한 시간, 그러니까 40일 정도의 시간 안에 잉그라드의 땅을 밟게 되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무칼리 고원지대의 남쪽을 다스리는 제후국의 영토였다. 지평선 끝을 모조리 뒤덮으며 끝도 없이 펼쳐진 고원을 본 그들은 경탄해 마지않았다.
“저 거대한 고원이 단지 잉그라드의 남부지역에 있는 작은 고원이란 말인가….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도착하는 즉시 미셀은 황도를 향해 길을 잡았다. 다시 안식일이 대여섯 번은 지날 즈음이 되어서야 그들은 비로소 황도 베나레스에 입성할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길을 재촉했는데도 벌써 여섯 번째 안식일이 가깝습니다. 정말이지 이 나라가 얼마나 큰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나친 제후국만 30여개였네. 그런 영지가 280여개라니…, 정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구먼, 그래….”
“저 성문을 보십시오, 저게 정말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겁니까…?”
함께 온 외무차장은 무슨 신비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문의 높이만 우리 왕궁 앞 계단보다 높아 보이는군…. 성벽에는 황권을 상징하는 표식이 벽돌로 거대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뺨에는 깃털이 수염처럼 길게 뻗어나 있고, 펼쳐진 날개가 건물 하나를 뒤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몸통 뒤로 뻗은 꼬리가 양탄자처럼 너울거리며 날아다니는 궤적을 그리는 모양이 장관이었다.
“대체…, 저게 뭔가…?”
“…, 글쎄요….”
그것은 성문 위를 한 차례 돌더니 까마득히 위로 솟아올라 고공비행을 하며 저편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미셀과 외무차장은 할 말을 잃은 채 새가 사라진 곳을 보면서 성문에 다다랐다.
“미키네오스에서 오는 사신단입니다.”
통역관의 말에 성문을 지키던 병사가 푸른 깃발을 들어 흔들었다. 그그그-그응-하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성문이 열리는 사이로 희미하게 황궁 같은 것이 보였다.
“이게…. 황궁인가…?”
미셀과 외무차장은 기가 질렸다. 성문 밖에서 보았던 정체불명의 거대한 새가 정문의 양 기둥에 각각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펼쳐진 담장은 궁궐의 담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성벽이었다. 담장 위에는 본국에서 보았던 금빛의 기병들이 오가며 경계를 서는 중이었다. 성문 앞에는 그들을 맞이하러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쪽으로 두어 명씩 늘어서 있었는데, 그들 중 가장 앞서 나와 말 위에 오른 이는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려운 외모였다. 언뜻 보면 매우 젊어 보이기도 했으나, 기품이나 전체적인 인상은 노인 같기도 하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가운데 있던 그가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귀국 사신단의 안내를 맡은 람찬트라 하옵니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아…, 그래요. 나는….”
정신을 조금 수습한 미셀이 말을 꺼내려 하자 람찬트가 말 위에 탄 채로 정중히 읍을 하며,
“미키네오스 왕국의 궁정대신 미셀 포이아르 플라시니 경이시지요? 이미 기별을 통해 들었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앞서시지요.”
정문을 들어서도 얼마나 더 가는지 몰랐다. 무수히 많은 전각과 건물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일까. 하기야 보통 큰 나라가 아니니, 나랏일을 하려면 사람이 좀 많이 필요할까. 외무차장과 미셀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람찬트를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갔다.
“대국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로군요. 대체 황궁이 얼마나 큰 것이오…?”
“지금 보시는 것은 황궁이 아닙니다. 황궁은 황상 폐하께옵서 기거하시는 곳이지요. 지금 보시는 것들은 모두 관리들이 직무를 보는 기관입니다.”
“아….”
역시 그랬어. 하는 투로 미셀과 외무차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람찬트는 안내를 맡은 이답게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지나치신 곳은 사법 기관으로 재판과 형벌을 관할하는 바크티입니다. 아국의 조정은 여섯 편제로 나뉘어 있는데, 지금 왼쪽으로 보시는 것이 그 중 하나인 경무청입니다. 치안을 담당하지요. 그의 설명은 황궁 앞 원형 건물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요약하자면 민생을 담당하는 호민관, 각종 행정을 담당하는 부관감, 외교와 정보관리를 하는 교무청, 자본의 흐름과 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문부성, 그리고 군부를 총지휘하는 안보성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라 안의 행사와 의례 등을 담당하며 동시에 학문의 연구기관도 겸하는 기관으로 사라스바티가 있습니다. 제가 그 소속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조정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감찰기관이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원형 건물은 조정의 대소사를 관장하고 결정을 내리는 곳으로, 브라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있던 미셀이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며 물었다.
“고유명칭이 있는 것과 없는 덴 무슨 차이가 있소…?”
“모든 기관에는 고유명칭이 있습니다. 여섯 편제의 조정은 단지 브라훔에서의 결정을 숙의하기 위해 나뉜 부서일 뿐입니다.”
여태까지 본 저 기관들이 단지 부서일 뿐이라니.
“… ….”
미키네오스의 사신단 일행은 기가 죽었다. 미셀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지나온 조정의 전각과 건물들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식은땀까지 흘리는 그에게 외무차장이 까닭을 묻자 나직한 소리로 답했다.
“대국으로 보내는 사신단이라 해서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오지 않았는가. 인원수로도 그렇고 의전으로도 그렇고….”
“… ….”
“그런데 이건…. 이 정도로 체제와 규모가 갖춰진 나라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었는가?”
“꿈도 못 꿔봤습니다, 저는….”
“이런 나라랑 정면 승부를 하려 들다간 미키네오스는커녕, 어쩌면 우리 보르틴 대륙 전체가 궤멸될 수도 있겠구먼, 그래….”
“그러고 보면 국왕 폐하께서 참으로 기막힌 수를 내신 겁니다. 어떻게 황녀의 친서를 써서 공식적으로….”
“그러게나 말일세. 게다가 이런 나라라면 황제의 침병을 알아낸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그러나 막상 황궁의 편전에 들어선 미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정의 신료들이 무슨 의장대처럼 몇 줄에 걸쳐 길게 늘어선 편전의 끝에 황제가 떡 하니 앉아있는 것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경직된 미셀은 잠시 황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외무차장도 마찬가지였다.
“황제가 병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그러게, 그래서 친서도 이렇게 가져온 것인데 대체 이게….”
“무엄하시오…!! 감히 황제폐하를 정면으로 대하다니…!!”
황제의 옥좌에서 조금 아래쪽에 서 있던 금빛 무사복을 입은 남자가 벼락같은 호통을 치자 그들은 찔끔하며 얼른 몸가짐을 바로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대체…? 전 지금 궁정대신과 함께 여길 들어왔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보시는 겁니까…?! 둘은 당황스러운 눈짓을 주고받으며 조심스레 황제의 앞으로 나아갔다.
“미키네오스의 궁정대신 미셀 포이아르 플라시니 알현이옵니다. 대국의 황제폐하를 뵈오니 이는 미키네오스의 영광이며 또한 소신의 가문에 길이 남을 광영이옵니다.”
미리 안내를 받은 대로 오체복지의 예를 올린 뒤 인사를 건네자, 뜻밖에도 황제는 공대를 쓰며 그에 화답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귀국과는 그간 교류가 없었는데, 이렇게 먼저 찾아와 주니 고맙구려. 미셀은 그의 경어에 속으로 놀라면서도 이에 감읍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하하…, 그대의 나라는 신의 가호를 비는 것이 최고의 예라고 하던데, 짐의 앞에서는 황은을 운운하는구려.”
“황공하옵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시원하게 울리는 것이 아주 좋은 음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픈 사람의 목소리 같지가 않았다. 미셀의 당혹감은 더욱 커졌다.
‘뭐야, 이거…, 멀쩡하잖아…?’
“짐의 황녀가 귀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오?”
“그렇사옵니다, 폐하. 또한 대국의 황녀께오서 저를 통하여 폐하께 드리는 서한을 뫼셔왔사옵니다.”
미셀은 리토르나의 친서를 받아 환관을 통해 황제에게 전했다. 그가 리토르나의 친서를 읽는 내내 미셀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어차피 황제의 침병이 사실이 아닌 것임은 틀림없다, 어쨌거나 지금은 준비해온 그대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황녀의 친서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으니 그것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론도 산맥의 마도들을 물리치려고 하니, 잉그라드 령에 대한 다소의 침범을 묵인해주기 바란다…?”
“망극하옵게도 그렇사옵니다, 폐하…. 황녀께오선 아국의 국왕 폐하와의 오랜 숙의를 통하여 아국 폐하께서 지니신 양국 간의 평화에 대한 굳은 의지를 확인하셨사옵니다.”
“당치도 않사옵니다, 폐하…!! 이는 망극하게도 황녀 전하를 볼모로 하여 대 잉그라드의 국경을 침탈하고자 하는 술수이옵니다…!! 물리치심이 마땅한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하옵니다!! 꾸짖으시고 물리치심이 마땅하옵니다!!”
흥분한 신료들이 목청을 높이자 황제는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외교를 맡은 교무청의 신료가 앞으로 나섰다. 대외 예문관 아뢰옵니다.
“말씀하시게.”
“현재 황녀 전하께오서 사신의 나라에 머무르고 계시오니, 무작정 물리치시는 것 또한 좋은 방도가 아니라 사료되옵니다.”
“예문관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그렇다면 무도한 무리들이 국경을 넘어오는 것을 묵인하자는 것인가?!”
“진정하시오, 안보총관.”
“하오나 폐하…!”
“….”
황제는 눈짓으로 그를 진정시켰다. 이미 황도를 들어서면서부터 기가 죽어있던 사신단은 신료들의 몇 마디 말만으로도 위축된 듯 아무 발언도 못하고 있었다. 노련한 미셀조차도 잔뜩 긴장한 채로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 머리를 굴리며 그저 기회가 왔을 때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궁리할 뿐이었다.
“사신은 들으시오.”
“예, 폐하.”
“이것은 황녀의 친필이 분명하군. 따라서 황녀가 보증하는 귀국 국왕의 평화에 대한 의지는 믿을 수도 있을 것이오.”
“망극하옵니다, 폐하.”
“허나, 국경을 넘어오는 일은 나라 간의 매우 민감한 사안이오. 신민들이 이주를 하는 것만 해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군사를 이끌고 오는 일이니 어찌 간단히 처리하겠는가. 그렇지 않소?”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폐하.”
“…. 예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나, 사신께서 더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보시구려.”
뜻밖의 분부에 미셀을 비롯한 사신단 일행은 호의적인 황제의 태도에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미셀은 말을 꺼내기에 앞서 발언권을 준 황제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 번 더 말씀을 올릴 기회를 주시니, 황은이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말씀 올리기 민망하오나, 아국을 비롯한 보르틴의 많은 나라의 백성들은, 지난 전쟁 이후 무도한 마도의 무리들에게 갖은 침략과 수탈을 당해왔사옵니다. 그 정도가 이제 극에 달하여 그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하옵니다. 아국의 폐하께서는 이 같은 백성들의 바람을 외면할 수 없어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뜻을 세워 보르틴 각국의 의지를 모으셨나이다. 자애와 포용으로 신민들의 안녕을 보살펴 오신 황제폐하의 드높은 성심으로 부디 헤아려주시길 간곡히 청하나이다.”
외무차장은 궁정대신의 언변에 감탄하며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칫 곤경을 당할지 모르는 이 자리에서 황제의 자존심까지 건드리다니, 괜히 저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뜻을 잘 알겠소.”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신료들을 둘러보며 당부했다.
“들으시오. 앞으로 결정이 날 때까지 숙의를 하는 동안, 아까와 같은 결례를 범하는 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이론이 있다면 차분하게, 사신과 함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답을 내도록 하시오.”
예, 폐하…!!
신료들의 대답이 편전을 울리고, 황제는 미셀을 향해 그만 물러가라며 인사를 건넸다.
“부디 잘 논의하여 좋은 결론을 얻어 가시길 바라겠소. 먼 길을 오느라 노고가 많았을 터인데, 일단 가서 여독을 풀도록 하시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덕망이 있어보였다. 편전을 나서며 외무차장이 미셀의 언변을 칭찬하자, 미셀은 듣기 좋은 듯 으쓱하면서도 황제를 칭찬했다. 이 큰 나라의 황제라고 해서 꽤 고압적일 줄 알았는데, 상당히 덕이 높은 인물이로군….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음…. 람찬트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금상폐하께오선 잉그라드 8백여 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군왕이십니다. 심지어 적국의 사신이라 해도 함부로 대하시는 법이 없으시지요.”
“적…, 적국이라니 무슨….”
“비록 신료들이 호의적이지 않다 해도 사신께서 안전을 염려하실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 ….”
외무차장과 미셀은 속뜻을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 형식적으로는 황녀의 친서를 받아왔으니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을 염려는 없었으나, 신료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바루나 국왕의 의도를 모를 어리석은 자들은 이 나라에 없어 보였다.
미셀에게 대뜸 호통을 쳤던 금빛 무사복의 남자는 아슈람에서 리토르나와 함께 길을 떠났던 자와카였다. 그를 앞세우고 편전을 나선 황제는, 회랑으로 나서자마자 무너지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자와카는 황급히 황제를 안아들고 수행하는 법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서 결계를 쳐라, 어서…!”
---------------------------------<각주>----------------------------------------
스르나 산맥 : 보르틴의 동북부에서 중앙으로 뻗어내린 산맥, 론도산맥의 지류.
잉그라드의 감찰기관 : 비카레티. 각각 행정/군사/재정에 대한 세 가지 기관으로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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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잉그라드 본국 이야기가 나왔군요. 잉그라드의 조정 편제는 이씨 조선의 편제에서 많이
참고한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많은 국가들의 통치 구조를 설정하면서 이것저것 뒤적거린 책들이 많은데요,
공부를 하다 보니, 비슷한 시기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이씨 조선은 대단히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통치 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조선왕조 실록과 같은 기록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요.
어떤 사람들은 사기에서부터 정관정요, 자치통감, 수사, 위서, 명사에 이르기까지 25편의
정사가 있는 중국 역사서가 뭐 대단히 방대한 것처럼 말씀들 하시는데... 조선왕조 실록
한 번 읽어보시면 그건 상대도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왕조 실록은 중국의 춘추필법
따위와 달리, 사관들이 왕권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거의 완전히 독립된 기록권(?)을
가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매우 상세하고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뭐.....전부는 아니겠지요. ㅎㅎㅎ
....사설이 길었습니다. 다음주에 뵙지요.(_ _)
“떼놓고 가시겠다고요?!”
“음…?”
“방금 고개 끄덕거리신 건 뭐에요?!”
이젠 거의 따지다시피 하는 헨야의 말에 집사는 무슨 말이냐는 듯 능청스럽게 쳐다보기만 했다.
“여기가 행정부구나 해서….”
“집사님…!!”
“어서 가자.”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
“궁금해…?”
“궁금하지 않구요!”
그는 가늘게 뜬 눈가에 웃음기를 떠올리며 그제야 헨야의 물음에 대답했다.
“샤몽 부족으로 갈 것이니라.”
여전히 뚱뚱한 ?렌의 치안관은 바슈미르 집안의 집사가 온다는 말에 조금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가, 막상 꼿꼿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집사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음…, 자…자네가 바슈미르 댁의 집사인가?”
“예, 나리. 아가씨를 뵙게 해주시지요.”
그를 위아래로 훑으며 치안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집사라고 하니, 보면 알겠지. 데려다 주게.”
“예.”
수하가 그 둘을 데리고 집무실을 나서자 치안관은 닫힌 문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사치고는 너무 고상해 보이는데…. 하긴 뭐, 바슈미르 댁 집사 정도면…. 복도 건너편의 방에 연금되어 있던 아이린은 뜻밖의 인물이 나타나자 반색을 하며 집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긴 어떻게 왔어?!”
“…?”
뒤로 물러서던 병사가 그녀의 반응에 멈칫했다.
“아가씨께서 이게 무슨 고생이십니까. 연금까지 당하시다니요.”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집사는 거의 감겨 있는 눈을 크게(?) 뜨면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 알리면 안 된다’며 악을 바락바락 쓰던 아이린이 너무 반갑게 그들을 맞자 집사를 안내했던 병사는 어딘가 미심쩍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린도 그제야 눈치를 채고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님께서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어서 가시지요.”
“뭐…, 그래. 알겠어.”
여전히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던 병사를 향해 집사가 짐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얼른 대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아직도 확인이 필요합니까?”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지금 곧 갖다 드리겠습니다!”
집사의 눈길을 정면으로 받자 병사는 찔끔하며 저도 모르게 위축되어 얼른 대답하고는 방을 나섰다. 아이린은 그가 나가자 얼른 얼굴을 바꾸며 집사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집사가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한율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알고 있는 거야?”
“아가씨, 잠시만….”
그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묻는 아이린을 진정시켰다. 헨야가 문을 슬쩍 열어 바깥 동정을 살피는 동안 집사는 아이린에게 앞으로의 일을 말했다.
“일단은 얼른 여기서 나가셔야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렌 성을 빠져나간 뒤에 해 드리지요. 궁금하시더라도 조금 참아주실 수 있죠?”
“응응…!”
일은 손쉽게 이루어졌다. 집사는 아이린을 데리고 ?렌 성의 서문으로 나와 론도 산맥을 향해 길을 잡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아이린은 집사의 말마따나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일단 따라갔다. 헨야는 주위를 살피다가 집사를 향해 전음마법으로 말을 걸었다.
‘의외로 쉽게 빠져나왔네요.’
‘….’
‘여차하면 행정부에서 소란을 피우려고 하셨던 거 아닌가요?’
‘큰 일 없이 나왔으니 다행인 거지.’
‘그런데…, 정말 아슈람으로 가실 거예요?’
‘…, 그렇다 하지 않느냐.’
‘한율은 정말 찾지 않으실 거예요?’
‘… ….’
‘집사님…!’
‘그러는 너야말로 왜 그렇게 한율 타령인 게냐? 잠자리 때문이냐?’
‘아, 무슨 말씀이세요…! 날 어떻게 보시고…!’
‘그만하거라. 갈 길이 바쁘다.’
해질녘이 되어 그들은 야트막한 산지에 들어섰다. 오후부터 날이 조금씩 흐려지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이린은 추위를 느끼는 듯 몸을 한 차례 떨며 외투를 여미었다. 나무가 우거져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이르자 집사는 말을 멈추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하자꾸나. 아가씨, 괜찮으시겠지요?”
“으응….”
시락에서나 살던 그녀는 많이 추운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덜덜 떨고 있었다.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하며 집사가 아이린의 등에 손을 댔다.
“어…?”
그의 손이 등에 닿는가 싶더니 금세 몸이 따끈하게 데워졌다. 아이린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집사를 쳐다보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불을 피우겠습니다. 그는 별다른 설명 없이 말에서 내렸다. 헨야는 이미 주위에서 말라서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으는 중이었다.
“뭘 하는 게냐? 어서 불부터 지피지 않고.”
“지금 준비하고 있잖아요.”
툴툴거리듯 대꾸한 그녀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
아이린은 그들이 하는 양을 말에 탄 채 지켜보고 있었다. 이어서 헨야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발롱드의 불꽃의 수호령이여, 그 정령의 검으로 내리시어 만물을 온기로 가득 채우리로다.’
단검이 점점 붉게 달아오르더니 한순간 확~ 하고 나뭇가지에서 불길이 올랐다. 아이린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집사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깟 장작불 붙이는데 주문까지 외워야겠느냐? 신비가 사라진 땅이 어쩌고 하실 땐 언제고…. 입을 비죽거리며 나뭇가지를 더 밀어놓는 헨야. 아이린은 그들 둘을 번갈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
“….”
“혹시…, 마법사…?”
“… …”
헨야는 입맛을 쩝 소리가 나도록 다시더니 집사를 쳐다봤다. 그 역시 대답없이 빙긋 웃어 보이기만 했다. 헨야가 잡아온 산짐승으로 식사를 하고 나자, 집사는 비로소 자신에 대해 제대로 소개를 했다. 아이린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기대에 찬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드리는 이야기는…, 믿기 어려우실 테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
“여기 이 아이는 헨야라고 합니다. 지금은 스르나 산맥의 깊숙한 곳으로 쫓겨난 샤몽 부족의 마법사지요.”
‘쫓겨난’이란 말에 발끈했지만, 헨야는 그저 이를 부득 갈기만 할 뿐 달리 항의(?)하지는 않았다. 그를 모른 척 하는 집사의 말이 이어졌다.
“제 이름은 지흥입니다. 한율이 자랐던 환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에…?!!”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린의 반응에 지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별다른 말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한율은 꽤 오랜 시간을 여행하면서 바이마샤르까지 왔었지요. 그건 아실 겁니다. 아가씨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한율에게는 스스로 풀어야만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숙명 같은 것이지요. 아무도 그것을 해결해줄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한율이 자신의 숙명과 맞서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입니다.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담뱃대를 꺼내들었다. 한율이 쓰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꽤 오래 흘렀는데…, 이제야 마법이고 뭐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이래가지고서야 언제쯤 이야기가 끝이 날는지….”
“…?”
“아닙니다. 혼잣말이에요. 하하….”
“한율님은 전에…, 만나야 할 분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
“혹시….”
“…. 네, 맞습니다. 바로 납니다.”
“우아…! 우와…!!”
아이린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나고 반가운지 감탄사를 연발했다.
“난 아가씨가 한율과 함께 하게 되길 바랐지요. 아가씨라면 그 아이가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보였으니까요.”
“한율님이 떠나기 전에, 평생 마도들에게 쫓기며 살아야 한다고, 어떤 주술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런 이야기도 했었나요…?”
“네, 떠나시기 전에….”
그녀는 한율 생각을 하자 잠시 표정에 그늘이 졌다. 어지간히도 좋아하나보다 싶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 자기는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사람이라서, 어딘가에 정착을 하지 못한다고 했었어요. 그리고 또…. 지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어…. 방금 한율님을 ‘그 아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저…, 실례지만 혹시 지금 나이가….”
아이린은 어느새 그에게 공대를 하고 있었다.
“정확한 나이는 잊어버렸지만…, 음…. 헨야야, 너희 부족장이 몇 살이지?”
“… ….”
“저희 부족은 햇수 따위는 세지 않는다고요. 지금은 서른다섯 예리나이시고요.”
“음. 그랬지. 예리나는 샤몽에서 자연의 나이를 세는 법이랍니다. 그럼 제가 환국에 있었을 때가 한 2천년 정도 전이로군요.”
“… ….”
더 놀랄 것도 없었다. 아이린은 그저 신기하다는 얼굴이었다. 헨야는 장작불을 쑤석거리다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마저 넣었다.
“하지만 한율이 서른셋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이제는 서른넷이 되었겠군요.”
그 말을 끝으로 지흥은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나뭇가지에 스치는 소리가 눈에 묻혀 사위가 조용해졌다. 타닥 탁 하고 장작 타는 소리만이 한동안 그들의 대화를 대신했다. 아이린은 고개를 들어 눈 내리는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마법사…, 2천년이나 살아온 사람…, 샤몽….”
그녀는 들었던 이야기들을 띄엄띄엄 되뇌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정말 책속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어요. 엄마가 가끔 옛날에 주술사들이나 마법사들을 봤던 이야기를 해주면 늘 신기했는데…. 전쟁 전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대요.”
“네, 그랬지요. 그때는 샤몽도 미키네오스나 바이마샤르 같은 데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부족 사람들이었습니다.”
“흥…. 바루나 같은 놈이 나서서 설치지만 않았어도….”
“어허….”
헨야가 툴툴거리자 지흥이 주의를 주었다. 그녀는 지지 않고 제 할 말을 계속했다. 왜요, 없는 얘기도 아닌데…. 그래도 이 녀석이….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바루나가 종교숙청이네 뭐네 해가면서 우리한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어요? 지들이 약해서 진 거지, 그게 왜 우리 탓이냐고. 로이나르가 미친놈이었지….
“로이나르…?”
“… …. 아가씨도 아시겠지요. 전쟁의 주범이라는….”
“네.”
“…. 역사 수업을 할 시간은 아니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무엇보다도 아가씨는 한율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게 궁금하시죠?”
“네! 한율님을 만나서 강해지려고요!”
“안될 걸요?”
“네…?”
딱 잘라서 약 올리듯 하는 지흥의 말에 아이린은 인상이 팍 구겨졌다. 헨야는 고개를 푹 숙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왜 안 되는데요? 따지듯 하는 아이린에게 지흥이 담뱃재를 탁탁 털며 답했다.
“아가씨는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무척 뛰어나요. 그래서 나는 한율의 조력자로 아가씨를 대마법사로 키워줄 생각인데….”
헨야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지흥을 빤히 쳐다봤다. 그 연유는커녕 헨야의 얼굴이 어떤지조차 모르는 아이린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밤이 깊어지고 아이린이 잠들고 난 뒤 헨야가 흉을 보듯 구시렁거렸다.
“조력자는 무슨…, 참 거짓말도 어쩜 그렇게 솔솔솔 잘 하세요?”
“넌 말투가 한율을 닮아가는구나.”
“말 돌리지 마세요.”
“어쨌든 마법사로 만들어준다는 건 사실이지 않느냐. 왜 그리 정색인고?”
“흥…. 그런데, 저 아이가 아슈람에서 잘 견딜 수 있을까요?”
“…?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거기 지루하잖아요. 차라리 우리 부족으로 데려가는 건 어때요?”
“… ….”
듣고 보니 그렇구나. 지흥의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헨야는 아무 말없이 자신에게 납득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빈정거렸다.
“곧 죽어도 잘못 생각했다거나 하는 말씀은 안 하시네요?”
“….”
“저것 봐, 저것 봐…. 인정은 하시죠?”
“… …. 다물라, 그 입….”
“관두시죠. 2천 년 전의 환인천황 폐.하.”
“다물지 못할까…?!”
“그 작은 눈으로 부랴려봤자지. 어쨌든 내일은 길을 다시 잡자구요.”
미키네오스의 왕도 팡그릿샤.
몇 차례의 회의가 진행되며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첫날 제기되었던, 그러니까 마검사에 대한 대항마로 내세울 신의 기사들을 그들은 ‘성스럽다’는 뜻의 ‘스비아타’로 명명했다. 그러니 마법력을 지닌 기사들은 모두 마검사가 아닌 스비아타로 분류되었고, 그 명단을 작성하는 일과 스비아타의 속성 양성을 위한 기관 설립이 추가로 제기되었다.
리토르나에게 문안을 올리러 찾아온 핫산은 첫 번째 회의에만 참석한 그녀를 몹시 부러워했다.
“정치를 오래 하신 것으로 아는데…, 바슈미르 의원께서 그런 것을 피곤해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바이마샤르 의회에서 하는 회의랑은 많이 다르다 보니…. 좀 피곤합니다.”
“…. 무척 말이 길지요, 아마….”
핫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쿡쿡쿡 하고 웃었다.
“신의 기사라고 하던가요? 스비아타…?”
“예. 그 명칭 정하는 것도 꽤 이야기가 많이 오갔습니다. 어느 지역의 언어를 써야 하느냐, 그게 관건이었지요. 결국은 맨 처음 이야기를 꺼낸 울리프 지역의 언어로 결정되긴 했습니다만….”
‘그런 소모적인 논쟁은 싫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전하께선 어찌 하실 생각이신지…?”
“… ….”
“이 사람이 보기에 위험해지실 일이야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전하께서 이곳에 오래 머무르실수록…,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대국의 체면에도 손상이 가지 않을까 하는데요….”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리토르나는 빙긋 웃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복잡하고 때로는 아슬아슬하기도 한 이곳 정국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답니다.”
굳이 황상의 밀명을 받아 특사자로서 머무른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바이마샤르는 오랜 시간 본국과 교역을 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는 있었으나, 핫산은 어디까지나 미키네오스가 주도하는 전쟁-그것도 잉그라드 령을 합법적으로(?) 침탈하고자 하는 전쟁을 위해 이곳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그야말로 적지에 갇히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이야기는 없지만…, 정벌의 규모가 론도 산맥 전체를 장악하는 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하의 본국 영토를 침범하게 되는 일 아닙니까….”
“아마 그렇게 되겠지요.”
“듣기로는 전하께서 친서를 써 주셨다던데, 사실입니까?”
“예. 지금쯤은 그것을 받아들고 사신이 황도에 당도했을 것입니다.”
“… …. 무섭도록 치밀한 사람이로군요, 정말….”
바루나 국왕의 철저함과 지략에 핫산은 혀를 내둘렀다. 리토르나는 찻잔을 비우고는 담담히 웃음 지을 뿐이었다.
“… …. 국왕 폐하로서도 국익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미키네오스로부터 대륙을 건너야만 하는 잉그라드까지는 아득할 정도로 먼 길이었다. 최단 거리인 론도 산맥을 통한다 해도, 산맥을 넘는 데만 몇 달이 걸릴 길이었다. 게다가 산세가 높고 지형이 험하여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을 찾기가 어려웠으니, 마도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은 차치하고서라도 사신단이 갈 만한 경로는 아니었다. 결국 미키네오스의 사신단은 바이마샤르와의 접경 지역에서 배를 타고 바닷길을 통해 잉그라드로 향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순풍이 불어주어 여섯 번의 안식일이 지날만한 시간, 그러니까 40일 정도의 시간 안에 잉그라드의 땅을 밟게 되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무칼리 고원지대의 남쪽을 다스리는 제후국의 영토였다. 지평선 끝을 모조리 뒤덮으며 끝도 없이 펼쳐진 고원을 본 그들은 경탄해 마지않았다.
“저 거대한 고원이 단지 잉그라드의 남부지역에 있는 작은 고원이란 말인가….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도착하는 즉시 미셀은 황도를 향해 길을 잡았다. 다시 안식일이 대여섯 번은 지날 즈음이 되어서야 그들은 비로소 황도 베나레스에 입성할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길을 재촉했는데도 벌써 여섯 번째 안식일이 가깝습니다. 정말이지 이 나라가 얼마나 큰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나친 제후국만 30여개였네. 그런 영지가 280여개라니…, 정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구먼, 그래….”
“저 성문을 보십시오, 저게 정말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겁니까…?”
함께 온 외무차장은 무슨 신비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문의 높이만 우리 왕궁 앞 계단보다 높아 보이는군…. 성벽에는 황권을 상징하는 표식이 벽돌로 거대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뺨에는 깃털이 수염처럼 길게 뻗어나 있고, 펼쳐진 날개가 건물 하나를 뒤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몸통 뒤로 뻗은 꼬리가 양탄자처럼 너울거리며 날아다니는 궤적을 그리는 모양이 장관이었다.
“대체…, 저게 뭔가…?”
“…, 글쎄요….”
그것은 성문 위를 한 차례 돌더니 까마득히 위로 솟아올라 고공비행을 하며 저편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미셀과 외무차장은 할 말을 잃은 채 새가 사라진 곳을 보면서 성문에 다다랐다.
“미키네오스에서 오는 사신단입니다.”
통역관의 말에 성문을 지키던 병사가 푸른 깃발을 들어 흔들었다. 그그그-그응-하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성문이 열리는 사이로 희미하게 황궁 같은 것이 보였다.
“이게…. 황궁인가…?”
미셀과 외무차장은 기가 질렸다. 성문 밖에서 보았던 정체불명의 거대한 새가 정문의 양 기둥에 각각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펼쳐진 담장은 궁궐의 담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성벽이었다. 담장 위에는 본국에서 보았던 금빛의 기병들이 오가며 경계를 서는 중이었다. 성문 앞에는 그들을 맞이하러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쪽으로 두어 명씩 늘어서 있었는데, 그들 중 가장 앞서 나와 말 위에 오른 이는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려운 외모였다. 언뜻 보면 매우 젊어 보이기도 했으나, 기품이나 전체적인 인상은 노인 같기도 하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가운데 있던 그가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귀국 사신단의 안내를 맡은 람찬트라 하옵니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아…, 그래요. 나는….”
정신을 조금 수습한 미셀이 말을 꺼내려 하자 람찬트가 말 위에 탄 채로 정중히 읍을 하며,
“미키네오스 왕국의 궁정대신 미셀 포이아르 플라시니 경이시지요? 이미 기별을 통해 들었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앞서시지요.”
정문을 들어서도 얼마나 더 가는지 몰랐다. 무수히 많은 전각과 건물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일까. 하기야 보통 큰 나라가 아니니, 나랏일을 하려면 사람이 좀 많이 필요할까. 외무차장과 미셀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람찬트를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갔다.
“대국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로군요. 대체 황궁이 얼마나 큰 것이오…?”
“지금 보시는 것은 황궁이 아닙니다. 황궁은 황상 폐하께옵서 기거하시는 곳이지요. 지금 보시는 것들은 모두 관리들이 직무를 보는 기관입니다.”
“아….”
역시 그랬어. 하는 투로 미셀과 외무차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람찬트는 안내를 맡은 이답게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지나치신 곳은 사법 기관으로 재판과 형벌을 관할하는 바크티입니다. 아국의 조정은 여섯 편제로 나뉘어 있는데, 지금 왼쪽으로 보시는 것이 그 중 하나인 경무청입니다. 치안을 담당하지요. 그의 설명은 황궁 앞 원형 건물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요약하자면 민생을 담당하는 호민관, 각종 행정을 담당하는 부관감, 외교와 정보관리를 하는 교무청, 자본의 흐름과 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문부성, 그리고 군부를 총지휘하는 안보성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라 안의 행사와 의례 등을 담당하며 동시에 학문의 연구기관도 겸하는 기관으로 사라스바티가 있습니다. 제가 그 소속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조정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감찰기관이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원형 건물은 조정의 대소사를 관장하고 결정을 내리는 곳으로, 브라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있던 미셀이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며 물었다.
“고유명칭이 있는 것과 없는 덴 무슨 차이가 있소…?”
“모든 기관에는 고유명칭이 있습니다. 여섯 편제의 조정은 단지 브라훔에서의 결정을 숙의하기 위해 나뉜 부서일 뿐입니다.”
여태까지 본 저 기관들이 단지 부서일 뿐이라니.
“… ….”
미키네오스의 사신단 일행은 기가 죽었다. 미셀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지나온 조정의 전각과 건물들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식은땀까지 흘리는 그에게 외무차장이 까닭을 묻자 나직한 소리로 답했다.
“대국으로 보내는 사신단이라 해서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오지 않았는가. 인원수로도 그렇고 의전으로도 그렇고….”
“… ….”
“그런데 이건…. 이 정도로 체제와 규모가 갖춰진 나라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었는가?”
“꿈도 못 꿔봤습니다, 저는….”
“이런 나라랑 정면 승부를 하려 들다간 미키네오스는커녕, 어쩌면 우리 보르틴 대륙 전체가 궤멸될 수도 있겠구먼, 그래….”
“그러고 보면 국왕 폐하께서 참으로 기막힌 수를 내신 겁니다. 어떻게 황녀의 친서를 써서 공식적으로….”
“그러게나 말일세. 게다가 이런 나라라면 황제의 침병을 알아낸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그러나 막상 황궁의 편전에 들어선 미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정의 신료들이 무슨 의장대처럼 몇 줄에 걸쳐 길게 늘어선 편전의 끝에 황제가 떡 하니 앉아있는 것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경직된 미셀은 잠시 황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외무차장도 마찬가지였다.
“황제가 병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그러게, 그래서 친서도 이렇게 가져온 것인데 대체 이게….”
“무엄하시오…!! 감히 황제폐하를 정면으로 대하다니…!!”
황제의 옥좌에서 조금 아래쪽에 서 있던 금빛 무사복을 입은 남자가 벼락같은 호통을 치자 그들은 찔끔하며 얼른 몸가짐을 바로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대체…? 전 지금 궁정대신과 함께 여길 들어왔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보시는 겁니까…?! 둘은 당황스러운 눈짓을 주고받으며 조심스레 황제의 앞으로 나아갔다.
“미키네오스의 궁정대신 미셀 포이아르 플라시니 알현이옵니다. 대국의 황제폐하를 뵈오니 이는 미키네오스의 영광이며 또한 소신의 가문에 길이 남을 광영이옵니다.”
미리 안내를 받은 대로 오체복지의 예를 올린 뒤 인사를 건네자, 뜻밖에도 황제는 공대를 쓰며 그에 화답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귀국과는 그간 교류가 없었는데, 이렇게 먼저 찾아와 주니 고맙구려. 미셀은 그의 경어에 속으로 놀라면서도 이에 감읍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하하…, 그대의 나라는 신의 가호를 비는 것이 최고의 예라고 하던데, 짐의 앞에서는 황은을 운운하는구려.”
“황공하옵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시원하게 울리는 것이 아주 좋은 음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픈 사람의 목소리 같지가 않았다. 미셀의 당혹감은 더욱 커졌다.
‘뭐야, 이거…, 멀쩡하잖아…?’
“짐의 황녀가 귀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오?”
“그렇사옵니다, 폐하. 또한 대국의 황녀께오서 저를 통하여 폐하께 드리는 서한을 뫼셔왔사옵니다.”
미셀은 리토르나의 친서를 받아 환관을 통해 황제에게 전했다. 그가 리토르나의 친서를 읽는 내내 미셀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어차피 황제의 침병이 사실이 아닌 것임은 틀림없다, 어쨌거나 지금은 준비해온 그대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황녀의 친서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으니 그것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론도 산맥의 마도들을 물리치려고 하니, 잉그라드 령에 대한 다소의 침범을 묵인해주기 바란다…?”
“망극하옵게도 그렇사옵니다, 폐하…. 황녀께오선 아국의 국왕 폐하와의 오랜 숙의를 통하여 아국 폐하께서 지니신 양국 간의 평화에 대한 굳은 의지를 확인하셨사옵니다.”
“당치도 않사옵니다, 폐하…!! 이는 망극하게도 황녀 전하를 볼모로 하여 대 잉그라드의 국경을 침탈하고자 하는 술수이옵니다…!! 물리치심이 마땅한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하옵니다!! 꾸짖으시고 물리치심이 마땅하옵니다!!”
흥분한 신료들이 목청을 높이자 황제는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외교를 맡은 교무청의 신료가 앞으로 나섰다. 대외 예문관 아뢰옵니다.
“말씀하시게.”
“현재 황녀 전하께오서 사신의 나라에 머무르고 계시오니, 무작정 물리치시는 것 또한 좋은 방도가 아니라 사료되옵니다.”
“예문관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그렇다면 무도한 무리들이 국경을 넘어오는 것을 묵인하자는 것인가?!”
“진정하시오, 안보총관.”
“하오나 폐하…!”
“….”
황제는 눈짓으로 그를 진정시켰다. 이미 황도를 들어서면서부터 기가 죽어있던 사신단은 신료들의 몇 마디 말만으로도 위축된 듯 아무 발언도 못하고 있었다. 노련한 미셀조차도 잔뜩 긴장한 채로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 머리를 굴리며 그저 기회가 왔을 때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궁리할 뿐이었다.
“사신은 들으시오.”
“예, 폐하.”
“이것은 황녀의 친필이 분명하군. 따라서 황녀가 보증하는 귀국 국왕의 평화에 대한 의지는 믿을 수도 있을 것이오.”
“망극하옵니다, 폐하.”
“허나, 국경을 넘어오는 일은 나라 간의 매우 민감한 사안이오. 신민들이 이주를 하는 것만 해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군사를 이끌고 오는 일이니 어찌 간단히 처리하겠는가. 그렇지 않소?”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폐하.”
“…. 예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나, 사신께서 더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보시구려.”
뜻밖의 분부에 미셀을 비롯한 사신단 일행은 호의적인 황제의 태도에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미셀은 말을 꺼내기에 앞서 발언권을 준 황제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 번 더 말씀을 올릴 기회를 주시니, 황은이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말씀 올리기 민망하오나, 아국을 비롯한 보르틴의 많은 나라의 백성들은, 지난 전쟁 이후 무도한 마도의 무리들에게 갖은 침략과 수탈을 당해왔사옵니다. 그 정도가 이제 극에 달하여 그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하옵니다. 아국의 폐하께서는 이 같은 백성들의 바람을 외면할 수 없어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뜻을 세워 보르틴 각국의 의지를 모으셨나이다. 자애와 포용으로 신민들의 안녕을 보살펴 오신 황제폐하의 드높은 성심으로 부디 헤아려주시길 간곡히 청하나이다.”
외무차장은 궁정대신의 언변에 감탄하며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칫 곤경을 당할지 모르는 이 자리에서 황제의 자존심까지 건드리다니, 괜히 저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뜻을 잘 알겠소.”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신료들을 둘러보며 당부했다.
“들으시오. 앞으로 결정이 날 때까지 숙의를 하는 동안, 아까와 같은 결례를 범하는 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이론이 있다면 차분하게, 사신과 함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답을 내도록 하시오.”
예, 폐하…!!
신료들의 대답이 편전을 울리고, 황제는 미셀을 향해 그만 물러가라며 인사를 건넸다.
“부디 잘 논의하여 좋은 결론을 얻어 가시길 바라겠소. 먼 길을 오느라 노고가 많았을 터인데, 일단 가서 여독을 풀도록 하시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덕망이 있어보였다. 편전을 나서며 외무차장이 미셀의 언변을 칭찬하자, 미셀은 듣기 좋은 듯 으쓱하면서도 황제를 칭찬했다. 이 큰 나라의 황제라고 해서 꽤 고압적일 줄 알았는데, 상당히 덕이 높은 인물이로군….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음…. 람찬트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금상폐하께오선 잉그라드 8백여 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군왕이십니다. 심지어 적국의 사신이라 해도 함부로 대하시는 법이 없으시지요.”
“적…, 적국이라니 무슨….”
“비록 신료들이 호의적이지 않다 해도 사신께서 안전을 염려하실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 ….”
외무차장과 미셀은 속뜻을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 형식적으로는 황녀의 친서를 받아왔으니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을 염려는 없었으나, 신료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바루나 국왕의 의도를 모를 어리석은 자들은 이 나라에 없어 보였다.
미셀에게 대뜸 호통을 쳤던 금빛 무사복의 남자는 아슈람에서 리토르나와 함께 길을 떠났던 자와카였다. 그를 앞세우고 편전을 나선 황제는, 회랑으로 나서자마자 무너지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자와카는 황급히 황제를 안아들고 수행하는 법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서 결계를 쳐라, 어서…!”
---------------------------------<각주>----------------------------------------
스르나 산맥 : 보르틴의 동북부에서 중앙으로 뻗어내린 산맥, 론도산맥의 지류.
잉그라드의 감찰기관 : 비카레티. 각각 행정/군사/재정에 대한 세 가지 기관으로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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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잉그라드 본국 이야기가 나왔군요. 잉그라드의 조정 편제는 이씨 조선의 편제에서 많이
참고한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많은 국가들의 통치 구조를 설정하면서 이것저것 뒤적거린 책들이 많은데요,
공부를 하다 보니, 비슷한 시기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이씨 조선은 대단히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통치 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조선왕조 실록과 같은 기록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요.
어떤 사람들은 사기에서부터 정관정요, 자치통감, 수사, 위서, 명사에 이르기까지 25편의
정사가 있는 중국 역사서가 뭐 대단히 방대한 것처럼 말씀들 하시는데... 조선왕조 실록
한 번 읽어보시면 그건 상대도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왕조 실록은 중국의 춘추필법
따위와 달리, 사관들이 왕권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거의 완전히 독립된 기록권(?)을
가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매우 상세하고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뭐.....전부는 아니겠지요. ㅎㅎㅎ
....사설이 길었습니다. 다음주에 뵙지요.(_ _)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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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 2024-11-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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