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와의 불꽃튀는 접전과 아울러 용안족의 비밀이 드러나게 되는 미니시리즈 마지막 5부 용안족, 무량지애 편이 이어집니다. 즐감 하시길……
미니시리즈 5부작 용안족(眼族)
제 5 부 무량지애(無量之愛)
가슴을 울리는 그 목소리는 바로 희연이가 공중에 묶인 채로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암시였다. 그러나, 마계전령은 그 목소리를 듣질 못하고 있었다. 무예를 익히지도 못한 희연이가 어떻게 령들의 감각을 넘어서는 목소리의 전달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기는 했다.
‘강호씨, 듣고만 계세요. 제가 이곳으로 령의 상태로 붙들려 오고 나서 모든 게 확연해 지기 시작했어요. 강호씨 뿐만이 아니라 저 자신도 용안족 이라는 거, 예전부터 알고 계셨죠? 이제 조금만 더 알고 나면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깨닫게 될 것 같아요. 조금만 시간을 벌어 보세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구요.’
생령의 상태에 놓이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전생을 확연히 들여다 보기도 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꿰뚫기도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용안족인 그녀의 생령은 본인도 감지하지 못했던 무엇을 갖게 된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나와의 접전을 앞두고 공중에 볼모로 붙들린 희연이의 생령을 걸어놓은 이유는 시시각각으로 희연이를 위협하고 있는 마령들의 모습으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움이 첩첩산중인 지금의 상황을 더욱더 곤혹스럽게 만들려는 마계전령의 책략이었기에…나는 그들의 공세 속에서도 짬을 내어 그녀의 안위를 살펴야 하고,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헛점 조차도 그들은 용납하지 않으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제령사, 그대는 이곳의 무서움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아니, 와보질 않은 사람이 소문만 들었기에 모르는 것과 진배없지, 아니 그런가?’
그녀는 공중에 떠 있는 채로 마계와 무간마청의 공포 스러움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의 기세를 꺾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진기를 소모 시키면서 시간을 끌자는 속셈인 듯 싶었다.
‘이 무간마청을 넘은 제령사는 아무도 없었지. 수도 없는 제령사들이 당신 같은 목적으로 천상계의 도움도 받질 못한 상황에서 홀로 무모하게 들어온 결과, 그것은 한마디로 개죽음 뒤의 영광이 주어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 거야. 역사는 반복되면서도 똑 같은 일을 바보스럽게 되풀이한다고 누군가 말했지. 하나 같이 제령사들은 자네와 나같이 나한비장격술에 의존하고 들어 와서는 개죽음을 하고, 육신까지 빼앗겨 마계전사로 탈바꿈 했으니까. 설령 당신이 이 무간마청을 넘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기점으로 4초옥과 9장릉에 버티고 있는 무시무시한 마계전사가 바로 이곳으로 달려들어 올게야. 그들에게는 끝이란 것이 없고, 고통도 무의미하고, 단지 상대를 소산에 가깝도록 밟아 터뜨려 버리는 잔혹함만이 남아 있어. 자네 생령을 씹어먹는 다는 말 들어봤지? 그래, 그들의 마지막 방법은 자네의 령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 씹어먹은 초절정의 무예를 보여주는 거야. 만일 자네의 령중에서 팔이 씹어 멕혔다면 자네의 몸을 다시 탈취 하더라도 그 순간, 급속도로 어 들어가는 팔을 아무런 방법도 쓰질 못한 채, 지켜봐야 할걸? 멀쩡하던 살이 그 자리에서 썩어 살점이 툭툭 떨어져 나가고, 뼈가 앙상해지는 맛, 이해가 가나? 이 꼴통 양반아?’
무간마청 뿐만이 그 위에는 그 마계전사들이 버티고 있기에 나는 더욱 승산이 없어 보였다. 모두가 날고 긴다는 제령사들 이었을 것이고, 이제는 마계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그 인물들…..나도 자칫 잘못하면 그들의 뒤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옴………..’
마계전령의 주술이 시작되고 있었다. 눈 앞에 바다차람 펼쳐져 있던 마령들이 점차로 그 기세를 드높이면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바로 마령의 사애혼무(死愛魂舞). 그것은 령계의 접전에 있어서 가장 악랄하면서도 파괴력이 막강한 비장의 기술로 일컬어 진다. 이 사애혼무는 령끼리의 싸움에 있어서도 탁월한 공력을 나타내지만 생신을 지닌 인간을 상대로 할 때는 그 영향력을 가히 짐작을 할 수조차 없다고들 했는데…대개 마령 들은 마계 안에서 공중을 떠다니며, 령들 끼리 조우하기도 하고, 서로 령의 부위가 관통되어 지나치기도 한다. 대개의 초보 마령들은 색깔이 약간 어둡지만 이런 조우의 과정을 겪으면 겪을수록 상대의 마성을 무위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익혀 그 색이 점점 거무튀튀하게 변해가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것은 마치 교화 시키려고 집어넣은 전과자들이 감빵 안에서 더욱 잔혹하고, 악랄한 범죄의 기교를 배워 출소하게 되는 현세의 이치와 너무도 흡사했다. 어느 누구는 그런 령의 습성을 바퀴벌레의 생장 같다고도 했다. 알에서 깨어난 바퀴벌레의 새끼들은 온몸과 내장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데, 세상의 더러운 찌꺼기와 부패물들을 먹기 시작하면서 온 몸을 번져 나가는 그 암갈색 표피가 재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퀴벌레는 보다 교묘히 빠른 발로 사방천지 않 뚫고 나가는 곳이 없고, 그 발과 몸으로 더러운 병균을 온 사방에 흩뿌리고 다니는 것이 무척이나 닮았기에…
‘합!’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마계전령을 먼저 꺾든가, 아니면, 마령들의 손아귀에서 진저리 치도록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희연이의 령을 먼저 탈취 하든지, 나에게도 공격의 포문을 열어야 할 시기가 닥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애혼무가 일렁이면서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자, 나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바로 소환수를 부르는 일이었다. 그들도 먼저 섣불리 공수를 펼치지는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팔과 발, 목과 이마에 두른 진언부적에서 뿜어 나오는 섬광으로 인한 것이었다. 나의 공력보다 낮은 령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그 섬광에 빨려 들어가면서 이른바, 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간에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소산(消散) 이라는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몸 안의 진기를 철저히 조절하면서 파초광멸무장(破草光滅武將)이란 소환수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파초광멸무장은 무성하게 널리 펼쳐져 있는 갈대 숲을 단칼에 잘라내어 평야와 길을 내는 것처럼, 온 전신에 초광갑주를 두르고, 무자비한 속도로 내 주위의 마령 들을 빛으로 소산(消散) 시키는 소환수를 의미했다. 마령 들의 휘돌림이 거세어 질수록 내 주위에도 일렁이는 아지랑이 처럼, 소환수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흑암의 기세와 불꽃의 한판 격돌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위기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저 멀리서 떠 있던 마계전령의 두 팔이 공중으로 치켜 올려 졌다.
‘마령들은 들으라. 오늘 우리의 일족에게 칼을 겨누고, 버릇없이 날뛰던 저 제령사 놈을 단번에 생포할 절호의 기회가 왔노니, 아낌없이 나가 싸워라. 야----- 합!’
그녀의 두 손바닥에서 검은 먹구름 같은 것이 소환수들 앞에서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는 마령들 속으로 폭포수 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과 때를 맞추어 마령들은 내 주위와 소환수의 주위를 겹으로 둘러 싸면서 흑암의 기세를 드높여 갔다.
‘강계마천(强界魔遷) 진혼수래(鎭魂隨來)…….도(道)!’
나는 소환수에게 출수의 진언을 내던졌다. 그들의 온 몸에서는 빛으로 둘러 싸인 칼날들이 고슴도치처럼 솟아나오면서 내 주위를 360도 뺑 돌아가면서 포위하고 있는 마령들 속으로 바람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령들의 수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온 천지로 섬광이 뻗쳐 나가면서 흑암의 기세가 꺾여진 풀잎처럼 자지러지는가 했더니만, 또다시 모여드는 마령의 검은 기운은 끝도 없이 나의 주위로 달겨 들어, 나는 계속해서 소환수 들을 불러내고, 내주위로는 마령 들이 찢겨져 나가며, 사라지는 와중에 생기는 이루 말로 형용키 어려운 고약한 냄새가 등천을 하고 있었다. 령들은 알 수 없겠지만 생신을 갖고 있는 나의 오감을 통해 전해 들리는 그 공포스런 마령 들의 울부짖음과 시체 는 듯한 냄새는 전쟁터를 떠도는 피고름 냄새와 화약냄새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마계전령의 올려진 두 팔에서는 이제 검은 광풍마저 몰아치는 듯이 보이고, 산발한 머리는 뻗치는 불꽃처럼 사방으로 휘날리면서 감았던 두 눈까지 부릅뜨는데 보니,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광기를 사방으로 흘리고 있었다. 내 주위의 소환수 1진이 그 기력을 다하고 사라지기 무섭게, 나는 다시 진기를 모아 더 두터운 소환수의 양수겹장을 질러대며, 한발씩 한발씩 희연이를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을 것처럼 주위로 달겨 들어 오는 마령의 층은 시시각각 두터워져 가고,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될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을 즈음,
‘마방진퇴출(魔防進退出)!’
이란 주문과 함께 마계전령의 새로운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마구잡이로 학살에 가까운 살상력으로 마령을 때려부수는 소환수를 집중적으로 에워싸면서, 피라미드 같은 진을 펼치며, 진기를 방출하고 있는 나를 향한, 직접적인 파상공세법을 말했다. 나는 소환수를 지탱하면서도, 나를 향한 마령들의 다른 진법에도 대처하면서, 희연이를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삼중고에 놓이게 되었다. 아직까지 희연이는 공중에 매달린 채, 다른 마령들의 혓바닥 질에 오금을 재리고 있었다. 더 이상 머릿속으로 희연이의 목소리는 들려오질 않고 있었고, 시간이 경과 할수록 혼줄을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서 무공을 연마하지 못한 희연이의 경우에는 나보다 더 위기가 빨리 닥쳐오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양쪽의 협공으로 인해 몸 안의 진기를 다스리는 자제력에 심한 부담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그 때 였다. 허공을 가르는 시커먼 덩어리가 날아들어 오는데, 소환수를 부르려다 마방진퇴출을 잠깐 의식하지 못했던 그 찰나 였다.
‘콰과광…꽝!’
그 덩어리는 나의 왼쪽 어깨에 정확하게 꽂혀 나를 허공에 붕 뜨게 만들었다. 령계 에서의 싸움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이 서있는지 누워 있는지, 아니면 곤두박질 치고 있는지를 분간하지 못할 때다. 왜냐하면 사방에 자신의 위치를 조감해 볼 목표물이 없는 허허로운 공간 한가운데에 그냥 떠있음으로 해서 거꾸로 있다손 쳐도 상대가 나를 향해 거꾸로 대적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되어있는 상황처럼 오해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군가는 그랬다. 령의 상태로 마계에 접어들면 지구의 중력을 느낄 필요가 없지만 지금처럼 나한비장격술을 이용해서 생신의 상태로 마계에 들어간다면 반드시 중력의 영향권 안에서 싸워야 할 것이라고….그럼으로 해서 자신도 모르게 생신을 갖고 있을 경우, 피가 머리로 몰려 급기야 눈알이 터져 버리는 결정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다. 누군가 그랬던가? 우주왕복선을 타고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우주인들은 반드시 지상에서 중심 잡는 훈련을 한다고 말이다. 무자비한 회전과 역회전을 통해 자신이 거꾸로 있는지, 아니면 바로 서있는 것 조차도 구분이 모호해지는 상황이 왔을 때라도 본능적으로 중심을 잡아,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면서 돌진해 들어가는 대기권에서 극히 미소한 각도나마 튕겨져 나가, 영원히 지구로 되돌아 올 수 없는 우주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그런 비상훈련을 통해, 이런 경우 처럼, 시공의 구분이 모호한 상황 하에서도 언제나 조종간의 능숙한 본능적 조작으로, 바른 직립의 복귀를 꾀한다는 것을…..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왼쪽 어깨는 너덜거리는 느낌으로 거의 탈골이 된 듯도 싶었고, 어깨를 타고 가슴 중앙부로 전해져 내려오는 통증의 극심함은 이루 형용키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픔을 곱씹으면서 여유롭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소환수를 이용해서 약진했던 몇 발자욱 마저도 단번에 까먹은 것도 모자라 왼 팔에 내상까지 입었으니 더욱 난감할 따름 이었다.
‘공환마격탈혼(攻還魔擊奪魂)!’
그러나, 가만히 있을 나도 아니었다. 희연이의 목숨이 촌각에 달린 이 지경에 저 극악무도한 마계전령에게 계속해서 공격의 고삐를 넘겨서는 아니 될 말이었다. 나는 소환수의 숫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면서 공중에 떠 있는 마계전령의 가슴팍을 향해 회심의 일 장(掌)을 날렸다. 공환마격탈혼 이라는 공격은 한번의 출수로 생긴 공력의 덩어리가 온도 차이를 감지하고 따라가는 고성능 지대지 열추적 유도탄 처럼 계속해서 적의 주위를 맴돌면서 지속적인 파괴력을 전달하는 집요한 공방수 였다. 서로가 마령과 소환수를 말처럼 부려가면서 내공을 소진하는 마당에, 나만 혼자서 직접적인 그년의 공략에 휘말릴 이유는 없었다. 서로가 두번 씩의 약진공을 주고 받음으로 인해 어지간히 접전은 그 열기를 더해갔고, 마령측도 마령측 나름대로 이 싸움에 어째서 결부되어야 하는 목소리가 간간히 세어 나오는 것을 감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소 부상이 아니라, 최소 소산(消散)이라는 눈 돌아갈 지경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마계전령의 명에 따라야 하는지 불평을 하는 령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것이었다. 소환수의 무지막지한 소산력은 방금 전까지 무간마청에서 시시덕 대던 같은 동갑네기 령들을 단수(單手)에 없애버렸고, 그로 인해 분노하는 무리도 있었지만, 이 관련 없는 싸움에 자신이 어째서 개죽음의 선두에 서야만 하는가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마령들이 늘어났다는 말이 더 옳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소환수들의 약진이 아까 보다 두드러져 보이고 있었고, 나는 희연이의 곁으로 아까 보다 더 근접하게 이동해 갈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서로의 내공이 소모되어가는 정도가 승패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공환마격탈혼의 영향으로 마계전령은 자신의 주위에 먹이감을 발견한 똥파리 처럼 왱왱대며, 공격을 끊임없이 가하고 있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마령들을 제압하여 나에게 전진 시키는 상황에 제동이 걸리고 있었다. 그 의미는 소환수의 선방과 약진을 의미했다. 나는 이쯤에서 결정타를 날려 주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퇴마출계령(退魔出戒令)!’
제령사의 최고 무예중의 하나인 퇴마출계령은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폭발에 따른 팽창력과 그 뒤를 연이은 후폭풍이 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주위의 마령들을 싹 쓸어버리는 겁나게 징한 비기였다. 그러나, 나는 방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퇴마출계령이 채 내 몸을 떠나기도 전에 나는 내 주위를 감싸고, 소환수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마령의 다른 무리들이 서서히 나를 포위하고 있는 것을 눈치 못 채고 있었다. 나의 퇴마출계령이 성공적인 발진을 했다고 여겨지는 순간,
‘포력망실혼(包力亡失魂)!’
나는 속으로 아뿔싸 하고 외쳤지만 이미 늦은 순간 이었다. 마계전령의 세번째 마공은 포력망실혼 이라는 것으로써 상대의 출수가 몸을 떠나기 직전에 그 주위를 진공막 처럼 순식간에 둘러싸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리 파괴력이 좋은 폭탄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투척해야 제대로 효과도 발휘된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증명된 셈이었다. 마령을 향한 나의 강력한 출수는 도리어 나에게 엄청난 내상을 안겨다 주면서 공력소모에다가, 기회상실 마저도 가져오는, 좇 되어버린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온몸의 살갖은 찢어지고, 터져나가고, 그 고통은 울부짖음 만으로는 해결되지도 않았다. 상처를 입었던 왼쪽 어깨는 이미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살이 뻐개지면서 찢어져 버렸고, 몸 안의 기경맥류는 터지고, 찢어져 전신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다 못해 뿜어내는 것과 흡사한 내상을 입고만 것이었다. 팔과 발, 목과 이마에 둘렀던 진언부적의 첨광들이 점차 빛을 잃어가기 시작하고, 무한정으로 풀어질 것 같았던 소환수의 숫자도 내 공력이 소모함에 따라 하나 둘, 마령들의 손에 의해 처단되고,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캬! 내가 기다리고 있었지.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둡구만. 자신의 힘만으로 싸우려다가는 그 힘에 도리어 자기 자신이 당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법도 한데, 않 그런가? 제령사 양반….’
‘더러운 것들….’
가슴속에서 울컥울컥 하면서 내장기관의 내상이 심각 한지, 어지러움증과 함께 목구녕 으로부터 검은 선지피가 꾸역꾸역 올라오고…. 소환수의 수가 급기야 위험할 정도로 줄어들고, 나를 막고 서 있던 방어선 마저 무력화 되어가고 있었다.
‘왜, 제령사 양반, 어디 이제 힘좀 한번 써보시지 그러시나? 내가 처음부터 얘기했지? 너까짓 것쯤이야, 마계전사 들을 불러오지도 않은 채, 내 손에서 끝낼 수 있다고…그래서 내가 벌써 마계전사 들이 머물고 있는 초옥과 장릉에는 더 이상 별볼일 없으니 문을 닫으라고 전갈을 보낸 지 오래야. 너 같은 피래미 새끼 쯤이야. 아 참! 이제 내가 더 이상, 저 년을 붙들고 있어야 될 이유가 없질 않겠어? 시간도 이제 거지반 다 되어가고, 둘러선 소환수도 거지반 없어져 가니 자네 시체만 거두면 모든 게 끝날 테니….’
나는 전신의 기력을 잃고 있었다. 정신까지 가물가물 해지는 것 같았다. 소환수들은 급격히 공세에 밀리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나의 내부에 가득 차 있다고 여기던 진기가 아이러니 하게도 나의 출수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파놓은 함정에 내가 빠지다니! 나는 울분이 치솟아 올랐고, 제령사 로서는 하지 말아야 될 저주까지 마음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마계전사가 되려면 그런 울분과 미움이 가득 차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질 않겠나 말이야! 낄낄낄…….’
그 때였다.
‘강호씨,……강호씨…… 제 말이 들려요?’
희연이의 목소리였다. 그 반가움에 나의 눈에는 눈물마저 고이고 있었다. 그래도 인간의 심성으로 살아 있는 순간동안 짧지만 아름다웠던 기억의 저편에 남아있던 희연이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전신은 물론이고, 온 얼굴은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핏물로 인해서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저를 불러 보세요……’
‘희연아!’
그러자, 희연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대신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온 음성으로 인해 대답을 한 것은 마계전령 이었다.
‘왜? 사사로운 것에 정을 둔 것이 이제야 후회 되나? 내 앞날을 내다 볼 쭐 알기에 이런 상황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싱겁게 끝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지 뭔가? 그래, 저 년이 이 와중에도 그렇게 불러보고 싶나? 어차피 그 정도의 내상으로는 마계초입구를 다시 열고 나갈 기력도 안될 터이니 마지막으로 인간의 생신으로 그 년이랑 상면식이나 하게 해주지. 어차피 마계전사가 되고 나면 니 눔의 허리에 꿰차고 다닐, 그런 년 이겠지만…..’
그러나, 마계전령이 모르는 것도 있기는 했다. 미래의 일은 모두 자기 관점의 운명만이 보인다는 점, 그것이었다. 널부러져 있는 내 눈 앞으로 공중에 매달려 있던 희연이의 령이 서서히 다가왔다. 령이지만 발가벗겨져 공중에 매달린 채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숙연하기 까지 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서 제 령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세요. 어서요. 시간이 없어요…’
희연이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그녀를 품에 안듯이 갈갈이 찢기운 나의 생신 안으로 그녀의 령을 불러들였다. 나 스스로 빙의를 자처한 것이었다.
‘하이구, 눈물 나네. 상면식도 모자라서, 마지막으로 령 으로나마 씹질 이라도 해보겠다는 게야, 뭬야? 내 참 꼴 같잖아서… 얘들아, 사정 볼 것 없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지. 소환수도 없어졌고, 너희들도 보다시피 제령사 저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언부적의 첨광도 소멸된 지 오래다.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저 놈의 전신을 요절내고, 령을 거두어 들여라! 어서!’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죽음을 기다리면서 마음속에서 나에게 간절히 속삭이는 희연이의 음성을 음미하고 있었다. 검은 너울거림은 흉측 하면서도 음흉하게 나의 주위를 맴돌더니만 서서히 내 몸을 감싸 안기 시작하고… 나는 이제 죽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팟!’
어느 한순간 나의 몸 속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실눈을 가까스로 떠보니 눈 앞에는, 접전 전에 나를 꼬드겼던, 쾌락삼매경이 조금씩, 조금씩 펼쳐지고 있었다. 마계 안에서 마령들의 혼신을 단번에 사로잡고 만다는 그 마약과도 같은 쾌락삼매경…..누가 이걸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인지? 싸움을 통해 수고한 마령 들을 위로하는, 때이른 샴페인 따기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나의 시선에도 황홀한 쾌락삼매경의 진풍경이 만장으로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보아도 그 모습은 죽어가는 순간 이었지만 온 정신을 앗아갈 만큼 아름답고 요사스러웠다. 나의 시신을 처리하고 령을 앗아가려는 마령들 조차 움직임을 멈추고 그 쾌락삼매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누구야, 어떤 것들이 감히 마계의 비기를 남발하는 게?’
눈 앞에서 요동 치면서 음란한 춤을 추어대던 수백, 수천의 벌거벗은 여자와 남자들이 이제는 둘러선 마령들의 너울거림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손에 잡힐 듯이 풍만한 여인네의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음탕한 보지들의 행진, 꺼질 것 같지 않게 불뚝 세워 꺼덕대며, 움직이는 남정네의 거포들….마령 들은 저마다 삼매경 안에 차려진 음란의 바다 속으로 기꺼이 혼들을 날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계전령의 고함 같은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차피 마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쾌락삼매경을 누가 선사하든지 간에, 그들에게 있어서 마약은 마약 이었으니까. 죽어가는 나조차도 좇 끝에 신호가 가는 것을 보면 그 음란함의 정도는 죽어가는 사람조차 벌떡 일어나게 만들 정도의 극렬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눈을 떠서 바라다 보았다. 그런데…….
‘아니? 저것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나의 하초를 타고 가는 실발 같은 것이, 누에고치에서 명주실 뽑듯, 온 사방으로 셀 수 없이 퍼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실발은 개개의 마령 에게 연결되고 있었고, 그 실발이 연결된 마령은 쾌락삼매경에 빠져 정신없이 씹질에, 좇질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스스로 쾌락삼매경을? 그러나, 문제는 거기 뿐만이 아니었다. 그 실발을 타고 마령 과의 섹스가 정도를 넘어서기 시작하자, 마성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스란히 앉아서 내 좇을 타고 그 수많은 마성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처지였고…..나는 언뜻 죽어가는 나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 하는 우스꽝스런 오해까지 하고 있었다. 몸을 틀어 내공을 끌어 올리려고 해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진력을 소모한 나로서는, 화가 나지만 그 실발을 타고 역침해 들어오는 마성의 잔혹스러움과 쾌락의 궁극을 조용히 맞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가고마는 구나라는 후회와 서러움이 밀려들어 오는데,
‘강호씨 마음을 열고 마성을 조용히 받아들이세요.’
‘뭐라구?’
‘마성을 받아들이세요.’
‘희연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나 그러는 거니? 이제 이세상에 제령사 윤강호라는 사람은 영원히 없어지고 마계전사만이 남는 거야, 알아?’
‘알아요. 그럼 도대체 이 쾌락삼매경은 누가 펼치고 있는지 알고나 계세요?’
‘네가 하는 것….. 아니었니?’
‘아니에요. 저를 따라 마계로 들어 온 상미가 하고 있는 거에요.’
‘상미가?’
‘그것도 자기의 모든 령이 사그라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말이죠.’
‘그건 무슨 말이지? 령이 사그라 들다니?’
‘자신의 령을 갈갈이 찢어내서 실을 잣고 있는 거라고 해두죠. 그 실속에는 강호씨와 연결하려는 의지가 숨어있지요. 그 실을 통해서 주위에 버티고 있는 많은 마령들을 쾌락삼매경의 미끼로 낚시밥을 걸었구요……그래도 모르시겠어요?’
나는 이해가 않 되고 있었다.
‘상미는….상미는 자신의 령이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 온 령을 바쳐 자신을 갈갈이 찢어 바친 거에요. 이제까지 마군본 으로 살아온 세월과 더불어 다시는 천상으로 갈 수 없음도 알고 있기에,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죄 값음을 하고 싶다고…..그렇게 자신의 령을 내어 놓으면서 스스로 헌령보시(獻靈普施)를 하는 거라구요.’
상미는 자신을 보듬어 주었던 희연이에 대한 마지막 보답으로 그렇게 자신의 령을 제물로 바친 것이었다. 숭고한 희생의 마음으로….
‘그것과 마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길래…. 가만, 그렇다면?’
‘맞아요. 그거에요. 강호씨 스스로 온전히 자신을 버려야 만이 모든 것을 구제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으란 거죠.’
‘그럼, 내가 죽게 될까?’
‘그건 아무도 몰라요. 다만 저렇게 사라져가면서도 끝끝내 우리 두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 헌령보시를 감행하는 상미의 고독한 령을 위해서라도 강호씨는 무언가 해야 되요. 결단코….’
눈 앞에 펼쳐지는 음란한 섹스의 향연은 감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으로 아까 보다 더 극악하고 추잡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의 묘미를 잃지않고 있었다. 아마도 말리는 마계전령의 호통도 아랑곳 하지 않을 만큼, 상미의 쾌락삼매경은 혼을 쏙 빼놓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자극적이었다. 나 또한 그 섹스의 혼탁한 와류에 휩쓸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마계전령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알아낸 앞날의 예측으로 인해 나와의 접전을 자만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마계도 그렇지만 천상계측에서도 자신의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는 미래만이 보여진다는 사실을 나도 잊고 있었기에…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가슴 저 구섞에서 자신의 령이 갈갈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으로 인해 울부짖는 상미의 비명과 그것을 그대로 보면서 들어야만 하는 희연이의 슬픔이 동시에 느껴져 나의 마음도 참담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뇌리 속에는 선릉대사님이 남기셨던 그 글귀가 바위에 각인된 필체처럼 서서히 떠올랐다.
무량지애(無量之愛)…….
나의 가슴속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불사르는 상미의 헌령보시와 나를 위해서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모든 것을 걸고 있는 희연이의 애절함, 그리고, 이제까지 제령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절대 가질 수 없었던, 마령 마저도 용서하는 나의 긍휼이 용솟음 치는 것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물에 흘러 드는 잉크처럼 나의 폐부에는 그 실발을 통해 마령의 추악한 마성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지만 아까와 같은 분노와 울분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마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내일이라고는 없는 그들의 괴로움과 답답함에 대한 나의 동정과 사랑, 그리고 그들로 향한 자비의 마음이 도리어 그들의 마성을 불쌍한 듯이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이미 상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질 않는다. 아마도 쾌락삼매경의 모든 진을 펼치고서 소산한 모양이었다. 나의 령은 불쌍한 마령들의 마성을 걸러주는 역삼투압 필터에 버금가는 효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선릉대사님의 예언은 틀림이 없었다. 나의 목숨까지도 앗아가려는 그 령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갖고서 마성에게 마저도 흔쾌히 육신을 내던지는 순간, 그 무량지애의 의미는 큰 발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이이게….어찌 된 일이야?……도대체….’
나는 이상하게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몸 안에는 이제까지 느껴보질 못했던 충만함이 가득 찼고, 내 하초를 통해 연결된 수천, 수만의 마령들 에게는 정화되어 이제는 백옥같이 순결해진, 마성이 아닌, 순결한 초심이 도리어 마령 쪽으로 번져가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 역순환을 맞이한 마령들 에게는 특이한 모습들이 나타났다. 그 하나하나가 천도를 기다리며 초조해 했던 임종 당시의 제 각각의 순순한 령의 상태로 탈바꿈하여 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 또한 사랑의 위대한 힘이었다. 모두의 몸에서 광채가 발휘되면서 그 광채는 길길이 날뛰고 있는 마계전령의 혼백을 서서히 태워가는 것이었다.
‘으………ㅇ ㅏ ㄱ………..’
마지막까지 구하고 싶었던 것은 마계전령 이었지만 그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었는가 보다. 타들어 소산되어버린 마계전령의 모습을 보고 삼매경과 관계없이 떨어져 있던 마령들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강호씨, 저기를 좀 보세요.’
나는 돌아다 보았다. 그 앞에는 순수한 령으로 바뀌어져 광채를 발휘하고 있는 그 힘으로 인해서 인지는 몰라도 버젓이 희연이가 누워있는 창고 같은 곳을 향해 마계초입구가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나는 천천히 걸어나가듯이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마계를 벗어 나왔다. 마계초입구는 들어갈 때와 다르게 훤하게 열려진 채로 한참을 버티고 있었고, 그 사이 변형된 생령들이 수도 없이 그 입구를 통해 현세상으로 빠져 나왔다. 그들은 마계를 빠져 나오기 무섭게 방안으로 들이비치고 있는 천상계의 통로를 타고 검령을 받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온 하늘을 수놓는 은하수와 같은 장관 이었다. 이윽고 생령의 탈출이 마무리 되어지고 더 이상 빠져 나오는 령이 없어지자, 마계초입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쪽같이 닫히고 말았다. 나는 쓰러져 있는 희연이를 안았다. 령이 빠져나간 희연이의 몸은 무거웠다. 나는 진언을 외면서 희연이의 입을 열고 내 안에 들어가 있는 그녀의 령을 입을 통해 전달 시켰다. 곧 이어 훅하는 내쉼과 함께 희연이가 의식을 되찾고, 나와 그녀는 서로가 얼싸안고 얼마나 오랜 시간, 해가 뜰 때까지 그렇게 있었는지 모른다.
‘강호씨, 정말 꿈만 같아요. 우리 살아있는 거, 맞죠?’
‘응.’
그녀는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하죠?’
‘뭘 어떻게 하긴, 희연이는 희연이의 삶으로, 나는 또다시 제령사의 임무로 돌아가는 거지.’
‘제 얘기 좀 들어 보실래요?’
‘뭘?’
‘우리 그럴 필요 없다구요. 제가 강호씨랑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그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그럼 홍철이는 어떻게 하구?’
‘만일 제가 추호도 홍철이에게 돌아오려고 했다면 상미가 그렇게까지 희생하지 않았을 거에요. 죽음도 불사할 만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홍철이가 아니라 강호씨란 걸 왜 모르세요?’
그러나,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찌 할 수는 없었다. 용안족의 후예로 제령사라는 짐을 짊어진 이상, 여인과 함께 사는 것은 허락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리 용안족 이라고 하더라도….
‘이번에 느낀 것이지만 저에게는 전생을 보는 혜안이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강호씨, 어째서 우리를 용안족 이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나도 정확히 아는 바는 없었다. 그저 령과 친한 용안족을 알아보는 오감을 가졌을 뿐…
‘용안족은 윤회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로 인해 세상에는 악이 그 세력을, 그에 반하여 확장하고 있는 거구요. 그것은 마계의 음모에 불과해요. 신령한 능력을 지닌 용안족과 용안족이 만나 혼인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때부터 특별한 윤회가 시작 되요. 능력 있었던 신령한 용안족의 혼백이 다시 이 세상에 나오는 거죠. 그걸 막기 위해 용안족 끼리는 혼인을 못하게 막아놓은 거에요. 그 원흉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중국의 양귀비가 그 시초에요.’
‘양귀비? 당나라 현종의 애첩, 양귀비?’
‘그래요. 그때까지도 중국은 자신이 대륙을 지배하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믿고 있었죠. 그러나, 대륙에 먼저 발을 들여놓고 세상을 가꾼 민족은 바로 우리 용안족 이었어요.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만주족의 세력 다툼이 역사를 전부 채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중국대륙의 한족과 미국의 인디언, 아시아의 모든 민족은 한국에서 파생되어 나간 우리 용안족이 퍼뜨린 후손들이에요. 자신의 능력이 무언지도 모른 채, 용안족 이라는 이름도 없이 전세계로 살길을 찾아 모험을 하며 나선 우리 한민족은 그 기개가 장대했지요. 소련을 거쳐 그 당시 이어져 있던 알래스카로 들어가 정착한 한민족은 에스키모의 원조가 되었구, 그 밑으로 점점 남하해서 정착한 것이 인디언 이구요. 더 남하한 사람들은 남미의 인디오가 되었죠. 추운 북방을 지나 중국대륙의 중앙부에 정착해서 들에서 야만스럽게 개돼지만도 못하게 굴러먹고 있던 만주족을 교화 시키고 깨우쳤던 것도 우리 한민족 중에서도 용안족 이었어요. 그러나, 땅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 땅에서 자란 음식물들이 그들의 신성과 모험심, 영력들을 감쇄 시키고, 몇 대에 걸쳐 한두 사람 나올까 말까 한 용안족의 신인들, 즉, 제령사가 나올 뿐, 그들은 용안족의 기개를 무슨 전설처럼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구요.’
‘그런데?’
‘유달리 중국의 중남부 지방에 정착한 용안족은 그들만의 특이한 과일을 갖고 있었죠. 그게 용안 이었어요. 그 용안을 껍질째 먹는 것이 용안족의 혜안을 돕는다는 전통 때문이었기에 그들만이 고이고이 모셔오면서 길러 왔던 거죠. 거친 껍질을 까면 그 안에는 포도보다 더 달콤한 하얀 과일이 들어있는데, 아마 강호씨도 먹어봤을 거에요. 그 소문을 전해들은 양귀비가 수도였던 장안과 수백리 길이나 떨어져 있는 우리 용안족의 마을까지 사람들을 보내 매일, 그 용안을 후식으로 먹기 위해 수천의 사람들을 희생시켰죠. 사람들은 그때부터 나라의 시달림에 개죽음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용안을 가꾸는 사람들이 한 둘씩 사라지기 시작하자, 양귀비에게 진상해야 할 용안의 확보를 위해 방방곡곡에 용안족을 보는 즉시 체포하라는 얼토당토한 명령이 내려졌고, 그때부터 우리의 이름은 용안족이 된 거죠. 중국 내에 야만인 처럼 집도 없이 들판에서 양이나 치고 살던 야생족이 바로 만주족이에요. 그에 반한 한족이 바로 용안족의 일부 후손 이었구요. 한족의 문화, 예술은 언제나 그 영력을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꽃을 피웠지만 향락에 약한 습성으로 인해 자멸의 길을 걸었고, 그 바톤을 언제나 나꿔챈 것은 무력의 기세가 등등하던 야만스런 만주족 이었죠. 만주족은 한족에게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그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질투 때문에 언제나 거대한 성곽, 축조물 등에 집착해서 무언가 차세대에게 자신의 족적을 남기려고 과장된 세월을 보내면서 민초들을 괴롭혔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기 위해 전쟁에는 빠짐없이 끼여들다 보니 민심이 이반 되고 급기야 피폐한 나라살림과 내부정적으로 인해 자멸의 길을 걷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권은 한족에게 넘어가 있는 거죠. 지금의 공산주의 중국은 마계의 총본산 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사람의 출산을 공산당이 막고 있는 것이라든가, 종교를 탄압하면서 용안족의 규합을 저지하고 있다 라든가, 용안족의 과거역사가 드러날 까봐 예전의 역사를 날조하질 않나, 이번에 마계에 끌려가면서 용안족의 진정한 번성을 막고 있는 것이 중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처럼 용안족의 신기를 타고 났음에도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귀신에게 들림받을 정도로 영력이 약하다고 여겨지게 했던 것은 그들이 퍼뜨린 유언비어 때문이에요. 진정한 용안족은 용안족 끼리의 혼인으로 완성되고, 그 안에서 뛰어난 제령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거에요. 이제는 많은 수세대를 거쳐오면서 무늬만 용안족도 많고, 신기가 전혀 없는 용안족도 있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역사의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봐요. 강호씨 같은 뛰어난 제령사와 현세인이지만 나 같은 신기를 지닌 용안족의 처녀가 결합한다면 보다 훌륭한 제령사가 태어나게 된다는 윤회의 이치를 알려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제가 어떻게 강호씨 곁을 떠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내 인생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고, 나의 운명도 그 순간부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렇다 저렇다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해가 벌써 뜨나봐요?’
나는 내 앞에 일어나 햇빛을 마주하고 서 있는 그녀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여린 몸을 살며시 껴안아 보았다. 세상이 달라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끝-
P.S.: 누군가 음모처럼 저지르고 있는 엿 같은 역사왜곡, 저도 한번 들이대 봤습니다…..헐…..
미니시리즈 5부작 용안족(眼族)
제 5 부 무량지애(無量之愛)
가슴을 울리는 그 목소리는 바로 희연이가 공중에 묶인 채로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암시였다. 그러나, 마계전령은 그 목소리를 듣질 못하고 있었다. 무예를 익히지도 못한 희연이가 어떻게 령들의 감각을 넘어서는 목소리의 전달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기는 했다.
‘강호씨, 듣고만 계세요. 제가 이곳으로 령의 상태로 붙들려 오고 나서 모든 게 확연해 지기 시작했어요. 강호씨 뿐만이 아니라 저 자신도 용안족 이라는 거, 예전부터 알고 계셨죠? 이제 조금만 더 알고 나면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깨닫게 될 것 같아요. 조금만 시간을 벌어 보세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구요.’
생령의 상태에 놓이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전생을 확연히 들여다 보기도 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꿰뚫기도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용안족인 그녀의 생령은 본인도 감지하지 못했던 무엇을 갖게 된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나와의 접전을 앞두고 공중에 볼모로 붙들린 희연이의 생령을 걸어놓은 이유는 시시각각으로 희연이를 위협하고 있는 마령들의 모습으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움이 첩첩산중인 지금의 상황을 더욱더 곤혹스럽게 만들려는 마계전령의 책략이었기에…나는 그들의 공세 속에서도 짬을 내어 그녀의 안위를 살펴야 하고,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헛점 조차도 그들은 용납하지 않으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제령사, 그대는 이곳의 무서움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아니, 와보질 않은 사람이 소문만 들었기에 모르는 것과 진배없지, 아니 그런가?’
그녀는 공중에 떠 있는 채로 마계와 무간마청의 공포 스러움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의 기세를 꺾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진기를 소모 시키면서 시간을 끌자는 속셈인 듯 싶었다.
‘이 무간마청을 넘은 제령사는 아무도 없었지. 수도 없는 제령사들이 당신 같은 목적으로 천상계의 도움도 받질 못한 상황에서 홀로 무모하게 들어온 결과, 그것은 한마디로 개죽음 뒤의 영광이 주어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 거야. 역사는 반복되면서도 똑 같은 일을 바보스럽게 되풀이한다고 누군가 말했지. 하나 같이 제령사들은 자네와 나같이 나한비장격술에 의존하고 들어 와서는 개죽음을 하고, 육신까지 빼앗겨 마계전사로 탈바꿈 했으니까. 설령 당신이 이 무간마청을 넘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기점으로 4초옥과 9장릉에 버티고 있는 무시무시한 마계전사가 바로 이곳으로 달려들어 올게야. 그들에게는 끝이란 것이 없고, 고통도 무의미하고, 단지 상대를 소산에 가깝도록 밟아 터뜨려 버리는 잔혹함만이 남아 있어. 자네 생령을 씹어먹는 다는 말 들어봤지? 그래, 그들의 마지막 방법은 자네의 령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 씹어먹은 초절정의 무예를 보여주는 거야. 만일 자네의 령중에서 팔이 씹어 멕혔다면 자네의 몸을 다시 탈취 하더라도 그 순간, 급속도로 어 들어가는 팔을 아무런 방법도 쓰질 못한 채, 지켜봐야 할걸? 멀쩡하던 살이 그 자리에서 썩어 살점이 툭툭 떨어져 나가고, 뼈가 앙상해지는 맛, 이해가 가나? 이 꼴통 양반아?’
무간마청 뿐만이 그 위에는 그 마계전사들이 버티고 있기에 나는 더욱 승산이 없어 보였다. 모두가 날고 긴다는 제령사들 이었을 것이고, 이제는 마계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그 인물들…..나도 자칫 잘못하면 그들의 뒤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옴………..’
마계전령의 주술이 시작되고 있었다. 눈 앞에 바다차람 펼쳐져 있던 마령들이 점차로 그 기세를 드높이면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바로 마령의 사애혼무(死愛魂舞). 그것은 령계의 접전에 있어서 가장 악랄하면서도 파괴력이 막강한 비장의 기술로 일컬어 진다. 이 사애혼무는 령끼리의 싸움에 있어서도 탁월한 공력을 나타내지만 생신을 지닌 인간을 상대로 할 때는 그 영향력을 가히 짐작을 할 수조차 없다고들 했는데…대개 마령 들은 마계 안에서 공중을 떠다니며, 령들 끼리 조우하기도 하고, 서로 령의 부위가 관통되어 지나치기도 한다. 대개의 초보 마령들은 색깔이 약간 어둡지만 이런 조우의 과정을 겪으면 겪을수록 상대의 마성을 무위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익혀 그 색이 점점 거무튀튀하게 변해가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것은 마치 교화 시키려고 집어넣은 전과자들이 감빵 안에서 더욱 잔혹하고, 악랄한 범죄의 기교를 배워 출소하게 되는 현세의 이치와 너무도 흡사했다. 어느 누구는 그런 령의 습성을 바퀴벌레의 생장 같다고도 했다. 알에서 깨어난 바퀴벌레의 새끼들은 온몸과 내장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데, 세상의 더러운 찌꺼기와 부패물들을 먹기 시작하면서 온 몸을 번져 나가는 그 암갈색 표피가 재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퀴벌레는 보다 교묘히 빠른 발로 사방천지 않 뚫고 나가는 곳이 없고, 그 발과 몸으로 더러운 병균을 온 사방에 흩뿌리고 다니는 것이 무척이나 닮았기에…
‘합!’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마계전령을 먼저 꺾든가, 아니면, 마령들의 손아귀에서 진저리 치도록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희연이의 령을 먼저 탈취 하든지, 나에게도 공격의 포문을 열어야 할 시기가 닥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애혼무가 일렁이면서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자, 나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바로 소환수를 부르는 일이었다. 그들도 먼저 섣불리 공수를 펼치지는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팔과 발, 목과 이마에 두른 진언부적에서 뿜어 나오는 섬광으로 인한 것이었다. 나의 공력보다 낮은 령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그 섬광에 빨려 들어가면서 이른바, 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간에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소산(消散) 이라는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몸 안의 진기를 철저히 조절하면서 파초광멸무장(破草光滅武將)이란 소환수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파초광멸무장은 무성하게 널리 펼쳐져 있는 갈대 숲을 단칼에 잘라내어 평야와 길을 내는 것처럼, 온 전신에 초광갑주를 두르고, 무자비한 속도로 내 주위의 마령 들을 빛으로 소산(消散) 시키는 소환수를 의미했다. 마령 들의 휘돌림이 거세어 질수록 내 주위에도 일렁이는 아지랑이 처럼, 소환수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흑암의 기세와 불꽃의 한판 격돌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위기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저 멀리서 떠 있던 마계전령의 두 팔이 공중으로 치켜 올려 졌다.
‘마령들은 들으라. 오늘 우리의 일족에게 칼을 겨누고, 버릇없이 날뛰던 저 제령사 놈을 단번에 생포할 절호의 기회가 왔노니, 아낌없이 나가 싸워라. 야----- 합!’
그녀의 두 손바닥에서 검은 먹구름 같은 것이 소환수들 앞에서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는 마령들 속으로 폭포수 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과 때를 맞추어 마령들은 내 주위와 소환수의 주위를 겹으로 둘러 싸면서 흑암의 기세를 드높여 갔다.
‘강계마천(强界魔遷) 진혼수래(鎭魂隨來)…….도(道)!’
나는 소환수에게 출수의 진언을 내던졌다. 그들의 온 몸에서는 빛으로 둘러 싸인 칼날들이 고슴도치처럼 솟아나오면서 내 주위를 360도 뺑 돌아가면서 포위하고 있는 마령들 속으로 바람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령들의 수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온 천지로 섬광이 뻗쳐 나가면서 흑암의 기세가 꺾여진 풀잎처럼 자지러지는가 했더니만, 또다시 모여드는 마령의 검은 기운은 끝도 없이 나의 주위로 달겨 들어, 나는 계속해서 소환수 들을 불러내고, 내주위로는 마령 들이 찢겨져 나가며, 사라지는 와중에 생기는 이루 말로 형용키 어려운 고약한 냄새가 등천을 하고 있었다. 령들은 알 수 없겠지만 생신을 갖고 있는 나의 오감을 통해 전해 들리는 그 공포스런 마령 들의 울부짖음과 시체 는 듯한 냄새는 전쟁터를 떠도는 피고름 냄새와 화약냄새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마계전령의 올려진 두 팔에서는 이제 검은 광풍마저 몰아치는 듯이 보이고, 산발한 머리는 뻗치는 불꽃처럼 사방으로 휘날리면서 감았던 두 눈까지 부릅뜨는데 보니,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광기를 사방으로 흘리고 있었다. 내 주위의 소환수 1진이 그 기력을 다하고 사라지기 무섭게, 나는 다시 진기를 모아 더 두터운 소환수의 양수겹장을 질러대며, 한발씩 한발씩 희연이를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을 것처럼 주위로 달겨 들어 오는 마령의 층은 시시각각 두터워져 가고,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될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을 즈음,
‘마방진퇴출(魔防進退出)!’
이란 주문과 함께 마계전령의 새로운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마구잡이로 학살에 가까운 살상력으로 마령을 때려부수는 소환수를 집중적으로 에워싸면서, 피라미드 같은 진을 펼치며, 진기를 방출하고 있는 나를 향한, 직접적인 파상공세법을 말했다. 나는 소환수를 지탱하면서도, 나를 향한 마령들의 다른 진법에도 대처하면서, 희연이를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삼중고에 놓이게 되었다. 아직까지 희연이는 공중에 매달린 채, 다른 마령들의 혓바닥 질에 오금을 재리고 있었다. 더 이상 머릿속으로 희연이의 목소리는 들려오질 않고 있었고, 시간이 경과 할수록 혼줄을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서 무공을 연마하지 못한 희연이의 경우에는 나보다 더 위기가 빨리 닥쳐오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양쪽의 협공으로 인해 몸 안의 진기를 다스리는 자제력에 심한 부담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그 때 였다. 허공을 가르는 시커먼 덩어리가 날아들어 오는데, 소환수를 부르려다 마방진퇴출을 잠깐 의식하지 못했던 그 찰나 였다.
‘콰과광…꽝!’
그 덩어리는 나의 왼쪽 어깨에 정확하게 꽂혀 나를 허공에 붕 뜨게 만들었다. 령계 에서의 싸움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이 서있는지 누워 있는지, 아니면 곤두박질 치고 있는지를 분간하지 못할 때다. 왜냐하면 사방에 자신의 위치를 조감해 볼 목표물이 없는 허허로운 공간 한가운데에 그냥 떠있음으로 해서 거꾸로 있다손 쳐도 상대가 나를 향해 거꾸로 대적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되어있는 상황처럼 오해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군가는 그랬다. 령의 상태로 마계에 접어들면 지구의 중력을 느낄 필요가 없지만 지금처럼 나한비장격술을 이용해서 생신의 상태로 마계에 들어간다면 반드시 중력의 영향권 안에서 싸워야 할 것이라고….그럼으로 해서 자신도 모르게 생신을 갖고 있을 경우, 피가 머리로 몰려 급기야 눈알이 터져 버리는 결정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다. 누군가 그랬던가? 우주왕복선을 타고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우주인들은 반드시 지상에서 중심 잡는 훈련을 한다고 말이다. 무자비한 회전과 역회전을 통해 자신이 거꾸로 있는지, 아니면 바로 서있는 것 조차도 구분이 모호해지는 상황이 왔을 때라도 본능적으로 중심을 잡아,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면서 돌진해 들어가는 대기권에서 극히 미소한 각도나마 튕겨져 나가, 영원히 지구로 되돌아 올 수 없는 우주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그런 비상훈련을 통해, 이런 경우 처럼, 시공의 구분이 모호한 상황 하에서도 언제나 조종간의 능숙한 본능적 조작으로, 바른 직립의 복귀를 꾀한다는 것을…..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왼쪽 어깨는 너덜거리는 느낌으로 거의 탈골이 된 듯도 싶었고, 어깨를 타고 가슴 중앙부로 전해져 내려오는 통증의 극심함은 이루 형용키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픔을 곱씹으면서 여유롭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소환수를 이용해서 약진했던 몇 발자욱 마저도 단번에 까먹은 것도 모자라 왼 팔에 내상까지 입었으니 더욱 난감할 따름 이었다.
‘공환마격탈혼(攻還魔擊奪魂)!’
그러나, 가만히 있을 나도 아니었다. 희연이의 목숨이 촌각에 달린 이 지경에 저 극악무도한 마계전령에게 계속해서 공격의 고삐를 넘겨서는 아니 될 말이었다. 나는 소환수의 숫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면서 공중에 떠 있는 마계전령의 가슴팍을 향해 회심의 일 장(掌)을 날렸다. 공환마격탈혼 이라는 공격은 한번의 출수로 생긴 공력의 덩어리가 온도 차이를 감지하고 따라가는 고성능 지대지 열추적 유도탄 처럼 계속해서 적의 주위를 맴돌면서 지속적인 파괴력을 전달하는 집요한 공방수 였다. 서로가 마령과 소환수를 말처럼 부려가면서 내공을 소진하는 마당에, 나만 혼자서 직접적인 그년의 공략에 휘말릴 이유는 없었다. 서로가 두번 씩의 약진공을 주고 받음으로 인해 어지간히 접전은 그 열기를 더해갔고, 마령측도 마령측 나름대로 이 싸움에 어째서 결부되어야 하는 목소리가 간간히 세어 나오는 것을 감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소 부상이 아니라, 최소 소산(消散)이라는 눈 돌아갈 지경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마계전령의 명에 따라야 하는지 불평을 하는 령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것이었다. 소환수의 무지막지한 소산력은 방금 전까지 무간마청에서 시시덕 대던 같은 동갑네기 령들을 단수(單手)에 없애버렸고, 그로 인해 분노하는 무리도 있었지만, 이 관련 없는 싸움에 자신이 어째서 개죽음의 선두에 서야만 하는가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마령들이 늘어났다는 말이 더 옳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소환수들의 약진이 아까 보다 두드러져 보이고 있었고, 나는 희연이의 곁으로 아까 보다 더 근접하게 이동해 갈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서로의 내공이 소모되어가는 정도가 승패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공환마격탈혼의 영향으로 마계전령은 자신의 주위에 먹이감을 발견한 똥파리 처럼 왱왱대며, 공격을 끊임없이 가하고 있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마령들을 제압하여 나에게 전진 시키는 상황에 제동이 걸리고 있었다. 그 의미는 소환수의 선방과 약진을 의미했다. 나는 이쯤에서 결정타를 날려 주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퇴마출계령(退魔出戒令)!’
제령사의 최고 무예중의 하나인 퇴마출계령은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폭발에 따른 팽창력과 그 뒤를 연이은 후폭풍이 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주위의 마령들을 싹 쓸어버리는 겁나게 징한 비기였다. 그러나, 나는 방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퇴마출계령이 채 내 몸을 떠나기도 전에 나는 내 주위를 감싸고, 소환수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마령의 다른 무리들이 서서히 나를 포위하고 있는 것을 눈치 못 채고 있었다. 나의 퇴마출계령이 성공적인 발진을 했다고 여겨지는 순간,
‘포력망실혼(包力亡失魂)!’
나는 속으로 아뿔싸 하고 외쳤지만 이미 늦은 순간 이었다. 마계전령의 세번째 마공은 포력망실혼 이라는 것으로써 상대의 출수가 몸을 떠나기 직전에 그 주위를 진공막 처럼 순식간에 둘러싸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리 파괴력이 좋은 폭탄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투척해야 제대로 효과도 발휘된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증명된 셈이었다. 마령을 향한 나의 강력한 출수는 도리어 나에게 엄청난 내상을 안겨다 주면서 공력소모에다가, 기회상실 마저도 가져오는, 좇 되어버린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온몸의 살갖은 찢어지고, 터져나가고, 그 고통은 울부짖음 만으로는 해결되지도 않았다. 상처를 입었던 왼쪽 어깨는 이미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살이 뻐개지면서 찢어져 버렸고, 몸 안의 기경맥류는 터지고, 찢어져 전신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다 못해 뿜어내는 것과 흡사한 내상을 입고만 것이었다. 팔과 발, 목과 이마에 둘렀던 진언부적의 첨광들이 점차 빛을 잃어가기 시작하고, 무한정으로 풀어질 것 같았던 소환수의 숫자도 내 공력이 소모함에 따라 하나 둘, 마령들의 손에 의해 처단되고,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캬! 내가 기다리고 있었지.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둡구만. 자신의 힘만으로 싸우려다가는 그 힘에 도리어 자기 자신이 당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법도 한데, 않 그런가? 제령사 양반….’
‘더러운 것들….’
가슴속에서 울컥울컥 하면서 내장기관의 내상이 심각 한지, 어지러움증과 함께 목구녕 으로부터 검은 선지피가 꾸역꾸역 올라오고…. 소환수의 수가 급기야 위험할 정도로 줄어들고, 나를 막고 서 있던 방어선 마저 무력화 되어가고 있었다.
‘왜, 제령사 양반, 어디 이제 힘좀 한번 써보시지 그러시나? 내가 처음부터 얘기했지? 너까짓 것쯤이야, 마계전사 들을 불러오지도 않은 채, 내 손에서 끝낼 수 있다고…그래서 내가 벌써 마계전사 들이 머물고 있는 초옥과 장릉에는 더 이상 별볼일 없으니 문을 닫으라고 전갈을 보낸 지 오래야. 너 같은 피래미 새끼 쯤이야. 아 참! 이제 내가 더 이상, 저 년을 붙들고 있어야 될 이유가 없질 않겠어? 시간도 이제 거지반 다 되어가고, 둘러선 소환수도 거지반 없어져 가니 자네 시체만 거두면 모든 게 끝날 테니….’
나는 전신의 기력을 잃고 있었다. 정신까지 가물가물 해지는 것 같았다. 소환수들은 급격히 공세에 밀리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나의 내부에 가득 차 있다고 여기던 진기가 아이러니 하게도 나의 출수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파놓은 함정에 내가 빠지다니! 나는 울분이 치솟아 올랐고, 제령사 로서는 하지 말아야 될 저주까지 마음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마계전사가 되려면 그런 울분과 미움이 가득 차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질 않겠나 말이야! 낄낄낄…….’
그 때였다.
‘강호씨,……강호씨…… 제 말이 들려요?’
희연이의 목소리였다. 그 반가움에 나의 눈에는 눈물마저 고이고 있었다. 그래도 인간의 심성으로 살아 있는 순간동안 짧지만 아름다웠던 기억의 저편에 남아있던 희연이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전신은 물론이고, 온 얼굴은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핏물로 인해서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저를 불러 보세요……’
‘희연아!’
그러자, 희연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대신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온 음성으로 인해 대답을 한 것은 마계전령 이었다.
‘왜? 사사로운 것에 정을 둔 것이 이제야 후회 되나? 내 앞날을 내다 볼 쭐 알기에 이런 상황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싱겁게 끝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지 뭔가? 그래, 저 년이 이 와중에도 그렇게 불러보고 싶나? 어차피 그 정도의 내상으로는 마계초입구를 다시 열고 나갈 기력도 안될 터이니 마지막으로 인간의 생신으로 그 년이랑 상면식이나 하게 해주지. 어차피 마계전사가 되고 나면 니 눔의 허리에 꿰차고 다닐, 그런 년 이겠지만…..’
그러나, 마계전령이 모르는 것도 있기는 했다. 미래의 일은 모두 자기 관점의 운명만이 보인다는 점, 그것이었다. 널부러져 있는 내 눈 앞으로 공중에 매달려 있던 희연이의 령이 서서히 다가왔다. 령이지만 발가벗겨져 공중에 매달린 채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숙연하기 까지 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서 제 령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세요. 어서요. 시간이 없어요…’
희연이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그녀를 품에 안듯이 갈갈이 찢기운 나의 생신 안으로 그녀의 령을 불러들였다. 나 스스로 빙의를 자처한 것이었다.
‘하이구, 눈물 나네. 상면식도 모자라서, 마지막으로 령 으로나마 씹질 이라도 해보겠다는 게야, 뭬야? 내 참 꼴 같잖아서… 얘들아, 사정 볼 것 없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지. 소환수도 없어졌고, 너희들도 보다시피 제령사 저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언부적의 첨광도 소멸된 지 오래다.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저 놈의 전신을 요절내고, 령을 거두어 들여라! 어서!’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죽음을 기다리면서 마음속에서 나에게 간절히 속삭이는 희연이의 음성을 음미하고 있었다. 검은 너울거림은 흉측 하면서도 음흉하게 나의 주위를 맴돌더니만 서서히 내 몸을 감싸 안기 시작하고… 나는 이제 죽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팟!’
어느 한순간 나의 몸 속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실눈을 가까스로 떠보니 눈 앞에는, 접전 전에 나를 꼬드겼던, 쾌락삼매경이 조금씩, 조금씩 펼쳐지고 있었다. 마계 안에서 마령들의 혼신을 단번에 사로잡고 만다는 그 마약과도 같은 쾌락삼매경…..누가 이걸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인지? 싸움을 통해 수고한 마령 들을 위로하는, 때이른 샴페인 따기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나의 시선에도 황홀한 쾌락삼매경의 진풍경이 만장으로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보아도 그 모습은 죽어가는 순간 이었지만 온 정신을 앗아갈 만큼 아름답고 요사스러웠다. 나의 시신을 처리하고 령을 앗아가려는 마령들 조차 움직임을 멈추고 그 쾌락삼매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누구야, 어떤 것들이 감히 마계의 비기를 남발하는 게?’
눈 앞에서 요동 치면서 음란한 춤을 추어대던 수백, 수천의 벌거벗은 여자와 남자들이 이제는 둘러선 마령들의 너울거림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손에 잡힐 듯이 풍만한 여인네의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음탕한 보지들의 행진, 꺼질 것 같지 않게 불뚝 세워 꺼덕대며, 움직이는 남정네의 거포들….마령 들은 저마다 삼매경 안에 차려진 음란의 바다 속으로 기꺼이 혼들을 날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계전령의 고함 같은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차피 마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쾌락삼매경을 누가 선사하든지 간에, 그들에게 있어서 마약은 마약 이었으니까. 죽어가는 나조차도 좇 끝에 신호가 가는 것을 보면 그 음란함의 정도는 죽어가는 사람조차 벌떡 일어나게 만들 정도의 극렬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눈을 떠서 바라다 보았다. 그런데…….
‘아니? 저것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나의 하초를 타고 가는 실발 같은 것이, 누에고치에서 명주실 뽑듯, 온 사방으로 셀 수 없이 퍼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실발은 개개의 마령 에게 연결되고 있었고, 그 실발이 연결된 마령은 쾌락삼매경에 빠져 정신없이 씹질에, 좇질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스스로 쾌락삼매경을? 그러나, 문제는 거기 뿐만이 아니었다. 그 실발을 타고 마령 과의 섹스가 정도를 넘어서기 시작하자, 마성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스란히 앉아서 내 좇을 타고 그 수많은 마성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처지였고…..나는 언뜻 죽어가는 나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 하는 우스꽝스런 오해까지 하고 있었다. 몸을 틀어 내공을 끌어 올리려고 해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진력을 소모한 나로서는, 화가 나지만 그 실발을 타고 역침해 들어오는 마성의 잔혹스러움과 쾌락의 궁극을 조용히 맞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가고마는 구나라는 후회와 서러움이 밀려들어 오는데,
‘강호씨 마음을 열고 마성을 조용히 받아들이세요.’
‘뭐라구?’
‘마성을 받아들이세요.’
‘희연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나 그러는 거니? 이제 이세상에 제령사 윤강호라는 사람은 영원히 없어지고 마계전사만이 남는 거야, 알아?’
‘알아요. 그럼 도대체 이 쾌락삼매경은 누가 펼치고 있는지 알고나 계세요?’
‘네가 하는 것….. 아니었니?’
‘아니에요. 저를 따라 마계로 들어 온 상미가 하고 있는 거에요.’
‘상미가?’
‘그것도 자기의 모든 령이 사그라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말이죠.’
‘그건 무슨 말이지? 령이 사그라 들다니?’
‘자신의 령을 갈갈이 찢어내서 실을 잣고 있는 거라고 해두죠. 그 실속에는 강호씨와 연결하려는 의지가 숨어있지요. 그 실을 통해서 주위에 버티고 있는 많은 마령들을 쾌락삼매경의 미끼로 낚시밥을 걸었구요……그래도 모르시겠어요?’
나는 이해가 않 되고 있었다.
‘상미는….상미는 자신의 령이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 온 령을 바쳐 자신을 갈갈이 찢어 바친 거에요. 이제까지 마군본 으로 살아온 세월과 더불어 다시는 천상으로 갈 수 없음도 알고 있기에,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죄 값음을 하고 싶다고…..그렇게 자신의 령을 내어 놓으면서 스스로 헌령보시(獻靈普施)를 하는 거라구요.’
상미는 자신을 보듬어 주었던 희연이에 대한 마지막 보답으로 그렇게 자신의 령을 제물로 바친 것이었다. 숭고한 희생의 마음으로….
‘그것과 마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길래…. 가만, 그렇다면?’
‘맞아요. 그거에요. 강호씨 스스로 온전히 자신을 버려야 만이 모든 것을 구제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으란 거죠.’
‘그럼, 내가 죽게 될까?’
‘그건 아무도 몰라요. 다만 저렇게 사라져가면서도 끝끝내 우리 두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 헌령보시를 감행하는 상미의 고독한 령을 위해서라도 강호씨는 무언가 해야 되요. 결단코….’
눈 앞에 펼쳐지는 음란한 섹스의 향연은 감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으로 아까 보다 더 극악하고 추잡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의 묘미를 잃지않고 있었다. 아마도 말리는 마계전령의 호통도 아랑곳 하지 않을 만큼, 상미의 쾌락삼매경은 혼을 쏙 빼놓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자극적이었다. 나 또한 그 섹스의 혼탁한 와류에 휩쓸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마계전령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알아낸 앞날의 예측으로 인해 나와의 접전을 자만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마계도 그렇지만 천상계측에서도 자신의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는 미래만이 보여진다는 사실을 나도 잊고 있었기에…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가슴 저 구섞에서 자신의 령이 갈갈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으로 인해 울부짖는 상미의 비명과 그것을 그대로 보면서 들어야만 하는 희연이의 슬픔이 동시에 느껴져 나의 마음도 참담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뇌리 속에는 선릉대사님이 남기셨던 그 글귀가 바위에 각인된 필체처럼 서서히 떠올랐다.
무량지애(無量之愛)…….
나의 가슴속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불사르는 상미의 헌령보시와 나를 위해서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모든 것을 걸고 있는 희연이의 애절함, 그리고, 이제까지 제령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절대 가질 수 없었던, 마령 마저도 용서하는 나의 긍휼이 용솟음 치는 것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물에 흘러 드는 잉크처럼 나의 폐부에는 그 실발을 통해 마령의 추악한 마성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지만 아까와 같은 분노와 울분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마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내일이라고는 없는 그들의 괴로움과 답답함에 대한 나의 동정과 사랑, 그리고 그들로 향한 자비의 마음이 도리어 그들의 마성을 불쌍한 듯이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이미 상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질 않는다. 아마도 쾌락삼매경의 모든 진을 펼치고서 소산한 모양이었다. 나의 령은 불쌍한 마령들의 마성을 걸러주는 역삼투압 필터에 버금가는 효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선릉대사님의 예언은 틀림이 없었다. 나의 목숨까지도 앗아가려는 그 령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갖고서 마성에게 마저도 흔쾌히 육신을 내던지는 순간, 그 무량지애의 의미는 큰 발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이이게….어찌 된 일이야?……도대체….’
나는 이상하게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몸 안에는 이제까지 느껴보질 못했던 충만함이 가득 찼고, 내 하초를 통해 연결된 수천, 수만의 마령들 에게는 정화되어 이제는 백옥같이 순결해진, 마성이 아닌, 순결한 초심이 도리어 마령 쪽으로 번져가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 역순환을 맞이한 마령들 에게는 특이한 모습들이 나타났다. 그 하나하나가 천도를 기다리며 초조해 했던 임종 당시의 제 각각의 순순한 령의 상태로 탈바꿈하여 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 또한 사랑의 위대한 힘이었다. 모두의 몸에서 광채가 발휘되면서 그 광채는 길길이 날뛰고 있는 마계전령의 혼백을 서서히 태워가는 것이었다.
‘으………ㅇ ㅏ ㄱ………..’
마지막까지 구하고 싶었던 것은 마계전령 이었지만 그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었는가 보다. 타들어 소산되어버린 마계전령의 모습을 보고 삼매경과 관계없이 떨어져 있던 마령들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강호씨, 저기를 좀 보세요.’
나는 돌아다 보았다. 그 앞에는 순수한 령으로 바뀌어져 광채를 발휘하고 있는 그 힘으로 인해서 인지는 몰라도 버젓이 희연이가 누워있는 창고 같은 곳을 향해 마계초입구가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나는 천천히 걸어나가듯이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마계를 벗어 나왔다. 마계초입구는 들어갈 때와 다르게 훤하게 열려진 채로 한참을 버티고 있었고, 그 사이 변형된 생령들이 수도 없이 그 입구를 통해 현세상으로 빠져 나왔다. 그들은 마계를 빠져 나오기 무섭게 방안으로 들이비치고 있는 천상계의 통로를 타고 검령을 받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온 하늘을 수놓는 은하수와 같은 장관 이었다. 이윽고 생령의 탈출이 마무리 되어지고 더 이상 빠져 나오는 령이 없어지자, 마계초입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쪽같이 닫히고 말았다. 나는 쓰러져 있는 희연이를 안았다. 령이 빠져나간 희연이의 몸은 무거웠다. 나는 진언을 외면서 희연이의 입을 열고 내 안에 들어가 있는 그녀의 령을 입을 통해 전달 시켰다. 곧 이어 훅하는 내쉼과 함께 희연이가 의식을 되찾고, 나와 그녀는 서로가 얼싸안고 얼마나 오랜 시간, 해가 뜰 때까지 그렇게 있었는지 모른다.
‘강호씨, 정말 꿈만 같아요. 우리 살아있는 거, 맞죠?’
‘응.’
그녀는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하죠?’
‘뭘 어떻게 하긴, 희연이는 희연이의 삶으로, 나는 또다시 제령사의 임무로 돌아가는 거지.’
‘제 얘기 좀 들어 보실래요?’
‘뭘?’
‘우리 그럴 필요 없다구요. 제가 강호씨랑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그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그럼 홍철이는 어떻게 하구?’
‘만일 제가 추호도 홍철이에게 돌아오려고 했다면 상미가 그렇게까지 희생하지 않았을 거에요. 죽음도 불사할 만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홍철이가 아니라 강호씨란 걸 왜 모르세요?’
그러나,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찌 할 수는 없었다. 용안족의 후예로 제령사라는 짐을 짊어진 이상, 여인과 함께 사는 것은 허락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리 용안족 이라고 하더라도….
‘이번에 느낀 것이지만 저에게는 전생을 보는 혜안이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강호씨, 어째서 우리를 용안족 이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나도 정확히 아는 바는 없었다. 그저 령과 친한 용안족을 알아보는 오감을 가졌을 뿐…
‘용안족은 윤회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로 인해 세상에는 악이 그 세력을, 그에 반하여 확장하고 있는 거구요. 그것은 마계의 음모에 불과해요. 신령한 능력을 지닌 용안족과 용안족이 만나 혼인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때부터 특별한 윤회가 시작 되요. 능력 있었던 신령한 용안족의 혼백이 다시 이 세상에 나오는 거죠. 그걸 막기 위해 용안족 끼리는 혼인을 못하게 막아놓은 거에요. 그 원흉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중국의 양귀비가 그 시초에요.’
‘양귀비? 당나라 현종의 애첩, 양귀비?’
‘그래요. 그때까지도 중국은 자신이 대륙을 지배하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믿고 있었죠. 그러나, 대륙에 먼저 발을 들여놓고 세상을 가꾼 민족은 바로 우리 용안족 이었어요.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만주족의 세력 다툼이 역사를 전부 채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중국대륙의 한족과 미국의 인디언, 아시아의 모든 민족은 한국에서 파생되어 나간 우리 용안족이 퍼뜨린 후손들이에요. 자신의 능력이 무언지도 모른 채, 용안족 이라는 이름도 없이 전세계로 살길을 찾아 모험을 하며 나선 우리 한민족은 그 기개가 장대했지요. 소련을 거쳐 그 당시 이어져 있던 알래스카로 들어가 정착한 한민족은 에스키모의 원조가 되었구, 그 밑으로 점점 남하해서 정착한 것이 인디언 이구요. 더 남하한 사람들은 남미의 인디오가 되었죠. 추운 북방을 지나 중국대륙의 중앙부에 정착해서 들에서 야만스럽게 개돼지만도 못하게 굴러먹고 있던 만주족을 교화 시키고 깨우쳤던 것도 우리 한민족 중에서도 용안족 이었어요. 그러나, 땅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 땅에서 자란 음식물들이 그들의 신성과 모험심, 영력들을 감쇄 시키고, 몇 대에 걸쳐 한두 사람 나올까 말까 한 용안족의 신인들, 즉, 제령사가 나올 뿐, 그들은 용안족의 기개를 무슨 전설처럼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구요.’
‘그런데?’
‘유달리 중국의 중남부 지방에 정착한 용안족은 그들만의 특이한 과일을 갖고 있었죠. 그게 용안 이었어요. 그 용안을 껍질째 먹는 것이 용안족의 혜안을 돕는다는 전통 때문이었기에 그들만이 고이고이 모셔오면서 길러 왔던 거죠. 거친 껍질을 까면 그 안에는 포도보다 더 달콤한 하얀 과일이 들어있는데, 아마 강호씨도 먹어봤을 거에요. 그 소문을 전해들은 양귀비가 수도였던 장안과 수백리 길이나 떨어져 있는 우리 용안족의 마을까지 사람들을 보내 매일, 그 용안을 후식으로 먹기 위해 수천의 사람들을 희생시켰죠. 사람들은 그때부터 나라의 시달림에 개죽음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용안을 가꾸는 사람들이 한 둘씩 사라지기 시작하자, 양귀비에게 진상해야 할 용안의 확보를 위해 방방곡곡에 용안족을 보는 즉시 체포하라는 얼토당토한 명령이 내려졌고, 그때부터 우리의 이름은 용안족이 된 거죠. 중국 내에 야만인 처럼 집도 없이 들판에서 양이나 치고 살던 야생족이 바로 만주족이에요. 그에 반한 한족이 바로 용안족의 일부 후손 이었구요. 한족의 문화, 예술은 언제나 그 영력을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꽃을 피웠지만 향락에 약한 습성으로 인해 자멸의 길을 걸었고, 그 바톤을 언제나 나꿔챈 것은 무력의 기세가 등등하던 야만스런 만주족 이었죠. 만주족은 한족에게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그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질투 때문에 언제나 거대한 성곽, 축조물 등에 집착해서 무언가 차세대에게 자신의 족적을 남기려고 과장된 세월을 보내면서 민초들을 괴롭혔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기 위해 전쟁에는 빠짐없이 끼여들다 보니 민심이 이반 되고 급기야 피폐한 나라살림과 내부정적으로 인해 자멸의 길을 걷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권은 한족에게 넘어가 있는 거죠. 지금의 공산주의 중국은 마계의 총본산 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사람의 출산을 공산당이 막고 있는 것이라든가, 종교를 탄압하면서 용안족의 규합을 저지하고 있다 라든가, 용안족의 과거역사가 드러날 까봐 예전의 역사를 날조하질 않나, 이번에 마계에 끌려가면서 용안족의 진정한 번성을 막고 있는 것이 중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처럼 용안족의 신기를 타고 났음에도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귀신에게 들림받을 정도로 영력이 약하다고 여겨지게 했던 것은 그들이 퍼뜨린 유언비어 때문이에요. 진정한 용안족은 용안족 끼리의 혼인으로 완성되고, 그 안에서 뛰어난 제령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거에요. 이제는 많은 수세대를 거쳐오면서 무늬만 용안족도 많고, 신기가 전혀 없는 용안족도 있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역사의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봐요. 강호씨 같은 뛰어난 제령사와 현세인이지만 나 같은 신기를 지닌 용안족의 처녀가 결합한다면 보다 훌륭한 제령사가 태어나게 된다는 윤회의 이치를 알려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제가 어떻게 강호씨 곁을 떠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내 인생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고, 나의 운명도 그 순간부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렇다 저렇다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해가 벌써 뜨나봐요?’
나는 내 앞에 일어나 햇빛을 마주하고 서 있는 그녀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여린 몸을 살며시 껴안아 보았다. 세상이 달라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끝-
P.S.: 누군가 음모처럼 저지르고 있는 엿 같은 역사왜곡, 저도 한번 들이대 봤습니다…..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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