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宦官) 카이만
#02-13 : 개조련사 로크란
이미 밤이 깊었지만 라이온테일 중심가는 사방에 널린 불빛들 사이로 수많은 인파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거리에는 여관과 주점, 클럽들이 줄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가격과 서비스의 차이만 있을뿐 이곳들이 취급하는 물건은 모두 똑같았다. 쾌락, 즉 술과 여자.
환락에 어울리는 시간은 밝은 대낮이 아니라 오히려 어두운 밤이었기에 매일밤 이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술취한 사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대로를 오가고 있었고, 길가에는 옷이라고 부르기 힘들정도의 천조각만 몸에 두른 창녀들이 그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으며, 호객하는 아이들이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손님들을 잡아 끌고 있었다.
클럽 "밤고양이"는 고급클럽으로, 돈 뿐만이 아니라 어느정도의 권력이나 지위도 필요한 최고급클럽의 바로 아래등급이라 할만한 업소였다. 즉 붉은사원을 제외하면 평민들이 이용하는 업소중에서 가장 비싼곳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즐비했으나, 역시 고급클럽답게 호객따윈 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입구에는 검은 로브를 걸친 덩치 큰 문지기 둘만이 서있었을 뿐이었다.
손님으로 보이는 한 사나이가 걸어오자 문지기들은 시선을 옮겨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기 시작했다. 5.5크린(181cm)이 넘는 큰키에 건장한 체구를 지닌 사내는, 머리의 양쪽을 파랗게 빡빡 밀었고 남은 윗머리를 올백으로 뒤로 넘겨 묶고 있었다. 그리고 빡빡민 머리의 양쪽과 오른팔에는 문신이 잔뜩 세겨져 있어서 꽤나 거친 인상이라 할 수 있는 남자였다.
"어서오십시오. 회원이십니까?"
"비회원이시면 입장료 1실버를 내셔야합니다."
문지기 두사람이 차례로 말을 마치자 사내는 1실버 은동전 한개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유쾌하게 말했다.
"수고들 하시오 번견동지."
어깨를 으쓱하는 문지기들을 뒤로 하고 안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중년 여인이 만면에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자아 그럼 어떤 아가씨를 원하시는지요?"
간단한 인사를 마친 중년 여인이 사내에게 질문을 하자, 사내는 조금 괴상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장미 한송이를 꺼내어 카운터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 장미꽃에 어울리는 여인을..."
사내의 말에 중년여인은 카운터 안쪽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어 그에게 건내주며 말했다.
"3층 11호 방입니다."
열쇠를 받고서 계단을 오르는 사내의 얼굴에는 조금전의 괴상해 보이는 미소가 더욱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젠장, 누가 생각한건지 암호 하고는..."
사내는 뭔가 불만스럽다는듯이 나직하게 중얼거리곤, 3층 복도끝의 11호라 쓰여진 문을 열었다.
"우후훗, 낭만적이잖아? 여자들은 낭만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이해를 못하는거야 로크란? 흐흥, 둔한 남자같으니라고."
육감적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녹색 동방식드레스(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를 침대위에 길게 늘이고 있는 미녀가 말했다. 그녀는 방의 한 가운대 놓여진 넓직한 하트모양의 침대에서, 커다란 쿠션을 등에 댄체, 절반쯤 누은상태로 앉아있었다.
"..."
로크란이 그녀의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초록빛 눈동자를 피하며 침묵하자, 붉은 머리의 미녀는 자신의 머리칼을 손가락에 빙빙감아대며 말했다.
"아아... 정말 점점 재미없는 남자가 되가는 것같아서 실망이야."
로크란은 허리에 멘 가방에서 큼직한 종이봉투를 꺼내어 들며, 붉은 머리의 미녀 벨라도나에게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여기 "루에고 멘터리"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벨라도나는 살짝 표정을 굳히며 로크란의 보고서를 받아들고선, 곧바로 종이칼로 봉투의 입구를 잘라내고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일부를 제외하고 간단하게 단문으로 써낼 수 있는 형식이어서, 거의 글재주따위와는 거리가 먼 로크란같은 자도 어렵지 않게 써낼 수 있었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보고서를 순식간에 읽어버린 벨라도나는, 그것을 침대 옆에 놓인 탁상위에 올려놓고선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흥, 그럼 오랜만에 만났으니 회포라도 한번 풀어볼까? 어때? 우후훗."
침대에서 몸을 살짝 일으키며 다리를 한 번 꼬으자, 동방식드레스의 틈 사이로 매끈한 다리가 드러났다. 그러나 로크란은 별 관심없다는 투로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럼 다음 일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벨라도나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색기를 듬뿍 담은 목소리로 아양을 부렸다. 한 손으로는 자신의 풍만한 유방을 애무라도 하듯이 부드럽게 주무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음마 서큐비스가 나타난것처럼 도발적이었다.
"아이, 그러지 말고, 정말? 정말 싫어?"
그런 그녀의 치태를 바라보던 로크란이 무덤덤한 얼굴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며 웃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뭐 이것이 이번에 할 "일"이라면야 어쩔 수 없겠죠."
"그만."
하지만 벨라도나는 로크란의 행동을 저지하곤,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탁상위에 놓여진 다른 봉투하나를 꺼내 로크란에게 건내며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황도의 가우프디치에게 브리핑받도록."
"예, 그럼 이만."
봉투를 받자 마자 로크란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로크란이 방을 나가자 벨라도나는 생각했다.
"역시 "아버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는지, 저 남자 꽤 쓸만한 인재로 자라날지도 모르겠어. 그동안 훈련을 많이 받아왔다곤 하지만, 나의 냄새를 맡고도 꿈쩍도 하지 않다니, 제법이잖아?"
어차피 루에고에 대한 정보는 수십년동안 넘쳐나도록 쌓여있었다. 이 보고서의 의의는 사실 "로크란이 제대로된 보고를 써낼 수 있는가?"라는 시험의 일환이었고, 그는 훌륭하게 이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것이었다. 4년간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는지, 상황에 대한 판단, 인물들에 대한 분석, 이러한 데이터에 대한 이용법과 대처법 등등 나무랄 것이 없었다.
벨라도나는 꼬은 다리를 두어번 까닥거리다가는, 탁상위에 놓인 로크란의 보고서를 다시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화라락"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에서 강렬한 불길이 일어나며 보고서를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렸다. 흩어지는 하얀 잿가루 속에서 벨라도나는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재미없어. 아아..."
* * *
여관에서 샤워를 마친 로크란은 봉투를 뜯어 명령서를 꺼냈다. 봉투안에 담긴 종이에는 용병일의 계약서와 밀가루의 발주서 등의 문서가 담겨있었다. 로크란이 문서의 구석의 표시부분에 키워드 주문을 써넣자, 서서히 글자가 사라지고 또 다른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로크란은 침대에 앉아 천천히 명령서를 읽기 시작했고, 세 차례 반복해서 읽고 나서 등불에 명령서를 불태워 버렸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 자신이 부른 창녀가 오길 기다리며 로크란은 나직하게 말했다.
"흐음, 세무부(稅務府) 부상(副相)이라..."
제국의 한 부(府)의 부상이라면 굉장한 고관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크란은 이미 그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장관", 루에고도 상대했었기에 그렇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호르돈 도르벤트라, 도대체 어떤?"
로크란은 그보다는 이번 임무 자체가 이상했기에 의문이 들고 있었다.
지난 일년간 로크란은 이번의 루에고건까지 합쳐 열 가지의 임무를 완수했었다. 어떤 것은 단 몇일만에 끝낼 수 잇었던 것도 있었으나, 이번 임무처럼 몇 개월이 넘는 시일이 걸리는 것도 있었다.
임무들은 천차만별이여서, 퇴역한 노장군의 정부를 유혹해서 그에게 타격을 주는 것, 거상의 딸과 아내를 유혹해서 그에게 타격을 주었던 것, 고관의 애완동물중에서 키메라를 가려내어 그가 눈치체기 전에 제거해버리고 이쪽에서 훈련시킨 다른 키메라로 바꿔치는 것, 딸을 어린시절부터 성폭행해왔던 기사를 자살로 몰아서 죽여버렸던것,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임무들은 처음에 주어질때 확실한 지시가 있었다. 즉 목표는 누구이며, 일정 시일내에, 어떻게 처리하라, 라는 것인데, 이번임무에는 가장 중요한 "어떻게 처리하라"는 지시가 지극히 모호한 내용이었다.
"허점이나 약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활용할 방안을 찾아라. 라니... 흐음, 한낱 심부름개에 불과한 나에게 모두 알아서 하라는 것은 아닐테고?"
물론 황도에 가서 가우프디치에게 보다 임무에 대해 보다 자세한 명령을 받게 되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명령과 목표가 모호한 임무는 처음이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쯧."
로크란은 가볍게 혀를 차며 머리를 박박긁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주어진 임무들도 "비스트마스터(마수사)"라는 자신의 능력과는 별 관계없는 것들이 휠씬 많았었다.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퇴역한 환관의 남자 애인을 유혹하는 것이었는데, 꼭 그것이 아니라도 기둥서방이나 제비, 혹은 건달같은 꼴이 되어야할 일이 많았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여자를 다루는 것 자체는 이전부터 꽤나 즐겨왔었지만, 5년전의 충격때문이었을까? 근래에 들어와서는 마치 어떤 강박관념처럼 여자를 원한다기보다는, 그 여자에게서나 자신에게서나 뭔가 다른 이유를 찾게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몰랐었지만, 아니 몰랐다기보다는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었던 그 기묘한 감각. 살아있는 체로 녹아버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쾌락을 안겨줄 수 있는 여인 벨라도나, 그녀의 농염한 몸짓 속에서 너무나 짧은 단 한순간 동안 스쳐지나가던 그 묘한 눈빛.
아마도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감각. 그 감각에, 육체적으로는 꽤나 깊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그녀와의 관계에서, 자신에게도 그녀에게도 부족했었던 그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흥, 그따위 것, 내가 알 바가 아니겠지..."
로크란은 다시 한번 거세게 머리를 박박긁으며 머리속에 맺힌 빨간머리 미녀의 얼굴을 지웠다.
"으음... 그보다는 "알레아 도르벤트", "라샤 도르벤트", "리샤 도르벤트"라, 결국 내겐 오히려 이쪽이 메인타겟이 되겠군."
체스를 둘 때에도 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주변의 다른 말을 먼저 잡아야하는 법. 그리고 체스와는 달리 잡은 말을 내것으로 하여 쓸 수 있다면, 적의 왕을 쓰러뜨리는 작업은 더욱 쉬운 일이 될 것이었다.
"사냥개"
로크란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창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은 이것이 나의 능력이니까..."
* * *
앞으로 야한장면이 나올려면 한 편쯤 더 남았네요..
야한장면은 15 편쯤에나 나올듯...
뭐 그 이전에 때려치는게 더 속편할것같긴 한데 ㅋㅋ
조회수 보면 .. 으아 속쓰려 ..
#02-13 : 개조련사 로크란
이미 밤이 깊었지만 라이온테일 중심가는 사방에 널린 불빛들 사이로 수많은 인파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거리에는 여관과 주점, 클럽들이 줄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가격과 서비스의 차이만 있을뿐 이곳들이 취급하는 물건은 모두 똑같았다. 쾌락, 즉 술과 여자.
환락에 어울리는 시간은 밝은 대낮이 아니라 오히려 어두운 밤이었기에 매일밤 이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술취한 사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대로를 오가고 있었고, 길가에는 옷이라고 부르기 힘들정도의 천조각만 몸에 두른 창녀들이 그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으며, 호객하는 아이들이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손님들을 잡아 끌고 있었다.
클럽 "밤고양이"는 고급클럽으로, 돈 뿐만이 아니라 어느정도의 권력이나 지위도 필요한 최고급클럽의 바로 아래등급이라 할만한 업소였다. 즉 붉은사원을 제외하면 평민들이 이용하는 업소중에서 가장 비싼곳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즐비했으나, 역시 고급클럽답게 호객따윈 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입구에는 검은 로브를 걸친 덩치 큰 문지기 둘만이 서있었을 뿐이었다.
손님으로 보이는 한 사나이가 걸어오자 문지기들은 시선을 옮겨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기 시작했다. 5.5크린(181cm)이 넘는 큰키에 건장한 체구를 지닌 사내는, 머리의 양쪽을 파랗게 빡빡 밀었고 남은 윗머리를 올백으로 뒤로 넘겨 묶고 있었다. 그리고 빡빡민 머리의 양쪽과 오른팔에는 문신이 잔뜩 세겨져 있어서 꽤나 거친 인상이라 할 수 있는 남자였다.
"어서오십시오. 회원이십니까?"
"비회원이시면 입장료 1실버를 내셔야합니다."
문지기 두사람이 차례로 말을 마치자 사내는 1실버 은동전 한개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유쾌하게 말했다.
"수고들 하시오 번견동지."
어깨를 으쓱하는 문지기들을 뒤로 하고 안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중년 여인이 만면에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자아 그럼 어떤 아가씨를 원하시는지요?"
간단한 인사를 마친 중년 여인이 사내에게 질문을 하자, 사내는 조금 괴상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장미 한송이를 꺼내어 카운터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 장미꽃에 어울리는 여인을..."
사내의 말에 중년여인은 카운터 안쪽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어 그에게 건내주며 말했다.
"3층 11호 방입니다."
열쇠를 받고서 계단을 오르는 사내의 얼굴에는 조금전의 괴상해 보이는 미소가 더욱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젠장, 누가 생각한건지 암호 하고는..."
사내는 뭔가 불만스럽다는듯이 나직하게 중얼거리곤, 3층 복도끝의 11호라 쓰여진 문을 열었다.
"우후훗, 낭만적이잖아? 여자들은 낭만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이해를 못하는거야 로크란? 흐흥, 둔한 남자같으니라고."
육감적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녹색 동방식드레스(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를 침대위에 길게 늘이고 있는 미녀가 말했다. 그녀는 방의 한 가운대 놓여진 넓직한 하트모양의 침대에서, 커다란 쿠션을 등에 댄체, 절반쯤 누은상태로 앉아있었다.
"..."
로크란이 그녀의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초록빛 눈동자를 피하며 침묵하자, 붉은 머리의 미녀는 자신의 머리칼을 손가락에 빙빙감아대며 말했다.
"아아... 정말 점점 재미없는 남자가 되가는 것같아서 실망이야."
로크란은 허리에 멘 가방에서 큼직한 종이봉투를 꺼내어 들며, 붉은 머리의 미녀 벨라도나에게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여기 "루에고 멘터리"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벨라도나는 살짝 표정을 굳히며 로크란의 보고서를 받아들고선, 곧바로 종이칼로 봉투의 입구를 잘라내고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일부를 제외하고 간단하게 단문으로 써낼 수 있는 형식이어서, 거의 글재주따위와는 거리가 먼 로크란같은 자도 어렵지 않게 써낼 수 있었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보고서를 순식간에 읽어버린 벨라도나는, 그것을 침대 옆에 놓인 탁상위에 올려놓고선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흥, 그럼 오랜만에 만났으니 회포라도 한번 풀어볼까? 어때? 우후훗."
침대에서 몸을 살짝 일으키며 다리를 한 번 꼬으자, 동방식드레스의 틈 사이로 매끈한 다리가 드러났다. 그러나 로크란은 별 관심없다는 투로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럼 다음 일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벨라도나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색기를 듬뿍 담은 목소리로 아양을 부렸다. 한 손으로는 자신의 풍만한 유방을 애무라도 하듯이 부드럽게 주무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음마 서큐비스가 나타난것처럼 도발적이었다.
"아이, 그러지 말고, 정말? 정말 싫어?"
그런 그녀의 치태를 바라보던 로크란이 무덤덤한 얼굴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며 웃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뭐 이것이 이번에 할 "일"이라면야 어쩔 수 없겠죠."
"그만."
하지만 벨라도나는 로크란의 행동을 저지하곤,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탁상위에 놓여진 다른 봉투하나를 꺼내 로크란에게 건내며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황도의 가우프디치에게 브리핑받도록."
"예, 그럼 이만."
봉투를 받자 마자 로크란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로크란이 방을 나가자 벨라도나는 생각했다.
"역시 "아버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는지, 저 남자 꽤 쓸만한 인재로 자라날지도 모르겠어. 그동안 훈련을 많이 받아왔다곤 하지만, 나의 냄새를 맡고도 꿈쩍도 하지 않다니, 제법이잖아?"
어차피 루에고에 대한 정보는 수십년동안 넘쳐나도록 쌓여있었다. 이 보고서의 의의는 사실 "로크란이 제대로된 보고를 써낼 수 있는가?"라는 시험의 일환이었고, 그는 훌륭하게 이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것이었다. 4년간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는지, 상황에 대한 판단, 인물들에 대한 분석, 이러한 데이터에 대한 이용법과 대처법 등등 나무랄 것이 없었다.
벨라도나는 꼬은 다리를 두어번 까닥거리다가는, 탁상위에 놓인 로크란의 보고서를 다시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화라락"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에서 강렬한 불길이 일어나며 보고서를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렸다. 흩어지는 하얀 잿가루 속에서 벨라도나는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재미없어. 아아..."
* * *
여관에서 샤워를 마친 로크란은 봉투를 뜯어 명령서를 꺼냈다. 봉투안에 담긴 종이에는 용병일의 계약서와 밀가루의 발주서 등의 문서가 담겨있었다. 로크란이 문서의 구석의 표시부분에 키워드 주문을 써넣자, 서서히 글자가 사라지고 또 다른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로크란은 침대에 앉아 천천히 명령서를 읽기 시작했고, 세 차례 반복해서 읽고 나서 등불에 명령서를 불태워 버렸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 자신이 부른 창녀가 오길 기다리며 로크란은 나직하게 말했다.
"흐음, 세무부(稅務府) 부상(副相)이라..."
제국의 한 부(府)의 부상이라면 굉장한 고관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크란은 이미 그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장관", 루에고도 상대했었기에 그렇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호르돈 도르벤트라, 도대체 어떤?"
로크란은 그보다는 이번 임무 자체가 이상했기에 의문이 들고 있었다.
지난 일년간 로크란은 이번의 루에고건까지 합쳐 열 가지의 임무를 완수했었다. 어떤 것은 단 몇일만에 끝낼 수 잇었던 것도 있었으나, 이번 임무처럼 몇 개월이 넘는 시일이 걸리는 것도 있었다.
임무들은 천차만별이여서, 퇴역한 노장군의 정부를 유혹해서 그에게 타격을 주는 것, 거상의 딸과 아내를 유혹해서 그에게 타격을 주었던 것, 고관의 애완동물중에서 키메라를 가려내어 그가 눈치체기 전에 제거해버리고 이쪽에서 훈련시킨 다른 키메라로 바꿔치는 것, 딸을 어린시절부터 성폭행해왔던 기사를 자살로 몰아서 죽여버렸던것,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임무들은 처음에 주어질때 확실한 지시가 있었다. 즉 목표는 누구이며, 일정 시일내에, 어떻게 처리하라, 라는 것인데, 이번임무에는 가장 중요한 "어떻게 처리하라"는 지시가 지극히 모호한 내용이었다.
"허점이나 약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활용할 방안을 찾아라. 라니... 흐음, 한낱 심부름개에 불과한 나에게 모두 알아서 하라는 것은 아닐테고?"
물론 황도에 가서 가우프디치에게 보다 임무에 대해 보다 자세한 명령을 받게 되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명령과 목표가 모호한 임무는 처음이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쯧."
로크란은 가볍게 혀를 차며 머리를 박박긁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주어진 임무들도 "비스트마스터(마수사)"라는 자신의 능력과는 별 관계없는 것들이 휠씬 많았었다.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퇴역한 환관의 남자 애인을 유혹하는 것이었는데, 꼭 그것이 아니라도 기둥서방이나 제비, 혹은 건달같은 꼴이 되어야할 일이 많았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여자를 다루는 것 자체는 이전부터 꽤나 즐겨왔었지만, 5년전의 충격때문이었을까? 근래에 들어와서는 마치 어떤 강박관념처럼 여자를 원한다기보다는, 그 여자에게서나 자신에게서나 뭔가 다른 이유를 찾게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몰랐었지만, 아니 몰랐다기보다는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었던 그 기묘한 감각. 살아있는 체로 녹아버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쾌락을 안겨줄 수 있는 여인 벨라도나, 그녀의 농염한 몸짓 속에서 너무나 짧은 단 한순간 동안 스쳐지나가던 그 묘한 눈빛.
아마도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감각. 그 감각에, 육체적으로는 꽤나 깊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그녀와의 관계에서, 자신에게도 그녀에게도 부족했었던 그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흥, 그따위 것, 내가 알 바가 아니겠지..."
로크란은 다시 한번 거세게 머리를 박박긁으며 머리속에 맺힌 빨간머리 미녀의 얼굴을 지웠다.
"으음... 그보다는 "알레아 도르벤트", "라샤 도르벤트", "리샤 도르벤트"라, 결국 내겐 오히려 이쪽이 메인타겟이 되겠군."
체스를 둘 때에도 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주변의 다른 말을 먼저 잡아야하는 법. 그리고 체스와는 달리 잡은 말을 내것으로 하여 쓸 수 있다면, 적의 왕을 쓰러뜨리는 작업은 더욱 쉬운 일이 될 것이었다.
"사냥개"
로크란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창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은 이것이 나의 능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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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야한장면이 나올려면 한 편쯤 더 남았네요..
야한장면은 15 편쯤에나 나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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