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2. 악몽의 수학여행 이라니…
“후우….”
나는 커다랗게 심호흡을 했다. 에린에게로 호언장담과도 같은 말을 내뱉은 직후로부터 약 30분만에 ‘도어 키’ 라는 물건과 함께 문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으음. 뭔가 좀 더 근본적인걸 묻고싶지만…에린은 열쇠만 달랑 주고는 사라져 버렸고…….”
자신감 넘치게 대답을 하긴 했지만 막상 시작된다고 생각하자 긴장되는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무려 [오프닝 체험판] 이라고 말해주었던 그 끔찍한 광경과 괴물의 습격은 지금도 하나의 공포로써 나의 뇌리에 깊숙이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써 호흡을 가라앉힌 뒤 오른손에 쥐어진 열쇠 ‘도어 키’를 내려다 본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거무튀튀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쇠.
단어의 뜻 그대로 해석해도 문 열쇠 정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도어 키’ 는 볼품없는 외형이었지만, 사실은 꽤나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세상 곳곳에는 웨이포인트 라는 것이 있는데, 오로지 플레이어만이 이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이 웨이포인트는 한번만 정보를 기록해두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바로 ‘도어 키’ 인 것이다.
한마디로 ‘도어 키’ 는 각 필드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하이패스인 셈이다.
“과연, 여기는 이 키에 등록된건 이것 하나 뿐인 모양이네.”
다시 돌아온 5평 남짓의 허름한 방안. 그중에서도 유독 낡아보이는 나무문의 손잡이에 내장 된 열쇠구멍으로 도어키를 박아넣자마자 상태창 때와 마찬가지의 디자인을 한 홀로그램 페이지가 생성되며 떠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의 상단으로는 오로지 한 개의 웨이포인트만이 생성된 채로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웨이포인트 0. (연습게임 필드) - 악몽의 수학여행]
‘악몽의 수학여행이라…제목부터가 노골적이네.’
나는 재미없는 농담이라 생각하며 악몽의 수학여행 필드를 클릭했다. 그러자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던 글귀가 붉은색으로 변하며 짙은 색채를 머금는다.
선택이 되었다는 의미. 그에 나는 또 한번의 심호흡을 한 뒤에 도어키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찰칵-
도어키가 비틀어짐과 동시에 문고리 내장형 자물쇠 역시도 우측으로 비틀어지며 무언가 잠금장치가 해제 되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럼 이제 정말로 가볼까.”
스스로를 북돋우는 듯한 말과 함께 나는 그대로 문고리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아무런 저항없이 열려지는 문. 열려진 문의 뒤편으로 보이는 광경은.
고오오오오-
처음 메일에서 무심결에 클릭했던 『미궁』 의 초대 편지에 드러나 있던 블랙홀과 닮은 소용돌이였다.
흰색의 바탕에 검색의 줄이 그어진 형태로 돌아가는 소용돌이는 맞닿는 무엇이라도 흔적도 없이 삼켜버릴 것처럼 신음과 함께 스스로의 몸을 굴리고 있었다.
꿀꺽,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눈앞에서 돌아가는 소용돌이를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이건 안전한걸까?
-혹시 분쇄기처럼 맞닿는 모든걸 분쇄 해버리는건 아닐까?
-만약 블랙홀이라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
짧은 순간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혁은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그러나 그 긴장감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마치 폭발할 것 같이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다.
산소가 유입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풀어 오르는 가슴. 이내 그것이 최대가 되는 순간, 나는 번뜩! 하고 눈을 치켜뜨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좋아! 가는거야! 남자가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호기로운 외침과 함께 나는 마침내 소용돌이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 들어갔다.
번쩍-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자 마자 나는 시야가 밝게 물들며 채워져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그다지 두렵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었던 때처럼 더없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
단 한줌의 긴장감 마저도 누그러뜨리며 끌어안는 소용돌이의 기류 안에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겨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그 속에서 나는 어느새 누군가의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
올해로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서는 민혁은 기본적으로 아웃사이더였다. 다른 의미로 보자면 왕따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그 포지션을 택했다는 점에서 왕따라는 미묘하게 다른 위치. 하지만 민혁은 그 위치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스스로가 원한 위치이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낭비를 싫어하는 그의 성격상 타인과 어울린다거나 청춘을 불사르는 특별활동을 한다거나 하는건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친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인간인 이상 대화를 나누는 녀석 정도야 한 두명 정도 있었지만, 언제 사라져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사이.
그걸 일반적인 관점으로 보자면야 그야말로 참담한 고교생활을 보낸다고 할 수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지금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아웃사이더를 택했기에 애초에 모임 같은것에 귀찮게 부르지 않는다. 타인과 깊숙이 얽혀있지 않기 때문에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걱정도 없었다.
딱히 떠올리는 꿈도, 즐기는 취미도, 특기도 없는 민혁은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학여행은 정말이지 귀찮다고 생각했다.
생각 같아서는 빠지고 싶었지만, 그것만큼은 의지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부모님은 그런걸 바라지 않을테니까. 요컨대 이번 수학여행은 그에게 있어서 불가항력인 것이다.
-하는 수 없지. 뭐, 어차피 이동에 불편함이 있을 뿐. 거기서도 학교에서의 생활이랑 별로 다를 바는 없을테니까.
민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늘 하던 것처럼, 낭비없이, 무관심하게 보내면 된다고,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삶은 본인의 의지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
“으음….”
수학여행 이틀째.
민혁은 왠지모르게 몸이 축 늘어진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학교에서 단체로 예약을 넣어 대절한 콘도의 깨끗한 천장이 보인다.
다소 지저분한 그의 집과는 달리 관리가 잘 된 듯 곰팡이는커녕 먼지 한톨 보이지 않는 깨끗한 천장에 민혁은 손등을 이마에 얹은채로 멍하게 누워있다가,
“이런 식이로군.”
뜬금없는 대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 밤새 떠들어대던 동급생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민혁은, 아니 민혁의 껍질을 뒤집어 쓰게 된 나는 묘한 회귀감 같은 것을 느끼며 슬며시 허벅지에 걸려있는 이불더미를 털어냈다.
‘설마하니 꿈으로 오프닝을 보여줄 줄이야. 진짜 목숨이 걸려있다는 걸 제외하고는 정말로 게임에 충실하군 그래.’
간밤에 잠을 잘못 잔 것인지, 유난히도 뻐근거리는 목덜미를 주무르며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상황은 오프닝에서 꿈처럼 들여다 보았던 이 ‘민혁’ 이라는 녀석의 몸에 들어와 있는 상태.
수학여행 중이라는 청춘이 불타오르는 시츄에이션에 처해있는 중이었지만, 악몽의 수학여행이라는 제목을 고려해보면 평범하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라는 결론이 나오진 않을터였다.
“일단은 여기서 나가야겠어.”
나는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학우들의 시체(?)들을 요령좋게 지나쳐 밖으로 나왔다.
“후우….”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밖으로 빠져나오자 서늘한 공기와 함께 익숙한 구조의 복도가 보인다. 아직은 새벽공기가 감도는 이른 시간이기 때문일까. 어스름한 복도에는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군. 정말로 내가 민혁이라는 놈이 된 것 같잖아.’
지금 내가 격고 있는 기분은 단순히 어떠한 게임의 캐릭터를 조종한다는 개념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범주를 지니고 있었다. 굳이 알아도 될 필요가 없는 시시콜콜한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잉여하기 그지없었던 ‘민혁’ 의 사고관까지.
그 덕분일까? 갈수록 혼란스러워가는 상념에 나는 조금은 머리가 어질거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의 분위기상. 또한 다년간 쌓아온 판타지 소설 작가로써의 경험상. 얼마 지나지 않아서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나에게 생존을 필요로 하는 위협이 될 어떠한 것이겠지.
연습게임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까지는 벌어질 것 같지 않았지만, 어디에나 예외 없이 돌발 상황이라는 것은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럴 때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민혁’ 으로써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콘도의 구조를 몰라서 헤매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선명해져가는 ‘민혁’ 본인의 기억을 조율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나는 커다랗게 심호흡을 했다. 에린에게로 호언장담과도 같은 말을 내뱉은 직후로부터 약 30분만에 ‘도어 키’ 라는 물건과 함께 문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으음. 뭔가 좀 더 근본적인걸 묻고싶지만…에린은 열쇠만 달랑 주고는 사라져 버렸고…….”
자신감 넘치게 대답을 하긴 했지만 막상 시작된다고 생각하자 긴장되는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무려 [오프닝 체험판] 이라고 말해주었던 그 끔찍한 광경과 괴물의 습격은 지금도 하나의 공포로써 나의 뇌리에 깊숙이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써 호흡을 가라앉힌 뒤 오른손에 쥐어진 열쇠 ‘도어 키’를 내려다 본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거무튀튀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쇠.
단어의 뜻 그대로 해석해도 문 열쇠 정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도어 키’ 는 볼품없는 외형이었지만, 사실은 꽤나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세상 곳곳에는 웨이포인트 라는 것이 있는데, 오로지 플레이어만이 이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이 웨이포인트는 한번만 정보를 기록해두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바로 ‘도어 키’ 인 것이다.
한마디로 ‘도어 키’ 는 각 필드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하이패스인 셈이다.
“과연, 여기는 이 키에 등록된건 이것 하나 뿐인 모양이네.”
다시 돌아온 5평 남짓의 허름한 방안. 그중에서도 유독 낡아보이는 나무문의 손잡이에 내장 된 열쇠구멍으로 도어키를 박아넣자마자 상태창 때와 마찬가지의 디자인을 한 홀로그램 페이지가 생성되며 떠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의 상단으로는 오로지 한 개의 웨이포인트만이 생성된 채로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웨이포인트 0. (연습게임 필드) - 악몽의 수학여행]
‘악몽의 수학여행이라…제목부터가 노골적이네.’
나는 재미없는 농담이라 생각하며 악몽의 수학여행 필드를 클릭했다. 그러자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던 글귀가 붉은색으로 변하며 짙은 색채를 머금는다.
선택이 되었다는 의미. 그에 나는 또 한번의 심호흡을 한 뒤에 도어키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찰칵-
도어키가 비틀어짐과 동시에 문고리 내장형 자물쇠 역시도 우측으로 비틀어지며 무언가 잠금장치가 해제 되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럼 이제 정말로 가볼까.”
스스로를 북돋우는 듯한 말과 함께 나는 그대로 문고리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아무런 저항없이 열려지는 문. 열려진 문의 뒤편으로 보이는 광경은.
고오오오오-
처음 메일에서 무심결에 클릭했던 『미궁』 의 초대 편지에 드러나 있던 블랙홀과 닮은 소용돌이였다.
흰색의 바탕에 검색의 줄이 그어진 형태로 돌아가는 소용돌이는 맞닿는 무엇이라도 흔적도 없이 삼켜버릴 것처럼 신음과 함께 스스로의 몸을 굴리고 있었다.
꿀꺽,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눈앞에서 돌아가는 소용돌이를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이건 안전한걸까?
-혹시 분쇄기처럼 맞닿는 모든걸 분쇄 해버리는건 아닐까?
-만약 블랙홀이라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
짧은 순간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혁은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그러나 그 긴장감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마치 폭발할 것 같이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다.
산소가 유입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풀어 오르는 가슴. 이내 그것이 최대가 되는 순간, 나는 번뜩! 하고 눈을 치켜뜨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좋아! 가는거야! 남자가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호기로운 외침과 함께 나는 마침내 소용돌이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 들어갔다.
번쩍-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자 마자 나는 시야가 밝게 물들며 채워져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그다지 두렵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었던 때처럼 더없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
단 한줌의 긴장감 마저도 누그러뜨리며 끌어안는 소용돌이의 기류 안에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겨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그 속에서 나는 어느새 누군가의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
올해로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서는 민혁은 기본적으로 아웃사이더였다. 다른 의미로 보자면 왕따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그 포지션을 택했다는 점에서 왕따라는 미묘하게 다른 위치. 하지만 민혁은 그 위치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스스로가 원한 위치이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낭비를 싫어하는 그의 성격상 타인과 어울린다거나 청춘을 불사르는 특별활동을 한다거나 하는건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친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인간인 이상 대화를 나누는 녀석 정도야 한 두명 정도 있었지만, 언제 사라져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사이.
그걸 일반적인 관점으로 보자면야 그야말로 참담한 고교생활을 보낸다고 할 수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지금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아웃사이더를 택했기에 애초에 모임 같은것에 귀찮게 부르지 않는다. 타인과 깊숙이 얽혀있지 않기 때문에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걱정도 없었다.
딱히 떠올리는 꿈도, 즐기는 취미도, 특기도 없는 민혁은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학여행은 정말이지 귀찮다고 생각했다.
생각 같아서는 빠지고 싶었지만, 그것만큼은 의지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부모님은 그런걸 바라지 않을테니까. 요컨대 이번 수학여행은 그에게 있어서 불가항력인 것이다.
-하는 수 없지. 뭐, 어차피 이동에 불편함이 있을 뿐. 거기서도 학교에서의 생활이랑 별로 다를 바는 없을테니까.
민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늘 하던 것처럼, 낭비없이, 무관심하게 보내면 된다고,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삶은 본인의 의지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
“으음….”
수학여행 이틀째.
민혁은 왠지모르게 몸이 축 늘어진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학교에서 단체로 예약을 넣어 대절한 콘도의 깨끗한 천장이 보인다.
다소 지저분한 그의 집과는 달리 관리가 잘 된 듯 곰팡이는커녕 먼지 한톨 보이지 않는 깨끗한 천장에 민혁은 손등을 이마에 얹은채로 멍하게 누워있다가,
“이런 식이로군.”
뜬금없는 대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 밤새 떠들어대던 동급생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민혁은, 아니 민혁의 껍질을 뒤집어 쓰게 된 나는 묘한 회귀감 같은 것을 느끼며 슬며시 허벅지에 걸려있는 이불더미를 털어냈다.
‘설마하니 꿈으로 오프닝을 보여줄 줄이야. 진짜 목숨이 걸려있다는 걸 제외하고는 정말로 게임에 충실하군 그래.’
간밤에 잠을 잘못 잔 것인지, 유난히도 뻐근거리는 목덜미를 주무르며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상황은 오프닝에서 꿈처럼 들여다 보았던 이 ‘민혁’ 이라는 녀석의 몸에 들어와 있는 상태.
수학여행 중이라는 청춘이 불타오르는 시츄에이션에 처해있는 중이었지만, 악몽의 수학여행이라는 제목을 고려해보면 평범하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라는 결론이 나오진 않을터였다.
“일단은 여기서 나가야겠어.”
나는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학우들의 시체(?)들을 요령좋게 지나쳐 밖으로 나왔다.
“후우….”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밖으로 빠져나오자 서늘한 공기와 함께 익숙한 구조의 복도가 보인다. 아직은 새벽공기가 감도는 이른 시간이기 때문일까. 어스름한 복도에는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군. 정말로 내가 민혁이라는 놈이 된 것 같잖아.’
지금 내가 격고 있는 기분은 단순히 어떠한 게임의 캐릭터를 조종한다는 개념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범주를 지니고 있었다. 굳이 알아도 될 필요가 없는 시시콜콜한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잉여하기 그지없었던 ‘민혁’ 의 사고관까지.
그 덕분일까? 갈수록 혼란스러워가는 상념에 나는 조금은 머리가 어질거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의 분위기상. 또한 다년간 쌓아온 판타지 소설 작가로써의 경험상. 얼마 지나지 않아서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나에게 생존을 필요로 하는 위협이 될 어떠한 것이겠지.
연습게임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까지는 벌어질 것 같지 않았지만, 어디에나 예외 없이 돌발 상황이라는 것은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럴 때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민혁’ 으로써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콘도의 구조를 몰라서 헤매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선명해져가는 ‘민혁’ 본인의 기억을 조율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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