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인신매매 길드
화려한 내실. 벽 곳곳에는 황금과 비싼 향목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고, 벽에는 복잡한 무늬의 우아한 비단 벽지가 발라져있다. 무엇보다 하나에 몇 실버는 할 듯한 굵고 투명한 밀랍의 초 수십개가 황금 촛대에 꽃힌 채 방 곳곳을 빠짐없이 비추어주고 있다. 귀족이라도 어지간해서는 누릴 수 없는 사치로 도배된 듯한 방이다.
“아앙... 아앙... 흑... 흐흑...”
그 방 한가운데 분홍빛 비단으로 베일이 쳐진 침대에서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아아아앙... 아앙.... 하항... 흑...”
“하학... 학... 아아앙... 항.... 하학...”
한 사람의 신음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두 사람의 신음소리였다. 하나는 중년 여성의 완숙한 목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아직 솜털도 벗겨지지 않은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한 침상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여자의 신음소리가 끈적하게 서로 얽힌 채 들려오고 있었다.
“흐흐흐... 아주 갔군. 갔어.”
“창녀 같은 년들이죠. 어미와 딸이 같이 붙어서 남자들 앞에 이렇게 음란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흐흐흐... 창녀라. 창녀도 어미와 딸이 열 명이 넘는 남자 앞에서 이렇게 음란한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네. 모르지. 천한 것들이 사는 더러운 창굴에서는 이러는 것들이 있는지도.”
“하하하... 그렇죠. 최소한 귀족을 상대할 정도 되는 창녀라면 이렇게 천박해서는 안되겠죠.”
“그런 점에서 이 년들은 횡재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천박하고 음란한 것들에게 우리와 같은 귀하신 몸들이 상대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런 더러운 년들을 상대해주겠나? 어미는 창녀고 딸은 그 애비도 알지 못하는 더러운 출생인데.”
“오오... 그래도 이년의 남편이신데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대외적으로는 저 작은년은 공작각하의 따님 아니십니까?”
“큭... 남편? 딸? 그년 보지 안에 들어가 있는 손가락이나 빼고서 그런 말을 하게. 큰년의 남편은 아마 설흔 명은 넘을걸세. 저 작은년 아비는 그 설흔명 가운데 한명이고 말야. 혹시 모르지. 내가 진짜 그년 아비인지도.”
“흐흣... 이제 겨우 길난 보지라서인지 꽤 잘 조여주고 있네요. 흐흐... 아비일지도 모르는 남자의 자지를 받아들이는 어린 년이라... 클클... 이런이런... 안에서 주름이 꿈틀거리며 물이 줄줄 흐르는 걸 보세요. 좋아서 죽으려고 하는데요? 정말 창녀보다도 음탕한 것들입니다.”
“크큭... 그렇지.”
“놀랍습니다. 그래도 제국의 황제라는 년이 이렇게 천박하고 음탕한 년이었다니 말입니다.”
“흐흐... 그렇습니다. 황제랍시고 온갖 거만을 다 떨더니 결국은 이렇게 수많은 남자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보짓물을 줄줄 흘리는 거 보십시오. 이런 걸 황제라고 믿고 있는 귀족들이나 기사들에게 어서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건 안될 말이오. 백작. 그러면 저년을 수백명, 아니 수천명이 나눠가져야 하지 않겠소? 더러운 년들이지만 이 좋은 보지를 그자들과 나눠서야 아깝지요. 우리들끼리 즐겨도 충분합니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폐하가 되신다면 그때 뭇귀족들에게 이년들을 통해 폐하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는 이년의 또다른 딸들을 우리가 즐기고 말이지요?”
“핫핫핫... 말씀이 통하십니다.”
“벌써 몇 년을 같이 황제의 남편노릇을 해온 사이 아닙니까?”
“오호... 그렇군요.”
“흠흠... 이번 황제는 제국의 역사에 아주 위대한 이름을 남길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갑자기 무슨 말이십니까? 후작?”
“그렇지 않소? 역대 황제 중 누가 설흔 명의 남편을 갖었단 말이오? 더구나 아비 모르는 딸년을 넷이나 두다니. 제국역사에 누가 이와 같은 위업을 이루었겠소?”
“허허... 그렇군요. 더구나 대공전하께 황위를 양위하여 제국의 성세를 더하는 업적까지 남기겠습니다.”
“대관식 때 뭇귀족들의 노리개가 되어 제후들이 제국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데 일조하는 업적도 있겠지요.”
“이년이 좋기는 좋은 모양입니다. 보지에 이렇게 물이 흥건하니 말입니다.”
“모르셨습니까? 이년은 호위기사들에게 맞으면서도 보짓물을 흘리며 유혹하던 년입니다. 어찌나 유혹하던지 호위기사들이 이년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고생 좀 했지요.”
“호오... 호위기사단장이라면 대공의 아드님이 아니십니까?”
“그렇지요. 그 공적으로 이번에 이 작은년의 남편으로 천거되었지요.”
“이런이런... 전도가 유망한 귀족청년인데... 이런 창녀만도 못한 년의 남편이라니요.”
“그래도 제국의 황녀 신분이니까요. 이 큰 년이 죽으면 이 작은 년이 황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것 참 큰일입니다. 제국의 황제라는 존귀한 자리에 이런 더러운 창녀들이 앉아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공께서 폐하가 되어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국의 황제 자리도 위엄을 되찾을 수 있지요.”
“허허헛... 제국을 위해서라도 그래야겠지요. 먼저 이런 창녀를 떠받들어모시는 떨거지들부터 제거한 다음에 말입니다.”
“그나저나 도망친 년들은 잡았습니까?”
“아직 못잡았습니다. 황성 내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통로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워프 마법진일 수도 있습니다.”
“역시 황성이로군요. 이 큰 년에게 뭐 알아낸 것 없습니까?”
“천한 년이 그래도 딸이라고 곧죽어도 입을 열지 않는군요. 큰 딸년과 이렇게 음탕하게 뒹구는 주제에 말입니다.”
“천한 년이 주제를 모르는군요. 그렇다고 고문을 할 수도 없고.”
“제가 아는 인신매매길드와 어새신 길드의 장들에게 연락을 해두었으니 잡을 수 있을 겝니다.”
“인신매매 길드라면?”
“흐흐... 이 큰 년을 이렇게 음탕하게 만들어버린 것이 인신매매의 길드장이죠.”
“호오... 백작의 발은 참으로 넓습니다.”
“걱정되시나 봅니다. 그 작은 년들의 처녀를 갖지 못할까봐.”
“험험... 천한 처녀야 뭐가 그리 탐나겠습니까? 다만...”
“걱정 마시지요. 인신매매 길드의 길드장은 처녀인 채로 조교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처녀막을 벌름거리면서 물을 질질 싸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호오... 그거 정말 훌륭하군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그렇지요? 저도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흐흐흐... 정말 기대가 됩니다.”
“이년도 기대가 되는 모양인데요? 이렇게 물을 질질 싸며 보지구멍이 벌름거리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백작께서 그 구멍을 채워주셔야겠습니다. 천한 년이 은혜를 베풀어달라는데 아량을 보이셔야지요.”
“허허... 더러운 구멍이라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황제라 칭해지는 년이니 은혜를 베풀어야겠지요.”
“백작의 넓으신 마음에 항상 감복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허헛... 무슨 과찬의 말씀을...”
음흉한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제국의 47대 황제이자 8번째 여황제인 카탈리나 카이샤 엠페르 루마드시에는 자신의 보지로 파고드는 익숙한 느낌에 짧은 신음을 토하며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벌써 17년째 계속되어온 치욕. 고귀한 제국의 황제의 몸으로 수십명의 정액을 받으며 창녀처럼 굴려지고 모욕받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모두 그녀의 남편인 공작과 그와 결탁한 대공의 야심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라미엔... 나의 딸... 두 동생을 부탁한다. 부디... 부디.. 잡히지 말아다오. 어디에서든 살아만 있어다오. 나의 딸... 나의 사랑하는 딸...’
딸은 굴욕에 길들여진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비록 자신의 몸에 정액을 뿌린 원수들의 씨앗이었지만 그녀가 배아파 낳은 자식들이었다. 황가를 일으키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복수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만 있어주기를 바랐다.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이미 더럽혀져버린 자신 대신 행복하게 살아주기를 바랬다. 굴욕에 길들여져 쾌락에 신음하는 몸으로 어미로서의 마지막 모정을 담아 딸들의 무사를 기원했다.
그녀의 옆에서 큰딸 클레아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위에 대공이 몸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미로서 카텔리나는 알고 있었다. 클레이가 대공의 딸이라는 것을. 아마 대공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의 은밀한 쾌락에 기뻐하는 눈빛이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부에게 강간당하는 딸을 보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보지에서 전해져오는 쾌락에 몸을 맡겼다. 도망친 딸아이를 붙잡듯 떠올리면서.
“일어나욧!!”
“으으응...”
“일어낫!!”
“아아아앙...!!”
“엄한 데 건들지 말고 얼른 일어나라니까!!!”
“으흐흐흥... 하항... 하하항.... 항...”
“손 안 빼욧!”
“아앙... 아아아앙... 하항...”
“서둘러야 한다니까!! 왜 오늘따라 늦장을 부리고 그래요!!”
“으으으응...”
“이놈의 인간을 그냥~~!!!!”
스릉--!!!
“헉!! 설마 늦잠 좀 잤다고 죽을 셈인거야?”
프리첼시가 검을 뽑고서야 칸피니스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의 품안에는 조금전까지 그의 손장난에 신음소리를 토하던 17살의 피린이 안긴 채 자신이 보지 안에 들어간 칸피니스의 손가락에 몸을 뒤틀고 있었다. 신음도 토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예민한 부위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는 듯 했다.
“깨기는 한 시간도 전에 깼으면서!! 손장난 하느라고 늦게 일어나는 것 아니냐구요!!”
“한 시간 정도는 상관 없잖아.”
“으으응... 아아앙...”
손놀림이 둔해졌는지 비로소 피린의 입에서 숨을 몰아쉬듯 신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칸피니스는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보며 식 웃더니 보지에 들어간 손가락을 꺼내어 프리첼시 앞으로 내밀었다.
“아앙... 그것은...”
“뭐... 뭐에요?”
피린과 프리첼시의 얼굴이 동시에 붉게 물들었다. 피린은 부끄러움 때문이었고 프리첼시는 황당함 때문이었다. 방금전 애액으로 다시 끈적해진 어젯밤의 정액이 묻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다니. 그것은 어젯밤 피린의 안에 칸피니스가 사정해놓은 것이었다. 피린으로서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프리첼시로서는 칸피니스의 의도를 알기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궁금한 것 같아서. 어제 사정한 정액을 보여주려구.”
“그... 그런게 궁금할 리 없잖아요!”
“아닌가?”
“다... 당연하죠!”
“하긴... 어제도 두 번이나 내 정액을 받았으니...”
“뭔소리에요? 또?”
“흐흥... 피린? 아아~~!!!”
프리첼시의 따지는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칸피니스는 얼굴을 붉힌 채 외면하고 있는 피린의 입에 방금전까지 그녀의 보지에 들어가 있던 손가락을 넣어주었다. 칸피니스가 살짝 웃어주자 당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피린이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어젯밤 보지 안으로 들어와 말라있었던 끈적한 정액이 그녀의 혀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녹아 목으로 넘어갔다.
“이봐요. 오늘 황도로 출발하는 날이라는 거 알고 있죠?”
“당연히. 모를 리 있나? 내가 두 달 전에 정한 날인데.”
“그런데 지금 이렇게 늦장 부려도 되는 건가요?”
“응.”
“응!! 이라구요???? 응???”
“안돼?”
“성을 나서서 다음 마을에 도착하려면 꼬박 8시간이 걸린다구요. 지금부터 서둘러서 10시 전에 출발해야 겨우 해질 무렵에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걸 알잖아요!”
“노숙하면 되잖아? 노숙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칸피니스!!”
“프리첼시도 좋아하면서. 밖에서 하는 걸 가장 좋아하는 게 프리첼시 아니었나?”
“난 이번에 안가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흐흥... 역시 그게...”
“난 하이엘프라구요. 하이엘프!!”
“밝히는 하이엘프 말이지?”
“밝히긴 누가!!!”
“누굴까아~~??”
“칸피니스!! 말돌리지 말고!!”
“그러니까아~~”
“어쨌든 서둘러요. 오늘 중으로 출발해서 다음 마을에 도착해야 하니까.”
“쳇... 조금 늦게 출발해도 되잖아?”
“조금 늦게 출발해도 좋은 건 칸피니스 사정이구요. 수행하는 아가씨들 사정도 생각해 줘야 하잖아요.”
“쳇... 야외에서 하는 것도 괜찮은데...”
“어차피 중간에 야영만 일주일은 할텐데 너무 안달할 필요 없어요.”
“쳇...”
“쳇은...!!”
“바가질 마누라!!”
“!!!”
“악질 마누라!!!”
“!!!”
“폭력 마누라!!”
“!!!”
챙-!!!
“헉!! 또 죽이려 한다!!”
“빨리 안서둘러요?”
“알았어! 알았다니까!!”
“그럼 어서 나가요!”
“알았... 어... 피린... 흑... 석달 후에나 다시 보겠구나. 흑...”
“영주님... 혼나시기 전에...”
피린의 프리첼시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칸피니스는 더욱 서러워졌는지 피린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아... 이렇게 아름다운 피린을 두고 일어나야 하다니... 프리첼시는 사악한 질투쟁이 마누라야!!”
샤라랑--!!
아름다운 음악과 같은 파공음은 하이엘프의 검술의 특징이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된 하이엘프의 검이 어느덧 칸피니스가 앉아있던 자리를 빠르게 훑으며 위로 솟아올랐다.
“진짜 죽이려 하냐?”
“그정도로 죽을 인간이면 칸피니스가 아니지요!!”
“나도 맞으면 죽어! 엘프의 브라이트미스릴검은 드래곤도 죽일 수 있다는 거 몰라?”
“드래곤은 죽일 수 있을지 몰라도 칸피니스를 맞히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나도 가끔은 맞는다고.”
“가끔은 맞아주기라도 좀 하고 그런 말을 해봐요!”
“맞으면 죽는다니까 그러네.”
“안맞으니가 상관 없어욧!”
“어어... 위험하다니까!!”
“클라이안님이라면 몰라도 칸피니스는 안위험해요. 좀더 위험해져도 상관 없어요.”
“어허... 그만 좀 하자니까...”
“서두르실 건가요?”
“그래그래... 서두를게. 지금 당장 일어나서, 목욕하고, 밥먹고, 옷입고, 여자들 골라서, 마차에 태우고, 낼름 성을 떠나버릴게. 두 시간 안에! 반드시!!”
“후우... 약속하시는 건가요?”
“야... 약속?”
하이엘프와의 약속은 절대적이다. 어긴다면 반려고 뭐고 서로의 목숨을 건 결투가 있을 뿐이다. 칸피니스는 그런 사실을 떠올리며 일시적으로 움찔 망설였다. 하지만 하이엘프의 검이 다시 움직일 기미를 보이자 어쩔 수 없이 항복해야 했다.
“알았어. 알았어. 약속할게.”
“두 시간에서 단! 1분이라도 늦으면! 그때는!”
프리첼시의 말과 함께 그녀의 검이 칸피니스의 눈앞을 번뜩이며 스쳐지나갔다. 칸피니스는 등줄기로 땀이 주루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역시 농담이란 존재하지 않는 종족이었다. 하이엘프는. 그동안 그와 지내면서 상당히 인간에 동화되었지만 하이엘프의 본성까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칸피니스는 출발시간을 지키는 데에 목숨을 걸어야 함을 깨달았다.
“알았어. 그럼 롯시와 딜레인, 엘로나, 필린, 나이트 레인, 나이트 루사, 피레샤츠, 디아스루에나의 출발준비를 부탁해. 아! 펠란제스 백작부인의 딸 파트리샤도 같이!”
“디아스루에나를 데려갈 건가요?”
프리첼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의 흰 얼굴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이 드러났다. 디아스루에나라는 이름이 그녀를 자극한 것이다. 디아스루에나라니! 뱀파이어라니! 조화와 진실의 종족인 하이엘프에게 있어 역천과 파괴, 거짓의 존재인 뱀파이어는 용서할 수 없는 적이었다. 아니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칸피니스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데 황도로 가는 여행에 그녀가 따라나서다니!
“아아... 텔로시가 성을 지키는 게 나으니까. 프리첼시와 디아스루에나를 같이 둔다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어? 프리첼시가 싫어하는만큼 디아스루에나도 프리첼시를 껄끄러워하니까.”
“피레샤츠도 엘프에요. 디아스루에나를 좋아하지 않을 게 분명해요.”
“괜찮아. 디아스루에나와 피레샤츠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내가 중간에서 조정할테니까.”
“그래도 피레샤츠가 불편해 할 걸요?”
“섀도우엘프잖아. 충분히 잘 적응할거야.”
“섀도우엘프라도 적응하지 못하는 게 있어요. 그중 하나가 뱀파이어의 피냄새죠.”
“하지만... 그렇다고 디아스루에나를 프리첼시와 같이 둘 수는 없다구.”
“휴우... 알았어요. 디아스루에나에게 준비를 시키죠.”
“그래. 피레샤츠에게 미리 말해놓는 것도 잊지 말고.”
“알았어요.”
“그럼 수고해.”
“알았으니까 피렌이나 내려놓고 어서 서둘러요.”
“알았어.”
프리첼시는 결국 칸피니스에게 져주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하이엘프인 그녀가 매료되어버린 반려인 칸피니스의 의견을 꺾을 수는 없었다. 다크엘프인 텔로시라면 모를까 그녀에게는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싫은 뱀파이어였지만 칸피니스의 뜻에 따라 그녀도 이번 여행에 따라나서도록 준비를 시켜야 했다. 프리첼시의 얼굴이 더욱 시무룩하게 굳어졌다.
“피린. 잠시 내려보지 않을래?”
“예? 예...”
“프리첼시? 알잖아. 프리첼시는 하이엘프지만 나는 인간이라는 걸.”
“알죠. 인간. 가장 순수한 인간. 순수한 욕망과 순수한 정열과 가장 순수한 선악을 지닌 인간이라는 걸. 그래서 매료된 걸요.”
“그럼 알겠지? 내게 있어 뱀파이어는 하이엘프나 내 동생들과 다름 없는 하나의 여성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야. 가장 중간자적인 시각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내게는 모두가 같은 내 여자일 뿐이야. 하이엘프로서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 이해해줬으면 해.”
“예... 알아요. 모든 생명 가운데 가장 중립적인 존재. 하지만 그래서 가장 독선적이고 편협한 존재. 그게 인간이죠. 당신은 그 가운데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구요.”
“이해해... 줄 수 있지?”
“예...”
프리첼시가 웃어보이자 안심한 듯 칸피니스의 굳은 얼굴이 그제야 펴졌다. 칸피니스의 웃는 모습에 프리첼시의 얼굴도 더욱 밝아졌다. 아무리 뱀파이어가 하이엘프의 적이라고는 하지만 칸피니스의 웃음과 바꿀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가 뱀파이어면 어떻고 서큐버스면 어떤가? 중요한 건 칸피니스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참, 릴레이나도 같이 가는 건 아니겠죠?”
“하하...”
릴레이나라면 몇 년 전 감히 영주인 칸피니스를 유혹해 성을 차지하려던 멍청한 흑마법사가 소환한 서큐버스였다. 서큐버스라기보다는 고위마족에 가까웠는데 흑마법사가 서큐버스라는 이름으로 소환하는 바람에 서큐버스로 통해버린 불운한 마족 아가씨였다. 칸피니스를 만나는 순간 그의 순수한 욕망에 매료되어 흑마법사가 프리첼시에게 죽은 후에도 매료의 인장을 칸피니스에게 주어 계속 그를 찾아오고 있는 존재였다. 프리첼시는 물론 다크엘프인 텔로시와 섀도우엘프인 피레샤츠 모두 뱀파이어이 디아스루에나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싫어하는 존재였다.
칸피니스는 따지고드는 듯한 프리첼시의 매서운 눈빛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 했다. 내심 이번 여행 도중 그녀를 불러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위마족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마계에서 보내는 그녀였기에 굳이 표내어 데러갈 것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준 매료의 인장으로 필요할 때 그녀를 불러내면 될 터였다. 엘프와는 전혀 다른 그녀의 보지가 새삼 그리워진 터라 프리첼시의 감시를 벗어나기만 하면 몰래 그녀를 불러내어 즐길 예정이었다.
프리첼시는 칸피니스의 어색한 웃음을 보며 그의 생각을 읽어냈다. 역시 이번에도 그는 그덜떨어진 마족을 불러낼 생각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계약의 대상으로서 칸피니스를 유혹한 것이라면 하이엘프의 권능으로 생명과 바꿔서라도 릴레이나를 죽였겠지만 순수하게 매료되어 이끌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칸피니스가 저리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그저 피레샤츠가 상처입지 않도록만 해줘요. 어차피 엘프가 아닌다른 일행은 릴레이나가 건드릴 리 없으니까.”
“그녀를 믿어주는 건가?”
“반려에게 매료되면 하이엘프나 마족이나 반려의 미움을 살만한 행동은 하지 못해요. 내가 그녀를 용납하는 것처럼 그녀도 마족으로서의 본능을 포기하고 당신의 주위를 보호해주겠죠.”
“흠... 고마워.”
“고마우면 제발 이상한 존재들 좀 끌어들이지 말아요. 뱀파이어에, 서큐버스에...”
“릴레이나는 서큐버스라 부르면 싫어한다구.”
“서큐버스나! 마족이나! 그 덜떨어진 마족은 남자 유혹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잖아요!”
“덜떨어졌어도 마력만큼은 텔로시보다 더 뛰어나잖아. 마계의 검술도 꽤 쓸만하고.”
“그럼 좀 잘난 서큐버스라고 해두죠.”
“하하하... 알았어. 그 얘긴 그만 하도록 하지.”
“그래야죠. 어서 서둘러요. 약속을 지키려면 아침을 못먹을 수도 있으니까.”
“설마 아침도 굶기려는 거야?”
“하.이.엘.프.의. 약속이라구요!”
“하... 하지만...”
“하지만...?”
“아니... 도시락이나 넉넉히 싸달라고.”
“훗... 그건 걱정 마요.”
“고... 고마워...”
소란에 일어난 여자아이들이 알몸으로 부산히 움직이고 있지만 성욕조차 느낄 시간이 없었다. 칸피니스는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그의 자지도 주인의 마음을 안 듯 평소와는 달리 아침인데도 힘없이 늘어서 있었다. 새삼 하이엘프의 능력을 느끼며 칸피니스는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영주님은 프리첼시님께 약하신가보네요?”
“에? 아... 너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구나?”
“예. 리엔이라고 해요”
“후훗... 프리첼시님 뿐만 아니라 모든 여자들에게 약하시지. 영주님은.”
“예?”
“루이자 말이 맞아. 아마 우리가 우리 일 때문에 부탁해도 저렇게 약한 모습이셨을걸? 영주님이 여자에게 강해지는 건 섹스할 때 뿐이라구.”
“설마... 영주님은 제국 최강의 기사라던데...”
“제국 최강의 기사가 맞아. 하지만 여자 앞에서는 섹스 할 때만 최강의 기사지. 그 외에는 여자들에게 항상 약한 모습이시거든.”
“몰랐어요.”
“후훗... 저 모습에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놀라지. 영주님이 좀 무서워보이시니? 그런데 의외로 저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시니 처음 보는 아이들이 놀라지 않을 수 있겠니?”
“저... 저도 놀랐어요.”
“후훗... 프리첼시님과 영주님이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했구나?”
“예?예!”
“조금만 더 성에서 지내보면 알게 될거야. 영주님은 이 성의 모든 여자와 특별한 관계라는걸.”
“예?”
“좀 있으면 알게 돼.”
“예에...”
“그만 떠들고 어서 잠자리 정리나 해. 프리첼시님 덕분에 아이들이 오지 않았으니 우리가 정리해야 한다구.”
“피린...!!! 오오오~~!!! 너무해애~~~!! 아침부터 깨어나 영주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벌써 우리를 부려먹으려 하는구나. 흑흑...!!!”
“피린이 드디어 영주님의 총애를 믿고 힘없는 우리들을...”
“때리고... 구박하고... 부려먹고...”
“엥? 피린 언니. 정말 그랬어요?”
“누가!!”
“흑흑... 피린... 네가... 네가...”
“루니아가 피린 너를 얼마나 보살펴줬는데. 네가 오줌이라도 싸면 기저귀도 갈아... 아야!!”
“그만 못하니!!??”
“헤헤... 화났니?”
“이것들이...”
소녀들의 소란은 곧 들려온 목소리에 진정되었다.
“그만 못해!! 얼른 가서 씻고 수련준비 해!!”
“어? 테레사!”
테레사는 피린과 소녀단 동기였다. 성에 들어와서 알게 된 사이지만 같은 나이라는 것 때문인지 상당히 친해진 사이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표정은 피린의 친구 테레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녀당번의 선임으로서의 분노에 찬 모습이었다. 피리은 찔끔 한걸음 물러서야 했다.
“피린! 오늘 우리가 하녀당번이라는 데에 불만 있는거니?”
“아... 아니...”
“두고... 보자구... 네가 하녀당번일 때.를. 두고보자구. 얘들아 청소하자.”
“예. 테레사 언니.”
“먼저 저 같잖은 알몸 떨거지들부터 치우고 시작하자.”
“테... 테레사...”
“시작!!”
“끼아아악...!!!”
“어딜 만지는 거야!!”
“아앙... 거긴 영주님이... 아앙...”
“시끄럽다!!”
“얼린 치우자구.”
“아잉... 이것봐... 하얀게...”
“너두 그랬으면서.”
“헤헷...”
“얼른 치우라니까.”
“내 발로 나갈게. 거긴... 만지지... 마아아아!!!”
“아이잉... 하지... 알았어어~~!!”
“얼른 쫓아!!”
여자아이들의 소란을 귓등으로 들으며 칸피니스는 고민에 빠졌다.
“목욕을 제끼고 밥을 먹는게 나으려나? 목욕이야 가다가 아무데서나 해도 되잖아? 피레샤츠에게 정령 불러달라고 해도 되고. 하지만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으니. 일단 같이 가는 여자들도 안을 수 없고. 릴레아나도... 으흐흣...”
“쳇... 가능할 리가 없지. 프리첼시가 이미 다 조치해놨을 걸? 하이엘프? 하이폭스가 어울리겠다. 얼굴만 예쁜 여우 같으니라구. 아니 몸매도 예쁜... 아니 보지도 예쁜... 아니아니아니... 어쨌든 다 예쁜 여우같으니... 흥흥흥!!! 젠장... 목욕해야 하려나? 밥을 먹고 싶은데... 그놈의 하이엘프인지 하이울프인지 하는 약속때문에... 에휴... 배고파...”
나름대로는 심각한 고민이었다. 물론 프리첼시가 이 고민의 내용을 들었다면 기꺼이 땅의 정령으로 하여금 그를 묻어버리려 했을 시시껍절한 고민이었지만, 지금 이순간 그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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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주기가 늦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백수인 상황이라 다른 돈될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거든요. 최대한 연재는 해보겠습니다만 그 간격은 길어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닷새에 한 번은 연재할테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에서요. 마음이 안정되면 그때 성실연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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