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하하하하하...!!”
“후후후후훗...”
평소라면 듣기 좋았을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왠지 생경하기만 하다.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소리이건만 영겁의 거리를 두고 들려오는 듯한 거리감이 왠지 서글프다.
“헤휴...”
마차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칸피니스는 쓸쓸히 말을 몬다. 같이 말을 타고 가는 롯시나 딜레인과도 한참 떨어진 뒤에서 흐느적거리는 말등에 몸을 맡긴 채 체념의 한숨을 내쉰다.
“로엔... 로엔... 네가 고생이 많구나.”
미간과 네 발목에 흰 털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이는 검은 말의 이름은 로엔. 십수년 전 힘들게 입수한 북방계 명마의 자식으로, 지금은 어미에 이어 칸피니스가 타고다니는 유일한 말이다.
워낙에 덩치가 크다보니 어지간한 말은 칸피니스를 감당하기 힘들다. 하루이틀은 겨우겨우 타고다닌다 하더라도 한 달만 지나면 칸피니스를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마르기 시작해, 아무리 건강한 말도 비루먹은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칸피니스는 기사이면서도 기마전투에 약하다. 그를 태울만한 말이 없으니 말을 타고 훈련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제국 제일, 아니 대륙 제일의 검술을 지니고서도 기사단 서열 23위에 불과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상기술이 약하다는 약점 때문이었다.
결국 보다못한 프리챌시가 북방의 엘프부족에 연락을 넣어 확보하게 된 것이 로엔의 어미 폴렌이다. 북고원을 뛰어놀던 야생마 무리를 이끌던 폴렌을 손에 넣고서야 비로소 칸피니스는 자신의 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폴렌의 자식이 바로 로엔이다.
하지만 그런 로엔조차도 칸피니스의 몸무게를 쉽게 감당하지는 못한다. 폴렌에게서 태어난 새끼 가운데 가장 큰, 오히려 폴렌보다도 더 크고 강한 말인 로엔조차도 칸피니스의 거구를 태우고 먼 거리를 이동하지는 못한다. 로엔이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일주일 정도. 그 이상의 여행길은 로엔으로서도 무리다. 황도까지의 한 달 여행은 당연히 견뎌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여행길 내내 로엔이 아닌 마차로 이동했던 것이다. 로엔을 아끼기 위해서.
그런 로엔의 등에 타게 된 이유, 그것은 바로 어젯밤의 끔찍한 악몽 때문이다. 여자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그 생각하기도 황망한 기억이 그를 마차가 아닌 로엔의 등으로 내몬 것이다.
“후후후훗... 그랬단 말이죠?”
“그렇다니까? 시안이 위에서 덥쳐오니까 눈이 이렇게 커다래지는데... 그래도 자지는 튼튼하게 일어나 있더라고. 꺼떡꺼떡 인사까지 하면서 귀두로는 맑은 물까지 토해내는 것이 오히려 즐기는 분위기였다니까?”
“호호호호... 그래서는 강간이라 할 수 없잖아요? 좋아서 즐긴 거 아녜요?”
“맞아요. 변태 아빠니까 색다른 플레이라고 좋아서 죽으려 했을거야. 안그럼 고작 마법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당할 리 없잖아요.”
“맞아맞아, 오라버니가 어떤 오라버니인데...”
“그렇지도 않아. 눈이 이렇~~게 커져서는 얼굴이 굳어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꺄아아~~ 눈물이래!!”
“너무했다~~ 아무리 강간당하는 상황이라지만 눈물을 흘리다니... 당당한 색마 아빠답지 않아.”
“색마 이전에 기사로서도 치욕이야. 어떻게 강간을 당하면서 눈물을...”
“눈물만 흘리면 좋게? 시안이 엉덩이를 돌릴 때마다 얼굴 표정까지 바뀌어서는 숨을 헐떡 헐떡... 좋아 죽으려 하면서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니까?”
“꺄아~~ 꺄아~~ 상상이 안돼. 귀여운 아빠라니...”
“영주님이 정말 그러셨단 말예요? 나두 보고 싶다...”
좋아 죽으려는 소리가 마차 안에서 칸피니스에게까지 들린다. 그리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에도 너무도 선명히 들리고 있다.
“클라이안...”
클라이안의 농간이다. 마법으로 마차 안의 이야기를 칸피니스가 선명히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리라.
“뿌드득...”
이럴 때 이가 갈리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 아니 사람이 아니다.
“결국 당하고 나서는 엉엉 울면서 프리챌시를 찾는데...”
“엉엉 울어요? 진짜?”
“진짜라니까?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엉엉 울었다고. 아침에 봤잖아? 귀밑머리가 젖어서 말라있는거. 그거 그때 흘린 눈물 때문이야.”
“아아... 너무 심하다. 아빠 그렇게 안봤는데... 강간 좀 당했다고 눈물까지 흘리다니...”
“자지가 단단히 서있던 것으로 보아 자기도 즐긴 것 같은데 같이 즐겨놓고 눈물이라니 심하잖아?”
“어휴... 아빠가 그럴 줄 몰랐어. 어차피 남자의 순결이라는 게 강에 배지나간 자리 아니에요? 그냥 잊고 굳건히 살아야지.
“그래그래, 그런데 프리챌시님을 찾았다구요?”
“그래, 프리챌시를 부르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어머머머머... 설마 오라버니의 사랑은 프리챌시?”
“꺄아~~ 그럼 아빠가 프리챌시님을 좋아하는 거에요? 그럼 프리챌시님이 우리 엄마?”
“영주부인이 되는거지.”
“그럼 우리는?”
“불륜의 상대??”
“숨겨놓은 애인?”
“몸도 마음도 속아서 농락당하는 비련의 여자들?”
“방금 그거 괜찮다.”
“맞아. 맞아. 우린 속은거야.”
“그래. 속아서 농락당한거야.”
“흑... 남자에게 속은 불쌍한 소녀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운명을 저주하게 되겠죠?”
“맞아! 바로 그자세!!”
“그래!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물을 좀더...”
“야아아... 멋지다. 디올린. 그 모습 보고 있으려니 오라버니가 정말 나쁜사람같아.”
“나쁜사람이라니! 나쁜놈이지!”
“호호호호... 자칭 고금천하제일색마라고 으스대던 주제에 여자에게 강간까지 당한...”
“아아... 그럼 아빠 더럽혀진건가?”
“예전 같으면 자살했어야 했을거야.”
“목을 이렇... 게 매달아서?”
“칼로 이렇... 게?”
“잠깐잠깐 이것 좀 봐봐. 이 자세가 더 어울리나?”
“그것도 괜찮은데?”
“호호호홋... 딜레인 오라버니 어쩌고 있나 좀 봐봐.”
“클라이안님 여기서 이야기하는 거 제대로 듣고 있겠죠?”
“걱정마. 지금 얼굴색 변하는 거 보니까 모두 제대로 듣고 있어.”
“하하하하... 나도 그 얼굴 보고 싶다.”
“순진가련한 어린 소녀를 속이고 농락한 그딴 나쁜놈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
“와아아... 연기력 죽인다!”
너무 잘들인다. 너무 잘들려서 문제다.
“하아...”
당분간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어본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까? 어쩌다 이렇게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부끄러운 꼴을 보이게 되었을까?
“달링~~!! 달링 여자들은 사이가 좋은가봐?”
모두 이 여자 때문이다.
“아아... 한 남자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질투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아. 저렇게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들의 모습이라니. 하렘의 이상이야. 아아... 너무 멋져.”
마법으로 몸을 공중에 띄운 채 칸피니스의 옆을 졸졸 따라오고 있는 짙은 붉은 머리의 여자마법사 시안. 이 여자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역시 달링이야. 첩 한 명만 들여도 여자들 싸움에 집안살림 남아나는 게 없다고 하는데 저리도 완벽히 여자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게 만들었잖아? 모두 달링의 매력 때문일거야. 아아... 우리 달링은 왜 이리도 잘난 것일까?”
저 재수없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간밤의 악몽이 떠오른다. 강제로 세워진 자지가 그 보지 안에서 꿈틀거리던 그 치욕의 시간들이 다시금 온몸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며 되살아난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가 푸들푸들 떨린다.
‘한 대 때려주고 싶다.’
“그런데 달링... 너무 인기 없다. 매력은 매력인데... 왠지 왕따의 매력같은... 오가는 왕따속에 싹트는 동지애라고나 할까? 그런 거 같지?”
하늘을 우러러본다. 역시 오늘도 하늘을 파랗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데 달링... 어제 괜찮았어?”
움찔!
“어제 말야... 거기... 내 보지... 나름대로 신경써서 움직여봤는데... 어때 맘에 들어?”
이를 악문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너무 크고 단단해서 보지 근육을 움직이는 게 정말 힘들었다니까? 죽어있는 놈을 세우려고 입에 넣었는데... 와아... 턱이 안다물려지는 거 있지? 입 찢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혀까지 움직이려다가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어느새 시안의 모습이 칸피니스 옆에 바싹 붙는다. 그녀의 청회색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빛나며 칸피니스를 향한다.
“그렇게 큰 자지는 처음이었어. 어떻게 사람의 자지가 그렇게 클 수 있는거지? 마치 오거를 보는 거 같았다니까. 그거 보지에 집어넣으려는데 정말 겁나더라.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하고...”
‘그렇게라도 죽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처음 경험해보는 대단한 물건이라 그동안 갈고닦은 모든 기술을 다 동원했지 뭐야? 달링의 자지는 이리도 훌륭한데 내 보지가 너무 평범하면 격에 맞지 않으니까. 달링의 그 훌륭한 자지에 어울리는 보지라는 소리 들으려고 한 달 동안 쓸 힘을 한 시간동안 다 썼다니까? 정말 가상한 노력 아냐?”
‘그냥 이대로 죽여버릴까?’
“어땠어? 응? 어땠어? 노력한 보람 있었지? 굉장했지? 그렇지? 아아... 달링은 행운아인 줄 알아야 해. 이렇게 맛있는 보지를 먹어볼 수 있었으니까. 모든 남자들이 달링을 부러워할거야. 이런 예쁜 여자의, 이렇게 맛있는 보지를, 공짜로 상납받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구.”
‘먹은 건 너잖아!’
“더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 맛있는 보지를 먹을 수 있는거잖아. 어제 내게 몸을 허락한 이상 달링의 몸은 이제 내 것이니까. 이제 달링은 나의 남자가 된거야. 언제든 원할 때마다 섹스를 나눌 수 있는 나만의 연인, 나만의 달링이 된거라구. 이 예쁜 얼굴과 이 잘빠진 몸매와 함께,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을 겸비한 보지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이야?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지? 너무 좋아 죽겠지?”
‘행운? 차라리 저주를 해라!’
“아이잉...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면... 여기서 하자구? 부... 부끄러운데... 보는 눈도 많구... 하지만 달링이 좋다면야... 아이잉... 너무 노골적이다...”
머리가 아프다.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심장에 무리가 간 듯 가슴도 답답해져온다.
‘화... 화병으로 죽는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머리가 아득해 오는 것이 멀리 강이 보이는 것 같다. 꽃들이 가득한 강. 그 건너편에서 자신의 손에 죽은 아버지와 형들이 칼을 갈며 노려보고 있다. 퍽큐를 먹이고 있는 건 삼촌들인 모양이다.
‘아아... 이 칸피니스가... 여기서... 이렇게 가는구나...’
“그런데 나 몇 번째야? 달링의 몇 번째 애인이야? 웅... 10번째? 아니면 20번째? 헤헤헷... 설마 50번은 아니겠지? 설마... 진짜야? 너무해! 나를 속이다니! 50번째라니! 어떻게.. 어떻게... 애인이 50명씩이나 있으면서 나를 유혹하고... 흑... 내 순결... 나를 농락했어. 나를 망쳤어. 순진한 내 인생을 이렇게... 이렇게 더럽혔어... 흑... 달링 나빠...”
칼을 휘두르며 저주를 퍼붓는 아버지와 형의 모습이 너무도 반갑다. 퍽큐를 먹이며 방방 뛰는 삼촌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그래. 가는거야. 저곳으로. 안식의 세계로...’
“어떻게... 나한테 달링은 13번째 남자인데... 어떻게... 어떻게... 달링은... 흑... 달링은... 그렇게 유혹해서 내가 범하도록 만들어놓고... 배... 배신을 하다니... 흑흑... 나... 또 남자에게 속은거야? 흑... 말 좀 해봐! 이 나쁜 남자야!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흑흑흑...”
‘누가? 누구를? 언제? 어떻게? 뭘? 왜? 도대체 뭐가 문젠데? 누가 당했다는거야?’
혼자서 눈물을 흘리며 발광을 하던 시안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혀를 살짝 내밀며 칸피니스에게 웃어보인다. 살짝 손가락을 올려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이 애㉯?정도로 귀여워보인다. 역시 시안은 미인이다.
“하지만... 용서할게. 이제부터는 내 남자인걸. 50번째면 어떻고 100번째면 어때? 중요한 건 나와 달링이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이어졌다는거지. 그 운명적인 사랑 앞에 13번째면 어떻고, 100번째면 어떻겠어? 그렇지? 아아... 난 너무 마음이 넓어. 나를 속인 남자에게까지 이렇게 관대할 수 있다니...”
‘과... 관대?’
“허허허허....”
너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다보니 나오느니 웃음이다.
“세상 모든 것이 공허한 것을. 모든 것이 허상일 뿐인 것을. 모든 것이 공(空)이고 모든 것이 허(虛)인 것을...”
이순간 칸피니스는 도를 깨우쳐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
쪽--!!
‘엥?’
“아하하하하... 나잡아봐라~~~!”
갑작스런 입맞춤과 동시에 힘차에 앞으로 쏘아져나가는 시안. 칸피니스가 자신을 잡으러 올 것이라 확신하는 듯 칸피니스를 돌아보는 그 표정이 해맑기만 하다. 10대의 어린 소녀다은 순진함과 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표정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얘기다. 칸피니스의 주관으로 보았을 때 그 표정은 가증 그 자체일 뿐이다.
‘내가 왜 쫓아가야 하는데?’
당연히 칸피니스에게는 그녀를 쫓아가고픈 생각이 없다. 잠시의 유체이탈을 경험했지만 아직 그는 미치지 않았다. 도리어 공과 허의 도리를 깨달아 어느때보다 그 정신이 맑고 깊다. 칸피니스는 조용히 시안과 반대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이대로 튀는 거야!’
하지만 그의 의도는 시작도 하기 전에 저지된다. 갑작스런 외침이 그를 불러세운 것이다.
“아빠!! 누가 찾는데?”
말머리를 돌리고 막 박차를 가하려는 순간 칸피니스를 부르는 딜레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차는 이미 멈춰서 있고, 그 앞에 인마가 한 기 서있는 것이 보인다.
가는 체형에 구부정한 자세. 붉은 빛이 도는 갈색머리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도드라져보이는 매부리코. 익숙한 모습, 잘 아는 얼굴이다.
“뭐야? 라쥴 아냐?”
제국기사단장 에르히 발터 파나샤 슈베르티의 문관 라쥴 포멜. 제국기사단의 일원으로서 기사단장인 슈베르티와 여러 가지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레 알게된 사람이다. 뛰어난 지략과 행정처리능력이 인상적이라 호감을 가지고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있다.
라쥴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도망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라쥴이 왔다면 분명 슈베르티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지만 라쥴은 어디까지나 슈베르티 백작의 사람이고 남자다. 칸피니스에게 개인적인 용무로 찾아올 일은 없는 것이다.
칸피니스가 말머리를 돌리고 라쥴에게로 다가가자 딜레인이 그의 옆으로 붙는다.
“후훗... 가출하시게요?”
“아... 아냐... 그런거...”
“정조를 잃었다고 절망할 거 없어요. 저는 다 이해하니까...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 아니라니까...”
“가출하면 소문낼거에요?”
“소... 소문이라니...?”
“아빠가... 시안이라는 여자마법사에게 강간당했다고...”
“헉...!!”
“클라이안님이 마법영상으로 저장해놨다고 하니까 그것도 확 퍼뜨려버리고...”
“혀... 협박이냐?”
“훗... 어떨까요?”
“너무 치사하단 생각 안드냐?”
“간만에 기회인걸요. 얌전히 놀림감이 되라구요. 홋홋홋...”
“끄응...”
“아주 자근자근... 맛있게... 놀려드릴게요. 홋홋홋... 색마가 강간을 당하다니... 홋홋홋... 프리챌시님께 이르면 얼마나 재미있어 할까?”
“헉... 그건...”
“엄마한테도 말해야지. 호호호호...”
“으윽...”
딜레인의 웃음이 오늘따라 사악하게만 느껴진다.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그토록 순진하고 착하던 아이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자랄수록 칸피니스를 닮아간다. 역시 딸이라서일까?
‘제... 젠장... 지... 엄마를 닮았어야 하는거였는데...’
딜레인이 슬쩍 말을 비껴 마차 옆으로 붙어서는 것을 흘끗 바라보며 칸피니스는 힘없이 말을 몰아 라쥴에게로 향한다. 탈출구 없는 절망에 갇힌 그의 표정은 마치 시체를 보는 듯 어둡기만 하다.
“안녕하십니까? 델킨피에르 자작님.”
칸피니스가 다가서자 라쥴이 말 위에서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오랜만이군.”
“예,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안색이...”
“아... 벼... 별 것 아닐세.”
세심히 자신의 표정을 살피며 물어오는 라쥴의 말에 칸피니스는 놀라 당황한다. 마치 지난밤의 일과 조금 전 협박받은 일을 아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절대 그럴 일이 없음에도 연이은 충격으로 지나칠 정도로 소심해진 탓인지 망상에 불과한 느낌이 점차 사실처럼 다가온다.
“아... 예...”
칸피니스의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라쥴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슈베르티 백작의 사절로서 칸피니스를 만나는 것이다. 칸피니스의 태도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의 임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니 그로서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 무슨 일인가?”
라쥴이 납득하고 자신에 대해 관심을 끊자 칸피니스는 비로소 평정을 회복한다. 여전히 숨겨야 할 치부를 들키지 않으려 긴장하면서도 슈베르티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의 사절을 맞이하는데 한치의 허술함이 없도록 마음을 단단히 다잡으며 여유를 찾아간다.
“이번에 자작님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콘벨른 백작가의 일입니다.”
“콘벨른 백작가?”
“예.”
콘벨른 백작가라는 말에 칸피니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슈베르티 백작과 콘벨른 백작과 무슨 관계가 있는건가?”
콘벨른가와의 분쟁이 있다고 해서 슈베르티 백작이 중간에 끼어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칸피니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숨기려는 의도에서 슈베르티 백작의 도움을 곧잘 청해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칸피니스 쪽에서 먼저 요청한 경우였다. 그런데 그의 도움요청이 있기도 전에 슈베르티 백작이 분쟁에 개입해온 것이다. 충분히 그 관계를 의심해볼만 하다.
“예. 유감스럽게도...”
“흐음...”
“모종의 일로 슈베르티 백작님과 콘벨른 백작이 손을 잡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가?”
“예.”
모종의 일이 무언가는 알 필요 없다. 칸피니스 자신과만 관계가 없으면 된다. 그같은 칸피니스의 성격을 알기에 라쥴이 저토록 당당히 슈베르티 백작과 콘벨른 백작 간의 유착관계를 밝힐 수 있는 것이리라.
“그 모종의 일이 나와 관계된 것은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절대로! 백작님께서는 자작님과 대립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흐음... 백작의 뜻인가?”
“백작님은 현명하신 분이십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예, 맹세합니다.”
단호한 얼굴로 맹세한다고 말하자 칸피니스의 얼굴에 피식 조소가 떠오른다.
“기사의 맹세인가?”
“그... 그건...”
기사의 맹세는 기사만이 할 수 있다. 기사가 아닌 자는 기사의 맹세를 해서는 안된다. 상인 가문에서 태어난 평민 라쥴은 당연히 기사가 아니다. 기사의 맹세를 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설마 상인의 맹세를 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상인의 맹세란 말 그자체로 넌센스라는 걸 모르진 않을테니 말야.”
“예... 그... 그게...”
“그럼 무얼로 맹세하려는가?”
비웃음 섞인 칸피니스의 말에 라쥴의 표정이 단호하게 굳는다.
“저를 발탁하고 기용해주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의 뜻을 대변할 사절로서 저를 보내신 슈베르티 백작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호오... 슈베르티 백작의 이름을?”
자신의 주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 자칫 주군의 명예를 더럽혔다하여 처벌받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좋아! 자네가 자네의 주군의 이름을 건다면 믿어보도록 하지.”
하지만 칸피니스는 라쥴과 같은 사람에게 있어 주군의 명예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슈베르티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절로 보낸 것일테고, 라쥴은 태연히 슈베르티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한 것이리라.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무에 있나? 그건 그렇고... 슈베르티 백작은 무슨 이유로 자네를 내게 보낸건가?”
“콘벨른 백작가와 델킨피에르 자작님간의 싸움을 종식시켰다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싸움을 종식시켰다고...?”
“예.”
“어떤식으로?”
“콘... 벨른가를... 지워버렸습니다.”
“지워버려?”
이번에는 칸피니스도 약간 놀랐다. 콘벨른가를 지워버리다니. 슈베르티가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칸피니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분쟁에서 슈베르티가 칸피니스의 편을 들 것이라는 것도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콘벨른가 정도 되는 귀족가문을 지워버리라고는 칸피니스조차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제국동남제후령의 유력 귀족가문 가운데 하나인 콘벨른가가 자신과의 분쟁으로 인해 사라졌다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꽤... 큰 일을 벌이고 있었나보군?”
“아... 예.”
“콘벨른 정도되는 귀족을 그렇게 쉽게 지워버릴 수 있으려면 그만큼 큰 세력과 목적이 있어야 할테니까. 슈베르티와 콘벨른이 몇몇 귀족들과 작은 일을 벌이는 정도라면 나를 아무리 꺼리더라도 콘벨른을 그렇게 함부로 지워버리지 못했을테지. 안그런가?”
“마... 맞습니다.”
“꽤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지?”
“그... 그게 저...”
“아아... 말할 필요는 없네. 쉽게 밝힐 수 있는 일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내게 이야기했겠지. 어제오늘 벌여온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말야.”
“예... 예에...”
“어쨌든 슈베르티가 하고 싶은 말은, 자기가 콘벨른가를 지워버렸으니 더 이상 사고치지 말라는 건가? 자기 일 방해하지 말고?”
“저... 저기...”
“말 돌릴 필요 없어. 어차피 서로 속내를 아는 사이 아닌가? 괜히 말 돌려서 포장해봐야 짜증만 난다구.”
“예, 맞습니다. 자작님께 무례를 범한 콘벨른 백작가를 귀족 명단에서 완전히 지워버렸으니 더 이상의 분쟁을 일으키지 마시고 한시라도 빨리 황도로 입성하라는 말씀이셧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예.”
거부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조용히 살고 싶은 칸피니스다. 괜히 분란을 일으켜서 자신의 존재를 제국의 다른 귀족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따라서 콘벨른가와의 싸움은 칸피니스에게 다른 의미로 부담이었다. 그런데 그 부담을 해결해주고, 그가 원래 바라던대로 행동하면 된다니 오히려 칸피니스가 간절히 바라던 바라 할 수 있다.
“참, 콘벨른 가의 기사단 100명이 저 아래 숲에서 몰살당한 건 알고 있나?”
“예? 레드플레임이?”
“아아...”
“자... 자작님께서 손을 쓰신 겁니까?”
“대충은...”
라쥴의 표정이 굳는다. 칸피니스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국에서 이름높은 레드플레임의 기사단 100여명을 혼자서 베어버릴 정도로 강하다고는 생각지 못한 탓에 칸피니스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어쨌든 고맙다고 전해주게. 덕분에 귀찮은 일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야.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신세를 꼭 갚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반쯤 넋이 나간 상태라 라쥴은 멍하니 기계적으로 대답한다. 의도했던대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라쥴의 모습에 칸피니스는 만족의 미소를 짓는다. 이로서 슈베르티는 자신을 더욱더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통해 칸피니스는 슈베르티의 권력을 마음껏 이용해 지금의 안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만 가보게.”
“아...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그래.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예.”
얼떨결에 작별인사까지 한 라쥴은 칸피니스가 선두로 말을 몰아 멀어져가는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본다. 제국기사단장이자 소드마스터이기도 한 슈베르티 백작이 변경의 자작에 불과한 칸피니스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가 새삼 피부로 강하게 와닿은 때문이다.
“잠시 비켜주실래요? 마차가 지나가야 하는데...”
“예? 예... 죄송합니다...”
길을 막고 서있는 라쥴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롯시다. 백금발의 아름다운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오자 정신없는 와중에도 라쥴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몰아 길 한쪽으로 비켜선다. 그가 비켜서자 롯시는 더욱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보이고는 말을 몰아 칸피니스의 뒤를 쫓는다.
다각다각다각---
덜컹-- 덜컹--
멍하니 칸피니스와 롯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라쥴의 옆으로 딜레인을 비롯한 기사들과 마차가 차례차례 지나간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여기사들의 모습이 라쥴은 평생 지어본 적 없는 어벙하게 풀어진 표정을 지은 채 지나가는 기사들과 마차를 바라본다.
“아?”
마차가 막 그의 옆을 통과할 때 라쥴은 무언가 기대를 안고 마차의 창문 안을 엿塤? 지금껏 보아온 여기사들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자극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저... 저건...?”
역시나 마차 안의 여자들은 아름다웠다. 선명한 붉은 빛 머리의 유난히 흰 피부의 여자나 벌꿀빛의 머릿결을 지닌 자매로 보이는 여자들이나 그가 한 번도 경험해본 아름다움으로 그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들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여자들 사이의 작고 초라한 누군가의 모습이다.
“저... 저들이... 저들이 어떻게 여기에...?”
절대 여기에 있어서는 안될 얼굴들이다. 결코 이 자리에서 마주쳐서는 안되는 얼굴들이다. 뜻하지 않은 맞닥뜨림에 라쥴은 심장이 멎을 듯한 놀라움과 충격으로 다시금 이전의 영민함을 되찾는다.
“어... 어서 백작님께 알려야 한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칸피니스 일행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행과는 다른 방향으로 라쥴은 급히 말을 달린다. 슈베르티와 연락할 수단이 비치되어 있는 슈베르티의 영?력이 미치는 어딘가를 향해 무언가에라도 홀린 듯 다급하게 말을 몰아간다.
“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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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검천황을 쓰면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일정한 연재분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과 그 안에서 기승전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글로 12페이지 전후가 되는 한 회 연재분량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끝낸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분량을 맞추느라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급히 당겨지거나 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죠. 그렇다고 한회 연재분량을 멋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거나, 이야기를 여러개로 쪼개거나 할 수는 없는 것이, 그럴경우 정말 성실연재, 매일연참을 해야 하거든요. 안그러면 읽는 데 불편하니까요. 어쨌든 갈수록 나아지고 있으니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참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칸피니스가 시안에게 약한 이유는 나중에 나옵니다. 칸피니스의 트라우마와 관계가 있죠. 시안의 정체는 3부가 진행되는 도중에 나올 예정입니다.
다음회예고>> 드디어 도착한 황도... 어느새 달라붙은 시안으로 인해 여자들을 안지 못한 칸피니스는 극도의 욕구불만에 시달리게 되는데... 무려 2주일이나 배출하지 못하고 축적한 칸피니스의 정력은 살인무기로까지 바뀌어있다. 과연 누가 죽을 것인가? 칸피니스여... 네가 죽이고자 하는 여자는 누구인가?
본편과 예고편이 다르다고 예고편과 본편이 같지는 않습니다.
“후후후후훗...”
평소라면 듣기 좋았을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왠지 생경하기만 하다.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소리이건만 영겁의 거리를 두고 들려오는 듯한 거리감이 왠지 서글프다.
“헤휴...”
마차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칸피니스는 쓸쓸히 말을 몬다. 같이 말을 타고 가는 롯시나 딜레인과도 한참 떨어진 뒤에서 흐느적거리는 말등에 몸을 맡긴 채 체념의 한숨을 내쉰다.
“로엔... 로엔... 네가 고생이 많구나.”
미간과 네 발목에 흰 털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이는 검은 말의 이름은 로엔. 십수년 전 힘들게 입수한 북방계 명마의 자식으로, 지금은 어미에 이어 칸피니스가 타고다니는 유일한 말이다.
워낙에 덩치가 크다보니 어지간한 말은 칸피니스를 감당하기 힘들다. 하루이틀은 겨우겨우 타고다닌다 하더라도 한 달만 지나면 칸피니스를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마르기 시작해, 아무리 건강한 말도 비루먹은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칸피니스는 기사이면서도 기마전투에 약하다. 그를 태울만한 말이 없으니 말을 타고 훈련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제국 제일, 아니 대륙 제일의 검술을 지니고서도 기사단 서열 23위에 불과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상기술이 약하다는 약점 때문이었다.
결국 보다못한 프리챌시가 북방의 엘프부족에 연락을 넣어 확보하게 된 것이 로엔의 어미 폴렌이다. 북고원을 뛰어놀던 야생마 무리를 이끌던 폴렌을 손에 넣고서야 비로소 칸피니스는 자신의 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폴렌의 자식이 바로 로엔이다.
하지만 그런 로엔조차도 칸피니스의 몸무게를 쉽게 감당하지는 못한다. 폴렌에게서 태어난 새끼 가운데 가장 큰, 오히려 폴렌보다도 더 크고 강한 말인 로엔조차도 칸피니스의 거구를 태우고 먼 거리를 이동하지는 못한다. 로엔이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일주일 정도. 그 이상의 여행길은 로엔으로서도 무리다. 황도까지의 한 달 여행은 당연히 견뎌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여행길 내내 로엔이 아닌 마차로 이동했던 것이다. 로엔을 아끼기 위해서.
그런 로엔의 등에 타게 된 이유, 그것은 바로 어젯밤의 끔찍한 악몽 때문이다. 여자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그 생각하기도 황망한 기억이 그를 마차가 아닌 로엔의 등으로 내몬 것이다.
“후후후훗... 그랬단 말이죠?”
“그렇다니까? 시안이 위에서 덥쳐오니까 눈이 이렇게 커다래지는데... 그래도 자지는 튼튼하게 일어나 있더라고. 꺼떡꺼떡 인사까지 하면서 귀두로는 맑은 물까지 토해내는 것이 오히려 즐기는 분위기였다니까?”
“호호호호... 그래서는 강간이라 할 수 없잖아요? 좋아서 즐긴 거 아녜요?”
“맞아요. 변태 아빠니까 색다른 플레이라고 좋아서 죽으려 했을거야. 안그럼 고작 마법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당할 리 없잖아요.”
“맞아맞아, 오라버니가 어떤 오라버니인데...”
“그렇지도 않아. 눈이 이렇~~게 커져서는 얼굴이 굳어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꺄아아~~ 눈물이래!!”
“너무했다~~ 아무리 강간당하는 상황이라지만 눈물을 흘리다니... 당당한 색마 아빠답지 않아.”
“색마 이전에 기사로서도 치욕이야. 어떻게 강간을 당하면서 눈물을...”
“눈물만 흘리면 좋게? 시안이 엉덩이를 돌릴 때마다 얼굴 표정까지 바뀌어서는 숨을 헐떡 헐떡... 좋아 죽으려 하면서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니까?”
“꺄아~~ 꺄아~~ 상상이 안돼. 귀여운 아빠라니...”
“영주님이 정말 그러셨단 말예요? 나두 보고 싶다...”
좋아 죽으려는 소리가 마차 안에서 칸피니스에게까지 들린다. 그리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에도 너무도 선명히 들리고 있다.
“클라이안...”
클라이안의 농간이다. 마법으로 마차 안의 이야기를 칸피니스가 선명히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리라.
“뿌드득...”
이럴 때 이가 갈리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 아니 사람이 아니다.
“결국 당하고 나서는 엉엉 울면서 프리챌시를 찾는데...”
“엉엉 울어요? 진짜?”
“진짜라니까?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엉엉 울었다고. 아침에 봤잖아? 귀밑머리가 젖어서 말라있는거. 그거 그때 흘린 눈물 때문이야.”
“아아... 너무 심하다. 아빠 그렇게 안봤는데... 강간 좀 당했다고 눈물까지 흘리다니...”
“자지가 단단히 서있던 것으로 보아 자기도 즐긴 것 같은데 같이 즐겨놓고 눈물이라니 심하잖아?”
“어휴... 아빠가 그럴 줄 몰랐어. 어차피 남자의 순결이라는 게 강에 배지나간 자리 아니에요? 그냥 잊고 굳건히 살아야지.
“그래그래, 그런데 프리챌시님을 찾았다구요?”
“그래, 프리챌시를 부르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어머머머머... 설마 오라버니의 사랑은 프리챌시?”
“꺄아~~ 그럼 아빠가 프리챌시님을 좋아하는 거에요? 그럼 프리챌시님이 우리 엄마?”
“영주부인이 되는거지.”
“그럼 우리는?”
“불륜의 상대??”
“숨겨놓은 애인?”
“몸도 마음도 속아서 농락당하는 비련의 여자들?”
“방금 그거 괜찮다.”
“맞아. 맞아. 우린 속은거야.”
“그래. 속아서 농락당한거야.”
“흑... 남자에게 속은 불쌍한 소녀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운명을 저주하게 되겠죠?”
“맞아! 바로 그자세!!”
“그래!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물을 좀더...”
“야아아... 멋지다. 디올린. 그 모습 보고 있으려니 오라버니가 정말 나쁜사람같아.”
“나쁜사람이라니! 나쁜놈이지!”
“호호호호... 자칭 고금천하제일색마라고 으스대던 주제에 여자에게 강간까지 당한...”
“아아... 그럼 아빠 더럽혀진건가?”
“예전 같으면 자살했어야 했을거야.”
“목을 이렇... 게 매달아서?”
“칼로 이렇... 게?”
“잠깐잠깐 이것 좀 봐봐. 이 자세가 더 어울리나?”
“그것도 괜찮은데?”
“호호호홋... 딜레인 오라버니 어쩌고 있나 좀 봐봐.”
“클라이안님 여기서 이야기하는 거 제대로 듣고 있겠죠?”
“걱정마. 지금 얼굴색 변하는 거 보니까 모두 제대로 듣고 있어.”
“하하하하... 나도 그 얼굴 보고 싶다.”
“순진가련한 어린 소녀를 속이고 농락한 그딴 나쁜놈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
“와아아... 연기력 죽인다!”
너무 잘들인다. 너무 잘들려서 문제다.
“하아...”
당분간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어본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까? 어쩌다 이렇게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부끄러운 꼴을 보이게 되었을까?
“달링~~!! 달링 여자들은 사이가 좋은가봐?”
모두 이 여자 때문이다.
“아아... 한 남자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질투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아. 저렇게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들의 모습이라니. 하렘의 이상이야. 아아... 너무 멋져.”
마법으로 몸을 공중에 띄운 채 칸피니스의 옆을 졸졸 따라오고 있는 짙은 붉은 머리의 여자마법사 시안. 이 여자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역시 달링이야. 첩 한 명만 들여도 여자들 싸움에 집안살림 남아나는 게 없다고 하는데 저리도 완벽히 여자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게 만들었잖아? 모두 달링의 매력 때문일거야. 아아... 우리 달링은 왜 이리도 잘난 것일까?”
저 재수없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간밤의 악몽이 떠오른다. 강제로 세워진 자지가 그 보지 안에서 꿈틀거리던 그 치욕의 시간들이 다시금 온몸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며 되살아난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가 푸들푸들 떨린다.
‘한 대 때려주고 싶다.’
“그런데 달링... 너무 인기 없다. 매력은 매력인데... 왠지 왕따의 매력같은... 오가는 왕따속에 싹트는 동지애라고나 할까? 그런 거 같지?”
하늘을 우러러본다. 역시 오늘도 하늘을 파랗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데 달링... 어제 괜찮았어?”
움찔!
“어제 말야... 거기... 내 보지... 나름대로 신경써서 움직여봤는데... 어때 맘에 들어?”
이를 악문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너무 크고 단단해서 보지 근육을 움직이는 게 정말 힘들었다니까? 죽어있는 놈을 세우려고 입에 넣었는데... 와아... 턱이 안다물려지는 거 있지? 입 찢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혀까지 움직이려다가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어느새 시안의 모습이 칸피니스 옆에 바싹 붙는다. 그녀의 청회색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빛나며 칸피니스를 향한다.
“그렇게 큰 자지는 처음이었어. 어떻게 사람의 자지가 그렇게 클 수 있는거지? 마치 오거를 보는 거 같았다니까. 그거 보지에 집어넣으려는데 정말 겁나더라.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하고...”
‘그렇게라도 죽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처음 경험해보는 대단한 물건이라 그동안 갈고닦은 모든 기술을 다 동원했지 뭐야? 달링의 자지는 이리도 훌륭한데 내 보지가 너무 평범하면 격에 맞지 않으니까. 달링의 그 훌륭한 자지에 어울리는 보지라는 소리 들으려고 한 달 동안 쓸 힘을 한 시간동안 다 썼다니까? 정말 가상한 노력 아냐?”
‘그냥 이대로 죽여버릴까?’
“어땠어? 응? 어땠어? 노력한 보람 있었지? 굉장했지? 그렇지? 아아... 달링은 행운아인 줄 알아야 해. 이렇게 맛있는 보지를 먹어볼 수 있었으니까. 모든 남자들이 달링을 부러워할거야. 이런 예쁜 여자의, 이렇게 맛있는 보지를, 공짜로 상납받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구.”
‘먹은 건 너잖아!’
“더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 맛있는 보지를 먹을 수 있는거잖아. 어제 내게 몸을 허락한 이상 달링의 몸은 이제 내 것이니까. 이제 달링은 나의 남자가 된거야. 언제든 원할 때마다 섹스를 나눌 수 있는 나만의 연인, 나만의 달링이 된거라구. 이 예쁜 얼굴과 이 잘빠진 몸매와 함께,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을 겸비한 보지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이야?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지? 너무 좋아 죽겠지?”
‘행운? 차라리 저주를 해라!’
“아이잉...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면... 여기서 하자구? 부... 부끄러운데... 보는 눈도 많구... 하지만 달링이 좋다면야... 아이잉... 너무 노골적이다...”
머리가 아프다.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심장에 무리가 간 듯 가슴도 답답해져온다.
‘화... 화병으로 죽는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머리가 아득해 오는 것이 멀리 강이 보이는 것 같다. 꽃들이 가득한 강. 그 건너편에서 자신의 손에 죽은 아버지와 형들이 칼을 갈며 노려보고 있다. 퍽큐를 먹이고 있는 건 삼촌들인 모양이다.
‘아아... 이 칸피니스가... 여기서... 이렇게 가는구나...’
“그런데 나 몇 번째야? 달링의 몇 번째 애인이야? 웅... 10번째? 아니면 20번째? 헤헤헷... 설마 50번은 아니겠지? 설마... 진짜야? 너무해! 나를 속이다니! 50번째라니! 어떻게.. 어떻게... 애인이 50명씩이나 있으면서 나를 유혹하고... 흑... 내 순결... 나를 농락했어. 나를 망쳤어. 순진한 내 인생을 이렇게... 이렇게 더럽혔어... 흑... 달링 나빠...”
칼을 휘두르며 저주를 퍼붓는 아버지와 형의 모습이 너무도 반갑다. 퍽큐를 먹이며 방방 뛰는 삼촌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그래. 가는거야. 저곳으로. 안식의 세계로...’
“어떻게... 나한테 달링은 13번째 남자인데... 어떻게... 어떻게... 달링은... 흑... 달링은... 그렇게 유혹해서 내가 범하도록 만들어놓고... 배... 배신을 하다니... 흑흑... 나... 또 남자에게 속은거야? 흑... 말 좀 해봐! 이 나쁜 남자야!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흑흑흑...”
‘누가? 누구를? 언제? 어떻게? 뭘? 왜? 도대체 뭐가 문젠데? 누가 당했다는거야?’
혼자서 눈물을 흘리며 발광을 하던 시안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혀를 살짝 내밀며 칸피니스에게 웃어보인다. 살짝 손가락을 올려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이 애㉯?정도로 귀여워보인다. 역시 시안은 미인이다.
“하지만... 용서할게. 이제부터는 내 남자인걸. 50번째면 어떻고 100번째면 어때? 중요한 건 나와 달링이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이어졌다는거지. 그 운명적인 사랑 앞에 13번째면 어떻고, 100번째면 어떻겠어? 그렇지? 아아... 난 너무 마음이 넓어. 나를 속인 남자에게까지 이렇게 관대할 수 있다니...”
‘과... 관대?’
“허허허허....”
너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다보니 나오느니 웃음이다.
“세상 모든 것이 공허한 것을. 모든 것이 허상일 뿐인 것을. 모든 것이 공(空)이고 모든 것이 허(虛)인 것을...”
이순간 칸피니스는 도를 깨우쳐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
쪽--!!
‘엥?’
“아하하하하... 나잡아봐라~~~!”
갑작스런 입맞춤과 동시에 힘차에 앞으로 쏘아져나가는 시안. 칸피니스가 자신을 잡으러 올 것이라 확신하는 듯 칸피니스를 돌아보는 그 표정이 해맑기만 하다. 10대의 어린 소녀다은 순진함과 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표정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얘기다. 칸피니스의 주관으로 보았을 때 그 표정은 가증 그 자체일 뿐이다.
‘내가 왜 쫓아가야 하는데?’
당연히 칸피니스에게는 그녀를 쫓아가고픈 생각이 없다. 잠시의 유체이탈을 경험했지만 아직 그는 미치지 않았다. 도리어 공과 허의 도리를 깨달아 어느때보다 그 정신이 맑고 깊다. 칸피니스는 조용히 시안과 반대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이대로 튀는 거야!’
하지만 그의 의도는 시작도 하기 전에 저지된다. 갑작스런 외침이 그를 불러세운 것이다.
“아빠!! 누가 찾는데?”
말머리를 돌리고 막 박차를 가하려는 순간 칸피니스를 부르는 딜레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차는 이미 멈춰서 있고, 그 앞에 인마가 한 기 서있는 것이 보인다.
가는 체형에 구부정한 자세. 붉은 빛이 도는 갈색머리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도드라져보이는 매부리코. 익숙한 모습, 잘 아는 얼굴이다.
“뭐야? 라쥴 아냐?”
제국기사단장 에르히 발터 파나샤 슈베르티의 문관 라쥴 포멜. 제국기사단의 일원으로서 기사단장인 슈베르티와 여러 가지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레 알게된 사람이다. 뛰어난 지략과 행정처리능력이 인상적이라 호감을 가지고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있다.
라쥴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도망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라쥴이 왔다면 분명 슈베르티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지만 라쥴은 어디까지나 슈베르티 백작의 사람이고 남자다. 칸피니스에게 개인적인 용무로 찾아올 일은 없는 것이다.
칸피니스가 말머리를 돌리고 라쥴에게로 다가가자 딜레인이 그의 옆으로 붙는다.
“후훗... 가출하시게요?”
“아... 아냐... 그런거...”
“정조를 잃었다고 절망할 거 없어요. 저는 다 이해하니까...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 아니라니까...”
“가출하면 소문낼거에요?”
“소... 소문이라니...?”
“아빠가... 시안이라는 여자마법사에게 강간당했다고...”
“헉...!!”
“클라이안님이 마법영상으로 저장해놨다고 하니까 그것도 확 퍼뜨려버리고...”
“혀... 협박이냐?”
“훗... 어떨까요?”
“너무 치사하단 생각 안드냐?”
“간만에 기회인걸요. 얌전히 놀림감이 되라구요. 홋홋홋...”
“끄응...”
“아주 자근자근... 맛있게... 놀려드릴게요. 홋홋홋... 색마가 강간을 당하다니... 홋홋홋... 프리챌시님께 이르면 얼마나 재미있어 할까?”
“헉... 그건...”
“엄마한테도 말해야지. 호호호호...”
“으윽...”
딜레인의 웃음이 오늘따라 사악하게만 느껴진다.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그토록 순진하고 착하던 아이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자랄수록 칸피니스를 닮아간다. 역시 딸이라서일까?
‘제... 젠장... 지... 엄마를 닮았어야 하는거였는데...’
딜레인이 슬쩍 말을 비껴 마차 옆으로 붙어서는 것을 흘끗 바라보며 칸피니스는 힘없이 말을 몰아 라쥴에게로 향한다. 탈출구 없는 절망에 갇힌 그의 표정은 마치 시체를 보는 듯 어둡기만 하다.
“안녕하십니까? 델킨피에르 자작님.”
칸피니스가 다가서자 라쥴이 말 위에서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오랜만이군.”
“예,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안색이...”
“아... 벼... 별 것 아닐세.”
세심히 자신의 표정을 살피며 물어오는 라쥴의 말에 칸피니스는 놀라 당황한다. 마치 지난밤의 일과 조금 전 협박받은 일을 아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절대 그럴 일이 없음에도 연이은 충격으로 지나칠 정도로 소심해진 탓인지 망상에 불과한 느낌이 점차 사실처럼 다가온다.
“아... 예...”
칸피니스의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라쥴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슈베르티 백작의 사절로서 칸피니스를 만나는 것이다. 칸피니스의 태도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의 임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니 그로서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 무슨 일인가?”
라쥴이 납득하고 자신에 대해 관심을 끊자 칸피니스는 비로소 평정을 회복한다. 여전히 숨겨야 할 치부를 들키지 않으려 긴장하면서도 슈베르티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의 사절을 맞이하는데 한치의 허술함이 없도록 마음을 단단히 다잡으며 여유를 찾아간다.
“이번에 자작님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콘벨른 백작가의 일입니다.”
“콘벨른 백작가?”
“예.”
콘벨른 백작가라는 말에 칸피니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슈베르티 백작과 콘벨른 백작과 무슨 관계가 있는건가?”
콘벨른가와의 분쟁이 있다고 해서 슈베르티 백작이 중간에 끼어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칸피니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숨기려는 의도에서 슈베르티 백작의 도움을 곧잘 청해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칸피니스 쪽에서 먼저 요청한 경우였다. 그런데 그의 도움요청이 있기도 전에 슈베르티 백작이 분쟁에 개입해온 것이다. 충분히 그 관계를 의심해볼만 하다.
“예. 유감스럽게도...”
“흐음...”
“모종의 일로 슈베르티 백작님과 콘벨른 백작이 손을 잡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가?”
“예.”
모종의 일이 무언가는 알 필요 없다. 칸피니스 자신과만 관계가 없으면 된다. 그같은 칸피니스의 성격을 알기에 라쥴이 저토록 당당히 슈베르티 백작과 콘벨른 백작 간의 유착관계를 밝힐 수 있는 것이리라.
“그 모종의 일이 나와 관계된 것은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절대로! 백작님께서는 자작님과 대립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흐음... 백작의 뜻인가?”
“백작님은 현명하신 분이십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예, 맹세합니다.”
단호한 얼굴로 맹세한다고 말하자 칸피니스의 얼굴에 피식 조소가 떠오른다.
“기사의 맹세인가?”
“그... 그건...”
기사의 맹세는 기사만이 할 수 있다. 기사가 아닌 자는 기사의 맹세를 해서는 안된다. 상인 가문에서 태어난 평민 라쥴은 당연히 기사가 아니다. 기사의 맹세를 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설마 상인의 맹세를 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상인의 맹세란 말 그자체로 넌센스라는 걸 모르진 않을테니 말야.”
“예... 그... 그게...”
“그럼 무얼로 맹세하려는가?”
비웃음 섞인 칸피니스의 말에 라쥴의 표정이 단호하게 굳는다.
“저를 발탁하고 기용해주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의 뜻을 대변할 사절로서 저를 보내신 슈베르티 백작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호오... 슈베르티 백작의 이름을?”
자신의 주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 자칫 주군의 명예를 더럽혔다하여 처벌받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좋아! 자네가 자네의 주군의 이름을 건다면 믿어보도록 하지.”
하지만 칸피니스는 라쥴과 같은 사람에게 있어 주군의 명예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슈베르티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절로 보낸 것일테고, 라쥴은 태연히 슈베르티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한 것이리라.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무에 있나? 그건 그렇고... 슈베르티 백작은 무슨 이유로 자네를 내게 보낸건가?”
“콘벨른 백작가와 델킨피에르 자작님간의 싸움을 종식시켰다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싸움을 종식시켰다고...?”
“예.”
“어떤식으로?”
“콘... 벨른가를... 지워버렸습니다.”
“지워버려?”
이번에는 칸피니스도 약간 놀랐다. 콘벨른가를 지워버리다니. 슈베르티가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칸피니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분쟁에서 슈베르티가 칸피니스의 편을 들 것이라는 것도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콘벨른가 정도 되는 귀족가문을 지워버리라고는 칸피니스조차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제국동남제후령의 유력 귀족가문 가운데 하나인 콘벨른가가 자신과의 분쟁으로 인해 사라졌다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꽤... 큰 일을 벌이고 있었나보군?”
“아... 예.”
“콘벨른 정도되는 귀족을 그렇게 쉽게 지워버릴 수 있으려면 그만큼 큰 세력과 목적이 있어야 할테니까. 슈베르티와 콘벨른이 몇몇 귀족들과 작은 일을 벌이는 정도라면 나를 아무리 꺼리더라도 콘벨른을 그렇게 함부로 지워버리지 못했을테지. 안그런가?”
“마... 맞습니다.”
“꽤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지?”
“그... 그게 저...”
“아아... 말할 필요는 없네. 쉽게 밝힐 수 있는 일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내게 이야기했겠지. 어제오늘 벌여온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말야.”
“예... 예에...”
“어쨌든 슈베르티가 하고 싶은 말은, 자기가 콘벨른가를 지워버렸으니 더 이상 사고치지 말라는 건가? 자기 일 방해하지 말고?”
“저... 저기...”
“말 돌릴 필요 없어. 어차피 서로 속내를 아는 사이 아닌가? 괜히 말 돌려서 포장해봐야 짜증만 난다구.”
“예, 맞습니다. 자작님께 무례를 범한 콘벨른 백작가를 귀족 명단에서 완전히 지워버렸으니 더 이상의 분쟁을 일으키지 마시고 한시라도 빨리 황도로 입성하라는 말씀이셧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예.”
거부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조용히 살고 싶은 칸피니스다. 괜히 분란을 일으켜서 자신의 존재를 제국의 다른 귀족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따라서 콘벨른가와의 싸움은 칸피니스에게 다른 의미로 부담이었다. 그런데 그 부담을 해결해주고, 그가 원래 바라던대로 행동하면 된다니 오히려 칸피니스가 간절히 바라던 바라 할 수 있다.
“참, 콘벨른 가의 기사단 100명이 저 아래 숲에서 몰살당한 건 알고 있나?”
“예? 레드플레임이?”
“아아...”
“자... 자작님께서 손을 쓰신 겁니까?”
“대충은...”
라쥴의 표정이 굳는다. 칸피니스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국에서 이름높은 레드플레임의 기사단 100여명을 혼자서 베어버릴 정도로 강하다고는 생각지 못한 탓에 칸피니스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어쨌든 고맙다고 전해주게. 덕분에 귀찮은 일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야.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신세를 꼭 갚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반쯤 넋이 나간 상태라 라쥴은 멍하니 기계적으로 대답한다. 의도했던대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라쥴의 모습에 칸피니스는 만족의 미소를 짓는다. 이로서 슈베르티는 자신을 더욱더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통해 칸피니스는 슈베르티의 권력을 마음껏 이용해 지금의 안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만 가보게.”
“아...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그래.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예.”
얼떨결에 작별인사까지 한 라쥴은 칸피니스가 선두로 말을 몰아 멀어져가는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본다. 제국기사단장이자 소드마스터이기도 한 슈베르티 백작이 변경의 자작에 불과한 칸피니스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가 새삼 피부로 강하게 와닿은 때문이다.
“잠시 비켜주실래요? 마차가 지나가야 하는데...”
“예? 예... 죄송합니다...”
길을 막고 서있는 라쥴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롯시다. 백금발의 아름다운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오자 정신없는 와중에도 라쥴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몰아 길 한쪽으로 비켜선다. 그가 비켜서자 롯시는 더욱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보이고는 말을 몰아 칸피니스의 뒤를 쫓는다.
다각다각다각---
덜컹-- 덜컹--
멍하니 칸피니스와 롯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라쥴의 옆으로 딜레인을 비롯한 기사들과 마차가 차례차례 지나간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여기사들의 모습이 라쥴은 평생 지어본 적 없는 어벙하게 풀어진 표정을 지은 채 지나가는 기사들과 마차를 바라본다.
“아?”
마차가 막 그의 옆을 통과할 때 라쥴은 무언가 기대를 안고 마차의 창문 안을 엿塤? 지금껏 보아온 여기사들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자극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저... 저건...?”
역시나 마차 안의 여자들은 아름다웠다. 선명한 붉은 빛 머리의 유난히 흰 피부의 여자나 벌꿀빛의 머릿결을 지닌 자매로 보이는 여자들이나 그가 한 번도 경험해본 아름다움으로 그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들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여자들 사이의 작고 초라한 누군가의 모습이다.
“저... 저들이... 저들이 어떻게 여기에...?”
절대 여기에 있어서는 안될 얼굴들이다. 결코 이 자리에서 마주쳐서는 안되는 얼굴들이다. 뜻하지 않은 맞닥뜨림에 라쥴은 심장이 멎을 듯한 놀라움과 충격으로 다시금 이전의 영민함을 되찾는다.
“어... 어서 백작님께 알려야 한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칸피니스 일행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행과는 다른 방향으로 라쥴은 급히 말을 달린다. 슈베르티와 연락할 수단이 비치되어 있는 슈베르티의 영?력이 미치는 어딘가를 향해 무언가에라도 홀린 듯 다급하게 말을 몰아간다.
“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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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검천황을 쓰면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일정한 연재분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과 그 안에서 기승전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글로 12페이지 전후가 되는 한 회 연재분량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끝낸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분량을 맞추느라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급히 당겨지거나 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죠. 그렇다고 한회 연재분량을 멋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거나, 이야기를 여러개로 쪼개거나 할 수는 없는 것이, 그럴경우 정말 성실연재, 매일연참을 해야 하거든요. 안그러면 읽는 데 불편하니까요. 어쨌든 갈수록 나아지고 있으니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참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칸피니스가 시안에게 약한 이유는 나중에 나옵니다. 칸피니스의 트라우마와 관계가 있죠. 시안의 정체는 3부가 진행되는 도중에 나올 예정입니다.
다음회예고>> 드디어 도착한 황도... 어느새 달라붙은 시안으로 인해 여자들을 안지 못한 칸피니스는 극도의 욕구불만에 시달리게 되는데... 무려 2주일이나 배출하지 못하고 축적한 칸피니스의 정력은 살인무기로까지 바뀌어있다. 과연 누가 죽을 것인가? 칸피니스여... 네가 죽이고자 하는 여자는 누구인가?
본편과 예고편이 다르다고 예고편과 본편이 같지는 않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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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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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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