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몽(千日夢) - 26부 -
"탕 탕 탕~~ 계십니까? 계세요? 탕 탕~~"
"에이~ 누구야... 아침부터... 씨이~"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재식은 짜증스럽게 눈을 비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움직일수 조차 없던 재식이었지만
어젯밤 승희엄마와 승희의 괴이한 치료법으로 몸이 날아갈듯이 가뿐하다.
"제가 나가 볼께요... "
승희엄마가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으며 밖으로 나간다.
"여기에 김재식씨라고 살죠? 지금 안에 있습니까?"
재식은 문밖에서 자신의 이름 소리가 들려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옷을 차려 입는데
밖으로 나갔던 승미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온다.
"경찰이 왔어요... 혹시 무슨일이 있어요?"
"경찰 이라구요? 이상하네... 혹시 전에 이혼 소송이 잘못됐나? "
방금 잠에서 깨어난 승미는 무슨일인가 싶어서 눈만 굴리고 있다.
"저어... 무슨 일이죠? 제가 김재식인데..."
재식이 허리띠를 매면서 방문을 열고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경찰 두명이 다가오는 것이다.
"잠깐 파출소까지 가주셔야 겠습니다. 조사 할것이 있어서...."
"그러죠...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
"아마 가보시면 알껍니다... 자 가시죠..."
재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경찰들과 함께 대문을 나서자
승미엄마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데
아직까지 속옷 차림을 한 승미는 울살이 된채 발만 동동 구를뿐이다.
재식이 파출소 안으로 들어서자 경찰은 재식에게 의자를 내어주며 앉으라고 한다.
"으흠~ 윤 지민 이란 여자를 아시죠?"
지민이의 이름이 나오자 재식의 머리에 뭔가 스치는 불길한 예감,
"예에? 지민이요... 아..압니다 만... "
"김재식씨는 윤지민에 의해 강간 신고가 들어 왔습니다."
"예에??? 가...강 간 이 라 뇨? 마...말도 아...안...."
정말 뜻밖이었다.
물론 지민이와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강간이란 말인가?
그리고 예린이의 집에서 말도없이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집에 원한을 살만한 일들은 전혀 하지 않았던 재식이기에
강간으로 신고를 당했다는건 믿기지 않을 뿐이다.
"어...어떻게 된 일이예요? "
뒤늦게 파출소로 찾아온 승미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어오자
재식은 한동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으흠~ 전에 내가 예린이의 집에 있을때 ... 휴우~~ 그 집에서 신고를 했다네요..."
승미엄마에게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지만
예린이의 집 관계에 대해서 대충은 이야기 한바 있었기에 승미엄마는 더이상 묻질 않았다.
"자아~ 일단 경찰서로 갑시다... 피해자에게 연락이 되었으니 거기서 이야기 해보세요..."
재식은 뭔가에 말려 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해진다.
"어떡해요? 아휴~ 어쩌면 좋아.... 흐흑..."
금새 승미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린다.
"자아~ 일단 경찰서로 갑시다... 죄가 없다면 곧 풀려 나겠죠.."
경찰은 재식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더니 밖으로 데리고 나가 페트롤카에 태웠다.
"아빠~~ 가지 마아~~ 흐흑... 아빠아~"
뒤늦게 파출소 정문을 들어오던 승미가 재식이 경찰차에 태워지는 것을 보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어 버리는 것이었다.
"괜찬아...승미야~ 아빠는 아무일도 없을꺼야... 내 금방 다녀 올께..."
"아빠~ 가지마아~ 흐 흑!! 아빠아~"
경찰차는 재식의 말이 끝나자 우는 승미를 뒤로한채 곧바로 출발해 버리고
승미는 차의 뒷 꽁무니를 몇발자욱 따라오더니 그자리에서 통곡을 한다.
재식을 태운 경찰차는 강줄기를 따라 한참을 구비구비 달리더니
드디어 영월시내로 들어가 경찰서로 향한다.
"철커덩~~"
두명의 파출소 경찰이 경찰서로 인계를 하자
또다른 경찰이 재식의 몸수색을 마친후 철창이 있는 유치장 안으로 넣어 버리자
안에있던 두명의 험상궂은 얼굴을 한 사나이들이 재식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
"형씨는 뭣때문에 들어왔소?"
"저어~ 그...그 게... "
이런곳은 처음이었던 재식은 떨려서 말조차 나오질 않았다.
"아아~ 마음 편하게 가지시요... 물어보나 마나 죄를 지었으니 들어왔겠지..."
험상궂게 생긴 그 사람은 생긴것과는 달리 자리까지 내주면서 앉으라고 했다.
"사..사실은 어떤 여자로 부터 고소를 당했는데...."
"허헛... 강간이구먼... 그거 재미 있겠는데... 그럼 이따가 잘때 즐긴 이야기나 좀 들려주시오... 허 허 허~"
그 사람은 바로 강간이라고 짐작을 하더니 웃어버린다.
"저어~ 그럼 전 어떻게 되는건가요?"
"허 허~ 형씨.. 이거 완전 초짜구먼... 강간은 피해자가 합의를 안해주면 기냥 살아야지 뭐...."
험상궂은 그 남자의 말을 들은 재식은 눈앞이 캄캄하였다.
돈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라고 하나도 없는 집인데
돈으로 합의를 한다는건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것 아닌가?
게다가 재식에게 돈이라고는 한푼도 없다는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이것은 필시 또다른 목적에 의해 말려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재식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것인가?
경찰서의 첫날은 별다른 조서도 꾸미지 않고 답답한 마음으로 저녁을 맞이하였고
밤이되자 얼굴이 험상궂어 보이는 한사람이 재식에게 사건 경위를 이야기 해보라는 것이었다.
재식은 예린이의 식구들과 만났던 일들과
그동안 일어났던 정황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를 했다.
"허헛...참!! 아니 그렇게 횡재를 했는데 왜 그집에서 나왔수..?"
"수린이라는 아이를 건드리고 피로 물들여진 그아이의 몸을보자 죄책감에 쌓여서...."
"아마 괘씸해서 그런것 같은데... 아무래도 형씨는 어렵겠수......"
"아니...어렵다니... 그게 무슨...? "
"형씨 말대로라면 그 집에서 돈이 아쉬운것도 아니고... 허허 참~~ 복덩이를 차버리다니..."
재식은 그 사람의 말을듣자 더욱 가슴이 답답해진다.
겨우 얻어놓은 자그마한 행복 이었는데 그것마져 눈앞에서 사라지다니...
"마..만약 형을 받게 된다면 얼마 정도 살게 될까요?"
"으흠~ 강간이라면 3년정도... 아마 판사를 잘 만나 정상참작이 된다해도 2년은 살아야..."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
"강간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합의를 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선 힘들어요.."
밤은 깊어가고 같이 있는 두사람은 뭐가 그리도 편한지 벌써 코까지 골면서 잠이 들었지만
재식은 너무나 꿈과 같은 일들을 당한지라 쉽게 잠이오질 않았다.
유치장을 지키는 의경놈은 만화책을 보는지 킥킥거리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새벽녘이 되자 겨우 잠이든 재식은 채 한두시간도 못잤는데 기상을 시킨다.
세수도 시키지 않고 아침밥을 들여 왔지만
반찬이라야 도저히 숟가락이 갈곳이 없자 재식은 멀건 시래기국으로 허기를 면한다.
"철 커 덩!!! 김재식씨 나오세요~"
제법 순하게 생긴 경찰 이었지만 재식의 눈에는 모두 두려운 존재다.
재식이 유치장 문을 나서자 또다시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다.
검정 고무신을 질질끌고 앞서가던 경찰의 뒤를 따르는 재식의 몰골이란 영락없는 죄수의 모습이다.
"허헛....아..아..아니!! "
재식을 끌고온 경찰이 조사실이라는 팻말이 붙은곳에 문을 열자
거기에는 재식을 고소했던 지민이와 예린이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정순경... 수갑을 풀어주고 이분 옷갈아 입혀서 데려와..."
"예... 합의가 됐나 봐요? 허허~ 이사람 땡 잡았네..."
다시 정순경을 따라 유치장으로 간 재식은 입고 갔던 옷으로 갈아 입었다.
"어이~ 형씨... 어떻게 된 일이요? 합의를 했소?"
"그..글쎄요... 나도 아직은 잘..."
하룻밤을 같이 보냈지만 그나마 친절하게 대해줬던 유치장 안의 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험상궂은 사나이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뒤로한채 재식은 다시 조사실로 들어왔다.
"좋은분 만났으니 이렇게 풀려나지만 앞으로 조심 하시오~ 자~ 이제 데리고 가세요.."
예린이 엄마와 지민이와 조사실을 나오던 재식의 머릿속에 갑자기 많은것들이 영상처럼 펼쳐 지나간다.
"고생 많으셨죠?"
예린이 엄마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채 재식에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이~ 죄송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저씨를 못볼것 같아서..."
"아니...그럼???"
재식이 말도없이 예린이의 집을 나오자 예린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재식을 찾으니
어쩔수 없이 택한 것이 재식을 고소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죄송합니다... 말이라도 하고 나오는건데... 수린이의 몸을 보니까...."
예린이 엄마는 재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니에요~ 그건 수린이가 원해서 한 짓이 었잖아요. 선생님은 잘못이 없어요.."
예린이 엄마는 여전히 재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그럴수록 재식은 더욱 미안하고 죄책감만 커져 가는 것이었다.
"아저씨~ 다시 집으로 가요? 네에...아저씨~"
"으음~ 그런데... 사실은... 어휴~"
그 집을 나온뒤 가정이 생겼다는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재식으로서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아 우물쭈물 한다.
"괜찮아요...경찰서에서 대충 이야기를 들었어요... "
"아니...그렇다면... "
"이젠 저희 욕심처럼 우리집에서 계속 사시라는 말씀은 못 드리겠네요... "
"죄송합니다... 다 제가 못나서..."
"하지만 아이들이 선생님을 그렇게 찾으니 가끔씩 다녀가 주셨으면 해요..."
재식은 몸둘바를 찾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그렇게 돌봐주고
게다가 모든 식구들이 재식을 왕처럼 떠받들어 주었는데
그것을 배신하고 말없이 떠나버린 자신을 다시 찾아 주었으니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오늘은 식구들이 걱정을 하실테니 집으로 가시고 내일이라도 한번 들러주세요..."
재식은 지금 바로 예린이의 집으로 가자고 하면 같이 갈 생각 이었으나
새롭게 꾸민 가정의 식구들까지 배려하는 예린이 엄마의 너그러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감사합니다...무슨말을 드려야 할지... 하지만 내일은 꼭 찾아 뵙겠습니다..."
"아니예요~ 이렇게 번거롭게 해드려 제가 죄송할 따름이죠..."
"아저씨~ 내일 꼭 와야해요? 예린이가 요즘 밥도 잘 안먹는데... 꼭이요?"
"아니!! 예린이가? 어휴~~ 그렇지 않아도 눈에 밟혔는데...그래..내일은 꼭 갈께..."
"그리고 이건 ..."
예린이 엄마는 핸드백을 열더니 하얀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아..아..아니!! 이..이게??"
"얼마 안되지만 집까지 가는데 차비로 하세요~~ 그럼 내일 꼭 뵙게되길 바랄께요~"
하얀 봉투를 재식에게 건네준 예린엄마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타고온 승용차에 오른다.
재식은 승용차가 경찰서의 정문에서 사라질때 까지 손을 흔들다가
손에 쥐어준 하얀 봉투를 열어보았다.
"허헉!! 아..아..아 니!!!"
봉투안에는 천만원짜리 수표 한장과 만원짜리 현금이 스무장 들어 있었다.
이것 역시 천만원짜리 수표를 깨지않고 집으로 가져가게 하는 예린이 엄마의 배려였던 것이다.
경찰서를 나온 재식은 하룻만에 벌어진 또다른 사건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 지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오늘따라 하늘에는 구름한점 없고
아스팔트 바닥에선 벌써 뜨거운 열기가 솟아 오르자
상동으로 가기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재식의 발걸음이 몹시도 무거워 보인다.
"총각...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러는데... 돈 한푼만 보태 주구랴~~"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재식은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60살이 조금 넘었을까 하는 할머니 한분이 꾀죄죄한 몰골로 손을 내 미는 것이었다.
"아니...할머니... 식사를 안하셨어요? "
"으응~ 어제 저녁부터 굶었는데... 아이구... 배가고파 죽겠수... "
마음 약한 재식은 할머니를 보자 식사라도 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구...??!! 그럼 저하고 같이 식사를 하러 가시죠....근데...할머니는 어디 사세요?"
"내집?? 집은 어라에 있는데 가봐야 아무도 없어서... 가기도 싫다우~"
"그래도 집에 가셔야죠... 제가 모셔 드릴테니 같이 가세요..."
"총각이 고맙기도 하지... 나중에 복받을꺼유~ "
재식은 일단 식당으로 가서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한후 택시를 집어탔다.
- 다음편에 계속 -
[email protected]
"탕 탕 탕~~ 계십니까? 계세요? 탕 탕~~"
"에이~ 누구야... 아침부터... 씨이~"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재식은 짜증스럽게 눈을 비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움직일수 조차 없던 재식이었지만
어젯밤 승희엄마와 승희의 괴이한 치료법으로 몸이 날아갈듯이 가뿐하다.
"제가 나가 볼께요... "
승희엄마가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으며 밖으로 나간다.
"여기에 김재식씨라고 살죠? 지금 안에 있습니까?"
재식은 문밖에서 자신의 이름 소리가 들려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옷을 차려 입는데
밖으로 나갔던 승미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온다.
"경찰이 왔어요... 혹시 무슨일이 있어요?"
"경찰 이라구요? 이상하네... 혹시 전에 이혼 소송이 잘못됐나? "
방금 잠에서 깨어난 승미는 무슨일인가 싶어서 눈만 굴리고 있다.
"저어... 무슨 일이죠? 제가 김재식인데..."
재식이 허리띠를 매면서 방문을 열고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경찰 두명이 다가오는 것이다.
"잠깐 파출소까지 가주셔야 겠습니다. 조사 할것이 있어서...."
"그러죠...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
"아마 가보시면 알껍니다... 자 가시죠..."
재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경찰들과 함께 대문을 나서자
승미엄마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데
아직까지 속옷 차림을 한 승미는 울살이 된채 발만 동동 구를뿐이다.
재식이 파출소 안으로 들어서자 경찰은 재식에게 의자를 내어주며 앉으라고 한다.
"으흠~ 윤 지민 이란 여자를 아시죠?"
지민이의 이름이 나오자 재식의 머리에 뭔가 스치는 불길한 예감,
"예에? 지민이요... 아..압니다 만... "
"김재식씨는 윤지민에 의해 강간 신고가 들어 왔습니다."
"예에??? 가...강 간 이 라 뇨? 마...말도 아...안...."
정말 뜻밖이었다.
물론 지민이와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강간이란 말인가?
그리고 예린이의 집에서 말도없이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집에 원한을 살만한 일들은 전혀 하지 않았던 재식이기에
강간으로 신고를 당했다는건 믿기지 않을 뿐이다.
"어...어떻게 된 일이예요? "
뒤늦게 파출소로 찾아온 승미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어오자
재식은 한동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으흠~ 전에 내가 예린이의 집에 있을때 ... 휴우~~ 그 집에서 신고를 했다네요..."
승미엄마에게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지만
예린이의 집 관계에 대해서 대충은 이야기 한바 있었기에 승미엄마는 더이상 묻질 않았다.
"자아~ 일단 경찰서로 갑시다... 피해자에게 연락이 되었으니 거기서 이야기 해보세요..."
재식은 뭔가에 말려 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해진다.
"어떡해요? 아휴~ 어쩌면 좋아.... 흐흑..."
금새 승미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린다.
"자아~ 일단 경찰서로 갑시다... 죄가 없다면 곧 풀려 나겠죠.."
경찰은 재식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더니 밖으로 데리고 나가 페트롤카에 태웠다.
"아빠~~ 가지 마아~~ 흐흑... 아빠아~"
뒤늦게 파출소 정문을 들어오던 승미가 재식이 경찰차에 태워지는 것을 보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어 버리는 것이었다.
"괜찬아...승미야~ 아빠는 아무일도 없을꺼야... 내 금방 다녀 올께..."
"아빠~ 가지마아~ 흐 흑!! 아빠아~"
경찰차는 재식의 말이 끝나자 우는 승미를 뒤로한채 곧바로 출발해 버리고
승미는 차의 뒷 꽁무니를 몇발자욱 따라오더니 그자리에서 통곡을 한다.
재식을 태운 경찰차는 강줄기를 따라 한참을 구비구비 달리더니
드디어 영월시내로 들어가 경찰서로 향한다.
"철커덩~~"
두명의 파출소 경찰이 경찰서로 인계를 하자
또다른 경찰이 재식의 몸수색을 마친후 철창이 있는 유치장 안으로 넣어 버리자
안에있던 두명의 험상궂은 얼굴을 한 사나이들이 재식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
"형씨는 뭣때문에 들어왔소?"
"저어~ 그...그 게... "
이런곳은 처음이었던 재식은 떨려서 말조차 나오질 않았다.
"아아~ 마음 편하게 가지시요... 물어보나 마나 죄를 지었으니 들어왔겠지..."
험상궂게 생긴 그 사람은 생긴것과는 달리 자리까지 내주면서 앉으라고 했다.
"사..사실은 어떤 여자로 부터 고소를 당했는데...."
"허헛... 강간이구먼... 그거 재미 있겠는데... 그럼 이따가 잘때 즐긴 이야기나 좀 들려주시오... 허 허 허~"
그 사람은 바로 강간이라고 짐작을 하더니 웃어버린다.
"저어~ 그럼 전 어떻게 되는건가요?"
"허 허~ 형씨.. 이거 완전 초짜구먼... 강간은 피해자가 합의를 안해주면 기냥 살아야지 뭐...."
험상궂은 그 남자의 말을 들은 재식은 눈앞이 캄캄하였다.
돈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라고 하나도 없는 집인데
돈으로 합의를 한다는건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것 아닌가?
게다가 재식에게 돈이라고는 한푼도 없다는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이것은 필시 또다른 목적에 의해 말려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재식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것인가?
경찰서의 첫날은 별다른 조서도 꾸미지 않고 답답한 마음으로 저녁을 맞이하였고
밤이되자 얼굴이 험상궂어 보이는 한사람이 재식에게 사건 경위를 이야기 해보라는 것이었다.
재식은 예린이의 식구들과 만났던 일들과
그동안 일어났던 정황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를 했다.
"허헛...참!! 아니 그렇게 횡재를 했는데 왜 그집에서 나왔수..?"
"수린이라는 아이를 건드리고 피로 물들여진 그아이의 몸을보자 죄책감에 쌓여서...."
"아마 괘씸해서 그런것 같은데... 아무래도 형씨는 어렵겠수......"
"아니...어렵다니... 그게 무슨...? "
"형씨 말대로라면 그 집에서 돈이 아쉬운것도 아니고... 허허 참~~ 복덩이를 차버리다니..."
재식은 그 사람의 말을듣자 더욱 가슴이 답답해진다.
겨우 얻어놓은 자그마한 행복 이었는데 그것마져 눈앞에서 사라지다니...
"마..만약 형을 받게 된다면 얼마 정도 살게 될까요?"
"으흠~ 강간이라면 3년정도... 아마 판사를 잘 만나 정상참작이 된다해도 2년은 살아야..."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
"강간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합의를 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선 힘들어요.."
밤은 깊어가고 같이 있는 두사람은 뭐가 그리도 편한지 벌써 코까지 골면서 잠이 들었지만
재식은 너무나 꿈과 같은 일들을 당한지라 쉽게 잠이오질 않았다.
유치장을 지키는 의경놈은 만화책을 보는지 킥킥거리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새벽녘이 되자 겨우 잠이든 재식은 채 한두시간도 못잤는데 기상을 시킨다.
세수도 시키지 않고 아침밥을 들여 왔지만
반찬이라야 도저히 숟가락이 갈곳이 없자 재식은 멀건 시래기국으로 허기를 면한다.
"철 커 덩!!! 김재식씨 나오세요~"
제법 순하게 생긴 경찰 이었지만 재식의 눈에는 모두 두려운 존재다.
재식이 유치장 문을 나서자 또다시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다.
검정 고무신을 질질끌고 앞서가던 경찰의 뒤를 따르는 재식의 몰골이란 영락없는 죄수의 모습이다.
"허헛....아..아..아니!! "
재식을 끌고온 경찰이 조사실이라는 팻말이 붙은곳에 문을 열자
거기에는 재식을 고소했던 지민이와 예린이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정순경... 수갑을 풀어주고 이분 옷갈아 입혀서 데려와..."
"예... 합의가 됐나 봐요? 허허~ 이사람 땡 잡았네..."
다시 정순경을 따라 유치장으로 간 재식은 입고 갔던 옷으로 갈아 입었다.
"어이~ 형씨... 어떻게 된 일이요? 합의를 했소?"
"그..글쎄요... 나도 아직은 잘..."
하룻밤을 같이 보냈지만 그나마 친절하게 대해줬던 유치장 안의 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험상궂은 사나이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뒤로한채 재식은 다시 조사실로 들어왔다.
"좋은분 만났으니 이렇게 풀려나지만 앞으로 조심 하시오~ 자~ 이제 데리고 가세요.."
예린이 엄마와 지민이와 조사실을 나오던 재식의 머릿속에 갑자기 많은것들이 영상처럼 펼쳐 지나간다.
"고생 많으셨죠?"
예린이 엄마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채 재식에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이~ 죄송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저씨를 못볼것 같아서..."
"아니...그럼???"
재식이 말도없이 예린이의 집을 나오자 예린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재식을 찾으니
어쩔수 없이 택한 것이 재식을 고소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죄송합니다... 말이라도 하고 나오는건데... 수린이의 몸을 보니까...."
예린이 엄마는 재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니에요~ 그건 수린이가 원해서 한 짓이 었잖아요. 선생님은 잘못이 없어요.."
예린이 엄마는 여전히 재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그럴수록 재식은 더욱 미안하고 죄책감만 커져 가는 것이었다.
"아저씨~ 다시 집으로 가요? 네에...아저씨~"
"으음~ 그런데... 사실은... 어휴~"
그 집을 나온뒤 가정이 생겼다는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재식으로서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아 우물쭈물 한다.
"괜찮아요...경찰서에서 대충 이야기를 들었어요... "
"아니...그렇다면... "
"이젠 저희 욕심처럼 우리집에서 계속 사시라는 말씀은 못 드리겠네요... "
"죄송합니다... 다 제가 못나서..."
"하지만 아이들이 선생님을 그렇게 찾으니 가끔씩 다녀가 주셨으면 해요..."
재식은 몸둘바를 찾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그렇게 돌봐주고
게다가 모든 식구들이 재식을 왕처럼 떠받들어 주었는데
그것을 배신하고 말없이 떠나버린 자신을 다시 찾아 주었으니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오늘은 식구들이 걱정을 하실테니 집으로 가시고 내일이라도 한번 들러주세요..."
재식은 지금 바로 예린이의 집으로 가자고 하면 같이 갈 생각 이었으나
새롭게 꾸민 가정의 식구들까지 배려하는 예린이 엄마의 너그러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감사합니다...무슨말을 드려야 할지... 하지만 내일은 꼭 찾아 뵙겠습니다..."
"아니예요~ 이렇게 번거롭게 해드려 제가 죄송할 따름이죠..."
"아저씨~ 내일 꼭 와야해요? 예린이가 요즘 밥도 잘 안먹는데... 꼭이요?"
"아니!! 예린이가? 어휴~~ 그렇지 않아도 눈에 밟혔는데...그래..내일은 꼭 갈께..."
"그리고 이건 ..."
예린이 엄마는 핸드백을 열더니 하얀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아..아..아니!! 이..이게??"
"얼마 안되지만 집까지 가는데 차비로 하세요~~ 그럼 내일 꼭 뵙게되길 바랄께요~"
하얀 봉투를 재식에게 건네준 예린엄마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타고온 승용차에 오른다.
재식은 승용차가 경찰서의 정문에서 사라질때 까지 손을 흔들다가
손에 쥐어준 하얀 봉투를 열어보았다.
"허헉!! 아..아..아 니!!!"
봉투안에는 천만원짜리 수표 한장과 만원짜리 현금이 스무장 들어 있었다.
이것 역시 천만원짜리 수표를 깨지않고 집으로 가져가게 하는 예린이 엄마의 배려였던 것이다.
경찰서를 나온 재식은 하룻만에 벌어진 또다른 사건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 지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오늘따라 하늘에는 구름한점 없고
아스팔트 바닥에선 벌써 뜨거운 열기가 솟아 오르자
상동으로 가기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재식의 발걸음이 몹시도 무거워 보인다.
"총각...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러는데... 돈 한푼만 보태 주구랴~~"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재식은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60살이 조금 넘었을까 하는 할머니 한분이 꾀죄죄한 몰골로 손을 내 미는 것이었다.
"아니...할머니... 식사를 안하셨어요? "
"으응~ 어제 저녁부터 굶었는데... 아이구... 배가고파 죽겠수... "
마음 약한 재식은 할머니를 보자 식사라도 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구...??!! 그럼 저하고 같이 식사를 하러 가시죠....근데...할머니는 어디 사세요?"
"내집?? 집은 어라에 있는데 가봐야 아무도 없어서... 가기도 싫다우~"
"그래도 집에 가셔야죠... 제가 모셔 드릴테니 같이 가세요..."
"총각이 고맙기도 하지... 나중에 복받을꺼유~ "
재식은 일단 식당으로 가서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한후 택시를 집어탔다.
- 다음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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