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헤츨링에게로 다가갔다. 지하의 어둠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은빛, 이 헤츨링은 틀림없는 실버 드래곤의 후손이다. 내 동족들 중에서도 나와 더욱 가까운, 말하자면 한 집안 식구다.
"황제, 인간의 잔인함을 오늘 다시 깨닫게 해주는군."
황제는 뭐라고 말도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었다. 인간의 잔인함? 황제가 그런 걸 생각이나 했을까?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아무리 인간보다 몇 배나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아이는 어디까지나 헤츨링이다. 인간으로 따지면 낳은 지 얼마 안 된 아기란 말이다.
"지금, 구해주마."
나는 헤츨링의 몸을 꿰뚫고 있는 관을 움켜쥐었다. 비늘이 뜯어져나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피부를 뚫어버린 차가운 금속 관, 이 작은 드래곤의 몸에서 생혈을 뽑아내고 있는 잔혹한 물건을 뽑아버렸다.
- 크워어어어어!
아이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미 몇 년이나 몸에 박혀있던 것을 단번에 뽑아버렸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될지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관을 뽑아내며 살점까지 함께 떨어져나왔을 정도이니. 뜯는 내가 다 고통스러울 정도다.
- 아물어라.
내가 외친 의념이 마력을 품고 아이의 상처에 스몄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상처를 아물게 했다. 피는 순식간에 멎었고, 관이 있던 자리는 이내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 통증은 아직 남았을 터, 몇 번 더 써주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 크르르르르...
이윽고 헤츨링이 눈을 떴다. 정신이 든 모양이다. 그러나 그릉거리는 울음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아무런 의욕도없는 허무한 복종만이 남아있었다. 번뜩이는 샛노란 눈동자에 서린 것은 체념과 포기, 그 이상 이하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오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눈이 어떤 상황에서 갖게 되는 것인지.
노예.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복종한다. 희망이 찾아와도 포기한다. 그 누구에게도 반항하지 않는다.
측은한 마음이 일어났다. 태어나자마자부터 노예가 되어버린 이 어린 아이에게.
"이 녀석의 이름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죽여버릴까?
"묻고 있지 않나, 황제. 이 녀석을 뭐라고 불렀지?"
그제야 황제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이름을 붙인 적은 없었습니다."
피식 웃고 말았다. 이름을 붙인 적은 없다? 가증스럽기가 짝이 없다. 내 웃음은 기가 막혀 화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튀어나온 실망의 다른 모습이다.
"하긴, 그대들 인간에게 있어서 이 녀석은 물건이나 다름없었을 테니."
나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헤츨링을 향해 말했다.
"나가야지. 이제 여기서 나가는 거다."
- 인간의 모습이 되어라.
내 언령이 헤츨링에게 스며들자 찰나간에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는 이미 헤츨링의 거체가 온데간데 없었다. 인간의 마법으로는 폴리모프 아더(Polymorph other)다.
"벗어라, 황제."
황제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머뭇거릴 때, 라이아가 황제의 옷에서 망토를 잡아뜯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알몸으로 내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몸을 덮어 가렸다. 이 아이가 수컷이었으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쯧.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는 어린 아이는 겁에 질리기라도 한 듯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최대한 자상하게 말했다.
"휴리네시아. 이제부터 너를 휴리네시아라고 부르겠다."
"주인님, 그 이름은 분명..."
라이아가 크게 놀라며 물었다. 휴리네시아, 그 이름이 주는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라이아는 그걸 아는 것이다.
나는 라이아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황제더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했다.
"그래. 내가 암컷으로 태어났다면 받았을 바로 그 이름이다."
바로 그 말에 황제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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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인간의 잔인함을 오늘 다시 깨닫게 해주는군."
황제는 뭐라고 말도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었다. 인간의 잔인함? 황제가 그런 걸 생각이나 했을까?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아무리 인간보다 몇 배나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아이는 어디까지나 헤츨링이다. 인간으로 따지면 낳은 지 얼마 안 된 아기란 말이다.
"지금, 구해주마."
나는 헤츨링의 몸을 꿰뚫고 있는 관을 움켜쥐었다. 비늘이 뜯어져나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피부를 뚫어버린 차가운 금속 관, 이 작은 드래곤의 몸에서 생혈을 뽑아내고 있는 잔혹한 물건을 뽑아버렸다.
- 크워어어어어!
아이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미 몇 년이나 몸에 박혀있던 것을 단번에 뽑아버렸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될지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관을 뽑아내며 살점까지 함께 떨어져나왔을 정도이니. 뜯는 내가 다 고통스러울 정도다.
- 아물어라.
내가 외친 의념이 마력을 품고 아이의 상처에 스몄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상처를 아물게 했다. 피는 순식간에 멎었고, 관이 있던 자리는 이내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 통증은 아직 남았을 터, 몇 번 더 써주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 크르르르르...
이윽고 헤츨링이 눈을 떴다. 정신이 든 모양이다. 그러나 그릉거리는 울음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아무런 의욕도없는 허무한 복종만이 남아있었다. 번뜩이는 샛노란 눈동자에 서린 것은 체념과 포기, 그 이상 이하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오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눈이 어떤 상황에서 갖게 되는 것인지.
노예.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복종한다. 희망이 찾아와도 포기한다. 그 누구에게도 반항하지 않는다.
측은한 마음이 일어났다. 태어나자마자부터 노예가 되어버린 이 어린 아이에게.
"이 녀석의 이름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죽여버릴까?
"묻고 있지 않나, 황제. 이 녀석을 뭐라고 불렀지?"
그제야 황제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이름을 붙인 적은 없었습니다."
피식 웃고 말았다. 이름을 붙인 적은 없다? 가증스럽기가 짝이 없다. 내 웃음은 기가 막혀 화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튀어나온 실망의 다른 모습이다.
"하긴, 그대들 인간에게 있어서 이 녀석은 물건이나 다름없었을 테니."
나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헤츨링을 향해 말했다.
"나가야지. 이제 여기서 나가는 거다."
- 인간의 모습이 되어라.
내 언령이 헤츨링에게 스며들자 찰나간에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는 이미 헤츨링의 거체가 온데간데 없었다. 인간의 마법으로는 폴리모프 아더(Polymorph other)다.
"벗어라, 황제."
황제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머뭇거릴 때, 라이아가 황제의 옷에서 망토를 잡아뜯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알몸으로 내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몸을 덮어 가렸다. 이 아이가 수컷이었으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쯧.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는 어린 아이는 겁에 질리기라도 한 듯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최대한 자상하게 말했다.
"휴리네시아. 이제부터 너를 휴리네시아라고 부르겠다."
"주인님, 그 이름은 분명..."
라이아가 크게 놀라며 물었다. 휴리네시아, 그 이름이 주는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라이아는 그걸 아는 것이다.
나는 라이아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황제더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했다.
"그래. 내가 암컷으로 태어났다면 받았을 바로 그 이름이다."
바로 그 말에 황제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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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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