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거요?”
칸피니스의 퉁명스런 물음에도 히리스는 그저 웃을 뿐이다. 칸피니스의 불퉁거리는 모습이 왠지 귀엽게 보이기 때문이다. 키도 자신보다 큰 녀석이 저리도 심통이 나서 있는 것을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누나의 마음인 듯 싶다.
“어디로 갈거요?”
자신의 웃음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더욱 재미있어 히리스는 손으로 입까지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마음껏 웃고 있다. 물론 마음껏 웃고 있다는 건 히리스의 입장일 뿐이다. 칸피니스가 보기엔 내숭덩어리에 음흉함이 더해진 웃음에 불과하다. 칸피니스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진다.
“어디로 갈거냐니까? 벌써 몇 시간째요?”
성밖 구경을 간다고 끌고나와서는 목적지도 없이 이리저리 헤맨 지 벌써 몇 십 분 째다. 아마도 30분은 족히 넘게 흐른 듯 싶다. 그 시간동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히리스의 말고삐까지 잡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칸피니스의 성격에 심통이 날만도 하다.
“풋... 어디로 가고 싶니?”
“그런 건 누님이 정해야죠. 어차피 누님이 나오자고 해서 나온 것 아뇨?”
히리스의 웃음소리에 결정적으로 기분이 상한 듯 칸피니스의 말투가 상당히 불손하다. 다른 때같았으면 눈꼬리가 올라갔을 상황이지만 오늘따라 동생이 귀여워보이는 터라 히리스는 관대하게 용서하기로 한다.
“음... 어디로 갈까? 지금까지 계속 그거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결론이 나지 않네?”
“뭐요? 그럼 아무 생각없이 날 끌고나왔단 거요?”
“응.”
칸피니스 딴에는 위협적으로 화를 낸다고 화를 내보지만 히리스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저 누나로서의 동생의 재롱을 감상하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다.
“도대체 누님은 생각이 있는거요? 없는거요? 기껏 성밖으로 나를 끌고나오고서는 그래 아무 생각없이 나왔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너무도 당당한 히리스의 태도에 칸피니스는 일순 할 말을 잃는다.
“그냥 나오고 싶어서 나오면 안되는거야? 이렇게 예쁜데?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거잖아. 생각해봐. 칸피니스 주제에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귀부인과 단둘이 말을 타고 산책할 수 있겠어? 안그래?”
뻔뻔함도 이정도면 예술이다. 칸피니스는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지... 진심이오?”
“왜? 아니야?”
“저... 저기 누님...”
“후후후훗...”
칸피니스의 벙찐 얼굴을 보더니 히리스가 못참겠다는 듯 웃는다.
“그냥 네 흉내 한 번 내봤어. 닮았니?”
“내... 내흉내? 그게 어떻게... 어떻게 내흉내라는 거요?”
“아니야?”
“당연하지! 난 그렇게 뻔뻔하지 않아요!”
단호히 부정하는 말에 히리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재미있다는 듯 반짝이는 눈빛은 칸피니스의 부정을 절대 부정하고 있다.
“흐으음... 그럴까...?”
“그럼!”
“나는 지금 네 모습이 더 뻔뻔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누님의 편견이오!”
“훗... 그렇다고 해두자.”
“그렇다고 해두자가 아니라...”
비웃음과도 같은 실소에 왠지 발끈해 따져보이만 히리스는 꿈쩍도 않는다. 가늘어져 있던 그녀의 눈이 더욱 가늘어진다. 칸피니스는 왠지 불안한 마음에 몸을 움찔이며 억지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반항하는거야? 이 아름다운 누님께?”
“그... 그렇다고 해두자구요.”
“그렇지? 잘 생각했어.”
“쳇...”
히리스와 말상대 해서 이길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말을 잘한다거나 위압적이라거나 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사랑스러움 때문이다.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남자들로 하여금 그녀의 말에 동의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칸피니스도 남자인지라 자신의 아름다운 누이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웃음까지 지어보이며 빤히 바라보는데는 그저 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누이에게 졌다는 생각에 불퉁거리지만 표정이 밝은 것은 역시 아름다운 여자에게 약한 남자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인정하는거지?”
“다른 건 다 인정할 수 없는데 누님 예쁘다는 거 하나는 인정하오. 됐수?”
“후후훗... 불만이 많은가보다?”
“누님이 너무 예뻐서 불만이오. 그 얼굴로 그 표정을 짓고 있으면 당췌 무슨 말을 못하겠으니까. 이건 범죄라구.”
“푸후후후훗...!! 칭찬이 지나치니까 마치 욕같구나.”
“알면 됐수. 어차피 욕이었으니까.”
“하하하... 이럴 때 너라면 칭찬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을테지?”
“그거 칭찬 맞죠?”
“그래.”
“어쨌든 고맙수.”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한참을 왔던 모양이다. 드문드문 보이던 민가도 보이지 않고 아직 농지로 개간되지 않은 황량한 평야만이 끝없이 펼쳐져있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 아직은 푸른 빛을 띄고 있는 너른 밀밭이 보인다. 마을 외곽에 펼쳐진 밀밭까지 지나쳐온 것이다.
“꽤 멀리 왔는데 이만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우?”
“왜?”
“왜긴? 여기부터는 위험하다구. 정기적으로 병사들이 토벌에 나서기는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출몰하는 동네란 말요. 이 너른 벌판을 왜 밀도 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생각하는거요?”
“흐흥... 그러니?”
칸피니스의 긴장한 표정과는 달리 히리스는 태연하기만 하다. 몬스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다.
너무도 태연한 히리스의 표정에 도리어 칸피니스가 발끈한다. 히리스에 대한 걱정이 그녀의 무신경함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 때문이다.
“이 여자가! 몬스터란 말요! 몬스터! 가장 약한 몬스터라는 코볼트만 해도 얼마나 위험한 지 아시오? 히리스 누님 같은 여자들은 한 번에 목이 뜯겨서는 내장부터 먹히고 만다구. 알겠소?”
“그러니? 그거 꽤 위험하겠구나.”
“진짜! 뭘 믿고 그렇게 태연한거요? 몬스터라니까! 몬스터!”
“널 믿고!”
“아니 날 믿던 간에 몬스터란... 그러니까... 에? 나... 나를 믿고?”
너무 여상스런 대꾸라 일순 입력이 잘 되지 않는다. 빤히 바라보는 히리스의 표정을 보니 잘못들은 말은 아닌 듯 하다.
“응. 너!”
확인하듯 덧붙이는 말에 칸피니스의 가슴이 벅차오른다. 두터운 가슴 근육을 뚫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터질 듯 들려온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이토록 신뢰를 받는 것보다 남자로서 더욱 영광되고 더욱 흥분될 일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하지만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티를 낼 수는 없다. 그것은 쑥쓰러워하는 남자로서의 본능이다. 여자로부터 믿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는 것만큼이나 의연한 모습을 통해 여자에게 잘보이고자 하는 수컷으로서의 본능으로 칸피니스는 여전히 불퉁거린다.
“나 하나 믿고 그리 태연하단 거요? 지금?”
“응. 너라면 몬스터 쯤이야 우스울 거라 생각했거든. 오거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네가 나 하나 지켜주지 못할 리 없잖아. 설사 오거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나 하나 도망칠 시간은 벌어줄 수 있겠지?”
“허허허... 오거 앞에 두고 누님 도망칠 시간 벌다간 죽는다구. 오거가 괜히 오거요? 오죽하면 드래곤에나 붙는 슬레이어를 오거사냥꾼에게 붙여주는 것 아뇨.”
“너 죽으면 상복은 입어줄게.”
“상복?”
“울어도 줄게.”
“어이어이...”
“매년 무덤에 꽃을... 그건 좀 무리겠다. 오거한테 죽으면 시체조차 건사하기 힘들잖아. 그대신... 음... 평생 너만 생각하면서 수절해줄까?”
“이 아가씨야! 말이면 다 하는 건 줄 알아? 뭐가 상복이고, 뭐가 울어주는 거고, 뭐가 수절이야?”
“그걸로 부족하니? 그럼 따라죽어줄까? 가짜무덤에라도 같이 묻어달라고 하면서?”
“그만! 그만!”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어느정도는 진심이 담겨있음을 히리스의 표정만 보아도 쉽게 할 수 있다. 아마도 칸피니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의 각오를 담아 자신에게 애정을 표현해오고 있는 것이리라. 칸피니스는 가슴이 벅차올라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한다.
“걱정마쇼. 오거따위는 한 방에 잡아버릴테니까.”
걱정말라는 단호한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히리스는 오거를 한 방에 잡아버린다는 말에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무 쉽게 말하는 모습이 농담같기도 하지만 칸피니스의 단호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결코 누님이 나 때문에 상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할거요. 수... 수절은... 뭐... 당연한 거고... 그런걸 왜해요? 남우세스럽게. 그냥 좋은 남자 만나서 살면되지...”
“오... 오거를 잡아?”
“당연하지! 누님을 위해서라면 드래곤인들 못잡을까?”
“정말 오거를 잡을 수 있는거야? 진짜? 너... 오거 슬레이어였어?”
“잡을 수 있다니까! 못믿으면 한 번 보여줘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칸피니스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15살에 불과한 어린아이다. 그런데 성인기사들도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혼자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다는 오거를 혼자서 쓰러뜨릴 수 있다니. 사실이라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야아... 내동생 정말 대단하구나! 열 다섯의 나이에 제국에도 백 명 남짓밖에 없다는 오거 슬레이어가 되다니. 이러다 나중에 마스터까지 되는 것 아냐?”
동생이 이토록 강하다는 사실이 히리스로서는 기쁘고 감격스러울 뿐이다. 델킨피에르 성을 인정받았음에도 평소 가문의 기사들에게 무시당해왔음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즐겁다.
“마스터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시우? 누님이 원한다면 내년에라도 마스터가 되어보여드리리다.”
“훗... 덕분에 마스터 동생을 두게 되겠구나. 마스터를 동생으로 두었다면 좋은 데로 시집갈 수 있겠지?”
말을 하면서 눈이 가늘어지는 것은 칸피니스를 놀려먹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다. 칸피니스는 그녀의 뜻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로 한다.
“마스터의 누님이니 마스터에게 시집갈 수 있을거요.”
“마스터? 마스터 누구? 마스터라면 겉만 멀쩡했지 속은 팍삭 늙은 노친네들 아냐? 설마 너... 나더러 그런 노친네들과 결혼하라는거니?”
“마스터를 동생으로 두었다며! 그럼 나이어린 마스터가 한 명은 있다는 얘기 아뇨.”
“에? 그럼...?”
“알아서 생각하시우. 아직도 안정한거요? 어디로 갈건지?”
쑥쓰러움에 결국 칸피니스는 말을 돌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잔뜩 웃음을 머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히리스의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마저 멀리 보이는 흑암의 숲에 고정시키고 있다.
“풋...”
그런 그의 표정이 웃스웠던 것일까? 히리스는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왜웃소?”
“귀여워서.”
“귀여워?”
“응. 네가 너무 귀여워. 그래서 웃었어.”
“쳇... 그 머저리들 닮아가오? 나더러 귀엽다고 하게?”
“귀여운 건 사실인걸? 넌 내 동생이잖니. 그런데 머저리들이라니?”
“아까 연무장의 머저리들. 알스테아 이하 떨거지. 물론 힐레인은 빼고.”
“아하... 그 사람들?”
머저리라는 말에 의아해하던 히리스는 칸피니스의 설명에 자신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보이에도 연무장에 있던 사내들 가운데 머저리 아닌 이는 없어 보인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 사내들을 보나가 여자를 더 좋아하게 될까 걱정했을까?
“흐흥... 그래도 한 가지 사람 볼 줄은 아는 모양이잖아. 너를 두고 귀엽다고 하는 걸 보니.”
“귀엽긴 뭐가 귀엽소? 그게 다 큰 동생에게 할 말이오?”
“이러는 게 귀엽다는거야. 이 누나는 너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귀여워서 꼬옥 안아주고 싶어진단다.”
“어허... 귀엽다는 말 함부로 하는 게 아니래두.”
“괜찮아. 네가 귀여운 건 사실이니까. 미인의 말은 항상 옳은 법 아니겠니?”
“그... 그 말은 동의하지만...”
“귀엽다는 말에 동의한다구? 너도 인정하는구나?”
“그거 말구...”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큰 약점은 없다. 그런 점에서 칸피니스는 히리스에게 큰 약점을 잡힌 상태다. 그런 큰 약점이 히리스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그 대단한 칸피니스도 히리스에게만큼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어디 갈거요? 얼른 정해요. 어디를 가든 얼른 돌아봐야 해떨어지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 것 아뇨?”
이길 수 없을 땐 말돌리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것도 아니니 히리스도 그의 말돌리기에 기꺼이 넘어가준다.
“네가 검술수련 하는 모습 보고 싶어.”
“검술수련? 그런 건 성에서 봐도 되잖수.”
“그런거 말고...”
칸피니스의 대꾸에 히리스는 살짝 고개를 저어보인다.
“성에서야 네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잖아. 내가 보고 싶은건 네 본모습이야. 네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모습.”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히리스를 보는 칸피니스의 얼굴도 같이 어두워진다. 자신의 비밀을 들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 비밀을 알게된 히리스가 마음 아파함을 아는 때문이다.
“알고 계셨수?”
“응.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쳇, 그 말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인간들은 전부 바보란 뜻이오?”
“후후후... 그렇게 되나?”
“하긴... 그 작자들이 바보라 생각지 않았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을 스스로 사서 하려들지는 않았을 거요.”
“후훗... 그렇기도 하겠다.”
히리스가 즐거운 듯 웃고 있는 것을 보며 칸피니스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내가 수련하는 장소는 너무 위험한 곳이요.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그런 곳이란 말요. 그래도 괜찮겠수?”
“네가 있잖니. 난 너를 믿는다니까?”
“하하하...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 정말 위험한 곳이란 말요.”
“위험해봐야 얼마나 위험하겠니? 혼자서 흑암의 숲으로 걸어들어가려는 것도 아닌데.”
딴에는 농담이라고 하는 말에 칸피니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진다. 칸피니스의 표정을 보고 히리스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설마... 흑암의... 숲이니?”
끄덕--
“저... 정말? 정말 흑암의 숲이야?”
몬스터로부터 장원을 지키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나무를 베어 넓게 형성해놓은 벌판 저 멀리 검은 숲이 보인다. 녹색일 터인 나무가 너무나도 빽빽이 들어차있어 검어보이는 숲. 흑암의 숲이다.
“저... 정말 흑암의 숲에서 수련하는거니? 정말? 정말 저 숲에 혼자 들어가는거야?”
“예.”
“너 미쳤니?”
너무도 태연한 칸피니스의 대답에 히리스는 참지 못하고 화를 터뜨린다. 너무 위험하다고 기사단 병력이 아니라면 결코 들어가서는 안되는 흑암의 숲에 이제 15살밖에 안되는 동생이 홀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그런 행동을 하는 칸피니스에 대한 분노가 걱정보다 앞선 때문이다.
“덕분에 강해졌잖소.”
“강해졌다고 해도! 설사 앞으로 마스터가 된다고 해도! 흑암의 숲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단말야! 이 바보 멍청아!”
아무래도 히리스의 화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아 칸피니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걱정할 것 같아 일부러 숨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격렬히 반응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때문이다.
“괜찮소. 나는 죽지 않으니까. 설마 누님은 이 내가, 이 칸피니스가 저따위 숲을 못이기고 죽을 거라 생각했단 말이오?”
“아무리 너라도! 아무리 네가 그렇게 강하고 대단해도! 그래도! 그래도! 위험하단 말야! 정말 위험하단 말야!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나를 믿는다 하지 않았소? 몬스터가 나와도 내가 있으니 안심할 수 있다고.”
“그래도... 그래도 흑암의 숲은 아니야. 저긴 몬스터가 나오기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몬스터가 일상으로 보이는 곳이잖아. 그런... 그런 곳에서 네가... 그런 위험한 곳에 네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내가... 이 내가 웃으며 ‘그렇구나.’라고 말해줄거라 생각한거니?”
감정이 격한 듯 히리스는 몸마저 부들부들 떨며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워 칸피니스는 말을 몰아 그녀의 옆에 바짝 붙이고는 그녀의 몸을 살며시 안아준다.
“걱정말아요. 나는 그리 쉽게 죽지 않으니까. 내 어머니는 수파니요. 숲에서 살아가는 수파니. 그 자식인 내가 숲에서 그렇게 간단히 죽을 수는 없지 않겠소? 더구나 지금의 나는 오거조차 나를 무서워 도망다닐 정도로 강해요. 흑암의 숲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나한테는 위협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하지만...”
“걱정말아요. 정 걱정된다면 내가 수련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되지 않소? 내가 얼마나 강한지, 누님의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말요.”
“응...”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에게 매달려오는 히리스의 모습이 칸피니스는 왠지 귀엽게 느껴진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마음이랄까? 뿌듯한 느낌에 감동까지 느끼며 칸피니스는 의기양양하게 큰소리친다.
“걱정말라니까! 누님까지 안전하게 보호할 자신이 있으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요. 내가 수련하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줄테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으로 얼굴 찡그리거나 하지 마요.”
“알았어. 내 안전은 네가 책임지는거지?”
“당연히! 나만 믿어요! 확실히 지켜드릴테니까. 오늘은 내가 누님의 호위기사 아뇨?”
“훗... 믿을게. 그럼 어디로 가면 되니?”
칸피니스가 몇 번을 다짐하고서야 히리스의 표정이 겨우 펴진다.
“위험한 곳이니 내 말 잘 들어야 해요. 내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말구요.”
“알았어.”
“맛있어보이는 게 떨어져 있다고 해도 절대 주워먹어선 안되요.”
“내가 애니?”
“잘생긴 몬스터가 와서 꼬셔도 내가 있다고 하면서 거절...”
“시답잖은 소리 말고 어서 가자!”
“변태슬라임은 여자를 잘꼬신다고. 원래 여자 성감대에 반응하는 녀석이라 그놈 애무에 넘어가면...”
따악--!!
소리만 컸지 아프지는 않다. 히리스의 손이 아무리 매워봐야 검술로 단련된 칸피니스에게 타격을 주기는 무리다.
“그만하고 가자니까!”
“하긴 나의 탁월한 테크닉에 익숙해진 누님이 그딴 슬라임에게...”
따악--!!
다시 한 대.
“그만그만!! 어서 가! 까불면 오늘은 없어!!”
“어... 없다니... 뭐가...”
“네가 원하는 거! 네가 나를 이런 한적한 곳으로 끌고온 건 그것 때문 아냐?”
“하... 하지만...”
“하지만 뭐?”
“그건 누님이 더 밝...”
퍼억--!!
이번엔 조금 아프다. 발로 정강이를 세게 차온 때문이다. 모양을 유지한다고 나무로 단단하게 덧대놓은 부분이 촛대뼈에 부딪혀 저릿하니 아파온다.
“어허! 빨리 안갈거야? 일찍 들어가야 한다며?”
“누님 처음엔 안그러더니 갈수록 폭력적이 되어가는 것 같수? 누님을 천사라 여기며 숭배하는 머저리들이 지금 이모습 본다면 충격받아 죽을거요.”
“이게 다 너때문이잖아. 동생이 맞는 걸 좋아해서 때려달라고 매일 조르는데 누나 된 입장에서 어찌 외면할 수 있겠니? 동생이 바라는 대로 해줘야지.”
“맞는 걸 좋아하다니? 누가? 난 변태가 아니란 말요!”
“맞는 걸 좋아하는 게 분명히 맞아! 지금도 이렇게 때려달라고 바락바락 대들고 있잖아?”
“누... 누님...”
“왜? 할말있어?”
“크흑... 아... 아뇨... 갑시다.”
칸피니스와 둘만 있을 때 히리스는 비로소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다. 품위있고 고상한 귀부인이 아닌, 17살에 불과한 재기발랄한 여자아이로서의 모습이다. 오로지 칸피니스만이 볼 수 있는 칸피니스에 의해 깨어난 히리스의 진정한 자신이다.
“크흑... 아무리 생각해도 누님한테 검술 가르쳐준 건 잘못한 것 같아. 이렇게 나를 효율적으로 때리는 데만 사용하고 있으니... 다른데서는 내숭떠느라 검술같은 거 못한다는 척 새침 떨면서 꼭 나를 때릴 때만 검술을 활용한단 말야.”
“호호호호... 그거 너 때려달라고 가르쳐준 거 아니었어? 난 그런 줄 알고...”
“쳇... 도대체 그 상냥하고 얌전하던 누님이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정말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야.”
“그거야 너때문 아니겠니? 너와 같이 있다보니 이렇게 물든거지. 어쨌든 나쁜 건 너야. 모든 원흉은 너라구.”
“왜? 왜 나야?”
“남자니까! 네가 한 말 아니니? 모든 잘못은 남자에게 있다. 여자는 항상 옳다. 특히 미인은 절대적인 정의다. 그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할 말 있니?”
“그거야 덜떨어진 세상 남자들 이야기고, 내가 그런 머저리들과 같다고 생각해요?”
“응!”
“응이라니! 어떻게 거기서 ‘응!’이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단말요! 나라구요! 칸피니스! 절세미남! 절륜정력! 황홀기교! 절대무적! 칸피니스가 바로 나란 말요! 어찌 그런 떨거지 멍청이 남자들과 나를 비교해요! 객관적으로 비교해봐요! 나를 감히 그런 남자들 무리에 끼워넣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도 진지하게 열변을 토하는 모습에 히리스는 그만 압도되고 만다. 무엇보다 그 말의 내용이 압권이다. 히리스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진다.
“너... 그 말 진담으로 하는거니?”
“진담 아님. 이런 말을 농담으로 한단말요? 어느 실없는 자식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걱정마쇼!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담이니까!”
어이가 없다. 히리스는 힘없이 고개를 저어보일 뿐이다. 도대체 저렇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데 두고 무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너 잘났다. 헤휴...”
“잘난 거 알면 됐수.”
“또 칭찬해주는 거 고맙지.”
“새삼 고마울 것 있겠수? 누님이 나한테 반해서 그런걸.”
히리스는 멍하니 먼 흑암의 숲을 바라볼 뿐이다. 이런 놈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증세가 심각할 줄은 몰랐다. 이런 놈한테 반해있는 자신이 황당하게 느겨진다. 설마 이정도로 심각한 놈으었을줄은...
“하아... 숲은 멀었니?”
“조금만 더 가면 되요.”
“얼른 가자. 서두르지 않으면 해떨어지기 전에 돌아가지 못하겠다.”
“그럽시다.”
워낙에 단순한 인간이라 칸피니스는 좀전의 열변을 금새 잊어버리고 그녀의 말을 쫓아 가까운 숲으로 서둘러 말을 몰아간다. 자기딴에는 잘보인답시고 자신을 향해 헤벌죽 웃어보이는 칸피니스의 모습에 히리스의 한숨은 더욱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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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검천황은 더이상 쓰지 않습니다. 원래 색마검천황을 연재하기 시작했던 코섹스 야설의 전당에 더이상 글을 올리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거기서 쓰기 시작한 야설을 다른 곳에서 연재하지 않겠다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색마검천황은 야설의 전당이 만든 야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쓴 것은 저지만 처음 쓰는 야설에 열심히 호응해주신 분들이 계신 덕분에 지속적으로 연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필과 함께 색마검천황의 연재도 중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왜 그쪽에 글 안쓰는가는 굳이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시는 대로 넘어가면 됩니다.)
색검마도지성전은 색마검천황의 전편이기는 하지만 또다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제 색마검천황을 쓰면서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납득되지 않던 설정은 색검마도지성전을 쓰면서 모두 다시 손봤습니다. 일단 칸피니스의 나이가 조금 많아졌고 칸피니스의 강함이나 칸피니스의 무차별적인 색마행에 대한 설명도 추가됩니다. 칸피니스가 가족을 죽이게 된 이유 같은 것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제시되죠. 그런 점에서 색검마도지성적은 색마검천황의 리메이크라 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대로 글이 쓰여진다면 색검마도지성전의 2부로서 색마검천황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겁니다.
벌써 2회가 지났는데 섹스장면이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번회는 분량도 짧습니다. 이유는 원래 한 회 분량으로 써놓은 것을 다음회 장면을 위해 잘라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더해져 다음회에는 야설다운 이야기가 전개될 것입니다. 섭섭다 마시고 많이들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뒷부분을 잘라서 다음회로 넘기는 바람에 다음회 연재는 조금 빨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변덕만 없다면 말이죠. 뭐 저도 기대는 않습니다.
다음회예고>> 어두운 숲에 남녀 둘 만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뻔한 이야기가 다음에 펼쳐진다. 과연 그들의 밀회를 지켜보는 저 어두운 그림자는 누구일까?
뭐 이번에도 예고편과 본편이 같을 거라는 기대는 않고 있어요.
칸피니스의 퉁명스런 물음에도 히리스는 그저 웃을 뿐이다. 칸피니스의 불퉁거리는 모습이 왠지 귀엽게 보이기 때문이다. 키도 자신보다 큰 녀석이 저리도 심통이 나서 있는 것을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누나의 마음인 듯 싶다.
“어디로 갈거요?”
자신의 웃음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더욱 재미있어 히리스는 손으로 입까지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마음껏 웃고 있다. 물론 마음껏 웃고 있다는 건 히리스의 입장일 뿐이다. 칸피니스가 보기엔 내숭덩어리에 음흉함이 더해진 웃음에 불과하다. 칸피니스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진다.
“어디로 갈거냐니까? 벌써 몇 시간째요?”
성밖 구경을 간다고 끌고나와서는 목적지도 없이 이리저리 헤맨 지 벌써 몇 십 분 째다. 아마도 30분은 족히 넘게 흐른 듯 싶다. 그 시간동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히리스의 말고삐까지 잡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칸피니스의 성격에 심통이 날만도 하다.
“풋... 어디로 가고 싶니?”
“그런 건 누님이 정해야죠. 어차피 누님이 나오자고 해서 나온 것 아뇨?”
히리스의 웃음소리에 결정적으로 기분이 상한 듯 칸피니스의 말투가 상당히 불손하다. 다른 때같았으면 눈꼬리가 올라갔을 상황이지만 오늘따라 동생이 귀여워보이는 터라 히리스는 관대하게 용서하기로 한다.
“음... 어디로 갈까? 지금까지 계속 그거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결론이 나지 않네?”
“뭐요? 그럼 아무 생각없이 날 끌고나왔단 거요?”
“응.”
칸피니스 딴에는 위협적으로 화를 낸다고 화를 내보지만 히리스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저 누나로서의 동생의 재롱을 감상하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다.
“도대체 누님은 생각이 있는거요? 없는거요? 기껏 성밖으로 나를 끌고나오고서는 그래 아무 생각없이 나왔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너무도 당당한 히리스의 태도에 칸피니스는 일순 할 말을 잃는다.
“그냥 나오고 싶어서 나오면 안되는거야? 이렇게 예쁜데?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거잖아. 생각해봐. 칸피니스 주제에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귀부인과 단둘이 말을 타고 산책할 수 있겠어? 안그래?”
뻔뻔함도 이정도면 예술이다. 칸피니스는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지... 진심이오?”
“왜? 아니야?”
“저... 저기 누님...”
“후후후훗...”
칸피니스의 벙찐 얼굴을 보더니 히리스가 못참겠다는 듯 웃는다.
“그냥 네 흉내 한 번 내봤어. 닮았니?”
“내... 내흉내? 그게 어떻게... 어떻게 내흉내라는 거요?”
“아니야?”
“당연하지! 난 그렇게 뻔뻔하지 않아요!”
단호히 부정하는 말에 히리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재미있다는 듯 반짝이는 눈빛은 칸피니스의 부정을 절대 부정하고 있다.
“흐으음... 그럴까...?”
“그럼!”
“나는 지금 네 모습이 더 뻔뻔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누님의 편견이오!”
“훗... 그렇다고 해두자.”
“그렇다고 해두자가 아니라...”
비웃음과도 같은 실소에 왠지 발끈해 따져보이만 히리스는 꿈쩍도 않는다. 가늘어져 있던 그녀의 눈이 더욱 가늘어진다. 칸피니스는 왠지 불안한 마음에 몸을 움찔이며 억지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반항하는거야? 이 아름다운 누님께?”
“그... 그렇다고 해두자구요.”
“그렇지? 잘 생각했어.”
“쳇...”
히리스와 말상대 해서 이길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말을 잘한다거나 위압적이라거나 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사랑스러움 때문이다.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남자들로 하여금 그녀의 말에 동의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칸피니스도 남자인지라 자신의 아름다운 누이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웃음까지 지어보이며 빤히 바라보는데는 그저 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누이에게 졌다는 생각에 불퉁거리지만 표정이 밝은 것은 역시 아름다운 여자에게 약한 남자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인정하는거지?”
“다른 건 다 인정할 수 없는데 누님 예쁘다는 거 하나는 인정하오. 됐수?”
“후후훗... 불만이 많은가보다?”
“누님이 너무 예뻐서 불만이오. 그 얼굴로 그 표정을 짓고 있으면 당췌 무슨 말을 못하겠으니까. 이건 범죄라구.”
“푸후후후훗...!! 칭찬이 지나치니까 마치 욕같구나.”
“알면 됐수. 어차피 욕이었으니까.”
“하하하... 이럴 때 너라면 칭찬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을테지?”
“그거 칭찬 맞죠?”
“그래.”
“어쨌든 고맙수.”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한참을 왔던 모양이다. 드문드문 보이던 민가도 보이지 않고 아직 농지로 개간되지 않은 황량한 평야만이 끝없이 펼쳐져있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 아직은 푸른 빛을 띄고 있는 너른 밀밭이 보인다. 마을 외곽에 펼쳐진 밀밭까지 지나쳐온 것이다.
“꽤 멀리 왔는데 이만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우?”
“왜?”
“왜긴? 여기부터는 위험하다구. 정기적으로 병사들이 토벌에 나서기는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출몰하는 동네란 말요. 이 너른 벌판을 왜 밀도 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생각하는거요?”
“흐흥... 그러니?”
칸피니스의 긴장한 표정과는 달리 히리스는 태연하기만 하다. 몬스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다.
너무도 태연한 히리스의 표정에 도리어 칸피니스가 발끈한다. 히리스에 대한 걱정이 그녀의 무신경함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 때문이다.
“이 여자가! 몬스터란 말요! 몬스터! 가장 약한 몬스터라는 코볼트만 해도 얼마나 위험한 지 아시오? 히리스 누님 같은 여자들은 한 번에 목이 뜯겨서는 내장부터 먹히고 만다구. 알겠소?”
“그러니? 그거 꽤 위험하겠구나.”
“진짜! 뭘 믿고 그렇게 태연한거요? 몬스터라니까! 몬스터!”
“널 믿고!”
“아니 날 믿던 간에 몬스터란... 그러니까... 에? 나... 나를 믿고?”
너무 여상스런 대꾸라 일순 입력이 잘 되지 않는다. 빤히 바라보는 히리스의 표정을 보니 잘못들은 말은 아닌 듯 하다.
“응. 너!”
확인하듯 덧붙이는 말에 칸피니스의 가슴이 벅차오른다. 두터운 가슴 근육을 뚫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터질 듯 들려온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이토록 신뢰를 받는 것보다 남자로서 더욱 영광되고 더욱 흥분될 일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하지만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티를 낼 수는 없다. 그것은 쑥쓰러워하는 남자로서의 본능이다. 여자로부터 믿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는 것만큼이나 의연한 모습을 통해 여자에게 잘보이고자 하는 수컷으로서의 본능으로 칸피니스는 여전히 불퉁거린다.
“나 하나 믿고 그리 태연하단 거요? 지금?”
“응. 너라면 몬스터 쯤이야 우스울 거라 생각했거든. 오거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네가 나 하나 지켜주지 못할 리 없잖아. 설사 오거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나 하나 도망칠 시간은 벌어줄 수 있겠지?”
“허허허... 오거 앞에 두고 누님 도망칠 시간 벌다간 죽는다구. 오거가 괜히 오거요? 오죽하면 드래곤에나 붙는 슬레이어를 오거사냥꾼에게 붙여주는 것 아뇨.”
“너 죽으면 상복은 입어줄게.”
“상복?”
“울어도 줄게.”
“어이어이...”
“매년 무덤에 꽃을... 그건 좀 무리겠다. 오거한테 죽으면 시체조차 건사하기 힘들잖아. 그대신... 음... 평생 너만 생각하면서 수절해줄까?”
“이 아가씨야! 말이면 다 하는 건 줄 알아? 뭐가 상복이고, 뭐가 울어주는 거고, 뭐가 수절이야?”
“그걸로 부족하니? 그럼 따라죽어줄까? 가짜무덤에라도 같이 묻어달라고 하면서?”
“그만! 그만!”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어느정도는 진심이 담겨있음을 히리스의 표정만 보아도 쉽게 할 수 있다. 아마도 칸피니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의 각오를 담아 자신에게 애정을 표현해오고 있는 것이리라. 칸피니스는 가슴이 벅차올라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한다.
“걱정마쇼. 오거따위는 한 방에 잡아버릴테니까.”
걱정말라는 단호한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히리스는 오거를 한 방에 잡아버린다는 말에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무 쉽게 말하는 모습이 농담같기도 하지만 칸피니스의 단호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결코 누님이 나 때문에 상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할거요. 수... 수절은... 뭐... 당연한 거고... 그런걸 왜해요? 남우세스럽게. 그냥 좋은 남자 만나서 살면되지...”
“오... 오거를 잡아?”
“당연하지! 누님을 위해서라면 드래곤인들 못잡을까?”
“정말 오거를 잡을 수 있는거야? 진짜? 너... 오거 슬레이어였어?”
“잡을 수 있다니까! 못믿으면 한 번 보여줘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칸피니스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15살에 불과한 어린아이다. 그런데 성인기사들도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혼자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다는 오거를 혼자서 쓰러뜨릴 수 있다니. 사실이라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야아... 내동생 정말 대단하구나! 열 다섯의 나이에 제국에도 백 명 남짓밖에 없다는 오거 슬레이어가 되다니. 이러다 나중에 마스터까지 되는 것 아냐?”
동생이 이토록 강하다는 사실이 히리스로서는 기쁘고 감격스러울 뿐이다. 델킨피에르 성을 인정받았음에도 평소 가문의 기사들에게 무시당해왔음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즐겁다.
“마스터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시우? 누님이 원한다면 내년에라도 마스터가 되어보여드리리다.”
“훗... 덕분에 마스터 동생을 두게 되겠구나. 마스터를 동생으로 두었다면 좋은 데로 시집갈 수 있겠지?”
말을 하면서 눈이 가늘어지는 것은 칸피니스를 놀려먹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다. 칸피니스는 그녀의 뜻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로 한다.
“마스터의 누님이니 마스터에게 시집갈 수 있을거요.”
“마스터? 마스터 누구? 마스터라면 겉만 멀쩡했지 속은 팍삭 늙은 노친네들 아냐? 설마 너... 나더러 그런 노친네들과 결혼하라는거니?”
“마스터를 동생으로 두었다며! 그럼 나이어린 마스터가 한 명은 있다는 얘기 아뇨.”
“에? 그럼...?”
“알아서 생각하시우. 아직도 안정한거요? 어디로 갈건지?”
쑥쓰러움에 결국 칸피니스는 말을 돌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잔뜩 웃음을 머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히리스의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마저 멀리 보이는 흑암의 숲에 고정시키고 있다.
“풋...”
그런 그의 표정이 웃스웠던 것일까? 히리스는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왜웃소?”
“귀여워서.”
“귀여워?”
“응. 네가 너무 귀여워. 그래서 웃었어.”
“쳇... 그 머저리들 닮아가오? 나더러 귀엽다고 하게?”
“귀여운 건 사실인걸? 넌 내 동생이잖니. 그런데 머저리들이라니?”
“아까 연무장의 머저리들. 알스테아 이하 떨거지. 물론 힐레인은 빼고.”
“아하... 그 사람들?”
머저리라는 말에 의아해하던 히리스는 칸피니스의 설명에 자신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보이에도 연무장에 있던 사내들 가운데 머저리 아닌 이는 없어 보인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 사내들을 보나가 여자를 더 좋아하게 될까 걱정했을까?
“흐흥... 그래도 한 가지 사람 볼 줄은 아는 모양이잖아. 너를 두고 귀엽다고 하는 걸 보니.”
“귀엽긴 뭐가 귀엽소? 그게 다 큰 동생에게 할 말이오?”
“이러는 게 귀엽다는거야. 이 누나는 너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귀여워서 꼬옥 안아주고 싶어진단다.”
“어허... 귀엽다는 말 함부로 하는 게 아니래두.”
“괜찮아. 네가 귀여운 건 사실이니까. 미인의 말은 항상 옳은 법 아니겠니?”
“그... 그 말은 동의하지만...”
“귀엽다는 말에 동의한다구? 너도 인정하는구나?”
“그거 말구...”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큰 약점은 없다. 그런 점에서 칸피니스는 히리스에게 큰 약점을 잡힌 상태다. 그런 큰 약점이 히리스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그 대단한 칸피니스도 히리스에게만큼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어디 갈거요? 얼른 정해요. 어디를 가든 얼른 돌아봐야 해떨어지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 것 아뇨?”
이길 수 없을 땐 말돌리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것도 아니니 히리스도 그의 말돌리기에 기꺼이 넘어가준다.
“네가 검술수련 하는 모습 보고 싶어.”
“검술수련? 그런 건 성에서 봐도 되잖수.”
“그런거 말고...”
칸피니스의 대꾸에 히리스는 살짝 고개를 저어보인다.
“성에서야 네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잖아. 내가 보고 싶은건 네 본모습이야. 네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모습.”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히리스를 보는 칸피니스의 얼굴도 같이 어두워진다. 자신의 비밀을 들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 비밀을 알게된 히리스가 마음 아파함을 아는 때문이다.
“알고 계셨수?”
“응.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쳇, 그 말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인간들은 전부 바보란 뜻이오?”
“후후후... 그렇게 되나?”
“하긴... 그 작자들이 바보라 생각지 않았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을 스스로 사서 하려들지는 않았을 거요.”
“후훗... 그렇기도 하겠다.”
히리스가 즐거운 듯 웃고 있는 것을 보며 칸피니스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내가 수련하는 장소는 너무 위험한 곳이요.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그런 곳이란 말요. 그래도 괜찮겠수?”
“네가 있잖니. 난 너를 믿는다니까?”
“하하하...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 정말 위험한 곳이란 말요.”
“위험해봐야 얼마나 위험하겠니? 혼자서 흑암의 숲으로 걸어들어가려는 것도 아닌데.”
딴에는 농담이라고 하는 말에 칸피니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진다. 칸피니스의 표정을 보고 히리스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설마... 흑암의... 숲이니?”
끄덕--
“저... 정말? 정말 흑암의 숲이야?”
몬스터로부터 장원을 지키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나무를 베어 넓게 형성해놓은 벌판 저 멀리 검은 숲이 보인다. 녹색일 터인 나무가 너무나도 빽빽이 들어차있어 검어보이는 숲. 흑암의 숲이다.
“저... 정말 흑암의 숲에서 수련하는거니? 정말? 정말 저 숲에 혼자 들어가는거야?”
“예.”
“너 미쳤니?”
너무도 태연한 칸피니스의 대답에 히리스는 참지 못하고 화를 터뜨린다. 너무 위험하다고 기사단 병력이 아니라면 결코 들어가서는 안되는 흑암의 숲에 이제 15살밖에 안되는 동생이 홀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그런 행동을 하는 칸피니스에 대한 분노가 걱정보다 앞선 때문이다.
“덕분에 강해졌잖소.”
“강해졌다고 해도! 설사 앞으로 마스터가 된다고 해도! 흑암의 숲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단말야! 이 바보 멍청아!”
아무래도 히리스의 화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아 칸피니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걱정할 것 같아 일부러 숨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격렬히 반응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때문이다.
“괜찮소. 나는 죽지 않으니까. 설마 누님은 이 내가, 이 칸피니스가 저따위 숲을 못이기고 죽을 거라 생각했단 말이오?”
“아무리 너라도! 아무리 네가 그렇게 강하고 대단해도! 그래도! 그래도! 위험하단 말야! 정말 위험하단 말야!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나를 믿는다 하지 않았소? 몬스터가 나와도 내가 있으니 안심할 수 있다고.”
“그래도... 그래도 흑암의 숲은 아니야. 저긴 몬스터가 나오기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몬스터가 일상으로 보이는 곳이잖아. 그런... 그런 곳에서 네가... 그런 위험한 곳에 네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내가... 이 내가 웃으며 ‘그렇구나.’라고 말해줄거라 생각한거니?”
감정이 격한 듯 히리스는 몸마저 부들부들 떨며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워 칸피니스는 말을 몰아 그녀의 옆에 바짝 붙이고는 그녀의 몸을 살며시 안아준다.
“걱정말아요. 나는 그리 쉽게 죽지 않으니까. 내 어머니는 수파니요. 숲에서 살아가는 수파니. 그 자식인 내가 숲에서 그렇게 간단히 죽을 수는 없지 않겠소? 더구나 지금의 나는 오거조차 나를 무서워 도망다닐 정도로 강해요. 흑암의 숲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나한테는 위협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하지만...”
“걱정말아요. 정 걱정된다면 내가 수련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되지 않소? 내가 얼마나 강한지, 누님의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말요.”
“응...”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에게 매달려오는 히리스의 모습이 칸피니스는 왠지 귀엽게 느껴진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마음이랄까? 뿌듯한 느낌에 감동까지 느끼며 칸피니스는 의기양양하게 큰소리친다.
“걱정말라니까! 누님까지 안전하게 보호할 자신이 있으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요. 내가 수련하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줄테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으로 얼굴 찡그리거나 하지 마요.”
“알았어. 내 안전은 네가 책임지는거지?”
“당연히! 나만 믿어요! 확실히 지켜드릴테니까. 오늘은 내가 누님의 호위기사 아뇨?”
“훗... 믿을게. 그럼 어디로 가면 되니?”
칸피니스가 몇 번을 다짐하고서야 히리스의 표정이 겨우 펴진다.
“위험한 곳이니 내 말 잘 들어야 해요. 내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말구요.”
“알았어.”
“맛있어보이는 게 떨어져 있다고 해도 절대 주워먹어선 안되요.”
“내가 애니?”
“잘생긴 몬스터가 와서 꼬셔도 내가 있다고 하면서 거절...”
“시답잖은 소리 말고 어서 가자!”
“변태슬라임은 여자를 잘꼬신다고. 원래 여자 성감대에 반응하는 녀석이라 그놈 애무에 넘어가면...”
따악--!!
소리만 컸지 아프지는 않다. 히리스의 손이 아무리 매워봐야 검술로 단련된 칸피니스에게 타격을 주기는 무리다.
“그만하고 가자니까!”
“하긴 나의 탁월한 테크닉에 익숙해진 누님이 그딴 슬라임에게...”
따악--!!
다시 한 대.
“그만그만!! 어서 가! 까불면 오늘은 없어!!”
“어... 없다니... 뭐가...”
“네가 원하는 거! 네가 나를 이런 한적한 곳으로 끌고온 건 그것 때문 아냐?”
“하... 하지만...”
“하지만 뭐?”
“그건 누님이 더 밝...”
퍼억--!!
이번엔 조금 아프다. 발로 정강이를 세게 차온 때문이다. 모양을 유지한다고 나무로 단단하게 덧대놓은 부분이 촛대뼈에 부딪혀 저릿하니 아파온다.
“어허! 빨리 안갈거야? 일찍 들어가야 한다며?”
“누님 처음엔 안그러더니 갈수록 폭력적이 되어가는 것 같수? 누님을 천사라 여기며 숭배하는 머저리들이 지금 이모습 본다면 충격받아 죽을거요.”
“이게 다 너때문이잖아. 동생이 맞는 걸 좋아해서 때려달라고 매일 조르는데 누나 된 입장에서 어찌 외면할 수 있겠니? 동생이 바라는 대로 해줘야지.”
“맞는 걸 좋아하다니? 누가? 난 변태가 아니란 말요!”
“맞는 걸 좋아하는 게 분명히 맞아! 지금도 이렇게 때려달라고 바락바락 대들고 있잖아?”
“누... 누님...”
“왜? 할말있어?”
“크흑... 아... 아뇨... 갑시다.”
칸피니스와 둘만 있을 때 히리스는 비로소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다. 품위있고 고상한 귀부인이 아닌, 17살에 불과한 재기발랄한 여자아이로서의 모습이다. 오로지 칸피니스만이 볼 수 있는 칸피니스에 의해 깨어난 히리스의 진정한 자신이다.
“크흑... 아무리 생각해도 누님한테 검술 가르쳐준 건 잘못한 것 같아. 이렇게 나를 효율적으로 때리는 데만 사용하고 있으니... 다른데서는 내숭떠느라 검술같은 거 못한다는 척 새침 떨면서 꼭 나를 때릴 때만 검술을 활용한단 말야.”
“호호호호... 그거 너 때려달라고 가르쳐준 거 아니었어? 난 그런 줄 알고...”
“쳇... 도대체 그 상냥하고 얌전하던 누님이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정말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야.”
“그거야 너때문 아니겠니? 너와 같이 있다보니 이렇게 물든거지. 어쨌든 나쁜 건 너야. 모든 원흉은 너라구.”
“왜? 왜 나야?”
“남자니까! 네가 한 말 아니니? 모든 잘못은 남자에게 있다. 여자는 항상 옳다. 특히 미인은 절대적인 정의다. 그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할 말 있니?”
“그거야 덜떨어진 세상 남자들 이야기고, 내가 그런 머저리들과 같다고 생각해요?”
“응!”
“응이라니! 어떻게 거기서 ‘응!’이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단말요! 나라구요! 칸피니스! 절세미남! 절륜정력! 황홀기교! 절대무적! 칸피니스가 바로 나란 말요! 어찌 그런 떨거지 멍청이 남자들과 나를 비교해요! 객관적으로 비교해봐요! 나를 감히 그런 남자들 무리에 끼워넣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도 진지하게 열변을 토하는 모습에 히리스는 그만 압도되고 만다. 무엇보다 그 말의 내용이 압권이다. 히리스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진다.
“너... 그 말 진담으로 하는거니?”
“진담 아님. 이런 말을 농담으로 한단말요? 어느 실없는 자식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걱정마쇼!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담이니까!”
어이가 없다. 히리스는 힘없이 고개를 저어보일 뿐이다. 도대체 저렇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데 두고 무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너 잘났다. 헤휴...”
“잘난 거 알면 됐수.”
“또 칭찬해주는 거 고맙지.”
“새삼 고마울 것 있겠수? 누님이 나한테 반해서 그런걸.”
히리스는 멍하니 먼 흑암의 숲을 바라볼 뿐이다. 이런 놈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증세가 심각할 줄은 몰랐다. 이런 놈한테 반해있는 자신이 황당하게 느겨진다. 설마 이정도로 심각한 놈으었을줄은...
“하아... 숲은 멀었니?”
“조금만 더 가면 되요.”
“얼른 가자. 서두르지 않으면 해떨어지기 전에 돌아가지 못하겠다.”
“그럽시다.”
워낙에 단순한 인간이라 칸피니스는 좀전의 열변을 금새 잊어버리고 그녀의 말을 쫓아 가까운 숲으로 서둘러 말을 몰아간다. 자기딴에는 잘보인답시고 자신을 향해 헤벌죽 웃어보이는 칸피니스의 모습에 히리스의 한숨은 더욱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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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검천황은 더이상 쓰지 않습니다. 원래 색마검천황을 연재하기 시작했던 코섹스 야설의 전당에 더이상 글을 올리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거기서 쓰기 시작한 야설을 다른 곳에서 연재하지 않겠다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색마검천황은 야설의 전당이 만든 야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쓴 것은 저지만 처음 쓰는 야설에 열심히 호응해주신 분들이 계신 덕분에 지속적으로 연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필과 함께 색마검천황의 연재도 중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왜 그쪽에 글 안쓰는가는 굳이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시는 대로 넘어가면 됩니다.)
색검마도지성전은 색마검천황의 전편이기는 하지만 또다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제 색마검천황을 쓰면서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납득되지 않던 설정은 색검마도지성전을 쓰면서 모두 다시 손봤습니다. 일단 칸피니스의 나이가 조금 많아졌고 칸피니스의 강함이나 칸피니스의 무차별적인 색마행에 대한 설명도 추가됩니다. 칸피니스가 가족을 죽이게 된 이유 같은 것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제시되죠. 그런 점에서 색검마도지성적은 색마검천황의 리메이크라 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대로 글이 쓰여진다면 색검마도지성전의 2부로서 색마검천황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겁니다.
벌써 2회가 지났는데 섹스장면이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번회는 분량도 짧습니다. 이유는 원래 한 회 분량으로 써놓은 것을 다음회 장면을 위해 잘라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더해져 다음회에는 야설다운 이야기가 전개될 것입니다. 섭섭다 마시고 많이들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뒷부분을 잘라서 다음회로 넘기는 바람에 다음회 연재는 조금 빨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변덕만 없다면 말이죠. 뭐 저도 기대는 않습니다.
다음회예고>> 어두운 숲에 남녀 둘 만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뻔한 이야기가 다음에 펼쳐진다. 과연 그들의 밀회를 지켜보는 저 어두운 그림자는 누구일까?
뭐 이번에도 예고편과 본편이 같을 거라는 기대는 않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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