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 자네들 노예시장을 본 적 있나? 조금 있으면 노예 시장이 선다네. 같이 가보지 않겠나?"
웃고 떠들고 마신지 어느덧 새벽의 끝자락을 잡고 아침 해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어느새 꽤 친해진 버넷이 제의 한 것은 노예 시장 구경 이였다.
"예? 무슨?"
"노예 시장 말일세. 내가 노예상단의 호위를 맡고 있거든. 거긴 아주 진풍경이지. 흐흐. 어때 패터슨? 자네라면 그런 구경거릴 놓치진 않겠지?"
"아, 물론이……."
"아니,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저희가 아침까진 초소로 복귀해야 해서……."
아무 생각도 없이 호기심에 순순히 따라가려는 패터슨의 입을 막고 앤더슨이 나섰다. 아닌 게 아니라 아직은 이르긴 하지만 노예시장까지 들렀다가 복귀하기엔 너무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건 걱정 말게. 내 나중에 말을 세필 빌려줌세. 자네들 징집 병이라 그랬지? 노예시장이 서는 곳에서 말을 타고 수비대 초소까지 달린다면 15분 안으로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 그래도……."
"에이, 앤디~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라고~ 너도 보고 싶잖아~ 버넷아저씨가 말도 빌려준다는데 조금만 구경하고 복귀하자 응? 야, 맥키 넌 어때?"
"흠.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말을 타면 시간도 문제 될게 없을 듯 하고.잠깐 구경만 하는 거라면……."
패터슨에 이어 맥키언까지 찬성하고 나오자 좀 불안하긴 했지만 앤더슨도 더 이상 반대 할 순 없었다.
"그럼, 구경만 잠깐하고 돌아가는 거다. 우리 걸리면 진짜 큰일 날거라고~"
"알았어, 알았어. 걱정 마~ 버넷아저씨 어서 가요!"
"그, 그래. 근데 패터슨, 그 아저씨란 말 좀 집어치울 수 없겠냐?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녀석한테 아저씨란 소릴 들으니까 기분이 무지 더러워질라 하거든?"
"헤헤. 그럴 순 없겠는데요, 버넷아. 저. 씨?"
"큭…….어서 마차에 타기나 해라……."
앤더슨 일행은 버넷이 끌고 온 짐마차에 몸을 실었고 짐마차는 노예시장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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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의 선술집’을 나와 앤더슨 일행은 버넷이 끌고 온 둔 짐마차를 타고 번화가를 벗어났다. 드문드문 보이는 인가들과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기를 몇 분. 마차는 인적이 없는 곳에 홀로 세워진 벽돌로 세워진 꽤 큰 건물 앞에 도달했다.
"흑흑. 아저씨 고마워요……."
"이익. 하. 하. 하 내 패터슨 니가 제일 좋아할 줄 알고 있었다. 하하핫"
건물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휙 둘러본 패터슨은 버넷을 부여잡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버넷은 패터슨이 계속 아저씨라 부르자 이마에 힘줄 하나가 불쑥 튀어 올랐으나 그 뒤에 이어지는 감사의 말에 이내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조금 그렇군요. 같은 인간으로서…….쩝."
"무슨 소린가? 앤더슨군. 같은 인간이라니~ 저들은 노예라네. 헤르메스 대 신전에서도 인정한 노예 제도일세…….저들은 인간이 아니라 노예라는 거지. 알겠나?"
"…….예에……."
건물 안 풍경은 그야말로 별천지 이었다. 남자 노예들은 중요부위를 가린 속옷류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여자 노예들은 그 사정이 달랐던 것이었다. 여자 노예들은 어린아이에서 부터 중년여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벌거벗은 채로 거래되고 있었다. 자신의 중요부위를 훤히 드러낸 채로 일렬로 늘어 서 있었는데 수치심에 손으로 나마 몸을 가리려고 하면 어김없이 노예상인들의 채찍이 날아들었다.
"자, 여기서 눈 버리지 말고 지하실로 내려가자~ 여기는 삼등품만 취급하는 곳 이란다. 오늘 앨프 계집의 판매가 있다던데 그걸 놓치면 안 되지!"
"옛? 앨프요?"
"그래, 앨프! 들리기론 아직 어린 앨프라 볼 건 없다지만, 그래도 기가 막히게 이쁘다는군.흐흐. 귀족들 중엔 어린애를 좋아하는 로리콘들이 많다고 하니까, 아마 꽤나 비싸게 팔릴걸?"
"햐아~ 앨프라니. 정말 오늘 횡재 한 것 같은데~ 안 그래 앤디?맥키?"
버넷의 안내에 따라 특등의 노예들만이 거래된다는 지하실로 내려가며 패터슨은 앨프를 구경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들떠했다. 하지만 앤더슨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저렇게 가축처럼 값을 매기고 흥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라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신분의 차이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있어왔던 것이라 그것이 바뀌길 바란 다는 것은 허황된 생각일 뿐인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앤더슨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앤더슨은 문득 맥키언을 힐끔 쳐다보았다.
"응? 맥키?"
맥키언의 시선은 패터슨과 같이 미모의 여자노예에게로 향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처럼 생각에 빠진 모습도 아니었다. 의구심을 느낀 앤더슨은 맥키언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맥키, 아는 사람이야?"
맥키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어, 어? 아냐……."
"근데 왜 그렇게 멍하게 쳐다보냐? 너 혹시 남색이냐?"
"훗, 농담은…….그냥 저 남자. 좀 이상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응? 뭐가?"
"아, 그냥. 머리 색깔도 그렇고…….표정도 그렇고. 생김새는 귀족 같은데.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잖아. 여기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너랑 저 남자뿐인 것 같은데."
"흠…….그런가. 역시. 넌 남. 색. 가이군. 언제 그렇게 자세히 봤대냐? 헛. 잠깐, 나한테 흑심을 품은 건 아니겠지? 나, 난 임자 있는 몸이라고……."
"쳇. 씨끄러."
농담 삼아 웃고 넘어갔지만 맥키언이 말한 그 남자의 모습은 그만큼 이 노예시장이란 장소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 이었다. 비단 그 사내가 대륙에서 흑발과 흑안 만큼이나 희귀하다는 청록색의 머리에 푸른 눈을 지닌 전륜의 미청년의 모습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짓고 있는 표정 때문 이었다. 그의 표정은 기대감이나 설렘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분노와 슬픔과도 같은 일차원 적인 것도 아니었다. 같은 인간으로선 다 읽어내지 못할 만큼의 후회와 회한 그리고 허무함 등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누굴까…….청록색 머리에 푸른 눈이라……."
맥키언의 호기심이 전염된 것일까? 앤더슨도 저 남자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 앤디! 뭐해? 경매가 시작 됐다고. 얼른 와봐~"
"아, 응……."
패터슨의 말대로 노예의 경매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경매는 건물 1층의 노예 거래와는 달리 한 번에 한명의 노예의 거래 형식으로 이루어 졌는데, 대부분이 미모의 젊은 여성이거나 남 녀 어린아이 들이었고, 그 가격도 상상을 초월하는 것 이었다.
"자, 오늘 첫 경매 상품은 로스웰 공국 출신의 아리따운 소녀가 되겠습니다. 이 소녀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올해 14세로 로스웰 공국의 몰락 귀족의 영애가 되겠습니다. 귀족의 영애로 태어나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 보십시오! 티끌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를 자랑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순결한 처녀이기도 합죠! 뭐, 물론 처음 길들이기는 어렵겠지만……."
-우~우~ 닥치고 그만 시작해라~~-
사회자의 말이 쓸데없이 길어지자 여기저기서 야유가 들려왔다. 무릇 사회자라 함은 말쑥한 모습에 미청년이거나 아리따운 아가씨 뭐 이런 것들을 충족 시켜주지 못한다면 말솜씨라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고 앤더슨은 생각했다. 허나 저 사각의 스테이지 위의 사회자를 보라. 걸어 다니는 건지 굴러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뚱뚱한 외모에 하류잡배와 같이 천박한 말투. 왜 저런 자가 사회를 보는 것일까? 만약 ‘저 사람이 이 노예시장을 연 노예상인 챈들러 씨야. 내 고용주지.’라는 버넷의 귀띔이 없었더라면 당장에 노예시장 홈피 게시판을 다운 시켜 버렸을 것이다.
"하하. 그럼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거두절미 하고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자~! 150골드부터 시작 합니다! 200골드 없으십니까?"
"와아.150골드라니. 어마어마하군요!…….저애가 제일 비싼 것인가요?"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 계집이 가장 싼 상품인가 보군. 원래 가장 상품의 질이 낮은 쪽이 제일 처음 나오는 법이거든……."
"헉. 제일 싸다니……."
버넷의 말에 질문을 한 패터슨은 물론이고 앤더슨과 맥키언 까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50골드라니. 그것은 앤더슨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지금의 화폐 단위는 동전과 어음이라는 수표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코인이라고 하는 동화가 가장 낮은 화폐단위로 코인 백 개가 모여 은화인 실버가 되고 실버 열개가 모여 금화인 골드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도심지 가정의 한 달 생활비가 4실버가 넘지 않았다.
"도대체 저 치들은 뭘 먹고 살 길래……."
앤더슨은 허탈하기도 하고 약간은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몇 개월을 노력하여 금화보다도 훨씬 작은 금가락지를 겨우겨우 사서 사랑하는 이에게 끼워주고 행복해 했었는데, 저들은 그저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150골드가 넘는 돈을 물 쓰듯 쓰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그 여자노예는 루벤후트 공작이라는 70대 의 비썩 마른 노인에게 500골드에 넘어갔다. 그 모습에 패터슨은 혀를 쯧쯧 찼다. 척 보기에도 오늘 내일 하는 처지인 것 같은데 무지하게 밝힌다고 부러움 섞인 어조로 툴툴 거리면서 말이다.
"자, 그리고 이번에 소개해드릴 상품은……."
버넷의 말대로 경매는 시간이 갈수록 그 열기가 뜨거워 졌고 거래되는 액수는 높아만 갔다. 하지만 이미 모두들 미리 자신이 구매하려는 상품을 정해 놓았던 듯 경매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 되었다. 약 한 시간가량이 지났을까? 드디어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할 노예의 거래가 시작 되었다.
"자, 오늘 경매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죠~! 거두절미 하고 공개합니다~ 하이앨프 소녀입니다~!"
노예상인의 소개에 맞춰 지하실 중앙 스테이지 위로 양손이 포박되고 커다란 족쇄로 다리의 자유로움을 잃은 소녀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의 손에 들려 모습을 나다냈다.
-오오~!-
앨프 소녀의 모습에 라이트가 비춰지자 경매장 안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앨프소녀의 완벽한 미모 때문이었고 그 두 번째로는 앨프소녀의 연령이 너무나도 어려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자, 조용히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보시다 시피 이 앨프계집은 하프앨프 나부랭이가 아닌 숲의 앨프라 불리는 하이 앨프 족속입니다~ 자, 보십시오. 이 완벽한 얼굴을~ 아직 성인식이 지나지 않아 어린 몸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최고의 품질을 자랑 합니다~ 운이 좋으면 소녀 앨프와 성인 앨프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햐~! 생각해보십시오. 잘 길들여진 앨프소녀와의 열락의 밤을~!"
-오오옷~~-
장 내는 흥분과 열기로 가득 찼다. 앨프 소녀의 외모는 그야말로 완벽한 것이었다. 비록 몸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오뚝한 콧선과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넘칠 듯 한 커다랗고도 슬픈 눈망울 그리고 당장이라도 키스를 퍼붓고 싶은 욕망을 끓어 넘치게 하는 입술. 마치 자신의 얼굴에 매혹(fascination)마법이라도 건 듯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에 넋이 나간 듯 한 모습이었다.
"야. 앤디."
장내 세인들과 마찬가지로 앨프소녀의 모습에 넋이 나가있던 앤더슨은 자신의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고통에 정신을 차렸다.
"아, 맥키 왜, 왜 그래?"
"아, 저기 봐. 저 남자, 경매에 참가할 심산인가 본데?"
"응? 그게 무슨? 아아."
맥키언이 가리킨 사람은 아까의 그 청록색 머리칼의 남자였다. 청록색 머리칼의 남자는 맥키언의 말대로 이번 액프소녀의 경매에 참가할 듯 이제까지의 무덤덤한 태도와는 달리 매우 흥분된 모습이었다.
"자, 이번 경매는 1500골드부터 시작 합니다~! 자, 2000골드 없으십니까 2000골드?"
"5000골드!"
"5500!!"
"6000!!!"
예상대로 앨프소녀의 몸값은 청천부지로 치솟아 거의 10000골드에 육박할 정도로 그 값이 오르고 있었다. 10000골드라고 하면 웬만한 성 한 채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금액 이였다.
"자, 15000골드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자, 16000골드 없으십니까? 없다면 오늘의 이 앨프 소녀는 애도가와 란브랜트 자작께로 넘어갑니다!"
경매는 막바지에 이르러 15000골드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부른 애도가와 란브랜트 자작이라는 남자에게로 시선이 주목되었다. 대부호의 아들로 알려진 이 애도가와 란브랜트라는 자는 30대 초반의 미남자로 여색을 즐겨 귀족들 사이에선 난봉꾼으로 더 잘 알려진 남자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앨프라지만 성 한 채 값이 넘는 돈을 한낱 노예에게 쓸 수 있을 리 만무했겠지만 말이다.
"20000골드 내겠소!"
-???!!!-
거의 장내의 분위기가 이 란브랜트 자작에게로 초점이 모여지고 란브랜트 자작 그는 그 대로 세인들의 부러움 섞인 눈초리에 흐뭇해하고 있을 때 쯤 들려온 이 소리에 란브랜트 자작의 얼굴은 팍 일그러지고 말았다.
"이, 이만 골드 나왔습니다! 더, 더 없습니까? 21000골드 없습니까?"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던 란브랜트 자작도 장 내의 부호들도 모두 할 말을 잊은 듯 멍한 표정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단 한사람 사회를 맡고 있던 노예상인만이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남자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맥키언의 말로 의외로 쉽게 밝혀졌다. 바로 맥키언이 예의 주시하고 있던 그가 바로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경매에서 단 한 번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그가 드디어 나선 것이었다.
"20000골드 나왔습니다!! 21000골드 없습니까? 란브랜트 자작님 이대로 포기하십니까?"
흥분 하여 조금이라도 더 가격을 올리려는 상인의 말에 란브랜트 자작의 얼굴은 불쌍할 정도로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기실 저 앨프 소녀는 란브랜트 자작이 이미 경매가 시작되기 전부터 찍어놓은 상품이었다. 그리고 상인과도 15000골드라는 금액으로 경매를 종결하기로 입을 맞춘 후였던 것이었다. 또 그 정도 금액이라면 경매를 거치지 않고서라도 충분히 앨프를 살 수 있었었지만 란브랜트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 허영심이 지금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서 말이다.
"21000골드.21000골드 없습니까? 그러면 오늘의 마지막 상품은 저기 저 청발의 흰 로브를 입은 신사분께 넘어갔습니다~! 탕! 탕! 탕!"
그렇게 상인의 나무망치 소리를 끝으로 앨프 소녀는 청발(靑髮)의 사내에게로 넘어갔다. 한낮 허영심에 사로잡혀 낭패를 본 란브랜트에게는 애석한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대 부호의 아들이라도 20000골드가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은 쉽사리 쓸 수 없는 것이었으니 자신을 자책하는 수밖에는 분을 풀 방법이 없었다.
"흠. 자, 이제 우리도 슬슬 복귀해야지. 우리가 몰래 빠져 나온 것이란 걸 잊어선 안 된다구~"
"그래, 그래 앤디. 그만 보채라구~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리 급하지도 않는 시간이라구~ 안 그래 맥키?"
경매가 끝나고서도 미적거리는 패터슨을 보고 앤더슨은 급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여유 있게 말하는 패터슨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앤더슨의 성격에는 패터슨과 같은 똥배짱(?)이란 필수 항목이 결여돼 있었다.
"뭐. 물론 늦은 건 아니지만. 우리가 몰래 복귀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 다구…….지금 시간이라면 복귀는 문제없겠지만 완전 범죄는 포기해야 한다고 봐야 돼……."
"으윽…….패~터~스은~~!!"
"야, 야. 왜이래? 너도 즐겨놓구선~"
맥키언의 무덤덤한 말은 앤더슨을 패닉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마을에서 잠깐 쉬어갈 때 잠시 부대를 이탈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일은 사실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제시간에 복귀만 한다면 그것을 문제 삼을 상관은 없었고 또 앤더슨 일행은 정규군이 아닌 징집 병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해도 군율 덕에 공개적으로는 부대 내 이탈을 금지한다는 성명이 있었던 것이었는데, 소심한 앤더슨은 그것을 정말로 믿고 있었던 것 이었다.
"하하하. 너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될게야. 기사라는 족속들이 그렇게 속 좁은 위인들도 아닐 것이니…….자, 내가 말을 준비해 놨다네. 타고 가면 늦지 않게 복귀할 수 있을 거야."
앤더슨의 불안이 극도에 달할 즈음 버넷이 준마(駿馬) 세필을 끌고 다가왔다.
"와앗, 정말 고마워요. 버넷 아저씨!"
"이익!"
"버넷씨, 감사합니다~!"
".그럼……."
아저씨란 말에 발작 하려는 버넷을 두고, 앤더슨 일행은 지체 없이 말 위로 올라 탄 후 수비대 초소로 달렸다. 그리고 후일담 이지만 멀어져가는 앤더슨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버넷은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저노무시키, 15년 동안 만두만 처먹을 노무시키…….크흐흑……."
"아, 자네들 노예시장을 본 적 있나? 조금 있으면 노예 시장이 선다네. 같이 가보지 않겠나?"
웃고 떠들고 마신지 어느덧 새벽의 끝자락을 잡고 아침 해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어느새 꽤 친해진 버넷이 제의 한 것은 노예 시장 구경 이였다.
"예? 무슨?"
"노예 시장 말일세. 내가 노예상단의 호위를 맡고 있거든. 거긴 아주 진풍경이지. 흐흐. 어때 패터슨? 자네라면 그런 구경거릴 놓치진 않겠지?"
"아, 물론이……."
"아니,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저희가 아침까진 초소로 복귀해야 해서……."
아무 생각도 없이 호기심에 순순히 따라가려는 패터슨의 입을 막고 앤더슨이 나섰다. 아닌 게 아니라 아직은 이르긴 하지만 노예시장까지 들렀다가 복귀하기엔 너무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건 걱정 말게. 내 나중에 말을 세필 빌려줌세. 자네들 징집 병이라 그랬지? 노예시장이 서는 곳에서 말을 타고 수비대 초소까지 달린다면 15분 안으로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 그래도……."
"에이, 앤디~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라고~ 너도 보고 싶잖아~ 버넷아저씨가 말도 빌려준다는데 조금만 구경하고 복귀하자 응? 야, 맥키 넌 어때?"
"흠.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말을 타면 시간도 문제 될게 없을 듯 하고.잠깐 구경만 하는 거라면……."
패터슨에 이어 맥키언까지 찬성하고 나오자 좀 불안하긴 했지만 앤더슨도 더 이상 반대 할 순 없었다.
"그럼, 구경만 잠깐하고 돌아가는 거다. 우리 걸리면 진짜 큰일 날거라고~"
"알았어, 알았어. 걱정 마~ 버넷아저씨 어서 가요!"
"그, 그래. 근데 패터슨, 그 아저씨란 말 좀 집어치울 수 없겠냐?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녀석한테 아저씨란 소릴 들으니까 기분이 무지 더러워질라 하거든?"
"헤헤. 그럴 순 없겠는데요, 버넷아. 저. 씨?"
"큭…….어서 마차에 타기나 해라……."
앤더슨 일행은 버넷이 끌고 온 짐마차에 몸을 실었고 짐마차는 노예시장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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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의 선술집’을 나와 앤더슨 일행은 버넷이 끌고 온 둔 짐마차를 타고 번화가를 벗어났다. 드문드문 보이는 인가들과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기를 몇 분. 마차는 인적이 없는 곳에 홀로 세워진 벽돌로 세워진 꽤 큰 건물 앞에 도달했다.
"흑흑. 아저씨 고마워요……."
"이익. 하. 하. 하 내 패터슨 니가 제일 좋아할 줄 알고 있었다. 하하핫"
건물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휙 둘러본 패터슨은 버넷을 부여잡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버넷은 패터슨이 계속 아저씨라 부르자 이마에 힘줄 하나가 불쑥 튀어 올랐으나 그 뒤에 이어지는 감사의 말에 이내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조금 그렇군요. 같은 인간으로서…….쩝."
"무슨 소린가? 앤더슨군. 같은 인간이라니~ 저들은 노예라네. 헤르메스 대 신전에서도 인정한 노예 제도일세…….저들은 인간이 아니라 노예라는 거지. 알겠나?"
"…….예에……."
건물 안 풍경은 그야말로 별천지 이었다. 남자 노예들은 중요부위를 가린 속옷류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여자 노예들은 그 사정이 달랐던 것이었다. 여자 노예들은 어린아이에서 부터 중년여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벌거벗은 채로 거래되고 있었다. 자신의 중요부위를 훤히 드러낸 채로 일렬로 늘어 서 있었는데 수치심에 손으로 나마 몸을 가리려고 하면 어김없이 노예상인들의 채찍이 날아들었다.
"자, 여기서 눈 버리지 말고 지하실로 내려가자~ 여기는 삼등품만 취급하는 곳 이란다. 오늘 앨프 계집의 판매가 있다던데 그걸 놓치면 안 되지!"
"옛? 앨프요?"
"그래, 앨프! 들리기론 아직 어린 앨프라 볼 건 없다지만, 그래도 기가 막히게 이쁘다는군.흐흐. 귀족들 중엔 어린애를 좋아하는 로리콘들이 많다고 하니까, 아마 꽤나 비싸게 팔릴걸?"
"햐아~ 앨프라니. 정말 오늘 횡재 한 것 같은데~ 안 그래 앤디?맥키?"
버넷의 안내에 따라 특등의 노예들만이 거래된다는 지하실로 내려가며 패터슨은 앨프를 구경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들떠했다. 하지만 앤더슨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저렇게 가축처럼 값을 매기고 흥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라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신분의 차이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있어왔던 것이라 그것이 바뀌길 바란 다는 것은 허황된 생각일 뿐인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앤더슨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앤더슨은 문득 맥키언을 힐끔 쳐다보았다.
"응? 맥키?"
맥키언의 시선은 패터슨과 같이 미모의 여자노예에게로 향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처럼 생각에 빠진 모습도 아니었다. 의구심을 느낀 앤더슨은 맥키언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맥키, 아는 사람이야?"
맥키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어, 어? 아냐……."
"근데 왜 그렇게 멍하게 쳐다보냐? 너 혹시 남색이냐?"
"훗, 농담은…….그냥 저 남자. 좀 이상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응? 뭐가?"
"아, 그냥. 머리 색깔도 그렇고…….표정도 그렇고. 생김새는 귀족 같은데.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잖아. 여기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너랑 저 남자뿐인 것 같은데."
"흠…….그런가. 역시. 넌 남. 색. 가이군. 언제 그렇게 자세히 봤대냐? 헛. 잠깐, 나한테 흑심을 품은 건 아니겠지? 나, 난 임자 있는 몸이라고……."
"쳇. 씨끄러."
농담 삼아 웃고 넘어갔지만 맥키언이 말한 그 남자의 모습은 그만큼 이 노예시장이란 장소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 이었다. 비단 그 사내가 대륙에서 흑발과 흑안 만큼이나 희귀하다는 청록색의 머리에 푸른 눈을 지닌 전륜의 미청년의 모습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짓고 있는 표정 때문 이었다. 그의 표정은 기대감이나 설렘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분노와 슬픔과도 같은 일차원 적인 것도 아니었다. 같은 인간으로선 다 읽어내지 못할 만큼의 후회와 회한 그리고 허무함 등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누굴까…….청록색 머리에 푸른 눈이라……."
맥키언의 호기심이 전염된 것일까? 앤더슨도 저 남자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 앤디! 뭐해? 경매가 시작 됐다고. 얼른 와봐~"
"아, 응……."
패터슨의 말대로 노예의 경매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경매는 건물 1층의 노예 거래와는 달리 한 번에 한명의 노예의 거래 형식으로 이루어 졌는데, 대부분이 미모의 젊은 여성이거나 남 녀 어린아이 들이었고, 그 가격도 상상을 초월하는 것 이었다.
"자, 오늘 첫 경매 상품은 로스웰 공국 출신의 아리따운 소녀가 되겠습니다. 이 소녀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올해 14세로 로스웰 공국의 몰락 귀족의 영애가 되겠습니다. 귀족의 영애로 태어나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 보십시오! 티끌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를 자랑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순결한 처녀이기도 합죠! 뭐, 물론 처음 길들이기는 어렵겠지만……."
-우~우~ 닥치고 그만 시작해라~~-
사회자의 말이 쓸데없이 길어지자 여기저기서 야유가 들려왔다. 무릇 사회자라 함은 말쑥한 모습에 미청년이거나 아리따운 아가씨 뭐 이런 것들을 충족 시켜주지 못한다면 말솜씨라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고 앤더슨은 생각했다. 허나 저 사각의 스테이지 위의 사회자를 보라. 걸어 다니는 건지 굴러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뚱뚱한 외모에 하류잡배와 같이 천박한 말투. 왜 저런 자가 사회를 보는 것일까? 만약 ‘저 사람이 이 노예시장을 연 노예상인 챈들러 씨야. 내 고용주지.’라는 버넷의 귀띔이 없었더라면 당장에 노예시장 홈피 게시판을 다운 시켜 버렸을 것이다.
"하하. 그럼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거두절미 하고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자~! 150골드부터 시작 합니다! 200골드 없으십니까?"
"와아.150골드라니. 어마어마하군요!…….저애가 제일 비싼 것인가요?"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 계집이 가장 싼 상품인가 보군. 원래 가장 상품의 질이 낮은 쪽이 제일 처음 나오는 법이거든……."
"헉. 제일 싸다니……."
버넷의 말에 질문을 한 패터슨은 물론이고 앤더슨과 맥키언 까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50골드라니. 그것은 앤더슨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지금의 화폐 단위는 동전과 어음이라는 수표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코인이라고 하는 동화가 가장 낮은 화폐단위로 코인 백 개가 모여 은화인 실버가 되고 실버 열개가 모여 금화인 골드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도심지 가정의 한 달 생활비가 4실버가 넘지 않았다.
"도대체 저 치들은 뭘 먹고 살 길래……."
앤더슨은 허탈하기도 하고 약간은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몇 개월을 노력하여 금화보다도 훨씬 작은 금가락지를 겨우겨우 사서 사랑하는 이에게 끼워주고 행복해 했었는데, 저들은 그저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150골드가 넘는 돈을 물 쓰듯 쓰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그 여자노예는 루벤후트 공작이라는 70대 의 비썩 마른 노인에게 500골드에 넘어갔다. 그 모습에 패터슨은 혀를 쯧쯧 찼다. 척 보기에도 오늘 내일 하는 처지인 것 같은데 무지하게 밝힌다고 부러움 섞인 어조로 툴툴 거리면서 말이다.
"자, 그리고 이번에 소개해드릴 상품은……."
버넷의 말대로 경매는 시간이 갈수록 그 열기가 뜨거워 졌고 거래되는 액수는 높아만 갔다. 하지만 이미 모두들 미리 자신이 구매하려는 상품을 정해 놓았던 듯 경매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 되었다. 약 한 시간가량이 지났을까? 드디어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할 노예의 거래가 시작 되었다.
"자, 오늘 경매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죠~! 거두절미 하고 공개합니다~ 하이앨프 소녀입니다~!"
노예상인의 소개에 맞춰 지하실 중앙 스테이지 위로 양손이 포박되고 커다란 족쇄로 다리의 자유로움을 잃은 소녀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의 손에 들려 모습을 나다냈다.
-오오~!-
앨프 소녀의 모습에 라이트가 비춰지자 경매장 안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앨프소녀의 완벽한 미모 때문이었고 그 두 번째로는 앨프소녀의 연령이 너무나도 어려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자, 조용히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보시다 시피 이 앨프계집은 하프앨프 나부랭이가 아닌 숲의 앨프라 불리는 하이 앨프 족속입니다~ 자, 보십시오. 이 완벽한 얼굴을~ 아직 성인식이 지나지 않아 어린 몸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최고의 품질을 자랑 합니다~ 운이 좋으면 소녀 앨프와 성인 앨프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햐~! 생각해보십시오. 잘 길들여진 앨프소녀와의 열락의 밤을~!"
-오오옷~~-
장 내는 흥분과 열기로 가득 찼다. 앨프 소녀의 외모는 그야말로 완벽한 것이었다. 비록 몸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오뚝한 콧선과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넘칠 듯 한 커다랗고도 슬픈 눈망울 그리고 당장이라도 키스를 퍼붓고 싶은 욕망을 끓어 넘치게 하는 입술. 마치 자신의 얼굴에 매혹(fascination)마법이라도 건 듯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에 넋이 나간 듯 한 모습이었다.
"야. 앤디."
장내 세인들과 마찬가지로 앨프소녀의 모습에 넋이 나가있던 앤더슨은 자신의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고통에 정신을 차렸다.
"아, 맥키 왜, 왜 그래?"
"아, 저기 봐. 저 남자, 경매에 참가할 심산인가 본데?"
"응? 그게 무슨? 아아."
맥키언이 가리킨 사람은 아까의 그 청록색 머리칼의 남자였다. 청록색 머리칼의 남자는 맥키언의 말대로 이번 액프소녀의 경매에 참가할 듯 이제까지의 무덤덤한 태도와는 달리 매우 흥분된 모습이었다.
"자, 이번 경매는 1500골드부터 시작 합니다~! 자, 2000골드 없으십니까 2000골드?"
"5000골드!"
"5500!!"
"6000!!!"
예상대로 앨프소녀의 몸값은 청천부지로 치솟아 거의 10000골드에 육박할 정도로 그 값이 오르고 있었다. 10000골드라고 하면 웬만한 성 한 채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금액 이였다.
"자, 15000골드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자, 16000골드 없으십니까? 없다면 오늘의 이 앨프 소녀는 애도가와 란브랜트 자작께로 넘어갑니다!"
경매는 막바지에 이르러 15000골드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부른 애도가와 란브랜트 자작이라는 남자에게로 시선이 주목되었다. 대부호의 아들로 알려진 이 애도가와 란브랜트라는 자는 30대 초반의 미남자로 여색을 즐겨 귀족들 사이에선 난봉꾼으로 더 잘 알려진 남자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앨프라지만 성 한 채 값이 넘는 돈을 한낱 노예에게 쓸 수 있을 리 만무했겠지만 말이다.
"20000골드 내겠소!"
-???!!!-
거의 장내의 분위기가 이 란브랜트 자작에게로 초점이 모여지고 란브랜트 자작 그는 그 대로 세인들의 부러움 섞인 눈초리에 흐뭇해하고 있을 때 쯤 들려온 이 소리에 란브랜트 자작의 얼굴은 팍 일그러지고 말았다.
"이, 이만 골드 나왔습니다! 더, 더 없습니까? 21000골드 없습니까?"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던 란브랜트 자작도 장 내의 부호들도 모두 할 말을 잊은 듯 멍한 표정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단 한사람 사회를 맡고 있던 노예상인만이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남자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맥키언의 말로 의외로 쉽게 밝혀졌다. 바로 맥키언이 예의 주시하고 있던 그가 바로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경매에서 단 한 번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그가 드디어 나선 것이었다.
"20000골드 나왔습니다!! 21000골드 없습니까? 란브랜트 자작님 이대로 포기하십니까?"
흥분 하여 조금이라도 더 가격을 올리려는 상인의 말에 란브랜트 자작의 얼굴은 불쌍할 정도로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기실 저 앨프 소녀는 란브랜트 자작이 이미 경매가 시작되기 전부터 찍어놓은 상품이었다. 그리고 상인과도 15000골드라는 금액으로 경매를 종결하기로 입을 맞춘 후였던 것이었다. 또 그 정도 금액이라면 경매를 거치지 않고서라도 충분히 앨프를 살 수 있었었지만 란브랜트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 허영심이 지금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서 말이다.
"21000골드.21000골드 없습니까? 그러면 오늘의 마지막 상품은 저기 저 청발의 흰 로브를 입은 신사분께 넘어갔습니다~! 탕! 탕! 탕!"
그렇게 상인의 나무망치 소리를 끝으로 앨프 소녀는 청발(靑髮)의 사내에게로 넘어갔다. 한낮 허영심에 사로잡혀 낭패를 본 란브랜트에게는 애석한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대 부호의 아들이라도 20000골드가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은 쉽사리 쓸 수 없는 것이었으니 자신을 자책하는 수밖에는 분을 풀 방법이 없었다.
"흠. 자, 이제 우리도 슬슬 복귀해야지. 우리가 몰래 빠져 나온 것이란 걸 잊어선 안 된다구~"
"그래, 그래 앤디. 그만 보채라구~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리 급하지도 않는 시간이라구~ 안 그래 맥키?"
경매가 끝나고서도 미적거리는 패터슨을 보고 앤더슨은 급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여유 있게 말하는 패터슨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앤더슨의 성격에는 패터슨과 같은 똥배짱(?)이란 필수 항목이 결여돼 있었다.
"뭐. 물론 늦은 건 아니지만. 우리가 몰래 복귀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 다구…….지금 시간이라면 복귀는 문제없겠지만 완전 범죄는 포기해야 한다고 봐야 돼……."
"으윽…….패~터~스은~~!!"
"야, 야. 왜이래? 너도 즐겨놓구선~"
맥키언의 무덤덤한 말은 앤더슨을 패닉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마을에서 잠깐 쉬어갈 때 잠시 부대를 이탈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일은 사실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제시간에 복귀만 한다면 그것을 문제 삼을 상관은 없었고 또 앤더슨 일행은 정규군이 아닌 징집 병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해도 군율 덕에 공개적으로는 부대 내 이탈을 금지한다는 성명이 있었던 것이었는데, 소심한 앤더슨은 그것을 정말로 믿고 있었던 것 이었다.
"하하하. 너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될게야. 기사라는 족속들이 그렇게 속 좁은 위인들도 아닐 것이니…….자, 내가 말을 준비해 놨다네. 타고 가면 늦지 않게 복귀할 수 있을 거야."
앤더슨의 불안이 극도에 달할 즈음 버넷이 준마(駿馬) 세필을 끌고 다가왔다.
"와앗, 정말 고마워요. 버넷 아저씨!"
"이익!"
"버넷씨, 감사합니다~!"
".그럼……."
아저씨란 말에 발작 하려는 버넷을 두고, 앤더슨 일행은 지체 없이 말 위로 올라 탄 후 수비대 초소로 달렸다. 그리고 후일담 이지만 멀어져가는 앤더슨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버넷은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저노무시키, 15년 동안 만두만 처먹을 노무시키…….크흐흑……."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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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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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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