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막참부터는 막다른 벽을 향해 고래 등판처럼 넓은 복도가 짧게 이어져 있었다.
벽 앞에서 길은 양갈래로 나뉘었는데, 왼쪽으로는 탑을 올라가는 계단이, 오른쪽으로는 시청본관에 들어가는 높은 첨두형 아치가 세워져 있었다. 벽은 높고 좁았으며, 바닥은 라미네이팅 필름으로 코팅된 것처럼 매끄러웠다.
집사는 복도를 걸어가 아치 앞에서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자, 아가씨들. 이리로 오십시오."
그가 웃으며 정중하게 한 손을 뻗어 아치를 가리켰다. 그녀들은 집사의 안내대로 아치를 지나 시청으로 들어갔다.
시청 본관은 고딕양식으로 지은 성당처럼 라틴식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육상경기를 치뤄도 될 정도로 긴 네이브(주: 십자가의 몸에 해당하는 긴 주랑)가 축조되어 있는 가운데, 그와 비슷한 너비를 가졌지만 그보다는 좀 짧은 트란셉(주: 십자가의 팔에 해당하는 수랑)이 가로놓여 있었고, 그것들이 교차하는 곳에 그녀들이 밖에서 보았던 거대한 드럼과 돔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들어선 곳은, 바로 그 커다란 궁륭을 향해 종축 방향성이 크게 강조되게끔 놓여진 측랑(주: 주랑 옆에 만들어진 통로)의 끝부분이었다. 주랑은 그곳이 마치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라도 거행하는 곳인양 화려하고 거창했으며, 양질의 석재로 만들어진 아케이드가 물결치듯 연속되고 있는 아치형 천장의 프레임으로 되어 있었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까마득히 솟구친 천장과 벽에는, 사물놀이패가 귓 속에서 들어앉아 꽹가리를 쳐대는 것만큼이나 요란한 도상조각장식이 뒤덮여 있었다.
수원의 팔달문을 연상시키는 단단하고 높은 정문 위엔 엄청나게 커다란 원형 스테인드 글라스가 붉고 푸르고 노란색의 유리를 빛내고 있었는데, 건물의 설계자는 그 밖에도 벽이고 천장이고 간에 벽돌이 모자랄 것 같은 부위엔 모조리 이와 비슷한 색유리를 끼워 놓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건물 내부는 그야말로 빛의 상찬을 이루었다.
아케이드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그녀들이 들어선 측랑의 아케이드는 벽에서부터 돌출되어 사각형의 긴 기둥인 필라스터(주: 벽 속에 박혀있는 것처럼 만들어진 기둥)로 지탱되는 것이었고, 또 하나의 아케이드는 측랑과 주랑을 구분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매우 입체적인 느낌의 기둥, 그러니까 다섯 개의 원통형 부주(주: 붙어있는 기둥)가 기주와 주두에서 하나로 묶여서 마치 대나무 숲처럼 골이 지게 만들어진 기둥들에 의해 받쳐졌다.
아케이드 위에는 트리포리움(주: 내벽의 두께만큼 얇게 만들어진 아치형 공간으로 2층에 위치)과 클리어스토리(주: 지붕 쪽에 높은 채광창이 달려있는 층)가 3층으로 겹쳐 있었고, 네이브부터 클리어스토리까지 연장된 기둥이 리브볼트로 갈라져 갈빗대처럼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클리어스토리에 달린 투명한 채광창들은 섬?한 붉은 달빛을 가감없이 투과하여 시청 안을 딸기바구니를 쌌던 보자기처럼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들은 건물 내부의 화려함에 입을 벌린 채 집사를 따라 측랑을 걸어갔다.
건물의 중심부에 진입함에 따라, 그녀들은 흉곽 속에 감춰진 사람의 뼈대를 해부할 때처럼 건물의 숨겨놓은 뼈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굵기가 다른 수많은 기둥들과 기둥에 연결되는 선상볼트들, 그리고 현대도시의 입체교차로만큼이나 복잡한 교차궁륭의 모습은 그녀들을 현깃증이 나도록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교차부에 이르자 집사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들에게 말했다.
"이 곳이 실상 이 도시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장같은 곳이지요."
그 곳은 내진(주: 성가대와 성직자들이 위치한 제단)으로 설계된 앱스(주: 반원형이나 다각형으로 건물 끝에 튀어 나와 있는 부분)였으며,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비워놓은 드럼 내부의 텅 빈 공간이었다. 그녀들의 맞은 편엔 두 개의 기둥이 한 세트가 되어 앱스의 반원을 따라 짧은 회랑을 만들었고, 그 앞에는 몇 개의 단을 쌓아 만든 제단이 보였다.
하지만 성당과는 달리 이 곳엔 아무런 종교적 장식품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좀 특별한 것이 있다면 내진의 기둥과 제단이 만드는 스크린 앞에 세워진 울퉁불퉁한 기둥 하나였다.
그 기둥은 무엇을 받치기 위한 기둥이 아니었다. 기둥 그 자체 만으로 높게 솟아 드럼의 상부에서 끝나고 있었는데,아무렇게나 만든 거푸집에서 있는 힘을 다해 뽑아낸 듯이 이곳 저곳이 긁히고 옹이졌으며 매우 야만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건 화려하고 인공적이며 깨끗한 이 건물의 건축방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디지털퍼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저 기둥은 대체 뭔가요?"
집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길이라고 해두지요. 저게 무엇에 쓰는 것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실 겁니다. 직접 보실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녀들은 매우 의아한 듯이 집사를 쳐다보았지만 집사는 더이상 별다른 설명없이 입을 다물었다.
드럼의 내부는 그야말로 기하학적 구조의 첨단이었다.
그 커다란 돔을 기둥없이 지탱하기 위해 설치된 그물볼트와 성형볼트들은, 각종 회로와 배선으로 가득 찬 수퍼컴퓨터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같이 규칙적이면서도 기묘한 형태로 천장을 가르고 있었다.
"멋지긴 한데 이 곳이 왜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왜 이 곳을 심장이라고 부르시나요?"
쇼트웨이브가 집사에게 질문했다.
"저것 때문이지요."
집사가 손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돔 바로 밑에 광장을 덮었던 빛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천장의 한 쪽면엔 커다란 반사경이 달려 있었고, 그 앞에 횃불처럼 보이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구식 등대처럼 보이는 그 조명기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푸른 색의 보석이 달려있었는데, 반사경은 그 빛을 모아 보석을 향해 촛점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보석을 통과한 빛은 크세논 램프에 의해 증폭된 레이저 광선처럼 단일 파장으로 직진하여 큐폴라의 창을 통해 오벨리스크로 쏘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쇼트웨이브가 눈을 빛냈다.
"특이하군요. 유도방출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증폭장치도 없는데 빛의 출력이 높아지는군요. 게다가 저 보석을 통해서 나오면 빛의 위상이 고르게 변하는 것 같은데..그렇죠? 보석이 특별한 건가요. 저 보석이 뭐지요?"
집사가 잠시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반드시 궁금해 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과문해서 작은 아가씨의 호기심을 만족시켜드릴 수가 없군요. 다만 저 보석이 뭔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것은 다이아몬드입니다. 푸른 색 다이아몬드. 타베르니에 블루라는 이름을 가졌지요."
쇼트웨이브가 깜짝 놀랐다.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말이예요? 정말인가요. 그게 왜 여기에 있지요? 제가 알기론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영구기증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집사가 껄껄 웃었다.
"그건 너무 뻔하고 흔한 얘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지요. 하나의 물건이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이건 자명한 사실이지요. 그런데 서로 다른 두 군데에서 동시에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겁니다. 그럼 결론이 뭘까요?"
아무 망설임없이 쇼트웨이브가 대답했다.
"둘 중 하나는 가짜겠지요."
"빙고."
집사가 손가락을 부딪혀 딱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럼 이제 문제는 어떤 것이 진짜냐 하는 것이겠지요. 작은 아가씨께서 말한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타베르니에 블루와 우리 것 중에 말입니다. 이 문제에 간접적이나마 답을 드릴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사실 타베르니에 블루는 인간들이 소유할 수 없는 보석이었습니다. 그것은 악마의 돌이었어요. 아가씨들이 살던 세상에 출몰해서는 안될 물건이었지요. 그 이유는 알고 계시지요?"
쇼트웨이브가 뺨을 잠깐 문지르고는 말했다.
"그 다이아몬드가 불러 일으키는 불행 말씀인가요?"
집사가 눈을 살며시 뜨며 디지털퍼머를 응시했다.
"네,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서 저주가 걸려 있는 겁니다.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지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디지털퍼머의 표정을 보고는 손가락을 세워 그것을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가끔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그런 물건들이 세상에 나옵니다. 그뢰프 앤 스티프트 사의 더블 페이튼 리무진이 그런 경우지요. 이 차에 대해서 혹시 아시나요?"
"아뇨."
"이 차가 일으킨 제일 큰 사건은 1914년 사라예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도시를 방문했었던 오스트리아의 황위계승자 내외가 이 리무진에 타고 있다가 세르비아의 독립을 요구하는 지하조직에 의해 암살당했지요.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라예보 사건에 대해선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건은 1차 세계대전 따위가 아니지요. 중요한건 암살을 시작으로 이 차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세상에 알려져 있기로는 그 후 6번 주인이 바뀌는데, 그 때마다 이 리무진은 인수자를 잡아먹게 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7번입니다. 차의 인수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자마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있거든요. 시쳇말로 재수 옴 붙은 거지요. 재미있는 건 말입니다, 이 차는 다만 인수자만 해친 것이 아니라 차를 같이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를 해쳤다는 것입니다. 단체로 죽어나간 겁니다. 뭐, 차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요. 여하튼 마지막엔 비엔나에 있는 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만 그 관장마저 사고로 목숨을 잃지요."
집사가 고개를 들어 무공훈장을 바라보는 퇴역군인처럼 감상에 젖어 보석을 바라보았다.
"저 다이아몬드도 마찬가지지요. 타베르니에가 인도에서 구입한 저 물건은, 타베르니에 자신을 비롯해서 소유주들이 바뀔 때마다 빠짐없이 족족 그들을 파멸시켰습니다. 주로 프랑스 왕실에서 소유하고 있었던 관계로 국왕과 왕비가 그 제물이 되었지요."
집사는 그녀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물건들이 탈을 일으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물건들은 아가씨들이 살던 공간과 이쪽 공간의 접합을 이루는 조인트를 제공합니다. 그 조인트는 공간과 공간이 맺어지는 특이점, 즉 아가씨들이 사시던 공간이 갖고 있던 연속적인 위상이 무너지는 카타스트로피 점을 말하는 것이지요. 왜 그 쪽 세계에서 잘 쓰는 표현들 있잖습니까. 귀신이 씌웠네, 저주가 붙었네, 이상한 기운이 흐르네 기타등등 그런 얘기들 말이예요. 그건 한 마디로 그 물건에 집중된 공간의 균열을 컨트롤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지요."
집사가 모자를 약간 뒤로 젖혔다.
"그런데 그렇게 문제가 많던 물건이 이제 조용해진 것이 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그는 자신이 묻고선 손뼉을 치며 자신이 대답했다.
"말할 것도 없이 스미소니언에 있는 그 물건은 가짜이기 때문이지요. 진짜는 우리가 이 곳에 가져다 놓았거든요. 바로 여기 말입니다."
집사가 천정의 보석을 가리켰다.
"저것은 그 쪽 세상에 나와서는 안될 물건이기 때문이예요. 이 곳이 제자리입니다."
디지털퍼머가 의구심에 찬 눈으로 말했다.
"저희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계신거 같네요."
집사가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았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저도 한동안은 거기에 있었으니까요. 사라예보 사건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당시 저도 그 곳에 있었답니다. 아니, 사라예보는 아니구요, 전 프랑스에 있었습니다만 어쨌든 같은 유럽 아니겠습니까."
그녀들이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럼 집사님은 1914년에 살아계셨다는 소리세요? 그것도 유럽에서. 그럼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디지털퍼머의 말을 이어 바로 쇼트웨이브가 물었다.
"생김새는 전혀 유럽인 같지 않으신데요. 그냥 한국 사람 같으세요. 어느 나라 사람이셨어요?"
집사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궁금한게 많으신가 봅니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지금 물어보셨던 것은 개인적인 신상명세라는 것을요. 뭐, 말씀드려도 상관은 없지만, 그치만 왠지 아가씨들께서 아까 저에게 이름조차 안 가르쳐 주시던게 생각납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제가 제 신상에 대해 알려드릴테니까 아가씨들께서도 이름을 가르쳐주시는 걸로요."
집사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개인적인 것을 꼬치꼬치 캐묻는 건 실례겠지요. 저희가 큰 실수를 할 뻔 했네요. 나중에 내키면 말씀해 주세요."
냉랭한 쇼트웨이브의 대답이었다.
"자, 이쪽으로 가시지요."
쇼트웨이브의 냉담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평소대로 느끼한 웃음을 담으며 집사가 그녀들을 이끌었다. 집사는 교차부에서 길을 꺾어 수랑으로 접어들었는데, 그를 따라 가기 전 우연히 교차부의 바닥을 본 쇼트웨이브는 거기서 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곳엔 낯선 무늬가 크게 그려져 있었는데, 문양을 그린 서툰 솜씨 때문에 그것은 제단 앞에 세워진 세련되지 못한 큰 기둥과 한 쌍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무늬는 삼각형과 직선, 그리고 나선형으로 꼬여들어간 곡선으로 이루어진, 애들 장난같은 그림이었다. 언뜻 보면 복잡하게 생긴 옷걸이처럼 생긴 이 그림은, 금으로 상감되어 교차부 바닥 전체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쇼트웨이브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집사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벽 앞에서 길은 양갈래로 나뉘었는데, 왼쪽으로는 탑을 올라가는 계단이, 오른쪽으로는 시청본관에 들어가는 높은 첨두형 아치가 세워져 있었다. 벽은 높고 좁았으며, 바닥은 라미네이팅 필름으로 코팅된 것처럼 매끄러웠다.
집사는 복도를 걸어가 아치 앞에서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자, 아가씨들. 이리로 오십시오."
그가 웃으며 정중하게 한 손을 뻗어 아치를 가리켰다. 그녀들은 집사의 안내대로 아치를 지나 시청으로 들어갔다.
시청 본관은 고딕양식으로 지은 성당처럼 라틴식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육상경기를 치뤄도 될 정도로 긴 네이브(주: 십자가의 몸에 해당하는 긴 주랑)가 축조되어 있는 가운데, 그와 비슷한 너비를 가졌지만 그보다는 좀 짧은 트란셉(주: 십자가의 팔에 해당하는 수랑)이 가로놓여 있었고, 그것들이 교차하는 곳에 그녀들이 밖에서 보았던 거대한 드럼과 돔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들어선 곳은, 바로 그 커다란 궁륭을 향해 종축 방향성이 크게 강조되게끔 놓여진 측랑(주: 주랑 옆에 만들어진 통로)의 끝부분이었다. 주랑은 그곳이 마치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라도 거행하는 곳인양 화려하고 거창했으며, 양질의 석재로 만들어진 아케이드가 물결치듯 연속되고 있는 아치형 천장의 프레임으로 되어 있었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까마득히 솟구친 천장과 벽에는, 사물놀이패가 귓 속에서 들어앉아 꽹가리를 쳐대는 것만큼이나 요란한 도상조각장식이 뒤덮여 있었다.
수원의 팔달문을 연상시키는 단단하고 높은 정문 위엔 엄청나게 커다란 원형 스테인드 글라스가 붉고 푸르고 노란색의 유리를 빛내고 있었는데, 건물의 설계자는 그 밖에도 벽이고 천장이고 간에 벽돌이 모자랄 것 같은 부위엔 모조리 이와 비슷한 색유리를 끼워 놓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건물 내부는 그야말로 빛의 상찬을 이루었다.
아케이드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그녀들이 들어선 측랑의 아케이드는 벽에서부터 돌출되어 사각형의 긴 기둥인 필라스터(주: 벽 속에 박혀있는 것처럼 만들어진 기둥)로 지탱되는 것이었고, 또 하나의 아케이드는 측랑과 주랑을 구분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매우 입체적인 느낌의 기둥, 그러니까 다섯 개의 원통형 부주(주: 붙어있는 기둥)가 기주와 주두에서 하나로 묶여서 마치 대나무 숲처럼 골이 지게 만들어진 기둥들에 의해 받쳐졌다.
아케이드 위에는 트리포리움(주: 내벽의 두께만큼 얇게 만들어진 아치형 공간으로 2층에 위치)과 클리어스토리(주: 지붕 쪽에 높은 채광창이 달려있는 층)가 3층으로 겹쳐 있었고, 네이브부터 클리어스토리까지 연장된 기둥이 리브볼트로 갈라져 갈빗대처럼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클리어스토리에 달린 투명한 채광창들은 섬?한 붉은 달빛을 가감없이 투과하여 시청 안을 딸기바구니를 쌌던 보자기처럼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들은 건물 내부의 화려함에 입을 벌린 채 집사를 따라 측랑을 걸어갔다.
건물의 중심부에 진입함에 따라, 그녀들은 흉곽 속에 감춰진 사람의 뼈대를 해부할 때처럼 건물의 숨겨놓은 뼈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굵기가 다른 수많은 기둥들과 기둥에 연결되는 선상볼트들, 그리고 현대도시의 입체교차로만큼이나 복잡한 교차궁륭의 모습은 그녀들을 현깃증이 나도록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교차부에 이르자 집사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들에게 말했다.
"이 곳이 실상 이 도시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장같은 곳이지요."
그 곳은 내진(주: 성가대와 성직자들이 위치한 제단)으로 설계된 앱스(주: 반원형이나 다각형으로 건물 끝에 튀어 나와 있는 부분)였으며,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비워놓은 드럼 내부의 텅 빈 공간이었다. 그녀들의 맞은 편엔 두 개의 기둥이 한 세트가 되어 앱스의 반원을 따라 짧은 회랑을 만들었고, 그 앞에는 몇 개의 단을 쌓아 만든 제단이 보였다.
하지만 성당과는 달리 이 곳엔 아무런 종교적 장식품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좀 특별한 것이 있다면 내진의 기둥과 제단이 만드는 스크린 앞에 세워진 울퉁불퉁한 기둥 하나였다.
그 기둥은 무엇을 받치기 위한 기둥이 아니었다. 기둥 그 자체 만으로 높게 솟아 드럼의 상부에서 끝나고 있었는데,아무렇게나 만든 거푸집에서 있는 힘을 다해 뽑아낸 듯이 이곳 저곳이 긁히고 옹이졌으며 매우 야만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건 화려하고 인공적이며 깨끗한 이 건물의 건축방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디지털퍼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저 기둥은 대체 뭔가요?"
집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길이라고 해두지요. 저게 무엇에 쓰는 것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실 겁니다. 직접 보실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녀들은 매우 의아한 듯이 집사를 쳐다보았지만 집사는 더이상 별다른 설명없이 입을 다물었다.
드럼의 내부는 그야말로 기하학적 구조의 첨단이었다.
그 커다란 돔을 기둥없이 지탱하기 위해 설치된 그물볼트와 성형볼트들은, 각종 회로와 배선으로 가득 찬 수퍼컴퓨터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같이 규칙적이면서도 기묘한 형태로 천장을 가르고 있었다.
"멋지긴 한데 이 곳이 왜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왜 이 곳을 심장이라고 부르시나요?"
쇼트웨이브가 집사에게 질문했다.
"저것 때문이지요."
집사가 손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돔 바로 밑에 광장을 덮었던 빛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천장의 한 쪽면엔 커다란 반사경이 달려 있었고, 그 앞에 횃불처럼 보이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구식 등대처럼 보이는 그 조명기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푸른 색의 보석이 달려있었는데, 반사경은 그 빛을 모아 보석을 향해 촛점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보석을 통과한 빛은 크세논 램프에 의해 증폭된 레이저 광선처럼 단일 파장으로 직진하여 큐폴라의 창을 통해 오벨리스크로 쏘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쇼트웨이브가 눈을 빛냈다.
"특이하군요. 유도방출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증폭장치도 없는데 빛의 출력이 높아지는군요. 게다가 저 보석을 통해서 나오면 빛의 위상이 고르게 변하는 것 같은데..그렇죠? 보석이 특별한 건가요. 저 보석이 뭐지요?"
집사가 잠시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반드시 궁금해 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과문해서 작은 아가씨의 호기심을 만족시켜드릴 수가 없군요. 다만 저 보석이 뭔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것은 다이아몬드입니다. 푸른 색 다이아몬드. 타베르니에 블루라는 이름을 가졌지요."
쇼트웨이브가 깜짝 놀랐다.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말이예요? 정말인가요. 그게 왜 여기에 있지요? 제가 알기론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영구기증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집사가 껄껄 웃었다.
"그건 너무 뻔하고 흔한 얘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지요. 하나의 물건이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이건 자명한 사실이지요. 그런데 서로 다른 두 군데에서 동시에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겁니다. 그럼 결론이 뭘까요?"
아무 망설임없이 쇼트웨이브가 대답했다.
"둘 중 하나는 가짜겠지요."
"빙고."
집사가 손가락을 부딪혀 딱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럼 이제 문제는 어떤 것이 진짜냐 하는 것이겠지요. 작은 아가씨께서 말한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타베르니에 블루와 우리 것 중에 말입니다. 이 문제에 간접적이나마 답을 드릴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사실 타베르니에 블루는 인간들이 소유할 수 없는 보석이었습니다. 그것은 악마의 돌이었어요. 아가씨들이 살던 세상에 출몰해서는 안될 물건이었지요. 그 이유는 알고 계시지요?"
쇼트웨이브가 뺨을 잠깐 문지르고는 말했다.
"그 다이아몬드가 불러 일으키는 불행 말씀인가요?"
집사가 눈을 살며시 뜨며 디지털퍼머를 응시했다.
"네,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서 저주가 걸려 있는 겁니다.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지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디지털퍼머의 표정을 보고는 손가락을 세워 그것을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가끔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그런 물건들이 세상에 나옵니다. 그뢰프 앤 스티프트 사의 더블 페이튼 리무진이 그런 경우지요. 이 차에 대해서 혹시 아시나요?"
"아뇨."
"이 차가 일으킨 제일 큰 사건은 1914년 사라예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도시를 방문했었던 오스트리아의 황위계승자 내외가 이 리무진에 타고 있다가 세르비아의 독립을 요구하는 지하조직에 의해 암살당했지요.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라예보 사건에 대해선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건은 1차 세계대전 따위가 아니지요. 중요한건 암살을 시작으로 이 차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세상에 알려져 있기로는 그 후 6번 주인이 바뀌는데, 그 때마다 이 리무진은 인수자를 잡아먹게 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7번입니다. 차의 인수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자마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있거든요. 시쳇말로 재수 옴 붙은 거지요. 재미있는 건 말입니다, 이 차는 다만 인수자만 해친 것이 아니라 차를 같이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를 해쳤다는 것입니다. 단체로 죽어나간 겁니다. 뭐, 차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요. 여하튼 마지막엔 비엔나에 있는 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만 그 관장마저 사고로 목숨을 잃지요."
집사가 고개를 들어 무공훈장을 바라보는 퇴역군인처럼 감상에 젖어 보석을 바라보았다.
"저 다이아몬드도 마찬가지지요. 타베르니에가 인도에서 구입한 저 물건은, 타베르니에 자신을 비롯해서 소유주들이 바뀔 때마다 빠짐없이 족족 그들을 파멸시켰습니다. 주로 프랑스 왕실에서 소유하고 있었던 관계로 국왕과 왕비가 그 제물이 되었지요."
집사는 그녀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물건들이 탈을 일으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물건들은 아가씨들이 살던 공간과 이쪽 공간의 접합을 이루는 조인트를 제공합니다. 그 조인트는 공간과 공간이 맺어지는 특이점, 즉 아가씨들이 사시던 공간이 갖고 있던 연속적인 위상이 무너지는 카타스트로피 점을 말하는 것이지요. 왜 그 쪽 세계에서 잘 쓰는 표현들 있잖습니까. 귀신이 씌웠네, 저주가 붙었네, 이상한 기운이 흐르네 기타등등 그런 얘기들 말이예요. 그건 한 마디로 그 물건에 집중된 공간의 균열을 컨트롤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지요."
집사가 모자를 약간 뒤로 젖혔다.
"그런데 그렇게 문제가 많던 물건이 이제 조용해진 것이 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그는 자신이 묻고선 손뼉을 치며 자신이 대답했다.
"말할 것도 없이 스미소니언에 있는 그 물건은 가짜이기 때문이지요. 진짜는 우리가 이 곳에 가져다 놓았거든요. 바로 여기 말입니다."
집사가 천정의 보석을 가리켰다.
"저것은 그 쪽 세상에 나와서는 안될 물건이기 때문이예요. 이 곳이 제자리입니다."
디지털퍼머가 의구심에 찬 눈으로 말했다.
"저희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계신거 같네요."
집사가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았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저도 한동안은 거기에 있었으니까요. 사라예보 사건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당시 저도 그 곳에 있었답니다. 아니, 사라예보는 아니구요, 전 프랑스에 있었습니다만 어쨌든 같은 유럽 아니겠습니까."
그녀들이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럼 집사님은 1914년에 살아계셨다는 소리세요? 그것도 유럽에서. 그럼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디지털퍼머의 말을 이어 바로 쇼트웨이브가 물었다.
"생김새는 전혀 유럽인 같지 않으신데요. 그냥 한국 사람 같으세요. 어느 나라 사람이셨어요?"
집사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궁금한게 많으신가 봅니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지금 물어보셨던 것은 개인적인 신상명세라는 것을요. 뭐, 말씀드려도 상관은 없지만, 그치만 왠지 아가씨들께서 아까 저에게 이름조차 안 가르쳐 주시던게 생각납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제가 제 신상에 대해 알려드릴테니까 아가씨들께서도 이름을 가르쳐주시는 걸로요."
집사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개인적인 것을 꼬치꼬치 캐묻는 건 실례겠지요. 저희가 큰 실수를 할 뻔 했네요. 나중에 내키면 말씀해 주세요."
냉랭한 쇼트웨이브의 대답이었다.
"자, 이쪽으로 가시지요."
쇼트웨이브의 냉담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평소대로 느끼한 웃음을 담으며 집사가 그녀들을 이끌었다. 집사는 교차부에서 길을 꺾어 수랑으로 접어들었는데, 그를 따라 가기 전 우연히 교차부의 바닥을 본 쇼트웨이브는 거기서 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곳엔 낯선 무늬가 크게 그려져 있었는데, 문양을 그린 서툰 솜씨 때문에 그것은 제단 앞에 세워진 세련되지 못한 큰 기둥과 한 쌍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무늬는 삼각형과 직선, 그리고 나선형으로 꼬여들어간 곡선으로 이루어진, 애들 장난같은 그림이었다. 언뜻 보면 복잡하게 생긴 옷걸이처럼 생긴 이 그림은, 금으로 상감되어 교차부 바닥 전체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쇼트웨이브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집사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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