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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 8부1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09:48 597회 0건
창작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8부 1장


『 - 사족 -

* 유감스럽게도, 부족한 묘사와 글쓰기 실력은 사실..... 이전에 다른 야설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항상 문제였답니다. ㅡ_ㅡ
그러나..... 개인적으로, 글을 쓰기로 한 이상은..... 스토리상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전부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답니다.
전투 장면이든, 정사 장면이든, 고문이나 다른 장면이든, 혹은 비인기 캐릭터의 등장 장면이든 말씀이죠.
그 결과, 몇 분 안되는 독자님들의 이탈을 더욱 재촉해서, 1인 피켓 시위(혼자서 뭔가 열심히 떠들고 있지만, 아무도 관심없는.....)의 우울한 결말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ㅡ_ㅡ


* 쓰다보니, 이번 부는 길이가 감당이 안되게 길어져서..... 한 에피소드를 중간까지 쓴 채로 "그러면, 독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에....." 라고 말씀드리게 되는 사태가 발생했답니다. ㅡ_ㅡ 』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8부 - 이어지는 전설 (랑구르시아 대로 : 전사와 도살자) - 1장 -


"휘이이이잉!"

"파악!"

똑바로 날아간 화살이 겨낭한 대로 30여 미터쯤 떨어진 나무에 깊숙히 박혔다.

"와아아아아! 정말 대단해요, 미리어님은!
볼피아 마을에서는 저도 활을 꽤 잘 쏘는 편에 속했는데 겨우 며칠만에 미리어님이 저보다 훨씬 잘 쏘시는데요!"

"클로아가 잘 가르쳐준 덕분이지!"

미영이 크고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활짝 웃었다.
가벼운 산들바람에 어깨까지 닿는, 약간 곱슬거리는 금발머리가 기분좋게 살랑거렸다.
마차를 길가에 멈추고 잠시 쉬는 동안, 요 며칠새 한참 재미를 붙인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엘루시족들이 준 이 활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모양도 크기도 별 차이가 없는데 어째서 같은 힘을 줘도 마을에서 쓰던 활보다 두세 배나 멀리 날아가는 걸까요?
활시위가 엘루시족의 머리카락이기 때문일까요?
화살들도 좀처럼 날이 무뎌지지 않는 것 같아요."

엘루시족들이 마을을 구해준 댓가로 선물한 활과 화살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훌륭한 선물인 듯 했다.
물론, 바라는 대로 조만간 우리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이상 쓸 일은 없겠지만.....
볼피아 마을에서 오빠 클로렌이 말했던 대로, 클로아의 활쏘기 실력은 꽤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행중 활쏘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은 미영 뿐이이서, 미영 혼자만 틈틈이 클로아에게 활쏘기를 배우고 있었다.

참새처럼 신이 나서 귀엽게 재잘거리며 감탄하는 클로아를 보며 미영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일행중 가장 나이가 어린 클로아는 이제 만으로 18살이 다 돼가는 나이로, 주영과는 동갑이었다.
무척 붙임성있고 어리광스러운 성격인 클로아에게 이제는 일행들 모두 스스럼없이 말을 놓고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정말 밝은 성격의 예쁘고 귀여운 처녀였다.
여검사 재연이 말도 안되는 탐욕과 집착을 품을 만큼.....


그리고 재연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느 넓은 돌위에 신발을 벗은 채 앉아 있었다.
발치에는 금발의 엘루시족 소니야가 무릎을 꿇고 앉아, 두손으로 재연의 맨발인 오른발을 받쳐들고 공손히 혀로 핥고 있었다.
처음 소니야가 말을 안듣고 다시 따라온 걸 봤을 때, 재연은 열받는 표정으로 일행들만 없다면 당장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듯 했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꿨는지 지금은 소니야를 수시로 노예로 부리고 있었다.
사실 노예로 부린다기 보다는..... 학대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좀더 적절한 표현이겠지만.....

게다가, 더욱 황당한 점은.....


"따라와!"

사나운 인상의 검은 눈동자를 은빛테 안경 속에서 가늘게 뜬 재연이 차가운 말투로 명령하며 일어났다.

"예, 주인님!"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 엘루시족 소니야가 순순히 재연의 뒤를 따랐다.
잠시후, 조금 떨어진 풀숲으로 들어온 재연이 검정색의 고급스런 반바지 여행복과 하얀 속옷을 무릎아래로 내리더니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이어, 소니야가 쭈그리고 앉은 재연의 뒷쪽에서 양다리 사이에 머리가 오도록 누운 채, 조심스럽게 재연의 성기를 양손으로 벌려서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재연의 소변구멍에 입을 활짝 벌리고 갖다 대었다.

"지르르....."

"꿀꺽! 꿀꺽!"

재연이 소변을 보는 대로 엘루시족 소니야가 입을 벌린 채 젖이라도 먹는 것처럼 삼키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째인듯, 재연도 소니야도 전혀 거리낌없는 태도였다.

우유처럼 새하얗고 잡티 하나 없는 -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느낌의 - 고운 피부.....
투명해 보일 정도로 맑고 파란 크고 아름다운 눈동자.....
오똑한 코와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붉은 색의 작고 귀여운 입술.....
175 전후의, 여자로서는 상당히 크고 늘씬한 키.....
길고 가는 손가락과 늘씬한 팔, 다리.....
이 곳 위스토아에서, 용모가 빼어난 편인 엘루시족이 노예로 인기가 있다는 말은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소니야의 외모는 그중에서도 - 적어도 엘루시아 마을의 다른 엘루시족들에 비해 - 출중하게 돋보였다.
이 정도로 살아있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엘루시족 노예를 갖고 있는 사람은 위스토아 전체에서도 찾기 어려울 듯 했다.
그리고, 설사 있더라도, 그 노예를 이렇게 엽기적인 용도로 부리는 사람은 - 어쩌면 위스토아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 십중팔구 재연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잠시후 재연의 소변줄기가 멎자, 소니야가 양손으로 벌리고 있던 재연의 성기를 조심스럽게 좀더 벌렸다.
이어 혀를 길게 내밀더니 소변구멍을 중심으로 정성껏 성기를 핥기 시작했다.

"됐어! 이 나라에 온 이후로 휴지가 없어서 귀찮았는데 제법 편하네."

"클로아는 주인님이 소변을 먹게 해주셔서 행복해요!"

엘루시족 소니야가 조각처럼 예쁜 얼굴로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더욱 황당한 점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이렇게, 소니야에게 여전히 자기 자신을 클로아라고 부르게 한다는 점이었다.
요컨데 소니야를 클로아의 대용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주위를 힐끔 쳐다본 재연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그 이름을 말할 때는 다른 년들이 듣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말해!"

"예, 주인님!"

활짝 웃으며 기쁜 듯 웃는 소니야를 쳐다보며 재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수시로 발을 핥고 소변까지 먹게 하는데도 왜 네 년 입에서는 지린 내나 더러운 냄새가 나지 않는거지?"

엘루시족 소니야가 조각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희 엘루시족에게는 먼지나 냄새가 잘 달라붙지 않는답니다, 주인님!"

"치잇! 역시 재수없는 괴물이군!"

그 말에 크고 아름다운 소니야의 새파란 눈동자가 슬픈 빛으로 흐려졌다가 다시 밝아지며 재연을 향해 밝게 활짝 웃어 보였다.
175 가까운 큰 키에 늘씬한 소니야쪽이 163 정도인 재연에 비해 훨씬 키가 컸다.
하지만, 지금의 소니야는 마치, 주인의 마음에 들고 싶어 열심히 꼬리를 치고 있는 조그만 강아지처럼 보였다.


"자! 다시 출발할까요?"

여검사 재연과 엘루시족 소니야가 풀숲에서 나오는 걸 본 미영이 머리가 아픈 기분을 느끼며 소리쳤다.
이 나라에 오면서 귀가 밝아진 미영은 - 주영 정도는 아니었지만 - 풀숲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미영의 외침에 일행들 대부분이 지친 표정으로 다시 마차에 올랐다.

엘루시아 마을을 구하는 문제로 잠깐 멈춰섰던 이래, 숲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따라 일주일이 넘게 여행이 계속되고 있었다.
중간에 두어 군데 아주 작은 마을들이 있어서 하룻밤씩 쉬어 갈 수 있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노숙을 피할 수 없었다.
하루종일 계속되는 흔들리는 마차 여행에, 특히, 체력이 강하지 못한 일행들 - "아가씨" 지선, "젖소" 은주 - 은 몹시 피곤해했다.

유감스럽게도 - 이런 일을 유감이라고 해도 될지 미영은 종종 생각했지만 - 여검사 재연은 전혀 끄덕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역시 최근 들어 체력이 부쩍 강해진게 틀림없었다.
엘루시족 소니야도 마차 여행은 처음일텐데도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는 듯 했고, 어린 클로아도 의외로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헤에에! 바깥 좀 봐, 언니들!"

"아아아!"

주영의 외침에 창밖을 내다보고 모두 감탄을 터뜨렸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던 울창한 숲이 어느새 끝나 있었다.
그리고, 이름모를 긴 잡초들이 거의 허리 높이까지 무성하게 우거진 드넓은 초원위의 넓은 길을 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클로아! 저기 보이는 표지판에 이 나라 글자로 뭐라고 써 있지?"

"표지판이요? 아아! 랑구르시아 대로라고 써있어요!"

"흐음..... 랑구르시아?"

주영의 기운 찬 목소리에 이어, 미영이 웃으며 일행들을 격려했다.

"기운들 내요! 랑구르시아시에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클로아가 잘 됐다는 듯 미소지으며 "젖소" 은주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긴 금발머리의 클로아를 꼬옥 안아주며 "젖소"가 말했다.

"랑구르시아시에 가면 제대로 된 여관에서 푸욱 쉴 수 있을거야! 힘 내, 클로아!"

하지만, 사실 클로아보다는 오히려 "젖소"쪽이 훨씬 지쳐 보였다.

"더운 물 목욕이 하고 싶어요, 엄마!"

웃으며 볼을 붉히는 클로아를 여검사 재연이 힐끔 곁눈질로 훔쳐 보았다.
너무 예뻐서 깨물고 싶어 죽겠다는 듯한 탐욕스런 표정이었다.
이어, 아쉬운 표정으로 재연이 나란히 앉아 있던 엘루시족 소니야에게 눈짓하자, 소니야가 마차 뒤쪽의 짐칸에서 얇은 담요를 꺼냈다.
그리고, 조용히 자기 자신과 재연위에 넓게 담요를 덮었다.
잠시후 소니야의 아름다운 양볼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아마도 또다시 "꿩대신 닭" 으로 재연의 손이 담요속에서 소니야의 성기를 애무 - 내지는 추행 -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재연의 눈이 안경 속에서 탐욕스런 시선으로 클로아를 힐끔힐끔 계속 훔쳐보고 있었다.

머리가 아픈 기분을 느끼며 미영은 생각했다.

"틀림없이 "클로아를 만지는 기분으로....." 라고 생각하고 있겠군.
하지만, 엘루시족인 소니야는 원한다면 아마도 성적인 느낌도 참을 수 있을텐데.....
주인이 느끼는 쪽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참지 않고 있나 보구나!
가엾은 소니야!"


"워! 워워워!"

주영이 천천히 마차를 멈춰 세웠다.

"벌써 또 쉬어 가는거니, 주영아?"

마차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미영이 묻자, 주영이 크고 아름다운 루비같은 붉은 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대답했다.

"저 앞에 지평선 너머에 엄청난 수의 뭔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언니는 안 들려?"

미영의 금빛 눈동자가 붉은 색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미영도 어렴풋이 귀에 들리는,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많은 수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응! 이제야 알겠어!
인간? 아니 약간 다른 느낌의 존재들, 그리고 짐승들이야.
엄청나게 많아! 최소한 몇 천..... 짐승들까지 합치면 일 만도 넘는 것 같아!"

"괴물 군대니?"

걱정스런 목소리로 묻는 "젖소" 은주에게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요, 은주 언니!"

"흐음..... 어떻게 하지? 저 너머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까?"

주영의 말에 여검사 재연이 - 여전히 담요 속에서 소니야의 성기를 주무르던 채로 뻔뻔하게도 - 입을 열었다.

"왜 우리가 기다려야 하죠?
우릴 이길 자는 없어요!
그냥 가죠!"

거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에 주영은 솔깃해하는 듯 했으나, 신중한 성격의 미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죠?"

"기다릴까?"

항상 미영의 편인 수진이 이번에도 미영의 말에 동의했다.

"헤헤! 나는 돌파!"

주영이 아직 어려 보이는 얼굴에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뜻밖에도 언니 대신 재연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도 힘들어서 빨리 랑구르시아시로 가고 싶어요."

클로아가 귀엽게 웃으며 역시 뜻밖에도 강행돌파쪽에 찬성하자 "젖소" 은주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위험할 것 같은데..... 그래도 클로아가 좋다면....."

"저야 물론....."

"아가씨" 지선이 미안한 표정으로 미영을 쳐다보고 웃으며 주영이 있는 마부석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가씨는 여전히 그로피아 마을에서 구한 고급스런 느낌의 긴 녹색 여신관복을 입고 있었다.
아름다운 용모와 잘 어울리는 우아한 모습이었지만, 귀니아 여신의 신관 서품식때 보통 옷의 10배가 넘는 바가지를 쓰고 샀던 옷이었다.

"소니야씨는요?"

"저는 항상 주인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그리하여, 뜻밖에도 2 대 5, 소니야까지 포함하면 2 대 6으로, 강행돌파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예상못한 결과에 미영은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와아! 정말 많다!"

지평선끝에서 조그맣게 구물거리던 긴 먼지 구름들이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점점 더 커졌다.
이어 그 모습은, 랑구르시아 대로와 가로 질러 행군중인 수없이 많은 검은 멧돼지들의 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양옆에서 멧돼지들을 몰고 있는 자들은.....

"에에에? 정말 도깨비들이다!"

인간과 비슷한, 아니 오히려 대체로 인간들보다 큰 키에.....
하나같이 건장해 보이는 근육질의 덩치와 녹색의 피부.....
입밖까지 튀어나와 사납게 보이는 위 또는 아래 어금니들.....
말그대로 녹색 도깨비들의 군대였다.
심지어는 몇몇은 위, 아래 어금니 네 개가 모두 입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경우도 더러더러 보였다.

"녹색 피부에 무기와 갑옷을 사용하고 부대를 구성하는 괴물들..... 오르크 부대인가 보네." (6부 내용 참조)

"젖소" 은주가 그로피아 마을에서 들은 말을 기억하고 입을 열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크라면 닭머리 괴물을 타고 날아 다녔다는 그 콧수염 영웅 아저씨도 결국 패했다는 무서운 괴물들이잖아!
(사실 사자의 몸을 한 날개달린 괴물 그로프의 머리는 닭이 아니라 독수리와 유사했다)
숫자도 너무 많은데 돌아갈까?"

백여 미터쯤 앞에서 마차를 멈춰 세운 주영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엄청난 수의 오르크 부대를 보고 뒤늦게 켕기는 기분이 든 듯 했다.
그 모습에 거만한 웃음을 지은 여검사 재연이 마차 문을 열고 바닥에 뛰어 내렸다.
그리고 오르크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야아아아! 괴물들아아아아!!"

재연이 양손 손바닥을 펴서 입가에 확성기처럼 모으더니, 이 나라 말로 크게 소리쳤다.

"에에에! 어쩌려고 저래?
놔두고 마차를 돌려서 도망갈까, 언니?"

주영이 놀란 목소리로 미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엘루시족 소니야가 다급하게 마차에서 뛰어 내리더니, 재연을 향해 달려가 합류했다.
인간들이 정말로 자기 주인을 버리고 마차로 도망가 버릴까봐 걱정이 된 듯 했다.

"아니! 도망갈 필요는 없어!"

뭘 하려는 건지 짐작한 미영이 입을 열었다.

역시나..... 고함 소리를 듣고 재연이 있는 쪽을 쳐다 본 오르크들 및 심지어 검은 멧돼지들까지 갑자기 움직임이 멈췄다.
틀림없이 재연이 안경속에서 눈동자를 새빨갛게 빛내면서 최면술을 쓰고 있는 듯 했다.

"길을 비켜라!"

그 말에 재연의 쪽을 쳐다본 수십 명의 오르크들 및 수십 마리의 멧돼지들이 길을 열어 주려고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재연이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뒤에서 계속 밀어붙이는 멧돼지들이 너무 많았다.

"꽤애애애액! 꽤애액! 꽤애애액! 꽤액!"

길이 열리기는 커녕, 뒤에서 미는 멧돼지들과 멈춰선 멧돼지들이 부딪치며 서로 뒤엉켜 버리기 시작했다.
특히 멧돼지떼들을 질서있게 몰던 근처의 오르크들이 몽땅 최면술에 걸리는 바람에 수습될 기미도 보이질 않았다.
잠시후, 오르크들이 멍청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가운데, 주위는 완전히 엉망진창의 멧돼지판이 되어 버렸다.


"우우우우우우우우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렁찬 함성이 들려온 것은 그 때였다.
황소처럼 큰 멧돼지를 탄 덩치 큰 오르크 한 명이 묵직해 보이는, 자루가 긴 쇠도끼를 높이 들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괴물처럼 큰 멧돼지는 훨씬 작은 다른 검정색의 멧돼지들에 비해 털 색깔도 갈색으로 달랐다.
주인도 어깨에 금속판을 댄 가죽 갑옷을 입어 다른 오르크들과는 구별되는 모습이었다.
오른손에 높이 들고 있는 쇠도끼가 새하얀 빛을 내면서 웅웅 울리고 있었는데, 마치 확성기처럼 함성소리를 들판 전체에 널리 퍼지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함성소리를 듣자 최면술에 걸려 멍청하게 서 있던 오르크들이 제 정신을 차린 듯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재연을 향해 긴 나무자루의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재연도 다시 최면술을 쓰려고 하고 있는 듯 해보였으나, 어째선지 한번 최면술이 풀린 오르크들에게는 다시 걸리지 않는 듯 했다.
당장 눈앞에서 뛰어오고 있는 오르크들만 오십여 명에 달했다.
거기에 검은 멧돼지들의 대열을 헤치고, 여기저기서 상황을 알아차린 새로운 오르크들이 계속 뛰어나오고 있었다.

"언니! 이제라도 마차를 돌려서 도망갈까?"

주영이 다급한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미영도 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차를 돌려, 주영아!
재연씨! 소니야! 마차에 다시 타요! 어서요!"

미영의 소리를 들은 재연이 얼핏 마차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사나운 인상의 안경쓴 얼굴에는 당황함 대신 냉소적인 표정이 감돌았다.
이어, 달려오는 오르크들과 한 판 붙으려는 듯 다시 그쪽으로 몸을 돌려 버렸다.
정말 놀랄만한 - 솔직히, 미영으로서는 미친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 자신감과 오만함이었다.
엘루시족 소니야도 침착한 표정으로 등에 메고 나간 활에 하얀 깃의 화살을 메겼다.

"멈춰라!"

갈색의 대형 멧돼지에 올라탄 오르크의 중후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역시 그가 지휘관이었던 듯, 열받은 표정으로 달려오던 오르크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 사이에도 손에, 손에 도끼를 든 오르크들은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이제 눈앞에 서 있는 오르크들만 얼핏 보기에도 수백 명에 달했다.

"뭘 원하는 거요, 인간이여?"

대형 멧돼지위에서 지휘관 오르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뾰족한 아래 어금니 두 개가 위협적으로 입밖까지 자라나 다소 험악해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검은 색의 눈동자는 침착하고 지적으로 보였다.

"우리가 먼저 지나가길 원한다!"

재연이 차가운 음성으로 거만하게 입을 열자, 그 말을 들은 오르크들이 일제히 발끈하며 얼굴에 인상을 쓰는 것이 미영의 눈에 보였다.
검은 멧돼지떼를 진정시키느라 여념이 없는 오르크들 외에도.....
여차하면 싸울 생각으로 모여든 듯 한 오르크들만 이제 최소한 천 명 이상.....
게다가 그 숫자는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모두 녹색 피부의 굵은 팔다리를 드러낸 채, 튼튼해 보이는 갈색의 가죽 갑옷과 바이킹들처럼 뿔이 두 개씩 달린 튼튼해 보이는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긴 나무자루의 쇠도끼들을 들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묵직해 보였다.
이어 검은 멧돼지들이 꽥꽥거리며 들썩거리는가 싶더니, 갈색의 황소만한 대형 멧돼지들에 올라탄 오르크들이 검은 멧돼지떼를 헤치고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적어도 수백 명은 될 듯 해 보였다.

"저 괴물처럼 큰 갈색 멧돼지들은 무척 빨라 보이는데..... 이거 이제는 마차로 도망치기도 힘들겠어!"

머리가 아픈 기분을 느끼며 미영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모두 싸울 준비를 해요!"


"아직도 먼저 지나가길 원하오?"

지휘관 오르크가 다시 중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약간 놀리는 듯한 억양인 것이, 먼저 느낀 대로 상당히 지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미영 일행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 생긴 것과는 다르게 - 그렇게 호전적이지는 않은 듯 했다.

"물론! 나보다 강한 자는 없어!"

여전히 자신감넘치는 재연의 말에 지휘관 오르크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 안장의 등자에서 발을 빼더니, 멧돼지 위에서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긴 나무자루의 도끼를 오른쪽 옆으로 내밀자, 옆에 있던 오르크 한 명이 두 손으로 공손히 도끼를 받아 들었다.
오르크들은 모두 근육질이긴 했지만, 지휘관 오르크는 이 미터 가까운 장신에 놀랄만큼 단단해 보이는 두터운 근육으로 팔다리가 온통 덮여 있었다.
말그대로 무시무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지휘관 오르크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양손을 양옆으로 넓게 벌리고 섰다.
재연과 마찬가지로 맨 손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 했다.
오르크 지휘관의 중후한 목소리가 조금 떨어진 미영 일행에게도 들려왔다.

"증명해 보시오, 인간이여!"

"재미있군!"

재연이 안경 속에서 새빨간 눈동자를 번쩍이며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소리도 없이 그 모습이 사라졌다.

"퍼어어억!"

다음 순간 바닥에 서 있는 오르크 지휘관 바로 앞에 재연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뭔가 세차게 후려갈기는 듯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흐음..... 저 오르크는 이제 죽었다!"

주영이 중얼거리는 가운데, 미영도, 재연이 오르크 지휘관을 너무 세게 치지는 않았기를 속으로 빌었다.
오르크 지휘관은 큰 몸을 어느새 앞쪽으로 - 그러니까 재연쪽으로 - 바짝 수그리고 있었다.
이제 주위에 모여든 오르크들의 숫자는 무려 이천 명도 넘을 듯 해 보였다.


"끄으으으윽!"

신음소리를 들은 미영과 주영 자매가 동시에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닮은 꼴인 크고 아름다운 - 금빛과 붉은 빛의 - 눈동자들이 놀라움으로 똑같이 동그랗게 커졌다.
잠시후, 두 자매보다 상황을 한발 늦게 알아차린 다른 일행들도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혀 뜻밖에도, 뒷모습을 보이고 있던 여검사 재연이 배를 움켜쥐며 오른쪽 옆으로 픽 쓰러져 버렸던 것이다.

재연이 바닥에 쓰러지자, 몸을 앞쪽으로 바짝 숙이고 있던 지휘관 오르크가 손등을 밑으로 한 오른손 주먹을 불끈 올려 쳐들고 있는 모습이, 그제야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어퍼컷같은 자세였다.
오른손 주먹이 조금전 도끼가 그랬던 것처럼, 새하얀 빛으로 - 낮인데도 뚜렷이 보일 만큼 -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였소, 인간이여!
파워도 상당한 듯 했고.....
하지만..... 빠른 속도가 전투에서 항상 유리한 것만은 아니오!"

허리를 다시 편 지휘관 오르크가 중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배를 움켜잡은 채 바닥에 엎드려 "끄으윽!" 소리를 내고 있는 재연은 소리를 알아들을 정신조차 없어 보였다.

"주인님!"

엘루시족 소니야가 다급한 목소리로 재연을 부르며, 팽팽하게 당긴 활을 똑바로 지휘관 오르크에게 겨눴다.
그 모습을 본 미영이 황급히 소리쳤다.

"멈춰요, 소니야씨!"

그리고 마차에서 내려서며 검집에 꽂힌 채로 긴 칼을 허리띠에서 풀렀다.

"이번에는 저와 한번 겨뤄 볼까요!
저는 칼을 쓴 답니다!"

동시에 미영의 크고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가 붉은 색으로 변했다.
이채롭다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본 지휘관 오르크가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오르크 한 명이 이번에는 굵은 나무막대 한 개를 공손하게 바쳤다.

"소니야씨! 재연씨를 마차로 데려가요!"

"예!"

활을 다시 등에 멘 엘루시족 소니야가 - 겁도 없이 - 지휘관 오르크 바로 옆에 쓰러져 있는 여검사 재연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기절해버린 재연을 가볍게 안아들고, 마차로 다시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검집에 들어 있는 채인 긴 칼을 미영은 높이 쳐들었다.
지휘관 오르크를 향해 똑바로, 신중하게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저는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 미리어 시엔(신미영)이라고 합니다.
일행의 무례함에는 사과드립니다."

지휘관 오르크가 녹색의 험악해 보이는 얼굴에 너그러운 표정의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부라우니 보어(갈색 멧돼지)족의 족장 쟈르칼이라고 하오.
미안해할 것은 없소, 인간이여!
강한 자들에게 오만은 고질병이지.
물론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강자라는 걸 먼저 입증해야 하겠지만....."

"하아아아아아아앗!"

요란한 기합소리와 함께 오르크 족장 쟈르칼을 향해 달려가는가 싶던 미영이 공중으로 높이 뛰어 올랐다.
마치 새라도 되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높이였다.
샹드로 마을에서 밤비르 르몽드를 해치울 때 사용했던 기술이었다. (3부 내용 참조)
화려하고 위력이 큰 대신, 동작이 커서 헛점도 많았지만..... 미영이 생각하는 것은.....

공중에서,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높이 뛰어오른 미영의 모습이 순간 겹쳐졌다.
미영의 모습을 눈으로 쫓던 오르크 쟈르칼이 햇빛에 눈을 약간 찌푸렸다.
다음 순간, 미영이 엄지 손가락으로 칼집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칼집이 위로 올라가 칼날이 반 정도 드러나면서, 대낮인데도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새파란 빛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미영의 모습을 눈으로 쫓던 오르크들이 눈부신 강한 빛에 저도 모르게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너무나 강한 빛에, 고개를 돌리거나 손으로 급하게 눈을 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바닥에 떨어져내리며 미영이 큰 동작으로 - 다시 칼집이 내려오며 칼날을 덮은 - 긴 칼로 오르크 족장 쟈르칼을 세차게 내리쳤다.

"뚜욱!"

쟈르칼이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하며, 들고 있던 굵은 막대로 미영의 검집 채인 칼을 막아냈다.
제대로 미영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공중에서 내려오는 기세가 더해진, 거세게 내리치는 미영의 힘을 견디지 못한 막대는 손잡이 근처에서 뚝 부러져 버렸다.

어깨까지 닿는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미영이 가벼운 동작으로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맨손인 상대를 계속 공격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허허허! 허허허허허허허허!"

놀랍게도, 오르크 족장 쟈르칼은 손잡이만 남은 나무막대를 들여다보며 묵직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이어 중후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놀랍군, 인간족의 전사여!
그대는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전사요!
그러나..... 길을 떠나기 전에....."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미영의 표정이 순간 긴장했다.
그러나, 쟈르칼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여전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르크들의 보어(멧돼지) 통구이를 먹어본 적 있소, 인간이여?
자랑같지만 우리 부라우니(갈색) 보어족의 보어들은 세상에서 가장 육즙이 많고 맛있다오!
어떻소? 좋은 대결을 기념해서 우리의 점심 대접을 받고 떠나는 것은?"

미영이 마차쪽을 돌아보자, 귀가 좋은 주영이 군침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일행들에게 오르크 족장 쟈르크의 말을 설명해 주었다.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클로아가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주영과 마찬가지로, 역시 먹는 것에 약한 어린 클로아였다.

항상 주영과 의견이 같은 "아가씨" 지선, 마찬가지로 클로아와 항상 의견이 같은 "젖소" 은주도 물론 찬성이었다.
수진도 미영의 싫지는 않은 듯한 표정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검사 재연은 아직까지도 말도 제대로 못하는 몸상태로 인한 기권.....
고통스러운 듯한 재연의 배를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주느라 여념이 없는 엘루시족 소니야도 자동으로 따라서 기권이었다.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쟈르칼님!"

칼집채인 긴 칼을 다시 허리띠에 줄로 가볍게 묶으며 미영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마주 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점심을 먹고 간다!"

"우오오오오오오!"

오르크들이 기쁜듯한 함성을 질렀다!


10,000 마리 가까이 되어 보이는 검은 멧돼지들을 둥글게 한 자리에 모으자 드넓게 펼쳐진 초원이 가득 차는 듯 했다.
그보다 훨씬 덩치가 큰 갈색 멧돼지들을 탄 500여 명의 오르크 기병들이 검은 멧돼지들이 벗어나지 않도록 주위를 빙빙 돌며 감시했다.
검은 멧돼지들은 엄청난 숫자에도 불구하고 마치 순한 양떼처럼 순순히 모여 서서 자기들끼리 한가롭게 초원 위를 뒹굴고 있었다.
초원에는 사람의 허리 높이까지 이름모를 잡풀들이 자라나 있어 도망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상황이었으나, 보기보다 길이 무척 잘 들어 있는 듯 했다.

어쩐지 검은 멧돼지들은 같은 멧돼지라도 덩치가 훨씬 큰 갈색 멧돼지들을 몹시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갈색 멧돼지들은 황소처럼 커서 보면 볼수록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그 외에, 걸어다니는 오르크 보병들이 약 2,000여 명.....
갑옷을 입지 않은 긴 검은 머리의 암컷들과 어린 것들로 보이는 오르크들이 합쳐서 약 1,000여 명.....
쟈크칼이 이끄는 오르크들은 총 3,500여 명에, 멧돼지 10,000여 마리 정도의 꽤 큰 무리였다.

멧돼지 통바베큐를 굽는 큰 모닥불들이 여기 저기 - 적어도 백여 군데 이상 - 피워졌다.
오르크 기병들을 제외한 오르크들 모두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번갈아 멧돼지를 빙빙 돌려서 구으며 유쾌하게 웃고 떠들고들 있었다.


오르크들의 검은 멧돼지 통바베큐는 기대했던 것 보다도 훨씬 훌륭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빼낸 멧돼지를 머리까지 통째로 긴 쇠막대기에 꿰었다.
바닥에 박은 "Y" 자 모양의 두 개의 튼튼한 쇠말뚝위에 걸쳐서 꿰어진 멧돼지를 올려놓은 후.....
쇠막대기 양쪽에 큼직한 나무 손잡이를 끼운 두 명의 오르크들이 멧돼지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멧돼지마다 오르크가 한 명씩 붙어 매콤한 향이 나는 나뭇잎 가루같은 것을 연신 골고루 뿌려주고 있었다.
먹음직스런 고소한 고기굽는 냄새와 함께 투명한 기름이 뚝뚝 불위에 떨어졌다.


"꿀꺽! 꿀꺽!"

연신 군침을 삼키는 주영을 보고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귀엽다는 듯 녹색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보어(멧돼지) 고기는 잘 익혀서 먹어야 맛있다오.
시간이 조금 걸릴거요."

"이렇게 큰 무리를 이끌고 어디로 가는 중이에요, 오르크 아저씨는?"

쟈르칼의 말에 조금 창피한 표정이 된 주영이 루비처럼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묻자,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웃으며 대답했다.

"무리와 의견이 좀 안 맞는 점이 있어서, 떠나서 정착하는 중이라오."

웃고는 있었지만 고개를 약간 옆으로 흔드는 모습이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는 않은 듯 했다.

"여자가 얼마 안 돼 보이네요?"

신기한 듯 오르크 무리를 둘러보던 "젖소" 은주의 말에 가까이 있던 오르크들 무리 여기저기서 "킥! 킥!" 웃음소리가 새나왔다.

"쓰으윽!"

쟈르칼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유난히 덩치가 큰 편인 오르크 한 명이 투구를 벗었다.
바이킹처럼 안쪽으로 휘어진 두 개의 긴 뿔이 달린 투구였다.
그러자, 포니테일(말꼬리 모양)로 한 가닥으로 묶은 긴 검은 머리채가 허리 가까이까지 늘어졌다.
투구속에 말려 있었던 듯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지선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눈부시게 빛나는 은발의 머리카락" 이나.....
클로아의 "허리 가까이까지 늘어뜨린 긴 금발".....
또는 엘루시족 소니야의 "허벅지까지 닿을 정도로 내려오는 치렁치렁하고 눈부신 금발의 머리카락" 등이 자아내는.....
아름답고 섹시한 - 지선의 경우 햇빛을 받아 후광처럼 빛날 때는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듣는 오르크 여자로서는 기분나쁠 표현이겠지만, 단지 머리채 길이가 길 뿐이었다.
투구를 벗기 전까지는 여자인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던.....
약간 거친 느낌의 녹색 피부와.....
씩씩하지만 약간 야만적인 느낌의 큰 코와 큰 입, 입 사이로 입밖까지 튀어 나온 아래 어금니.....
어깨가 떡 벌어진 대단히 큰 편인 덩치 등.....
매우 우락부락한 외모를 갖고 있는 데다가.....
머리카락 자체도 한 가닥, 한 가닥의 굵기가 인간에 비해 매우 굵어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셀 수 있을 듯한 정도였다.
요컨데, 마치 검정색 대걸레용 걸레를 머리에 얹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젖소"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일반 병사들중에도 여자들이 있군요. 미안해요!"

연녹색 눈동자의 눈매가 약간 옆으로 찢어지고 콧대가 높아 사나와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소심한 면이 있는 "젖소"였다.

"아니요. 종족이 다르니 이해해요.
저는 브라우니 보어족의 메르타라고 해요."

흉악하고 포악한 인상의 덩치 큰 녹색 도깨비가 - 그러니까, 여자 오르크 메르타가 - 대답했다.
놀랄만큼 매끄럽고 부드러운, 인간의 여자로서도 매우 곱고 부드러운 편인 음성이었다.
그러나, 근육이 온통 불거진 녹색의 팔, 다리와 육중해보이는 덩치와는 왠지 언밸런스한 느낌이었다.

"당신네 인간족들과는 달라서, 우리 오르키스(여자 오르크)들은 오르크들에 뒤지지 않는 전사들이어요.
저들은(어린 오르크들과 함께 갑옷을 입고 있지 않은 오르키스들을 가리켰다) 오르킹(어린 오르크)들때문에 비무장 상태일 뿐이죠."

"그렇네요."

"젖소" 은주가 멋적은 웃음으로 웃으며 분위기를 얼버무리려 했다.

그러고보니, 몸통을 보호하는 갈색의 두꺼운 가죽갑옷을 입고 있어 거의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 자세히 보면 - 오르키스 메르타의 가슴부분은 다소 불룩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신도 전사인가요?"

오르키스 메르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저는 정령사이자, 매기아러(마법사)에요."

그 말에 주위에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던 오르크들까지 갑자기 조용해졌다.
메르타도 잠시 심각한 표정이 되더니, 조심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령사이면 혹시 사키아와 관련된 건가요?"

그 말에 "젖소" 은주가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다룰 줄 아는 건 오직 바람의 정령 실피와 실피안뿐이에요.
사키아가 뭐죠?"

"젖소"의 대답에, 주위의 잠시 긴장하는 듯 했던 분위기가 다시 풀어지며 시끄럽게 돌아왔다.
메르타 역시 표정이 풀어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키아는 살육과 광기의 중급 정령이죠.
실은 우리 부족이 무리를 떠나게 된 것과도 관련이 있어서요."

역시 그 종류의 정령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는 미영 일행도 깜짝 놀라며 메르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5부 내용 참조)
하지만, 오르크 족장 쟈르칼은 오르크 종족 내부의 문제를 다른 종족에 말하고 싶지는 않은 듯 다른 얘기를 하며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종족 내부의 사소한 문제였소.
그보다..... 인간족의 머리카락 색이 꽤 다양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대들 인간 일행은 정말 색색의 다양한 머리카락을 갖고 있군!"

그 말에, 머리를 가볍게 옆으로 저으며 미영이 대답했다.

"사실..... 저희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랑구르시아시로 급하게 가던 중이었어요."

원래는 전부 검은 머리였었는데, 이 나라에 오면서 눈동자 색과 함께 갑자기 색색으로 바뀌었다고 얘기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 했다.
사실 정확하게는..... 이 나라에 오기전의 미영의 머리는 염색해서 살짝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 말에 "과연....." 하는 것처럼 쟈르칼과 주위에 몰려 앉은 다른 오르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검사 재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른 여자들처럼 바닥에 편하게 앉은 채로, 양팔로 다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내가 정면에서 공격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그 말도 안되는 주먹의 위력은 어떻게 된거야?"

이제는 몸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듯 했다.
여전히 거만한 목소리와 말투에, 주위의 다른 오르크들은 순간 발끈하는 듯 해 보였다.
그러나, 오르크 족장 쟈르칼은 예사로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소.
분위기로 봐서 틀림없이 정면에서 공격해 올거라고, 짐작하고 움직인 것 뿐이라오.
만약, 옆이나 뒷쪽에서 공격해왔다면 꼼짝없이 당했을거요.
주먹의 위력은 크라프를 사용했기 때문이오."

"흐음..... 크라프가 뭐에요?"

주영이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끼어들자, 쟈르칼이 웃으면서 다시 대답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갖고 있는 힘을 말하오.
그 힘을 집중함으로써, 때로는 보통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할 수도 있다오.
그대들 인간족들은 아마 마나라고 부르는 것 같소만....."

"힘이나 에너지라는 뜻인가 보군.
엘루시족은 도미니오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마법과 관련해서는 부르는 이름들이 다양한가 봐."

고개를 끄덕이며 미영은 생각했다.
어느새, 멧돼지 통 바베큐가 다 익었는지 먹음직스런 냄새를 풍기며 고기가 노릇노릇한 색으로 변했다.

쟈르칼이 타던, 괴물처럼 큰 갈색 멧돼지가 가까이 서서 냄새를 맡듯 들창코를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고 "젖소" 은주가 약간 걱정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큰 보어(멧돼지)가 같은 보어(멧돼지)를 잡아 먹는다고 기분 나쁜 건 아닐까?"

그 말에 주영이 루비같은 붉은 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아니! "맛있어 보이는데, 나도 한 입 줬으면....." 생각하고 있어!"

그 말에 오르크 족장 쟈르칼의 검은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듯 빛을 발했다.

"보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소? 붉은 눈동자의 인간이여!"

주영이 자랑스러운 듯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 할 수 있어요."

주영의 대답에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가볍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도 아직 어려보이는 주영의 허풍이나 재미있는 농담일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가자는 대로 잘 안 가고 고집을 그렇게 자주 부리는지 물어봐 주겠소?
그나마 다른 보어(멧돼지)들과 비교해서는 저 녀석은 말을 잘 듣는 편이지만....."

주영이 웃으면서 짧은 갈색 털의 멧돼지에게 말을 걸었다.
가까이서 보니 왠만한 황소보다도 큰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괴물처럼 큰 멧돼지였다.

"들었어? 오르크 아저씨가 왜 그렇게 말을 잘 안 듣느냐고 하셔!"

마치 장난하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갈색 멧돼지는 주영이 말을 걸자 대답이라도 하듯 주영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어 주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통바는 오르크 아저씨를 큰 형처럼 생각한데요.
그래서 그 정도면 시키는 대로 잘 움직이는 거라고 불평하는 군요."

"통바" 라는 이름이 주영의 입에서 떨어지자 마자, 쟈르칼과 주영의 대화가 들리는 거리에 앉아있던 오르크들 모두가 펄쩍 뛸 듯 놀랐다.
더러는 너무 놀라서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주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미영 일행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영이 이 나라에 온 이래, 생전 처음 몰아보는 말들을 잘 모는 모습을 보여줬고, 말들의 기분을 느낀다는 등의 말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사실 - 같은 일행들도 -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르크 족장 쟈르칼 역시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정말로 보어들과 얘기가 통하는군!
운디르 마스터는 전설속에나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운디르요?"

"젖소" 은주가 궁금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오르키스 메르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설명해 주었다.

"인간이나 오르크처럼 지성을 갖추지 않은 것들을 일컫는 말이에요."


생각에 잠긴 표정이던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다시 주영을 쳐다보며 뭔가 크게 기대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브라우니(갈색) 보어(멧돼지) 부족은 옛날부터 브라우니 보어들과 잘 지내와서 심지어 부족 이름으로도 삼아 왔소.
또, 드물지만 더러더러 길들여서 타고 다니기도 했었다오.

나는 한 때, 길들인 보어(멧돼지)들의 숫자를 크게 늘리면 굉장히 보탬이 될 걸로 기대를 했었소.
한 마리, 한 마리 보어의 위력은 - 특히 돌진할 때의 위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오.

그러나..... 막상 숫자를 늘려서 부대 단위를 만들어보니 보어들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일쑤여서.....
싸움에는 별 도움이 되질 않았다오.
블라키(검정색) 보어(멧돼지)들처럼 잡아먹기도 곤란한 부라우니 보어들은 다시 풀어주고.....
인간들에게서 대신 말을 사오는게 어떨까 고민중이었다오.

해결 방법이 있겠소? 그란드(위대한) 운디르(짐승) 마스터여!"

"위대한" 이라는 표현에 기분이 좋아진 주영이 보석처럼 크고 아름다운 붉은 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기분좋게 웃었다.

"같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에게 싸우는 쪽으로 도움이 될 얘기를 해줘도 될까?
그로피아 마을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인간들과 종종 싸우기도 하는 것 같던데....."

미영은 문득 하고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어느새 주영은 입을 열고 있었다.

"사랑하고 아껴주셔요!"

".....?"

전혀 뜻밖의 말에 오르크 족장 쟈르칼은 물론, 미영 일행과 주위의 오르크들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얘네들은 무척 감수성이 예민한 운디르(짐승)들이에요.
저기 쟤네들보다도 훨씬 더요!"

역시 가까이에 미영 일행의 마차와 함께 서있던 여덟 마리의 잘생긴 밤색 말들을 오른 손으로 가리키며 주영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말들이 일제히 "푸르르르....." 하는 소리를 냈다.
마치 주영의 말에 반응해서 "말도 안돼요!" 라고 항의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드러워 보이는 짙은 갈색 털과 군데군데 흰 털로 덮힌.....
긴 다리와 매끈한 몸통.....
큰 눈을 가진 잘생기고 긴 얼굴.....
얌전하고 똑똑하게 생긴 여덟 마리의 말들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뾰족뾰족한 짧고 거친 갈색 털로 덮힌.....
상대적으로 짧지만 훨씬 굵고 힘세보이는 다리와 굵은 몸통.....
조그만 눈과 들창코를 가진 - 어금니가 길게 입밖으로 튀어나와 더욱 - 사나와 보이는 얼굴.....
어쩐지 둔하고 무식하게 생긴 멧돼지 통바를 보면서.....

미영 일행은 물론 오르크들조차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이리와, 통바!"

주영이 오른손을 까닥해 부르자, 황소처럼 큰 갈색털의 멧돼지 통바가 주춤거리는 동작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엄마!"

"젖소" 은주의 옆에 앉아 있던 금발의 클로아가 "젖소"에게 바짝 달라 붙었다.
괴물처럼 큰 멧돼지의 모습에 겁을 먹은 듯 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멧돼지 통바의 머리를 향해 주영이 오른손을 내밀자, 통바가 앞다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앉아있는 주영의 손이 닿도록 머리를 대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옅은 갈색으로 그을린 건강한 장난꾸러기같은 손으로 부드럽게 통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주영이 입을 열었다.
마치 조그만 귀여운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자주 쓰다듬어 주고.....
포옹도 해 주고..... (말하면서 멧돼지 통바의 거대한 머리를 실제로 꼬옥 품에 안아 주었다.)
그리고 뽀뽀도 해주세요!"

"안돼, 주영아! 더럽게 돼지하고!"

미영이 경악하면서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주영이 멧돼지 통바의 거대한 갈색 머리를 품에 안은 채로, 벌름거리는 들창코 아래, 날카로운 긴 어금니 두 개가 입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통바의 큰 입에 "쪽!" 소리와 함께 입을 맞췄다.
미영 일행들 뿐만 아니라, 오르크들에게도 멧돼지와의 키스는 엽기적인 모습이었는지 모두들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꽤애애액! 꽤애액! 꽤애애액!"

멧돼지 통바가 어리광부리는 듯한 - 최소한 위협하는 것는 아닌 것 같은 - 소리를 질러댔다.
큰 덩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몸을 위아래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건지 표정은 전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강아지였다면 아마도 재롱을 피우는 것으로 보였을 모습이었다.
그러나, 황소만한 갈색 털의 멧돼지가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은 귀엽다기 보다는 엽기적인 모습이었으며..... 심지어 사람에 따라서는 섬뜩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듯 했다.

그러나, 보는 사람들, 그리고 오르크들 모두 주영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비록 심정적으로는 전혀 동감하기 어렵더라도, 갈색 멧돼지들이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말에 대해서도 약간은 수긍이 갔다.


"그렇군. 브라우니(갈색) 보어(멧돼지)들과의 친밀도를 높여야 원하는대로 움직여 줄거라는 말이로군.
하지만..... 당신처럼 그란드(위대한) 운디르(짐승) 마스터가 아닌, 우리 오르크들에게도 그런게 가능하겠소?"

오르크 족장 쟈르칼의 말에 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비처럼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가 확신에 찬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저보다 시간은 좀더 걸리겠지만, 보어를 좋아해주기만 하면 누구라도 가능해요!"

쟈르칼이 녹색 얼굴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고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 나는 브라우니 보어 길들이기는 완전히 실패라고 생각했었다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주영은 자랑스러운 듯 어리고 귀여운 얼굴로 "헤헤!" 웃고 있었지만, 미영은 걱정스런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 오르크들은 저 괴물처럼 큰 갈색 멧돼지들을 어느 정도 길들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사용하고 있진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주영이가 그 방법을 알려줘 버린 것 같아!
이 오르크들은 그로피아 마을에서 들은 것처럼 호전적인 것 같지는 않긴 하지만.....
혹시 어쩌면 방금..... 주영이가 굉장히 큰 일을 저질러 버린 건 아닐까?"


"자! 보어 고기들이 다 익었나 보군!
드십시다!"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웃으며 모두에게 권했다.
방금 뜻밖에 얻은 귀한 지식 덕분에 무척이나 흐뭇한 듯한 표정이었다.

주위의 오르크들중 몇 명이 일어나서 부엌칼처럼 생긴 예리한 칼로 고기들을 잘랐다.
그리고 고깃덩이를 큼직하게 잘라 쟈르칼부터 시작해서, 미영 일행들, 주위의 다른 오르크들 순으로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흐으음..... 맛있다!"

주영의 감탄에 미영 일행 모두 동감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크들이 뿌린 나뭇잎 가루같은 향료 덕분인지 검은 멧돼지 통구이는 훈제 바베큐처럼 그윽한 향이 났다.
고소하면서도 씹을 때마다 풍부한 육즙이 배어나왔다.
돼지고기치고는 지방도 적은지 꽤 쫄깃거리는 씹는 느낌도 좋은 편이었다.
오르크 족장 쟈르칼의 자랑처럼, 정말 이제까지 먹어본 중 가장 맛있는 돼지고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했다.

"많이들 드시오!
귀한 손님인 인간들이여!"

미영 일행이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쟈르칼이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도 먹어 봐!"

"꽤액! 꽤애애액!"

주영이 갖고 있던 고기토막의 반을 손쉽게 검지 손톱으로 잘라 통바에게 던져 주었다.
통바는 큰 입으로 게걸스럽게 고기를 씹으며 흐뭇하게 꽥꽥 거렸다.


그 때였다.

"응?"

갑자기, 미영은 순간, 왠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크고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가 붉은 색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미영이 오르크 족장 쟈르칼을 쳐다보며 물었다.

"쟈르칼님! 후속으로 합류할 부대가 또 있나요?"

그 말에 쟈르칼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되물었다.

"아니오!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는 거요?"

주영 역시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데.....
뭔가 있어, 언니?"

고개를 끄덕이며 루비같은 붉은 색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미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색깔이 변하자 주영의 눈동자와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동쪽 방향(쟈르칼의 오르크 부대들이 향하고 있던 방향)에서 오르크 약 삼천 명!
북쪽(랑구르시아시가 있는 방향)과 남쪽 방향(숲이 있는 방향)에서도 각각 약 삼천 명!
서쪽 방향으로부터는 약 육천 명의 오르크들이 접근중이야.
총 숫자는 약 만오천 명 정도....."

긴장한 표정으로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입을 열었다.

"보지도 않고 그런 걸 느낄 수 있다니 놀라운 능력이오.
아마도 부쳐크의 군대겠군.
우릴 쫓아온건가?"

조금전 주영이 보여준 - 운디르(짐승) 마스터로서의 - 놀라운 능력 덕분인지, 미영의 말도 전적으로 믿는 듯 했다.

부쳐크라면 미영 일행도 한 번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6부 내용 참조)

"부쳐크라면 그로피아 마을을 구한 영웅 월터 반 베리간을 살해했다는 자네요.
쟈르칼님의 동료인가요?"

"젖소" 은주의 질문에 쟈르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부쳐크는 오르크 족장들중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진 대족장이오.
우리 부족도 함께 하자는 회유를 받고 응할 생각으로 찾아갔었지만.....
의견이 맞지 않는 점이 있어서 이렇게 떠나가는 참이라오.
하지만..... 부쳐크도 우리 부족이 떠나는걸 반대하지는 않았었는데....."

오르키스(여자 오르크) 메르타가 허리까지 길게 늘어졌던 머리채를 양손으로 훑어 머리위에 모았다.
이어, 바닥에 벗어 놨던, 두 개의 뿔이 달린 투구를 다시 머리에 덮어쓰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통지도 없이 이렇게 포위한 채 몰래 접근해오고 있다는 걸 보면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투 준비를 명해 주십시오, 쟈르칼님!"

분위기로 봐서 오르키스 메르타가 부총대장 또는 부족장쯤 되는 듯 했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하라!"

무거운 음성으로 쟈르칼의 명령이 떨어졌다.
멧돼지 통바베큐를 굽던 모닥불들을 급하게 끈, 오르크들이 투구를 머리에 쓰고 도끼를 집어들며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쟈르칼이 미영일행을 돌아보고 녹색 얼굴에 미안한 표정을 가득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좋은 뜻으로 접근하는게 아닌 것 같소.
예상외로 일이 이렇게 돼버려서 정말 유감이오.
뭔가 일이 벌어지기 전에 어서 여길 떠나시오, 인간들이여!"

미영이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대답했다.

"이미 늦었어요.
너무 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이미 완전히 포위된 상태입니다."

"그렇게 큰 병력이 포위하고 있다면 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

"젖소" 은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거의 허리 높이까지 긴 잡풀들로 덮여 있는 사방의 초원에서 저 멀리, 뿔달린 투구를 쓴 녹색 피부의 오르크들이 불쑥 불쑥 일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직 이삼백여 미터 정도나 떨어진 거리였지만 미영의 말처럼 적어도 만 명은 훨씬 넘어보였다.
엄청난 수의 오르크들이 사방에서 일제히 일어나자, 거의 지평선 끝까지 온통 오르크들로 뒤덮이는 듯 했다.

"흐음..... 초원의 우거진 풀속을 기어서 접근했구나!
그래서 행군해오는 소리가 들리질 않은 거였어!"

주영이 감탄한 소리를 내는 가운데, 미영은 전율감으로 몸을 떨었다.
눈에 띄지 않게 이렇게 가까이까지 기어서 접근해 와 포위하려면.....
허리 높이까지 잡풀들이 길게 우거진 초원을 최소한 몇 키로나 기어왔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한 두명도 아니고, 만오천 명에 달하는 대부대가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기어서 몇 키로나 이동할 수 있다니....."

그로피아 마을에서 오르크는 전투종족이라는 얘기를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오르크라는 종족의 강인함과 체력, 끈기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아마도, 쟈르칼의 부족 오르크들의 움직임을 보고, 더 이상 숨어서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 했다.
이제는 모두 일어선 오르크들의 대부대가 사면을 완벽하게 넓게 포위한 대형으로 사방에서 접근해 왔다.
쟈르칼의 부족과 멧돼지떼들의 사방 불과 오십여 미터 거리까지 접근해 온 오르크들의 대부대가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쟈르칼의 브라우니 보어족 오르크들과 마찬가지로 몸통을 덮고 팔다리는 드러낸 가죽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긴 나무자루의 묵직해보이는 쇠도끼를 들고, 머리에는 안쪽으로 휘어진 뿔이 두 개씩 달린 투구를 쓰고 있었다.
다만, 갑옷의 색깔은 쟈르칼의 부족과 같은 갈색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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