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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9:46 655회 0건
세상은 혼란스러워졌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수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마왕이 부활한다","마계의 문이 열렸다"라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들은 믿을 수 없지만 사람들의 불안함을 보여주었다.

비오릭 산맥의 오우거처럼 결정을 이마에 박은 몬스터들은 곳곳에서 발견되었지만 그들을 조정하는 인간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발견되는 몬스터들은 인간들에게 결정이 이마에 박힌 것이 아니라 세상에 늘어난 마기에 영향을 받아 이마에 결정이 저절로 자라난 것으로 마법사들은 추정하였다.
그런 이마에 결정이 있는 변종들은 같은 것들에 비해서 훨씬 강했다. 한 명의 용병이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들도 변종은 세 명 이상 용병이 상대를 해야만 하였다.
그나마 다행은 발견되는 변종 몬스터들은 하급 몬스터라는 것이었다.

그레이는 바빠졌다. 변종 몬스터들도 있었지만 마수의 수 자체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안으로 침입하는 하는 마수나 마을 근처에 터를 잡은 몬스터들은 정규군이나 경비대가 처리를 하였지만 인간을 습격하고 다시 숲으로 돌아가 숨어버리는 몬스터들이 문제이었다.
이런 몬스터들중에 규모가 있는 것은 정규군이 출동하여 서식지를 토벌하였지만 몇 마리 되지 않는 소규모일 경우에는 마수사냥꾼이나 용병들에게 의뢰로 주어졌다.

그레이는 영주관에서 나왔다.
조금 떨어진 산에 집을 구해서 예린과 함께 마수 사냥과 수련을 하며 지냈다. 이제는 상당히 회복한 아이리에게 부탁해서 예린을 위한 가짜 통행증도 만들었다.
그레이의 경우 레오나드와 안면이 있어서 마수 퇴치 의뢰를 직접 받았기에 의뢰를 받거나 보상을 받으려고 영주관에 자주 들렀다.
물론 영주관에 들릴 때마다 유리안느에게도 들려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만 그 인사는 다른 이가 다 잠든 밤에 이루어졌다.


"예린 준비해."

"응"

예린의 손에서 소리도 없이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손톱이 솟아났다.
다른 묘인족에 비해서는 조금 짧았지만 강인함은 그에 못지않았다.

원래라면 예린에게 전투용 손톱이 돋아날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밤이면 예린을 쾌락에 울먹이게 하는 그레이의 영향인지 벌써 성인의 징조가 나타났다.
전투용 손톱이 돋아났기에 단검술보다는 그레이에게 남겨졌던 격투술을 익혔다. 허리는 더욱 얇아지면서도 강인해졌다. 더불어 성인 묘인족에게만 찾아오는 발정기가 시작되었다.
특히 한 달 전에는 예린의 발정기가 시작되는 바람에 마수 퇴치 의뢰는 모두 미루고 일주일 내내 산속의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레이와 예린은 고블린이 사는 동굴로 들어갔다.
횃불은 켜지 않았다. 원래 묘인족은 어둠 속에도 어려움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레이 역시 유리안느와 예린의 정기를 취하면서 감각이 예민해져 어둠에 크게 제약받지 않았다.


케륵 케륵-

커다란 몸집에 이마에 결정을 박은 고블린 하나, 그보다 작은 고블린 네 마리.
마을 주민들에게 들은 마을을 습격했던 고블린의 숫자와 동일했다.

o쑹-



고블린 하나가 목을 관통한 화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켁케-

기묘한 소음을 만들어내면서 달려들었다.
그레이는 커다란 고블린의 일격을 검으로 비스듬히 받아내었다. 그대로 그 힘을 땅바닥으로 이끌었다.

쾅-

고블린의 일격이 바닥을 치고 뿌연 먼지만을 날렸다.
헛손질에 지릿거리는 손목을 잡고 멈칫거리는 고블린을 그레이는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쿠에게엑-

변종 고블린은 피가 흘러나오는 허리를 부여잡고 그레이에게 분노한 듯 몽둥이를 휘둘렀다.
변종이 아닌 일반 고블린 3마리를 동시 상대하는 예린도 여유가 있었다.
물 흐르는 듯 막힘없이 움직이며 고블린을 지나쳐 갈 때마다 고블린의 급소에 상처가 생겼다.
상처가 없다고 하더라도 고블린은 예린의 재빠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더우이 싸울수록 급소에 상처를 입어 느려진 몸으로 예린을 상대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그레이의 발이 땅을 찼다.

서걱-

검이 선명한 원을 그렸다.
변종 고블린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예린이 상대하던 3마리의 고블린도 모두 쓰러져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레이는 단검으로 변종고블린의 이마의 결정을 파내어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이 결정은 어떤 힘이 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마법사들에게 비싸게 팔렸다.
그동안 예린은 자신의 손톱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내고 닦아내면서 자신의 손끝을 뿌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밤이 깊었다.
주변에 C을 몇 개 설치하고 야영지로 돌아왔다. 모닥불 맞은 편에서는 예린이 잠을 자려고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꾸벅꾸벅 졸고 있었었지만 누구가 접근한다면 예민한 묘인족은 금새 알아챌 것이다.
그레이와 함께 하면서 감각은 이전과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발전이 있었다.
바른 자세로 앉아 남겨진 무공을 되새기며 이해하려고 고민하던 그레이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

"으흠"

숲의 새콤한 향이 감도는 바람이 주변을 따뜻하게 감싸며 지나갔다.
그 바람에 기묘한 향이 섞인 듯 코끝이 간지러웠다.
그레이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예린의 눈이 살짝 떠졌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기묘한 공기에 눈을 뜬 것이었다.
그레이에 의해서 몸을 개발 당하지 않았더라면 못 알아차렸을 정도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레이의 몸 근처로 작고 투명한 것들이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크기는 손바닥 정도의 소녀 모습이었다. 물방울처럼 맑고 투명해서 그 몸을 지나 반대편이 비쳐 보였다.

"정령인가?"

예린은 위험해 보이지 않기에 일단 지켜보았다. 정령이 조종당하고 있지 않은 한 생명체에게 간섭하는 일은 드물었다.
정령은 숲에 존재하지만 쉽게 몸을 들어내지 않았다.
그 투명한 것은 자신의 작은 몸을 그레이 얼굴에 천천히 비비어 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아래로 내려가 그레이의 중심 근처를 맴돌았다.

"몽령이구나."

정령의 한 종류이었다.
예전에 발정기를 겪고 있던 묘인족 남성들끼리 나누던 이야기 중에서 몽령에 관한 내용이 기억났다.
다른 나무의 정령이나 바람의 정령과는 다르게 수컷의 생명체를 좋아하는 정령이었다.
숲 속에서 생기가 넘치는 수컷에게 드물게 나타나 편안한 밤과 야릇한 꿈을 제공하고는 몽정을 하면 그 액을 흡수하는 정령이었다.

예린은 감각을 확장해 주변을 살폈다. 의뢰로 받았던 고블린도 퇴치하였고 주변에는 다른 마수나 맹수도 없었다.
몽령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도 조금 나른해질 뿐 별다른 이상은 없고 오히려 다시 한번 경험해고 싶다고 말하던 묘인족 남성들의 말이 기억나 예린은 경계를 낮추었다.
예린은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그레이의 몸 주변에 얇은 막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 막 때문인지 예린에게 그레이와 몽령의 존재감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몽령이 작용하는 동안 대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막이었다.

몽령은 천천히 그레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다른 생명체와는 다르게 이 인간은 졸음에 대한 저항이 너무나 강해 힘들었다.
강인한 수컷의 냄새에 이끌려 다가가 매력적인 수컷에게 졸음의 기운을 뽑아내었다.
다른 수컷에게는 뽑아내는 것의 몇 배로 강하고 진하게 뽑아내어 바람에 실어 보내고 나서야 효과가 있었다.

주변을 차단하는 막을 치고 수컷의 어깨에 살며시 앉았다.
그레이에게 몽령의 속삭임이 맴돌았다. 음란한 꿈을 꾸게 하는 노래이었다.
소리로 들리는 노래가 아닌 의지로서 전해지는 노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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