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지...."
성호는 멍한 눈으로 한참을 복도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몸에
땀이 날 정도로 걸으며 밑으로 내려가려 했지만,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면 어김없이 다시 3층이었다.
"아씨!! 뭐가 이래!!"
밖에는 이미 해가 지며 하늘이 천천히 노을로 물들고 있었고, 텅텅 빈 교실들을 돌아다니는 성호는
괜시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기분이 불안해 이 곳에서 빨리 빠져나가기위해 갑자기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저쪽 계단인가!!"
성호는 계속해서 같은 쪽 계단으로 내려갔다는걸 기억하고 반대편 계단쪽으로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에 부딪히며 성호는 바닥에 쓰러졌다.
"아윽..뭐야..?"
위를 올려다보자 빌어먹을 녀석이 웃고 있었다. 박민규!!! 중학교 내내 성호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학교에서 좀 논다는 녀석... 그 놈이 자신을 보며 비열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성호는 서둘러 그 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몸은 민규에게 붙들려 바둥바둥 대고 있었다.
"ㅎㅎ이 쥐새끼야..어디 가려고..ㅋㅋ 내가 부르는데 튀어? 넌 죽었어!!"
퍽!퍽!! 퍼퍽!!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쉴새없이 쏟아지는 주먹세례.. 성호는 몸을 둥글게 말아 최대한 맞지 않으려고
했지만, 주먹은 얼굴..배.. 등.. 어떤 한 곳이 아닌 모든 곳에 쏟아지고 있었다.
"컥...살려줘..살려줘 민규야..허윽.."
"시끄러~ㅎㅎ 살려줘?? 내가 잼있는 구경 시켜줄께~ㅎㅎ"
갑자기 이상하게 부드러워진 민규의 목소리에 성호는 섬뜩함을 느껴 위를 바라봤다. 그리고 민규의
손에 들려진 은색빛이 나는 걸 본 순간 성호는 공포감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칼..칼이었다!
"미...민규야..흐흑..하지마 그걸로 어쩌게..흐흑.."
"ㅋㅋ 사내새끼가 울긴~ 걱정마라..ㅎㅎ 별로 안 아플꺼야 알았지?"
"싫어....싫어..!!"
성호는 마지막 죽을 힘을 짜내 민규의 멱살잡은 손을 뿌리치고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바로 옆에는 자기와 함께 뛰고 있는 민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성호의 옆구리로 시큰한 통증과
함께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허윽....하아...으윽.."
성호는 옆구리를 잡으며 몸이 허물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ㅋㅋ 어때?? 아프냐? 무슨 기분이냐?ㅋㅋ"
"하아..하아..살려줘..민규야..나 병원에.."
"병원?? 거긴 왜..괜찮아..내가 의사라 생각해..낄낄..고통없이 보내줄께.."
민규의 섬뜩한 표정과 함께 손에 쥔 칼이 자신의 가슴으로 날아오는 걸 느끼며 성호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안돼!!!!!!!!!!"
"성호야? 무슨 일이니??"
아침부터 성호의 비명소리에 놀라셨는지 어머닌 깜짝 놀라 성호의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성호의 몸은
악몽의 탓인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왜 그래?? 또 악몽이라도 꾼거야?"
"네??아..아니에요..하아..그냥..괜찮아요..몇 시에요?"
"지금 7시 다되가..얼른 씻고 준비해야지~ 오늘부터 진짜 고등학생이잖어 우리 성호~"
"네?아..맞다..알았어요~ 씻을께요.."
"그래~ 아침 준비할께"
성호는 욕실로 들어가 찬 물로 샤워를 하며 머리를 식혔다. 어머니의 말대로 성호는 더 이상
중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다. 오늘은 입학식을 하고 고등학생이 되는 날인데 그 빌어먹을 놈이
왜 꿈에 나오냔 말이다.
"아우~ 씨발..재수없는 새끼..꿈에까지 나와서 괴롭히냐..휴우.."
성호는 재빨리 그 놈의 얼굴을 머리에서 지우고 샤워를 하며 기분을 가라앉혔다. 너무 오래 샤워를 한건지
욕실에서 나오니 이미 7시가 살짝 넘어있었다. 성호는 허둥지둥 교복을 입고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집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늦은 줄 알았는데..버스정류장에 오니 자신과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는게 꽤나 보였다.
"아효~ 다행이네..늦은 줄 알았는데.."
곧 버스가 도착하고 성호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버스에 올라탔다. 2,3학년들은 이미 학교에 다 가서
그런지 버스는 2군데 고등학교를 거쳐가는 노선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고, 조금 한적한
모습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MP3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성호는 이미 아까의
악몽은 사라지고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이제부터 멋지게 사는거야..날씨도 좋네...후훗.."
하지만 역시나 노선이 워낙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가는 버스라 그런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많아지기
시작했고, 성호는 사람들에게 밀려 점점 뒷쪽으로 갔다. 그러다 성호는 발을 헛디뎌 그만 옆에 서 있던
학생의 발을 밟고 말았다.
"어어..죄..죄송해요..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네??아..네..전 괜찮아요.."
"네에.."
여학생은 성호를 바라보며 괜찮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성호는 눈 앞이 하얘지며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꼈다.
"이쁘다..천사같아..."
지금까지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는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한 탓일까..아니면 그녀의 미모에 한 눈에
반해버린걸까..성호는 한참을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바보처럼..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동그란 눈동자...너무 예뻐.."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성호처럼 둔감하지 않은 듯 여학생은 이내 성호의 눈길을 느끼곤 성호를
바라봤다.
"저기..할 말 있으세요?"
"네에....아니..네?? 제가 뭐라 그랬죠..;;"
"아뇨;; 아무 말도 안 하셨는데요..네라고만 하고.."
"아~ 네에..;; 하하..아니에요.."
"그래요? 그쪽이 쳐다보는것 같아서.."
여학생은 다시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성호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이름표를 확인했다.
"이수빈...이름도 이쁘구나..우와.."
성호는 혹시나 그녀가 또 신경쓸까 제대로 보지는 못하고 다른곳을 바라보는척 하다 한 번씩
힐끗힐끗 그녀를 바라봤다. 그 때 갑자기 버스가 정차하며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도 함께.. 성호는 멍하게 있다 그제서야 내리는 교복들이 모두 자기학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서둘러 따라내렸다.
"휴우~ 하마터면 못 내릴뻔했네..뭐야?? 그럼 수빈이도 우리 학교??!!"
성호는 남중을 다녀 아직까지 남녀공학에 익숙하지 않아 같은 무늬에 같은 색깔의 교복을 보고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수빈이가 같은 학교일 줄은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래~ 남녀공학이었지~ 우와!! 그러면 잘하면 매일 볼 수 있는거야??"
성호는 수빈이를 매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혼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주위의 시선이 미친 놈아닌가...라는 사실엔 신경도 안 쓴다는듯이..
모든 입학식이 그러하듯..고등학교 입학식은 매우 지루했다. 교장의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지루한
인사말..대표해서 상을 받는 아이들.. 여러가지 지루한 행사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고,
아이들은 반 배정을 받아서 뿔뿔이 흩어졌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입학식이 끝났다고 한숨을 쉬고,
욕을 하며 걸어갔지만, 한 사람..혼자서 입에 걸린 아이가 있었다. 바로 성호였다.
성호는 지루한 입학식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온통 머릿속엔 아침에 본 수빈이의 얼굴로
가득차 너무나 행복하기만 했으니..
넋을 잃고 걸으며 교실에 들어가려던 성호는 교실문이 갑자기 열리며 나온 누군가와 부딪히며 쓰러졌다.
"미..미안해.."
"아~ 씨발..아침부터 기분 잡치게..어라? 이게 누구야..??"
성호는 아주 기분 나쁜 느낌과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봤다. 박민규...!! 아침부터
성호의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든 그 놈이었다.
"어..어어...민규야.."
"ㅋㅋ야~ 질긴 인연이구만~ 반갑다~ㅋㅋ"
"어어..."
"얘들아 가자~ ㅋㅋ"
"야~ 누구냐? 친구냐??"
"친구??씨발새끼가 장난치나!! 저런 찌질한 새끼가 어딜봐서~ 죽는다!!"
민규는 옆에 두 명의 처음보는 녀석들과 화장실쪽으로 멀어져갔다.
"휴우..왜 저 놈하고 또...젠장..!!"
성호의 입에선 절로 탄신이 나왔고 고등학교 생활도 순탄치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지옥같던 중학교 시절의 왕따생활은 이제 영원히 안녕이라 생각했는데...아무래도 그건 성호
혼자만의 착각인 듯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고 일주일동안 민규는 성호를 그다지 건드리지 않았다. 아마도
선생님들과 일일이 상당하고, 반장뽑고..이래저래 큰 일부터..짜잘한 일들까지 많다보니까 민규도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성호는 민규가 건드리지 않는건 좋았지만..일주일동안 한 번도 수빈이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몹시 아쉬웠다. 어쩔 때는 하루 수업시간 내내 수빈이를 생각하다 시간을 다
보낸적도 있을 정도로 성호의 머릿 속에 수빈이는 깊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 좋으면서 아쉬운 일주일이 지나가고..고등학생이 된지 이제 2주일이 되어갈 무렵..성호는 고등학교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나갔고, 불행히도 민규도 적응을 완료한건지 슬슬 성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실에 갔다 다같이 올라오는 교실로 가는 길에 민규는 갑자기 성호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야 김성호~ㅋㅋ 학교 생활 잼있냐?"
"어?어어..그냥 그렇지 뭐.."
"ㅋㅋ 새끼~ 잼없나보구만~ 야~ 그건 그렇고 너 이번시간에 내 옆에 앉아라~"
"어??니 옆에?"
"그래~ 왜 싫냐??"
민규는 갑자기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성호를 위협했다.
"아..아니..아냐..그냥 갑자기 그래서.."
"그럼 그런걸로 안다~ㅋㅋ"
민규는 멋대로 결론을 지어보이고 두 녀석과 함께 저 멀리 멀어져갔다. 성호는 또 민규가 무슨
꿍꿍이로 그러는지 몰랐지만 일단 민규의 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다음시간은 바로 국사시간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몇 안되는 나름 괜찮은 미모의 처녀 선생님..왠지 선생님과 관련된 일이 벌어질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성호를 엄습했다. 쉬는 시간이 끝이나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 성호는 민규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민규와 두 녀석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그 때 교실문이 열리고 국사선생님이 들어오고 교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항상 그랬던것처럼 선생님은
책을 들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 반정도 진행되었을 무렵..나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민규는 성호의 뒤로 손을 뻗어 선생님의 엉덩이를 살짝 건드렸다.
"뭐..무슨 짓을 하는거야.."
성호는 민규의 행동에 깜짝 놀라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생님은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는지 그대로 성호 옆을 지나갔다. 성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우~ 씨발..좀만 더 했으면.."
민규는 그 후로 계속해서 선생님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고, 드디어 선생님이 또 한 번 지나갈 찰나
손을 뻗어 선생님의 엉덩이를 살짝 잡고는 순식간에 빼버렸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성호를 바라봤고,
성호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호의 손이 어느새 공중에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정지해 있었기 때문이다.
"민규자식!!"
민규는 성호 옆에서 고개를 숙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성호는 당장이라도 녀석을 한 대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성호의 바람일뿐..그 순간 성호의 뺨으로 선생님의 따귀가 날라왔다.
"김성호!! 너!! 선생님을 어떻게 보는거야"
선생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성호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며 성호를 끌고 교탁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참동안 선생님의 손바닥은 쉴새없이 성호의 몸에 쏟아졌다. 뺨..머리..몸..선생님은 손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사정없이 성호의 몸을 구타했다. 얼마나 때렸을까...선생님의 분노가 가라앉았는지 더 이상의
손이 날아오지 않았다. 몸을 말고 있던 성호가 고개를 들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선생님의 눈이
보였다. 성호가 한 짓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내일 부모님 모시고 와.."
선생님은 그 한 마디만을 남긴체 책을 들고 교실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교실에는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야~ 김성호 대단해~ㅋㅋㅋ 너때문에 수업 일찍 맞췄네~"
"그래~ 조용하게 말없더니~ 대단하다~ 선생 엉덩이 어떻디? 탱탱하냐?"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아이들은 낄낄대며 웃어댔고, 성호는 민규의 옆으로 책을 가지러 갔다.
"ㅋㅋ미안하다~ 아우~!! 선생 성깔 대단하네~ 그리 팰줄이야.."
"...."
"야!! 화났냐?"
"아니야..."
"ㅋㅋ뭐~ 고생했는데 내가 소감을 말해주자면~ 처녀라 그런가~ 씨발년~ 엉덩이 만질 맛 좀
나더라~ㅎㅎ 만지지도 못했는데 맞아서 억울하지? 나중에 함 만지게 해줄께~ 말만 해라..ㅋㅋ"
"됐어..그럼 나 내 자리로 간다.."
"그래라~ㅋㅋㅋ"
성호가 자리로 가는동안 뒤에선 민규와 두 녀석이 성호를 바보, 멍청한 놈이라고 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성호는 개의치 않고 자리로 가서 멍하게 있다 책상에 엎드렸다. 저런 놀리는
소리는 지금 성호에게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성호는 학기초부터 부모님을 학교에 불러오게 만들게
생겼다는 걱정만이 가득할뿐..
성호는 멍한 눈으로 한참을 복도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몸에
땀이 날 정도로 걸으며 밑으로 내려가려 했지만,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면 어김없이 다시 3층이었다.
"아씨!! 뭐가 이래!!"
밖에는 이미 해가 지며 하늘이 천천히 노을로 물들고 있었고, 텅텅 빈 교실들을 돌아다니는 성호는
괜시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기분이 불안해 이 곳에서 빨리 빠져나가기위해 갑자기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저쪽 계단인가!!"
성호는 계속해서 같은 쪽 계단으로 내려갔다는걸 기억하고 반대편 계단쪽으로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에 부딪히며 성호는 바닥에 쓰러졌다.
"아윽..뭐야..?"
위를 올려다보자 빌어먹을 녀석이 웃고 있었다. 박민규!!! 중학교 내내 성호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학교에서 좀 논다는 녀석... 그 놈이 자신을 보며 비열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성호는 서둘러 그 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몸은 민규에게 붙들려 바둥바둥 대고 있었다.
"ㅎㅎ이 쥐새끼야..어디 가려고..ㅋㅋ 내가 부르는데 튀어? 넌 죽었어!!"
퍽!퍽!! 퍼퍽!!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쉴새없이 쏟아지는 주먹세례.. 성호는 몸을 둥글게 말아 최대한 맞지 않으려고
했지만, 주먹은 얼굴..배.. 등.. 어떤 한 곳이 아닌 모든 곳에 쏟아지고 있었다.
"컥...살려줘..살려줘 민규야..허윽.."
"시끄러~ㅎㅎ 살려줘?? 내가 잼있는 구경 시켜줄께~ㅎㅎ"
갑자기 이상하게 부드러워진 민규의 목소리에 성호는 섬뜩함을 느껴 위를 바라봤다. 그리고 민규의
손에 들려진 은색빛이 나는 걸 본 순간 성호는 공포감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칼..칼이었다!
"미...민규야..흐흑..하지마 그걸로 어쩌게..흐흑.."
"ㅋㅋ 사내새끼가 울긴~ 걱정마라..ㅎㅎ 별로 안 아플꺼야 알았지?"
"싫어....싫어..!!"
성호는 마지막 죽을 힘을 짜내 민규의 멱살잡은 손을 뿌리치고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바로 옆에는 자기와 함께 뛰고 있는 민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성호의 옆구리로 시큰한 통증과
함께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허윽....하아...으윽.."
성호는 옆구리를 잡으며 몸이 허물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ㅋㅋ 어때?? 아프냐? 무슨 기분이냐?ㅋㅋ"
"하아..하아..살려줘..민규야..나 병원에.."
"병원?? 거긴 왜..괜찮아..내가 의사라 생각해..낄낄..고통없이 보내줄께.."
민규의 섬뜩한 표정과 함께 손에 쥔 칼이 자신의 가슴으로 날아오는 걸 느끼며 성호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안돼!!!!!!!!!!"
"성호야? 무슨 일이니??"
아침부터 성호의 비명소리에 놀라셨는지 어머닌 깜짝 놀라 성호의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성호의 몸은
악몽의 탓인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왜 그래?? 또 악몽이라도 꾼거야?"
"네??아..아니에요..하아..그냥..괜찮아요..몇 시에요?"
"지금 7시 다되가..얼른 씻고 준비해야지~ 오늘부터 진짜 고등학생이잖어 우리 성호~"
"네?아..맞다..알았어요~ 씻을께요.."
"그래~ 아침 준비할께"
성호는 욕실로 들어가 찬 물로 샤워를 하며 머리를 식혔다. 어머니의 말대로 성호는 더 이상
중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다. 오늘은 입학식을 하고 고등학생이 되는 날인데 그 빌어먹을 놈이
왜 꿈에 나오냔 말이다.
"아우~ 씨발..재수없는 새끼..꿈에까지 나와서 괴롭히냐..휴우.."
성호는 재빨리 그 놈의 얼굴을 머리에서 지우고 샤워를 하며 기분을 가라앉혔다. 너무 오래 샤워를 한건지
욕실에서 나오니 이미 7시가 살짝 넘어있었다. 성호는 허둥지둥 교복을 입고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집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늦은 줄 알았는데..버스정류장에 오니 자신과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는게 꽤나 보였다.
"아효~ 다행이네..늦은 줄 알았는데.."
곧 버스가 도착하고 성호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버스에 올라탔다. 2,3학년들은 이미 학교에 다 가서
그런지 버스는 2군데 고등학교를 거쳐가는 노선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고, 조금 한적한
모습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MP3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성호는 이미 아까의
악몽은 사라지고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이제부터 멋지게 사는거야..날씨도 좋네...후훗.."
하지만 역시나 노선이 워낙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가는 버스라 그런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많아지기
시작했고, 성호는 사람들에게 밀려 점점 뒷쪽으로 갔다. 그러다 성호는 발을 헛디뎌 그만 옆에 서 있던
학생의 발을 밟고 말았다.
"어어..죄..죄송해요..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네??아..네..전 괜찮아요.."
"네에.."
여학생은 성호를 바라보며 괜찮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성호는 눈 앞이 하얘지며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꼈다.
"이쁘다..천사같아..."
지금까지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는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한 탓일까..아니면 그녀의 미모에 한 눈에
반해버린걸까..성호는 한참을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바보처럼..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동그란 눈동자...너무 예뻐.."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성호처럼 둔감하지 않은 듯 여학생은 이내 성호의 눈길을 느끼곤 성호를
바라봤다.
"저기..할 말 있으세요?"
"네에....아니..네?? 제가 뭐라 그랬죠..;;"
"아뇨;; 아무 말도 안 하셨는데요..네라고만 하고.."
"아~ 네에..;; 하하..아니에요.."
"그래요? 그쪽이 쳐다보는것 같아서.."
여학생은 다시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성호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이름표를 확인했다.
"이수빈...이름도 이쁘구나..우와.."
성호는 혹시나 그녀가 또 신경쓸까 제대로 보지는 못하고 다른곳을 바라보는척 하다 한 번씩
힐끗힐끗 그녀를 바라봤다. 그 때 갑자기 버스가 정차하며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도 함께.. 성호는 멍하게 있다 그제서야 내리는 교복들이 모두 자기학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서둘러 따라내렸다.
"휴우~ 하마터면 못 내릴뻔했네..뭐야?? 그럼 수빈이도 우리 학교??!!"
성호는 남중을 다녀 아직까지 남녀공학에 익숙하지 않아 같은 무늬에 같은 색깔의 교복을 보고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수빈이가 같은 학교일 줄은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래~ 남녀공학이었지~ 우와!! 그러면 잘하면 매일 볼 수 있는거야??"
성호는 수빈이를 매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혼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주위의 시선이 미친 놈아닌가...라는 사실엔 신경도 안 쓴다는듯이..
모든 입학식이 그러하듯..고등학교 입학식은 매우 지루했다. 교장의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지루한
인사말..대표해서 상을 받는 아이들.. 여러가지 지루한 행사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고,
아이들은 반 배정을 받아서 뿔뿔이 흩어졌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입학식이 끝났다고 한숨을 쉬고,
욕을 하며 걸어갔지만, 한 사람..혼자서 입에 걸린 아이가 있었다. 바로 성호였다.
성호는 지루한 입학식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온통 머릿속엔 아침에 본 수빈이의 얼굴로
가득차 너무나 행복하기만 했으니..
넋을 잃고 걸으며 교실에 들어가려던 성호는 교실문이 갑자기 열리며 나온 누군가와 부딪히며 쓰러졌다.
"미..미안해.."
"아~ 씨발..아침부터 기분 잡치게..어라? 이게 누구야..??"
성호는 아주 기분 나쁜 느낌과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봤다. 박민규...!! 아침부터
성호의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든 그 놈이었다.
"어..어어...민규야.."
"ㅋㅋ야~ 질긴 인연이구만~ 반갑다~ㅋㅋ"
"어어..."
"얘들아 가자~ ㅋㅋ"
"야~ 누구냐? 친구냐??"
"친구??씨발새끼가 장난치나!! 저런 찌질한 새끼가 어딜봐서~ 죽는다!!"
민규는 옆에 두 명의 처음보는 녀석들과 화장실쪽으로 멀어져갔다.
"휴우..왜 저 놈하고 또...젠장..!!"
성호의 입에선 절로 탄신이 나왔고 고등학교 생활도 순탄치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지옥같던 중학교 시절의 왕따생활은 이제 영원히 안녕이라 생각했는데...아무래도 그건 성호
혼자만의 착각인 듯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고 일주일동안 민규는 성호를 그다지 건드리지 않았다. 아마도
선생님들과 일일이 상당하고, 반장뽑고..이래저래 큰 일부터..짜잘한 일들까지 많다보니까 민규도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성호는 민규가 건드리지 않는건 좋았지만..일주일동안 한 번도 수빈이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몹시 아쉬웠다. 어쩔 때는 하루 수업시간 내내 수빈이를 생각하다 시간을 다
보낸적도 있을 정도로 성호의 머릿 속에 수빈이는 깊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 좋으면서 아쉬운 일주일이 지나가고..고등학생이 된지 이제 2주일이 되어갈 무렵..성호는 고등학교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나갔고, 불행히도 민규도 적응을 완료한건지 슬슬 성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실에 갔다 다같이 올라오는 교실로 가는 길에 민규는 갑자기 성호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야 김성호~ㅋㅋ 학교 생활 잼있냐?"
"어?어어..그냥 그렇지 뭐.."
"ㅋㅋ 새끼~ 잼없나보구만~ 야~ 그건 그렇고 너 이번시간에 내 옆에 앉아라~"
"어??니 옆에?"
"그래~ 왜 싫냐??"
민규는 갑자기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성호를 위협했다.
"아..아니..아냐..그냥 갑자기 그래서.."
"그럼 그런걸로 안다~ㅋㅋ"
민규는 멋대로 결론을 지어보이고 두 녀석과 함께 저 멀리 멀어져갔다. 성호는 또 민규가 무슨
꿍꿍이로 그러는지 몰랐지만 일단 민규의 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다음시간은 바로 국사시간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몇 안되는 나름 괜찮은 미모의 처녀 선생님..왠지 선생님과 관련된 일이 벌어질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성호를 엄습했다. 쉬는 시간이 끝이나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 성호는 민규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민규와 두 녀석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그 때 교실문이 열리고 국사선생님이 들어오고 교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항상 그랬던것처럼 선생님은
책을 들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 반정도 진행되었을 무렵..나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민규는 성호의 뒤로 손을 뻗어 선생님의 엉덩이를 살짝 건드렸다.
"뭐..무슨 짓을 하는거야.."
성호는 민규의 행동에 깜짝 놀라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생님은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는지 그대로 성호 옆을 지나갔다. 성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우~ 씨발..좀만 더 했으면.."
민규는 그 후로 계속해서 선생님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고, 드디어 선생님이 또 한 번 지나갈 찰나
손을 뻗어 선생님의 엉덩이를 살짝 잡고는 순식간에 빼버렸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성호를 바라봤고,
성호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호의 손이 어느새 공중에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정지해 있었기 때문이다.
"민규자식!!"
민규는 성호 옆에서 고개를 숙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성호는 당장이라도 녀석을 한 대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성호의 바람일뿐..그 순간 성호의 뺨으로 선생님의 따귀가 날라왔다.
"김성호!! 너!! 선생님을 어떻게 보는거야"
선생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성호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며 성호를 끌고 교탁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참동안 선생님의 손바닥은 쉴새없이 성호의 몸에 쏟아졌다. 뺨..머리..몸..선생님은 손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사정없이 성호의 몸을 구타했다. 얼마나 때렸을까...선생님의 분노가 가라앉았는지 더 이상의
손이 날아오지 않았다. 몸을 말고 있던 성호가 고개를 들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선생님의 눈이
보였다. 성호가 한 짓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내일 부모님 모시고 와.."
선생님은 그 한 마디만을 남긴체 책을 들고 교실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교실에는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야~ 김성호 대단해~ㅋㅋㅋ 너때문에 수업 일찍 맞췄네~"
"그래~ 조용하게 말없더니~ 대단하다~ 선생 엉덩이 어떻디? 탱탱하냐?"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아이들은 낄낄대며 웃어댔고, 성호는 민규의 옆으로 책을 가지러 갔다.
"ㅋㅋ미안하다~ 아우~!! 선생 성깔 대단하네~ 그리 팰줄이야.."
"...."
"야!! 화났냐?"
"아니야..."
"ㅋㅋ뭐~ 고생했는데 내가 소감을 말해주자면~ 처녀라 그런가~ 씨발년~ 엉덩이 만질 맛 좀
나더라~ㅎㅎ 만지지도 못했는데 맞아서 억울하지? 나중에 함 만지게 해줄께~ 말만 해라..ㅋㅋ"
"됐어..그럼 나 내 자리로 간다.."
"그래라~ㅋㅋㅋ"
성호가 자리로 가는동안 뒤에선 민규와 두 녀석이 성호를 바보, 멍청한 놈이라고 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성호는 개의치 않고 자리로 가서 멍하게 있다 책상에 엎드렸다. 저런 놀리는
소리는 지금 성호에게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성호는 학기초부터 부모님을 학교에 불러오게 만들게
생겼다는 걱정만이 가득할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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