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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9:45 610회 0건
놀이터 입구에서 사내놈 일곱에 계집애들 다섯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얼핏 눈에 들어 왔다. 중삐리인지 고삐리인지는 좀 헛갈리게 만드는 연놈들이었는데, 어쨌거나 자기 또래일 것 같았다.


"입학식은 제일고만 열린 것이 아니지....고삐리들인것 같은데...오늘 첫날이라고 예전 친구들끼리 좀 모여서 놀다가 이리로 기어들어온건가? 어디서 온놈들인지는 잘 모르겠군..안면이 없는 쌍판들인것 같아....제기랄, 꼬라지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알아서들 닥치기는 좀 힘들 것 같은데?"


준영이 그런 추측을 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의 손에 들린 비닐봉투들...뻔하다. 소주나 맥주, 그리고 안주거리들이지 뭐겠는가.


"일단은 지켜 보마. 하지만 이 몸께서 지금 천우신조로 인해 만나게 된 운명의 여자가 옆에 앉아 있는데 감히 방해를 했단 봐라....."


준영은 일단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기 위해 가만히 있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괜히 주먹 쓸 필요는 없을 테니까.....




"으흐흐~ 그래서 말이지, 기분 나쁘게 날 자꾸 야리던 그새끼 얼굴을 멋지게 장식해 줬지. 흐흐~~~"



"깔깔깔~~ 그 다음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시끄럽게 놀이터로 난입해 들어오던 불청객들.... 그들은 마구마구 소음을 퍼뜨려 대다가 놀이터 내의 상황을 잠깐 쓸어 보았다.


놀이터 저쪽 구석 벤치에 비치는 그림자 둘....연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다리 넘어 서로의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었는데, 남녀인것은 확실한 듯 했다.



일행 중 여자애 한명이 입을 열었다. 얼굴로 보면 그렇지 않을 듯한데, 열린 입이 그리 고운 편은 아니었다.


"이런 씨장...멀리서 볼땐 몰랐는데 누가 있잖아...아무도 없어서 좋아했는데...짜증이 확 나네?"


그러자 곧바로 대답해주는 굵직한 목소리 하나.


"글쎄 말이다....흠....보아하니 우리 또래인것 같은데?"


이번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입을 열었다. 여성의 것이었지만 처음에 운을 떼었던 여자애의 것은 아니었다.


"그래 보이네. 애인관계같기도 하고...잘 모르겠다. 근데 딸랑 둘이네. 걍 무시하고 들어가지 뭐."



그녀의 말에 찬성이라는 듯 연놈들 몇몇이 맞장구쳤다.


"그래, 그냥 들어가자. 설마하니 시끄럽다고 뭐라고 지들이 그럴거야? 우리한테? 킬킬킬~~"


"맞아. 히힛~~~"



그들은 놀이터의 아늑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던 저쪽 구석편의 두 사람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놀이터의 또 한 곳에 위치하는 다수가 앉을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쳇, 역시나...그냥 가진 않는군. 하기사~ 이쪽은 달랑 둘이니 만만해 보이기도 하겠지."



준영은 갑자기 난입해 들어온 저 불청객들을 지그시 노려보면서 좀더 관찰했다. 그의 기대와 바람은 오로지 하나였다.


"제발 좀 닥치고들 조용히 먹다가 가라~~"


하지만....이 남자의 간절한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저들은 그럴 마음이 별로 없어 보이는 듯하다.


"킬킬킬~~그래서 말이야. 대걸레로 그새끼 옆구리를 퍼억~!!"


"깔깔깔~~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돼긴 뭘 어떻게 돼? 팩 꼬꾸라져 있는 그새끼 등짝에 한방 또~~~~!!"


"꺄하하하~~"


"흐흐~ 아무튼 오늘 입학식은 재미있었다. 뭐 그건 그거고, 얼마 전엔 말이야~ 크크~~"


또다시 말을 이어가려는 놈한테 여자애 하나가 구석에 위치한 남녀 둘을 가리키면서 소근거리듯이 말했다.


"야, 근데 쪼금만 조용히 이야기해야 되는거 아니냐? 저쪽 둘...."


"상관 없어. 떠들면 지네가 어쩔 건데? 낄낄~~"


"하긴 그래. 후훗~~ 야, 빨리 다음 이야기 해줘봐"


"흐흐, 어, 며칠 전에..."





으드드득~~!!



준영의 입에서 이갈리는 소리가 잠시 들렸다. 저쪽은 자기들이 못 들을 줄 알고 조용히 말했나본데, 그의 귀에는 훤히 들렸던 것이다.


"다 들린다 이것들아...뭐? 지들이 어쩔 건데? 이것들이 정말 뒤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군..."



싸움을 잘하려면 오감 중에서도 시각과 청각은 당연 중요시된다. 뛰어난 동체시력이 있어야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피할 수 있고, 어디서 들어올지 모르는, 등뒤에서 올지도 모르는 공격도 청각을 잘 살리면 재빨리 피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준영의 좋은 청각에는 듣기 싫은 소리들이 고스란히 잘 들리고 있었다. 준영은 속으로 옆에 앉은 여자가 저런 무서운 이야기와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소리를 못 듣는 것이 다행스럽다 여겼다. 옆에 앉은 저 예쁘장한 여자애는 저런 소리를 들으면 무서워서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 테니까....


하지만 자신보다도 오히려 더 상대들의 대화를 훤히 수라가 듣고 있다는 것을 준영은 짐작조차 할 길이 없었다.....



아무튼 준영은 저 빌어먹을 난입꾼들 덕에 조금만 더 있으면 폭발할 듯했다. 그때 그의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미성의 목소리...


"흠....좀 시끄러워졌네요. 그죠?"


갑자기 불쑥 날아든 상대의 물음에 준영은 잠시 깜짝 놀랐지만 여자를 마주 보면서 얼른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저 여자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아하하, 좀 그렇네요. 좀 전엔 되게 조용했었는데."


"우리 또래들인 것 같은데...좀 매너가 없네요...."


여자의 말을 듣고 준영의 머릿속에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흠..지금 여기서 내가 저것들을 싹쓸이 해주면 이중효과를 볼수 있을수도...내 싸움실력에 뻑간 여자애들도 많았지. 저런 청순가련형이 나같은 타입을 선호할 때도 많다 이거야 크흐흐~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신을 위해서 내가 저녀석들을 타도하겠다는 식으로 한다면,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남자를 보고 감동하는 방향으로...으헤헤~ 좋았어. 난 왜 이렇게 머리가 좋지?"



스스로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그는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고 있었다. 자신 못지 않게 싸움을 좋아하는 여자를 보고, 청순가련형이라고 외모로만 판단하다니....


어쨌건 그렇게 계획을 짠 후 준영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맞아요. 매너가 좀 덜 된 애들이네요.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아 보이는 듯했어요. 제가 가서 좀 다그치고 오도록 하죠. 밤의 놀이터는 역시 아늑한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관둬요, 그러다 다쳐요. 숫자도 많아 보이는데.."



"아, 아니에요. 그럼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역시 이런 곳은 조용해야 제 맛이죠."



"당신을 위해서 하는 거에요" 라고 덧붙이려다 그러면 너무 느끼할 것 같아서 그만둔 준영은 자리를 털고 홀가분하게 일어섰다. 그리곤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를 마주 바라보면서 특유의 시원스런 웃음을 한번 씨익 지어주고는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런 준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수라는 손에 쥐어져 있던 맥주캔을 단번에 들이켜 끝까지 비우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깨끗이 한캔을 비운 후에 옆에 내려놓은 후, 술기운으로 약간 달아오른 얼굴을 한채, 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눈으로도 웃음지고, 입꼬리도 살짝 말아올라가져 가면서 그녀가 나직하게 킥킥댔다.



"역시 같은 부류였어. 어떤 식으로든 이것이지."



수라는 잠시 자신의 고운 왼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왼손은 살짝 주먹쥐어져 있었다.





"흐흐, 이번에는 그래서 말이야..."



연신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던 사내 녀석은 말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다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눈이 쏠렸기 때문이다. 그도 별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돌아다 보니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벤치 구석에 있던 그 남자라는것을 다들 금방 알아보았다. 여태껏 가장 신나게 떠들어대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상대가 대답했다.



"초면에 죄송한데...너무 시끄러운 듯해서요. 공공장소에서 이러시면 안되는거 다들 아시죠? 더구나 밤이잖아요"


점잖게 말하는 상대였지만 불청객들 몇몇이 피식 웃었다. 처음에 상대에게 질문을 던졌던 가장 많이 떠들어대던 녀석, 상철이 역시 피식거렸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하는 짓이 같잖았으니까....


"그래서요? 그쪽이 전세 낸건 아니죠? 우리도 좀 쓰겠다는데, 아주 못참을 정도로 떠든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신의 말을 합리화시키려는 상철이의 말투였지만, 일행이라는 녀석들의 표정은, 고소하다, 말 잘해다는 반응이었다.


그들의 태도는 이거였다. 시끄러웠으면 니가 어쩔 건데 우리한테?


준영 역시 이들의 그런 태도를 눈치 못챌 만큼 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가장 빨리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었다. 자기가 사는 삶이 이쪽(?)이었으니까... 준영은 이만한 수를 눈앞에 두고도 전혀 기죽지 않고 또 입을 열어 갔다.


"그건 억지로 들리는데요. 못 참을 만큼 떠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기준은 그쪽에서 정하시나봅니다?"


상철이는 상대가 의외로 당당하게 나왔다는 놀라움보다는,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쳐대는 그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이쯤 해서는 이제 입에서 경어가 오가기는 힘들때가 되었다.


"......보아하니까 우리보다 나이많아 보이지도 않는구만. 너 지금 제정신이냐? 좋게 말할때 그냥 꺼지지 그랬어?"



준영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진작에 이랬어야지 하는 얼굴이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 저쪽에서 저따위로 나오면 이쪽에서도 대접을 맞춰 줘야겠지..


"흠.. 별로 꺼지고 싶지 않은데 어쩐다?"



꿈틀~!!



불청객들 모두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남자 여자 할것 없이 저쪽들 역시 얼굴이 차가워졌다. 상철이의 옆에 서 있던 덩치빨좀 되는 녀석이 싸늘하게 말했다.



"죽고 싶냐? 너 어디 학교야?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말을 그따위로 하는 게 아니지"



"잘못은 누가 먼저 했는데 책임을 나한테 전가하지? 그리고 난 살고 싶은걸? 또 하나, 나도 너희가 어디에서 기어들어왔는지 묻고 싶은걸. 내 이름을 안다면 요따위로 굴 수는 없을 텐데.."



상대의 마지막 말을 조금 주의 깊게 들었다면 그들은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귓구멍에 들린 말때문에 그들은 이미 뚜껑이 열릴대로 열려버렸다. 지가 뭐가 대단하다고 혼자서 지랄인지...



계집애 하나가 차갑게 노려보면서 말했다.



"얼굴 봐서는 그렇게 바보같아 보이진 않는데, 또라이네...아아~ 난 모르겠다. 너 실수한거야. 얘네들 화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년은 주위에 도열해 있는 일곱명의 사내놈들을 가리키면서 실실 쪼갰다.



준영은 상대방들 한명 한명을 쭉 훑어 보더니 "큭큭~" 하곤 한번 웃음을 터뜨리곤 이윽고 자세를 잡았다. 자세를 잡은 그가 한다는 말은...


"여자는 안 패는 주의다. 일곱명 다 기어나와라. 이 몸은 지금 하늘의 명을 받아서 빨리 작업들어가야 되거든."



불청객들은 서로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쟤 정말 미친 거 아냐? 한꺼번에 다 어쩌라고? 하는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그들의 얼굴은 서서히 분노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덩치빨 좋던 사녀 녀석 하나가 앞으로 튀어나가면서 외치는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또라이새끼였구만, 미친놈은 터져야 정신나지.너 오늘 한번 뒤져봐라. 하하하~~"


이윽고 놀이터에서 한바탕 박투가 벌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 현장의 한쪽 구석 벤치에 앉아 있던 여자애는 어느새 또 맥주 한캔을 꺼내 들고는 시원스레 마시더니 싸움의 현장쪽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입가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수라는 즐거워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디..실력 구경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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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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