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피니스님~~”
억지로 쥐어짠 코맹맹이 소리. 한껏 귀엽게 보이려 애써보지만 정작 듣는 이는 반응이 없다.
“칸피니스님~~”
한껏 목소리를 키우니 그제야 약간의 반응이 있다.
“왜?”
귀찮아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지만 엘리는 그가 대답했다는 이유만으로 반갑기만 하다.
“그냥...”
“그냥?”
“예...”
“그럼 그냥 자라.”
“칫...”
오늘따라 칸피니스가 저기압이다. 평소 하녀라 해서 이리 무시하는 말투를 쓸 그가 아닌데, 무언가 안좋은 일이 있었던 듯 싶다.
“저기...”
“또 왜?”
“오늘 뭔가 안좋은 일 있으셨어요?”
“왜?”
“그게... 기분이 안좋아... 보이셔... 서...”
“그렇게 보이니?”
“예!”
그제서야 칸피니스가 고개를 돌리고 엘리를 바라본다. 자신을 향해 눈을 맞춰오는 칸피닛의 모습에 엘리의 얼굴이 좀더 밝아진다.
“조금 그럴 일이 있었어.”
“그... 럴... 일요?”
“응.”
“그렇... 군요.”
말해주기 싫다고 노골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데 더 캐묻는 것은 무리다.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칸피니스는 귀족이고 엘리는 하녀다. 육체관계 좀 있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왜? 궁금해?”
“예...”
말해주려는 것일까?
“하지만 말할만한 게 못돼. 넌 모르는게 좋아.”
“예...”
하지만 역시나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약간 심통이 난다. 그렇다고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심통이 난 것 뿐이다.
“저기...”
“왜?”
“칼레아나님과...”
“아아... 그거?”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이고 말투다. 자신을 굳이 자기 방으로 부른 이유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심통은 분노로 바뀌어간다. 물론 이번에도 분노할 뿐이다.
“그것 때문에 저를 부르신거잖아요?”
“그랬나?”
“그랬어요!”
“하하하... 미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간만에 엘리를 안으니 너무 좋아서 말이지. 그동안 몸이 많이 자랐어. 운동도 많이 했는지 몸도 탄탄해졌고, 골반과 젖가슴도 성장했고, 무엇보다...”
“아앗!”
“여기가... 보지가 많이 단련되었어. 정말 빨려들어가 죽는 줄 알았다니까.”
자기가 좋아서 용무까지 잊었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심통이고 화고 한 순간에 다 녹아버린다. 보지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칸피니스의 손가락에 어느새 그녀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다.
“하... 하지만...”
“음... 우리가 무슨 얘기 중이었지?”
“하... 학... 칼레... 아... 나님...”
“아하... 그거였지?”
“예...”
“언제가 좋을 것 같아?”
“예?”
“언제가 좋을 것 같냐구?”
“무슨...?”
뜬금없는 물음에 엘리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손가락이라도 얌전히 있었으면 좋으련만 어느새 다른 손이 젖가슴마저 쓰다듬어오니 뭘 묻고, 뭘 대답해야 하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칼레아나의 방에 언제쯤 잠입하면 좋겠느냐고?”
“네에?”
하지만 칸피니스의 말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던 그녀의 이성을 되돌리기에 충분한 파괴력이 있다. 어느새 엘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몸을 바로하고 칸피니스를 바라보고 있다.
“칼레아나님의 방에... 잠... 입이요?”
“그래. 왜 무슨 문제 있어?”
“그거... 칼레아... 나... 님도...?”
“아아... 당연히 그녀도 동의한 거지. 아니 그녀가 조른 거라고 하는게 맞을거야. 얼른 잠입해서 처녀를 가져가라며 어찌나 졸라대던지...”
“카... 칼레... 아나... 님이요?”
“응”
믿을 수 없다. 칼레아나가 어떤 아가씨이던가? 알렌 토르 기란스와의 일로 남자라면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던 아가씨 아닌가? 몸을 꾸미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남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싫어하던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잠입해달라고 칸피니스에게 졸랐다니. 아무리 그 대상이 칸피니스라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다.
“믿기지 않나보네?”
“예... 아무래도...”
“하지만 사실인걸?”
“저... 정말이요?”
“그래. 정 믿기지 않으면 칼레아나에게 직접 물어봐. 어차피 내가 네게 이 일에 대해 여러 가지 말해두기로 했었으니까 물어보면 잘 가르쳐줄거야.”
“지... 진짜인가봐...”
“정말이라니까!!”
“그... 그렇지만...”
믿기지 않더라도 믿을 수밖에 없다. 칸피니스는 한 번도 강간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남자다. 귀족치고는 드물게 하녀라 할지라도 유혹과 설득을 통해 동의를 이끌어낸 다음에 섹스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복누이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기 위해 잠입할 까닭이 없다. 그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제게... 하실... 말씀은...?”
사실을 인정하니 목소리가 절로 떨려온다. 아무리 여자관계가 복잡한 칸피니스이고, 그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직접 듣는다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대상이 자신의 상전이니, 질투와 두려움에 자신의 목소리조차 주체치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별 거 아냐. 언제쯤 칼레아나의 방에 잠입해 들어가면 좋을까 하는 점과 - 이건 아무래도 당사자보다야 주위의 소소한 일들을 챙겨야 하는 하녀가 잘 알테니까 - 그때 시끄럽지 않게 주위를 정리해두라는 거. 대충 이정도? 내가 말하려는 건 이정도야.”
“예에...”
결국 자신과 육체관계에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안으러 가는 날짜를 정해주고, 보다 편하게 섹스할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해주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아직 남녀관계의 일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지만 본능적인 질투와 굴욕감에 표정이 하얗게 굳어버린다.
“왜? 싫어?”
“저... 그게...”
“싫구나? 표정에 그렇게 쓰여 있는데?”
“그...”
그녀가 온몸으로 거부를 표시하고 있음에도 칸피니스는 조금도 동요치 않는다.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녀를 책망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럴 줄 알았다는 자신만만한 고집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싫은거야?”
“저기...”
이미 모든 걸 결정한 상태다. 괜히 싫다고 해봐야 모든 걸 안다는 듯 자신만만한 저 표정이 바뀔 리도 없다. 더구나 자칫하면 미움받을 수도 있다. 고작해야 섹스파트너에 불과한 관계이지만 결코 그런 이유로 깨뜨리고 싶지 않다.
“본심을 말해봐. 싫어?”
“아... 아니... 그게...”
“싫으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다른...”
“미네아.”
“미네아?”
미네아는 엘리와 함께 칼레아나를 전담하는 하녀다. 엘리보다 몇 년 먼저 하녀를 들어와 칼레아나을 시종했기 때문에 엘리에게는 선배가 된다. 그것도 아주 고양하고 얄미운 선배다.
“그래. 미네아를 살짝 유혹한 다음에 걔한테 부탁하면 돼.”
어쩔 수 없다. 다른 여자와는 몰라도 미네아 하고만은 칸피니스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다른 여자에게의 안내역과 도우미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엘리는 끝내 굴복하고 만다.
“알았어요. 할게요.”
“해줄거야?”
“예.”
“고마워. 엘리라면 해주겠다고 말해줄거라 믿고 있었어. 정말... 정말 고마워.”
얄밉다가도 저리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지어진다. 그토록 귀족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하녀장에게 교육받았음에도 어느새 이 어처구니 없는 남자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지도 않은 독점욕에 당치않은 고집을 부릴 정도로 제대로 빠져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칼레아나님은 어떻게 꼬신거에요?”
“응? 칼레아나?”
“저처럼 길 가르쳐준다고 해놓고 으슥한 곳으로 끌어들여서...?”
“에? 걔는 나보다 이 성의 지리에 대해 더 잘 안다구. 그런 건 그때의 너처럼 처음 성에 들어와 어리버리한 아이들에게나 하는거야.”
“예? 어리버리?”
“아니었다고 생각하는거야?”
“하지만...”
“맞잖아. 어리버리. 길도 못찾아서 안절부절하는 게 얼마나 귀여웠는지...”
“귀여워서 절 으슥한 방으로 유인한 건가요?”
“따라온 건 너라구.”
“하지만 나는 성의 지리 같은 건 몰랐다구요.”
“방 앞의 갈림길에서 분명 네가 갈 길을 가르쳐주었었어. 기억 안나니?”
“쳇... 그치만...”
생각해보면 어리버리라는 말처럼 그때 상황에 들어맞는 표현은 없는 듯싶다. 칸피니스가 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이끌려 이리저리 휘둘리다보니 어느새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가 길을 가르쳐주었을 때도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그의 곁에 머물렀고, 그 결과가 지금 알몸으로 침대 위에 같이 뒹구는 상황이다. 자신도 뭐가 어찌되는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말 그대로 어리버리하다 당해버렸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진다. 몇 달 전인데 철없는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어른의 심정으로 차마 돌이켜 생각하기 싫은 그때 생각에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이 피부 밑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다.
“맞잖아. 너도 인정하지?”
“그... 그러니까...”
“인정하잖아? 그지?”
“카... 칼레아나 님 얘기를 하는 중이라구요.”
“에? 말 돌리는거야?”
“그게 아니라... 그... 그쪽이 본론이니까...”
“흐음... 그래?”
눈을 가늘게 뜨고 위아래로 훑어보는 칸피니스의 시선에 엘리는 내심 뜨끔함을 느낀다. 하지만 한 번 기세에서 밀리면 그 뒤는 돌이킬 수 없다. 꿋꿋하게 버텨야 한다. 그것이 그녀가 하녀로 들어온 셋째날 칸피니스에게 배운 첫 번째 교훈이었다.
“카... 칼레아나... 님은 어... 어떻게 꼬시셨어요?”
“궁금해?”
“예.”
“흐음... 말해줄까?”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이쯤에서 화제를 돌리려는 엘리의 시도를 굳이 방해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엘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원래의 화제로 돌아간다.
“어서 말해주세요. 어떻게 꼬신거죠?”
“음...”
“음...?”
“말해주어야 하나?”
“칸피니스 니임~~”
“흐음... 어떨까?”
“칸피니스 니이이이임~~ 이이잉~~”
“왠 닭살이야?”
“말해줘요오~~”
“하지만 너도 말 안해준 거 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구요. 여존남비 몰라요?”
“여존남비?”
“여자는 존귀하고 남자는 비천하니 세상은 여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호오... 정말 심오한 진리로군. 도대체 어떤 천재가 그런 말을 한거지?”
순수한 감탄을 표하는 칸피니스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며 엘리는 손가락을 들어 칸피니스를 가리킨다.
“나?”
끄덕-
“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야?”
끄덕-
“오오오오...”
“....?”
“내가 천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런 인생과 우주의 진리가 담긴 깨달음을 담은 명언까지 남겼을 줄이야. 새삼 나의 재능이 두려워지는구나. 아아... 하늘은 어찌 인간을 내고 나를 다시 세상에 냈단 말인가?”
콰당--!!
충격이 컸던 탓일까? 앉은 자세로 손가락으로 칸피니스를 가리키고 있던 엘리의 몸이 기우뚱거리더니 그대로 침대 아래로 떨어진다. 카페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치고는 꽤 큰 소리가 난 것을 보니 꽤 아플 것 같다.
“에... 엘리! 괜찮아?”
칸피니스가 다급히 침대가로 다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엘리는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초점조차 잡히지 않은 채 천정의 무늬를 반사하고 있는 그녀의 푸른 눈에 비치는 감정은 “어이없다!”.
“어이~~ 엘리! 엘리!”
칸피니스가 한참을 수선피우고 나서야 엘리의 눈이 비로소 초점을 회복한다. 초점이 잡힌 그녀의 푸른 눈이 노골적으로 칸피니스에게로 향한다. 그녀의 눈빛이 말하는 바는 조금전과는 조금 다르다.
“너 바보 아냐?”
물론 소리내어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눈빛과 같은 눈빛이 자신을 향할 때 항상 곁들여지던 말이니 그리 짐작한 것 뿐이다. 아마도 그 짐작은 틀리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리 인정하고 나면 왠지 서럽다. 그냥 모른체 하는 게 낫다.
“괜찮아?”
“칸피니스... 님...”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머리가 조금...”
“음? 머리를 찧은거야?”
“바닥에 찧은 건 아니지만 조금 정신이...”
“그래?”
“뭔가 들어서는 안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욱신거려요.”
확실하다. 이 여자도 히리스와 같은 과다. 이런 식으로 은근히 사람을 갈구는 것은 그녀의 방식이다. 괜히 나서봐야 좋은 꼴 볼 리 없으니 참고 넘어가지만 역시나 기분 나쁘다.
“그거 외에는 다른데 안좋은 데는 없고?”
“예...”
“그래. 그거 다행이다.”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이러고 있으니 칸피니스님 같아요.”
“그래? 하하하... 칭찬 고마워.”
“아까는...”
“아까는... 뭐?”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래? 하하하...”
한 대 때려주고 싶다. 하지만 때릴 수 없다. 그가 SM으로 취향을 바꾸기 전에는 결코 여자를 때릴 수 없다. 색마의 슬픈 속성이다. 그저 꾹꾹 눌러 참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은 없다.
“자아...”
“고마워요.”
본능처럼 내민 손을 잡고 침대위로 올라오는 15살짜리의 앳된 몸이 그의 눈을 아프게 찔려온다. 채 자라지 못한 젖가슴, 이제 막 털이 자라기 시작한 밋밋한 보지, 뽀송뽀송한, 기름이 묻어날 것만 같은 하얀 피부. 절로 자지에 힘이 들어간다.
“한 번 더 할래?”
“예?”
“그냥... 지금 한 번 더...”
“지금요?”
“응.”
“하지만 저 가봐야 하는데...”
“그런가?”
“예. 오늘밤은 제가 칼레아나 아가씨의 옆을 지켜야 하거든요.”
“그랬지. 쩝... 아깝다.”
“훗... 침흘러요.”
“네가 너무 맛있겠어서...”
“어머... 그런 노골적인 말을...?”
“어머... 그런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표정을...?”
“풋...”
“하하하... 어쩔 수 없네.”
아쉽기는 엘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녀는 칸피니스의 정부로서 델킨피에르 성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하녀로 일하기 위해 들어왔다. 따라서 하녀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칸피니스가 영주가 되어 그녀를 자신의 정부로 삼기 전까지는 아쉽지만 그리 해야 한다.
“어차피 저 나가고 나면 다른 여자 들이실 거잖아요?”
“하지만 난 너랑 하고 싶은걸. 내 자지를 세운건 너란 말야.”
“헤에... 그거 영광이네요?”
“그렇지?”
“하지만 그 자지는 아무나 여자만 보면 서는 자지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만...”
“저 대신 다른 여자 불러들여서 달래세요. 정 자지가 자기 세워준 여자랑 해야한다고 고집하면 적당히 힘 뺀 다음에 여자 불러와서 다시 세우면 되죠.”
“그것도 괜찮겠지.”
여전히 아쉬운 표정이다. 그 표정이 너무나 귀여워 볼을 잡고 마음껏 흔들어주고 싶어진다. 자기보다 머리 두어개는 더 큰 키에의 사내라는 사실은 이 순간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한다.
“저기...”
“응?”
“볼...”
“볼...?”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냥...”
“싱겁긴...”
엘리가 자신의 볼을 꼬집은 채 쥐고 흔들려 했다는 사실을 다행히 칸피니스는 모른다. 아마도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알았다면 저리 방심한 표정으로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이지는 못할테니까. 그의 웃음을 보면서 엘리는 더욱 커지는 아쉬움을 달랜다.
“언제쯤 칼레아나 아가씨 방을 습격하실 생각이세요?”
“으음... 언제가 좋을까? 엘리가 보기엔 언제가 좋을 것 같아?”
“으음... 글쎄요...?”
“잘 생각해봐. 다른 사람들이 중간에 방문할 염려가 없고, 칼레아나가 밤에 일찍 들어올 수 있는 날로. 언제가 좋을 것 같아?”
“음... 내일? 아냐. 내일은... 역시 모레? 모레는 조금 불안한데... 음... 그날은... 음... 그건 그렇고, 이건 이러니까... 음... 음...”
“내일도 모레도 안되는거야?”
“어제 칼레아나 아가씨의 외삼촌이 오셨잖아요. 그분이 조금... 에... 뭐 그런 분이라서 칼레아나 아가씨가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을거에요. 평소처럼 행동한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대신 주위에 감시를 좀더 강화하겠죠. 내일, 모레, 글피까지 계신다고 하시는 것 같던데... 하여튼 그동안은 어려울 거에요.”
“그래?”
칼레아나의 외삼촌이라면 플로네츠 남작가의 소가주인 토르넬 플로네츠를 말할 것이다. 몇 번 본 적이 있어 칸피니스도 잘 알고 있다. 귀족다운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원칙주의자로, 대단한 야심가라는 것이 그때의 만남으로 토르넬에서 느낀 인상이었다. 그런 인간이 들른다면 아무래도 칼레아나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엘리의 말대로 그가 있는 동안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글피에는 그날은 미네아가 당번이니 역시... 바꾼다고 해도... 음... 아무래도 내가 당번인 날이 좋을텐데... 음... 그 다음날... 그러니까 닷새 뒤가 제일 좋으려나? 그날은... 음... 음... 일단 저녁시간은 자유로우니까... 음...”
“닷새 뒤?”
“음... 아마도 그 날이 가장 나을 거에요. 예정된 큰 일은 없으니까요. 작은 일도 저녁의 일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고. 뭐 방해될 것 같은 일이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니까요.”
엘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팔에 힘을 주어 알통을 만들어보인다. 남자들이 흔히 믿어달라 말하며 자기를 과시할 때 쓰는 바로 그 자세다. 알몸으로 보여주는 귀여우면서도 왠지 에로틱한 모습에 칸피니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훗... 그럼 엘리를 믿고 닷새 뒤에 가보도록 하지. 믿어도 되겠지?”
“믿으라니까요!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테니.”
“알았어. 엘리만 믿을게.”
“믿어요!”
“알았어.”
엘리가 혀를 살짝 내밀어보이며 예의 그 포즈를 취해보이자 칸피니스는 함뿍 웃음을 지어 그녀를 격려한다. 싫은 일임에도 저리 적극적으로 나서는 마음을 아는 까닭에 웃음으로나마 보답해주려는 것이다.
“어쨌든 나도 그리 알고 있을테니까 너도 칼레아나에게 그리 전해.”
“에? 칸피니스님이 직접 전하시려던거 아니었어요?”
“물론 나도 기회 되면 이야기할거야. 하지만 네가 먼저 칼레아나에게 말해두라고.”
“예에... 알았어요. 오늘 당장 가서 칼레아나님께 말씀드릴게요.”
“그래. 수고해줘.”
“예. 믿고 맡기시라니까요!”
“알았어.”
“얍!!”
이번에는 양팔을 크게 벌려 알통을 만든다. 양쪽으로 활짝 벌려진 양팔 사이로 소담스럽게 돋아난 하얀 젖가슴이 유난히 선정적이다.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고 싶은 식욕이 속에서 절로 인다.
끝내 욕망을 이기지 못한 칸피니스가 은근히 엘리에게 수작을 건다.
“그건 그렇고 한 번만 더 하고 가면 안될까?”
“안된다고 했잖아요!”
“그러지 말고...”
“미네아한테 혼난단 말예요.”
“괜찮아. 내가 해결해줄게.”
“칸피니스님이 나서면 더 난리피운다구요! 절대 안되요!”
“하지만...”
“마리사라도 불러요.”
“좀 있다 부를거야. 그러니까 그전에...”
“호호호... 좀 있다 부른다구요?”
“응.”
“저 갈래요.”
“에? 벌써?”
“예!”
“한 번만 더 하고 가라니까...”
“이만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뵙죠.”
“엘리야아~~”
단단히 토라진 표정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는 엘리의 뒤에서 칸피니스는 그저 손가락만 빨고 있다. 물론 엘리에게 주눅들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알몸이 하나하나 옷에 의해 가려지는 모습이 유난히 선정적으로 보여 거기에 정신을 집중하는 때문이다.
“야아... 여자 옷입는 것도 무지 섹시하구나.”
“어머... 그것만 보고 있었던 거에요?”
“응. 엘리.... 한 번만 더 벗었다 입으면 안될까?”
“흥! 싫어요!”
“그러지 말고~~”
“싫다니까요!”
“정 그러면 치마만이라도... 아니 치마 속의 속바지를 한 번 벗었다 입어봐. 그거 진짜 섹시하던데...”
“칸피니스님 변태같아~~”
“나 변태 맞으니까 한 번만, 응?”
“꺄아~~ 변태 칸피니스님이라니~~!! 싫어~~!!
“엘리이이~~!!”
“싫어요오~~!!”
칸피니스와 엘리가 시시껍절한 문제로 서로 토닥거리고 있을 때 같은 남별저의 가장 큰 방에서는 심각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나를... 원망하... 오?”
“훗...”
한차례의 섹스가 끝나고 땀에 젖을 알몸으로 에렌프의 역시 땀에 젖은 검은 몸을 안으며 프란츠 포르니르 델킨피에르는 주저하는 듯 에렌프에게 묻는다. 하지만 망설임과 두려움이 진심처럼 진하게 느껴지는 그의 물음에도 에렌프는 그저 조소를 흘려보낼 뿐이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뜻일까? 아마도 그런 뜻일 것이다. 그녀의 냉정한 태도에 프란츠는 다시금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낀다. 지난 17년의 세월동안 계속되어온 일이기에 처음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욱신거리는 뿌리깊은 고질과도 같은 친숙한 아픔이다.
“미안... 하다는 말... 도... 아무 의미가 없겠지.”
“훗...”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
“...”
“당신을... 이리... 이리 만든 것을 정말... 정말...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아... 나는 그때 왜 그런 짓을 했던 것일까? 다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오.”
“...”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절규하고 있지만 이제는 아예 상대할 가치도 없다 생각했는지 작은 조소조차도 들려오지 않는다. 벽에다 얘기하는 양, 허공에 떠드는 양, 그저 프란츠의 목소리만이 둘 사이에 고립되어 있을 뿐이다.
“용서하지 못하겠지? 아니 않겠지? 나라도 그럴테니까. 나라도 내가 한 짓과 같은 행위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니까 나도 용서해달라는 말은 않겠소. 이제 와서 용서해달라 말하는 건 너무도 뻔뻔스러운 태도일테니까.”
“...”
“이제 대답도 않겠다는거요? 이제는 아예 상대하기도 싫어졌소?”
“...”
“후우... 내가 에렌프 당신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이 모든 것이 나의 원죄인 것을. 당신이 그리 나를 원망한다 해도 내 할 말이 없소.”
“...”
“알고 있소. 이렇게 떠들어봐야 말 뿐이라는 것을. 아무리 말로 떠들어봐야 내가 죽은 당신이 가족들은 살아돌아오지 못하지. 당신의 멀어버린 눈이나, 끊겨진 다리의 근육이 다시 원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말로만, 그저 자기만족만을 위한 기만일 뿐일 것이오.”
“...”
에렌프의 침묵에 깊은 아픔을 느끼면서도 프란츠는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은 마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말하는 듯하다.
“솔직히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소.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그래서 당신을 소유하고자 그리 무리했던 것이라고, 나의 잔인함을, 나의 이기적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켜왔소.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소. 나는 사랑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사용했던 거요. 내 행동을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먼저였는지,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 먼저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 모든 말과 행동은 거짓이었던 거요. 나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위장된 거짓. 나는 그를 위해 당신에게 이리도 몹쓸짓을 했었던 거라 할 수 있지.”
“...”
“아마 당신을 그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을거요.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고 인정할만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나에게 그리도 차가운 것이겠지. 당신이 보기에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고 위선적인 존재였을까? 증오의 대상이면서도 가소롭고 애초로운 존재로 여겨졌겠지. 이제와 그리 생각하니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소.”
“...”
작은 동요라도 느껴지기를 바랬건만 그의 뼈아픈 진심 앞에서도 에렌프는 차가운 얼음의 벽을 허물지 않는다. 프란츠가 그 얼음을 녹이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다가서 보지만 오히려 얼음의 차가움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입을 뿐이다.
“휴우... 어떻게 해도 나는 당신의 진심을 없는 것이로군. 역시 수파니인 것인가? 나조차도 모르는 거짓과 허세, 위선을 언제나 예민하고 정확하게 알아챌 수 있는 건 역시 수파니인 때문이겠지? 아마 지금도 나는 진심이라 말하면서도 내가 모르는 거짓과 위선에 도취되어 있었을게야. 당신은 그것을 느꼈기에 여전히 그리도 차가운 것이고.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어. 당신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아니 불가능하게 만든건 나겠지. 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놓고서, 그것이 가능하기를 바래왔던 거야. 그러니 당신과 나 사이는 십수년이 지나도 여전한 것일테고.”
“...”
“이제야 모든 것을 알 것 같소. 그리고 내가 어찌해야 할지도 알겠소. 최소한 당신에게 경멸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 지 어렴풋이나마 보이오. 그러나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듯하오.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라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역부족이오. 이해하시겠소?”
“...니스”
프란츠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에렌프의 입이 비로소 열리느 듯 하다. 너무도 작은 목소리라.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분명 에렌프의 입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프란츠는 반가운 마음에 급히 달려들어 에렌프의 입에 귀를 기울인다.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필사적인 기세로 그의 모든 신경을 귀에 모은 채 에렌프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작은 소리에 정신을 집중한다.
“칸피니스... 칸피니스를 살려줘. 그... 그 아이만은...”
“칸피니스를?”
끄덕--
작게 끄덕이는 고개짓. 이 상황에서조차 칸피니스만을 챙기는 것이 왠지 화가 난다. 차라리 칸피니스가 그의 아들이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녀에게 있어 칸피니스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아들일 뿐이다. 자신과는 무관한 오로지 그녀 자신만의 아들일 뿐이다. 그것을 알기에 분노는 어느새 질투가 되어 그의 마음을 잠식한다.
“칸... 피니스를 살려주기를 바라오?”
끄덕--
“그가 내 아들이라서?”
도리--
역시 생각했던대로. 그녀는 칸피니스를 프란츠의 아들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가슴 깊은 곳이 가시가 박힌 듯 욱신거리며 아파온다. 그 가시의 이름은 바로 질투다.
“당신의 아들이기에 살려달라는 것이오?”
끄덕--
“내가 왜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지?”
“화... 대...”
“화... 대?”
“그래. 화대. 그동안 내 몸을 안은 화대. 한 번도 주지 않은 그것 대신 칸피니스를...”
화대. 화대다. 프란츠는 차라리 허탈하기만 하다. 결국 그의 진심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프란츠와의 섹스는 프란츠의 권력에 의한 강간이면서 또한 칸피니스를 위한 거래로서의 성매매였을 뿐이다. 프란츠가 기대한 작은 정마저도 그의 오만이 만들어낸 헛된 바람이었던 것이다.
“알... 았소. 마지막... 화대로...”
“...”
“화대를 지불하기로 하지. 칸... 피니스를... 살려주겠소.”
“...”
할 말을 마친 것일까? 에렌프는 다시 침묵 속으로 잠겨든다. 무슨 말을 하든 듣지 못한다는 듯 무감동한 표정으로 초점없는 눈을 허공에 고정시키고 있을 뿐이다.
“더이상 나와는 이야기하지 않을 작정이오?”
“...”
“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오늘로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그런데도.... 다... 당신은...?”
부질없는 바람일 뿐이다. 이미 에렌프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멀어버린 눈으로는 당연히 그를 볼 수 없다. 그녀에게 있어 더 이상 프란츠는 그녀의 주위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 프란츠의 애절함은 그저 혼자만의 외침에 불과하다
“에... 에렌프... 에렌프... 에렌프... 제발... 제발...”
“...”
“에렌프... 에렌프...”
듣는 이조차도 가슴이 찢어질 듯한 서럽고 아픈 매달림조차도 그저 덧없고 의미없이, 표정없이 누워있는 에렌프의 주위로 흩어져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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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몸살은 대충 나은 것 같은데 고열과 가래, 기침, 근육통등의 감기증세를 견뎌내느라 체력이 바닥난 모양입니다. 도무지 글 쓸 기운도 정신도 아니로군요. 그래서 평소보다 한 편 쓰는 데 두 배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서 체력이 회복되어야 취직도 할텐데...
색마검천황에 비해 색검마도지성전은 섹스의 직접묘사보다는 간접묘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쪽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노골적인 묘사를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보다는 은밀히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보는 듯한 관음증적인 것이 더 좋아 그쪽에 비중을 더 두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회예고>> 프란츠가 사냥가자고 꼬신다. 갈거냐, 칸피니스? 에렌프가 쫓아내는 바람에 칸피니스는 원치 않는 사람과 원치않는 사냥을 떠나게 되는데...
예고편과 본편이 이번에는 일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없지않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억지로 쥐어짠 코맹맹이 소리. 한껏 귀엽게 보이려 애써보지만 정작 듣는 이는 반응이 없다.
“칸피니스님~~”
한껏 목소리를 키우니 그제야 약간의 반응이 있다.
“왜?”
귀찮아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지만 엘리는 그가 대답했다는 이유만으로 반갑기만 하다.
“그냥...”
“그냥?”
“예...”
“그럼 그냥 자라.”
“칫...”
오늘따라 칸피니스가 저기압이다. 평소 하녀라 해서 이리 무시하는 말투를 쓸 그가 아닌데, 무언가 안좋은 일이 있었던 듯 싶다.
“저기...”
“또 왜?”
“오늘 뭔가 안좋은 일 있으셨어요?”
“왜?”
“그게... 기분이 안좋아... 보이셔... 서...”
“그렇게 보이니?”
“예!”
그제서야 칸피니스가 고개를 돌리고 엘리를 바라본다. 자신을 향해 눈을 맞춰오는 칸피닛의 모습에 엘리의 얼굴이 좀더 밝아진다.
“조금 그럴 일이 있었어.”
“그... 럴... 일요?”
“응.”
“그렇... 군요.”
말해주기 싫다고 노골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데 더 캐묻는 것은 무리다.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칸피니스는 귀족이고 엘리는 하녀다. 육체관계 좀 있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왜? 궁금해?”
“예...”
말해주려는 것일까?
“하지만 말할만한 게 못돼. 넌 모르는게 좋아.”
“예...”
하지만 역시나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약간 심통이 난다. 그렇다고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심통이 난 것 뿐이다.
“저기...”
“왜?”
“칼레아나님과...”
“아아... 그거?”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이고 말투다. 자신을 굳이 자기 방으로 부른 이유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심통은 분노로 바뀌어간다. 물론 이번에도 분노할 뿐이다.
“그것 때문에 저를 부르신거잖아요?”
“그랬나?”
“그랬어요!”
“하하하... 미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간만에 엘리를 안으니 너무 좋아서 말이지. 그동안 몸이 많이 자랐어. 운동도 많이 했는지 몸도 탄탄해졌고, 골반과 젖가슴도 성장했고, 무엇보다...”
“아앗!”
“여기가... 보지가 많이 단련되었어. 정말 빨려들어가 죽는 줄 알았다니까.”
자기가 좋아서 용무까지 잊었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심통이고 화고 한 순간에 다 녹아버린다. 보지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칸피니스의 손가락에 어느새 그녀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다.
“하... 하지만...”
“음... 우리가 무슨 얘기 중이었지?”
“하... 학... 칼레... 아... 나님...”
“아하... 그거였지?”
“예...”
“언제가 좋을 것 같아?”
“예?”
“언제가 좋을 것 같냐구?”
“무슨...?”
뜬금없는 물음에 엘리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손가락이라도 얌전히 있었으면 좋으련만 어느새 다른 손이 젖가슴마저 쓰다듬어오니 뭘 묻고, 뭘 대답해야 하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칼레아나의 방에 언제쯤 잠입하면 좋겠느냐고?”
“네에?”
하지만 칸피니스의 말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던 그녀의 이성을 되돌리기에 충분한 파괴력이 있다. 어느새 엘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몸을 바로하고 칸피니스를 바라보고 있다.
“칼레아나님의 방에... 잠... 입이요?”
“그래. 왜 무슨 문제 있어?”
“그거... 칼레아... 나... 님도...?”
“아아... 당연히 그녀도 동의한 거지. 아니 그녀가 조른 거라고 하는게 맞을거야. 얼른 잠입해서 처녀를 가져가라며 어찌나 졸라대던지...”
“카... 칼레... 아나... 님이요?”
“응”
믿을 수 없다. 칼레아나가 어떤 아가씨이던가? 알렌 토르 기란스와의 일로 남자라면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던 아가씨 아닌가? 몸을 꾸미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남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싫어하던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잠입해달라고 칸피니스에게 졸랐다니. 아무리 그 대상이 칸피니스라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다.
“믿기지 않나보네?”
“예... 아무래도...”
“하지만 사실인걸?”
“저... 정말이요?”
“그래. 정 믿기지 않으면 칼레아나에게 직접 물어봐. 어차피 내가 네게 이 일에 대해 여러 가지 말해두기로 했었으니까 물어보면 잘 가르쳐줄거야.”
“지... 진짜인가봐...”
“정말이라니까!!”
“그... 그렇지만...”
믿기지 않더라도 믿을 수밖에 없다. 칸피니스는 한 번도 강간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남자다. 귀족치고는 드물게 하녀라 할지라도 유혹과 설득을 통해 동의를 이끌어낸 다음에 섹스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복누이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기 위해 잠입할 까닭이 없다. 그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제게... 하실... 말씀은...?”
사실을 인정하니 목소리가 절로 떨려온다. 아무리 여자관계가 복잡한 칸피니스이고, 그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직접 듣는다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대상이 자신의 상전이니, 질투와 두려움에 자신의 목소리조차 주체치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별 거 아냐. 언제쯤 칼레아나의 방에 잠입해 들어가면 좋을까 하는 점과 - 이건 아무래도 당사자보다야 주위의 소소한 일들을 챙겨야 하는 하녀가 잘 알테니까 - 그때 시끄럽지 않게 주위를 정리해두라는 거. 대충 이정도? 내가 말하려는 건 이정도야.”
“예에...”
결국 자신과 육체관계에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안으러 가는 날짜를 정해주고, 보다 편하게 섹스할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해주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아직 남녀관계의 일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지만 본능적인 질투와 굴욕감에 표정이 하얗게 굳어버린다.
“왜? 싫어?”
“저... 그게...”
“싫구나? 표정에 그렇게 쓰여 있는데?”
“그...”
그녀가 온몸으로 거부를 표시하고 있음에도 칸피니스는 조금도 동요치 않는다.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녀를 책망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럴 줄 알았다는 자신만만한 고집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싫은거야?”
“저기...”
이미 모든 걸 결정한 상태다. 괜히 싫다고 해봐야 모든 걸 안다는 듯 자신만만한 저 표정이 바뀔 리도 없다. 더구나 자칫하면 미움받을 수도 있다. 고작해야 섹스파트너에 불과한 관계이지만 결코 그런 이유로 깨뜨리고 싶지 않다.
“본심을 말해봐. 싫어?”
“아... 아니... 그게...”
“싫으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다른...”
“미네아.”
“미네아?”
미네아는 엘리와 함께 칼레아나를 전담하는 하녀다. 엘리보다 몇 년 먼저 하녀를 들어와 칼레아나을 시종했기 때문에 엘리에게는 선배가 된다. 그것도 아주 고양하고 얄미운 선배다.
“그래. 미네아를 살짝 유혹한 다음에 걔한테 부탁하면 돼.”
어쩔 수 없다. 다른 여자와는 몰라도 미네아 하고만은 칸피니스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다른 여자에게의 안내역과 도우미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엘리는 끝내 굴복하고 만다.
“알았어요. 할게요.”
“해줄거야?”
“예.”
“고마워. 엘리라면 해주겠다고 말해줄거라 믿고 있었어. 정말... 정말 고마워.”
얄밉다가도 저리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지어진다. 그토록 귀족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하녀장에게 교육받았음에도 어느새 이 어처구니 없는 남자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지도 않은 독점욕에 당치않은 고집을 부릴 정도로 제대로 빠져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칼레아나님은 어떻게 꼬신거에요?”
“응? 칼레아나?”
“저처럼 길 가르쳐준다고 해놓고 으슥한 곳으로 끌어들여서...?”
“에? 걔는 나보다 이 성의 지리에 대해 더 잘 안다구. 그런 건 그때의 너처럼 처음 성에 들어와 어리버리한 아이들에게나 하는거야.”
“예? 어리버리?”
“아니었다고 생각하는거야?”
“하지만...”
“맞잖아. 어리버리. 길도 못찾아서 안절부절하는 게 얼마나 귀여웠는지...”
“귀여워서 절 으슥한 방으로 유인한 건가요?”
“따라온 건 너라구.”
“하지만 나는 성의 지리 같은 건 몰랐다구요.”
“방 앞의 갈림길에서 분명 네가 갈 길을 가르쳐주었었어. 기억 안나니?”
“쳇... 그치만...”
생각해보면 어리버리라는 말처럼 그때 상황에 들어맞는 표현은 없는 듯싶다. 칸피니스가 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이끌려 이리저리 휘둘리다보니 어느새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가 길을 가르쳐주었을 때도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그의 곁에 머물렀고, 그 결과가 지금 알몸으로 침대 위에 같이 뒹구는 상황이다. 자신도 뭐가 어찌되는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말 그대로 어리버리하다 당해버렸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진다. 몇 달 전인데 철없는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어른의 심정으로 차마 돌이켜 생각하기 싫은 그때 생각에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이 피부 밑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다.
“맞잖아. 너도 인정하지?”
“그... 그러니까...”
“인정하잖아? 그지?”
“카... 칼레아나 님 얘기를 하는 중이라구요.”
“에? 말 돌리는거야?”
“그게 아니라... 그... 그쪽이 본론이니까...”
“흐음... 그래?”
눈을 가늘게 뜨고 위아래로 훑어보는 칸피니스의 시선에 엘리는 내심 뜨끔함을 느낀다. 하지만 한 번 기세에서 밀리면 그 뒤는 돌이킬 수 없다. 꿋꿋하게 버텨야 한다. 그것이 그녀가 하녀로 들어온 셋째날 칸피니스에게 배운 첫 번째 교훈이었다.
“카... 칼레아나... 님은 어... 어떻게 꼬시셨어요?”
“궁금해?”
“예.”
“흐음... 말해줄까?”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이쯤에서 화제를 돌리려는 엘리의 시도를 굳이 방해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엘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원래의 화제로 돌아간다.
“어서 말해주세요. 어떻게 꼬신거죠?”
“음...”
“음...?”
“말해주어야 하나?”
“칸피니스 니임~~”
“흐음... 어떨까?”
“칸피니스 니이이이임~~ 이이잉~~”
“왠 닭살이야?”
“말해줘요오~~”
“하지만 너도 말 안해준 거 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구요. 여존남비 몰라요?”
“여존남비?”
“여자는 존귀하고 남자는 비천하니 세상은 여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호오... 정말 심오한 진리로군. 도대체 어떤 천재가 그런 말을 한거지?”
순수한 감탄을 표하는 칸피니스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며 엘리는 손가락을 들어 칸피니스를 가리킨다.
“나?”
끄덕-
“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야?”
끄덕-
“오오오오...”
“....?”
“내가 천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런 인생과 우주의 진리가 담긴 깨달음을 담은 명언까지 남겼을 줄이야. 새삼 나의 재능이 두려워지는구나. 아아... 하늘은 어찌 인간을 내고 나를 다시 세상에 냈단 말인가?”
콰당--!!
충격이 컸던 탓일까? 앉은 자세로 손가락으로 칸피니스를 가리키고 있던 엘리의 몸이 기우뚱거리더니 그대로 침대 아래로 떨어진다. 카페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치고는 꽤 큰 소리가 난 것을 보니 꽤 아플 것 같다.
“에... 엘리! 괜찮아?”
칸피니스가 다급히 침대가로 다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엘리는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초점조차 잡히지 않은 채 천정의 무늬를 반사하고 있는 그녀의 푸른 눈에 비치는 감정은 “어이없다!”.
“어이~~ 엘리! 엘리!”
칸피니스가 한참을 수선피우고 나서야 엘리의 눈이 비로소 초점을 회복한다. 초점이 잡힌 그녀의 푸른 눈이 노골적으로 칸피니스에게로 향한다. 그녀의 눈빛이 말하는 바는 조금전과는 조금 다르다.
“너 바보 아냐?”
물론 소리내어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눈빛과 같은 눈빛이 자신을 향할 때 항상 곁들여지던 말이니 그리 짐작한 것 뿐이다. 아마도 그 짐작은 틀리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리 인정하고 나면 왠지 서럽다. 그냥 모른체 하는 게 낫다.
“괜찮아?”
“칸피니스... 님...”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머리가 조금...”
“음? 머리를 찧은거야?”
“바닥에 찧은 건 아니지만 조금 정신이...”
“그래?”
“뭔가 들어서는 안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욱신거려요.”
확실하다. 이 여자도 히리스와 같은 과다. 이런 식으로 은근히 사람을 갈구는 것은 그녀의 방식이다. 괜히 나서봐야 좋은 꼴 볼 리 없으니 참고 넘어가지만 역시나 기분 나쁘다.
“그거 외에는 다른데 안좋은 데는 없고?”
“예...”
“그래. 그거 다행이다.”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이러고 있으니 칸피니스님 같아요.”
“그래? 하하하... 칭찬 고마워.”
“아까는...”
“아까는... 뭐?”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래? 하하하...”
한 대 때려주고 싶다. 하지만 때릴 수 없다. 그가 SM으로 취향을 바꾸기 전에는 결코 여자를 때릴 수 없다. 색마의 슬픈 속성이다. 그저 꾹꾹 눌러 참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은 없다.
“자아...”
“고마워요.”
본능처럼 내민 손을 잡고 침대위로 올라오는 15살짜리의 앳된 몸이 그의 눈을 아프게 찔려온다. 채 자라지 못한 젖가슴, 이제 막 털이 자라기 시작한 밋밋한 보지, 뽀송뽀송한, 기름이 묻어날 것만 같은 하얀 피부. 절로 자지에 힘이 들어간다.
“한 번 더 할래?”
“예?”
“그냥... 지금 한 번 더...”
“지금요?”
“응.”
“하지만 저 가봐야 하는데...”
“그런가?”
“예. 오늘밤은 제가 칼레아나 아가씨의 옆을 지켜야 하거든요.”
“그랬지. 쩝... 아깝다.”
“훗... 침흘러요.”
“네가 너무 맛있겠어서...”
“어머... 그런 노골적인 말을...?”
“어머... 그런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표정을...?”
“풋...”
“하하하... 어쩔 수 없네.”
아쉽기는 엘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녀는 칸피니스의 정부로서 델킨피에르 성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하녀로 일하기 위해 들어왔다. 따라서 하녀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칸피니스가 영주가 되어 그녀를 자신의 정부로 삼기 전까지는 아쉽지만 그리 해야 한다.
“어차피 저 나가고 나면 다른 여자 들이실 거잖아요?”
“하지만 난 너랑 하고 싶은걸. 내 자지를 세운건 너란 말야.”
“헤에... 그거 영광이네요?”
“그렇지?”
“하지만 그 자지는 아무나 여자만 보면 서는 자지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만...”
“저 대신 다른 여자 불러들여서 달래세요. 정 자지가 자기 세워준 여자랑 해야한다고 고집하면 적당히 힘 뺀 다음에 여자 불러와서 다시 세우면 되죠.”
“그것도 괜찮겠지.”
여전히 아쉬운 표정이다. 그 표정이 너무나 귀여워 볼을 잡고 마음껏 흔들어주고 싶어진다. 자기보다 머리 두어개는 더 큰 키에의 사내라는 사실은 이 순간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한다.
“저기...”
“응?”
“볼...”
“볼...?”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냥...”
“싱겁긴...”
엘리가 자신의 볼을 꼬집은 채 쥐고 흔들려 했다는 사실을 다행히 칸피니스는 모른다. 아마도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알았다면 저리 방심한 표정으로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이지는 못할테니까. 그의 웃음을 보면서 엘리는 더욱 커지는 아쉬움을 달랜다.
“언제쯤 칼레아나 아가씨 방을 습격하실 생각이세요?”
“으음... 언제가 좋을까? 엘리가 보기엔 언제가 좋을 것 같아?”
“으음... 글쎄요...?”
“잘 생각해봐. 다른 사람들이 중간에 방문할 염려가 없고, 칼레아나가 밤에 일찍 들어올 수 있는 날로. 언제가 좋을 것 같아?”
“음... 내일? 아냐. 내일은... 역시 모레? 모레는 조금 불안한데... 음... 그날은... 음... 그건 그렇고, 이건 이러니까... 음... 음...”
“내일도 모레도 안되는거야?”
“어제 칼레아나 아가씨의 외삼촌이 오셨잖아요. 그분이 조금... 에... 뭐 그런 분이라서 칼레아나 아가씨가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을거에요. 평소처럼 행동한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대신 주위에 감시를 좀더 강화하겠죠. 내일, 모레, 글피까지 계신다고 하시는 것 같던데... 하여튼 그동안은 어려울 거에요.”
“그래?”
칼레아나의 외삼촌이라면 플로네츠 남작가의 소가주인 토르넬 플로네츠를 말할 것이다. 몇 번 본 적이 있어 칸피니스도 잘 알고 있다. 귀족다운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원칙주의자로, 대단한 야심가라는 것이 그때의 만남으로 토르넬에서 느낀 인상이었다. 그런 인간이 들른다면 아무래도 칼레아나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엘리의 말대로 그가 있는 동안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글피에는 그날은 미네아가 당번이니 역시... 바꾼다고 해도... 음... 아무래도 내가 당번인 날이 좋을텐데... 음... 그 다음날... 그러니까 닷새 뒤가 제일 좋으려나? 그날은... 음... 음... 일단 저녁시간은 자유로우니까... 음...”
“닷새 뒤?”
“음... 아마도 그 날이 가장 나을 거에요. 예정된 큰 일은 없으니까요. 작은 일도 저녁의 일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고. 뭐 방해될 것 같은 일이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니까요.”
엘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팔에 힘을 주어 알통을 만들어보인다. 남자들이 흔히 믿어달라 말하며 자기를 과시할 때 쓰는 바로 그 자세다. 알몸으로 보여주는 귀여우면서도 왠지 에로틱한 모습에 칸피니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훗... 그럼 엘리를 믿고 닷새 뒤에 가보도록 하지. 믿어도 되겠지?”
“믿으라니까요!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테니.”
“알았어. 엘리만 믿을게.”
“믿어요!”
“알았어.”
엘리가 혀를 살짝 내밀어보이며 예의 그 포즈를 취해보이자 칸피니스는 함뿍 웃음을 지어 그녀를 격려한다. 싫은 일임에도 저리 적극적으로 나서는 마음을 아는 까닭에 웃음으로나마 보답해주려는 것이다.
“어쨌든 나도 그리 알고 있을테니까 너도 칼레아나에게 그리 전해.”
“에? 칸피니스님이 직접 전하시려던거 아니었어요?”
“물론 나도 기회 되면 이야기할거야. 하지만 네가 먼저 칼레아나에게 말해두라고.”
“예에... 알았어요. 오늘 당장 가서 칼레아나님께 말씀드릴게요.”
“그래. 수고해줘.”
“예. 믿고 맡기시라니까요!”
“알았어.”
“얍!!”
이번에는 양팔을 크게 벌려 알통을 만든다. 양쪽으로 활짝 벌려진 양팔 사이로 소담스럽게 돋아난 하얀 젖가슴이 유난히 선정적이다.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고 싶은 식욕이 속에서 절로 인다.
끝내 욕망을 이기지 못한 칸피니스가 은근히 엘리에게 수작을 건다.
“그건 그렇고 한 번만 더 하고 가면 안될까?”
“안된다고 했잖아요!”
“그러지 말고...”
“미네아한테 혼난단 말예요.”
“괜찮아. 내가 해결해줄게.”
“칸피니스님이 나서면 더 난리피운다구요! 절대 안되요!”
“하지만...”
“마리사라도 불러요.”
“좀 있다 부를거야. 그러니까 그전에...”
“호호호... 좀 있다 부른다구요?”
“응.”
“저 갈래요.”
“에? 벌써?”
“예!”
“한 번만 더 하고 가라니까...”
“이만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뵙죠.”
“엘리야아~~”
단단히 토라진 표정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는 엘리의 뒤에서 칸피니스는 그저 손가락만 빨고 있다. 물론 엘리에게 주눅들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알몸이 하나하나 옷에 의해 가려지는 모습이 유난히 선정적으로 보여 거기에 정신을 집중하는 때문이다.
“야아... 여자 옷입는 것도 무지 섹시하구나.”
“어머... 그것만 보고 있었던 거에요?”
“응. 엘리.... 한 번만 더 벗었다 입으면 안될까?”
“흥! 싫어요!”
“그러지 말고~~”
“싫다니까요!”
“정 그러면 치마만이라도... 아니 치마 속의 속바지를 한 번 벗었다 입어봐. 그거 진짜 섹시하던데...”
“칸피니스님 변태같아~~”
“나 변태 맞으니까 한 번만, 응?”
“꺄아~~ 변태 칸피니스님이라니~~!! 싫어~~!!
“엘리이이~~!!”
“싫어요오~~!!”
칸피니스와 엘리가 시시껍절한 문제로 서로 토닥거리고 있을 때 같은 남별저의 가장 큰 방에서는 심각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나를... 원망하... 오?”
“훗...”
한차례의 섹스가 끝나고 땀에 젖을 알몸으로 에렌프의 역시 땀에 젖은 검은 몸을 안으며 프란츠 포르니르 델킨피에르는 주저하는 듯 에렌프에게 묻는다. 하지만 망설임과 두려움이 진심처럼 진하게 느껴지는 그의 물음에도 에렌프는 그저 조소를 흘려보낼 뿐이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뜻일까? 아마도 그런 뜻일 것이다. 그녀의 냉정한 태도에 프란츠는 다시금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낀다. 지난 17년의 세월동안 계속되어온 일이기에 처음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욱신거리는 뿌리깊은 고질과도 같은 친숙한 아픔이다.
“미안... 하다는 말... 도... 아무 의미가 없겠지.”
“훗...”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
“...”
“당신을... 이리... 이리 만든 것을 정말... 정말...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아... 나는 그때 왜 그런 짓을 했던 것일까? 다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오.”
“...”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절규하고 있지만 이제는 아예 상대할 가치도 없다 생각했는지 작은 조소조차도 들려오지 않는다. 벽에다 얘기하는 양, 허공에 떠드는 양, 그저 프란츠의 목소리만이 둘 사이에 고립되어 있을 뿐이다.
“용서하지 못하겠지? 아니 않겠지? 나라도 그럴테니까. 나라도 내가 한 짓과 같은 행위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니까 나도 용서해달라는 말은 않겠소. 이제 와서 용서해달라 말하는 건 너무도 뻔뻔스러운 태도일테니까.”
“...”
“이제 대답도 않겠다는거요? 이제는 아예 상대하기도 싫어졌소?”
“...”
“후우... 내가 에렌프 당신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이 모든 것이 나의 원죄인 것을. 당신이 그리 나를 원망한다 해도 내 할 말이 없소.”
“...”
“알고 있소. 이렇게 떠들어봐야 말 뿐이라는 것을. 아무리 말로 떠들어봐야 내가 죽은 당신이 가족들은 살아돌아오지 못하지. 당신의 멀어버린 눈이나, 끊겨진 다리의 근육이 다시 원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말로만, 그저 자기만족만을 위한 기만일 뿐일 것이오.”
“...”
에렌프의 침묵에 깊은 아픔을 느끼면서도 프란츠는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은 마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말하는 듯하다.
“솔직히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소.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그래서 당신을 소유하고자 그리 무리했던 것이라고, 나의 잔인함을, 나의 이기적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켜왔소.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소. 나는 사랑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사용했던 거요. 내 행동을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먼저였는지,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 먼저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 모든 말과 행동은 거짓이었던 거요. 나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위장된 거짓. 나는 그를 위해 당신에게 이리도 몹쓸짓을 했었던 거라 할 수 있지.”
“...”
“아마 당신을 그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을거요.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고 인정할만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나에게 그리도 차가운 것이겠지. 당신이 보기에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고 위선적인 존재였을까? 증오의 대상이면서도 가소롭고 애초로운 존재로 여겨졌겠지. 이제와 그리 생각하니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소.”
“...”
작은 동요라도 느껴지기를 바랬건만 그의 뼈아픈 진심 앞에서도 에렌프는 차가운 얼음의 벽을 허물지 않는다. 프란츠가 그 얼음을 녹이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다가서 보지만 오히려 얼음의 차가움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입을 뿐이다.
“휴우... 어떻게 해도 나는 당신의 진심을 없는 것이로군. 역시 수파니인 것인가? 나조차도 모르는 거짓과 허세, 위선을 언제나 예민하고 정확하게 알아챌 수 있는 건 역시 수파니인 때문이겠지? 아마 지금도 나는 진심이라 말하면서도 내가 모르는 거짓과 위선에 도취되어 있었을게야. 당신은 그것을 느꼈기에 여전히 그리도 차가운 것이고.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어. 당신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아니 불가능하게 만든건 나겠지. 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놓고서, 그것이 가능하기를 바래왔던 거야. 그러니 당신과 나 사이는 십수년이 지나도 여전한 것일테고.”
“...”
“이제야 모든 것을 알 것 같소. 그리고 내가 어찌해야 할지도 알겠소. 최소한 당신에게 경멸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 지 어렴풋이나마 보이오. 그러나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듯하오.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라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역부족이오. 이해하시겠소?”
“...니스”
프란츠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에렌프의 입이 비로소 열리느 듯 하다. 너무도 작은 목소리라.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분명 에렌프의 입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프란츠는 반가운 마음에 급히 달려들어 에렌프의 입에 귀를 기울인다.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필사적인 기세로 그의 모든 신경을 귀에 모은 채 에렌프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작은 소리에 정신을 집중한다.
“칸피니스... 칸피니스를 살려줘. 그... 그 아이만은...”
“칸피니스를?”
끄덕--
작게 끄덕이는 고개짓. 이 상황에서조차 칸피니스만을 챙기는 것이 왠지 화가 난다. 차라리 칸피니스가 그의 아들이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녀에게 있어 칸피니스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아들일 뿐이다. 자신과는 무관한 오로지 그녀 자신만의 아들일 뿐이다. 그것을 알기에 분노는 어느새 질투가 되어 그의 마음을 잠식한다.
“칸... 피니스를 살려주기를 바라오?”
끄덕--
“그가 내 아들이라서?”
도리--
역시 생각했던대로. 그녀는 칸피니스를 프란츠의 아들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가슴 깊은 곳이 가시가 박힌 듯 욱신거리며 아파온다. 그 가시의 이름은 바로 질투다.
“당신의 아들이기에 살려달라는 것이오?”
끄덕--
“내가 왜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지?”
“화... 대...”
“화... 대?”
“그래. 화대. 그동안 내 몸을 안은 화대. 한 번도 주지 않은 그것 대신 칸피니스를...”
화대. 화대다. 프란츠는 차라리 허탈하기만 하다. 결국 그의 진심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프란츠와의 섹스는 프란츠의 권력에 의한 강간이면서 또한 칸피니스를 위한 거래로서의 성매매였을 뿐이다. 프란츠가 기대한 작은 정마저도 그의 오만이 만들어낸 헛된 바람이었던 것이다.
“알... 았소. 마지막... 화대로...”
“...”
“화대를 지불하기로 하지. 칸... 피니스를... 살려주겠소.”
“...”
할 말을 마친 것일까? 에렌프는 다시 침묵 속으로 잠겨든다. 무슨 말을 하든 듣지 못한다는 듯 무감동한 표정으로 초점없는 눈을 허공에 고정시키고 있을 뿐이다.
“더이상 나와는 이야기하지 않을 작정이오?”
“...”
“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오늘로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그런데도.... 다... 당신은...?”
부질없는 바람일 뿐이다. 이미 에렌프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멀어버린 눈으로는 당연히 그를 볼 수 없다. 그녀에게 있어 더 이상 프란츠는 그녀의 주위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 프란츠의 애절함은 그저 혼자만의 외침에 불과하다
“에... 에렌프... 에렌프... 에렌프... 제발... 제발...”
“...”
“에렌프... 에렌프...”
듣는 이조차도 가슴이 찢어질 듯한 서럽고 아픈 매달림조차도 그저 덧없고 의미없이, 표정없이 누워있는 에렌프의 주위로 흩어져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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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몸살은 대충 나은 것 같은데 고열과 가래, 기침, 근육통등의 감기증세를 견뎌내느라 체력이 바닥난 모양입니다. 도무지 글 쓸 기운도 정신도 아니로군요. 그래서 평소보다 한 편 쓰는 데 두 배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서 체력이 회복되어야 취직도 할텐데...
색마검천황에 비해 색검마도지성전은 섹스의 직접묘사보다는 간접묘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쪽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노골적인 묘사를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보다는 은밀히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보는 듯한 관음증적인 것이 더 좋아 그쪽에 비중을 더 두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회예고>> 프란츠가 사냥가자고 꼬신다. 갈거냐, 칸피니스? 에렌프가 쫓아내는 바람에 칸피니스는 원치 않는 사람과 원치않는 사냥을 떠나게 되는데...
예고편과 본편이 이번에는 일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없지않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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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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