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의 내기 - 02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Written by 검은나비
"흐아아암...."
아아, 따분하다. 간만에 휴일이니 쉬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있자니 역시 나른한걸. 결국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복도로 나서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난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여자인가... 으휴.
"으아아아~"
쩝, 그냥 수련이나 할까봐. 언제나처럼 온몸이 땀으로 푹 젖을 때까지 움직이고 나서 맥주나 한잔...
"레이린~~~!!"
...못하겠군.
이녀석은 정말이지, 타이밍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분이 안 간다니까.
멀리서 달려오는 청년이 눈에 담기자 절로 웃음기가 떠올랐다.
여기저기 검게 그을린 분명히 처음에는 깨끗한 밝은 하늘색이던 -내가 사줬으니까- 어두침침한 로브와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카락이 가장 먼저 눈에 띄고, 이내 전체적인 윤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웃는 표정을 보면 뭔가 또 실험에 성공한 건가? 이거 이거, 오늘은 꼼짝없이 붙어있어야겠는걸.
"레이린! 나 성공했어! 성공했다고!"
"그래그래, 뭘 성공했다는 건데?"
"으응! 이거 봐라, 짜안!"
"......응?"
카론이 내놓은 "성공작"을 보는 순간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내 표정, 굉장히 이상하겠지.
아니 그러니까... 대체 이게 뭐야? 혹시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야? 아니 그래도 명색이 내가 소드마스터인데 그럴 리가. 어째 내 눈에는 이게...
"정조대로 보이는데."
"에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카론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젓는 것을 보자 살짝 안도감이 든다.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이녀석이 아무리 살짝 맛이 간 녀석이라고 해도 정조대 따위를 만들겠어? 그래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는...
"이건 섹스용이라고! 난 섹스대라고 이름 붙였어!"
"......"
...취소. 이녀석은 최소한의 상식개념도 없는 자식이다.
아니 이 미친 자식이 지금 여자한테 뭘 보여주는 거야? 아무리 내가 너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란 게 너한테는 없는 거냐? 최소한 그런 건 침대나, 못해도 방 안에서만 말해달라고.
섹스란 단어를 대놓고 복도에서 듣는 여자의 입장도 좀 생각해 봐!
아아, 머리가 다 아파오는 거 같아...
"너... 내가 여자라는 자각은 하고 있어?"
"당연하지. 그러니까 보여주는 거 아냐."
"...."그러니까" 라는 단어의 용법을 내가 잘못 알고있었나?"
이 상황에서 대체 왜 ‘그러니까’ 가 나오는 거야. 대마법사의 사고방식은 무식한 기사와는 다르다 이거냐?
나 가끔은 정말 네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어. 천재는 다들 미친놈이라지만... 넌 좀 많이 미친 거 같단 말이야.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걸...
하루에도 최소한 3번은 하는 고민을 오늘만 2번째로 시작해보려는 찰나, 시야에 아까 그 "정체불명의 금속제 물건"이 들어왔다. 이름 같은 건 몰라. 모르는 거야. 음음.
고개를 들자 싱글싱글 웃는 카론의 얼굴이 보였다.
"자, 그러니까 차 줘."
"....나 정말로 "그러니까"의 의미가 궁금해지려고 하는데 말야.... 대체 이걸 내가 왜 차?"
"응? 그야 이건 여성용인걸."
아니 뭐 딱 봐도 여성용 같긴 하다만. 남자의 물건이 튀어나올 구석은 안 보이니까 말야. 이걸 남자가 입으면 좀 많이 아플거 같긴 해. 그런데...
"그 "여성"이 왜 나냔 말이다."
그래, 문제는 바로 이거지. 신형 아티펙트의 실험을 하고 싶으면 마탑에 가서 지원자를 찾을 일이지 이걸 왜 나한테 떠맡겨?
아무리 내가 튼튼하다고 해도 마법은 좀 무섭단 말야. 귀찮기도 하고... 뭣보다, 아까 그 이름이... 아니,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왠지 수상해서 싫어.
내 가는 눈초리에 카론은 부끄럽다는 듯 몸을 배배 꼬았다.
"그야... 널 생각하며 만든 물건인걸."
".....이게?"
"응."
.....어, 설마 지금 이걸 고마워하라고 하는 소리야? 응? 선물을 줄 거면 차라리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귀걸이라도 사다달라고.
이놈의 아티펙트, 솔직히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말이지.
문득, 과거에 카론이 선물이랍시고 주었던 것들이 눈앞에 스쳐지나갔다.
대폭발을 일으키는 익스플로전 마법이 담긴 귀걸이라던가(풀어서 책상에 놓자 마자 폭발해서 방안이 날아갔다), 플라이 마법을 걸어 하늘을 걷는 신발이라던가(발만 솟구치는 바람에 갑옷채로 넘어져 질질 끌려갔다), 알아서 불을 피워주는 마법의 토치라던가(모닥불 켜려다가 숲 하나를 날려먹었다)....
아니 잠깐만, 나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지? 소드마스터가 아니었으면 진짜 죽어도 10번은 더 죽었다. 흑, 갑자기 눈물이...
"엉? 왜 그래?"
"아니 잠깐, 좀 눈물이 나서..."
"헤에, 그렇게 선물이 마음에 들었어?"
선물 때문에 우는 건 맞는데,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야. 오히려 정 반대라면 모를까.
위대하신 주신 엘라인이시여, 대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저 앞으로 기부 잘 하고 기도도 안 빠지고 집회도 잘 나갈 테니 제발 이 위기 좀 어떻게 넘겨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속으로 간절하게 엘라인을 불렀지만 안타깝게도 엘라인께서는 짜증나거나 힘들 때나 신을 찾는 불민한 신도에게 기적을 선사해주시지 않았다.
"자자, 얼른 차보라구."
"....으...."
아니 솔직히 싫은데 이거.
그렇다고 루비같은 눈을 이렇게 반짝이는데 딱 잘라 거부할 수도 없고... 끄응.
아아, 역시 난 카론한테 너무 약한 거 같아... 흑.
결국 나는 그 금속제 물건을 받아들었다. 분명히 통짜 쇠로 보이건만 이것도 무슨 마법인지, 신기하게도 차갑기는 커녕 비단처럼 부드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외관은 정조대지만.
"이거 팬티처럼 입는 거지?"
"응응. 얼른 차 줘."
"기다려 봐. 입고 올 테니."
막 몸을 돌리려는 내 팔을 카론이 붙잡았다.
뭔가 설명이 남았나?
"여기서 입어."
"....잘 못 들었습니다?"
"여기서 입으라구. 내 앞에서."
.....오, 엘라인이시여! 이 망할 변태자식이 이제는 대놓고 대낮부터 이러고 있습니다!
이녀석은 진짜 제가 여자라는 자각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수치심이라는걸 모른다고 생각하나요? 제발 이 마법과 성욕으로 꽉 찬 변태자식의 머리에 상식을 좀 때려박아 주소서!!
나는 간절히, 정말 간절히 -아까보다 두배는 더- 기도했지만 역시 엘라인께서는 기적을 내려주지 않았다.
엘라인님 미워요... 흑. 후불도 좀 받아주시지. 요즘 후불이 유행인 거 모르시나?
"뭐해, 얼른 안 입고?"
"...최소한 입고 오면 안 될까? 나 좀 창피한데."
"에이, 뭘 그까짓 걸 가지고.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그래도 부끄럽단 말이닷!!!
한두 번이 아니라 수천 번을 보였어도 창피한 건 창피한 거야! 이런 여자의 마음도 모르는 자식 같으니라고!
마음속으로는 벌써 수십 번도 더 이 변태자식의 머리통에 단단한 주먹을 꽂아넣었지만, 현실의 나는 벌써 치마를 벗고 있었다.
으으, 이래봬도 내가 세날 왕국에선 어린아이도 울음을 멈춘다는 제국 황실기사단의 자랑 진홍의 장미(Crimson Rose)인데 이러고 있어... 훌쩍.
팬티를 벗고 정조대 비슷한 그 물건을 차고 서자, 신기하게도 촉감이나 무게는 여느 팬티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거 어째 꼴이 영.
"흐응... 역시 외관이 마음에 안 드네."
"당연한 소릴."
보기 좋다고 했으면 나 이번에는 진짜로 주먹을 날렸을지도 몰라. 회색빛 금속위에 수없이 푸른 룬 문자와 마법진이 그려진 팬티를 입은 여자는 농담으로라도 멋지지 않다고.
소녀... 는 솔직히 아니다만, 레이디의 가슴에 스크래치를 낸단 말이다!
내가 진심을 담아 투덜대자, 잠시 고민하는가 싶던 카론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바꾸자. 라 크루세 하리무아즈...."
"자, 잠깐만. 야! 최소한 벗은 다음에 주문을 외우라고!"
나는 그야말로 허둥지둥 금속제 팬티를 벗어 내렸다.
아우 씨, 이자식이 진짜! 사람이 입고 있는 물건에다가 주문을 외우면 어떻게 해?! 게다가 그 주문은 일루전(Illusion, 환상)도 아니고 폴리모프 익스티리어(Polymorph exterior, 외관 변화) 잖아! 그런 위험한 마법을 마구 외우면 어떻게 하냐고!
그리고 잠시 후, 핑크색 끈팬티 -카론의 취향을 최대로 반영한-로 변한 금속제 팬티가 바닥에 반쯤 합쳐진 것을 보고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저 바닥이 내 엉덩이라고 생각하면... 으으으.
역시 카론 이자식은 믿을게 못 돼.
"쩝, 실패했네. 역시 아티팩트에 마법을 거는 건 좀 어려운데... 음, 아예 마법을 따로 부여해야겠다. 레이린! 이거 고쳐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라 미어리즈 테리포카인... 워프!"
슈우욱!
"....갔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카론의 빈자리를 보며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지간하면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렵겠지? 하아.
....그나저나, 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슬쩍 시야를 내려보니 하체는 완전히 알몸이다. 이거, 거울을 찾아보니 더 꼴불견이네. 대체 복도 한가운데서 상의만 입고 팬티랑 치마를 벗어던진 여자를 뭐라고 봐줘야 할까? 이게 남 일이었으면 나도 변태라고 욕했을 거 같은데... 흑.
이런데서 벗으라고 시킨 카론도 카론이지만, 벗은 난 또 뭐하는 년인지 모르겠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이러다 들키겠다. 시녀나 하인에게 보이기 전에 얼른 옷이나 입어야...
끼익
"....오, 엘라인이시여."
왜 내 불길한 예감은 틀릴 때가 없을까?
대체 언제부터 들어가 있었는지, 시녀 셋이 당황스런 얼굴로 옆방 문에서 나오다 말고 굳어있었다.
"어... 음... 그러니까... 이게 말이지."
뭐, 뭐라고 말해야 하지? 카론이 벗겼다? 아니 벗긴 내가 벗었는데... 그러니까 카론이 아티펙트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게 팬티 스타일이라서 입으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저흰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맞아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마찬가지입니다."
시녀 셋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서는 빠르게 멀어져 갔다.
저기 말이지, 손가락 사이로 눈이 다 보이거든...? 그리고 왜 뒷걸음질로 가는 건데? 돌아서 걸으란 말이야! 완전히 대놓고 보고 있잖아!!!
나는 팬티를 향해 내뻗은 손을 멈춘 채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대체 저건 무슨 플레이일까?"
"혹시 그런 거 아닐까? 방치플레이. 전에 애들한테 들었어."
"하여간, 아가씨도 정말 밝히신다니까. 그래도 복도에서 노출이라니 진짜 대담하시다, 그치?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거 같아. 난 저런 거 절대 못 하는데~"
나도 못 해!!! 사고라고 이건! 사고! Accident! Problem!!!
크흑, 소드마스터의 귀가 밝다는 게 원망스럽다.... 이게 다 카론 때문이야!!!
나는 애써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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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넷 규정상 3,4화는 내일 올라갑니다.
이변이 없다면 수요일날 끝나겠네요.
Written by 검은나비
"흐아아암...."
아아, 따분하다. 간만에 휴일이니 쉬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있자니 역시 나른한걸. 결국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복도로 나서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난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여자인가... 으휴.
"으아아아~"
쩝, 그냥 수련이나 할까봐. 언제나처럼 온몸이 땀으로 푹 젖을 때까지 움직이고 나서 맥주나 한잔...
"레이린~~~!!"
...못하겠군.
이녀석은 정말이지, 타이밍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분이 안 간다니까.
멀리서 달려오는 청년이 눈에 담기자 절로 웃음기가 떠올랐다.
여기저기 검게 그을린 분명히 처음에는 깨끗한 밝은 하늘색이던 -내가 사줬으니까- 어두침침한 로브와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카락이 가장 먼저 눈에 띄고, 이내 전체적인 윤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웃는 표정을 보면 뭔가 또 실험에 성공한 건가? 이거 이거, 오늘은 꼼짝없이 붙어있어야겠는걸.
"레이린! 나 성공했어! 성공했다고!"
"그래그래, 뭘 성공했다는 건데?"
"으응! 이거 봐라, 짜안!"
"......응?"
카론이 내놓은 "성공작"을 보는 순간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내 표정, 굉장히 이상하겠지.
아니 그러니까... 대체 이게 뭐야? 혹시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야? 아니 그래도 명색이 내가 소드마스터인데 그럴 리가. 어째 내 눈에는 이게...
"정조대로 보이는데."
"에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카론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젓는 것을 보자 살짝 안도감이 든다.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이녀석이 아무리 살짝 맛이 간 녀석이라고 해도 정조대 따위를 만들겠어? 그래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는...
"이건 섹스용이라고! 난 섹스대라고 이름 붙였어!"
"......"
...취소. 이녀석은 최소한의 상식개념도 없는 자식이다.
아니 이 미친 자식이 지금 여자한테 뭘 보여주는 거야? 아무리 내가 너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란 게 너한테는 없는 거냐? 최소한 그런 건 침대나, 못해도 방 안에서만 말해달라고.
섹스란 단어를 대놓고 복도에서 듣는 여자의 입장도 좀 생각해 봐!
아아, 머리가 다 아파오는 거 같아...
"너... 내가 여자라는 자각은 하고 있어?"
"당연하지. 그러니까 보여주는 거 아냐."
"...."그러니까" 라는 단어의 용법을 내가 잘못 알고있었나?"
이 상황에서 대체 왜 ‘그러니까’ 가 나오는 거야. 대마법사의 사고방식은 무식한 기사와는 다르다 이거냐?
나 가끔은 정말 네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어. 천재는 다들 미친놈이라지만... 넌 좀 많이 미친 거 같단 말이야.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걸...
하루에도 최소한 3번은 하는 고민을 오늘만 2번째로 시작해보려는 찰나, 시야에 아까 그 "정체불명의 금속제 물건"이 들어왔다. 이름 같은 건 몰라. 모르는 거야. 음음.
고개를 들자 싱글싱글 웃는 카론의 얼굴이 보였다.
"자, 그러니까 차 줘."
"....나 정말로 "그러니까"의 의미가 궁금해지려고 하는데 말야.... 대체 이걸 내가 왜 차?"
"응? 그야 이건 여성용인걸."
아니 뭐 딱 봐도 여성용 같긴 하다만. 남자의 물건이 튀어나올 구석은 안 보이니까 말야. 이걸 남자가 입으면 좀 많이 아플거 같긴 해. 그런데...
"그 "여성"이 왜 나냔 말이다."
그래, 문제는 바로 이거지. 신형 아티펙트의 실험을 하고 싶으면 마탑에 가서 지원자를 찾을 일이지 이걸 왜 나한테 떠맡겨?
아무리 내가 튼튼하다고 해도 마법은 좀 무섭단 말야. 귀찮기도 하고... 뭣보다, 아까 그 이름이... 아니,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왠지 수상해서 싫어.
내 가는 눈초리에 카론은 부끄럽다는 듯 몸을 배배 꼬았다.
"그야... 널 생각하며 만든 물건인걸."
".....이게?"
"응."
.....어, 설마 지금 이걸 고마워하라고 하는 소리야? 응? 선물을 줄 거면 차라리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귀걸이라도 사다달라고.
이놈의 아티펙트, 솔직히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말이지.
문득, 과거에 카론이 선물이랍시고 주었던 것들이 눈앞에 스쳐지나갔다.
대폭발을 일으키는 익스플로전 마법이 담긴 귀걸이라던가(풀어서 책상에 놓자 마자 폭발해서 방안이 날아갔다), 플라이 마법을 걸어 하늘을 걷는 신발이라던가(발만 솟구치는 바람에 갑옷채로 넘어져 질질 끌려갔다), 알아서 불을 피워주는 마법의 토치라던가(모닥불 켜려다가 숲 하나를 날려먹었다)....
아니 잠깐만, 나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지? 소드마스터가 아니었으면 진짜 죽어도 10번은 더 죽었다. 흑, 갑자기 눈물이...
"엉? 왜 그래?"
"아니 잠깐, 좀 눈물이 나서..."
"헤에, 그렇게 선물이 마음에 들었어?"
선물 때문에 우는 건 맞는데,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야. 오히려 정 반대라면 모를까.
위대하신 주신 엘라인이시여, 대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저 앞으로 기부 잘 하고 기도도 안 빠지고 집회도 잘 나갈 테니 제발 이 위기 좀 어떻게 넘겨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속으로 간절하게 엘라인을 불렀지만 안타깝게도 엘라인께서는 짜증나거나 힘들 때나 신을 찾는 불민한 신도에게 기적을 선사해주시지 않았다.
"자자, 얼른 차보라구."
"....으...."
아니 솔직히 싫은데 이거.
그렇다고 루비같은 눈을 이렇게 반짝이는데 딱 잘라 거부할 수도 없고... 끄응.
아아, 역시 난 카론한테 너무 약한 거 같아... 흑.
결국 나는 그 금속제 물건을 받아들었다. 분명히 통짜 쇠로 보이건만 이것도 무슨 마법인지, 신기하게도 차갑기는 커녕 비단처럼 부드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외관은 정조대지만.
"이거 팬티처럼 입는 거지?"
"응응. 얼른 차 줘."
"기다려 봐. 입고 올 테니."
막 몸을 돌리려는 내 팔을 카론이 붙잡았다.
뭔가 설명이 남았나?
"여기서 입어."
"....잘 못 들었습니다?"
"여기서 입으라구. 내 앞에서."
.....오, 엘라인이시여! 이 망할 변태자식이 이제는 대놓고 대낮부터 이러고 있습니다!
이녀석은 진짜 제가 여자라는 자각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수치심이라는걸 모른다고 생각하나요? 제발 이 마법과 성욕으로 꽉 찬 변태자식의 머리에 상식을 좀 때려박아 주소서!!
나는 간절히, 정말 간절히 -아까보다 두배는 더- 기도했지만 역시 엘라인께서는 기적을 내려주지 않았다.
엘라인님 미워요... 흑. 후불도 좀 받아주시지. 요즘 후불이 유행인 거 모르시나?
"뭐해, 얼른 안 입고?"
"...최소한 입고 오면 안 될까? 나 좀 창피한데."
"에이, 뭘 그까짓 걸 가지고.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그래도 부끄럽단 말이닷!!!
한두 번이 아니라 수천 번을 보였어도 창피한 건 창피한 거야! 이런 여자의 마음도 모르는 자식 같으니라고!
마음속으로는 벌써 수십 번도 더 이 변태자식의 머리통에 단단한 주먹을 꽂아넣었지만, 현실의 나는 벌써 치마를 벗고 있었다.
으으, 이래봬도 내가 세날 왕국에선 어린아이도 울음을 멈춘다는 제국 황실기사단의 자랑 진홍의 장미(Crimson Rose)인데 이러고 있어... 훌쩍.
팬티를 벗고 정조대 비슷한 그 물건을 차고 서자, 신기하게도 촉감이나 무게는 여느 팬티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거 어째 꼴이 영.
"흐응... 역시 외관이 마음에 안 드네."
"당연한 소릴."
보기 좋다고 했으면 나 이번에는 진짜로 주먹을 날렸을지도 몰라. 회색빛 금속위에 수없이 푸른 룬 문자와 마법진이 그려진 팬티를 입은 여자는 농담으로라도 멋지지 않다고.
소녀... 는 솔직히 아니다만, 레이디의 가슴에 스크래치를 낸단 말이다!
내가 진심을 담아 투덜대자, 잠시 고민하는가 싶던 카론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바꾸자. 라 크루세 하리무아즈...."
"자, 잠깐만. 야! 최소한 벗은 다음에 주문을 외우라고!"
나는 그야말로 허둥지둥 금속제 팬티를 벗어 내렸다.
아우 씨, 이자식이 진짜! 사람이 입고 있는 물건에다가 주문을 외우면 어떻게 해?! 게다가 그 주문은 일루전(Illusion, 환상)도 아니고 폴리모프 익스티리어(Polymorph exterior, 외관 변화) 잖아! 그런 위험한 마법을 마구 외우면 어떻게 하냐고!
그리고 잠시 후, 핑크색 끈팬티 -카론의 취향을 최대로 반영한-로 변한 금속제 팬티가 바닥에 반쯤 합쳐진 것을 보고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저 바닥이 내 엉덩이라고 생각하면... 으으으.
역시 카론 이자식은 믿을게 못 돼.
"쩝, 실패했네. 역시 아티팩트에 마법을 거는 건 좀 어려운데... 음, 아예 마법을 따로 부여해야겠다. 레이린! 이거 고쳐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라 미어리즈 테리포카인... 워프!"
슈우욱!
"....갔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카론의 빈자리를 보며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지간하면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렵겠지? 하아.
....그나저나, 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슬쩍 시야를 내려보니 하체는 완전히 알몸이다. 이거, 거울을 찾아보니 더 꼴불견이네. 대체 복도 한가운데서 상의만 입고 팬티랑 치마를 벗어던진 여자를 뭐라고 봐줘야 할까? 이게 남 일이었으면 나도 변태라고 욕했을 거 같은데... 흑.
이런데서 벗으라고 시킨 카론도 카론이지만, 벗은 난 또 뭐하는 년인지 모르겠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이러다 들키겠다. 시녀나 하인에게 보이기 전에 얼른 옷이나 입어야...
끼익
"....오, 엘라인이시여."
왜 내 불길한 예감은 틀릴 때가 없을까?
대체 언제부터 들어가 있었는지, 시녀 셋이 당황스런 얼굴로 옆방 문에서 나오다 말고 굳어있었다.
"어... 음... 그러니까... 이게 말이지."
뭐, 뭐라고 말해야 하지? 카론이 벗겼다? 아니 벗긴 내가 벗었는데... 그러니까 카론이 아티펙트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게 팬티 스타일이라서 입으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저흰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맞아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마찬가지입니다."
시녀 셋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서는 빠르게 멀어져 갔다.
저기 말이지, 손가락 사이로 눈이 다 보이거든...? 그리고 왜 뒷걸음질로 가는 건데? 돌아서 걸으란 말이야! 완전히 대놓고 보고 있잖아!!!
나는 팬티를 향해 내뻗은 손을 멈춘 채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대체 저건 무슨 플레이일까?"
"혹시 그런 거 아닐까? 방치플레이. 전에 애들한테 들었어."
"하여간, 아가씨도 정말 밝히신다니까. 그래도 복도에서 노출이라니 진짜 대담하시다, 그치?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거 같아. 난 저런 거 절대 못 하는데~"
나도 못 해!!! 사고라고 이건! 사고! Accident! Problem!!!
크흑, 소드마스터의 귀가 밝다는 게 원망스럽다.... 이게 다 카론 때문이야!!!
나는 애써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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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이 없다면 수요일날 끝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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