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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06 492회 0건
PART TWO - the beginning

「 황실의 안녕을 위협하거나 반역, 혹은 이에 준하는 행위를 계획하거나 선동, 주도한 자는 성별, 나이, 신분을 막론하고 종신 감금형에 처한다. 또한 반역죄를 저지른 자의 가족에게도 같은 형을 적용하며 그에 속한 모든 하인과 노예는 사형시킨다. 단, 반역죄 이전에 제국 혹은 황실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자에 한해 그 가족을 노예의 신분으로 제국과 황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형을 감면할 수 있다. 형 집행은 제10조 1-12항을 따르며 ...(후략) 」
개정 제국법 제10조 1항

- RoL -


METAL 34th, KRANDOR 338

금(金)의 기운이 지(地)의 기운으로 바뀌는 시기여서 그런지 유난히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작은 성을 연상하게 만드는 거대한 저택의 뒤쪽으로 펼쳐진 푸른 나무숲은 바람을 따라 흔들리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地)의 달(月)이 되면 바람이 화(火)의 기운을 머금기 시작하면서 지금 기분 좋게 불고 있는 바람처럼 시원한 느낌은 주지 못하겠지만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는 더위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 휴우~ "

저택의 뒤쪽에 있는 우물가에는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복장을 한 여인이 허리를 쭉 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물을 긷다가 힘이 들어서 그런지 그녀는 주먹 쥔 손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다른 손으로 태양빛을 가린 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 흐으음~ "

잠시 후 그녀는 양손을 하늘로 뻗으며 신선한 공기를 한껏 마시려는 듯 숨을 들이쉬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들어 얼굴에 와 닿는 햇살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해서인지 앳된 얼굴은 평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페릴! "

한동안 늦은 금(金)월의 태양을 만끽하고 있던 그녀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큰소리에 놀라서인지 황급히 뒤로 돌아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 물 뜨는데 하루 온종일 걸리면 어쩌자는 거야?! "

"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페릴" 이라고 불린 예의 그녀는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는 여자를 향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죄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물을 길으러 와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지금 우물을 향해 난 작은 문 앞에 서서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저 여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을 벌할 수 있고 또 멍청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라는 걱정 뿐이었다.

" 제발 용서해 주세요. 한번만... "

" 시끄러워! 빨리 움직이지 않고 뭘 하고 있는거야! "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더욱 호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페릴은 좀 전에 가득 채워놓은 물동이를 양손으로 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하녀 주제에 툭 하면 하늘이나 쳐다보고 말이야.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게 해 주겠어. "

주방에 속한 하녀들의 관리를 맡고 있는 베스는 일주일 전에 새로 들어온 페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한 태도도 태도려니와 말이나 행동도 왠지 건방지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녀가 가끔씩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는 사실이었다.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제대로 앉아 쉬지도 못하는 자신보다 더 여유로워 보이는 페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베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베스는 내심 오늘은 제대로 혼을 내 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못 마땅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물동이를 옮기고 있는 페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 오늘 저녁은 없어! "

페릴은 베스의 말에 혹시라도 그녀에게 들릴까 두려워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잠시 멈췄던 발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지 아직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이 정도의 일엔 익숙해져 버린 그녀였다.

- RoL -


" 경고하는데, 누구든지 페릴에게 먹을걸 주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겠어. "

베스의 말에 식탁의 한쪽 끝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페릴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던 몇 명의 하녀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하녀들이 한데 모여 먹고 있는 것은 수프와 빵만으로 차려진 간단한 저녁식사지만 페릴에게는 이런 간단한 음식조차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뱃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혹시라도 마음씨 착한 누군가가 마른 빵 한 조각이라도 남겨줄지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있던 페릴은 베스의 말에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흑흑... "

물론 이런 페릴의 행동을 그냥 보고 있을 베스가 아니었다.

" 닥치지 못해?! 지금 식사중인거 안보여? 왜 짜증나게 질질 짜고 난리야! "

음식을 주지 않으면서도 식사시간에 딴짓을 하면 안 된다는 핑계로 억지로 페릴을 식탁에 앉혀놓은 베스는 그녀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 너 때문에 체할 것 같으니까 당장 지하실에 가 있어! "

" 베스... "

베스의 행동이 너무했다는 생각에 무언가 말을 하려던 한 하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벌렸던 입을 황급히 다물고 말았다.

" 빨리 가지 않고 뭐해! "

베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자리에 앉아 있는 페릴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페릴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힘없이 식당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RoL -


페릴은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안에 혼자 우두커니 서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 그냥 하늘이 좋을 뿐인데... 그것이 그렇게 큰 잘못인가... "

페릴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피부에 와 닿는 빛의 감촉을 느끼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언제부터 이런 버릇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하고 있으면 왠지 몸이 가벼워지며 발을 힘껏 구르면 금방이라도 저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 버릇 때문에 벌써 몇 번이나 혼나고 매를 맞기도 했지만 쉽게 고칠 수 없는 버릇이었다. 아까 낮에 물을 긷다가도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태양빛에 잠시 땀을 식힌다는 것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가 버렸던 것이다.

페릴은 아주 오래된 희미한 기억의 한 조각을 떠올리며 지금 그녀가 처해 있는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편안하고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군가의 목에 목마를 타고 고개를 한껏 들어올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보며 즐거워했던 기억이었다.


" 까르르~ "

" 위험해요. 어서 내려오라고 하세요. "

" 하하하, 위험하긴. 우리 페릴이 이렇게 좋아하잖아. "

" 당신도 참... 당신이 없을 때 얼마나 보채는 줄 아세요? "

" 페릴, 아빠 없어도 엄마 힘들게 하지 않을꺼지? "

" 응~ "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페릴은 순식간에 즐거운 추억에서 깨어나 잔인한 현실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양손을 허리에 얹고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베스를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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