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 오빠가 돌아왔다. 그는 약간 초췌해진 얼굴이었고 여행의 성과는 없었노라고 말했다. 난 그의 안부가 걱정되었기에 새로운 소식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나와 같은 눈치이다. 그는 수염과 머리털이 덥수룩한 모습으로 나타나 마치 예술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모여 석 달 동안 쌓아 두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그가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우리 중의 유일한 존재인 그가 돌아오니 약간은 세상이 멀쩡해 보인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종선의 일기 중에서
37세의 오미선은 도서관 사서이다. 그녀는 장서실을 이틀에 한 번 말끔하게 청소하고 가끔 찾는 사람들에게 책을 대출해 준다. 마음 같아서는 도서관 전체를 티끌하나 없이 청소하고 싶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장서실만큼은 그녀의 자존심을 걸고 확실하게 관리하고 있다. 나른한 오후의 서가를 미선은 약간의 티끌이라도 발견하기를 원하며 청결하기 이를데 없는 서가를 배회하고 있다.
“미선씨 계세요?”
방문객의 목소리에 미선은 날렵하게 서가를 빠져나가 잰걸음으로 데스크를 향한다. 28세의 은행원인 유선영이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선영씨, 책 보시려고요?”
“그렇다기보다.....”
“차라도 하실래요?”
“뭐 주시면요.”
두 여자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데스크에 마주 앉는다. 거대한 철제 책장이 장벽처럼 둘러싸인 가운데 그녀들은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오다가 영수와 유선씨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걸 봤어요.”
선영은 동그란 눈으로 거의 쏘아보듯 미선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어머, 영수씨가 다시 여행을 떠나는건가요?”
“여행은요, 둘이 드라이브라도 가는 거겠죠.”
“아, 그래요? 하긴 오늘 날씨도 좋으니까.”
“미선씨는 정말 태평하군요.”
“호호호~ 무슨 말씀인지?”
“됐어요.”
선영은 마뜩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래설래 젓는다.
“저는 유선이라는 그 여의사가 마음에 안들어요.”
“왜 그럴까요? 총명한 사람인데....?”
“흥! 마치 자기가 우리의 리더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게 맘에 안들어요.”
“그녀가 현명한건 사실이잖아요. 우리끼리 권력다툼을 해서 얻는게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그리고?”
“영수의 여자라는 걸 은근히 과시하고 있어요.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그여자는...”
미선은 비로서 선영의 불만을 알고 미소를 짓는다.
“글쎄요, 그건 두 사람만의 감정이 아닌가요?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여지는데요.”
“그래도 그 여자는 정말 정말 마음에 안든단 말이에요. 미선씨는 분하지도 않나요?”
“저는 남편이 있는 몸이에요. 선영씨는 아직 미혼이라 기회가 있어서 그런 마음이 드나봐요. 호호호”
“어머, 저는 그런 엉뚱한 생각따윈 안해요. 게다가 미선씨의 그 남편분도 지금은.....”
“쉬잇~”
미선은 선영의 뒷말을 미소와 함께 제지하며 화제를 돌린다.
“책을 읽으시겠어요? 요즘 통 책을 안읽으시는 것 같던데?”
“아, 책이요?”
“네 원하시는 장르를 말하시면 제가 추천해 드릴 수도 있어요.”
“글쎄요, 화끈한 성애 소설 한 권 주실래요?”
미선은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며 울창한 숲같은 서가 속으로 사라지더니 책 두 권을 들고 나온다.
“자, 여기 있어요.”
“고마워요.”
선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허리에 끼고 일어선다.
“저기 미선씨 밤에 우리 집에 올래요? 술이나 한 잔 하고 싶은데요.”
“아, 네 그러죠. ”
선영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그럼 안주 준비하고 기다릴게요. 이따가 뵈요.”
“네 그럼~”
미선은 총총히 걸어가는 선영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발견하곤 안타까운 마음에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그리고 도로 옆의 숲에 젊은 남녀가 나른하게 누워있다.
“정말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단 말이지?”
31세의 젊은 여의사 채유선은 영수에게 힘없이 질문을 건넨다. 그들은 이른 낮시간 임에도 꼬냑에 흠뻑 취해있었다.
“그렇다니까~ 정말 깨끗하더군.”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적막한 도로를 바라보며 영수는 대답한다.
“정말 곤란하게 되었구나.”
둘 사이엔 잠시 적막이 흐른다. 흔한 새소리나 곤충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숲이다.
“내가 한 번 더 둘러보고올까?”
“그건 절대 안돼.”
“왜 그렇지?”
“너만은 계속 여기 남아있어야해. 그래야만 해. 게다가 내가 보기엔 우리가 조사해서 밝혀낼 만한 사안도 아니야. 그쪽으로는 그만 포기하는게 좋을 것 같아.”
“포기?”
영수는 지난 세 달간의 외로운 여행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것은 허공에 손을 휘젓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의미없는 여행이었다. 뭔가 성과를 기대하기는 확실히 어려웠다.
“그래 우리들의 조사가 별 성과가 없다는 건 나도 동의해. 근데 내가 여기 남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뭐지?”
“너 정말 모르는거야? 아니면 잘난 체 하려는거야?”
유선은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영수를 돌아보며 묻는다.
“몰라서 묻는거야.”
“난 모르겠는데?”
“휴우~ 지난 세 달간 그녀들은 비참했어. 난 종선이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녀들에겐 네가 필요해. 네가 조금 더 지체했으면 다들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졌을지도 몰라. 미선씨는 천성적으로 의지가 강해서인지 그나마 잘 견딘편이지만.”
“너도 그랬어?”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아니, 내가 가장 심했을지도 몰라.”
“난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그래 일 년 전엔 그랬지. 이제 넌...”
“난?”
“넌 神이야.”
“곤란하게 되었군.”
43세의 서진순은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 주위를 산책하고 있다. 할 일 없는 두 여자였지만 하루에 한 번의 산책만큼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머니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네요.”
“정말 그렇구나.”
65세의 지복순은 꼿꼿한 허리로 제법 힘차게 걸으며 말한다.
“요 일년 간은 신경통도 없고 참 별일이구나.”
“어머, 좋은 일이죠. 뭐.”
“글쎄, 그게 좋은 일일까?”
“어머니, 그게 무슨?”
“세상의 순리를 말하는거야.”
복순은 먼 산을 바라보며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변해버린다.
“영수학생이 돌와 왔다면서?”
“네, 어머니.”
“그래, 건강하더냐?”
“네, 긴 여행을 다녀온터라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건강해 보였어요.”
“그거 다행이로구나.”
복순은 의미깊은 미소를 지으며 새삼 딸을 바라본다.
“너 조금은 영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난 가끔 한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넌 어렸을 때부터 너무 착하기만 했어.”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복순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벤치에 앉는다.
“넌 아직 젊어. 기회가 있어.”
그제서야 어렴풋이 복숙의 저의를 깨달은 진순은 어색하게 웃으며 벤치에 따라 앉는다.
“어머니, 이제 가을이 되나봐요.”
“그래, 가을이지. 허무한 계절이지.”
“저 감나무를 봐.”
영수는 유선이 가리킨 5미터쯤 떨어진 감나무를 바라본다.
“저게 왜?”
“열매를 관찰해봐.”
“그래, 저건 설익은 감이지.”
“일년 전에도 저 나무엔 설익은 감이 있었지?”
영수는 무거운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는다.
“그래.”
“그리고 지난 겨울에도...”
“그래, 올 봄에도.”
“올 여름에도.”
“일 년 전과 다름이 없어.”
“난 의사지만 지난 일년동안 할 일이 없었어. 감기조차 걸린 사람이 없었으니까. 고작해야 약간의 찰과상 정도?”
영수는 스트레스를 못이기겠는지 꼬냑을 글라스에 따라 벌컥 마셔버린다.
“너 우리 여자들이 지난 일년 간 생리가 정지해 버린건 아니?”
“그랬나?”
“그래.”
영수는 침통한 표정으로 유선을 돌아본다.
“그렇다는 건 역시?”
“그래, 모든 것이 정지 상태야.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고 뜨지만 사실 시간은 정지해 있어. 지금의 세계는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일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신체적으로 넌 22세이고 난 30세야,”
“이 상태가 지속되는 한....?”
“그래 난 31세가 되었지만 언제나 30세의 몸인거야. 정지한 거지. 저 나무처럼.”
“소연이는 언제쯤 돌아오려나?”
영수는 지난 세 달 동안의 여행 중 수없이 마주쳤던 음산한 도시들을 떠올렸다.
(소연이도 같은 풍경을 보겠구나, 조금이라도 새로운 소식을 가져와주면 좋으련만.)
아홉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그들은 지구라는 거대한 감옥 안에 갇혀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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