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설명3) 서진순
43세, 역사교사, 기혼, 신장:160 체중:54
5세 때부터 피아노 영재교육을 받으며 촉망받는 피아니스트로 승승장구, 그러나 열다섯 살때 일시적인 손가락 마비 증세를 겪는다. 불과 몇 달 만에 완치되었으나 병발발 이전의 빛나는 연주를 다시는 할 수 없게 됨. 재능의 한계를 절감하고 평범한 인생을 택한다. 이 때의 경험 이 후 겸손하고 온후한 성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오만하고 샤프한 면도 있다.
A대학부설 종합병원
영수는 병원 복도 안의 싸늘한 공기가 조금은 거북하다.
(환자 한 명 없지만 그래도 병원에 오는건 그리 유쾌하지 않군.)
그가 이 을씨년스런 병원에 찾아온 이유는 유선을 만나기 위함이다. ‘이 곳’의 사람들은 집에만 있기에 적적한지 과거 자신의 일터로 나가는 것이 어느새 일상화 되었다. 외과병동, 유선의 방은 난방을 한 것도 아닌데도 복도와 달리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
“진찰실에 있나?”
예상대로 유선은 영수가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고 독서에 여념이 없었다. 영수는 데스크를 쿵하고 친다.
“어 왔니?”
“뭐야? 무슨 책을 그렇게 읽어?”
“뭐 내가 읽는 책이야 뻔하지 뭐”
독일어로 쓰여진 의학서적이었다. 물론 영수는 책의 내용 따위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뭐, 아픈 사람도 없는데 뭘......우리 예상으로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그야 그렇지.”
유선은 쓴 웃음을 지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그래서 유감이야?”
“으음...솔직히 다행이야. 큰 병에라도 걸리면 나도 감당을 못해. 그랬다면 정말 괴로웠겠지. 하지만 환자가 사라진 세상의 의사...그게 나야.”
“그래 아무도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런데 말이야....이 세상이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유선은 의자에서 일어나 영수의 목에 매달린다.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진 것처럼 갑자기 사람들이 돌아온다?”
“몰라~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지는.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 아니면 영영 이 상태로 지속되는 건지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어.”
유선은 사랑하는 청년의 의문에 답을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녀 역시 같은 의문을 품고 있기도 하지만 연인의 답답함을 풀어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더욱 강하다. 설사 이 전 세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영수와 헤어지지 않기로 다짐한 그녀였다.
“이제는 지금의 환경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 이 세상이 한 번 더 변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그건 그래, 소연이가 뭔가 새로운 소식이라도 가지고 올런지....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 보면 뭔가 발견한게 아닐까?”
“글세?”
청년의 입에서 소연이란 이름이 흘러나오자 유선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진다. 영수와 다른 방향으로 탐사를 떠난 여자였다.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은 ‘그 사건’ 이후로 영수와 사귀기 시작하였지만 소연은 이 전부터 양가 집안끼리 약혼을 인정할 정도로 그의 공식적인 연인이자 친한 친구였다. 더구나 유선은 소연의 젊고 매력적인 외모에 은근히 콤플렉스마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영수의 관계를 인정한 그녀의 대범함 앞에서 투기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흠, 난 첩이 되버린 건가?)
첩이면 어떤가? 그의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야 본처니, 첩이니 하는 호칭 따위는 아무가치가 없는 것이다. 단호한 성격인 그녀는 생각이 정리되자 순식간에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봐 하이힐이 불편하지 않아? 허리에도 안좋다는데.....”
영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창 남자의 체취를 만끽하고 있던 유선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예전의 우리였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의 우리 몸은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비록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지만 우리가 얻은 이점이랄까.”
영수는 자신의 품에 안긴 유선을 보고 있노라니 상대가 연상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절정의 미모를 뽐내는 유선이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해오자 그는 순식간에 아랫배가 뜨거워져옴을 느꼈다. 영수는 ‘그 날’ 이 후 부쩍 성욕이 찾아오는 횟수와 강도가 강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소연이 유선의 존재를 선선히 받아들인 이유 중엔 그런 영수의 변화를 어렴풋이 알아챈 것도 있었다. 하지만 소연이가 영수에게 마냥 휘둘리기만 하는 여자도 아닌지라 단단히 다짐을 받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않는, 엄격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을 한 소연이와의 그날의 대화를 생각하면 영수는 지금도 마음이 서늘해진다.
“좋아, 하지만 세 번째는 안되.”
“알았어 그럴 일은 없을거야.”
“영수야, 세 번째는 안되는거야. 이건 나와의 약속이야.”
“...........”
“대답을 해. 영수야.”
“알았어. 약속해.”
“그리고 또 하나. 비록 유선씨를 안고 있을 때도 마음 속의 여자는 나 하나라는 걸 잊지말아.”
“그럴게.”
“이건 부탁이 아니라, 확인이야. 우리 둘 사이의”
“언제나 너 하나 뿐이야. 이건 나도 확신해.”
대화 후 영수와 소연은 한 몸이 되었다. 영수는 정말 좋아하는 유일한 여자는 소연뿐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는 밤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유선의 순수한 애정표현은 영수를 흐뭇하게 한다. 립스틱으로 피처럼 붉게 물들인 입술 위를 남자의 얼굴이 덥친다. 두 개의 혀가 격렬하게 뒤엉키는 가운데 희 가운과 블라우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름다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거대한 젖통을 검은색 브라가 압박하고 있다. 영수의 취향에 맞춘 야한 스타일의.....브라를 위로 말아올리자 크게 출렁이며 전체의 모습을 드러낸다. 향수와 젊은 여성의 몸에서 풍기는 독특한 체취가 섞인 냄새는 영수의 이성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영수는 유선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어 번쩍 들어서 데스크에 앉힌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앉은 유선 앞에 당당히 선 영수는 바지를 까내려 팽팽하게 일어선 덩어리를 꺼낸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지만 영수 이전에 남자를 몰랐던 유선은 이런 상황에선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곰같은 사내가 유선의 몸뚱이를 깔아뭉개고 거대한 유방은 상대의 가슴에 눌려 터질듯이 위태롭게 옆으로 삐져나온다. 스커트가 스르르 데스크 밑으로 마술처럼 떨어져 내리고 팬티스타킹의 가랑이 부분이 찢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유선의 귀에 들어온다. 손바닥만한 팬티가 우악스런 손에 의해 옆으로 밀려나가자 부드럽고 가는 털로 수북한 비처가 들어난다. 한동안 코를 박고 그녀를 공략하는 영수. 유선은 우는 소리를 하며 영수의 머리털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은행 A지점의 내부, 본래는 은행원들과 이용객들로 분주하였을 그 곳을 이제는 여직원 한 명 만이 지키고 있다. 그 여직원은 다름 아닌 유선영, 선영은 미선에게서 빌린 성애소설을 자신의 자리에서 건성으로 읽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남성중심인데다가 말도 되지 않는 스토리군.)
소설에 흥미를 잃은 선영은 쇼파에 누워 낮잠이라도 잘까 생각도 해봤지만 시리도록 맑은 하늘을 보니 그러기도 싫었다.
(아, 오늘도 그걸 해볼까)
선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은행 문을 나서 어디론가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녀가 찾은 곳은 실내 야구장, 선영은 얼마 전부터 배팅에 재미를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헛스윙 뿐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공의 빠르기에 타이밍을 맞추기 시작한다. 피칭머신이 윙하고 작동하며 공을 뿌린다. 선영의 눈빛이 제법 매서워진다.
하얀 환자용 침대 위, 그 기능적인 디자인의 침대 위에 한참 관능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벽을 기대고 앉아 있는 영수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유선이 궁둥이를 깔고 앉아 있다. 긴 다리로 영수의 허리를 단단히 휘감은 유선은 천천히 상하운동을 하고 있다. 둘은 하나의 길죽한 살덩이로 연결되어있음은 물론이다. 영수는 자신의 목을 휘감고 그에게 매달려있는 유선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아잉~ 몰라.”
뭔가 음탕한 농담이라도 했는지 유선은 킥킥 거리며 부끄러워한다. 영수는 솥뚜껑만한 손으로 유선의 엉덩이를 철썩 내리친다.
“앗 아파~”
“좀 더 빨리 움직여 봐.”
“응 알았어.”
유선은 채찍질에 분발한 말처럼 빠른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수도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행위를 돕는다. 여인의 부드러운 엉덩이가 남자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부딪칠 때마다 경쾌한 마찰음이 울린다.
“자, 위에서 한 번 해 보라구.”
영수가 벌렁 누워버리자 유선이 그의 몸에 올라탄 셈이 되었다. 유선은 들뜬 표정으로 영수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젖통을 움켜쥐게 한다. 그녀의 허리놀림은 다채로워지며 빙글빙글 돌리기도 하고 빠듯이 연결된 채로 전후로 움직이기도 했다.
“어머~ 어떡해~”
유선은 자신의 몸 안에서 간헐천처럼 터지려는 뭔가를 직감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더 큰 자극이 필요하였고 유선은 더 빠르게 전후운동을 했다. 유선의 부드러운 음모가 영수의 수북한 음모에 비벼지는 음란한 소리가 급박하게 울린다.
“아아앗!!! 오빠~~~”
마침내 정상에 도달한 유선, 가는 허리는 활처럼 휘어지고 여자의 작은 입술 사이로 애처로운 비명이 울린다.
싸구려 대중음악, 대학생들의 맹목적인 객기, 시금털털한 맥주 냄새. 대학가의 여느 호프집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이제서야 입대라니 너도 참 암울하다. 암울해~”
영수는 맞은 편에 앉은 동진에게 짖꿋게 웃으며 놀려댄다.
“이 자식, 제대한 티를 아주 제대로 내네.”
“후후후~ 다 그런 거다. 이 놈아.”
영수는 연신 내일 입대하는 동진을 놀려대는 수작을 해댔고 테이블 위의 맥주병은 늘어만 갔다.
“어 술이 떨어졌네~? 야 더 시키자.”
혀가 꼬인 동진이 종업원을 호출하는 벨을 누르려고 하자 영수가 제지한다.
“잠깐..”
“왜애?”
“너 내일부터 당장 굴러야해. 더 이상 마시지 않는 게 좋아.”
“........”
“그만 일어나자.”
“그래 니 말이 맞아.”
풀이 죽은 동진은 영수의 부축을 받으며 술집을 나선다.
“야 임마 너 혼자 돌아갈 수 있어?”
“이 자식이 날 뭘로 보고.....”
동진은 영수의 팔을 훽 뿌리치며 몇걸음 물러선다. 비틀비틀하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그런대로 집까지 돌아갈 수는 있을 듯 하다.
“후후후 아주 취권을 하는구나. 취권을”
“그래 이 놈아. 너 잘 났다. 근데 이상하게 오늘은 왜 이리 쉽게 취하는 거야?”
“내일 입소하면 고생이나 안할려나 모르겠군.”
“상관말고.....”
동진은 터벅터벅 영수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간다. 그 등이 쓸쓸하다. 걸어가던 동진이 고개를 돌려 영수를 바라본다.
“야 내일 기차역 나올거지?”
“그래 꼭 나가마.”
“넌 아침 잠이 많은 놈이라 믿을 수가 없는 걸..”
“자명종을 20개 쯤 켜놓고 잘테니까 걱정마...”
동진은 낄낄거리며 웃더니 손을 흔들어 보이곤 영수를 뒤로 하고 걸어갔다. 영수는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 동진의 입대를 배웅하기로 다짐한다. 그때 잘 걸어가던 동진이 살짝 균형을 잃는가 싶더니 넘어질 듯 휘청하다가 다시 자세를 잡는다.
“하하하 저 자식 저거...덜렁대기는..”
그것이 영수가 본 동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암흑이 걷히고 동공으로 빛이 들어온다. 영수는 눈꺼풀을 몇 번 깜빡거리며 사위를 둘러본다.
“무슨 낮잠을 그렇게 자요...?”
영수의 품에 안긴 유선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고 있다. 아마 그녀는 그렇게 꽤 오랜 시간 그를 보고 지켜보고 있었던 듯 싶다.
“응, 얼마나 잤지?”
“한 두 시간 반 정도?”
“네가 날 너무 피곤하게 해서 그래..”
“아이 참~”
“근데 너 왜 존댓말 하니?”
“하면 안되나?”
영수는 이 여자는 깊이 사귀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절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도도하고 차가워 뵈는 얼음미녀같은 유선에게도 이런 애틋한 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넌 안 잤어?”
“한 삼 사십 분 정도는 잤어요. 저도.”
“아~ 그만 일어나야겠어.”
“저기, 당신 아직 안했는데 입으로 해줄까요?”
“하하 아니 됐어.”
영수의 거절에 머쓱했는지 유선이 고개를 숙인다. 속으로 입밖에 꺼낸 말을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수는 옷을 대충 입고 침대에 걸터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친구 꿈을 꿨어?”
“누구요?”
“고등학교 친구야. 동진이라구 있어.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그 날이 바로 녀석의 입대일이었어.”
“꿈에서 친구가 뭐라던가요?”
유선도 침대에서 일어나 고쳐 앉으며 묻는다.
“그냥 마지막으로 만난 술자리의 반복이었어. 별로 새로운 건 없었어.”
“당신 우울해요?”
“조금”
유선의 매끄러운 나신이 그의 품 안으로 안겨온다. 그의 상처를 치료라고 해주겠다는 듯이.
“오늘 우리 집에서 자면 안되나요?”
“글쎄....”
영수는 소연이와 함께 살고 있었고 누가 요구한 건 아니지만 외박은 스스로 금지하고 있었다. 외박은 곧 여자 집에서 머무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연이는 현재 여행 중이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은데?”
“아 그럼 기다리겠어요.”
“함께 DVD라도 보자구.”
“어떤 영화를 보겠어요?”
“글쎄올시다. 그건 알아서 하시고...”
“음 뭐가 좋을까?”
영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나갈 차비를 한다.
“같이 나가요.”
“그래 태워다 줘?”
“아뇨, 차 가지고 왔어요.”
둘은 싸늘한 병원의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연수는 운전석에 올라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고 묻는다.
“그런데 어디 가는 거에요?”
“사람들을 좀 돌아보려고.”
“그래요. 그럼 이따가 봐요.”
영수도 차에 올라타 시내 쪽으로 길을 잡는다.
한바탕 배트를 휘두른 선영은 시원한 생수를 마시며 그늘에서 몸을 식히고 있었다. 마침 그 앞을 지나던 영수의 차가 그녀를 발견하곤 멈추어 선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신발과 자켓은 옆에 벗어놓고 블라우스 단추를 세 개나 풀어헤친 채 편안하게 푹신한 잔디밭에 위에 앉아있던 선영인지라 갑작스런 영수의 등장에 약간 민망했다.
“어머 이런 모습이라 미안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운동 하셨나봐요?”
선영이의 헤어스타일은 남자 아이 같은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있었다. 운동으로 약간 헝클어진 와인색으로 물들인 머리털이 풀잎처럼 싱그럽게 보인다. 그녀의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타이트한 유니폼 스커트 아래로 건강미를 뽐내는 늘씬한 다리가 뻗어있다.
“저거 보이죠? 저걸 했어요.”
“아니? 야구도 하시나요?”
“호호호 요즘 붙인 취미죠. 꽤 재밌다구요.”
“선영씨가 어떤 모습으로 배트를 휘두를지 궁금한데요. 다음엔 같이 해요.”
“네 그래요. 근데 뭐 좀 마실래요?”
“음 약간 목이 마르기도 하군요.”
“우리 요 앞 편의점으로 가요.”
선영은 옆에 구르고 있던 섹시한 디자인의 오픈백 펌프스를 신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선영이 편의점에 들어서며 인기척을 한다. 물론 주인이나 점원 따위는 없다. 그러나 선영의 몸에 밴 예의가 영수는 싫지 않았다. 영수는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하나 꺼낸다. 선영은 방금 생수를 마셔서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플라스틱 탁자에 팔을 기대고 앉은 영수는 편의점의 불을 켜고 음악을 틀기도 하고 그에게 재떨이를 가져다 주기도 하는 선영이 참 부지런 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교외에라도 나갈까요?”
영수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상대에게 의향을 묻는다.
“어머 좋죠. 지금요?”
“네. 해가 질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영수는 당연히 그녀가 동의 할 거라고 생각했다. 운전을 못하는 선영은 그 날 이후 멀리 나가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호호호 신나라~ 가지고 갈 거 뭐가 있을까요?”
“음료수 하고 맥주 조금하고 간식거리만 있으면 될 것 같군요.”
“네 근데 그 전에~”
선영은 옆에 있던 티슈 한 장을 뽑아 영수의 귀 밑의 립스틱 자국을 재빠르게 닦았다.
“정말 자랑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하는군요.”
선영은 활짝 웃으며 피크닉 준비물을 챙기기 위해 일어났다.
....9월 3일 19시 53분 H시의 해변이다. 어업이 발달한 도시로 내가 지금 서있는 항구에도 200여척의 어선이 정박해 있다. 지난 3일간 탐사를 한 결과 이 도시에 특이사항은 없다. 인간은 없으며 인간이 살고 있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여느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증발해버린 황량한 풍경일 뿐이다. 내일은 인근 J시로 이동해 탐사를 시작한다. J시의 탐사가 끝나면 S시로 이동할 것이다. 이 두 도시의 탐사가 끝나면 내가 계획한 북쪽지방의 여행은 모두 끝나게 된다. J시와 S시는 인구 5만내외의 작은 도시이지만 화력 발전소와 수도국의 정수시설이 있다.,,,,
-소연의 녹취 테잎 중에서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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