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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17 709회 0건
천일몽(千日夢) - 44부-


오후가 되자 혼자있던 재식의 방에 예린이와 수린이가 함께 들어왔다.

연노랑 브라으스에 무릎 바로 위까지 오는 진곤색 주름치마를 받쳐 입은 예린과

하늘색 원피스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수린이의 모습은 마치 어느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모습들이다.

"아빠아~ 맞지이~ 으응?"

"난데없이 뭐가 맞아? 허 허 참!!"

"아니이~ 아까 아빠가 날 때린댔었잖아...그렇지?"

아마 예린이는 수린이와 오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아아~ 그거야....예린이가 잘못을 했을때 내가 때린다고 했던거지..."

"봐아~ 내 말이 맞잖아...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예린이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인정받자 어깨를 으쓱하며 의기양양 해 있다.

"치잇!! 것봐... 잘못을 해야 때린다고 하잖아~ "

"그래도 때리는 건 때리는 거잖아..."

"하 하 하 하~"

재식은 아웅다웅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며

때린다는 그 말 한마디가 이 아이들에겐 그렇게도 뉴스거리가 된 것을 재미있게 보고있다.


"아빠~ 내일 가는 날이지? "

"예린이의 얼굴이 심각해 지더니 목소리를 낮게 가라 앉힌다.

"으응~ 하지만 또 며칠이 지나면 올꺼니까...."

"에이 씨~ 안 갔으면 좋겠는데... 아빤 거기가 그렇게도 좋아?"

"으 흐 흠~ 그..그..그 건~~~"

재식의 표정이 몹시 불편해 보인다.

예린이가 가장 곤혹스러운 건 아무래도 성에 관한 이야기로 따질 때이고

그 다음이 상동에 있는 집에 관한 물음인 것이다.

"근데~ 거기에 있는 아빠 딸 이름이 승희라고 했지?"

"으응~ 스..승희!!"

"이뻐? 나보다 더 이뻐? 아니지? 나보다는 아니지?"

"그 러 엄~ 예린이 보다야 훨씬 못하지... 우리 예린이가 얼마나 예쁜데...."

승희가 딸이라면 예린이도 이제 재식의 딸이다.

딸을 놓고 누가 예쁘다 못 생겼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 무척 괴로운 모양이다.

하지만 재식이 자신도 객관적으로 봐서 예린이가 훨씬 더 예뻤지만

그 표현을 더욱 크게 해 줘야 예린이가 더 좋아 할 것 같아서 손을 휘저어 가며 아이의 마음을 안심 시키자

영악스러우리 만치 재치있는 예린이는 그제서야 얼굴이 펴지면서 재식의 눈치를 살핀다.

"그럼 됐어~ 휴우~ 할 수 없지 뭐~ 대신 오늘도 나아~ 아빠랑 같이 잘꺼야~ 알았지?"

"그..그..그 러 엄~ 나두...예린이와 같이 자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데...하 하 하~"

"피이~ 아빠 거짓말....후훗...예린이가 얼마나 잠버릇이 고약한데..."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수린이가 나서며 피식 웃으며 아니라고 하자

금새 기가 살았던 예린이가 긴장이 되는지 어깨를 움츠리며 재식을 흘깃 쳐다본다.

"아..아냐~ 잠버릇은 좀 고양하지만 잘 때 내 목을 끌어 안는게 얼마나 포근하고 따사롭다고..."

"그렇지~ 아빠~ 나아~ 잠버릇이 나빠도 괜찮지? 히 힛!!"

금새 환하게 웃어버리는 예린이,

이런 아이들을 어찌 모른 척 하고 떠나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졸지에 두 가정의 아빠가 되어 버린 재식의 갈등은 너무나도 크게 다가온다.

"아빠~ 나두 여기서 자도 되죠? "

"그러엄~ 오늘은 나두 우리 예린이와 수린이... 두 딸 사이에서 자고 싶은데...하 핫!!"


"아빠~ 우리 씻고 올께~~ 히 힛!!"

이제는 씻어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에도 벗고 자겠노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욕실로 들어가는 예린이와 잠옷을 가지러 가겠다고 방문을 나서는 수린이의 뒷모습을 보며

마치 친아빠나 된 것처럼 재식의 흐뭇한 미소가 방안을 따사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종알대던 아이들이 사라지자 재식은 그동안 참아왔던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허공을 향해 도너츠처럼 동그랗게 톡톡 내 쏘아 보지만 그 연기는 도중에서 그대로 흩어져 버리고 만다.

"으휴~ 담배 냄새~ "

마음이 급했던 예린이가 겨우 담배 한개피가 다 타 들어가기도 전에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나온다.

그리고 잠시 후, 잠옷을 가지러 가는 바람에 좀 늦게 욕실로 들어간 수린이 마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재식의 곁으로 다가왔다.

하늘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수린이는 언제나처럼 하늘색 잠옷을 입고 있었으며

예린이는 어제밤과 마찬가지로 연노랑의 잠옷을 입고 있다.

재식은 두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이들의 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니들~ 또 속옷은 안 입었지?"

"우 히 힛!! 크 흐 흣!!"

예린이는 장난기 어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했으며

수린이는 조금 커서 그런지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배시시 웃어 넘겨 버리자

재식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포기해 버렸고

그 사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남기며 아이들은 침대로 가 버린다.


서로 아빠 옆자리가 내 자리라고 우겨대던 예린이와 수린이는

재식을 가운데 두는 것으로 서로간에 합의를 보고서야 조용해 졌다.

그리고 누운지 얼마 되지않아

예린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수린이 마저 꿈나라로 빠져 들었다.

쌔근쌔근 잠자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 보는 재식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간다.

오늘따라 왜 이리 마음이 불안 할까?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예린이와 수린이가 잠 들고 나면서 부터 재식의 마음이 두근거리며 뭔가에 쫓기는 것만 같다.


예린이가 뒤척이며 한쪽 다리를 재식의 배에 걸쳐 놓자

아니나 다를까 잠옷이 들려 지면서 하얀 엉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어제는 재식이 예린이의 잠옷을 내려 주면서 이불까지 덮어 주었지만

오늘은 뭔가 불안한 생각에 신경 조차 쓰이질 않는다.

천사의 얼굴을 한 아이들,

상동에 있는 승희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복에 겨운 아이들이지만

오늘따라 불쌍하고 처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재식은 돌아 누우며 배 위에 다리를 걸쳐 놓은 예린이의 가녀린 몸을 살며시 끌어 안으려 한다.

"으 으 으 음~ 으 으~"

예린이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내며 어김없이 재식의 목을 휘 감는다.

재식은 마음을 편히 가져 보려고 예린이의 하얀 엉덩이를 톡톡 쳐 보지만

손바닥의 보드라운 느낌과는 다르게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다.

"휴 우 우~ 흐 으 흠~"

재식은 긴 한숨을 내 쉬며 안고있던 예린이를 살짝 떼어놓고

자고 있는 수린이의 몸을 넘어서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처럼,

시한부 인생의 달력 쳐다보는 마음처럼,

물밀듯이 밀려오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재식은

푹신한 소파 위에 몸을 맡긴 채 버릇처럼 담배에 손이간다.

"혹시 상동에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닐까?"

당장 전화라도 넣어보고 싶은 심정이지만

내일 아침만 먹으면 바로 달려 갈 것이기에 그냥 한숨으로 삭혀버리고 만다.

연거퍼 두 개피의 줄담배를 피운 재식은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묻고 눈을 감았다.

한참이 지나고 눈을 떠보니 이미 시계는 두시를 가리켰다.

소파 건너편에 있는 자그마한 냉장고를 열어 냉수가 든 병을 꺼내든 재식은

컵에 따르지도 않은 채 입을대고 벌컥벌컥 서너모금 마시고 난 후에야

깊은잠에 골아 떨어진 아이들이 있는 침대로 갔다.


두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예린이는 반듯하게 자고 있는 반면 수린이는 평소 예린이처럼 엎어져 자고있다.

다만 같은 모습을 하고있는 것이 있다면

두 아이의 잠옷이 모두 허리까지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광경을 본 재식은 지난 날, 자신이 처음 이집에 왔을 때

털도 나지않은 예린이의 보드라운 몸을 만지작 거리던 기억이 새삼 되살아 나면서

수린이의 몸을 가지겠다고 성숙하지도 않은 어린 몸에다가 상처를 준 일 들이 너무나 생생히 떠 오른다.

재식은 아이들이 뒤척이면서 이미 없어져 버린 자신의 자리로 들어가려고

예린이와 수린이 사이에 발을 집어 넣으며 살짜기 아이들을 밀쳐 빠듯한 사이에 몸을 눕혔다.



- 다음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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