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FIVE - the memory
「 어쩌면 용서 받지 못할 짓을 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그것만이 올바르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지우지 못할 죄책감을 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오늘도 약해진 나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비록, 한 사람의 인생을 지키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지만... 또 다시 그런 선택을 해야 할 운명을 맞이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악인이 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
역사학자 노우만의 "시간 속에 묻힌 이야기들" 中 작가미상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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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28th, KRANDOR 338
" 원래는 널 시키려던게 아니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서 어쩔 수가 없다. 수고 좀 해줘. "
" 네, 맡겨만 주세요. "
" 워낙 급하게 맡겨둔 일이라 아가씨께서 날짜를 맞추지 못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셔. 이 얘기 꼭 전하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면 안된다는거 명심해. "
" 네, 알았다니까요. "
아무도 없는 주방에는 두 명의 하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살짝 열린 문 밖에는 페릴이 벽에 바짝 붙어 서서 그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페릴은 혹시라도 들키지 않을까 두려워 꼼짝도 하지 않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그것은 주방 안쪽의 하녀들 중 한 명이 바로 베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페릴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요 며칠간 계속해서 베스의 행동을 몰래 살피고 있는 페릴은 오늘에서야 자신이 원하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 소리 죽여 웃기 시작했다.
" 그럼, 어서 출발해. 꽤 먼 곳이지만 서두르면 오늘 중에는 돌아올 수 있을거야. "
" 네, 지금 출발 할께요. "
조금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하녀의 말이 끝나자 베스는 알겠다는 대답을 하며 페릴이 숨어서 엿듣고 있는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페릴은 조금씩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만약 베스가 자신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평소처럼 조금 매를 맞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페릴의 가슴은 그 소리가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크게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 베스. "
때 마침 다른 하녀가 부르는 소리에 베스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돌아오는 길에 뭘 좀 사다줬으면 좋겠는데... "
그 하녀는 베스에게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었는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덕분에 페릴은 의외의 상황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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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 끝냈다! "
페릴은 오전 내내 쉴새 없이 일을 하느라 제대로 한번 펴보지도 못했던 허리를 뒤로 젖히며 양 팔을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그녀는 피로에 지친 몸에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시기라서 그런지 따가운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페릴은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좀 이상한 것 같은데... "
방으로 돌아와 늘 입고 있던 하녀복을 벗어버리고 오랜만에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은 페릴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곳에 온지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잘 때 외에는 한번도 하녀복을 벗어본 적이 없었다.
" 어쩔 수 없지 뭐. "
페릴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 밑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주머니를 꺼내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주머니의 입구를 묶은 끈을 풀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페릴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끈을 묶은 주머니를 손에 꼭 쥔 그녀는 누가 보고 있지는 않은지 괜히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겨우 안심을 하며 방을 나섰다.
" 여어~ 페릴 웬일이야? "
특별히 잘못하는 일이 아닌데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조심스럽게 저택을 나서던 페릴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며 이리저리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 뭘 그렇게 놀라? "
" 어머! "
이번에는 자신의 바로 뒤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페릴은 다시 한번 놀라며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 어? 로베르 아저씨! "
페릴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저택의 주인 트라데인 후작의 호위기사인 로베르였다.
" 아저씨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
" 그럼 뭐라고 불러요? "
페릴의 반문을 받은 로베르는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굉장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 그냥... 오빠라고 불러도 좋잖아? "
" 치이~ 아저씨가 우리 오빠인 것도 아니잖아요. "
"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저씨라는 건 너무했다. "
페릴은 자신이 일부러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한두 마디만 하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로베르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페릴은 로베르가 어떤 부탁을 해도 다 들어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흐음... 좋아요! 오빠라고 불러 줄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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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조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
" 그런가... "
실마리를 잡았다는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헤르난은 벌써 며칠째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보고를 받으며 가슴이 답답해 지는 것을 느꼈다.
"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
" 그래야겠지... "
헤르난은 창가로 걸어가 양손으로 창턱을 짚고 밖을 내다보았다. 창문은 열려 있었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더운 날씨는 그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헤르난을 보고 있던 세실리안은 뭔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 수고했다. 이만 나가보도록 하라. "
헤르난은 시선을 창 밖으로 고정시킨 채 세실리안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 예, 헤르난 왕자님. "
딱딱한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 세실리안의 얼굴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표정이 되어 있었지만 헤르난은 평소와 다른 그녀의 말투를 알아채지 못했는지 시선을 허공 중에 고정시키고 전혀 다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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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29th, KRANDOR 336
" 무슨 일이오? "
"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
헤르난은 리시안느의 말에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한발자국 다가섰다. 그와 동시에 리시안느는 한발자국 물러서며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헤르난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혹시... 내가 싫어진 것이오? "
" 아... 아니에요. "
리시안느는 헤르난이 이런 반응을 보여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지 당황하며 대답했다. 계속 시간을 끌면 말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 리시안느는 내심 결정을 내리고 자신이 미리 준비해 둔 것을 가져오기 위해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 그것은...? "
리시안느는 베게 밑에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어 양손으로 받쳐 들고 헤르난에게 내밀었고 그는 리시안느가 내민 가늘고 긴 검은색의 회초리를 보며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그날...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서 받고 죄책감을 벗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었어요... "
리시안느는 라이오트라의 왕궁에서 헤르난에게 벌을 받고 나서 느꼈던 그 편안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여리고 착한 마음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릴 만한 아주 작은 실수도 늘 마음에 품어두고 그 죄책감에 시달리던 리시안느로서는 그날의 경험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다시 그녀의 마음속에 쌓인 죄책감을 벗어버리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헤르난에게 벌을 청하는 것이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의 생일파티에 헤르난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결심한 리시안느는 용기를 내어 오늘의 일을 준비했던 것이다.
「 어쩌면 용서 받지 못할 짓을 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그것만이 올바르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지우지 못할 죄책감을 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오늘도 약해진 나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비록, 한 사람의 인생을 지키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지만... 또 다시 그런 선택을 해야 할 운명을 맞이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악인이 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
역사학자 노우만의 "시간 속에 묻힌 이야기들" 中 작가미상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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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28th, KRANDOR 338
" 원래는 널 시키려던게 아니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서 어쩔 수가 없다. 수고 좀 해줘. "
" 네, 맡겨만 주세요. "
" 워낙 급하게 맡겨둔 일이라 아가씨께서 날짜를 맞추지 못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셔. 이 얘기 꼭 전하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면 안된다는거 명심해. "
" 네, 알았다니까요. "
아무도 없는 주방에는 두 명의 하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살짝 열린 문 밖에는 페릴이 벽에 바짝 붙어 서서 그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페릴은 혹시라도 들키지 않을까 두려워 꼼짝도 하지 않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그것은 주방 안쪽의 하녀들 중 한 명이 바로 베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페릴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요 며칠간 계속해서 베스의 행동을 몰래 살피고 있는 페릴은 오늘에서야 자신이 원하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 소리 죽여 웃기 시작했다.
" 그럼, 어서 출발해. 꽤 먼 곳이지만 서두르면 오늘 중에는 돌아올 수 있을거야. "
" 네, 지금 출발 할께요. "
조금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하녀의 말이 끝나자 베스는 알겠다는 대답을 하며 페릴이 숨어서 엿듣고 있는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페릴은 조금씩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만약 베스가 자신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평소처럼 조금 매를 맞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페릴의 가슴은 그 소리가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크게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 베스. "
때 마침 다른 하녀가 부르는 소리에 베스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돌아오는 길에 뭘 좀 사다줬으면 좋겠는데... "
그 하녀는 베스에게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었는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덕분에 페릴은 의외의 상황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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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 끝냈다! "
페릴은 오전 내내 쉴새 없이 일을 하느라 제대로 한번 펴보지도 못했던 허리를 뒤로 젖히며 양 팔을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그녀는 피로에 지친 몸에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시기라서 그런지 따가운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페릴은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좀 이상한 것 같은데... "
방으로 돌아와 늘 입고 있던 하녀복을 벗어버리고 오랜만에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은 페릴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곳에 온지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잘 때 외에는 한번도 하녀복을 벗어본 적이 없었다.
" 어쩔 수 없지 뭐. "
페릴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 밑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주머니를 꺼내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주머니의 입구를 묶은 끈을 풀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페릴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끈을 묶은 주머니를 손에 꼭 쥔 그녀는 누가 보고 있지는 않은지 괜히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겨우 안심을 하며 방을 나섰다.
" 여어~ 페릴 웬일이야? "
특별히 잘못하는 일이 아닌데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조심스럽게 저택을 나서던 페릴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며 이리저리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 뭘 그렇게 놀라? "
" 어머! "
이번에는 자신의 바로 뒤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페릴은 다시 한번 놀라며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 어? 로베르 아저씨! "
페릴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저택의 주인 트라데인 후작의 호위기사인 로베르였다.
" 아저씨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
" 그럼 뭐라고 불러요? "
페릴의 반문을 받은 로베르는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굉장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 그냥... 오빠라고 불러도 좋잖아? "
" 치이~ 아저씨가 우리 오빠인 것도 아니잖아요. "
"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저씨라는 건 너무했다. "
페릴은 자신이 일부러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한두 마디만 하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로베르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페릴은 로베르가 어떤 부탁을 해도 다 들어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흐음... 좋아요! 오빠라고 불러 줄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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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조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
" 그런가... "
실마리를 잡았다는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헤르난은 벌써 며칠째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보고를 받으며 가슴이 답답해 지는 것을 느꼈다.
"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
" 그래야겠지... "
헤르난은 창가로 걸어가 양손으로 창턱을 짚고 밖을 내다보았다. 창문은 열려 있었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더운 날씨는 그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헤르난을 보고 있던 세실리안은 뭔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 수고했다. 이만 나가보도록 하라. "
헤르난은 시선을 창 밖으로 고정시킨 채 세실리안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 예, 헤르난 왕자님. "
딱딱한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 세실리안의 얼굴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표정이 되어 있었지만 헤르난은 평소와 다른 그녀의 말투를 알아채지 못했는지 시선을 허공 중에 고정시키고 전혀 다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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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29th, KRANDOR 336
" 무슨 일이오? "
"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
헤르난은 리시안느의 말에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한발자국 다가섰다. 그와 동시에 리시안느는 한발자국 물러서며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헤르난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혹시... 내가 싫어진 것이오? "
" 아... 아니에요. "
리시안느는 헤르난이 이런 반응을 보여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지 당황하며 대답했다. 계속 시간을 끌면 말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 리시안느는 내심 결정을 내리고 자신이 미리 준비해 둔 것을 가져오기 위해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 그것은...? "
리시안느는 베게 밑에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어 양손으로 받쳐 들고 헤르난에게 내밀었고 그는 리시안느가 내민 가늘고 긴 검은색의 회초리를 보며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그날...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서 받고 죄책감을 벗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었어요... "
리시안느는 라이오트라의 왕궁에서 헤르난에게 벌을 받고 나서 느꼈던 그 편안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여리고 착한 마음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릴 만한 아주 작은 실수도 늘 마음에 품어두고 그 죄책감에 시달리던 리시안느로서는 그날의 경험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다시 그녀의 마음속에 쌓인 죄책감을 벗어버리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헤르난에게 벌을 청하는 것이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의 생일파티에 헤르난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결심한 리시안느는 용기를 내어 오늘의 일을 준비했던 것이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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