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학원 4부 타락의 교실 (4)
사쿠라다가는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인 아이로 이루어진 단란한 중산층 가족이었다. 가장인 사쿠라다 씨는 회사의 중간 관리직으로서 착한 아내와 귀여운 딸이 있는 자신의 가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충실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 가족에게 실로 잔혹한 운명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어느 날 오랜만의 회식자리에서 알딸딸 하게 취한 사쿠라다 씨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빠찡꼬 가게에 들어섯다. 그는 워낙 건실한 성격인지라 빠찡꼬나 복권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던 사람이었던 터라 회사 사람들도 깜짝 놀랏다. 그리고 그는 그야말로 넋나간 듯이 돈을 기계에 마구 털어넣으며 빠찡꼬에 몰입했다.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돈을 잃게 된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로도 사쿠라다 씨는 갑자기 도박중독자가 된 것마냥 빠찡꼬 가게를 쉴새없이 들락 거렸으며 휴일에는 하루 종일 가게에 틀어박혀 있을 정도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 말릴 틈도 없는 사이 그는 막대한 노름빚을 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 빚은 전부 악질적인 사채, 하루하루가 지날때마다 이자는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람..."
이미 차용증에 써진 금액은 돈을 빌려쓴 본인도 납득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였다. 게다가 이자율을 계산해보자면 곧 이 부채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판이었다. 사쿠라다 씨는 악몽이라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눈 앞에 놓인 막대한 빚은 분명히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 빚을 갚으려면 이미 그가 사십평생 열심히 벌어온 전 재산을 다 털어넣더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밀어올려도 밀어올려도 끝없이 굴러 내려오는 탄탈로스의 바위를 바라보는 듯한 절망감이었다.
물론 떼어먹는 것도 있을 수가 없었다. 모두 야쿠자나 다름 없는 뒷사회의 악질 사채업자들에게 빌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갚지 못했다가는 그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버지. 무슨 안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최근 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아이가 걱정이 되서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차마 가족에게 이런 사태를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다른 문제로 걱정이 심한 것 같아 아이는 타쿠로의 문제에 대해서 상담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날 세키코 선생을 떠보려 갔던 아키라도 아무 성과가 없었기에 아이는 답답함이 더해졌다.
"여보. 실은 할 말이 있어...."
아이에게는 말할수 없었지만 결국 아내에게 까지 숨길수는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이자가 불어나게 되니 숨기면 숨길수록 부담이 더 커질 뿐이었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는 것이 상책이었다.
"세상에... 그럴수가...."
남편의 괴로운 고백에 사쿠라다 부인 역시 망연자실했다. 마음씨 착한 그녀는 차마 화를 내지는 못했지만 기가 막혔다. 무슨 도리로 그 엄청난 빚을 갚는단 말인가.
"빨리 빨리 움직여. 굼벵아."
"네. 죄송합니다. 주인님...."
"야야. 그 피규어 소중히 다뤄!"
타쿠로는 세키코의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이삿짐을 챙기고 있었다. 물론 일은 세키코의 몫으로서 타쿠로는 그저 이것저것 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몸을 거의 다 드러내는 부끄러운 메이드 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타쿠로가 지시하는대로 수많은 이사짐을 포장했다.
타쿠로는 이제 그녀를 성노예로 쓸 뿐만 아니라 완전히 몸 종으로도 부리고 있었다. 세키코는 몸이 두개 있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비록 그녀는 충실하게 타쿠로에게 봉사했으나, 체력이나 시간적으로 힘든 것이 많았다. 타쿠로도 빨리 새 노예를 추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
타쿠로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타쿠로는 전화를 받아보고 씨익 웃었다. 그것은 그가 세뇌해둔 이 지역의 야쿠자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가 명령한 음모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였다.
"크크큭. 수고해."
사실 아이의 아버지가 갑자기 빠찡꼬에 미친 것도, 위험한 사채를 앞뒤 가리지 않고 빌려 쓴 것도 모두 타쿠로의 염력과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 사쿠라다 가를 파멸시킬 그물은 사방에 쳐지고 있었다.
다음날, 사쿠라다 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w지하철 역에서 회사로 가던 도중에 험상은 인상의 덩치큰 사내들이 몇명 그에게 접근하더니 다짜고짜 그를 붙잡고서 재건축 공사가 예정되어 있는 폐건물로 끌고갔다.
"당신들 누구야?!"
사쿠라다 씨는 발버둥치며 몇번 반항을 시도해보았으나 덩치 큰 사내가 셋이나 달라붙어서 붙잡고 있으니 도저히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폐건물에서 두 명이 사쿠라다 씨를 좌우에서 붙잡고 한 명은 그 앞에 놓인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무, 무슨 짓이요?"
"우리가 왜 나서는 지는 당신이 더 잘 알텐데."
‘이, 이런... 사채업자가 야쿠자를 보낸 건가!’
사쿠라다 씨의 머리 속에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쓸데없이 화려한 옷과 장신구, 목등으로 슬쩍 보이는 문신. 그들은 한눈에 봐도 야쿠자와 같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선량하고 평화로운 인생만 살아온 그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야쿠자는 이죽 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담배꽁초와 가래침을 탁 뱉고는 협박하듯이 말했다.
"거 험한 꼴 보기 전에 빨리 갚는게 좋을 거요. 크크큭."
"어, 어떻게 선처를 해볼 방법이 없겠소? 내 전 재산을 털어도 원금도...."
"이봐! 당신이 빌린 거잖아? 갚지도 못할 거라면 애초에 빌리지 말아야 할거 아냐?"
"으윽...."
<두려워하라->
사쿠라다 씨는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감히 그에게 반박하는 말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야쿠자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져서 이제는 주머니에서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꺼내 펼치고는 그의 배에 가져다 대면서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돈이 없다면 내장이건 뭐건 꺼내서 팔란 말이야. 아앙?"
"그... 그만두시요... 으윽..."
나이프는 금방이라도 그의 뱃가죽을 ?어서 내장을 끄집어 낼 것처럼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완전히 겁에 질린 사쿠라다 씨는 벌벌 떨면서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 눈물을 찔찔 흘렸다.
<두려워하라->
"내가 직접 꺼내줄까? 엉?"
"윽! 제발!"
야쿠자는 익숙한 솜씨로 재빠르게 나이프를 놀려 눈깜짝할 사이에 양복과 셔츠의 단추를 뜯어내고, 훤히 드러난 그의 배꼽 바로 앞 까지 칼끝을 가져다 대었다. 피부에 칼날의 싸늘함이 느껴지자 사쿠라다 씨는 후덜덜 거리며 떨다가 급기야 오줌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양반이 냄새나게 스리..."
"살려주시요. 제발... 무슨 짓이라도 할테니..."
"쳇. 기가 막혀서 원."
야쿠자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면서 칼을 거둬들였다. 뜨듯한 오줌이 그의 바지를 타고 흘러내려 신발 아래에 고여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좌우에서 붙잡고 있던 야쿠자들도 그걸 피해 슬쩍 물러섯다.
<두려워하라->
사쿠라다 씨는 비참하기 그지 없는 몰골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연신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그 한심한 모습에 좌우에서 붙잡고 있던 야쿠자들의 피씩 거리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왔다.
"그래. 장기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있긴 있어. 둘 중에서 선택해보면 어떨까?"
야쿠자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서류 한장을 눈 앞에 내밀었다. 대체 무슨 제안을 하려는 건가? 눈물을 닦고 그 서류를 본 순간 사쿠라다 씨는 입을 쩍 벌리고 말도 못할 만큼이나 경악을 했다.
잠시후 사쿠라다 씨는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도저히 회사에 갈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는 야쿠자들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경찰에 신고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야쿠자들의 요구 조건은 두 가지 였다. 하나는 빚을 갚기 위해 그의 전 재산을 넘기고,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그에게서 판매가능한 모든 장기를 팔아치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의 딸, 사쿠라다 아이를 넘기라는 것이었다. 기한은 바로 내일까지.
양쪽 모두 대단히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어느 쪽이건 최악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무엇을 택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아내와 상담하고 싶었다.
"크흐흐흐흐흐흐!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
폐건물에서 타쿠로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고 있었다. 타쿠로는 예전부터 사쿠라다 씨를 상당히 싫어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타쿠로의 안좋은 소문을 듣고 그는 아이에게 타쿠로가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몇차례 있었다. 그 사쿠라다 씨가 굴욕을 겪는 장면은 모두 비디오 카메라에 촬영되어 있었다.
"꼴 좋다. 꼰대. 크크큭...."
타쿠로는 그의 용기를 완전히 거세하여 사쿠라다 씨를 고양이 앞의 쥐처럼 겁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그는 너무나 겁이 많아진 나머지 보복을 두려워하여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타쿠로는 그가 두려움에 질려 도망치듯이 아내를 찾아가서 조언을 무조건 따르도록 암시를 걸어두었다. 물론 그 앞길에도 타쿠로가 쳐둔 ‘덫’이 놓혀있었지만. 타쿠로는 사냥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야쿠자들은 그의 사냥개... 빚은 미끼... 그리고 사냥감은....
사쿠라다 씨는 집으로 돌아가 그 즉시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여보?"
그런데 사쿠라다 부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사쿠라다 씨에게는 너무나 뜻밖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쩔수 없어요.... 아이를 넘길 수 밖에요."
"그럴수가..."
그는 뒤통수를 한대 거칠게 맞은 듯한 충격에 혼란에 빠졌다. 딸을 야쿠자 무리에게 넘기자는 이야기를 저렇게 쉽게 하다니. 하지만 부인은 태연하게 설명을 해 나갔다.
"전 재산을 넘기고 당신이 장기를 빼앗겨 폐인이 된다면 우리 가족은 모두 살아나갈수 없어요. 하지만 아이를 넘긴다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예요. 자식은 또 낳으면 되는 거니까..."
"그, 그런가?"
인륜을 도외시한 그야말로 타산적이기 그지 없는 의견이었으나 왠지 사쿠라다 씨에게는 그것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물론 보통 때라면 사쿠라다 부인도 이런 제안을 할 리가 없었다. 이것 또한 타쿠로가 미리 부인에게 암시를 걸어둔 결과였다.
"아, 알겠어. 당신까지 그렇게 말한다면..."
"슬프지만 할수없는 일이죠...."
본래 인간의 정신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받기 쉽다. 실제로 여러 사람이 잇달아 의도적으로 같은 증언을 하면 증언을 듣고 있던 사람의 기억이 바뀌어버리고 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거기에 타쿠로가 미리 걸어둔 몇 가지 암시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그들 부부는 이전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판단을 내리고 만 것이다.
띵동-띵동-
"누, 누구시요."
그때 대문 초인종이 울렸다. 사쿠라다 씨는 인터폰을 확인했다. 저 편에서 오늘 아침에 만났던 그 야쿠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끔찍하기 그지 없는 공포에 사쿠라다 씨는 몸이 움츠려들었다.
"결정은 내렸소?"
"이, 이렇게 일찍 말입니까?"
아직 채 정오도 되기 전이었다. 사쿠라다 씨가 협박을 받은 후에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너무 유예가 없는 물음에 그는 당혹했다. 막상 야쿠자가 오자 귀여운 딸 아이를 이런 무도한 자들의 손에 넘겨주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도 들었다. 하지만 야쿠자는 호통치듯이 버럭 소리를 질럿다.
"기한은 오늘까지라고 했어! 내일이 되면 빚이 더 불어나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때는 당신네 전 재산을 처분하고 전 가족이 팔려가도 모자라! 여고생 하나로 봐 주는 것도 이쪽에서는 충분한 선처야."
"아, 알았소.... 방금... 아내와 딸을 넘기기로 결정했소...."
"좋아요. 그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읍시다. 내가 들어갈까? 아니면 당신이 밖으로 나오겠소?"
"내가... 나가지요..."
사쿠라다 씨는 야쿠자가 요구하는대로 아내와 자신의 도장을 가지고 나갔다. 그는 야쿠자들에게 끌려 그들이 타고온 봉고차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기력하게 딸을 그들에게 넘기는 것에 동의하는 매도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킥킥킥킥킥...."
타쿠로는 골목길 근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인신매매 계약서에 법적인 구속력이 있을리는 없지만, 암시를 거는데는 아주 효과적인 소재였다. 그리고 방금 아이의 집 안에서 벌어진 사쿠라다 부부의 대화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모습도 미리 몰래 설치해둔 비디오로 찍고 있었다.
"그럼, 양도는 끝났으니 이제 데려가도록 하지."
"아, 아니... 마지막으로 얼굴만이라도..."
"이미 계약은 끝났어. 우리 물건을 우리 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저리 꺼져."
야쿠자들은 메달리는 사쿠라다 씨를 매정하게 뿌리치고 가버렸다.
사쿠라다가는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인 아이로 이루어진 단란한 중산층 가족이었다. 가장인 사쿠라다 씨는 회사의 중간 관리직으로서 착한 아내와 귀여운 딸이 있는 자신의 가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충실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 가족에게 실로 잔혹한 운명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어느 날 오랜만의 회식자리에서 알딸딸 하게 취한 사쿠라다 씨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빠찡꼬 가게에 들어섯다. 그는 워낙 건실한 성격인지라 빠찡꼬나 복권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던 사람이었던 터라 회사 사람들도 깜짝 놀랏다. 그리고 그는 그야말로 넋나간 듯이 돈을 기계에 마구 털어넣으며 빠찡꼬에 몰입했다.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돈을 잃게 된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로도 사쿠라다 씨는 갑자기 도박중독자가 된 것마냥 빠찡꼬 가게를 쉴새없이 들락 거렸으며 휴일에는 하루 종일 가게에 틀어박혀 있을 정도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 말릴 틈도 없는 사이 그는 막대한 노름빚을 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 빚은 전부 악질적인 사채, 하루하루가 지날때마다 이자는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람..."
이미 차용증에 써진 금액은 돈을 빌려쓴 본인도 납득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였다. 게다가 이자율을 계산해보자면 곧 이 부채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판이었다. 사쿠라다 씨는 악몽이라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눈 앞에 놓인 막대한 빚은 분명히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 빚을 갚으려면 이미 그가 사십평생 열심히 벌어온 전 재산을 다 털어넣더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밀어올려도 밀어올려도 끝없이 굴러 내려오는 탄탈로스의 바위를 바라보는 듯한 절망감이었다.
물론 떼어먹는 것도 있을 수가 없었다. 모두 야쿠자나 다름 없는 뒷사회의 악질 사채업자들에게 빌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갚지 못했다가는 그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버지. 무슨 안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최근 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아이가 걱정이 되서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차마 가족에게 이런 사태를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다른 문제로 걱정이 심한 것 같아 아이는 타쿠로의 문제에 대해서 상담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날 세키코 선생을 떠보려 갔던 아키라도 아무 성과가 없었기에 아이는 답답함이 더해졌다.
"여보. 실은 할 말이 있어...."
아이에게는 말할수 없었지만 결국 아내에게 까지 숨길수는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이자가 불어나게 되니 숨기면 숨길수록 부담이 더 커질 뿐이었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는 것이 상책이었다.
"세상에... 그럴수가...."
남편의 괴로운 고백에 사쿠라다 부인 역시 망연자실했다. 마음씨 착한 그녀는 차마 화를 내지는 못했지만 기가 막혔다. 무슨 도리로 그 엄청난 빚을 갚는단 말인가.
"빨리 빨리 움직여. 굼벵아."
"네. 죄송합니다. 주인님...."
"야야. 그 피규어 소중히 다뤄!"
타쿠로는 세키코의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이삿짐을 챙기고 있었다. 물론 일은 세키코의 몫으로서 타쿠로는 그저 이것저것 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몸을 거의 다 드러내는 부끄러운 메이드 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타쿠로가 지시하는대로 수많은 이사짐을 포장했다.
타쿠로는 이제 그녀를 성노예로 쓸 뿐만 아니라 완전히 몸 종으로도 부리고 있었다. 세키코는 몸이 두개 있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비록 그녀는 충실하게 타쿠로에게 봉사했으나, 체력이나 시간적으로 힘든 것이 많았다. 타쿠로도 빨리 새 노예를 추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
타쿠로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타쿠로는 전화를 받아보고 씨익 웃었다. 그것은 그가 세뇌해둔 이 지역의 야쿠자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가 명령한 음모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였다.
"크크큭. 수고해."
사실 아이의 아버지가 갑자기 빠찡꼬에 미친 것도, 위험한 사채를 앞뒤 가리지 않고 빌려 쓴 것도 모두 타쿠로의 염력과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 사쿠라다 가를 파멸시킬 그물은 사방에 쳐지고 있었다.
다음날, 사쿠라다 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w지하철 역에서 회사로 가던 도중에 험상은 인상의 덩치큰 사내들이 몇명 그에게 접근하더니 다짜고짜 그를 붙잡고서 재건축 공사가 예정되어 있는 폐건물로 끌고갔다.
"당신들 누구야?!"
사쿠라다 씨는 발버둥치며 몇번 반항을 시도해보았으나 덩치 큰 사내가 셋이나 달라붙어서 붙잡고 있으니 도저히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폐건물에서 두 명이 사쿠라다 씨를 좌우에서 붙잡고 한 명은 그 앞에 놓인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무, 무슨 짓이요?"
"우리가 왜 나서는 지는 당신이 더 잘 알텐데."
‘이, 이런... 사채업자가 야쿠자를 보낸 건가!’
사쿠라다 씨의 머리 속에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쓸데없이 화려한 옷과 장신구, 목등으로 슬쩍 보이는 문신. 그들은 한눈에 봐도 야쿠자와 같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선량하고 평화로운 인생만 살아온 그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야쿠자는 이죽 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담배꽁초와 가래침을 탁 뱉고는 협박하듯이 말했다.
"거 험한 꼴 보기 전에 빨리 갚는게 좋을 거요. 크크큭."
"어, 어떻게 선처를 해볼 방법이 없겠소? 내 전 재산을 털어도 원금도...."
"이봐! 당신이 빌린 거잖아? 갚지도 못할 거라면 애초에 빌리지 말아야 할거 아냐?"
"으윽...."
<두려워하라->
사쿠라다 씨는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감히 그에게 반박하는 말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야쿠자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져서 이제는 주머니에서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꺼내 펼치고는 그의 배에 가져다 대면서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돈이 없다면 내장이건 뭐건 꺼내서 팔란 말이야. 아앙?"
"그... 그만두시요... 으윽..."
나이프는 금방이라도 그의 뱃가죽을 ?어서 내장을 끄집어 낼 것처럼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완전히 겁에 질린 사쿠라다 씨는 벌벌 떨면서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 눈물을 찔찔 흘렸다.
<두려워하라->
"내가 직접 꺼내줄까? 엉?"
"윽! 제발!"
야쿠자는 익숙한 솜씨로 재빠르게 나이프를 놀려 눈깜짝할 사이에 양복과 셔츠의 단추를 뜯어내고, 훤히 드러난 그의 배꼽 바로 앞 까지 칼끝을 가져다 대었다. 피부에 칼날의 싸늘함이 느껴지자 사쿠라다 씨는 후덜덜 거리며 떨다가 급기야 오줌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양반이 냄새나게 스리..."
"살려주시요. 제발... 무슨 짓이라도 할테니..."
"쳇. 기가 막혀서 원."
야쿠자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면서 칼을 거둬들였다. 뜨듯한 오줌이 그의 바지를 타고 흘러내려 신발 아래에 고여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좌우에서 붙잡고 있던 야쿠자들도 그걸 피해 슬쩍 물러섯다.
<두려워하라->
사쿠라다 씨는 비참하기 그지 없는 몰골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연신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그 한심한 모습에 좌우에서 붙잡고 있던 야쿠자들의 피씩 거리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왔다.
"그래. 장기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있긴 있어. 둘 중에서 선택해보면 어떨까?"
야쿠자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서류 한장을 눈 앞에 내밀었다. 대체 무슨 제안을 하려는 건가? 눈물을 닦고 그 서류를 본 순간 사쿠라다 씨는 입을 쩍 벌리고 말도 못할 만큼이나 경악을 했다.
잠시후 사쿠라다 씨는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도저히 회사에 갈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는 야쿠자들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경찰에 신고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야쿠자들의 요구 조건은 두 가지 였다. 하나는 빚을 갚기 위해 그의 전 재산을 넘기고,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그에게서 판매가능한 모든 장기를 팔아치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의 딸, 사쿠라다 아이를 넘기라는 것이었다. 기한은 바로 내일까지.
양쪽 모두 대단히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어느 쪽이건 최악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무엇을 택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아내와 상담하고 싶었다.
"크흐흐흐흐흐흐!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
폐건물에서 타쿠로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고 있었다. 타쿠로는 예전부터 사쿠라다 씨를 상당히 싫어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타쿠로의 안좋은 소문을 듣고 그는 아이에게 타쿠로가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몇차례 있었다. 그 사쿠라다 씨가 굴욕을 겪는 장면은 모두 비디오 카메라에 촬영되어 있었다.
"꼴 좋다. 꼰대. 크크큭...."
타쿠로는 그의 용기를 완전히 거세하여 사쿠라다 씨를 고양이 앞의 쥐처럼 겁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그는 너무나 겁이 많아진 나머지 보복을 두려워하여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타쿠로는 그가 두려움에 질려 도망치듯이 아내를 찾아가서 조언을 무조건 따르도록 암시를 걸어두었다. 물론 그 앞길에도 타쿠로가 쳐둔 ‘덫’이 놓혀있었지만. 타쿠로는 사냥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야쿠자들은 그의 사냥개... 빚은 미끼... 그리고 사냥감은....
사쿠라다 씨는 집으로 돌아가 그 즉시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여보?"
그런데 사쿠라다 부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사쿠라다 씨에게는 너무나 뜻밖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쩔수 없어요.... 아이를 넘길 수 밖에요."
"그럴수가..."
그는 뒤통수를 한대 거칠게 맞은 듯한 충격에 혼란에 빠졌다. 딸을 야쿠자 무리에게 넘기자는 이야기를 저렇게 쉽게 하다니. 하지만 부인은 태연하게 설명을 해 나갔다.
"전 재산을 넘기고 당신이 장기를 빼앗겨 폐인이 된다면 우리 가족은 모두 살아나갈수 없어요. 하지만 아이를 넘긴다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예요. 자식은 또 낳으면 되는 거니까..."
"그, 그런가?"
인륜을 도외시한 그야말로 타산적이기 그지 없는 의견이었으나 왠지 사쿠라다 씨에게는 그것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물론 보통 때라면 사쿠라다 부인도 이런 제안을 할 리가 없었다. 이것 또한 타쿠로가 미리 부인에게 암시를 걸어둔 결과였다.
"아, 알겠어. 당신까지 그렇게 말한다면..."
"슬프지만 할수없는 일이죠...."
본래 인간의 정신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받기 쉽다. 실제로 여러 사람이 잇달아 의도적으로 같은 증언을 하면 증언을 듣고 있던 사람의 기억이 바뀌어버리고 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거기에 타쿠로가 미리 걸어둔 몇 가지 암시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그들 부부는 이전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판단을 내리고 만 것이다.
띵동-띵동-
"누, 누구시요."
그때 대문 초인종이 울렸다. 사쿠라다 씨는 인터폰을 확인했다. 저 편에서 오늘 아침에 만났던 그 야쿠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끔찍하기 그지 없는 공포에 사쿠라다 씨는 몸이 움츠려들었다.
"결정은 내렸소?"
"이, 이렇게 일찍 말입니까?"
아직 채 정오도 되기 전이었다. 사쿠라다 씨가 협박을 받은 후에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너무 유예가 없는 물음에 그는 당혹했다. 막상 야쿠자가 오자 귀여운 딸 아이를 이런 무도한 자들의 손에 넘겨주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도 들었다. 하지만 야쿠자는 호통치듯이 버럭 소리를 질럿다.
"기한은 오늘까지라고 했어! 내일이 되면 빚이 더 불어나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때는 당신네 전 재산을 처분하고 전 가족이 팔려가도 모자라! 여고생 하나로 봐 주는 것도 이쪽에서는 충분한 선처야."
"아, 알았소.... 방금... 아내와 딸을 넘기기로 결정했소...."
"좋아요. 그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읍시다. 내가 들어갈까? 아니면 당신이 밖으로 나오겠소?"
"내가... 나가지요..."
사쿠라다 씨는 야쿠자가 요구하는대로 아내와 자신의 도장을 가지고 나갔다. 그는 야쿠자들에게 끌려 그들이 타고온 봉고차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기력하게 딸을 그들에게 넘기는 것에 동의하는 매도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킥킥킥킥킥...."
타쿠로는 골목길 근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인신매매 계약서에 법적인 구속력이 있을리는 없지만, 암시를 거는데는 아주 효과적인 소재였다. 그리고 방금 아이의 집 안에서 벌어진 사쿠라다 부부의 대화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모습도 미리 몰래 설치해둔 비디오로 찍고 있었다.
"그럼, 양도는 끝났으니 이제 데려가도록 하지."
"아, 아니... 마지막으로 얼굴만이라도..."
"이미 계약은 끝났어. 우리 물건을 우리 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저리 꺼져."
야쿠자들은 메달리는 사쿠라다 씨를 매정하게 뿌리치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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