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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16 645회 0건
-흔적-

‘잘….좀, 살펴 봐 줘.’

‘글쎄요, 정신이 산만해서리….’

이 형사님은 나에게 다소곳한 말투로 아까부터 계속해서 부탁쪼로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지나다니는 사람들 때문인지 정신이 집중되질 않고 있었다.

‘이형사 님, 오늘은 어째 힘드네요. 취조실 같이 좀 조용한 곳은 없어요?’

나는 집중이 되질 않고 있었다. 가뜩이나 사람들의 왕래도 많을 뿐더러 소리소리 쳐대며, 피의자들에게 고함을 쳐대면서 책상도 내리치는 강력반의 실내는 정신 집중은 커녕, 있던 정신도 달아날 지경이었다.

‘그럼, 오늘 그 사진을 줄 테니 어떻게 좀 해봐. 내가 오죽하면 박군을 찾았을 라구? 이거 증거물 이니까 지문 묻질 않게 조심하고, 무슨 건수 생기면 바로 바로 연락해, 알았지?’

이 형사님과 나와의 관계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미대 출신으로 교수님의 추천으로 몽타주를 전문 으로 취급하는 부서에 알바생 으로 발탁 되었던 것이 인연이었다. 지금이야 몽타주를 작성하는데 피의자의 증언을 토대로 그 내용에 유사하도록 컴퓨터의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해서 부분별로 오차가 없도록 조합해서 몽타주를 만들어 내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전문 화가가 동석한 자리에서 몇 십번씩 지우고 다시 그리는 지루한 작업을 통해 몽타주를 작성하곤 했었다. 하긴 요즈음도 컴퓨터가 갖고 있는 데이타 베이스의 한계로 인해 보다 정확한 감각의 기본 틀은 동석한 전문가의 텃취를 근간으로 유추해 내는 경우가 더 많기는 했다. 그런 연유로 몽타주를 만들어 내는 전산 프로그램의 기본인 원도 제작에 내가 일부 참여 했음은 물론 이었다. 이 형사님이 언제나 나를 추천하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국민학생 여야 유괴사건 시절, 형사들을 골탕 먹이면서 수사망을 이리 저리 빠져 나가던 범인의 얼굴이 목격된 일이 있었다. 즉각, 목격자는 수사본부로 불려 올려 졌으며, 나에게는 한밤중에 호출이 왔다. 그 당시는 학생신분 이었던 관계로 이 형사님은 나를 박군 이라고 호칭 했었다.

‘박군, 빨리 이쪽으로 와 주었으면 좋겠는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대개 몽타주의 작성은 목격자의 기억이 가장 신선할 때를 기점으로 24시간이 흐르면 그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 이어서 시도 때도 없이 호출이 있는 것이 사실 이었다. 나는 화구를 챙겨 들고 수사본부로 향했다.

‘빨리 왔네, 들어가지…’

‘네.’

그 당시, 신출귀몰한 수법으로 2번에 걸쳐서 몸값을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 교묘하게 수사망을 빠져 나가면서 함정을 피해갔던 범인의 얼굴이 기어이 노출 된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수사진에게 던져주고 있었다. 취조실에는 겁먹은 얼굴로 중학생 정도 되는 남학생이 잔뜩 주눅이 든 채로 앉아 있었다.

‘안녕?’

내가 인사를 먼저 건넸는데도 학생은 말이 없었다. 뒤따라 들어온 이 형사님이 앉고, 대강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스케치북을 펴 들고, 학생과 마주 앉았다. 이 형사님이 나를 언제나 찾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유도기법 때문이기도 했다.

‘자, 우리 겁먹지 말고, 형 한테 차근 차근 얘기해 보자. 이제 눈을 감고, 형사님이 얘기한 그 사람을 봤던 때로 기억을 돌려 보자. 어떻게 만났지?’

‘…….’

‘괜찮아, 이 방에는 너랑 이 형사님이랑 나, 이렇게 셋 밖에 없어. 겁먹지 말고… 그리고 어떤 얘기를 해도 범인은 네가 한 얘기를 알 수 없게 우리가 보호해 줄꺼니까, 알았지?’

대개 목격자로 오더라도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을 흠씬 겁먹게 하기에 충분한 고압적 분위기 임은 물론 이었고, 하물며, 중학생은 자신이 범인이라도 된 듯한 초조함과 피해 의식을 같이 느끼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키가 어느 정도 였지?’

몽타주를 작성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를 먼저 물어보는 실수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에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에 질문을 맞추다 보면 전체적으로 언밸런스한 형태로 몽타주가 마무리 되어지던 경험 때문이기도 했다.

‘저보다 이만큼은 컸어요.’

‘주변에 우체통이 있었니?’

‘네, 그 우체통 보다 얼마나 키가 컸었지?’

대개 이런 경우에는 목격자가 어리고 겁을 먹은 관계로 필요 이상의 자기 의지가 가미되어 엉뚱한 물리적 치수를 들이대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주변에 기준이 될만한 물건을 중심으로 치수를 예상해야 했다. 나의 버릇 처럼 나는 얼굴에 중심을 두질 않고, 우체통에 기댄 젊은이의 그로키를 그려 나갔다.

‘신발은 기억 나니? 색깔이 기억나?’

‘밝은색 구두였던 것 같아요.’

대개 학생들은 나이 많은 어른 들이 구두를 신는 다는 편견으로 말미암아 색은 기억을 하되 그것이 구두 일거라는 짐작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범인은 아마도 흰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었을 것이다.

‘혹시 청바지를 입질 않았니?’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이런 식으로 질문을 몰아가다 보면 목격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목격한 범인의 인상착의에 섬세하리만치 자세한 부분까지 들추어 내면서 집중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이런 경우, 목격자가 흥분해서 자신만의 첨삭을 통해 엉뚱한 영상을 창출해 낼 수도 있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했다.

‘손에 무얼 들고 있었니?’

‘작은 손가방 같은 것인데 끈이 달려있었어요. 검은 색 이었구요.’

눈을 감고, 범인의 인상착의에 집중하는 학생의 눈동자가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머릿속 으로 연상되는 화상이 점점 또렷해지는가 보다.

‘윗도리는 스웨터를 입었겠구나?’

‘아니요, 얇은 남방이었는데, 연한 푸른 색이었어요.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스웨터를 입을 수 있겠어요?’

기억을 보다 생생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대 되는 질문으로 자신이 보았던 영상을 고집하게 끔 하는 기법도 요구 되고 있었다. 범인은 175센티미터 정도의 호리호리한 체격에, 흰 운동화를 신고, 연한 푸른 색의 남방에 손에는 검은 색 손가방을 끈으로 손목에 끼운 모습 이었다. 나는 이쯤에서 얼굴을 제외한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자, 그럼 머리 모양이 기억 나니?, 특별히 뭐랄까? 안경 같은 것을 썼었니?’

‘그럼요, 밤색 뿔테 안경을 썼는데요, 공부 많이 한 사람처럼 보였어요. 머리는 달리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보통 대학생들 머리 같았구요.’

나는 이쯤에서 눈을 뜨라고 하면서 빠른 속도로 그려 내려간 그림을 목격자에게 보여 준다. 아까의 스타일에 우체통에 기대고 서서 한 쪽에 가방을 손목에 끼운 채, 보통 머리에 안경을 쓴 모습….얼굴은 정확하질 않지만 스케치 북을 눈을 뜨고 대하는 학생의 눈이 커지면서 휘둥그래 진다.

‘맞아요, 그 아저씨에요.’

이 형사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다시 학생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고는 이제 자세한 몽타주 작성에 들어간다.

‘그 사람이 너와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얘기를 했었지?’

이 질문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이 질문과 더불어 목격한 시간과 장소, 등이 덧붙여 질문 되는데, 그 이유는 해의 위치에 따라 얼굴의 음영, 머리와 피부색 등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예측 되어 질 수 있는 다양성 때문 이었다. 한가지 어려운 점은 범인이 해를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지는 석양의 붉은 기운과 햇살로 인해 눈매의 표현이 안경에 반사되어 거의 불가능했던 점이었다. 안경을 썼다는 것은 몽타주 작성의 청신호이기도 했지만 아무런 거부감 없이 대하는 목격자 입장에서는 눈매가 어떻게 생겼나 라는 기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약점이기도 했다.

‘피부가 흰 편이었지?’

‘네.’

‘잘 웃는 편이고…’

‘네.’

‘안경을 자주 매만졌고?’

‘네.’

‘히야, 대단해.’

이 형사 님이 감탄하고 있었다. 그것은 경험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묘한 구섞이 있었다. 나는 몽타주를 그리면서 언제나 그렇지만 목격자의 대답을 앞서나가면서 질문을 던지는 희안한 버릇이 있었다. 흡사 그 사람을 알고나 있는 것처럼…

‘그 사람, 목젖이 좀 튀어 나왔었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것은 나만의 비법이기도 했다. 맨 처음 그려 놓은 전신 스케치를 옆에 놔두고 나는 계속해서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렴풋하게 도화지 위에 범인의 영상이 도드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그 사건은 범인의 자수로 말미암아 몽타주의 덕을 보지는 못한 셈이 되었지만 검거된 범인의 얼굴과 거의 흡사한 형태로 추출된 결과로 말미암아 세인의 입에 잠시 이기는 했지만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몽타주의 데이터 베이스 원도 제작에 일부 참여하고 나서 그 분야와는 발을 끊었지만, 어려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형사님은 나를 부르시곤 했다. 언젠가 술을 먹으면서 하신 말씀 때문이기도 했고…

‘박군아, 내가 형사 생활 10년이 넘었지만 너처럼 영기 있는 놈을 보덜 못했다. 이건 무신 족집게 무당도 아니고…아무튼 너를 생각할 때마다 등골이 섬? 하기도 하고 말이야. 아무튼 내가 필요로 할 때, 냉큼 달려와야 돼?’

사람들은 영기다, 초능력이다, 경험의 소치다 하면서 말들이 많았지만 다른 사진을 대할 때에는 별다른 것들을 느끼지 못해도, 범인의 것이다, 혹은 피해자의 유품에서 나왔다는 둥의 얘기만 듣고 나면 나는 그 사진 속에서 실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들이 범인을 검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증거로 채택 될 수는 없었다 손 치더라도 이 형사님은 언제나 나의 증언들이 범인을 검거 하는 데에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었다고 하면서 기꺼이 나를 불러 들이시곤 했던 것이다. 오늘 받아 든 사진은 경찰 증거물 이기에 조심해야 된다는 이 형사님의 당부에, 집으로 갖고 와서 작업실에서 바로 사진을 찍은 뒤에 이 형사님께 돌려 드렸다. 만일 망실 했다든가, 아니면 상부에서 보고용으로 제출하라고 했을 때, 없기라도 한다면 난처해 질, 이 형사님을 생각한 나의 배려였다. 이 형사 님을 뵙고 사진을 돌려 드리고 돌아 오니, 현상액을 말리려고 걸어놓은 사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작업실 안은 어두웠지만, 밖의 불빛이 차단된 안락함으로 정신을 집중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로 내가 주로 찾는 곳이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전문 사진작가로 나서기로 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가 말렸지만, 이젤을 앞에 두고 줄창 유화물감 냄새만을 평생 맡을 생각을 하니 그렇게 까마득 할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그 때의 결심은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쉰 식초냄새 같은 현상액이 싫다고 했지만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냄새로 인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걸어 놓은 채로 현상액이 말라가며 사진의 음영이 강해지는 그 순간 속에서 느끼는 만족감이라는 것은, 그림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스스로 창작력이 부족하다고 믿어오던 나에게, 있는 그대로를 찍는 다는 사실로 인해 짐을 벗었다고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사진도 그 표현의 한계가 만만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사진을 들고 작업실을 나왔다. 커피를 타서 의자에 앉아 사진을 둘러 보았다. 뭐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여학생들 끼리 모여서 소풍에서 찍은 듯한 그런, 핀트가 않 맞은 평범한 사진. 내가 원래 사진의 크기에 비해서 확대해서 찍은 것 밖에는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게 뭐지?’

나는 맨 처음, 사진에 현상액이 잘못 응결되어 나타난 얼룩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보기에 그 얼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진은 매끈하게 현상되었고, 그 얼룩은 촬영 당시에 생겼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희미한 형태로…나는 작업실로 들어가 필름을 형광판에 끼우고 루뻬를 손에 들었다. 필름에도 그 얼룩은 분명히 있었다. 어라?

‘호석이 형 있어요?’

나의 대선배 이자, 사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감각을 갖고 있기에 내가 추앙하는 사람중의 하나인 그는 충무로에서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실력파 였으며, 집에는 사진에 관련한, 없는 장비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기인 기질의 소유자 였고, 살아있는 것들은 사진으로 찍혀져야 한다고 믿는 그런 신앙인 이기도 했다. 마치 모든 것의 흔적은 사진 속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왠 일이냐? 뜬금없이?’

형은 언제나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는 걸로 유명했지만 속은 그렇질 않았다.

‘형, 다름이 아니고, 사진 하나 분석해 줄래요? 형이 제판용 드럼 스캐너 갖고 있는 게 생각나서…’

‘꼭 아쉬울 때만 전화하지? 술 한잔 사는 법이 없다니깐.’

‘알았어요, 내가 술 사가지고 갈께요. 오늘 작업 없어요?’

‘오후에 족탱이랑 한 껀 있지.’

그 퉁명 스런 말투에 더하여 구두나 스타킹 제품 촬영 시에 고용되는 다리전문 모델을 형은 서로간에 원한지심도 없었지만 그렇게 비하 해서 부르고 있었다. 그 성격 탓에 제품을 기획하는 기획사 측과 멱살 틀어 쥐고 싸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술이랑 안주를 사가지고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 섰는데, 형은 전화기를 붙들고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야이. 씨발놈아, 어따 대고 좇 같은 쌍소리야, 씨발, 내가 느그들 없다고 굶어 죽을 까봐? 찍새가 씨발, 나 하나뿐이냐? 충무로에 널리고 깔린 게 찍샌데, 어디 잘해 봐라.’

‘형 또 왜 그러우?’

호석이 형이 싸움박질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획사 측 인물들 이었다. 사진의 톤이 않 좋다, 웃대가리가 보면 결재가 않 날 것 같다, 좀 표현력 강하게, 제품위주로 찍어주면 안되겠냐는 등의 지적은 언제나 형의 심사를 뒤집어, 저런 꼴이 나는 것이 대부분 이었다.

‘개쇄끼들, 사진은 좇또 모르는 것들이 어디 앞에서 주름 잡고들 있어?’

아마도 오후의 촬영 건이 어그러 지고 있는 듯 싶다.

‘허이구, 술은 사왔네. 그런데 뭔 일로? 너 아직도 짭새 뒤쫓아 다니고 있냐?’

‘아니에요. 그게 언제쩍 일인데? 아무튼 이 사진이나 좀 분석해 줘요. 필름이 없어서 제가 보드에 고정 시켜놓고, 반사되지 않도록 찍기는 했는데 이런 희끄무리한 얼룩이 질 줄은 몰랐어요. 필름도 가져 왔거든요. 형, 장비나 좀 빌려 씁시다.’

‘꼭 요럴 때만 형이지.’

형은 투덜대면서 지하로 내려 가자고 한다. 결혼도 아직 않 하고, 허구 헌날 사진에 매달려 사는 생활이다 보니, 아직도 독립하질 못하고, 본가에 얹혀 살면서도 지하실 전체를 사진 장비로 가뜩 채워 놓고 사는 그를, 부모님들은 미친 놈 중에서도 상극으로 치신단다. 지하실은 언제나 와 보아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장비가 가득 차 있었다. 출력소나 전문 인쇄소에 있을 법한 드럼 스캐너가 구섞에 보일러 처럼 버티고 있었고, 작업 데스크에는 대형 LCD모니터가 세 개씩 연이어 있었고, 컴퓨터도 최신 G5맥 에서부터 실리콘 그래픽스의 워크스테이션 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벽의 진열장에는 사진기들이 모아져 걸려 있었고…

‘형은 돈 벌어서 죄다 이런 것들만 사나봐.’

‘이거 말고 내 낙이 있냐? 다 내 새끼들인데….’

‘그 사진, 이리 줘봐.’

형도 나처럼 스캐너에 넣기 전에 루빼로 자세히 살펴 본다. 그리고는 스캐너에 사진을 넣고, 조작 스위치를 작동하며, 맥주를 따서 벌컥벌컥 들이킨다.

‘쫌 시간이 걸릴 껄, 네 핀트는 제대로 맞았는데, 글쎄, 네가 사진이나 조명에 서투를리 없고…’

형은 작업대에 앉아서 나와 마주한 채로 맥주를 거푸 두캔 씩이나 들이켰다.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보통 평판 스캐너에 비해서 그 해상도라고 하는 것이 대단한 지경이라 스캔 해대는 시간도 만만찮았다.

‘저건 무슨 사진이냐?’

‘예전에 알고 지내던 이 형사님이 부탁하신 거…’

‘하이고, 또 그놈의 형사? 넌 지겹지도 않냐?’

‘난 재미있던데 뭘?’

이런 저런 얘기로 나와 호석이 형은 스캐너의 회전이 멈출 때 까지 서로가 맥주를 거나하게 비워갔고, 결국 모니터 화면에 대문짝 만하게 나타난 화상으로 인해 말을 멈추었다. 형은 마우스 보다 능숙한 솜씨로 타블렛 펜을 이용해서 문제의 그 얼룩을 향해 화상을 찍어 옮기고 있었다.

‘야, 이거 봐라!’

호석이 형이 그 얼룩을 자세히 보더니만 한참을 바라보면서 내게 물었다.

‘이게 무슨 사진이라고 하대? 무슨 여고생의 수학여행이나 소풍 사진인 것 같은데, 원래 사진이 이렇게 핀트가 않 맞았던 거냐?’

‘글쎄, 아무런 이야기는 없었고, 그냥 알아봐 달라고만 해서….. 원래 받았을 때, 사진의 핀트가 않 맞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얼룩은 없었거든요.’

‘이건 얼룩이 아니야, 필름에 찍힌 거라구, 조명이나 반사된 역광도 아니고, 렌즈 앞을 가린 것처럼 그냥 찍힌 거야.’

‘무어가?’

‘글쎄, 한번 해 볼까?’

형은 귀신 같은 솜씨로 몇 개의 프로그램을 세 개의 모니터에 띄워놓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우선 그 얼룩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점점 해상도가 증가하면서 그 얼룩은 점점 커진 형태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고해상도 스캐너를 사용 했음 인지 왠 만큼 해상도를 높여도 그 선명도는 적절히 유지되고 있었다. 어느 정도 화상을 키운 뒤에는 인쇄시에 만드는 색분해 필름처럼 그 얼룩 무늬만 따로 화상에서 분리해 냈다. 더욱 정교한 영상조절을 하면서 그 얼룩을 따로 떼어 놓고 보니, 여러 가지 무늬가 블록 맞추기 같이 배치된 것처럼 드러났다. 그 모양 가지고서는 언뜻, 무슨 형태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거기에서 형과 나는 벽에 부딪혔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형은 무릎을 탁 치더니, 잘 보라고 말했다.

‘이 얼룩을 보아하니 한 덩어리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알아보지 못하게 뒤섞어 놓은 것 같단 말이야. 한번 맞춰 보는 거지, 뭐. 딴 수가 있겄냐?’

오랜 동안 형은 지겹지도 않은지, 줄창 여러 조각으로 금이 간 그 무늬를 핀셋으로 집어 재배열 하듯이 무늬를 돌려가며, 눈에 익은 모습이 나오는지 살폈다. 그래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워낙 많은 조각 이었기에…그 때, 전화가 왔다. 형은 전화를 받으면서도 시큰둥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아까 싸웠던 인물이 사과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 글쎄, 괜찮다니깐요. 뭐 이런 일, 한 두번 겪습니까? 네…네… 곧 나가죠.’

‘형, 누군데요?’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지들이 별 수 있을 라구? 다시 스튜디오로 나오란다. 난 그만 갈 테니 혼자서 지지고 볶고 있어. 지겨우면 챙겨 가지고 들어가고….끌 줄은 알지?’

형은 부리나케 장비를 챙겨서 횡 하니 나가버리고, 지하실에는 나 혼자만 댕그러니 남아 버렸다. 무늬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보아도, 찢어진 천 조각 같은 무늬조각의 모음은 별다른 익숙한 모습을 보이질 않고 있었다. 나는 버릇처럼 그 영상을 저장하고 나서, 시스템을 끄려고 드럼 스캐너 쪽으로 가고 있었다.

‘퓨욱….’

전기가 나간 것이었다. 하필 이런 때에… 어두워서 제대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있었다. 나는 그냥 더듬 거리면서 움직이다가는 부서뜨릴 것이라도 있을 까봐, 그냥 의자 옆에 있는 소파에 누워서 전기가 들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전기는 들어오질 않고, 마신 맥주로 인해 졸음까지 몰려 오고 있었다. 깜빡 졸았다 싶었을 때, 천장에서 이마로 무언가 물 같은 것이 떨어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캄캄한 방안에 누워 잠시 졸고 있던 탓에 무언지 알 수는 없었다. 그 때였다. 윙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가 들어오고, 천장을 보고 있던 나는 천천히 입이 벌어지면서, 아무런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온 사방으로 길고 긴 머리카락이 펼쳐 지면서, 소파에 누워있는 나를 향해 어떤 여인이 깃털처럼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물에 빠져 물밑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시체를 물 밑에서 목도 하는 것처럼…전체를 살펴 볼 수도 없이 내 얼굴 위, 바로 앞까지 팔을 양쪽 으로 펼 친 채로 엎드린 것 같은 자세로 내려오고 있는 여인은…….있어야 될 두 눈이 없었다. 시커먼 동공과 뻥 뚫린 안구 사이 에서는 피비린내 같은 것이 스며 나오고 있었고, 내 위에 몸이 한치의 틈을 둔 채로 떠 있는 상태 였는데도 머리카락은 옆으로 펼쳐진 채로 일렁였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검은 안구만을 향한 채, 내 이마 위에 떨구고 있는 것은,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나는 숨을 쉴 수도 없을 만치 격심한 공포에 휩싸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ㄱ!’

‘경수야! 정신차려 임마, 무슨 꿈을 그리 호들갑 스럽게 꾸냐?’

나는 혼비백산해서 일어났다. 온 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하고 있었으며, 방금 꿈에서 깨었건만 가슴은 여태 쿵쾅거리고 있었다.

‘어, 형 언제 왔수?’

‘그 새끼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깐. 무조건 스튜디오에 불러다 놓고 카메라 들이대니깐 그때부터 또 시덥지 않은 소리 하면서 지지리 궁상 떨길래, 그냥 들어와 버렸지. 뭐. 근데, 무슨 꿈을 그렇게 대낮에 지지리 꾸고 있냐?’

나는 대답 대신에 그릴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컴퓨터에 대고 그냥 그리라기에 아니라고 하며, 나는 도화지를 찾았다. 가까스로 연필 몽다리를 찾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형은 돌아와서는 능숙한 솜씨로 그려대는, 나의 그림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목격자를 상대로 몽타주를 그리는 것처럼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머리 모양은?’

‘길게 보였지만 구불구불 했던 걸로 보아 평소에 땋은 머리 였거나 파마한 것을 묶었을 거야. 양 갈래로 땋은 머리로 해 볼까? 옳지.’

‘목선은?’

‘아주 길고 수려했어, 이쯤 되었을 거야.’

‘귀는?’

‘동그랗고 작았는데 귓불이 두꺼웠지.’

‘코는?’

‘오똑 하면서 콧망울이 동그랬어. 귀여운 형태, 그렇지, 이런 모양 이었어.’

‘이마는?’

‘약간 좁은 듯 했고, 아, 참! 한가운데에 있던 것이 아마 가마 였을 꺼야. 이런 식으로…’

‘눈썹은?’

눈썹을 그리고 난후, 눈을 그리려다가 나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형이 연필을 잡은 내 손을 덥석 쥐는 것이었다.

‘겨…경..경수야, 너 이….. 그림 왜 그리고 있냐?’

‘방금 전에 꿈에서 본 여자야. 너무 무서워 보이길래, 옛날 실력, 한번 발휘해 본건데 뭘. 아직 눈은 그리지도 않았는데….’

‘눈은 그릴 필요 없어. 어차피 없었으니까.’

형은 그림을 바라 보면서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그림을 든 채로 형은 작업대에 앉았다. 떨리는 손 끝이 멀리 에서도 보이고 있었고… 사진 속의 여고생들로 형은 시야를 좁혀갔다. 그 허연 얼룩이 끝나는 곳에는 한 여학생이 친구들의 틈 바구니에 섞여 있었는데, 아까는 얼룩에만 신경을 쓰다가 지나친 부분이었다. 나는 아는 채 한답시고 형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형, 저거 Red Eye-사진의 역광 혹은 후레시의 각도 이상으로 인해 각막이 빨갛게 나오는 현상-아냐?’

나는 그 말을 해 놓고 온 몸에 끼치는 소름을 어쩌질 못했다. 그 사진은 흑백이었는데…형이나 나나 말을 잊고서 화면 만을 바라다 볼 뿐이었다. 희미한 핀트로 인해 영상이 또렷하지는 않았어도 그 학생의 눈동자 만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땋아 내린 머리, 긴 목선, 나는 분명히 꿈속에서 그 여학생을 본 것이었고…형은 다급히 내가 잠들기 전에 맞추던 퍼즐 같은 얼룩의 세이브 파일을 찾았다. 파일을 여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저…저….저…..아까는 저렇지 않았는데…’

분명히 세이브 할 때는 그런 형태가 아니었는데 오픈 된 파일은 가지런히 정렬되어 그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 확연하게 보여지는 어떤 형상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손이었다. 그것도 지휘자들이 들고 있는 지휘봉을 손에 쥔 채, 다른 손으로는 열심히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손가락의 파형들… 그것은 하얀 장갑을 낀 지휘자의 두 손과 지휘봉이 만들어 내는 얼룩 무늬를 교묘하게 조각조각 뒤섞어 놓은 모습이었다. 형은 한동안 말을 못하고 작업대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경수야, 이 사진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봐라, 어서!’

나는 이 형사님에게 사진만을 건네 받았다고 하자, 이 사진들을 들고 지금 당장 그 형사에게로 가자는 것이었다. 택시를 타고 이 형사님께 가는 도중에도 형은 말이 없었다. 이 형사님을 만나고 상견례를 한 후에 우리는 비어있는 취조실로 들어갔다.

‘박군, 마침 잘 왔네, 무슨 껀수 라도 물은 게 있나, 전화나 하려 했는데 말이야.’

‘이 형사님, 그게 아니고, 사진을 제가 다시 찍었는데, 원본 좀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어, 지문 묻지 않게, 조심해.’

사진을 바라 본 나나 형이나 헉 하고 숨을 몰아 쉬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 사진에는 그 허연 얼룩도, 그 여학생의 빨간 눈동자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소풍날의 오후 였는데…담배를 피워 문 이 형사님이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 새끼, 워낙 뺀질 거려야지…’

‘누구요?’

내가 물었다.

‘누구긴 누구야? 이 사진 갖고 있던 놈이지, 지금 연쇄 살인범 혐의를 받고 연행 됐는데, 집안을 수색해도 아무런 증거도 없고, 지갑 안에 달랑 이 사진 뿐 이었다니깐. 그것도 내일이면 증거 불충분으로 내보내야 될 판이야. 사진 출처도 모르겠고, 워낙 핀트가 흐려서 교복이 어느 학교인지 알아볼 수도 없고 해서리…’

형은 나보고 잠시 나가 있으란다. 나는 취조실을 나와 한참 동안을 기다렸다. 취조실에서 나온 형과 이 형사님은 붉게 상기 된 얼굴로 그 살인범이 있다는 옆방에 마련된 녹음실로 가자고 했다. 녹음실과 취조실은 거울로 분리되어 있었고, 우리 쪽에서는 취조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방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냥 평범한 거울 일 뿐이었다.

‘이제, 순순히 털어 놓으시지?’

‘아니, 형사님, 아까부터 도대체 무얼 털어놓으라는 말씀이세요? 먼지떨이도 아니고…’

‘계속 그렇게 발뺌 할거야?’

‘허 참….’

‘허참은 연예인 이름이고, 이 사진이나 좀 보고 우리 얘기나 다시 해 볼까?’

거울을 통해 본 범인은 곱상 하게 생긴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흉악한 범행을 저질렀다고는 보이질 않는 그런 얼굴 이었는데, 연쇄 살인범이라니? 천천히 그의 앞에 이 형사님이 내가 찍은 사진을 A4지 크기로 확대한 사진을 내밀었다. 한 장은 그 여학생의 눈동자가 빨갛게 변한 전체 사진을 확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얼룩을 확대한 사진이었다. 사진을 찬찬히 살피던 그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 이제 무슨 말을 하나 들어 볼까?’

‘무슨 말을 하긴요? 들어 볼거나 있으시겠어요? 그 놈의 사진, 버렸어야 했는데…’

빙글빙글 느글대면서 낮은 목소리로 지분대는 그 놈의 얼굴을 보며, 형은 주먹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순순히 불지?’

‘흐흐, 그년 속살이 하도 쫄깃하고 맛있길래, 잊을 수가 없었는데, 그게 호미걸이가 될 줄이야.’

‘뭬야?’

‘방과 후면 제가 언제나 음악실에 불러다 놓고 피아노 반주를 시켰었죠. 합창반 연습과는 별도로, 반주가 시원 찮으면 안 된다고 이유를 대가며,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는 그 년을 죽자 사자, 덮쳤던 건데….형사님도 생각해 보세요, 고등학생 같질 않게 탱글탱글한 몸매로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히프를 이리저리 흔들거리면서 반주를 하는 모습이란 안 따먹고는 못 배기거든요. 맨 처음에는 어깨에 손을 얹고, 다음 번에는 팔을 적당히 스치고, 다음 번에는 옆 자리에 앉고, 그 다음 번에는 정면을 가로 질러 그 봉긋한 가슴을 슬쩍슬쩍 건드리고, 아마 그 년도 좇나 꼴렸을 겝니다. 흐흐흐, 기집년들 이란게 다 그렇죠 뭐, 제가 따먹고 죽인 년들도, 맨 처음에는 기겁을 하다가도 마지막에는 꺽꺽 대면서 보지를 팍팍 벌리더라니깐요. 그런데, 그 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시게 뻔덕이던 것이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마음먹은 날, 음악실에 들어오는 것을 냅다 걷어차면서 고꾸라 트린 뒤에, 준비한 끈으로 묶어 버렸죠. 묶여서 버둥대는 팅팅한 년을 따먹는 기분은 아마 모르실 겝니다. 끝내 주거든요. 잘 벗겨 지지도 않을 것 같은 치마를 올려 붙인 뒤에, 고 하얗고 앙증맞은 팬티를 슬그머니 내리면 뽀얀 속살이랑, 핑크 빛 보지가 대번에 드러나면서 오금이 재려오는 거라니…’

‘미친 놈!’

‘맞아요, 나 미친놈! 아마 재판장님도 미친놈이라고 해주시면 죽기야 하겠어요? 헤헤헤!’

‘ 그런데, 왜 죽였어?’

‘맨 처음에는 보지만 핥다가, 위협으로 끝낸 다음에, 연속으로 몇 번 불러서, 데리고 놀 작정 이었죠. 그전에도 졸업생들 중에서, 그렇게 길낸 년들이랑, 음악실에서 신나게 씹구녕 후볐던 기억에, 이번에도 잘 되려니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던 겁니다. 묶어 놓고, 입에 재갈까지 물린 채로, 버둥대는 그 년의 씹살이 하도 이쁘길래, 어쩌질 못하고 좇을 꺼냈 습죠. 함박 움츠러든 처녀보지를 몽둥이 같은 좇으로 쑤셔 박을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아세요, 형사님? 똥싸는 소리같이 뿌지직 소리가 난다니깐요? 정 못미더우시면 한 번 해보세요. 정말 이라니깐요!’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 에요? 정신 없이 쑤셔 박았죠. 제가 왜 그 사진을 이제까지 갖고 있었는지 아세요? 그 년이 제가 죽인 첫번째 년이고, 가장 잊을 수 없이 섹시한 년 이었습죠. 그 다음 부터는, 의례 나와 강제로 섹스한 년이나, 끌려 온 년들은 대번에 죽여 버렸구요. 한번 죽이기가 어렵지, 그 다음 부터는 정말 쉽드라구요. 죽이면 죽일수록, 다음 번에는 좀더 새롭게, 좀더 완벽하게 완성을 향해나가는 그 정성, 알아줘야 한다니깐요!’

‘왜 죽였냐구?’

‘성질도 급하시지, 제 말 찬찬히 들어 보세요. 그년 보지는 유달리, 물이 질질 많이도 나왔어요. 입에 자갈을 물렸는데도 어찌나 끙끙 대던지, 뺨을 수없이 후려쳐도 끄떡도 않 하더라구요. 이리저리 쑤셔 박다 보니, 그만 싸고 싶어 지잖아요? 그래서 그 쫄깃한 보지 속살 안에 내 성스러운 정액을 듬뿍 선사 했답니다. 그리고, 좀 조용해 지는가 싶어서, 슬며시 재갈을 풀어 주었는데 아니, 그 년이 쌍욕을 해대질 않겠어요?’

‘아니, 따먹었으면 됐지, 욕한다고 사람을 죽여? ‘

‘그 년이 그랬다구요, 씨발놈, 지에미랑 붙어먹을 놈이라고…제가 어릴 적부터 제일 싫어하던 욕이 뭔지 아세요? 바로 그 년이 입 밖으로 지껄인 그 욕 이라구요. 이런 정신적인 피해를 면전에서 당했는데, 가만히 있는다면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홧김에 그 지휘봉으로 눈깔을 팍 쑤셔 버렸죠. 거 눈깔도 몇번 찌르니까 물 질질 흐르면서, 대번에 구녕 에서 딸려 나오던데요? 하여튼 어디를 쑤셔도 물 많은 년은 달랐다니깐요, 낄낄낄’

‘그래, 시체는 어떻게 했어? 눈은?’

‘눈이요? 그것도 고긴데 싶은 생각에, 집에 갖고 가서 찌게에 넣어서 잘 먹었죠. 시체는 아시다 시피, 청평호수에 버렸구요. 아마 사고사로 알고 있었을 겁니다. 우리집이 정육점을 하거든요. 한참을 냉동 했다가, 하도 냉동고가 비좁다고 엄마가 불평을 하셔서 1년 인가 있다가 내다 버렸어요. 엄마가 그러셨죠. 사람 죽여도 민찌로 갈아버리면 표시도 안 난다고… 아마 우리 동네 사람들도, 내가 죽인 년들, 진저리 나게, 갈은 고기에 섞어서, 많이도 드셨을 거에요. 엄마가 밤마다 저를 재워 주실 때마다, 제 위에 올라타고서 그러셨거든요. 우리 집 고기가 유달리 맛있다고,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하다고요.’

나는 취조실에서 들려오는 범인의 얘기가 무슨 꿈처럼 들리고 있었다.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내 옆에서는 실종되어 1 년 만에 호숫가에 두 눈이 없어진 채로 떠오른 여동생의 시신이 보이는 듯, 흐느끼는 형이 보이고…미친 개에게 물렸다고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고, 동물의 탈을 썼다고 밖에는 표현 할 길이 없는 살인마 모자간 이었다. 찾을 길 없던 살인마를 오빠의 앞으로 데려오게 하려고 그 여동생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을까?

‘근데, 형사님, 이상한 것은요, 동료들은 안 보인다고 했는데, 어째서 제 눈에만 그 년의 눈깔이 빨갛게 보인 걸까요? 그리고 그 얼룩은 침으로 지워도 안 지워 지더라니깐요, 글쎄. 내 눈깔에만 보였나? 미친 놈 눈깔이니 어련 했을라구, 히히히……’

-끝-

P.S.:그래서 블루스맨은 오늘도 가슴 서늘한 심령사진을 보며 더위를 식히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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