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 올립니다~! 그리고 참견이라니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한데 저야 한상 고맙죠^^;;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안나가 조금 머쓱해 하며 옆에서 따라붙어 걷고 있는 사내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오빠... 검사예요?”
“검사? 으, 응... 그런 셈이지.”
“이상하다... 검술을 배운 사람들도 만나 본 적이 많아서 굶지는 않는 다던데.....”
작게 중얼거리는 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사내가 뜨끔 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안나의 말대로 검사라면 용병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현상금 사냥꾼도 될 수 있을 것이며 그 외에도 몬스터 토벌대에 참여하거나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길은 열려있다.
‘어색해서 그런 일 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도 없고...’
난처한 듯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내의 말대로 황당하게도 그런 일들을 맡아서 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이상하기도 했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도망쳐 나올 때 그런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넉넉히 자금을 챙겨왔는데 멍청하게도 돈주머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백방으로 찾아보고 노력해 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며칠 동안 제대로 밥 한 끼 먹지 못 했고, 여행복 차림이 더러워졌다고 하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귀티까지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온지라 모든 게 어색하고 이상했다.
빈털터리가 된 상태에서 축제에 가면 뭔가 해볼 수 있는 게 없을까 하여 나아가던 도중, 배고픈 건 아무리 귀족인 그라도 어쩔 수 없었는지,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맛있는 남새에 이끌려 가게 되었고, 계속해서 망설이면서 숨어서 지켜보다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론은 사내를 보고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안나도 비록 16살이라고 하지만 힘들게 인생을 살아오며 여러 사람을 대하였기에 사내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조금은 의심하고 있었다.
“오빠 이름이 뭐예요?”
“나? 글레인 아실... 아니, 글레인.. 글레인이 내 이름이야.”
자신도 모르게 성까지 말해버릴 뻔 한 걸 얼버무리며 이름을 밝혔다.
“전 안나라고해요. 그리고 이쪽은 론 오빠예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안나에게 고개를 끄덕인 글레인이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지나갔다.
사내의 본명은 글레인 아실리스.
이곳 루카 왕국에서도 말을 타고 삼주동안 쉬지 않고 동북쪽 끝에 달리면 도착하는 르고르 왕국의 아실리스 공작가의 차남이 바로 그였다.
루카 왕국과 르고르 왕국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 글레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아주 드물어 도망쳐 나올 때 택한 곳이 바로 이곳 치안이 안정적이라는 루카 왕국인 것이다.
아실리스 공작가는 대대로 왕국의 재상을 맡으며 국왕을 보필하고 대신들과 대소사를 의논하는 문인의 집안이었다.
거기다 하나같이 아실리스 공작가의 사람들은 머리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 소문 그대로 공작가의 영식이나 영애들은 국립 아카데미 수석 졸업은 물론 명석한 두뇌로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정계의 대소사를 읽는 눈을 키우고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런 한나라의 고위귀족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공작가의 영식인 글레인이 무엇이 불만이여서 이렇게 도망쳐 나왔단 말인가.
그것은 그의 형과 누나와는 다르게 아실리스 공작가의 자식이면서도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도 못 한 것은 물론, 문과와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런 글레인에게도 재능이 있다면 아실리스 공작가의 자식으로썬 생각 할 수도 없는 무예 쪽이었고, 아카데미도 기사수업부터 시작해서 검의 이론이나 마나의 기초 등, 말 그대로 무과로 가버린 것이다.
글레이는 머리 아픈 글공부나 그런 쪽 보다는, 땀을 흘리며 수련을 하고 검술을 배우며 대련을 벌이는 등 기사에 관심이 많았고 왕국 최고의 기사를 어렸을 때부터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레인의 아버지인 아실리스 공작은 대대로 학문의 집안이자 나라의 재상을 도맡아 국왕을 보필하는 명문가에서, 그것도 공작가문에서 자식이 기사의 길로 들어선다는 건 아주 큰 충격이자 결단코 받아 드릴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시시콜콜 딴지를 거는 왕국의 검이라 불리는 몽벨트 후작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에 손지 겁까지 할 번한 사건도 있었다.
르고르 왕국에서 최고의 기사가문이자 무예가 출중하다면 결단코 몽벨트 후작과 몽벨트 후작가문을 지목 할 것이다.
뛰어난 두뇌와 나라의 대소사를 논하고 재상을 맡고 있는 자리엔 아실리스 공작가가 버티고 있다면, 왕국의 검이자 최고의 기사가문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몽벨트 후작가를 지목한다.
익스퍼트 최상급을 넘어 마스터를 바라보고 있다는 몽벨트 후작, 그의 실력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왕국 내에서 아실리스 공작가와 더불어 누구도 절대 무시 할 수 없는 왕국의 두 개의 기둥 중에 한 축을 맡고 있는 가문이었다.
만나면 기싸움부터 시작하는 그런 앙숙의 몽벨트 후작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리스 공작아 알아차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몽벨트 후작은 언제나 잔머리를 굴리며 왕에게 아부만 떠는 것처럼 보이는 문인들이 꼴사나워했고, 아실리스 공작은 무식하게 몸으로 때우는 무인들이 머리에 든 게 없어 보이는 머저리 같아 혐오스러워했다.
그래도 가문에 충성하는 기사들은 잘 챙기긴 하지만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도 없잖아 존재했다.
그 정도로 앙숙인 상태에다가 문학과 무학을 깎아 내리는 상황에서 아들이 검술을 익히고 기사가 되겠다고 아카데미도 그 쪽으로 가버리는 것은 물론 몽벨트 후작을 존경하고 있다니 천불이 날 지경이었다.
사실 글레인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설득하려 노력하고 무릎도 꿇어보았지만 아실리스 공작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욕설과 잔소리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겐 가문을 이어받을 형보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흥미도 없었다.
무엇보다 재능이 없다는 게 원인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형은 물론 누나도 따라가기에 벅찬 상황에서 기운도 빠지고 우울증까지 생기게 만들 판이었다.
그 상황에서 눈에 들어온 것이 검이었고 기사였다.
실제로 체력단련으로 배워보니 의외로 자신에게 그 쪽으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물론 상당히 흥미가 동해 체력 단련을 넘어서 직접적으로 배워나갔을 땐 누구보다 성취도가 빨랐고 10대 중반인 비기너를 넘어 익스퍼트에, 20대 초반의 지금은 벌써 익스퍼트 중급이라는 경이로운 경지에 들어선 상태였다.
말 그대로 글레인은 검술에 재능이 특출 났다.
하지만 아무리 아버지에게 그것을 어필하고 호소를 해보아도 돌아오는 건 무시와 멸시였다.
이젠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기대마져 허물어져 버리니 결국 참지 못 하고 집을 뛰쳐나오게 된 것이다.
그 순간까지도 아실리스 공작은 글레인을 잡지 않았다.
공작가문에서, 아카데미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그에게 아버지의 멸시와 홀대에 뛰쳐나오긴 했지만 정작 갈 곳은 없었고, 여비까지 잃어버렸으니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공작가의 아들이라고 귀족의 품위라는 것이 먼지 자신의 그런 어색함과 감정이 한 편으론 한심하시도 하거니와 너무나 답답했다.
‘전 그저... 형은 반 만큼만...... 아니, 누나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절 제대로 자식으로 봐주었으면 할 분이었습니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눈앞에서 나가라는 목소리와 차가운 시선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아려왔다.
아버지처럼 탐탁치않아 하는 형과는 다르게 어머니와 누나의 위로가 없었다면 옛날에 뛰처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악착같이 노력해서 누구보다 더 수련을 거듭해 천재소리까지 들으며 20대 초반의 나이에 익스퍼트 중급에 올라섰지만 칭찬 한 마디,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만이라도 해주었더라면 글레인은 집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응? 아, 아니 그냥... 그보다 어제 육포 고마웠어.”
“아! 그거 말 하면 안 되는데......”
혹시나 론이 들었을 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눈치를 살피는 안나에게 글레인이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것 없어. 이미 나에게 육포를 준 것을 알고 있으니까.”
예사롭지 않은 눈빛과 분명히 마나가 실려 있었던 돌멩이, 그리고 기척을 찾아내는 실력이라면 안나의 발걸음과 행동들은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넘어갔을 것이라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안나는 글레인의 뜨끔 없는 대답에 갸웃거리며 론을 바라보았다.
“......”
하지만 론은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걷기만 했다.
해가지고 적당히 자리를 잡은 사이 모닥불을 피우려는 걸 글레인이 손수 나서서 실행했다.
공짜로 얻어 먹는게 미안해서 이거라도 하려고 그러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닥불 하나 피우는 모습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론에 비하면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이정도면 끝내주지 않아? 잘 봐봐...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불 꽃을......! 어제 론이 만들었던 모닥불 보다 화력도 두 배! 크기도 두 배! 말 그대로 끝내준다 이 말씀이지~! 후후후... 아무리봐도 멋지단 말이야.”
턱을 매만지며 자아도취에 빠져 혼자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이 론이 한 심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녁은 먹기 싫은 모양이군.”
“응?”
“이건 모닥불이 아니라 불장난이다. 조리대를 올리는 것도, 스프를 끓이는 것도 할 수 조차 없어.”
론의 말에 글레인이 잠시 모닥불과 펼쳐져 있는 육포와 조리도구들을 번갈아 보더니 무안했는지 큰 소리로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아... 아하하하하! 이것 참 미안하게 됐구만~! 미안 하네 친구...! 실수를 하고 말았어.”
바보 같이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글레인을 깔끔히 무시해 버리고 모든 것을 다 태울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장난을 치기위한(?) 불꽃을 꺼버리고 새롭게 모닥불을 피웠다.
그 후에 조리도구와 육포로 스프를 끓이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글레인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안나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너무 의욕이 앞섰지? 캬~! 공짜로 밥 얻어먹는 게 힘들 구만.....!”
“쿡쿡쿡...! 정말로 의욕이 앞서서 그런거 였어요?”
“다, 당연하지~! 생각 없이 크게 만든 게 아니니까 절대 의심하지마라.”
“나 생각 없이 크게 만들었다고 말한 적 없는데...... 정말로 그저 크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한 건가요?”
정곡을 찌르는 안나의 말에 글레인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심성이 착한 소녀인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무서운 구석도 있어... 조심해야겠는 걸......’
속으로 궁시렁 거리며 한 쪽에 쭈그리고 앉은 글레인은 가만히 론이 스프를 다 끓일 때까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뚫어저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안나가 다시금 웃음을 터트리며 바라보았다.
구수한 향기가 풍기고 적당히 끓여졌다 싶을 때 맛을 본 론이 고개를 끄덕이고 모닥불 위에서 빼내고 그릇을 잡아 적당히 덜어서 수저와 함께 안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한 그릇 더 떠서 글레인에게도 넘겨주었다.
“잘 먹을게 친구.”
건네준 그릇을 받자마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 글레인이 먹다말고 입을 열었다.
“짊이 없는 것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하니 마법사 일 줄은 몰랐는데? 아공간에서 꺼낼 줄이야...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마법과는 조금 틀 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대단해~! 마법사라니.”
“그렇죠? 론 오빠 대단하죠?”
“그렇지... 마법사가 흔한 존재는 아니니까.”
“론 오빠 이렇게 과묵하고 무서워 보여도 실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분이신데요.”
“마음이 따뜻해, 이 냉혈한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론의 시선을 느끼곤 금세 글레인미 말을 바꿨다.
“물론~! 경험 해보니 냉혈한이 아닌 것이라는 걸 방금 막 깨닫기는 했지만 말이지.”
말이 좀 이상한 글레인을 보면서 작게 웃음을 터트린 안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론 오빠는 말이예요. 끌려가던 절 구해주었어요.”
“구해주다니?”
“스프 식으니까 쓸데 없는 말 안하는 게 좋겠는데.”
글레인이 궁금해 하자 론이 안나에게 그만 해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저 말이 그저 심기가 불편해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말 하면 놀라겠지만 저 사실... 매음굴에서 생활 했어요.”
“매음굴?”
매음굴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고 있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후에 시작된 안나의 말은 글레인에게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나아가 표정이 굳어지게 했다.
말 그대로 어린 소녀가 견딜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을 다 당하며 살아온 것이다.
어린 나이에 창녀로써 살아야하는 그 고통과 상처, 거기다 학대까지.
충격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밝아 보이고 심성이 따뜻해 보이는 소녀가 겪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아 보이는 얘기다.
“론 오빠는 그런 저를 구해주었어요. 아마 거기서 끌려갔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무서워요.”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는 안나의 모습에 찹찹한 심정을 느꼈다.
만약 그놈들이 눈앞에 있다면 당장에라도 검을 빼들어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곤 묵묵히 스프를 먹고 있는 론을 의외라는 듯 바라보았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구만.’
한 소녀의 기구한 운명과 도움을 지나치지 않고 구해낸 행동.
확실히 존경할 만한 모습이자 대단한 행동이다.
자신을 뚫어 저라 바라보는 글레인의 얼굴을 힐끔 바라 본 론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그쪽이 아니니까 관심 꺼줬으면 좋겠군.”
“그 쪽이라니?”
갑자기 뜨끔 없는 말에 반문한 글레인이 그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곤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뭐,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나도 절대 그쪽 사람이 아니야! 엄연히 남자구실을 하는 건장한 청년이라고!”
안나는 둘의 대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 거린 뿐이다.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안나가 조금 머쓱해 하며 옆에서 따라붙어 걷고 있는 사내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오빠... 검사예요?”
“검사? 으, 응... 그런 셈이지.”
“이상하다... 검술을 배운 사람들도 만나 본 적이 많아서 굶지는 않는 다던데.....”
작게 중얼거리는 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사내가 뜨끔 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안나의 말대로 검사라면 용병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현상금 사냥꾼도 될 수 있을 것이며 그 외에도 몬스터 토벌대에 참여하거나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길은 열려있다.
‘어색해서 그런 일 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도 없고...’
난처한 듯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내의 말대로 황당하게도 그런 일들을 맡아서 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이상하기도 했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도망쳐 나올 때 그런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넉넉히 자금을 챙겨왔는데 멍청하게도 돈주머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백방으로 찾아보고 노력해 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며칠 동안 제대로 밥 한 끼 먹지 못 했고, 여행복 차림이 더러워졌다고 하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귀티까지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온지라 모든 게 어색하고 이상했다.
빈털터리가 된 상태에서 축제에 가면 뭔가 해볼 수 있는 게 없을까 하여 나아가던 도중, 배고픈 건 아무리 귀족인 그라도 어쩔 수 없었는지,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맛있는 남새에 이끌려 가게 되었고, 계속해서 망설이면서 숨어서 지켜보다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론은 사내를 보고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안나도 비록 16살이라고 하지만 힘들게 인생을 살아오며 여러 사람을 대하였기에 사내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조금은 의심하고 있었다.
“오빠 이름이 뭐예요?”
“나? 글레인 아실... 아니, 글레인.. 글레인이 내 이름이야.”
자신도 모르게 성까지 말해버릴 뻔 한 걸 얼버무리며 이름을 밝혔다.
“전 안나라고해요. 그리고 이쪽은 론 오빠예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안나에게 고개를 끄덕인 글레인이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지나갔다.
사내의 본명은 글레인 아실리스.
이곳 루카 왕국에서도 말을 타고 삼주동안 쉬지 않고 동북쪽 끝에 달리면 도착하는 르고르 왕국의 아실리스 공작가의 차남이 바로 그였다.
루카 왕국과 르고르 왕국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 글레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아주 드물어 도망쳐 나올 때 택한 곳이 바로 이곳 치안이 안정적이라는 루카 왕국인 것이다.
아실리스 공작가는 대대로 왕국의 재상을 맡으며 국왕을 보필하고 대신들과 대소사를 의논하는 문인의 집안이었다.
거기다 하나같이 아실리스 공작가의 사람들은 머리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 소문 그대로 공작가의 영식이나 영애들은 국립 아카데미 수석 졸업은 물론 명석한 두뇌로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정계의 대소사를 읽는 눈을 키우고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런 한나라의 고위귀족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공작가의 영식인 글레인이 무엇이 불만이여서 이렇게 도망쳐 나왔단 말인가.
그것은 그의 형과 누나와는 다르게 아실리스 공작가의 자식이면서도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도 못 한 것은 물론, 문과와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런 글레인에게도 재능이 있다면 아실리스 공작가의 자식으로썬 생각 할 수도 없는 무예 쪽이었고, 아카데미도 기사수업부터 시작해서 검의 이론이나 마나의 기초 등, 말 그대로 무과로 가버린 것이다.
글레이는 머리 아픈 글공부나 그런 쪽 보다는, 땀을 흘리며 수련을 하고 검술을 배우며 대련을 벌이는 등 기사에 관심이 많았고 왕국 최고의 기사를 어렸을 때부터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레인의 아버지인 아실리스 공작은 대대로 학문의 집안이자 나라의 재상을 도맡아 국왕을 보필하는 명문가에서, 그것도 공작가문에서 자식이 기사의 길로 들어선다는 건 아주 큰 충격이자 결단코 받아 드릴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시시콜콜 딴지를 거는 왕국의 검이라 불리는 몽벨트 후작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에 손지 겁까지 할 번한 사건도 있었다.
르고르 왕국에서 최고의 기사가문이자 무예가 출중하다면 결단코 몽벨트 후작과 몽벨트 후작가문을 지목 할 것이다.
뛰어난 두뇌와 나라의 대소사를 논하고 재상을 맡고 있는 자리엔 아실리스 공작가가 버티고 있다면, 왕국의 검이자 최고의 기사가문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몽벨트 후작가를 지목한다.
익스퍼트 최상급을 넘어 마스터를 바라보고 있다는 몽벨트 후작, 그의 실력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왕국 내에서 아실리스 공작가와 더불어 누구도 절대 무시 할 수 없는 왕국의 두 개의 기둥 중에 한 축을 맡고 있는 가문이었다.
만나면 기싸움부터 시작하는 그런 앙숙의 몽벨트 후작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리스 공작아 알아차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몽벨트 후작은 언제나 잔머리를 굴리며 왕에게 아부만 떠는 것처럼 보이는 문인들이 꼴사나워했고, 아실리스 공작은 무식하게 몸으로 때우는 무인들이 머리에 든 게 없어 보이는 머저리 같아 혐오스러워했다.
그래도 가문에 충성하는 기사들은 잘 챙기긴 하지만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도 없잖아 존재했다.
그 정도로 앙숙인 상태에다가 문학과 무학을 깎아 내리는 상황에서 아들이 검술을 익히고 기사가 되겠다고 아카데미도 그 쪽으로 가버리는 것은 물론 몽벨트 후작을 존경하고 있다니 천불이 날 지경이었다.
사실 글레인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설득하려 노력하고 무릎도 꿇어보았지만 아실리스 공작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욕설과 잔소리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겐 가문을 이어받을 형보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흥미도 없었다.
무엇보다 재능이 없다는 게 원인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형은 물론 누나도 따라가기에 벅찬 상황에서 기운도 빠지고 우울증까지 생기게 만들 판이었다.
그 상황에서 눈에 들어온 것이 검이었고 기사였다.
실제로 체력단련으로 배워보니 의외로 자신에게 그 쪽으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물론 상당히 흥미가 동해 체력 단련을 넘어서 직접적으로 배워나갔을 땐 누구보다 성취도가 빨랐고 10대 중반인 비기너를 넘어 익스퍼트에, 20대 초반의 지금은 벌써 익스퍼트 중급이라는 경이로운 경지에 들어선 상태였다.
말 그대로 글레인은 검술에 재능이 특출 났다.
하지만 아무리 아버지에게 그것을 어필하고 호소를 해보아도 돌아오는 건 무시와 멸시였다.
이젠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기대마져 허물어져 버리니 결국 참지 못 하고 집을 뛰쳐나오게 된 것이다.
그 순간까지도 아실리스 공작은 글레인을 잡지 않았다.
공작가문에서, 아카데미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그에게 아버지의 멸시와 홀대에 뛰쳐나오긴 했지만 정작 갈 곳은 없었고, 여비까지 잃어버렸으니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공작가의 아들이라고 귀족의 품위라는 것이 먼지 자신의 그런 어색함과 감정이 한 편으론 한심하시도 하거니와 너무나 답답했다.
‘전 그저... 형은 반 만큼만...... 아니, 누나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절 제대로 자식으로 봐주었으면 할 분이었습니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눈앞에서 나가라는 목소리와 차가운 시선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아려왔다.
아버지처럼 탐탁치않아 하는 형과는 다르게 어머니와 누나의 위로가 없었다면 옛날에 뛰처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악착같이 노력해서 누구보다 더 수련을 거듭해 천재소리까지 들으며 20대 초반의 나이에 익스퍼트 중급에 올라섰지만 칭찬 한 마디,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만이라도 해주었더라면 글레인은 집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응? 아, 아니 그냥... 그보다 어제 육포 고마웠어.”
“아! 그거 말 하면 안 되는데......”
혹시나 론이 들었을 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눈치를 살피는 안나에게 글레인이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것 없어. 이미 나에게 육포를 준 것을 알고 있으니까.”
예사롭지 않은 눈빛과 분명히 마나가 실려 있었던 돌멩이, 그리고 기척을 찾아내는 실력이라면 안나의 발걸음과 행동들은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넘어갔을 것이라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안나는 글레인의 뜨끔 없는 대답에 갸웃거리며 론을 바라보았다.
“......”
하지만 론은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걷기만 했다.
해가지고 적당히 자리를 잡은 사이 모닥불을 피우려는 걸 글레인이 손수 나서서 실행했다.
공짜로 얻어 먹는게 미안해서 이거라도 하려고 그러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닥불 하나 피우는 모습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론에 비하면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이정도면 끝내주지 않아? 잘 봐봐...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불 꽃을......! 어제 론이 만들었던 모닥불 보다 화력도 두 배! 크기도 두 배! 말 그대로 끝내준다 이 말씀이지~! 후후후... 아무리봐도 멋지단 말이야.”
턱을 매만지며 자아도취에 빠져 혼자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이 론이 한 심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녁은 먹기 싫은 모양이군.”
“응?”
“이건 모닥불이 아니라 불장난이다. 조리대를 올리는 것도, 스프를 끓이는 것도 할 수 조차 없어.”
론의 말에 글레인이 잠시 모닥불과 펼쳐져 있는 육포와 조리도구들을 번갈아 보더니 무안했는지 큰 소리로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아... 아하하하하! 이것 참 미안하게 됐구만~! 미안 하네 친구...! 실수를 하고 말았어.”
바보 같이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글레인을 깔끔히 무시해 버리고 모든 것을 다 태울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장난을 치기위한(?) 불꽃을 꺼버리고 새롭게 모닥불을 피웠다.
그 후에 조리도구와 육포로 스프를 끓이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글레인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안나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너무 의욕이 앞섰지? 캬~! 공짜로 밥 얻어먹는 게 힘들 구만.....!”
“쿡쿡쿡...! 정말로 의욕이 앞서서 그런거 였어요?”
“다, 당연하지~! 생각 없이 크게 만든 게 아니니까 절대 의심하지마라.”
“나 생각 없이 크게 만들었다고 말한 적 없는데...... 정말로 그저 크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한 건가요?”
정곡을 찌르는 안나의 말에 글레인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심성이 착한 소녀인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무서운 구석도 있어... 조심해야겠는 걸......’
속으로 궁시렁 거리며 한 쪽에 쭈그리고 앉은 글레인은 가만히 론이 스프를 다 끓일 때까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뚫어저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안나가 다시금 웃음을 터트리며 바라보았다.
구수한 향기가 풍기고 적당히 끓여졌다 싶을 때 맛을 본 론이 고개를 끄덕이고 모닥불 위에서 빼내고 그릇을 잡아 적당히 덜어서 수저와 함께 안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한 그릇 더 떠서 글레인에게도 넘겨주었다.
“잘 먹을게 친구.”
건네준 그릇을 받자마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 글레인이 먹다말고 입을 열었다.
“짊이 없는 것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하니 마법사 일 줄은 몰랐는데? 아공간에서 꺼낼 줄이야...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마법과는 조금 틀 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대단해~! 마법사라니.”
“그렇죠? 론 오빠 대단하죠?”
“그렇지... 마법사가 흔한 존재는 아니니까.”
“론 오빠 이렇게 과묵하고 무서워 보여도 실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분이신데요.”
“마음이 따뜻해, 이 냉혈한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론의 시선을 느끼곤 금세 글레인미 말을 바꿨다.
“물론~! 경험 해보니 냉혈한이 아닌 것이라는 걸 방금 막 깨닫기는 했지만 말이지.”
말이 좀 이상한 글레인을 보면서 작게 웃음을 터트린 안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론 오빠는 말이예요. 끌려가던 절 구해주었어요.”
“구해주다니?”
“스프 식으니까 쓸데 없는 말 안하는 게 좋겠는데.”
글레인이 궁금해 하자 론이 안나에게 그만 해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저 말이 그저 심기가 불편해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말 하면 놀라겠지만 저 사실... 매음굴에서 생활 했어요.”
“매음굴?”
매음굴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고 있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후에 시작된 안나의 말은 글레인에게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나아가 표정이 굳어지게 했다.
말 그대로 어린 소녀가 견딜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을 다 당하며 살아온 것이다.
어린 나이에 창녀로써 살아야하는 그 고통과 상처, 거기다 학대까지.
충격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밝아 보이고 심성이 따뜻해 보이는 소녀가 겪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아 보이는 얘기다.
“론 오빠는 그런 저를 구해주었어요. 아마 거기서 끌려갔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무서워요.”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는 안나의 모습에 찹찹한 심정을 느꼈다.
만약 그놈들이 눈앞에 있다면 당장에라도 검을 빼들어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곤 묵묵히 스프를 먹고 있는 론을 의외라는 듯 바라보았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구만.’
한 소녀의 기구한 운명과 도움을 지나치지 않고 구해낸 행동.
확실히 존경할 만한 모습이자 대단한 행동이다.
자신을 뚫어 저라 바라보는 글레인의 얼굴을 힐끔 바라 본 론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그쪽이 아니니까 관심 꺼줬으면 좋겠군.”
“그 쪽이라니?”
갑자기 뜨끔 없는 말에 반문한 글레인이 그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곤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뭐,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나도 절대 그쪽 사람이 아니야! 엄연히 남자구실을 하는 건장한 청년이라고!”
안나는 둘의 대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 거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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