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마을로 가야하나?’
로엔의 머릿속에 문득 든 생각이다. 이 마을에서는 기껏 해봐야 고블린이 전부다. 고블린의 대장이라는 홉고블린이 있기는 하지만, 개체수가 워낙 적고, 애당초 고블린 부락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장이라는 말에 걸맞게 부락 안에서 지시만을 내린다. 잡기위해서는 부락을 습격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부락을 습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일반적인 고블린 부락에는 수백 마리 이상의 고블린이 살고 있다.
사냥을 나서는 것은 전사 고블린들. 하지만 자신들의 터전인 부락을 지키기 위한 병력들도 존재한다. 터전에는 암컷들과 새끼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의 몸으로 수백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아니,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돈도 안 되는 고블린 부락을 무너트리러 오지 않을 것이다.
고블린 부락 하나를 무너트릴 수 있는 실력이라면 오우거 한 개체를 잡는 게 더욱 돈이 되니 말이다.
로엔이 마을을 벗어나야 건가? 하고 생각하는 것도 고블린 밖에 없어서이다. 한 달에 고블린 몇 개체를 잡고 5골드를 버는 것보다는, 다른 마을로 가서 오크 한 개체를 잡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마정석도 고블린보다 오크가 더 나올 확률이 높으니, 한 달에 5골드가 아니라, 2배, 3배 이상의 손익을 낼 수 있다. 그 생각에 미치자 마음이 서서히 마을을 떠난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그래. 떠나는 것이 좋겠어.’
탁.
포크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결정을 내린다. 결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오랫동안 생각을 거듭할수록 걱정과 고민이 많아지고, 우유부단해져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일이 없도록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로엔은 식사를 마치고는 용병 길드로 향한다. 혼자서 마을을 떠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다른 마을로 가면서 조우할 수 있는 것은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산에는 산적들이 무리를 이뤄 산채를 이루고 있고, 들판에서는 마적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상대해야할 적은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음? 로엔, 오늘은 고블린 의뢰가 없는데, 무슨 일로 왔는가?”
용병 길드로 들어서자 베른이 로엔을 발견하고 물어온다. 로엔은 목을 가볍게 주억이는 것으로 인사를 하고는, 베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묻는다.
“혹시 상단행 의뢰는 없습니까?”
“상단행? 자네 다른 마을로 가려는 건가?”
베른은 바로 속뜻을 알아차리고는 묻는다. 로엔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주억인다. 숨길 일도 아니다. 용병들이란 모두 그러하기에.
“후후, 그렇군. 슬슬 하나 둘 씩 떠나는군.”
베른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굳이 만류하려하지는 않는다. 가정을 꾸리고 있는 용병이라고 하더라도, 더욱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면 언제든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돈도 얼마 되지 않는 고블린만 나오는 마을이라면 언제든 떠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로엔이 마을을 이제 와서 떠난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떠나는 것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많다.
베른은 중얼거린 후에 카운터 서랍을 열어 종이 쪼가리들을 꺼내 살펴보기 시작한다. 종이 쪼가리들에는 검은색 글자들이 적혀져 있다. 의뢰서들이다.
“흐음…… 어디 보자……. 이건 홉고블린이고……, 이건 고블린……, 오! 여기 있군!”
잠시 동안 종이 쪼가리들을 살펴보단 베른이 한 장을 빼어내며 말한다. 로엔을 향해 건네자, 그것을 받아든다.
‘드리뮤로 향하는 상단행이군. 호위 의뢰, 최소 C급의 용병부터 고용하고, 드리뮤 마을에 도착 시 지급되는 완수금은 20은.’
드리뮤 마을은 도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아직까지도 마을인 이유는 영주성과 제법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 근방을 다스리는 영주는 유스카트르 백작이다. 백작이 머무르고 있는 영주성은 드리뮤 마을과는 정 반대에 위치해 있다.
드리뮤 마을은 어떻게 보면, 다른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와 백작이 다스리는 지역의 사이에 걸쳐 있는 위치다.
분명 유스카트르 백작이 영주권 내에 속해 있지만, 영주전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침략을 당하고, 빼앗길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도시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도시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크기와 교역은 그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로엔은 드리뮤 마을로 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리뮤 마을로 가면서 몬스터를 조우하여 퇴치해서 나오는 마정석은 용병들의 소유가 된다
만나지 않는 것이 안전에 대해서는 좋지만, 만난다는 가정을 하면 마정석을 얻게 되어 일종의 보너스를 얻게 되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마정석이 무조건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올 확률이 제로는 아니다. 어쨌든 이랬든 저랬든 나쁘지 않다.
“이 의뢰밖에 없습니까?”
로엔이 베른에게 묻는다. 드리뮤 마을보다 더 나은 도시로 나가는 상단행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베른은 의뢰서들을 잠시 살펴보고는 고개를 흔든다. 다른 상단행 의뢰는 아주 없는 것이다.
“그럼 이 의뢰로 하겠습니다.”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세.”
“잘 지내십시오.”
작별의 인사는 간단했다. 그간 알고 지냈던 용병들을 일부로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당장이고 내일부터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떠난 것이나 다름없다.
‘알베스 상단인가?’
로엔은 용병길드를 나서며 의뢰서를 자세하게 훑어보기 시작한다. 드리뮤 마을로 상단행을 가는 상단은 알베스라는 곳이다.
알베스 상단. 이 세계에 존재하는 상단들 중에서 양손에 꼽힌다고 할 정도로 큰 상단은 아니다. 굳이 꼽으라면 20위 안에 꼽힐 정도이기는 하다. 그것만으로도 큰 곳이라고 할 수 있다.
10위 안에 들어가는 상단은 이런 작은 상단행은 하지 않는다. 소금이나 귀한 광석과 같은 큰 것만을 노린다.
전쟁 물자만을 목표로 삼는 상단도 있다. 각자만의 영역이 있고, 그것이 겹치게 되면 상단끼리 싸움이 붙기도 한다.
‘타이밍이 좋은 건지, 곧 마감이군.’
의뢰서를 쭉 훑어 내리고서 마지막 아랫부분을 보자, 날짜와 시각이 적혀 있다. 운이 좋았다. 지금 바로 간다면 용병 모집이 끝난 시각에 맞출 수 있다.
로엔은 집결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여관으로 발걸음을 돌릴 필요는 없다.
챙겨갈 것은 옷 안의 호주머니에 담겨 있는 돈주머니와 무기, 몸뚱어리가 전부다. 여관의 대금은 선금으로 냈었기에 상관없기도 하다.
“자자! 곧 출발할 테니 마지막으로 점검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제 오신 용병분들은 저에게 와주십시오!”
로엔이 집결지에 도착함과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상단행을 가는 상단의 우두머리 상인인 듯 하다.
“아, 뭐야!”
“어떤 미친놈이야!”
먼저 모여 있던 용병들 사이를 비집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용병들이 욕설을 내뱉지만, 로엔은 신경 쓰지 않았다.
비집으며 가기에 잠깐 짜증이 치밀어서 뱉는 욕설에 불과하다. 맞받아치지만 않으면 저들도 금세 신경을 끄고 자신의 일을 본다.
만약 맞받아친다면 시비가 붙고, 싸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의뢰를 받고 곧 이동을 해야 하기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용병들도 그것을 알고, 욕설만 뱉어내고 끝내는 것이다.
“이제 오신 용병분이십니까? 용병패를 보여주십시오.”
우두머리 상인은 로엔을 발견하자 묻고 말한다. 용병패란 용병의 신원을 보증하는 물건이라 할 수 있다. 현대 한국을 기준으로 하자면 신분증과 동일하다.
“여기 있소.”
로엔은 우두머리 상인에게 용병패를 꺼내 보였다. 우두머리 상인은 용병패를 받고는 쭉 살펴본다. 혹시나 위장을 한 것이라던가, 타인의 것을 훔친 것은 아닐지 살피는 것이다.
“C 급 용병 로엔. 용병패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무리로 합류하시면 됩니다.”
우두머리 상인은 용병패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건네며 말한다. 로엔은 손을 뻗어 받아내고는 다시 품속에 집어넣는다. 용병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곳으로 간다.
“로엔이 아닌가?”
용병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곳으로 가자, 누군가가 로엔을 알아보고는 말을 건네 온다. 로엔이 고개를 돌리자 리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드? 당신도 마을을 떠나는 겁니까?”
리드. C급의 소드맨 용병이다. 고블린을 퇴치할 때에 함께 했던 용병이기도 하다. 나름 친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은 인연을 맺은 것도 아니다. 나이는 로엔보다 2살 위엔 30살이다.
“언제까지 고블린을 잡으면서 근근이 먹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리드도 로엔과 마찬가지로 생각한 모양이다. 씁쓸하게 중얼거리고는 검 자루를 쥐었다가 편다. 입장 또한 비슷하다. 용병질로만 먹고 살기에는 몇 년 남지 않았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기에 아무리 많이 올라가도 C 급이 한계다. 보통 용병들이 퇴역을 하면 여관이나 술집을 차리는 것처럼 리드 또한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블린 따위를 잡으면서 그런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마을로 가려는 것이다. 리드와 로엔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질감에 의해 소소하게 이야기 할 것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조금 시간이 지났을 무렵, 상단행 출발 준비가 끝났는지, 우두머리 상인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연다.
“이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리뮤 마을까지는 총 3일이 걸릴 예정입니다! 호위의 최우선 순위는 짐마차와 상인들입니다. 그 외의 것들은 차선(次善)으로 하시면 됩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우두머리 상인의 말이 끝나자, 상단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용병들은 상단의 주위를 둘러싸듯 호위하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을 벗어나는 것은 금방이었지만, 드리뮤 마을까지는 우두머리 상인이 말한 것처럼 삼일이 걸린다.
3일이 걸리는 것도 날이 어두워지면 쉬고, 날이 밝아지면 바로 출발하는 식으로 최대한 많이 이동하기에 그 정도가 걸린다.
만약 여유롭게 움직이면 5일에서 6일정도가 걸린다고 보면 된다.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몬스터를 만나는 확률도 더욱 높아지기에 최대한 많이 이동하려는 것이다.
위의 것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동이 있다. 겨울의 경우에는 날이 일직 어두워지고 날이 늦게 밝아지기에 눈 앞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돼서야 이동을 멈추는 식으로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고, 드리뮤 마을까지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 날은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고, 무사하게 보내게 되었다.
이 정도는 모두가 예상하고 있던 것이다. 밤이 되자 우두머리 상인은 이동을 멈추고는 노숙을 하도록 지시했다.
용병들은 마차를 주위로 삼삼오오 짝을 이뤄 자리에 앉았다. 그 중심에는 작은 모닥불이 있었다.
매 끼니는 상단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상단행 의뢰의 장점이다. 조식, 중식, 석식까지 모두 챙겨주니, 굳이 스스로 챙겨먹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리드는 드리뮤 마을로 가서 무엇을 하실 겁니까?”
로엔은 음식을 먹으며 리드에게 묻는다. 그나마 친분이 있는 용병이라고는 리드 밖에 없으니,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없지만, 아마도 몬스터 사냥 의뢰나 하지 않을까 싶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드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로엔은 그것에 공감했다. 딱히 할 것이라고는 그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자 용병들이 돌아가서 보초를 선다. 나머지 용병들과 상인들은 취침을 준비한다. 용병들의 숫자는 약 40명 정도다.
로엔의 보초 순번은 이틀째이다. 어차피 두 번의 노숙이 끝이기에 딱 반으로 나눠서 하루씩 세우는 것이다.
‘피곤하군.’
조금 빠른 속도로 반나절을 걸어서 그런지 피곤함이 몰려온다. 어쩌면 심리적인 압박에 의해 피로가 급격하게 몰려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으음…….”
바로 옆에서 자리를 만들어 몸을 누운 리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피곤했는지 벌써 잠이 든 것이다. 로엔도 잠기는 눈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잠시 후,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오며, 그렇게 첫 번째 날이 지나갔다.
로엔의 머릿속에 문득 든 생각이다. 이 마을에서는 기껏 해봐야 고블린이 전부다. 고블린의 대장이라는 홉고블린이 있기는 하지만, 개체수가 워낙 적고, 애당초 고블린 부락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장이라는 말에 걸맞게 부락 안에서 지시만을 내린다. 잡기위해서는 부락을 습격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부락을 습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일반적인 고블린 부락에는 수백 마리 이상의 고블린이 살고 있다.
사냥을 나서는 것은 전사 고블린들. 하지만 자신들의 터전인 부락을 지키기 위한 병력들도 존재한다. 터전에는 암컷들과 새끼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의 몸으로 수백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아니,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돈도 안 되는 고블린 부락을 무너트리러 오지 않을 것이다.
고블린 부락 하나를 무너트릴 수 있는 실력이라면 오우거 한 개체를 잡는 게 더욱 돈이 되니 말이다.
로엔이 마을을 벗어나야 건가? 하고 생각하는 것도 고블린 밖에 없어서이다. 한 달에 고블린 몇 개체를 잡고 5골드를 버는 것보다는, 다른 마을로 가서 오크 한 개체를 잡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마정석도 고블린보다 오크가 더 나올 확률이 높으니, 한 달에 5골드가 아니라, 2배, 3배 이상의 손익을 낼 수 있다. 그 생각에 미치자 마음이 서서히 마을을 떠난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그래. 떠나는 것이 좋겠어.’
탁.
포크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결정을 내린다. 결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오랫동안 생각을 거듭할수록 걱정과 고민이 많아지고, 우유부단해져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일이 없도록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로엔은 식사를 마치고는 용병 길드로 향한다. 혼자서 마을을 떠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다른 마을로 가면서 조우할 수 있는 것은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산에는 산적들이 무리를 이뤄 산채를 이루고 있고, 들판에서는 마적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상대해야할 적은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음? 로엔, 오늘은 고블린 의뢰가 없는데, 무슨 일로 왔는가?”
용병 길드로 들어서자 베른이 로엔을 발견하고 물어온다. 로엔은 목을 가볍게 주억이는 것으로 인사를 하고는, 베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묻는다.
“혹시 상단행 의뢰는 없습니까?”
“상단행? 자네 다른 마을로 가려는 건가?”
베른은 바로 속뜻을 알아차리고는 묻는다. 로엔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주억인다. 숨길 일도 아니다. 용병들이란 모두 그러하기에.
“후후, 그렇군. 슬슬 하나 둘 씩 떠나는군.”
베른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굳이 만류하려하지는 않는다. 가정을 꾸리고 있는 용병이라고 하더라도, 더욱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면 언제든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돈도 얼마 되지 않는 고블린만 나오는 마을이라면 언제든 떠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로엔이 마을을 이제 와서 떠난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떠나는 것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많다.
베른은 중얼거린 후에 카운터 서랍을 열어 종이 쪼가리들을 꺼내 살펴보기 시작한다. 종이 쪼가리들에는 검은색 글자들이 적혀져 있다. 의뢰서들이다.
“흐음…… 어디 보자……. 이건 홉고블린이고……, 이건 고블린……, 오! 여기 있군!”
잠시 동안 종이 쪼가리들을 살펴보단 베른이 한 장을 빼어내며 말한다. 로엔을 향해 건네자, 그것을 받아든다.
‘드리뮤로 향하는 상단행이군. 호위 의뢰, 최소 C급의 용병부터 고용하고, 드리뮤 마을에 도착 시 지급되는 완수금은 20은.’
드리뮤 마을은 도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아직까지도 마을인 이유는 영주성과 제법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 근방을 다스리는 영주는 유스카트르 백작이다. 백작이 머무르고 있는 영주성은 드리뮤 마을과는 정 반대에 위치해 있다.
드리뮤 마을은 어떻게 보면, 다른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와 백작이 다스리는 지역의 사이에 걸쳐 있는 위치다.
분명 유스카트르 백작이 영주권 내에 속해 있지만, 영주전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침략을 당하고, 빼앗길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도시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도시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크기와 교역은 그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로엔은 드리뮤 마을로 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리뮤 마을로 가면서 몬스터를 조우하여 퇴치해서 나오는 마정석은 용병들의 소유가 된다
만나지 않는 것이 안전에 대해서는 좋지만, 만난다는 가정을 하면 마정석을 얻게 되어 일종의 보너스를 얻게 되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마정석이 무조건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올 확률이 제로는 아니다. 어쨌든 이랬든 저랬든 나쁘지 않다.
“이 의뢰밖에 없습니까?”
로엔이 베른에게 묻는다. 드리뮤 마을보다 더 나은 도시로 나가는 상단행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베른은 의뢰서들을 잠시 살펴보고는 고개를 흔든다. 다른 상단행 의뢰는 아주 없는 것이다.
“그럼 이 의뢰로 하겠습니다.”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세.”
“잘 지내십시오.”
작별의 인사는 간단했다. 그간 알고 지냈던 용병들을 일부로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당장이고 내일부터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떠난 것이나 다름없다.
‘알베스 상단인가?’
로엔은 용병길드를 나서며 의뢰서를 자세하게 훑어보기 시작한다. 드리뮤 마을로 상단행을 가는 상단은 알베스라는 곳이다.
알베스 상단. 이 세계에 존재하는 상단들 중에서 양손에 꼽힌다고 할 정도로 큰 상단은 아니다. 굳이 꼽으라면 20위 안에 꼽힐 정도이기는 하다. 그것만으로도 큰 곳이라고 할 수 있다.
10위 안에 들어가는 상단은 이런 작은 상단행은 하지 않는다. 소금이나 귀한 광석과 같은 큰 것만을 노린다.
전쟁 물자만을 목표로 삼는 상단도 있다. 각자만의 영역이 있고, 그것이 겹치게 되면 상단끼리 싸움이 붙기도 한다.
‘타이밍이 좋은 건지, 곧 마감이군.’
의뢰서를 쭉 훑어 내리고서 마지막 아랫부분을 보자, 날짜와 시각이 적혀 있다. 운이 좋았다. 지금 바로 간다면 용병 모집이 끝난 시각에 맞출 수 있다.
로엔은 집결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여관으로 발걸음을 돌릴 필요는 없다.
챙겨갈 것은 옷 안의 호주머니에 담겨 있는 돈주머니와 무기, 몸뚱어리가 전부다. 여관의 대금은 선금으로 냈었기에 상관없기도 하다.
“자자! 곧 출발할 테니 마지막으로 점검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제 오신 용병분들은 저에게 와주십시오!”
로엔이 집결지에 도착함과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상단행을 가는 상단의 우두머리 상인인 듯 하다.
“아, 뭐야!”
“어떤 미친놈이야!”
먼저 모여 있던 용병들 사이를 비집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용병들이 욕설을 내뱉지만, 로엔은 신경 쓰지 않았다.
비집으며 가기에 잠깐 짜증이 치밀어서 뱉는 욕설에 불과하다. 맞받아치지만 않으면 저들도 금세 신경을 끄고 자신의 일을 본다.
만약 맞받아친다면 시비가 붙고, 싸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의뢰를 받고 곧 이동을 해야 하기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용병들도 그것을 알고, 욕설만 뱉어내고 끝내는 것이다.
“이제 오신 용병분이십니까? 용병패를 보여주십시오.”
우두머리 상인은 로엔을 발견하자 묻고 말한다. 용병패란 용병의 신원을 보증하는 물건이라 할 수 있다. 현대 한국을 기준으로 하자면 신분증과 동일하다.
“여기 있소.”
로엔은 우두머리 상인에게 용병패를 꺼내 보였다. 우두머리 상인은 용병패를 받고는 쭉 살펴본다. 혹시나 위장을 한 것이라던가, 타인의 것을 훔친 것은 아닐지 살피는 것이다.
“C 급 용병 로엔. 용병패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무리로 합류하시면 됩니다.”
우두머리 상인은 용병패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건네며 말한다. 로엔은 손을 뻗어 받아내고는 다시 품속에 집어넣는다. 용병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곳으로 간다.
“로엔이 아닌가?”
용병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곳으로 가자, 누군가가 로엔을 알아보고는 말을 건네 온다. 로엔이 고개를 돌리자 리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드? 당신도 마을을 떠나는 겁니까?”
리드. C급의 소드맨 용병이다. 고블린을 퇴치할 때에 함께 했던 용병이기도 하다. 나름 친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은 인연을 맺은 것도 아니다. 나이는 로엔보다 2살 위엔 30살이다.
“언제까지 고블린을 잡으면서 근근이 먹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리드도 로엔과 마찬가지로 생각한 모양이다. 씁쓸하게 중얼거리고는 검 자루를 쥐었다가 편다. 입장 또한 비슷하다. 용병질로만 먹고 살기에는 몇 년 남지 않았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기에 아무리 많이 올라가도 C 급이 한계다. 보통 용병들이 퇴역을 하면 여관이나 술집을 차리는 것처럼 리드 또한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블린 따위를 잡으면서 그런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마을로 가려는 것이다. 리드와 로엔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질감에 의해 소소하게 이야기 할 것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조금 시간이 지났을 무렵, 상단행 출발 준비가 끝났는지, 우두머리 상인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연다.
“이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리뮤 마을까지는 총 3일이 걸릴 예정입니다! 호위의 최우선 순위는 짐마차와 상인들입니다. 그 외의 것들은 차선(次善)으로 하시면 됩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우두머리 상인의 말이 끝나자, 상단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용병들은 상단의 주위를 둘러싸듯 호위하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을 벗어나는 것은 금방이었지만, 드리뮤 마을까지는 우두머리 상인이 말한 것처럼 삼일이 걸린다.
3일이 걸리는 것도 날이 어두워지면 쉬고, 날이 밝아지면 바로 출발하는 식으로 최대한 많이 이동하기에 그 정도가 걸린다.
만약 여유롭게 움직이면 5일에서 6일정도가 걸린다고 보면 된다.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몬스터를 만나는 확률도 더욱 높아지기에 최대한 많이 이동하려는 것이다.
위의 것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동이 있다. 겨울의 경우에는 날이 일직 어두워지고 날이 늦게 밝아지기에 눈 앞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돼서야 이동을 멈추는 식으로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고, 드리뮤 마을까지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 날은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고, 무사하게 보내게 되었다.
이 정도는 모두가 예상하고 있던 것이다. 밤이 되자 우두머리 상인은 이동을 멈추고는 노숙을 하도록 지시했다.
용병들은 마차를 주위로 삼삼오오 짝을 이뤄 자리에 앉았다. 그 중심에는 작은 모닥불이 있었다.
매 끼니는 상단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상단행 의뢰의 장점이다. 조식, 중식, 석식까지 모두 챙겨주니, 굳이 스스로 챙겨먹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리드는 드리뮤 마을로 가서 무엇을 하실 겁니까?”
로엔은 음식을 먹으며 리드에게 묻는다. 그나마 친분이 있는 용병이라고는 리드 밖에 없으니,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없지만, 아마도 몬스터 사냥 의뢰나 하지 않을까 싶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드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로엔은 그것에 공감했다. 딱히 할 것이라고는 그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자 용병들이 돌아가서 보초를 선다. 나머지 용병들과 상인들은 취침을 준비한다. 용병들의 숫자는 약 40명 정도다.
로엔의 보초 순번은 이틀째이다. 어차피 두 번의 노숙이 끝이기에 딱 반으로 나눠서 하루씩 세우는 것이다.
‘피곤하군.’
조금 빠른 속도로 반나절을 걸어서 그런지 피곤함이 몰려온다. 어쩌면 심리적인 압박에 의해 피로가 급격하게 몰려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으음…….”
바로 옆에서 자리를 만들어 몸을 누운 리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피곤했는지 벌써 잠이 든 것이다. 로엔도 잠기는 눈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잠시 후,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오며, 그렇게 첫 번째 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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