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몸을 눕히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자신마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들의 난교가 끝나고 나서야 로엔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잠에서 깨어난 것은 날이 밝음과 동시였다. 햇살이 눈을 따갑게 만들었고, 로엔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으……!”
상체를 일으키고 양팔을 위로 쭉 뻗었다.
뚜두둑!
허리와 등, 어깨에서 벼가 맞춰지는 소리가 울리며, 상쾌한 감각이 몸으로 퍼져왔다. 몸을 완전히 일으킨 뒤 자리를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불침번을 정하지 않았군.’
난교로 인해 잠들기 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야영을 할 때에는 필수로 불침번을 세워야 한다.
모닥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둘째 치고, 몬스터나 야생 짐승이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마법사가 있기에 세우지 않았던 것인가?’
불침번에 대한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마법사라는 존재들은 적의 침입을 알 수 있게 경계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경계마법이란 단어 그대로 사람을 대신해서 경계를 해주는 마법을 말한다. 종류 또한 다양하지만, 다른 마법들에 비해 실용성이 없다고 하여 적이 일정한 범위로 들어오면 소리로 알려주는 알람(Alarm)이나 불꽃이 뛰어오르는 경계(Alert)을 주로 사용한다.
불침번에 대한 걱정이 빠르게 사라진 것도 그로 인해서였다. 경계마법을 걸어놨다면 불침번을 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마법을 해체할 수 있는 같은 마법사가 있지 않는 이상.
자리 정리가 끝나고 주위를 살핀다. 파라곤과 오마르를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도 잠에서 깨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로엔은 에린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젯밤의 난교 탓인지 얼굴에 고통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몸에 대해 걱정이 드는 것이라기보다, 앞으로 오크 사냥에 있어서 실수가 있을지는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이다.
“괜찮아요…….”
에린은 고통으로 인해 살짝 찌푸려져 있는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손은 하복부에 갖다 댄 상태였다.
‘…좋지 않군.’
로엔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당분간 전투에 관해서는 조심해야할 것 같았다.
비오르의 경우에는 소드맨 중에서도 가장 체력이 좋고, 하체의 힘이 좋아야 한다는 디펜더이기에 괜찮으리라 생각 들었다.하지만 마법사인 에린은 아니다.
체력적으로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것이 마법사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체력이 조금 뛰어난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마법을 사용할 때에는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기도 하다.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된 마법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발휘를 하더라도, 실수를 할 것이 분명했다.
‘오크 정도라면 별다른 상관은 없을 것이지만.’
어차피 당분간은 오크만을 잡는다고 했기에 큰 상관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가 모두 정리되자 파라곤이 말했다. 에린은 야영지 한 쪽으로 가서 쪼그려 앉더니, 입을 작게 달싹였다.
“경계마법을 해체 했어요.”
“좋아. 이번 목표도 저번과 같이 오크 정찰병입니다. 지난번의 경험을 토대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파라곤은 빠르게 말했다. 일종의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두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역시 그렇군.’
로엔은 파라곤의 계속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크 사냥에 대한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아마 제대로 사냥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 추측됐다. 하지만 말을 쭉 들어보니, 앞으로는 더욱 원활하게 풀릴 것 같았다.
“…….”
척.
말이 끝나고, 다시 오크 사냥에 들어갔다. 파라곤의 수신호를 시작으로 숨을 죽이고, 로엔이 활시위를 걸었다.
끼기긱!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또 다시 수신호가 온다. 동시에 화살이 핑! 하고 날아가며 오크의 이마에 틀어박힌다.
강화부여마법이 걸려 있는 화살은 빠르고, 깔끔했다. 더욱 능숙해진 전투 운용과 지시는 오크 정찰병들을 빠르게 학살하다시피 해갔다.
개체 수는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열다섯 개체의 오크들은 순식간에 열 셋, 열, 일곱까지 줄어든다. 로엔은 뒤늦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오크의 가슴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오크 정찰병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우 네 개체만이 남아서 고전분투하고 있었다.
로엔은 다시 한 번 활에 시위를 걸며 조준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에린이 강화부여마법을 걸었고, 화살에서는 연한 빛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저 녀석……!’
눈을 가늘게 뜨며 네 개체 중 하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오크 정찰병들 중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느낌이 드는 녀석이었다.
‘파라곤을 오히려 밀어 붙이고 있어!’
파라곤의 실력은 확실하다. C 급이라는 것에 걸맞게, 오크 서너 개체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그를 밀어 붙이고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싸웠다면 호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잡는다면 꽤나 값진 마정석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면 로엔의 활시위는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빗나가서는 안 된다.
단 한 번.
신중하게 조준하고, 신중하게 쏴야했다. 눈을 깜빡이지 않으며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화살 깃을 끼어놓은 손가락들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긱.
활의 방향이 조금씩 틀어지며, 활시위가 더욱 팽팽하게 당겨졌다.
‘지금!’
로엔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속으로 외침과 동시에 손가락들이 벌어졌다.
핑!
화살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음직이며 오크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로엔의 눈은 화살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봤다.
‘또 다른 오크 정찰병!’
자신이 노리고 있던 오크의 뒤에서 또 다른 오크 정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고 있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바로 정찰을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화살은 로엔이 노리고 있던 오크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것만큼은 다행이었지만, 상황으로 따지면 전혀 아닌 축에 속해있었다.
“취익! 인간! 동료들과 싸우고 있다! 취익!”
“전사들여! 취익! 인간들을 물리치자! 취익!”
“제길! 오크 녀석들! 벌써 왔다고?!”
새롭게 합류하는 오크 정찰병들의 외침에 파라곤들이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개체 숫자는 이미 싸우고 있던 녀석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의 격렬한 전투로 지쳐 있는 상태다.
‘상황은 극악으로 치달았다. 이대로 도망쳐야 하는 건가?’
후방에서 활을 쏘고 있던 로엔은 빠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파라곤들은 새로이 합류한 오크 정찰병들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최대한 빠르게 지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로엔은 도망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오크들은 끈질기다.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죽을 때까지 쫓아온다!’
도망치는 속도가 오크들보다 빠르고, 지구력이 더 뛰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죽지 않는 이상,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숫자를 줄여야 한다. 저 네 명이 싸우는 사이, 최대한 화살로 꿰뚫어서 죽여야 한다.
끼기긱!
로엔은 빠르게 활시위를 당겼다. 신중하게 조준하고 놓을 시간이 없다. 바로 손가락을 놓았고, 활시위가 풀렸다.
핑!
핑!
당기고 바로 쏘아 보낸다. 그것을 연속해서 빠르게 반복했다. 다급하게 쏘아 보냈지만, 화살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크들의 미간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파라곤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오르의 몸이 휘청였고, 오마르는 바닥을 뒹굴었다.
‘제길! 조금 더 빠르게!’
로엔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파라곤들이 오크를 죽이기란 불가능했다. 방어하는 것이 최선이다.
비오르는 디펜더이기에 방패가 있지만, 나머지 둘은 검으로 막아내야 한다. 체력은 점점 빠르게 줄어들 것이고, 오크를 처리해야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손은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옆에서 에린이 계속해서 화살에 인챈트를 걸었다.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에도 한계가 있다. 마나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체내에 가지고 있는 마나에는 양이 정해져 있고, 마법을 사용할수록 점점 줄어든다.
이미 파라곤들의 무기와 방패에 인챈트를 걸었다. 그리고 로엔의 화살에도 연속적으로 몇 번을 건 상태다.
마나는 이미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체내의 마나가 소모될수록 마법사의 체력도 함께 고갈이 된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인챈트 할 수 있습니까?”
로엔은 활시위를 당기며 빠르게 물었다. 앞으로 걸 수 있는 인챈트의 횟수에 따라 확실하게 죽여야 할 녀석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정해야 한다.
마나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것을 체크하고 상황에 따라 인챈트에 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하악, 아, 앞으로… 세 번…?”
에린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바로 활을 튕겼다.
핑!
화살이 날아갔고, 오크의 미간을 꿰뚫었다.
“인챈트는 걸어달라고 할 때에만 걸어주십시오. 그리고… 아!”
로엔은 화살통으로 손을 가져갔다가 다급한 탄식을 내질렀다. 이제는 화살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사냥이 끝난 뒤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남은 것은 겨우 두 개!’
단 두 발만 쏜다면 화살은 아예 남지 않은 것이다. 로엔은 입술을 꾹 깨물며 시위에 화살을 걸쳤다.
끼기기기긱!
남은 두 발의 화살은 신중하게 쏴야 한다. 절대로 빗나가서는 안 된다. 겨우 남은 두 발을 헛되게 소모할 수는 없다.
“취익! 트롤! 취익! 이다! 취이이익!”
활시위를 천천 히 당기고 있는 순간, 오크들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로엔은 놀라 고개를 들어 전장을 확인했다.
“쿠워어어어어!”
“취익! 위험하다! 취익!”
“트롤(Troll)!”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트롤(Troll). 최소 2미터 크기에서 최대 3미터 이상으로 자라는 중형 몬스터이다.
종기가 돋아나 있는 것 같은 초록색 피부와 날카로운 긴 송곳니, 그리고 사지 중 하나가 잘려나가도 재생하는 엄청난 회복, 재생력은 녀석을 중형 몬스터 중에서 가장 포식자로 만들었다.
“크, 크악!”
트롤에 의한 첫 희생자는 오마르였다. 녀석의 손에 들려 있던 거대한 몽둥이가 휘둘러졌다.
그는 검을 들어 그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트롤의 몽둥이는 빠르고, 강했다. 오마르의 반응 속도로는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빠각.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몸이 멀리 나가 떨어졌다.
푹!
“꺼, 꺼억……!”
갈비뼈가 부러지며 장기를 찔러댔다. 숨이 턱하며 막혀왔다.
툭.
팔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트롤의 공격 한 번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쿠워, 쿠워어어어!”
트롤은 울부짖으며 전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녀석의 몽둥이가 휘둘러지면 오크들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제길! 오마르!”
레오가 순식간에 당한 오마르를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취익! 트롤! 무찌른다! 취익!”
오크들의 대다수가 트롤을 향해 덤벼들었다. 족히 열을 넘는 숫자지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난 재생력으로 상처를 회복하며, 끊임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제길. 어떤 녀석을 노려야 하는 거지?’
로엔의 활시위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타겟이 계속해서 바뀌며,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개체 수는 오크가 훨씬 더 많았다. 새롭게 합류한 것까지 합쳐서 족히 스무 개체나 된다. 하지만 여전히 갈등은 계속되었다.
트롤은 너무나 강력했다. 개체 수가 많다고 하지만, 과연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트롤? 오크? 어떤 녀석을 노려야 하는 거지! 제길!’
숫자만을 따지고 보면 오크를 줄여야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트롤의 강력함에 개체 수는 무의미하게 보인다.
이도 저도 선택하기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 쪽이 불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로엔은 결국 선택해야 한다.
“크악!”
“레, 레오! 이 자식!”
오마르에 이어 레오가 당했다. 이번에는 오크 녀석들이다. 남은 것은 파라곤과 비오르, 단 둘이다.
핑!
푹!
화살이 날아가 파라곤의 뒤를 노리고 있던 오크의 이마를 꿰뚫었다. 남은 것은 이제 두 발 밖에 되지 않는다.
“쿠아아아!”
“취이익!”
트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오크들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배틀 크라이(Battle Cry).
오크 버서커가 사용하는 전투의 함성이라는 기술이다. 교유의 것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등급이 있는 몬스터라면 사용할 수 있다.
퍼억!
몽둥이가 휘둘러지며 오크들의 흉부가 아스러졌다. 배틀 크라이 이후로부터 순식간에 밀리기 시작했다.
트롤의 몽둥이는 황야의 무법자마냥 휩쓸었다. 개체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그 중에서는 파라곤 또한 있었다.
“끄, 끄윽! 끄으으윽!”
파라곤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오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트롤이 배틀 크라이를 사용하고, 몽둥이를 휘두른 덕분이다.
전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몬스터 녀석들이 싸우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기에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아니, 오크들은 트롤에게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비오르 또한 덕분에 살아남아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비, 비오르……!”
“…….”
파라곤은 힘겹게 말했다. 비오르는 그런 그를 내려 봤다. 싸늘한 시선이 꽂혀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였다.
“나, 나를 데리고 빠져나가라!”
“…알겠습니다.”
비오르는 파라곤의 몸을 들쳐 업고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쿠워어어어어어!”
“으윽!”
“커억!”
벗어나려는 순간이었다. 트롤과 오크의 몸이 한데 섞여서 둘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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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를 찾지 못하다니..
저는 멍청멍청.. 하하...
몸을 눕히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자신마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들의 난교가 끝나고 나서야 로엔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잠에서 깨어난 것은 날이 밝음과 동시였다. 햇살이 눈을 따갑게 만들었고, 로엔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으……!”
상체를 일으키고 양팔을 위로 쭉 뻗었다.
뚜두둑!
허리와 등, 어깨에서 벼가 맞춰지는 소리가 울리며, 상쾌한 감각이 몸으로 퍼져왔다. 몸을 완전히 일으킨 뒤 자리를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불침번을 정하지 않았군.’
난교로 인해 잠들기 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야영을 할 때에는 필수로 불침번을 세워야 한다.
모닥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둘째 치고, 몬스터나 야생 짐승이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마법사가 있기에 세우지 않았던 것인가?’
불침번에 대한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마법사라는 존재들은 적의 침입을 알 수 있게 경계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경계마법이란 단어 그대로 사람을 대신해서 경계를 해주는 마법을 말한다. 종류 또한 다양하지만, 다른 마법들에 비해 실용성이 없다고 하여 적이 일정한 범위로 들어오면 소리로 알려주는 알람(Alarm)이나 불꽃이 뛰어오르는 경계(Alert)을 주로 사용한다.
불침번에 대한 걱정이 빠르게 사라진 것도 그로 인해서였다. 경계마법을 걸어놨다면 불침번을 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마법을 해체할 수 있는 같은 마법사가 있지 않는 이상.
자리 정리가 끝나고 주위를 살핀다. 파라곤과 오마르를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도 잠에서 깨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로엔은 에린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젯밤의 난교 탓인지 얼굴에 고통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몸에 대해 걱정이 드는 것이라기보다, 앞으로 오크 사냥에 있어서 실수가 있을지는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이다.
“괜찮아요…….”
에린은 고통으로 인해 살짝 찌푸려져 있는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손은 하복부에 갖다 댄 상태였다.
‘…좋지 않군.’
로엔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당분간 전투에 관해서는 조심해야할 것 같았다.
비오르의 경우에는 소드맨 중에서도 가장 체력이 좋고, 하체의 힘이 좋아야 한다는 디펜더이기에 괜찮으리라 생각 들었다.하지만 마법사인 에린은 아니다.
체력적으로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것이 마법사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체력이 조금 뛰어난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마법을 사용할 때에는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기도 하다.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된 마법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발휘를 하더라도, 실수를 할 것이 분명했다.
‘오크 정도라면 별다른 상관은 없을 것이지만.’
어차피 당분간은 오크만을 잡는다고 했기에 큰 상관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가 모두 정리되자 파라곤이 말했다. 에린은 야영지 한 쪽으로 가서 쪼그려 앉더니, 입을 작게 달싹였다.
“경계마법을 해체 했어요.”
“좋아. 이번 목표도 저번과 같이 오크 정찰병입니다. 지난번의 경험을 토대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파라곤은 빠르게 말했다. 일종의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두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역시 그렇군.’
로엔은 파라곤의 계속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크 사냥에 대한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아마 제대로 사냥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 추측됐다. 하지만 말을 쭉 들어보니, 앞으로는 더욱 원활하게 풀릴 것 같았다.
“…….”
척.
말이 끝나고, 다시 오크 사냥에 들어갔다. 파라곤의 수신호를 시작으로 숨을 죽이고, 로엔이 활시위를 걸었다.
끼기긱!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또 다시 수신호가 온다. 동시에 화살이 핑! 하고 날아가며 오크의 이마에 틀어박힌다.
강화부여마법이 걸려 있는 화살은 빠르고, 깔끔했다. 더욱 능숙해진 전투 운용과 지시는 오크 정찰병들을 빠르게 학살하다시피 해갔다.
개체 수는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열다섯 개체의 오크들은 순식간에 열 셋, 열, 일곱까지 줄어든다. 로엔은 뒤늦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오크의 가슴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오크 정찰병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우 네 개체만이 남아서 고전분투하고 있었다.
로엔은 다시 한 번 활에 시위를 걸며 조준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에린이 강화부여마법을 걸었고, 화살에서는 연한 빛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저 녀석……!’
눈을 가늘게 뜨며 네 개체 중 하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오크 정찰병들 중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느낌이 드는 녀석이었다.
‘파라곤을 오히려 밀어 붙이고 있어!’
파라곤의 실력은 확실하다. C 급이라는 것에 걸맞게, 오크 서너 개체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그를 밀어 붙이고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싸웠다면 호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잡는다면 꽤나 값진 마정석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면 로엔의 활시위는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빗나가서는 안 된다.
단 한 번.
신중하게 조준하고, 신중하게 쏴야했다. 눈을 깜빡이지 않으며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화살 깃을 끼어놓은 손가락들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긱.
활의 방향이 조금씩 틀어지며, 활시위가 더욱 팽팽하게 당겨졌다.
‘지금!’
로엔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속으로 외침과 동시에 손가락들이 벌어졌다.
핑!
화살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음직이며 오크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로엔의 눈은 화살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봤다.
‘또 다른 오크 정찰병!’
자신이 노리고 있던 오크의 뒤에서 또 다른 오크 정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고 있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바로 정찰을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화살은 로엔이 노리고 있던 오크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것만큼은 다행이었지만, 상황으로 따지면 전혀 아닌 축에 속해있었다.
“취익! 인간! 동료들과 싸우고 있다! 취익!”
“전사들여! 취익! 인간들을 물리치자! 취익!”
“제길! 오크 녀석들! 벌써 왔다고?!”
새롭게 합류하는 오크 정찰병들의 외침에 파라곤들이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개체 숫자는 이미 싸우고 있던 녀석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의 격렬한 전투로 지쳐 있는 상태다.
‘상황은 극악으로 치달았다. 이대로 도망쳐야 하는 건가?’
후방에서 활을 쏘고 있던 로엔은 빠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파라곤들은 새로이 합류한 오크 정찰병들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최대한 빠르게 지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로엔은 도망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오크들은 끈질기다.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죽을 때까지 쫓아온다!’
도망치는 속도가 오크들보다 빠르고, 지구력이 더 뛰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죽지 않는 이상,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숫자를 줄여야 한다. 저 네 명이 싸우는 사이, 최대한 화살로 꿰뚫어서 죽여야 한다.
끼기긱!
로엔은 빠르게 활시위를 당겼다. 신중하게 조준하고 놓을 시간이 없다. 바로 손가락을 놓았고, 활시위가 풀렸다.
핑!
핑!
당기고 바로 쏘아 보낸다. 그것을 연속해서 빠르게 반복했다. 다급하게 쏘아 보냈지만, 화살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크들의 미간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파라곤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오르의 몸이 휘청였고, 오마르는 바닥을 뒹굴었다.
‘제길! 조금 더 빠르게!’
로엔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파라곤들이 오크를 죽이기란 불가능했다. 방어하는 것이 최선이다.
비오르는 디펜더이기에 방패가 있지만, 나머지 둘은 검으로 막아내야 한다. 체력은 점점 빠르게 줄어들 것이고, 오크를 처리해야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손은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옆에서 에린이 계속해서 화살에 인챈트를 걸었다.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에도 한계가 있다. 마나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체내에 가지고 있는 마나에는 양이 정해져 있고, 마법을 사용할수록 점점 줄어든다.
이미 파라곤들의 무기와 방패에 인챈트를 걸었다. 그리고 로엔의 화살에도 연속적으로 몇 번을 건 상태다.
마나는 이미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체내의 마나가 소모될수록 마법사의 체력도 함께 고갈이 된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인챈트 할 수 있습니까?”
로엔은 활시위를 당기며 빠르게 물었다. 앞으로 걸 수 있는 인챈트의 횟수에 따라 확실하게 죽여야 할 녀석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정해야 한다.
마나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것을 체크하고 상황에 따라 인챈트에 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하악, 아, 앞으로… 세 번…?”
에린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바로 활을 튕겼다.
핑!
화살이 날아갔고, 오크의 미간을 꿰뚫었다.
“인챈트는 걸어달라고 할 때에만 걸어주십시오. 그리고… 아!”
로엔은 화살통으로 손을 가져갔다가 다급한 탄식을 내질렀다. 이제는 화살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사냥이 끝난 뒤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남은 것은 겨우 두 개!’
단 두 발만 쏜다면 화살은 아예 남지 않은 것이다. 로엔은 입술을 꾹 깨물며 시위에 화살을 걸쳤다.
끼기기기긱!
남은 두 발의 화살은 신중하게 쏴야 한다. 절대로 빗나가서는 안 된다. 겨우 남은 두 발을 헛되게 소모할 수는 없다.
“취익! 트롤! 취익! 이다! 취이이익!”
활시위를 천천 히 당기고 있는 순간, 오크들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로엔은 놀라 고개를 들어 전장을 확인했다.
“쿠워어어어어!”
“취익! 위험하다! 취익!”
“트롤(Troll)!”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트롤(Troll). 최소 2미터 크기에서 최대 3미터 이상으로 자라는 중형 몬스터이다.
종기가 돋아나 있는 것 같은 초록색 피부와 날카로운 긴 송곳니, 그리고 사지 중 하나가 잘려나가도 재생하는 엄청난 회복, 재생력은 녀석을 중형 몬스터 중에서 가장 포식자로 만들었다.
“크, 크악!”
트롤에 의한 첫 희생자는 오마르였다. 녀석의 손에 들려 있던 거대한 몽둥이가 휘둘러졌다.
그는 검을 들어 그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트롤의 몽둥이는 빠르고, 강했다. 오마르의 반응 속도로는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빠각.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몸이 멀리 나가 떨어졌다.
푹!
“꺼, 꺼억……!”
갈비뼈가 부러지며 장기를 찔러댔다. 숨이 턱하며 막혀왔다.
툭.
팔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트롤의 공격 한 번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쿠워, 쿠워어어어!”
트롤은 울부짖으며 전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녀석의 몽둥이가 휘둘러지면 오크들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제길! 오마르!”
레오가 순식간에 당한 오마르를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취익! 트롤! 무찌른다! 취익!”
오크들의 대다수가 트롤을 향해 덤벼들었다. 족히 열을 넘는 숫자지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난 재생력으로 상처를 회복하며, 끊임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제길. 어떤 녀석을 노려야 하는 거지?’
로엔의 활시위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타겟이 계속해서 바뀌며,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개체 수는 오크가 훨씬 더 많았다. 새롭게 합류한 것까지 합쳐서 족히 스무 개체나 된다. 하지만 여전히 갈등은 계속되었다.
트롤은 너무나 강력했다. 개체 수가 많다고 하지만, 과연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트롤? 오크? 어떤 녀석을 노려야 하는 거지! 제길!’
숫자만을 따지고 보면 오크를 줄여야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트롤의 강력함에 개체 수는 무의미하게 보인다.
이도 저도 선택하기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 쪽이 불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로엔은 결국 선택해야 한다.
“크악!”
“레, 레오! 이 자식!”
오마르에 이어 레오가 당했다. 이번에는 오크 녀석들이다. 남은 것은 파라곤과 비오르, 단 둘이다.
핑!
푹!
화살이 날아가 파라곤의 뒤를 노리고 있던 오크의 이마를 꿰뚫었다. 남은 것은 이제 두 발 밖에 되지 않는다.
“쿠아아아!”
“취이익!”
트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오크들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배틀 크라이(Battle Cry).
오크 버서커가 사용하는 전투의 함성이라는 기술이다. 교유의 것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등급이 있는 몬스터라면 사용할 수 있다.
퍼억!
몽둥이가 휘둘러지며 오크들의 흉부가 아스러졌다. 배틀 크라이 이후로부터 순식간에 밀리기 시작했다.
트롤의 몽둥이는 황야의 무법자마냥 휩쓸었다. 개체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그 중에서는 파라곤 또한 있었다.
“끄, 끄윽! 끄으으윽!”
파라곤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오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트롤이 배틀 크라이를 사용하고, 몽둥이를 휘두른 덕분이다.
전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몬스터 녀석들이 싸우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기에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아니, 오크들은 트롤에게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비오르 또한 덕분에 살아남아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비, 비오르……!”
“…….”
파라곤은 힘겹게 말했다. 비오르는 그런 그를 내려 봤다. 싸늘한 시선이 꽂혀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였다.
“나, 나를 데리고 빠져나가라!”
“…알겠습니다.”
비오르는 파라곤의 몸을 들쳐 업고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쿠워어어어어어!”
“으윽!”
“커억!”
벗어나려는 순간이었다. 트롤과 오크의 몸이 한데 섞여서 둘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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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를 찾지 못하다니..
저는 멍청멍청.. 하하...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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