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와 유란은 한참을 의논하더니 나를 쓱 한번 쳐다보고는 말한다."
"오빠 믿어도 되지?"
"안되면 니들 접수 한다니까."
홍미가 결심을 굳혔는지 택시를 잡기 시작한다.
택시가 서자 홍미는, 유란이를 앞자리에 태우고는 내 손을 잡아끌고 뒷자리로 가 앉는다. 그리고는 택시기사에게 말한다.
“아저씨. 조선여고 앞으로 가주세요.”
택시가 달리자 홍미가 깊숙이 팔짱을 끼고선 몽실거리는 가슴을 팔에 밀착시켰다. 택시 기사가 빽미러로 흘끔 쳐다보고는 못본 채 시선을 돌려 운전을 한다.
“오빠. 그냥 우리랑 그거하고 그 언니는 놔두면 안될까? 괜히 건드렸다가 오빠도 험한 꼴 당할 수 있어. 그 언니 빽 엄청나다더라.”
“아. 됐으니까. 전화기나 줘봐.”
전화번호를 찍어 내 전화기로 발신을 하고는 수신된 번호를 저장했다. 홍미라고 이름을 적지 않고 흰팬티라고 이름을 입력했다.
“내가 그 언니라는 애 만나보고 전화할테니까. 근처 피씨방이나 이런데 가서 내 전화 기다려.”
“응. 알았어.”
홍미가 은근슬쩍 손을 움직이더니 내 바지위에 손을 두고는 모르는 척 한다. 쪼그만게 까져가지고는. 손을 확 치우려다 말고 그냥 두고는 묻는다.
“야. 근데 그 언니라는 애 이름 뭐야?”
“권미라.”
“권미라? 혹시 영화에서 나오는 그 미라같이 생겼냐?”
홍미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혹시 그거 지금 나 웃으라고 한 소리야?”
“아님 말고.”
기집애가 내가 아무리 농담을 썰렁하게 한다고 해도 그냥 웃어주면 되지...
“지금 가는데가 어딘데?”
“아마 그 언니 지금쯤 삥 뜯고 있을거야. 저녁에 놀 돈 만들려고.”
“야. 걔 너희 학교 짱이라며! 기집애들은 일진 짱이 길거리에서 삥도 뜯냐?”
홍미가 또다시 눈을 흘긴다.
“오빠. 정말 대한고등학교 짱 맞어? 어쩜 이리 몰라. 내가 말한 삥은 상납금 얘기하는 거잖어. 몰라?”
“아 씨바. 진작 그렇게 말하지.”
후배들이 3학년 선배들을 위해 돈을 모아 유흥비를 마련해주는 상납금을 말한거였다. 그런 개 같은걸, 문화라고 지키고 앉아 있는 것들이 참 한심하다.
3학년이 돼서 운동부에 발을 끓다시피 하면서 지낼때였다.
일진 짱이었던,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죽은 친구 철호를 만나 놀면서 망가질대로 망가져 봤었다. 그때 후배들이 갖다 바치는 상납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돈 필요하면 각자 알아서 조달하고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되지, 뭔 개같은 상납금.
금액 못 맞춰오면 후배들, 그날 좆나 패기까지 한다. 내가 상납금 없앨라고 하니까 애들이 지들도 그래왔다고 전통이라며 없앨 수 없다고 했었다.
씨발 친구고 나발이고 그날 좆나 패줬다.
그리고 아예 없애 버렸다. 그때부터 내가 학교 짱이 됐었다.
“그럼 니들도 요즘 상납금 갖다 바치고 있냐”
“응. 오빠. 나도 우리 또래에서 잘 나가.”
“잘나가긴 개뿔. 잘나간다는 년이 돌림빵 당하고 앉았냐?”
택시기사가 깜짝 놀라 빽미러로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던 말을 마저한다.
“놀려면 어디가서 맞지 않을 정도로 겁나게 놀고, 안될거 같으면 아예 놀지 마. 남자도 마찬가진데, 꼭 어중간하게 노는 것들이 돈 뺏기고, 맨날 맞고 다니고, 선배들한테 불려다녀. 여자면 몸까지 걸레되지.”
“치이... 그게 맘대로 되나? 나도 오빠처럼 잘나가고 싶은데, 싸움을 못하니까 어쩔 수 없지.”
“싸움도 못하면서 뭘 놀아. 그냥 공부나 해서 시집이나 가지.”
“아까 친구들한테도 노친네 같은 소리하더니 나한테도 그러네. 지금 그말 우리 아빠도 하는 말인거 알아?”
“현실을 얘기한거야. 내 친구들 만나는 기집얘들보면 골빈 애들 엄청 많아. 아무한테나 몸 막 대주고 다니고, 그걸 떠벌리고 다니며 빽이라고 생각하는 정신나간 얘들. 걔들 따먹을때나 친구들이 여자 취급해주지. 친구들끼리만 있을때 인간취급이나 해주는 줄 알아? 걸레라고 욕부터 한다. 너도 그 짝날 수도 있어. 그러니 이쯤에서 끝내.”
“어흠!!”
내가 너무 말을 거칠게 했는지 택시기사가 헛기침을 했다.
“치이... 오빠가 그렇게 안되게 해주면 되잖아.”
“내가 왜? 너 나랑 오늘 처음 만났어.”
“만난 시간이 중요한게 아니라 통하는게 있잖아. 우린.”
“아. 말을 말아야지. 하여튼 오늘 이 일 처리해주면 니들 이제 공부해.”
“오빠도 대학 갈거야? 어디 대학? 오빠가 가는거 보면 나도 공부할게.”
아 기집애가 하필 제일 아픈 곳을 찌르네...
기본이 있어야 공부라도 하지. 운동만 해와서 아예 기본이 없어서 중학교 책부터 공부해야 하는 남의 처지도 모르고. 아 신경질 나.
그래도 이것들 설득하려면 간다고 해줄 수밖에 없다.
“나? 낙성대.”
“장난해 오빠? 지금 그거 농담이라고 한거야? 오빠 진짜 썰렁하거든. 아우!! 닭살...”
“하여튼 나 만나고 싶으면 앞으로 공부해. 난 공부 잘하는 여자가 좋더라. 노는 애들은 하룻밤 상대. 공부 잘하는 애들은 애인. 그게 내 신조야.”
“치이... 애인 먼저 해주면 공부 할게.”
“공부 잘하게 되면 성적표 떼서 보여줘. 애인 해줄게.”
조수석에서 뒤도 한번 안돌아보고 가만히 앉아 있던 유란이 나직이 중얼 거린다.
“저... 사실 공부하면 잘할 자신 있는데요. 안해서 그렇지.”
“그래? 그럼 유란이가 내 애인 되겠다. 그치 유란아.”
홍미가 볼이 퉁퉁부어서 대답한다.
“나도 안해서 그렇지 공부하면 잘하거든. 나 1학년때 반에서 13등도 했었다고.”
유란이 조용히 말한다.
“난 전교에서 40등 했는데...”
“야! 유란이 너 자꾸 그럴거야?”
“사실을 말한거야.”
둘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택시 안이 모처럼 조용해 진다.
기사아저씨가 말한다.
“다왔어 학생들.”
요금을 보니 4700원 나왔다. 앞에 앉은 유란이 주머니를 뒤적이는 걸 보고 재빠르게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택시기사한테 두손으로 드렸다.
“아니예요. 제가 낼게요.”
“됐어 나 돈 많어.”
많긴 개뿔. 만원짜리 한 장. 아침에 엄마한테 애걸복걸해서 타왔는데. 쓸데없이 택시비로 반이 날라가게 생겼다. 그래도 나보다 어린 기집애가 돈을 내게 할 수야 없지.
택시기사가 돈을 받으며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7천원을 거스름돈으로 준다. 그러면서 여자 아이들한테 말한다.
“너희들 이 학생 말이 다 맞으니까. 오빠말 듣고 공부해. 딸 같아서 하는 소리야.”
나는 넙죽 거스름돈을 받고는 큰 소리로 기집애들한테 말한다.
“들었지? 아저씨 말씀하시는 거. 그러니 공부해라.”
홍미가 아주 눈꼴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택시에서 홱하니 내린다.
“아저씨 수고하세요.”
“그래. 조심해서들 다녀.”
“예.”
택시에서 내린 홍미가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더니 소리까지 죽여서 말한다.
“오빠. 그 언니 여기 어디쯤에 있을거야. 있을 만한 데는 저기 오락실 앞이랑. 저 앞에 공원이야. 근데 그 언니 친구들이라도 볼까봐 지금 너무 불안하니까. 오빠가 혼자 찾아 봐. 우린 요기 2층 디브이디 방에 가 있을게.”
“이름만 갖고 어떻게 찾냐? 하여튼 알았어. 그럼 거기 가서 기다려.”
“고마워 오빠. 내가 전화할까?”
“아니. 내가 일 끝내고 전화할테니까. 영화나 한편 때리고 있어. 야한거 보고 흥분하지 말고. 그리고 중간에라도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전화나 문자 보내.”
“응. 나 간다. 유란아. 빨리 들어가자.”
“응. 조심하세요. 오빠.”
기집애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건물 속으로 부리나케 뛰어 들어갔다. 건물 계단 중간쯤에 올라서야 안심이 되는지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선 열심히 손을 흔들어 댄다.
머리를 만지는 척 하며 손을 한번 들어주고는 일단 오락실로 향해 본다.
‘요새도 오락하는 애들이 있나?’
우선 오락실로 향하면서 길거리에 있는 기집애들을 유심히 살폈다. 뭐 봐서는 알수도 없지만 눈요기겸 해서다.
기집애들을 빤히 쳐다보면 대부분이 고개를 숙이지만 그렇지 않은 애들도 있다.
먼저 시비를 걸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는 애들. 그런 애들 위주로 찾아보면 금방일 것이다.
‘근데 이름을 물어볼수도 없으니 참 지랄같은 경우였다.’
여름이라 날씨까지 푹푹 쪘다. 가방이라도 홍미 고 기집애한테 맡기고 올걸 그랬다.
가방을 한번 고쳐매며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니 기집애들 다섯명이 상가 건물의 입구에 치마를 입고서 쪼그려 앉아 다리까지 벌리고 있었다. 바닥으로 침을 탁탁 뱉는 것이 한 눈에 봐도 날라리 기집애들이었다.
지나가는 학생들 중 여학생이 있으면 빤히 쳐다보는 것으로 보아 시비거리나 흥밋거리를 찾고 있는 듯 했다.
저 기집애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집애들한테 시선을 똑바로 고정하고 걸어가다보니, 마침 고개를 돌리던 기집애 하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껌을 짝짝 씹으며 빤히 노려보는 폼이 절대 눈을 먼저 깔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 엿같다.
하필 약한 기집애들에게 시비를 걸어야 하다니. 남자 새끼들이면 귀빵새 한방 먼저 날리고 ‘눈깔 안내리 깔어?’라고 말하면 게임 끝인데 말이다.
에이 씨바. 코앞에까지 이르렀는데도 저 기집애가 눈을 안 내리깔고 도전적으로 빤히 쳐다본다. 결국 내가 돌려버렸다. 에이 씨. 할짓 못된다.
이 기집애들한테 시비걸어 권미라를 불러내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포기해야겠다.
지은 죄가 있다보니 따가운 눈초리가 옆을 지나치는데도 느껴진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옆에서 기집애 목소리가 들린다.
“야! 너 줄무늬 교복. 너 나한테 꽂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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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인데도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운이 나네요.
"오빠 믿어도 되지?"
"안되면 니들 접수 한다니까."
홍미가 결심을 굳혔는지 택시를 잡기 시작한다.
택시가 서자 홍미는, 유란이를 앞자리에 태우고는 내 손을 잡아끌고 뒷자리로 가 앉는다. 그리고는 택시기사에게 말한다.
“아저씨. 조선여고 앞으로 가주세요.”
택시가 달리자 홍미가 깊숙이 팔짱을 끼고선 몽실거리는 가슴을 팔에 밀착시켰다. 택시 기사가 빽미러로 흘끔 쳐다보고는 못본 채 시선을 돌려 운전을 한다.
“오빠. 그냥 우리랑 그거하고 그 언니는 놔두면 안될까? 괜히 건드렸다가 오빠도 험한 꼴 당할 수 있어. 그 언니 빽 엄청나다더라.”
“아. 됐으니까. 전화기나 줘봐.”
전화번호를 찍어 내 전화기로 발신을 하고는 수신된 번호를 저장했다. 홍미라고 이름을 적지 않고 흰팬티라고 이름을 입력했다.
“내가 그 언니라는 애 만나보고 전화할테니까. 근처 피씨방이나 이런데 가서 내 전화 기다려.”
“응. 알았어.”
홍미가 은근슬쩍 손을 움직이더니 내 바지위에 손을 두고는 모르는 척 한다. 쪼그만게 까져가지고는. 손을 확 치우려다 말고 그냥 두고는 묻는다.
“야. 근데 그 언니라는 애 이름 뭐야?”
“권미라.”
“권미라? 혹시 영화에서 나오는 그 미라같이 생겼냐?”
홍미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혹시 그거 지금 나 웃으라고 한 소리야?”
“아님 말고.”
기집애가 내가 아무리 농담을 썰렁하게 한다고 해도 그냥 웃어주면 되지...
“지금 가는데가 어딘데?”
“아마 그 언니 지금쯤 삥 뜯고 있을거야. 저녁에 놀 돈 만들려고.”
“야. 걔 너희 학교 짱이라며! 기집애들은 일진 짱이 길거리에서 삥도 뜯냐?”
홍미가 또다시 눈을 흘긴다.
“오빠. 정말 대한고등학교 짱 맞어? 어쩜 이리 몰라. 내가 말한 삥은 상납금 얘기하는 거잖어. 몰라?”
“아 씨바. 진작 그렇게 말하지.”
후배들이 3학년 선배들을 위해 돈을 모아 유흥비를 마련해주는 상납금을 말한거였다. 그런 개 같은걸, 문화라고 지키고 앉아 있는 것들이 참 한심하다.
3학년이 돼서 운동부에 발을 끓다시피 하면서 지낼때였다.
일진 짱이었던,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죽은 친구 철호를 만나 놀면서 망가질대로 망가져 봤었다. 그때 후배들이 갖다 바치는 상납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돈 필요하면 각자 알아서 조달하고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되지, 뭔 개같은 상납금.
금액 못 맞춰오면 후배들, 그날 좆나 패기까지 한다. 내가 상납금 없앨라고 하니까 애들이 지들도 그래왔다고 전통이라며 없앨 수 없다고 했었다.
씨발 친구고 나발이고 그날 좆나 패줬다.
그리고 아예 없애 버렸다. 그때부터 내가 학교 짱이 됐었다.
“그럼 니들도 요즘 상납금 갖다 바치고 있냐”
“응. 오빠. 나도 우리 또래에서 잘 나가.”
“잘나가긴 개뿔. 잘나간다는 년이 돌림빵 당하고 앉았냐?”
택시기사가 깜짝 놀라 빽미러로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던 말을 마저한다.
“놀려면 어디가서 맞지 않을 정도로 겁나게 놀고, 안될거 같으면 아예 놀지 마. 남자도 마찬가진데, 꼭 어중간하게 노는 것들이 돈 뺏기고, 맨날 맞고 다니고, 선배들한테 불려다녀. 여자면 몸까지 걸레되지.”
“치이... 그게 맘대로 되나? 나도 오빠처럼 잘나가고 싶은데, 싸움을 못하니까 어쩔 수 없지.”
“싸움도 못하면서 뭘 놀아. 그냥 공부나 해서 시집이나 가지.”
“아까 친구들한테도 노친네 같은 소리하더니 나한테도 그러네. 지금 그말 우리 아빠도 하는 말인거 알아?”
“현실을 얘기한거야. 내 친구들 만나는 기집얘들보면 골빈 애들 엄청 많아. 아무한테나 몸 막 대주고 다니고, 그걸 떠벌리고 다니며 빽이라고 생각하는 정신나간 얘들. 걔들 따먹을때나 친구들이 여자 취급해주지. 친구들끼리만 있을때 인간취급이나 해주는 줄 알아? 걸레라고 욕부터 한다. 너도 그 짝날 수도 있어. 그러니 이쯤에서 끝내.”
“어흠!!”
내가 너무 말을 거칠게 했는지 택시기사가 헛기침을 했다.
“치이... 오빠가 그렇게 안되게 해주면 되잖아.”
“내가 왜? 너 나랑 오늘 처음 만났어.”
“만난 시간이 중요한게 아니라 통하는게 있잖아. 우린.”
“아. 말을 말아야지. 하여튼 오늘 이 일 처리해주면 니들 이제 공부해.”
“오빠도 대학 갈거야? 어디 대학? 오빠가 가는거 보면 나도 공부할게.”
아 기집애가 하필 제일 아픈 곳을 찌르네...
기본이 있어야 공부라도 하지. 운동만 해와서 아예 기본이 없어서 중학교 책부터 공부해야 하는 남의 처지도 모르고. 아 신경질 나.
그래도 이것들 설득하려면 간다고 해줄 수밖에 없다.
“나? 낙성대.”
“장난해 오빠? 지금 그거 농담이라고 한거야? 오빠 진짜 썰렁하거든. 아우!! 닭살...”
“하여튼 나 만나고 싶으면 앞으로 공부해. 난 공부 잘하는 여자가 좋더라. 노는 애들은 하룻밤 상대. 공부 잘하는 애들은 애인. 그게 내 신조야.”
“치이... 애인 먼저 해주면 공부 할게.”
“공부 잘하게 되면 성적표 떼서 보여줘. 애인 해줄게.”
조수석에서 뒤도 한번 안돌아보고 가만히 앉아 있던 유란이 나직이 중얼 거린다.
“저... 사실 공부하면 잘할 자신 있는데요. 안해서 그렇지.”
“그래? 그럼 유란이가 내 애인 되겠다. 그치 유란아.”
홍미가 볼이 퉁퉁부어서 대답한다.
“나도 안해서 그렇지 공부하면 잘하거든. 나 1학년때 반에서 13등도 했었다고.”
유란이 조용히 말한다.
“난 전교에서 40등 했는데...”
“야! 유란이 너 자꾸 그럴거야?”
“사실을 말한거야.”
둘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택시 안이 모처럼 조용해 진다.
기사아저씨가 말한다.
“다왔어 학생들.”
요금을 보니 4700원 나왔다. 앞에 앉은 유란이 주머니를 뒤적이는 걸 보고 재빠르게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택시기사한테 두손으로 드렸다.
“아니예요. 제가 낼게요.”
“됐어 나 돈 많어.”
많긴 개뿔. 만원짜리 한 장. 아침에 엄마한테 애걸복걸해서 타왔는데. 쓸데없이 택시비로 반이 날라가게 생겼다. 그래도 나보다 어린 기집애가 돈을 내게 할 수야 없지.
택시기사가 돈을 받으며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7천원을 거스름돈으로 준다. 그러면서 여자 아이들한테 말한다.
“너희들 이 학생 말이 다 맞으니까. 오빠말 듣고 공부해. 딸 같아서 하는 소리야.”
나는 넙죽 거스름돈을 받고는 큰 소리로 기집애들한테 말한다.
“들었지? 아저씨 말씀하시는 거. 그러니 공부해라.”
홍미가 아주 눈꼴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택시에서 홱하니 내린다.
“아저씨 수고하세요.”
“그래. 조심해서들 다녀.”
“예.”
택시에서 내린 홍미가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더니 소리까지 죽여서 말한다.
“오빠. 그 언니 여기 어디쯤에 있을거야. 있을 만한 데는 저기 오락실 앞이랑. 저 앞에 공원이야. 근데 그 언니 친구들이라도 볼까봐 지금 너무 불안하니까. 오빠가 혼자 찾아 봐. 우린 요기 2층 디브이디 방에 가 있을게.”
“이름만 갖고 어떻게 찾냐? 하여튼 알았어. 그럼 거기 가서 기다려.”
“고마워 오빠. 내가 전화할까?”
“아니. 내가 일 끝내고 전화할테니까. 영화나 한편 때리고 있어. 야한거 보고 흥분하지 말고. 그리고 중간에라도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전화나 문자 보내.”
“응. 나 간다. 유란아. 빨리 들어가자.”
“응. 조심하세요. 오빠.”
기집애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건물 속으로 부리나케 뛰어 들어갔다. 건물 계단 중간쯤에 올라서야 안심이 되는지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선 열심히 손을 흔들어 댄다.
머리를 만지는 척 하며 손을 한번 들어주고는 일단 오락실로 향해 본다.
‘요새도 오락하는 애들이 있나?’
우선 오락실로 향하면서 길거리에 있는 기집애들을 유심히 살폈다. 뭐 봐서는 알수도 없지만 눈요기겸 해서다.
기집애들을 빤히 쳐다보면 대부분이 고개를 숙이지만 그렇지 않은 애들도 있다.
먼저 시비를 걸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는 애들. 그런 애들 위주로 찾아보면 금방일 것이다.
‘근데 이름을 물어볼수도 없으니 참 지랄같은 경우였다.’
여름이라 날씨까지 푹푹 쪘다. 가방이라도 홍미 고 기집애한테 맡기고 올걸 그랬다.
가방을 한번 고쳐매며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니 기집애들 다섯명이 상가 건물의 입구에 치마를 입고서 쪼그려 앉아 다리까지 벌리고 있었다. 바닥으로 침을 탁탁 뱉는 것이 한 눈에 봐도 날라리 기집애들이었다.
지나가는 학생들 중 여학생이 있으면 빤히 쳐다보는 것으로 보아 시비거리나 흥밋거리를 찾고 있는 듯 했다.
저 기집애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집애들한테 시선을 똑바로 고정하고 걸어가다보니, 마침 고개를 돌리던 기집애 하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껌을 짝짝 씹으며 빤히 노려보는 폼이 절대 눈을 먼저 깔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 엿같다.
하필 약한 기집애들에게 시비를 걸어야 하다니. 남자 새끼들이면 귀빵새 한방 먼저 날리고 ‘눈깔 안내리 깔어?’라고 말하면 게임 끝인데 말이다.
에이 씨바. 코앞에까지 이르렀는데도 저 기집애가 눈을 안 내리깔고 도전적으로 빤히 쳐다본다. 결국 내가 돌려버렸다. 에이 씨. 할짓 못된다.
이 기집애들한테 시비걸어 권미라를 불러내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포기해야겠다.
지은 죄가 있다보니 따가운 눈초리가 옆을 지나치는데도 느껴진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옆에서 기집애 목소리가 들린다.
“야! 너 줄무늬 교복. 너 나한테 꽂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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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기운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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