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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27 549회 0건
덫 (1)
- 불라불라



" 우라지게 덥네, 씨팔....... "

사실 정말 날이 더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눈을 바늘로 찔러대는 햇살이 괜한 성질을 긁어대고 있었다.

봄을 막 지나 여름으로 들어가는 계절의 입구치곤 분명 뜨거운 태양이 거리 위를 내리쬐는 중이었다.
먼지로 뿌옇게 보이는 차창은 틴팅이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제 몫을 하고 있지 못했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열기를 잔뜩 느끼며 운전대에 양손을 얹은채 바라보는 거리엔 벌써부터 짧은 치마의 여자들이 종종걸음으로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 좆또..... 빌어먹을 에어컨!"

10년이 다되가는 자동차는 슬슬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중고로 산 뒤 10년이니 그전에 얼마나 더 되었는지는 아마 나에게 팔아먹은 중개상이나 알고 있을려나.
하긴 그놈도 돈만 챙기면 되는 일이었으니 그딴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샤라락...

긴생머리의 또다른 여자가 머리를 휙 젖히며 앞으로 지나갔다.
탱탱한 가슴의 볼륨과 잘록한 허리가 하늘거리는 원피스 아래로 탱탱한 엉덩이가 눈 하나가득 채웠다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어쩜을 군침을 흘려야할 여인의 육체.
젊음이 넘치는 그녀들의 몸뚱아리들이 또 다른 짜증을 불러왔다.

" 씨바......... "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마도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은 조금 뜨거운 기온을 보이는, 날씨 좋은 초여름의 지금을 즐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화창한 하늘과는 정반대로 완전 엉망으로 걸레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던 일이었다.
그래도 운좋게 동창을 만나서 줄이 닿은 건수라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긴 그시기에 얼굴이 가물거리는 동창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서 엘도라도로 가는 지도를 던져줄때부터 의심을 했어야 했다.

미친.....
병신새끼.....

허탈함에 웃음만 나고 있었다.

백화점 납품?
푸하하하......
미친 새끼.....
그렇게 당하고도 또 당하냐?
이 병신 새끼야....
나가 뒈져....
크흐흐흐.....

생각할수록 웃기는 일이었다.
사기당하려면 멀쩡한 눈도 멀어버리고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고 백치가 된다더니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내가 딱하고 당해버리니 헛웃음만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다가 녀석에게 던져준 것이 얼마던가.

크흐흐.....
크하하하......






순간 처음 이 길로 접어든 때가 생각났다.
돈을 벌려면 결국 장사를 해야된다고 생각하고 직장을 때려쳤다.
아버지에게 받아낸 돈까지 합쳐서 투자한 아이템은 마스크팩이었다.

피부미용, 특히 얼굴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세태를 비추어볼때 가장 값싸게 지갑을 열 수 있는 미용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는지는 이제 가물가물 거린다.
아마도 술자리에서 돌고 돌던 이야기 속에서 툭 던져진 화두였을 것이다.
보통은 그냥 지나가버릴 그저그런 이야기 중 하나였을 소재가 나에겐 마치 한줄기 혜성이 정수리를 치고 지나간 기분이었다는 것은 아마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짬짬이 회사를 다니면서 타당성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계약건을 위해 갔던 일본 출장에서도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미쳐있었던 상황이기도 했지만 성공이라는 실타래의 끝을 잡은 기분이었다.

퇴직금과 두루두루 모아본 자본을 계산해볼때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계산을 끝내고 바로 사업을 열기 위한 준비를 들어갔다.
온갖 미친 마케팅을 기획하면서 제품에 대한 준비는 일본의 선행제품을 비교해가면 한국사람들에게 잘 먹힐만한 것으로 집중해서 준비했다.

오이팩 같은 것을 하는 시기에 과연 될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생수가 처음 나왔던 것이 결국 하나의 상품으로 자리잡았던 전례를 생각하며 이것도 당연히 될 아이템이라는 자기최면을 걸었다.

결국 선두주자의 힘이라는 것을 믿고 주사위를 던졌다.

길거리에 의문의 광고판을 걸고 플랜카드와 색색의 애드벌룬 가운데 스마일 마크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보며 대박을 예감했었다.

한방이다!
한방!

금방이라도 돈방석에 올라타는 상상에 온몸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연 뒤는 영 시원찮았다.
생소한 품목이라서 그럴까?
가격도 저렴하게 책정해서 실로 껌값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데도 구매를 망설이고 있었다.
물론 호기심에 구매하는 물량도 분명 있었지만 계산보다 그 곡선이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해운대 모래사장이냐....
젠장.....

초조함이 계속 되던 시간들.
아마 그때만큼 피말리던 시간을 없었을거야.....라고 회상하고 싶지만 하하..... 지금을 생각하면 어쩜 새발의 피정도일까나?
물론 그땐 정말 지옥 속 한가운데 화염 속에 꼬치구이가 되어 돌려지는 기분이었다.
공장에서 최소물량으로 생산을 하고 있지만 이미 재고가 창고를 가득 채워가고 경비는 쭉쭉 줄어들고 있었다.
독에 걸린 게임 내 캐릭터가 HP 막대가 팍팍 짧아지는 기분.
잔고가 0에서만 끝나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마이너스라는 옵션도 있었다.

돈방석은 커녕 빚더미에 올라앉아 장기라도 팔아야될지 모르는 미래가 코 앞까지 오고 있는 중이었다.

방법도 찾지 못한 채 망망대해에 떠도는 표류선의 선장이 된 기분으로 대책마련이 골머리를 썩고 있었던 중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구명줄이 내려져왔다.

한참 인기중에 방영되고 있던 시트콤에서 한 출연배우가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하느라 쓴 마스크팩이 바로 우리 회사의 제품이었다.
희극화하는 도구이긴 했지만 뒤 인터뷰에서 우리 제품에 대한 호평을 한 기사까지 덧붙여지면서 젊은 세대에게 줄기차게 팔려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10...
100....
1000.....
10000......

가속도의 법칙과 같이 판매고는 급상승 커브를 그려댔다.
절로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이후 비슷한 유사품이 나왔지만 이미 제품 등록을 마친 뒤라 대놓고 표절을 하지는 못하고 언저리만 두드리는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선두주자였다는 점이었다.

처음 사람들 뇌리에 박힌 상품은 우리회사의 제품이었다.
일본 시장에서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질과 상품성을 가졌음까지 입증되면서 정말 없어서 못 팔정도로 매상을 올렸다.

성공에 힘을 얻는 나는 다음 무기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때마침 한참 성정세를 열어가는 홈쇼핑 쪽에서도 어느새 나에게 손을 내미는 행운까지 거머쥐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러댔다.

실로 홈쇼핑의 성장세가 한달을 다르게 폭발적으로 커져가던 시기였다.
그곳을 통해 제2의 도약기를 마련한다면 아마도 이후는 탄탄한 고속도로가 내 앞으로 펼쳐질 것이 분명했다.

황토팩.머드욕을 당신의 집안에서 즐기자.
얼굴을 가꿔주는 자연의 힐링.....

속으로 수많은 슬러건들은 머릿속에서 정리해가면 제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하하......
정말 뒷통수를 여기서 제대로 맞을 줄이야......

홈쇼핑에서 계속 제품 스케쥴을 미뤄가면서 여러가지 추가사항을 조절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워낙 물량도 큰 건이었고 계속 황금시간대 편성을 이야기하며 그것에 걸맞는 사은품과 최상의 판매조건을 만들기 위한 조율이라고만 생각했었던 것이 어리석은 초보자의 낙관주의였다.

갑자기 닥친 계약파기.
이유는 판매 예상에 대한 선호도 조사가 극도로 저조하다는 것이었다.
고급화를 앞둔 마스크팩에 대한 황토팩 판매에 대한 선행조사를 수차례 했으나 홈쇼핑 입장에선 손해나는 장사라는 결론이었고 계약서 명시된 조항에 의해 계약을 무효화 한다는 것이었다.

의례적으로 들어가는 문구로만 생각했던 단서조항이 살아서 내 목을 날렸다는 것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때 순간 어느날밤 홈쇼핑 채널에서 보았던 방송하나.
그곳엔 내가 팔고자 했던 그 황토팩 제품이 화려한 조명가운데 입담 좋은 진행자와 알만한 얼굴의 유명인이 신바람 나게 판매를 하고 있었다.





"씨발.....크크크.... 개새끼들....."

세월이 지났지만 생각할때마다 이가 절로 갈리는 일이었다.
얼마나 이를 악물며 분을 참았는지 어금니가 나중에 시려서 치과에 갔더니 갈라져 금이 가있었다고 하더라.

술을 먹고 품에 칼을 품고 관련자들 죽여버리겠다고 밤거리를 마구 헤매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법에도 호소했지만 결국 돈있는 자의 편이라는 것만 재확인 했을 뿐이었다.
홈쇼핑 출시에 신나서 제품기획등을 통채로 넘긴 것이 치명적이었다.
이미 제품 출시에 대한 기획등을 모두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민사소송은 마치 도박판을 보는 기분이었다.
차고 있는 돈주머니가 작은 놈들은 결국 제풀에 떨려지는 법이었다.
수년의 재판 속에서 결국 패소처리로 모든 것은 사라졌다.
처음 성공을 가져주었던 마스크팩은 이제 한물간 상품이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하자 수도 없이 되뇌이며 다시 공장을 돌려가며 재기를 꿈꿨지만 손 안에 잡혔던 엘도라도가 허무하게 먼저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이 계속 어른거리면서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울어져버린 사업은 서서히 무너져버리고 있었다.
나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마음을 잡지못하고 세상을 떠돌았다.
그러나 그와중에서 나의 유일한 조력자였던 와이프가 회사를 지탱하며 버텨서 망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훌쩍 자라는 아들내미의 모습이 마음속 상처를 봉합하면서 광기를 잠재울 수 있었다.
그리고 재기를 위한 몸부림을 다시 치기 시작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일을 당한 것이었다.

이런 젠장할......
땅 위로 갓 올라온 지렁이한테 소금을 한움큼 뿌리고는 오줌을 갈겨대는 꼬라지 아니던가.

그 옛날 광기가 다시 활화산처럼 터져나온 기분이었다.
며칠째 백화점들을 돌아다니며 사기친 동창새끼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분명 다시 똑같은 사기를 치기 위해 나타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당연 녀석의 모습을 보일 리 없고 나만 오목거울 앞에 서서 일그러지는 자신의 자화상을 세상에 쏟아내고 있었다.
햇살이 밝으면 밝을 수록 사람들의 화사한 모습이 거리를 채워갈수록 말이다.

씨바.....
좆가튼 세상.....
좆가튼 새끼들.......

나는 좌석 옆에 있는 공간으로 손을 뻗었다.
매끈한 감촉이 손가락에 느껴지는 쭉 뽑아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금속재질의 납작한 플라스크 안에서 타들어갈 듯한 독주가 목구멍을 따라 내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도저히 안마시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이었다.

" 크흑........ "

절로 입술을 훔치며 신음소리와 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젠장.......

순간 독주때문인지 폭발한 것 같은 감정의 탓인지 알 수 없는 물기가 눈가를 적시는 가운데 가늘게 뜬 시야사이로 새로운 여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척봐도 비싸보이는 옷차림의 여자가 또각또각 소리라도 날거 같은 하이힐을 신고는 주자창 입구 쪽 출구로 걸어나오는 중이었다.
핸드백하며 악세사리들이 명품으로 도배질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차림새가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리호리한 옷품 사이로 감출 수 없는 관능적인 몸매가 절로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도발적인 시스룩 스타일의 검은 옷.
그 아래 불룰 튀어나온 젖가슴이 팅팅 소리라도 날 것처럼 흔들리고 가느다란 허리 아래 타이즈 타입의 백바지가 매끈한 하체의 곡선을 따라 춤추듯 걷고 있었다.
바지가 접혔다 펴지는 삼각주가 순간순간 불룩해지는 것이 마치 벌거벗은 여인의 비너스언덕을 직접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런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
앳된 모습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30대가 넘어보이는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

분명 기억의 어디선가 남아있는 얼굴이었다.

"어엉? 설마!!!"

난 순간 숨을 크게 들이키며 커지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한 채 창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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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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