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제 1 부 : 한발...또 한발-
‘얘, 너 요즘 뭐하니’
‘그냥 놀지 뭐.....’
난 톡질도 아니고, 뜬금없이 걸려 온 선배의 전화에 부끄러움도 없이 대답해 버렸다.
‘아효, 지지배 하고는...너 같은 고급진 노동력이 삥삥 놀아서야 나라꼴이 뭐가 될려나 모르겠당..’
‘아니, 언니는 왠 나랏일 걱정? 요즘 더위 먹었수?’
아무리 취업난으로 매일 매일이 면접인 상태로 살고는 있었어도, 날 가리켜 고급 어쩌고 들먹이는 사람들을 보면, 내 능력은 고사하고, 어찌 그리 빙충맞고 멍청하게시리, 낙방의 세월속에 그 흔하다는 개목걸이 하나 못차고 살아가느냐는 비아냥으로 들렸기에,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가 좋은 일자리 하나 소개시켜 줄까 해서...’
‘언니, 하루 하루가 편한 적 한번 두 없었지만, 언니가 선배니까 한마디 하는데, 뭐 열정을 갖고 덤벼야 되는 다단계 어쩌구 이러믄, 나 언니 전번, 연락처에서 강퇴시킨다...알쥐?’
‘까탈스런 년...내가 어디 그런데 널 소개한다디? 잠자코 이따가 너네 집 앞의 그 카페 있잖니? 그 주인 눈매가 번들번들허니 힘께나 쓸것 같던데....거기서 보자..내가 시간은 톡으로 할게.’
난 오전에 면접이 있고, 오후에는 다음번에 제출해야 할 회사를 상대로 면접 준비와 포트폴리오 재구성을 해야 했지만, 속는 셈치고, 이 따분한 심정, 달래기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긴 했다. 한,두차례 비가 쏟아져, 대기는 조금씩 식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꽉 끼는 면접복장으로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이 더위속에 장시간을 견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면접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훌렁훌렁 벗어 재끼고, 반바지에 면티 차림으로 덜래덜래 약속 장소로 나갔다.
‘수현아....여기’
선배는 짧게 커트로 마무리한 모습이 매끈하게 보였다. 이른바 강남 산다면 다들 저렇게 머리쯤은 하고 다닌다는 그 스타일....다들 취업이냐, 학업 연장이냐를 놓고 설전아닌 설전을 벌일때도, 자신은 그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처럼, 무덤덤 하던 그녀....
‘선배는 걱정 없수?’
‘걱정? ㅎㅎ..하면 뭐하고, 또 있다한들, 대가리 싸맨다고 일쎈치락두 해결되디? 막말루 니 남친, 5분만 더 흔들어 주십사하는 거, 소원 풀길 있디? 깔깔깔...싸면 싸는 거지, 뭘 더 바라겠니? 다 생긴대로, 지 꼴려 잡순대로 사는 거이야. 내 의지대로 살아지는 거는 아니지만.....’
난 선배가 부러웠던 것은 그런 와중에도, 그 외모에서 남모를 고고함이 항상 존재했다는 사실 이었다. 누가 물어도 이거 동대문 OO꺼라고 말을 털면서도, 난 언제나 선배의 옷은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식만 없었다 뿐이지, 아는 사람만이 알아본다는 라벨 없는 디자인 명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시급 어쩌구하는 걸로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에도, 손에 들려진 핸폰은 언제나 최신의 것을 쥐고 있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더워두 그렇지...빤쭈 보일라...’
‘언니, 이거 속살 보이라고 입는 거거덩요? 남친 손가락 편하게 드나들라는 개오픈 패션...’
‘암튼, 조동아리 하고는....’
선배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농담과 세상 사는 얘기, 그리고 음담패설로 깔깔대며, 전화로 뜬금없이 제안했던 취직에 관한 화제는 좀처럼 꺼내려 들지 않고 있었다.
‘일자리는 뭔데?’
목마른 사람이 생수 먼저 깐다는 시셋말처럼, 난 이렇게 뜸을 들이는 선배의 자세가 사실 처음부터 짜증이 나고 있기는 했다. 선빵만이 덜맞는 길이다 라고 어렸을 적부터 몸으로 배워 온 나이기에, 도를 아십니까 씨부리면서 도도하건 말건, 고지대에서 고고하게 살건 말건, 난 궁금한 건 일단 묻고 봐야 직성이 풀렸으니까.
‘너 앱세션 이라고 들어는 봤니?’
‘앱세션?’
난 세션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뉘앙스에 사실 귀가 솔깃하기는 했다.
‘글쎄....저마다 갖고 있는 핸폰에 앱들이야, 지 각각인데, 그 앱들끼리 뭐 비밀리에 짜고 치는 고스톱 처럼 주인장 모르게 똥꾸녕 맞춰보고, 바이러스도 짬짬이 초대하는... 뭐 그런 기능적인 은밀한 공조.... 뭐 이따구 얘기유?’
‘아니, 그게 아니고, 앱의 정보와 기능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기술적으로 토론도 하고, 서투른 초심자들에게 앱의 효용성을 가르쳐 주기도 하믄서, 서로 상부상조하는 그런 소셜미팅 같은 부류라고 보면 돼.’
‘아, 앱 홍보 알바유?’
‘아니, 그게 아니고....이휴 답답해...이건 뭐 꼭 제목을 갖다 붙여야 되는 리포트 제출이 아니라니깐.’
‘그럼, 나나, 언니나 간에 지 핸폰 하나 건사 못할까? 앱 깔고 쓰다가 수틀리믄, 이런 개뼉다구 같은 앱을 왜 만들어 지랄이냐구 사용후기나 ??올리면 되는 사람들인데, 누가 이제 그런 거 물어보고 고맙다 할 사람이나 있수?’
‘있지......’
난 선배가 제안하는 일자리의 형태를 콕 찍어 규정할 수가 없었다.
‘설레발이 길면 발기력도 떨어진다는 옛말 있잖니? 나랑 차타고 오피스나 가자. 시간 되지? 얘, 얼릉 나가자, 저 느글느글한 눈매의 주인, 눈깔 뿐이 아니라, 아랫도리도 카운터 뚫고 나올 지경으루, 너 꼬나본다....으이그 눈깔들은 있어가지고설랑.. ’
재학 시절처럼 선배는 그 우아떨기를 내려 놓질 않고 있었다.
‘어머, 아까 오다 보니까, 이런 명차가 개떡 같은 우리 동네에 어찌 주차 되있나 했는데, 그게 언니 차였수?’
‘인생 뭐 있니? 기냥 뽑았지. 근데. 보닛에 항상 달려 있던 그 놈의 표범 형상이 없어서 내가 짝퉁 아니냐고 했다는 거 아니니? 그래서 일부러 30만원 주고 그 표범 대가리 사다가 붙였다. 깔깔깔....그래도 그 대가리가 있어야 맘이 놓인다니깐....’
난 선배의 실없는 개그같은 코드를 뿌리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누군가는 로망으로 꿈꿔왔던 상황을 그저 문방구에서 종이비행기 사듯이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그 망할 놈의 여유...그걸 흉내낼 수도, 따라할 수도 없다는 한계의식은 언제나 그녀와 나와의 격차를 한껏 벌려놓는 찝찝함이 있었기에...
‘여긴 오피스라고 하기엔....’
서울 근교를 벗어나지도 않고서, 그냥 교통체증으로 간선도로가 막힌다 싶었는데, 어느새 도착한 곳은 거목과 수풀로 우거진 주택가였다. 주변에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고, 그저 요새와 성을 방불케하는 거대한 저택들로만 이루어진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살긴 사네....한 밤중에 소주라도 땡기면 어쩌지?’
‘걱정두 자꾸하면 병된다. 얼릉 자동차 키 주고 사오라고 하면 되지....얘두 참.’
하긴 이제까지 살면서, 내 손이 내 딸이라고, 내 비루한 육신쪼가리락두 움직거리지 않으면 될일이 하나도 없는 내 신세에 비하면, 이런 별천지에 사는 인간들의 사고 방식은 오히려 단순하고 가볍기까지 했다.
‘내려...넌 이제부터 손님이 아니고, 리더야 알았쥐?’
리더? 난 이해가 되질 않고 있었다. 취직 얘기가 무슨 리더니, 조직의 끝발, 이런 것으로 증폭되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고, 취직이 된다손 쳐도 상하 규율과 조직의 명분이 시퍼런 회사 체제내에서 곧바로 리더라는 직함이 거명된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사기발이 농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언니, 요즈음은 이런 곳에서 다단계 교육하우? 수준 업글됐넹...’
‘어디가서 다단계 얘기 꺼내지도 마라. 오늘 너의 리더수당은 이미 책정되어 있으니, 집에 갈때 바우쳐 꼭 챙기고, 시간당 시급 어쩌구 하는 촌티나는 단어 조심하구....’
난 슬슬 겁이 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러다 새우잡이에게 마취되어서 끌려가는 건 아닌지, 아니면, 이 선배의 꼬임에 빠져 씹구녕 벌창이나 나버리는 이른바 쌕파티에 벌칙녀로 초대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서 와요...’
그런데,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엇나가고 있었다. 가정집으로 보이는 곳의 실내는 진짜 오피스를 방불케하는 시설과 인력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홀 중앙의 대형 원탁에는 열개 정도 되는 안락의자가 배치되어 있고, 각 좌석마다 마이크와 노트북 PC가 회의를 바로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중요 직책에 있는 분들의 전략회의나 외부와 차단된 밀담을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로 보여지고 있었다.
‘국장님,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제 학교 후배 입니다. 이름은 수현이고요, 지난번 말씀드렸던 그 몇몇 회사의 인터뷰 진행과정에 있었습니다.’
난 선배의 그 첫인사에 뒤통수가 쪼개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한 마디도 건넨 적이 없는 나의 회사 면접 상황을 환히 꿰뚫고 있는 선배의 얼음장 같은 얼굴을 다시 볼 수 밖에 없었고...
‘수현양 반가워요, 우리끼리는 쉽게 부를 수 있는 닉이 필요한데 어떤게 좋을까?’
나를 이 장소에서는 다른 아바타로 만들 작정인가 싶어 난 발끈하며 대답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좋은 이름을 놔두고 닉네임은 쫌 그렇네요.’
‘그래? ….아버님은 교사 출신이셨다가... 교내의 다른 선생과 눈이 맞아 이혼하시고, 홀어머니랑 셋이 살았는데..., 어머님은 알코홀릭에, 도박 빚도 있고...., 하나 있는 여동생은 클럽 죽순이...그래도 부모님이 남긴 이름 석자가 자랑 스러운가?’
면접도 아닌 것이, 서 있던 내 무릎이 휘청하며 풀려가고 있었다. 그저 몇 초의 주절거림으로 대변되는 우리 가족사의 찌질함...
‘언니...이기 무쉰....’
선배는 나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질 않고 그 중앙의 국장이란 남자에게 대답을 날렸다.
‘수현이니까...수지가 어떨까요? 어르신 들끼리는 수지라는 명칭에 향수 같은 것이 있지 않으신지요?’
‘오호, 그래.....수지...수지 좋아....수지 큐 하면 바로 남자들의 로망이기도 했지.’
아무래도 난 이곳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고 있었다. 이 호화스런 밀담의 장소를 채우는 인간들이, 현재 상종가를 때리고도 모자란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빗댄 것도 아니고, 이제는 전설이라며 TV에서 흑백다큐의 한장면에서나 외쳐지던 어느 코메디언의 그 수지 큐우.....으이그...
‘역시 조실장의 센스는 알아줘야 해. 그럼 수지양, 오늘 미팅 전에 업무브리핑을 받고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 국장이란 자 역시 대대한 인물인 걸로 보이고 있었고, 끊임없이 서면 결재와 핸폰 통화로 무언가를 진행시키고 마무리하는 모습은 여느 대기업의 상황실을 방불케 하고 있었으나, 정작 어르신 들이 입실하고 나면 그 국장은 어디론가 자리를 비우는 것이 통례적이었다.
‘선배....도대처 여기 뭐하는 곳이유?’
‘알면 다친다...모르면서 너 할 일 정신 없이 하다보면 쌓이느니 바우쳐요, 바꾸다 보면 돈 된다는 말씀...’
‘근데, 그 바우쳐는 뭐유? 이건 뭐 방송국도 아니고 설랑....’
‘여긴 일터야, 개목걸이는 없어도 네가 이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는 너의 모습이 인공지능으로 컨트롤 되는 인식 프로그램에 의해서, 모든 행동과 업무결과에 따라 바우쳐의 액수가 산정되어서 네가 이 방을 나가는 순간, 네 손에는 오늘의 근무비가 정산되어 바우쳐로 주어지는 거지. 넌 그걸 들고 은행이나 그 어떤 금융기관을 가도 특A급으로 환산해 줄거야. 외화로 받고 싶으면 외화로 받아도 되고, 안전금고에 바우쳐만을 따로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환전해도 되고....뭐 그런거지.’
‘그럼 내가 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이력서에 한 줄 집어넣을 수 있다는 말이우?’
‘호호호, 아마, 넌 이제 더 이상 레쥬메(이력서)가 필요치 않을 걸?’
자신만만한 선배의 설명은 나의 모든 질문을 흡입하면서 압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자. 여기서는 어르신들의 눈길에 부담을 주는 옷을 입어서는 안돼. 그리고 네가 이 방안에 들어선 순간 부터는, 어르신들의 질문이 영어면 영어, 일본어면 일본어, 서반아어면 서반아어로 대답해야 한다는 점...잊지말고...네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바닥이 다 드러날때 까지 학술적이고 심도있는 질문이 가해지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열정적으로 답변할 것....쉽지?’
그러나, 그건 쉽다고 대답할 꺼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뭐에 홀린듯이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는 본능도 접어둔 채, 스스로 입고 온 옷을 개인 옷장에 넣으며, 복장을 바꿔가고 있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만하면 됐수?’
‘옷빨 하고는....정말 바디가 탱글탱글하니 실밥 하나 잘 못 엮었으믄 다 터지겠다.’
선배는 나의 엉덩이를 탱하며 때리더니 앞장서서 중앙홀의 옆에 있는 소 회의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나와 같은 복장의 여성 9명이 스튜어디스 뺨치는 각선미로 무릎을 모아 앉아있었다.
‘자, 여러분... 주목하세요. 오늘 부터 앱세션의 열명 인원이 동시에 서비스에 들어갑니다. 다 여러분 하기 나름이지만, 참석하시는 어르신들의 클레임이 있다거나 컴플레인이 접수되면, 오늘 산정된 바우쳐 만큼만 지급되고, 고용계약은 자동 해지 되는 점... 잘 숙지하고 계시죠?’
‘네...’
모두가 깎듯하고, 대답들조차 어느 누구 하나 튀는 법도 없이 일치된 성량으로 대답하는 그녀들...
소름마저 돋고 있었다.
‘질문이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질문은 언제나 저에 대한 호칭, 조실장님을 꼭 호명한 뒤에... 아셨죠?’
난 당황한 어조로 다시 실문을 했다.
‘네....저....조실장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여, 이곳에서 일하는 것 이외에 다른 지역은 없나여? 뭐출장이나, 사외 연장 근무지 같은거...’
‘질문은 언제나 명료한 내용과 정리된 어순, 단어들을 사용하시고, 딱딱하지 않게 응대하셔야 합니다. 군대는 아니지만, 질문하시는 분이 다나까를 원하시면 거기에 부응하는 것은 바람직 하여도, 고딩이나 덜 떨어진 중딩들처럼 그랬는데여, 어쩌구 하는 혀짧은 소리나 오버된 애교언어 등은 금기 입니다. 아셨죠?’
난 요즘 유행하는 귀싱꿍꿔떠 같은 말은 어떨까요 라고 물어 보려다 꼴깍 침을 삼켜 버렸다.
‘사외 근무라....,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을 벗어난 자발적 근무 의지는, 모두 여러분의 개인적인 선택일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도 여러분이 져야 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 어르신과 관련된 목격담, SNS유포 및 가쉽발동 등이 보고되면 가차없이 고용계약이 해지된다는 점, 유념 하셔야 할 겁니다.’
나를 이 자리로 데리고 오기까지, 예전과 다름 없이 여유있고 친근해 보이던 선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내 앞에는 서슬이 시퍼런 기숙사 여사감이 한명 버티고 훈시를 하는듯이 보이고 있었다.
‘난 도대체 여기 왜 와 있는 거지?’
글쎄...나 스스로도 알 수는 없었다.
-제 2 부 : 그들의 존재 -
열명의 인원은 어디서들 뽑아 왔는지, 앱세션 서비스가 시작되고 나서, 속으로 나 같은 년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르신들의 대화 도중에 뜬금없이 이태리의 가곡을 주문하면 그 중에 어느 하나는 반드시 그에 화답 하듯이, 장렬한 목청으로 토해내는 아리아 한자락....TV에서 뻑하면 튀어 나오는 걸그룹의 섹시댄스를 주문해도 곧바로 이어지는 춤사위와 고혹적인 바디라인들...역사면 역사, 의학이면 의학, 인문학이면 인문학, 그녀들이 나누어 제공하는 모든 지식들은 정말 방대하고 치밀하기 이를데 없었으며, 중앙홀에서의 근무는 이름하야 피를 말리는 면접의 연장선상과도 같았다. 그러나, 더더욱 신기한 것은 그런 요구가 행하여 질때, 어디 숨겨놓은 표시도 없는 곳에서 배경음악이 자동으로 흘러 나온다는 것이 었다.
‘근데, 요즈음 살인이 만연하는 사회행태에 대해서 무슨 조치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요?’
3 번에 앉으신 분의 질문 이었다.
‘항상 있어오던 건데.....무슨 조치가 필요할까? 누구 빅데이터 전문가 없나?’
그건 내 분야 였다.
‘살인에 대한 사회상의 집단적 의사흐름은 어떻게 변하고 있나?’
난 그런 고차원 적인 주제는 몇 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데이터를 취합해야 하는데, 한 며칠 걸릴 거라는 대답을 하려다가, 저 멀리서 눈총을 날려대는 선배의 으름장 때문에, 기어이 학부 리포트에 삽입했던 부분을 머릿속에서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살인이라는 키워드로 연상되어지는 대중의 의사흐름은 대표적으로 열 두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분포범위를 나타내는 것이 불안, 욱조절, 호신술, 말세론, 치안력 부재, 싸이코패스....’
‘아, 그런 거 밖에 없나?’
뭐 빅데이타가 그렇지 않나 말이다. 사람들의 손과 귀를 통해, 혹은 버튼과 마우스질을 통해 축적된 데이타들은 그 숫자와 통계의 미묘함이 나타내 주는 변주곡임에는 분명했지만, 그 안에서 절세의 진리나 해결법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기에 말이다.
‘그렇게 궁금하시면 핸폰에 다 있는 인터넷을....’
난 그 말을 할뻔 했다. 그러나, 선배는 이미 나의 의중을 꿰뚫고 있기에, 건너편에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난 멍청하게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르신이란 분들이 그 흔한 핸펀을 하나도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중요하고 대단해 보이는 일들을 처리하는 분들은 정작 핸드폰이 없었고, 그 주변의 떨거지인 우리들만 문명의 이기에 노예처럼 살고 있는듯 보였다.
‘자넨 오늘 새로 온 친구 같은데, 이름이 뭐지?’
‘네, 수혀, 아니 수지 입니다.’
‘오, 그래? 수지...좋아...입에 착착 붙는군...하긴 내 입에 붙어봐야...’
둘러선 어르신들의 입가에 미소가 돌고 있었고, 나는 나에게 붙여진 수지라는 닉네임이 어느 정도 반은 먹어주고 들어가는 구나 하면서 내심 기쁘기까지 했다.
‘잠시, 세션을 멈추지...중요한 전언이 들어와서...’
그 사이 핸폰 통화를 하면서 홀을 열고 들어오는 국장이, 서비스걸 들과 선배를 향해 나즈막한 명령을 날렸다. 우리들은 또다시 홀 옆의 소회의실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러 옮겨갔고...
‘여기서 오래 일했어요?’
난 뻐근한 어깨를 뒤틀어 스트레칭을 해보면서, 옆에 앉은 다른 서비스걸에게 나즈막하게 물어보았다.
‘오늘 처음이죠? 서로 개인의 신상에 대해서는 일체 질문금지에요. 외부에서도 우연히 마주친다 해도 아는 척 해서는 안되고요. 그럴 일도 없겠지만....간단히 요약하자면, 저희들 할 일은 살아있는 앱지원 서비스에요. 참석하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전자관련기기를 소지하실 수가 없어요. 좌석 앞의 노트북도, 반은 저분들 감시기능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이 오피스를 앱세션이라고 하는 거에요. 고3이 따로 없어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공부는 또 얼마나 해야 하는데요. 아까 그 3번분 있잖아요? 질문이 뭐 교수님들 오픈북 시험은 저리 가라에요...’
‘수현아,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니?’
선배는 홀 안에서와 다르게 부드러운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그 서비스걸도 선배의 친근한 태도에 놀랐다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옆자리를 비워버렸다.
‘선배, 아니 조실장님...이거야 원....난 알다가도 모르겠수....이걸로 뭐가 돈이 된다는 건지...’
‘얘, 생각해 보렴, 남들이 쓴다고 하니까 어르신들도 덩달아 들고는 다니셨을 줄 몰라도, 핸폰의 앱들을 자기 손으로 직접 깔고 기능을 활용하는 분들,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인터넷 서핑? 웃기시네, 트위팅? 너 영화나 드라마에서 거물들이 지가 썰 푸는 것처럼 나불대면, 속기사들이 좇같은 문구도 이쁘게 고쳐설랑은 졸나 적어대는 거 본 적있지? SNS도 그딴식으로 하고 있다는 거 아니니? 그저 오만 년 보지 그림이나 젖퉁이 사진에 매달려 핸폰이 핸폰이 아닌거지. 게다가 모르는 사람이랑 이권에 관련되어 전번이락두 주고 받다가 스파이 앱이나 깔려서, 나중에 세무조사나 디지게 걸려대고...암튼 그거에 호되게 당하시고들 만든 게 앱세션이야. 이 오피스 보기보담 대단해. 유리창은 아무리 밖에서 도청용 초음파를 때려도, 소용이 없는 특수 유리로 되어 있고, 그 홀 안에서는 도감청이 거의 불가능한 기기들로 꽉 차 있어. 다만 서비스 걸들만이 그 대대한 정보를 듣고 있는 셈이구....그러니 불미스런 조짐이 보였다 싶으면 바로 자르는 거, 당연한 거 아니겠니?’
난 듣는 것 만으로도 어안이 벙벙했다.
‘선배, 난 별루 아는 것두 없는데, 왜 여기루 불렀수?’
선배는 눈매를 살그머니 지그리며, 답했다.
‘넌 머리랑 몸매가 좋잖니? 깔깔깔...’
하긴 내가 머리는 잘 몰라도, 한 몸매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확실히 안다. 남친이 언제나 헉헉대며, 너는 더이상 감당이 안된다며, 풀곤죽이 된 채, 내 위에 엎어지더라도 내 골반은 남친의 좇물을 끝까지 털어 빨려는 심사처럼, 한도 끝도 없이 털럭댔으니까.
‘너..휴우...언젠가 그 태권브이 강철보지로...휴우... 체크카드는 고사하고 큰일 한번 낼거다’
라며 혀를 차던 일은 난 정확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소회의실에 다시 램프가 번쩍였다. 세션 서비스가 다시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나도 다른 서비스걸들 처럼 복장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자니,
‘넌 그냥 앉아 있어. 그리고, 나를 따라와.’
조용한 어조로 내 귀에 속삭이는 선배의 명령에, 방을 나가며 나를 힐끔대는 다른 이들을 그냥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비우고 국장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수지양, 기본 검증점수?!...아주 좋아....유니폼에 주름이 안지는 유일한 인원이라고 점수들을 아주 높게들 주셨네. 하긴 남의 떡이 커보이긴 하지....하여간 조금 있다가 조실장의 지시에 따르도록...’
국장이란 자식은 핸폰 통화가 습관인 듯, 고새 통화를 트고 쪼로록 방을 나가는 것이었다. 난 선배에게 이끌려 복도 끝의 방으로 인도 되었다. 방안은 대낮인대도 불구하고 침침한 조명으로 가득했고, 저 멀리 한 사람이 돌아선 자세로 창밖을 응시한 채,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데려왔습니다. 그럼....’
훅 하니, 내 앞에서 자리를 비우는 선배 덕에 나는 뻘쭘 그 자체였다.
‘긴장하지 말고, 앉아요.’
‘네’
그는 부드러운 저음의 소유자 였고, 그 목소리에는 강인한 결단력 같은 것이 느껴졌으며, 훤칠한 키는 인식이 되었어도, 방안의 조명 덕분에 적당한 나이를 가늠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매우...혼란스럽죠?’
‘아니, 뭐...’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저런 일들은 뭐하러 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또 누구 이기에 특별히 뽑혀 왔나 뭐 그런....’
‘네, 사실 그렇습니다.’
‘말 편하게 해요. 이건 앱세션 서비스가 아니니까.’
난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 했다. 나의 의문 사항에 대한 공감도가 일치한다는 것에 혹시나 같은 편이 아닌가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 나의 긴장감을 위로하고 있었다.
‘쉽게 가 볼까요?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권력과 보이지 않는 권력, 두개가 있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힘이라고 믿고 있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보면 정의가 쉬우려나? 가끔 우리의 실체에 대해서 음모론이 들썩일 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입니다. 좀체로 우리와 일반이 접촉하는 일은 드무니까. 어떤 이는 비밀첩보 요원을 빗대어, 우리의 존재를 영화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건 영화일 뿐이다 라고 사람들의 사조를 유도하는 드라이빙도 알고보면, 우리의 할 일이기도 합니다. 우습죠? 이런 이원화된 세상에 그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저 밖의 서비스 걸들은 아직 이 일의 실체를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보여줄까요?’
그는 음성으로 무언가를 지시하자, 벽에 숨에 있던 대형 디지털 TV가 스르륵 내려오고, 화면이 켜졌다.
‘보이죠?’
난 입이 쩌억 벌어졌지만 곧바로 다물지 못했다.
‘밖에 있는 어르신들, 어려운 일들을 하고 계시긴 하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인간이고, 남자들이고, 숫컷들인데...일분 일초가 아깝고 안전한 배출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들이니, 앱세션 안에 저런 서비스도 기본인 것입니다. 수현양은 저런 서비스에 적합치 않은 것 같아, 일부러 이런 세션에서는 제외시킨 겁니다. 아시겠어요?’
난 대답을 못하고 화면에 눈길이 박힌 채, 꼼짝 못하고 있었다. 아홉 명의 서비스 걸들은 모두 탁자 밑에 들어가 있었고, 예전과 다름 없이, 어르신들은 앉아 있는 자세로 토의 하고, 지시하고, 결정을 내리고 있었지만, 아랫도리가 벗겨져 있는 것은 모두가 동일 했다. 게다가 펠라치오만 해주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옆으로 기어 나와 바디라인을 통째 내주며, 쭈물탱이도 과감하게 지원하고 있었으며, 가끔 원탁에 엎드리게 해서 뒤치기를 하며 회의를 하는 분들도 눈에 띄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세션서비스가 끝난 뒤에는 복장정비가 이루어지고, 다시금 평상적인 앱세션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놀랄것 없어요. 이런 상황과 장소에서 섹스가 빠진 앱세션은 뭔가 기능적 미비를 의미하는 거 아니겠어요? 핸폰으로 야동보는 거나 섹스팅의 제의같은 거...그대도 잘 알고 계실테니....젊은 사람들도 이제는 섹스가 인생을 좌우하는 모멘트가 아니라고 빅데이타에 나오고 있지 않나?’
그건 맞는 말이었다. 손 한번 잡으면, 입술 한번 훔치면, 내 인생 책임져 하며, 온 생애를 무모하게 올인하던 윗세대와 다르게, 우리들은 이제 섹스는 일종의 맛집 기행처럼 변형된 것이 사실 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상대를 옭아맬수도, 상대가 나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섹스의 문제는, 그 중요도가 결혼과 연애에 있어서 빅데이터의 분포에서조차 점차 하향 추세로 가고 있었으니까....
‘저를 여기 따로 부르신 이유는....’
난 그게 제일 궁금했다.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 내 성격 때문이었다.
‘홀에서 뭐 느낀 거 없나요?’
‘한 좌석이 비는 것 같던데여...’
‘네, 맞아요.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분이 사사로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우습잖아요? 항상 회의 모습을 모니터링 하시긴 하지만....조 실장이 천거한 분을 보고 싶다고도 하시고...’
‘그럼, 그 분을 제가 옆에서 보필해야 하나요?’
‘보필까지야....그냥 그 분께서 가장 힘들어 하시는 상황에서 말동무나 되어 드리면 되죠.’
‘제까짓게 무슨 말동무를....’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작업입니다. 자신의 뒤에는 아무도 버티고 있지 않고, 내가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그 순간의 고통을 무마시켜주는 것은, 의외로 곁에 있는 사람과의 편한 일상적인 대화라고 그러시더군요.’
‘저 같이 어린 사람의 얘기가 무슨 도움이.....’
‘그럼 그냥 추임새라고 할까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어떤 내용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은 휘발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말로 한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뭐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오늘.....중요한 얘기는 충분히, 차고 넘치도록 들은 것 같은데요.’
‘여기서 들은 것들은 이미 보통의 사람들도 예측 가능하고, 당연히 그리 될 것이다 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 뿐이지만, 그 분의 문제는 다릅니다.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문서화 되고, 사실화 되어 가는 프레임은 극적이고 드라마틱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금기사항들 뿐이지요.’
나는 이 오피스란 곳에 오고 나서 느껴지는 두려움보다, 그 분이라고 하는 존재 앞에서 더더욱 외소화되는 나 스스로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아, 아, 너무 겁먹을 거 없어요. 그렇게 위험한 분도, 저 홀에 있는 어르신들처럼 동물적 욕구로 점철된 분도 아니니까.’
난 사실 섹스로 야기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왠지 자신이 있었다. 똥꼬가 다수의 좇대가리로 벌창이 나거나, 소화불량이 되도록 배부르게시리 부카케를 당한다랄지, 돌림빵으로 인해 씹구녕이 너덜거린다든가 하는 저급한 섹스와류에 피해를 당하지 않고서야, 완타치 맞짱에는 상대를 내 보지로 때려누일 자신이 평소에도 만만했기 때문 이었다.
‘알겠습니다.’
난 뭘 알았는지도 말할 자신이 없었지만. 당돌하게 알았다는 대답을 했다.
‘그 인지상태가 변함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제 작은 소망입니다.’
그 자는 톤의 변화도, 감정의 굴곡도 없이, 건조한 어조로 내 말을 받았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나는 그의 뜻하지 않은 존대에 찬물을 끼얹은 듯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제 3 부 : 개미지옥 -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기계음만이 가득하고, 더욱 어두운 방이었다. 방안에는 이름도 모를 생명유지 장치가 가득했고, 삑삑대는 확인음이 연속적으로 흘러나와 리듬을 맞추는 것처럼 들렸다. 커다란 침대에는 상반신을 벗고 있는 한 남자가 입 안에 호스를 물고 방안에 들어서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모셔왔습니다.’
‘퓌휴....수고했네...부를 때까지는.....퓌휴...’
침대 위의 인물은 입 안에 물고 있던 호스를 뱉어내면서 말을 잇더니, 다시 호스를 물고 호흡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목 밑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인 모양 이었다.
‘도와드릴까요?’
‘퓌휴...괜찮아요. 훈련이 되어 있어서.....내가 실측을 해보니, 내 폐가 다시금 호흡곤란을 느끼는 최대치가 1분 17초 정도 되더군요. 그 이상, 씨부렸다가는.....퓌휴....뇌에 산소공급이 문제가 되어 기절할 것이고, 그 다음이야....뭐...도움은 필요 없어요...퓌휴...’
‘제 이름은...’
‘퓌휴.....알고 있어요. 수현양이라고 했죠?......퓌휴....나는 닉을 별로 않 좋아해서.....퓌휴...’
난 그 사람과의 대화에 적응해가고 있었던지, 그가 입에 문 호흡 관을 뱉고, 다시 물면서 숨을 고르는 그 과정에 맞추어, 머릿속의 단어를 축약해서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고 있었다.
‘다스베이더 같네요....아참....제가...실수를.’
‘퓌휴....다스베이더?.....퓌휴....좋아요....누가 나에게 농담을 거는 사람은 당신이 첨인데?...퓌휴...’
한 동안 웃음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인지, 그 미소는 썩을대로 썩은 버전, 그 자체였다.
‘제가 할 일을 말씀해 주시면...’
‘퓌휴....할 일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하죠. 간병인도 다섯명이 넘죠...퓌휴....내가 보기보다 깔끔을 떨어서....퓌휴....똥꼬에 똥이 낀채로 1분도 못 있어요...퓌휴....느끼냐구요?...퓌휴...코는 아직 활동하니까....퓌휴...’
‘그래도 이렇게 놀면서 돈 벌면 보지털 빠진다고 누가 그래서...’
‘퓌휴...조실장이 참 좋은 분을 데리고 왔네....퓌휴....잠시만요...저 일 좀 하구요....퓌휴...’
그는 호스를 다시 입에 물고 허공을 향해 눈을 서너번 깜빡이는 듯 싶었다. 그러자, 그의 시선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각도로, 천장에 스파이더 맨처럼 붙어있던 모니터 세개가, 동시에 덤블링을 하는 것처럼 회전하며 그의 앞으로 자리하고, 그는 그 놈의 퓌휴를 몇십번이나 하면서도 답답해 하는 표정도 없이 무엇인가를 녹음하고, 결정하고, 마무리 했다. 그러한 과정이 어느 정도 수행되고 나서, 몇번의 눈 깜박임이 이어지고, 다시금 눈 앞의 모니터는 멋진 회전을 거쳐 천장으로 다시 들러 붙었다.
‘피휴....별일 아니에요....그냥 소설 같은 거죠....퓌휴....이제는 스토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된겁니다...퓌휴....스토리를 실제처럼 만드는 기술과 제작진은...퓌휴...얼마든지 있어요. 그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퓌휴...이미 남들 것을 베껴쓰다 사라진 지 오래고...퓌휴...난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하 소설을 집필 한다고 보면 되요...퓌휴....아무도 하지 않은, 한 적이 없는...퓌휴.....’
전신이 마비된 소설가의 비상한 광기에 세상의 흐름이 놀아나고 있다고? 난 믿을 수가 없었다.
‘퓌휴...난 그렇다고 작가는 아니에요....퓌휴....완벽하게 구사하는 언어는 5개 정도....퓌휴....참...언어는 그 구조를 이해하면 새롭게 배워도...퓌휴...별로 어렵지 않아요.....세상의 모든 언어는 동일한 모체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퓌휴...그 동질적인 기능과 구조를 알고 있다면 다 거기서 거기에요....퓌휴...멘사 아니냐는 눈초리네?...퓌휴....그게 자신의 지식에 대한 절대적 보증이 되나요?...퓌휴....’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었으며, 그는 쉼없이 얘기하면서도, 끝없이 침착했고, 연속적으로 나를 감동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퓌휴....서비스걸들을 자르는 건 내가 하죠...퓌휴...그들이 저 무지한 어르신들을 향해...진짜 인 것처럼 거짓 정보를 진짜처럼 들이대는 것을 내가 알았을 때...퓌휴....’
그가 평소에도 모니터링 한다는 말은, 자신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되는 과정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걸들의 앱세션이,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진솔한 정보의 제공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는 선생님께 드릴 게 별로 없는데...’
‘퓌휴...선생님.......퓌휴..퓌휴..퓌휴..질문 하나 할게요....내가 수현 양에게 선생님으로 지칭되어야 하는 이유 세가지만 말해 줄 수 있어요? 퓌휴...’
그는 선생님이란 고리타분한 단어에 발끈 했던지, 연거푸 호스를 물었다 놨다 하며, 호흡을 골랐다.
닝기리, 븅신 새끼가 성질 머리 하고는...아참, 머리만 살았댔지?
‘퓌휴....당신의 선생님이란 호칭은...퓌휴....나의 신체적 제약 상황에 대한 적절한 호칭을...퓌휴... 이 상황에서 신속하게 탐색하지 못한...퓌휴....당신 능력의 미천함 때문 입니다...퓌휴...’
난 슬슬 따분해 지고 있었다. 그래, 니기미 그 조둥아리로 씨부려 봐라, 니가 대갈빡만 살았지, 사지육신 돌땡이 되서 뭐 할 수 있겠냐? 난 그가 조금씩 우스워지고 있었으니까.
‘퓌휴....할 일은 별로 없어요...퓌휴...나의 의사결정이 어땠는지...퓌휴...솔직하게 말해 주면 되니까...퓌휴....방금 전에 무슨 일을 지시했는지 알아요?....퓌휴....아까의 앱서비스 장면 중에....퓌휴...뒷치기 좋아하는 양반의...퓌휴...상대역을 수현씨로 바꿨어요....퓌휴...도저히 조작이나 포샵질이라고 알 수 없는 ...퓌휴....최고 경지의 고수의 손에 의해....퓌휴....’
‘그건...범죄에요....범죄...당신은 쏘시오 패스에다...정신병자, 똥깨, 멍청이, 멍게, 해삼...’
그러나, 난 그 순간, 나의 핸폰을 찾았지만 별 무소용 이었다. 이 오피스에 들어서면서 퇴근시에 돌려주기로 하고 반납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퓌휴....자 보세요...수현씨의 핸폰 화면을...퓌휴...’
어느새 천장에서 곡예를 하며 들쳐 내려온 모니터에는 내 핸폰의 화면이 대문짝하게 보이고 있었다.
‘%너 그럴 줄 알았다%
%노상 인터뷰 어쩌구 할때 너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 이제사 하는 말, 어디 보지가 너 하나 뿐인줄
알았나 본데, 웃기셔..나두 너 말고 지금도 꿰차고 있다이.^^;%
%벌창 보지를 못 알아본 내가 븅시인..%
%다신 연락 때리지 마라, 잉?%
%너랑 한 톡질이 아깝다고라%
%쒸발, 마징가 강철보지, 일낼 줄 알았다....끄읕%’
정신없이 나를 향해 털어내는 남친의 독설....과연 남친의 핸폰으로 전송되었을, 그의 모조 동영상이 범죄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싶은 후회와 함께, 남친의 치부가 바로 수면 위로 부상하는, 그 적나라함이 나의 입을 다물게 하고 있었다.
‘퓌휴...이건 장난이죠...퓌휴...내가 하는 일은 이런 일이 아닙니다....퓌휴...’
‘그럼 더 큰 범죄를 저지르시나요?’
‘퓌휴....아뇨....수현씨를 위해서 한 일이죠...퓌휴...저런 인간은 벌 줄 가치도 없어서...퓌휴...’
그건 맞는 말 이었다. 개립?..나 하나도 감당이 안된다고 하던 쒸발넘이 나 말고도 기집년들과 씹빠빠를 돌린다고? 난 기가 막혔다.
‘퓌휴...이제 저를 위해 뭘 돕고 싶으세요?...퓌휴...아무것도 하실 수 있는 건 없어요....퓌휴...’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 알면서도, 저를 지목하셨죠? 왜죠?’
‘퓌휴...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억지로 만들 수는 있지만...퓌휴...그 영속성은 보장할 수 없죠...퓌휴...제가 수현씨에게 부탁하는 것은 진실입니다....퓌휴....보시다시피....퓌휴..저는 제 머리로 할 수 있는 것 밖에는 모든 것이 정지된 환자죠...퓌휴...그나마 제 머리가 없었다면..퓌휴...이미 관으로 들어갔겠죠....퓌휴....제가 하는 일도 많은 짐이 존재하죠....퓌휴....스트레스라고 불러도 좋고...퓌휴...죄책감 같은 것일수도 있고....퓌휴...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죠...퓌휴...제가 만든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어..퓌휴...굴러가고 난 후의 결과를..퓌휴...0.1프로도 틀림이 없이 예측하고 있다는 점이죠....퓌휴...저를 점장이나 예언자 처럼 보는 어르신도 있지만....퓌휴...그것은 통계학이고, 물리학이자, 더 나아가 수학의 일부일 뿐입니다...퓌휴...경제와 역사와 문화, 기술등이 혼재되어 있어도...퓌휴...아인슈타인도 찾고자 했던....퓌휴..만물의 공통 방정식의 해법을 제가 알고 있다는 것 말고는...퓌휴...제가 일반인과 다를 것은 없다고 봐야죠...퓌휴....걸그룹이요?...퓌휴...저도 참 좋아합니다....퓌휴....수현씨의 몸매....퓌휴,퓌휴,퓌휴...갖고 싶죠...퓌휴..얼마전에 수술도 했습니다...퓌휴..보형물을 넣어서....제 음성신호에 따라 발기가 됩니다....퓌휴....정자는 생산이 되지만 항상 뇨관이 삽입되어 있어서...퓌휴...그걸 맞춰 섹스하기는 불가능하고...퓌휴...그냥 오줌처럼 배출되기에....퓌휴...그걸 도와 주신다면...퓌휴...영광일 겁니다....퓌휴...’
‘그럼, 섹스가 필요하단 말씀이세요, 아님, 뭐 그 잘나신 머리를 대신해 줄...이를테면 종족보존 이런 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퓌휴.....퓌휴....퓌휴....그냥 저는...퓌휴.....사람 냄새가 그리운 겁니다.....퓌휴...’
난 순간, 조금은 창피함을 느꼈다. 그 자를 불구자로 몰아가며, 나의 사고 자체가 경직되고,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똥덩어리 보듯 했던 나의 치졸함이 갑자기 스멀대며 등줄기를 기어갔기에....
‘전 아무래도 여기가 잘 않맞는 것 같아요. 어차피 남친도 쫑 났고....오늘 일당이나 잘 쳐주시면, 입 닫고 조용히 살죠 뭐...’
‘퓌휴....세상은 독을 먹고 살아가고...퓌휴...그 독으로 망해가기도 하죠....퓌휴....사람들은 그 독에 목숨을 걸고 있고....퓌휴....수현씨가 어서 취직이 안되면...퓌휴...지금의 가계부채는...퓌휴...정확히 이십칠일 후에는 신용불량의 딱지가 붙게 되죠...퓌휴....그러나, 돈으로 당신의 의지를 사고 싶진 않습니다....퓌휴....’
난 일어서려고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가 다시 털썩 의자에 눌러 앉고 말았다. 여기서 더 이상 벗어날 길은 없는 것 같았다. 이미 내 발목이 깊숙히 빠져들어 가는 걸 느끼고 있었음에도, 난 도망갈 생각을 잊고 있던 멍청함이 우습기만 했다.
-제 4 부 : 인연의 끈-
그 사람과의 섹스는 간혹 나를 혼돈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나의 표정을 귀신 같이 읽고 있었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때면, 그 타이밍을 절묘하게 일치 시키면서, 발기력을 서서히 누그러뜨리는 것이 바로 그것 이었다. 마치 몇번의 경련과 더불어 내 안에서 서서히 몰락해 가는 왕국의 처절함을 맛보는 듯한 그 마무리...
‘좋았어?’
난 나날이 그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고 믿는 바보가 되어 가는 듯 했다. 섹스는 나에게 구원이었고, 동아줄 이었으며, 현실을 잊게 해주는 극약 처방 이었다. 선배의 말처럼 나에겐 이미 레쥬메를 써야할 대상도 시시해져 버린지 오래고, 골치 덩어리 엄마는 최고급 요양 시설로 보내 졌으며, 클럽 죽순이 였던 동생은 아무 걱정 없이, 지랄나게 돈만 쓰고 살면 되는 놈팽이 벼락부자의 세컨드 자리를 꿰차고 앉아 연락을 끊어 버린지가 한참 전이었다.
그는 내가 그의 좇을 빨아 주는 장면을 바라보며 좋아했다. 그것도 직접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방 안의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카메라로 제 3 자의 시각처럼 보여지는 좇빨기 영상을 좋아했다. 천장에서 내려온 모니터에는 내 타액에 번들 거리는 그의 좇이 화면 가득히 채워졌고, 그의 미묘한 음성신호는 세세한 기술과 훈련을 통해, 흡사 진짜 건강한 좇이 빨림으로 인해 서서히 발기되는 것 같은 보형물의 작동기법을 보이며 나를 감탄하게 했다. 그의 사기빨 이긴 했어도...
‘난 항상... 자세가 이거... 한개 라는 게 불만이야...’
그 사람도 그 의견에는 동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익숙해 졌고, 나름 그에게도 오르가즘 같은 형태의 떨림이 온 몸을 관통하는 상황도 있어 왔다. 그저 시체 처럼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 두 손 이었지만, 그가 극도로 나와의 합일점에 맹추격을 해올 즈음이면, 부르르 떨리는 경련이 그를 더욱 행복하게 하는 걸 보게 되기까지, 횟수가 그 원동력이라고 기억되지는 않았다.
‘퓌휴....그걸 사람들은....퓌휴....사랑이라고 하지...퓌휴...’
난 이제 그의 목소리보다 그 사이 사이에 추임새처럼 연이어진 그의 호흡을 더 사랑한다고 느껴왔다. 그의 일은 어려운 세상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과감한 결단력으로 환부를 칼로 난자하는 듯한 처절함도 엿보였다. 그러나, 나와 그와의 묘한 어울림은 일상적이었으며, 평범했고, 그로 인해 그는 또다시 어려운 세상과의 싸움에서 그 몸을 해가지고도 분연히 나가 싸우는 것이었다.
‘퓌휴....퓌휴....퓌휴...’
‘왜, 오늘은 이렇게나 빡빡하게 힘을 주실까?’
평소와 같은 유연한 보형기의 리듬이 오늘은 그냥 강직함으로 이어지고만 있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퓌휴...키스.....키스.....퓌휴...’
몇번 해보지 않았던 그 와의 키스...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어쩐 일로....
‘퓌휴....더 가까이...퓌휴.....더.....더...퓌휴.....’
그와 길게 키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1분 17초의 환상 인지도 모른다. 그가 짧지만 단호한 어조로 내 귀에 전한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난 그와의 키스가 평범하지 않아서 느낌이 별로 였다라든가, 아니면, 입술과 입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호흡관이 거추장스럽다든가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퓌휴....배가 부르기 전에 어서 도망가야 할거야....퓌휴.....그들이 나와 당신의 애기는 살려 줄 수 있어도, 당신은 아닐거야..퓌휴...퓌휴....퓌휴....어서....’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어르신 이란 인사들의 장기계획에는 나와의 적합성 여부도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에게 보형물 시술을 권하고, 나에게 그의 씨를 잉태시킨 후에, 역사의 흐름속에서 권력을 승계했던 추종자들이 저질렀던 옹립과 추대라는 짓거리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그 자들의 밑에서 수족처럼 움직이는 수 많은 조력자들은 자신들이 떠 받드는 그 사람의 혈족이 건재하다는 믿음이 보증수표처럼 필요했을 것이고, 나는 그것에 이용된 씨받이 였을 뿐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그 사람의 배려는 단 한가지, 나에게 밀담처럼 전할 수 있는 도망권유가 유일한 방법이었고.... 하지만, 도망? 어디로? 어떻게?.......
‘괜찮아요...이미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저들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저들에 의해 사육되고 있었다는 사실....’
난 평소와 다르게 그의 좇을 한번 더 입 안에 머금었다. 정말 건강 했더라면 평생을 내 입에 담은 채, 놀고 싶을 정도로 어여쁜 그의 좇이었다. 그는 내가 입안 가득히 그의 좇을 삼킬듯이 물고 웃어대는 키득거림을 향해, 썩은 미소이긴 해도 끊임없이 날려대고, 난 허리를 완곡하게 돌리면서 그의 호흡관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허릿짓으로 그의 눈 앞에 내 엉덩이를 활짝 열어 질질 흐르는 내 씹물을 보여주었다.
‘오늘은 그만...여기까지....내일 일찍 올게요....’
난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피스를 나왔다. 밖에는 평소처럼 나를 위한 승용차와 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가 바뀌었네?’
‘네, 사모님의 건강 때문에 뒷좌석이 좀더 넓은 모델로 바꾸라는 지시가 있어서요. 타시죠.’
기사가 열어 주는 뒷좌석은 어제 까지 타던 것보다 2배는 넓고 훌륭했다. 난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소음이 극도로 조절된 훌륭한 실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깅................’
역시나 운전석과 분리되어 내 좌석의 앞을 가로막는 방탄유리...난 당황하지도 않았고, 발버둥도 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머리 뒤켠의 스피커에서 그 3번 의자의 주인공 새끼가 너덜대는 음성으로 주절대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여자는 많아. 수지양이 아니더라도.....주인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사냥개는 필요가 없지. 그 사냥개를 그렇게 만든 암놈 사냥개를 죽여서라도 다시 사냥에 나갈 수만 있다면 말이야. 역시나 계집은 사람을 변화시킨단 말이야. 근데 평범한 것들은 변화를 시키고, 천재는 타락을 시켜버리니 그게 문제야. 묘비는 두개로 세워주지. 뱃속의 씨까지 추모해주는 의미로...그 동안 우리 위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줘서 고마웠네, 수우우우지이이....’
그래도 난 그들의 배려가 조금은 감사했다. 온몸이 뒤틀리는 맹독성 개스보다 수면 개스를 첨가해 주었으니 고마운 일 아닌가? 난 온 몸의 힘이 빠지고, 시력마저 흔들거리는 와중에 창밖을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잘 있어요. 내 사람....당신도 조금 있으면 뒤따라 오겠네........’
그 자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의 입 안으로부터 혀로 전달 받은 작은 바늘을, 그의 보형물에 출혈이 없도록 세로로 깊숙히 박아넣은 사실을....아마도 그들의 계획에 의해 또 다른 여인이 천거되고, 씨받이의 노력봉사를 이루고자 할 즈음, 보형물의 내부가 터지면서 그 유동액이 그의 혈관을 타고 흘러, 결국 천천히 안타까운 광경속에, 자신들이 애지중지 하던 사냥개가 죽어가는 광경을 목도하고 말 것이란 것을....
난 그 사람의 결심이 옳았다는 것을 지금 숨이 막혀오는 이 순간에도 믿고 있기에...
-完-
P.S.:환타지로 패러디 해본 정인숙 살해사건 이었습니다.
-제 1 부 : 한발...또 한발-
‘얘, 너 요즘 뭐하니’
‘그냥 놀지 뭐.....’
난 톡질도 아니고, 뜬금없이 걸려 온 선배의 전화에 부끄러움도 없이 대답해 버렸다.
‘아효, 지지배 하고는...너 같은 고급진 노동력이 삥삥 놀아서야 나라꼴이 뭐가 될려나 모르겠당..’
‘아니, 언니는 왠 나랏일 걱정? 요즘 더위 먹었수?’
아무리 취업난으로 매일 매일이 면접인 상태로 살고는 있었어도, 날 가리켜 고급 어쩌고 들먹이는 사람들을 보면, 내 능력은 고사하고, 어찌 그리 빙충맞고 멍청하게시리, 낙방의 세월속에 그 흔하다는 개목걸이 하나 못차고 살아가느냐는 비아냥으로 들렸기에,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가 좋은 일자리 하나 소개시켜 줄까 해서...’
‘언니, 하루 하루가 편한 적 한번 두 없었지만, 언니가 선배니까 한마디 하는데, 뭐 열정을 갖고 덤벼야 되는 다단계 어쩌구 이러믄, 나 언니 전번, 연락처에서 강퇴시킨다...알쥐?’
‘까탈스런 년...내가 어디 그런데 널 소개한다디? 잠자코 이따가 너네 집 앞의 그 카페 있잖니? 그 주인 눈매가 번들번들허니 힘께나 쓸것 같던데....거기서 보자..내가 시간은 톡으로 할게.’
난 오전에 면접이 있고, 오후에는 다음번에 제출해야 할 회사를 상대로 면접 준비와 포트폴리오 재구성을 해야 했지만, 속는 셈치고, 이 따분한 심정, 달래기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긴 했다. 한,두차례 비가 쏟아져, 대기는 조금씩 식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꽉 끼는 면접복장으로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이 더위속에 장시간을 견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면접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훌렁훌렁 벗어 재끼고, 반바지에 면티 차림으로 덜래덜래 약속 장소로 나갔다.
‘수현아....여기’
선배는 짧게 커트로 마무리한 모습이 매끈하게 보였다. 이른바 강남 산다면 다들 저렇게 머리쯤은 하고 다닌다는 그 스타일....다들 취업이냐, 학업 연장이냐를 놓고 설전아닌 설전을 벌일때도, 자신은 그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처럼, 무덤덤 하던 그녀....
‘선배는 걱정 없수?’
‘걱정? ㅎㅎ..하면 뭐하고, 또 있다한들, 대가리 싸맨다고 일쎈치락두 해결되디? 막말루 니 남친, 5분만 더 흔들어 주십사하는 거, 소원 풀길 있디? 깔깔깔...싸면 싸는 거지, 뭘 더 바라겠니? 다 생긴대로, 지 꼴려 잡순대로 사는 거이야. 내 의지대로 살아지는 거는 아니지만.....’
난 선배가 부러웠던 것은 그런 와중에도, 그 외모에서 남모를 고고함이 항상 존재했다는 사실 이었다. 누가 물어도 이거 동대문 OO꺼라고 말을 털면서도, 난 언제나 선배의 옷은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식만 없었다 뿐이지, 아는 사람만이 알아본다는 라벨 없는 디자인 명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시급 어쩌구하는 걸로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에도, 손에 들려진 핸폰은 언제나 최신의 것을 쥐고 있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더워두 그렇지...빤쭈 보일라...’
‘언니, 이거 속살 보이라고 입는 거거덩요? 남친 손가락 편하게 드나들라는 개오픈 패션...’
‘암튼, 조동아리 하고는....’
선배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농담과 세상 사는 얘기, 그리고 음담패설로 깔깔대며, 전화로 뜬금없이 제안했던 취직에 관한 화제는 좀처럼 꺼내려 들지 않고 있었다.
‘일자리는 뭔데?’
목마른 사람이 생수 먼저 깐다는 시셋말처럼, 난 이렇게 뜸을 들이는 선배의 자세가 사실 처음부터 짜증이 나고 있기는 했다. 선빵만이 덜맞는 길이다 라고 어렸을 적부터 몸으로 배워 온 나이기에, 도를 아십니까 씨부리면서 도도하건 말건, 고지대에서 고고하게 살건 말건, 난 궁금한 건 일단 묻고 봐야 직성이 풀렸으니까.
‘너 앱세션 이라고 들어는 봤니?’
‘앱세션?’
난 세션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뉘앙스에 사실 귀가 솔깃하기는 했다.
‘글쎄....저마다 갖고 있는 핸폰에 앱들이야, 지 각각인데, 그 앱들끼리 뭐 비밀리에 짜고 치는 고스톱 처럼 주인장 모르게 똥꾸녕 맞춰보고, 바이러스도 짬짬이 초대하는... 뭐 그런 기능적인 은밀한 공조.... 뭐 이따구 얘기유?’
‘아니, 그게 아니고, 앱의 정보와 기능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기술적으로 토론도 하고, 서투른 초심자들에게 앱의 효용성을 가르쳐 주기도 하믄서, 서로 상부상조하는 그런 소셜미팅 같은 부류라고 보면 돼.’
‘아, 앱 홍보 알바유?’
‘아니, 그게 아니고....이휴 답답해...이건 뭐 꼭 제목을 갖다 붙여야 되는 리포트 제출이 아니라니깐.’
‘그럼, 나나, 언니나 간에 지 핸폰 하나 건사 못할까? 앱 깔고 쓰다가 수틀리믄, 이런 개뼉다구 같은 앱을 왜 만들어 지랄이냐구 사용후기나 ??올리면 되는 사람들인데, 누가 이제 그런 거 물어보고 고맙다 할 사람이나 있수?’
‘있지......’
난 선배가 제안하는 일자리의 형태를 콕 찍어 규정할 수가 없었다.
‘설레발이 길면 발기력도 떨어진다는 옛말 있잖니? 나랑 차타고 오피스나 가자. 시간 되지? 얘, 얼릉 나가자, 저 느글느글한 눈매의 주인, 눈깔 뿐이 아니라, 아랫도리도 카운터 뚫고 나올 지경으루, 너 꼬나본다....으이그 눈깔들은 있어가지고설랑.. ’
재학 시절처럼 선배는 그 우아떨기를 내려 놓질 않고 있었다.
‘어머, 아까 오다 보니까, 이런 명차가 개떡 같은 우리 동네에 어찌 주차 되있나 했는데, 그게 언니 차였수?’
‘인생 뭐 있니? 기냥 뽑았지. 근데. 보닛에 항상 달려 있던 그 놈의 표범 형상이 없어서 내가 짝퉁 아니냐고 했다는 거 아니니? 그래서 일부러 30만원 주고 그 표범 대가리 사다가 붙였다. 깔깔깔....그래도 그 대가리가 있어야 맘이 놓인다니깐....’
난 선배의 실없는 개그같은 코드를 뿌리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누군가는 로망으로 꿈꿔왔던 상황을 그저 문방구에서 종이비행기 사듯이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그 망할 놈의 여유...그걸 흉내낼 수도, 따라할 수도 없다는 한계의식은 언제나 그녀와 나와의 격차를 한껏 벌려놓는 찝찝함이 있었기에...
‘여긴 오피스라고 하기엔....’
서울 근교를 벗어나지도 않고서, 그냥 교통체증으로 간선도로가 막힌다 싶었는데, 어느새 도착한 곳은 거목과 수풀로 우거진 주택가였다. 주변에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고, 그저 요새와 성을 방불케하는 거대한 저택들로만 이루어진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살긴 사네....한 밤중에 소주라도 땡기면 어쩌지?’
‘걱정두 자꾸하면 병된다. 얼릉 자동차 키 주고 사오라고 하면 되지....얘두 참.’
하긴 이제까지 살면서, 내 손이 내 딸이라고, 내 비루한 육신쪼가리락두 움직거리지 않으면 될일이 하나도 없는 내 신세에 비하면, 이런 별천지에 사는 인간들의 사고 방식은 오히려 단순하고 가볍기까지 했다.
‘내려...넌 이제부터 손님이 아니고, 리더야 알았쥐?’
리더? 난 이해가 되질 않고 있었다. 취직 얘기가 무슨 리더니, 조직의 끝발, 이런 것으로 증폭되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고, 취직이 된다손 쳐도 상하 규율과 조직의 명분이 시퍼런 회사 체제내에서 곧바로 리더라는 직함이 거명된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사기발이 농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언니, 요즈음은 이런 곳에서 다단계 교육하우? 수준 업글됐넹...’
‘어디가서 다단계 얘기 꺼내지도 마라. 오늘 너의 리더수당은 이미 책정되어 있으니, 집에 갈때 바우쳐 꼭 챙기고, 시간당 시급 어쩌구 하는 촌티나는 단어 조심하구....’
난 슬슬 겁이 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러다 새우잡이에게 마취되어서 끌려가는 건 아닌지, 아니면, 이 선배의 꼬임에 빠져 씹구녕 벌창이나 나버리는 이른바 쌕파티에 벌칙녀로 초대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서 와요...’
그런데,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엇나가고 있었다. 가정집으로 보이는 곳의 실내는 진짜 오피스를 방불케하는 시설과 인력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홀 중앙의 대형 원탁에는 열개 정도 되는 안락의자가 배치되어 있고, 각 좌석마다 마이크와 노트북 PC가 회의를 바로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중요 직책에 있는 분들의 전략회의나 외부와 차단된 밀담을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로 보여지고 있었다.
‘국장님,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제 학교 후배 입니다. 이름은 수현이고요, 지난번 말씀드렸던 그 몇몇 회사의 인터뷰 진행과정에 있었습니다.’
난 선배의 그 첫인사에 뒤통수가 쪼개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한 마디도 건넨 적이 없는 나의 회사 면접 상황을 환히 꿰뚫고 있는 선배의 얼음장 같은 얼굴을 다시 볼 수 밖에 없었고...
‘수현양 반가워요, 우리끼리는 쉽게 부를 수 있는 닉이 필요한데 어떤게 좋을까?’
나를 이 장소에서는 다른 아바타로 만들 작정인가 싶어 난 발끈하며 대답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좋은 이름을 놔두고 닉네임은 쫌 그렇네요.’
‘그래? ….아버님은 교사 출신이셨다가... 교내의 다른 선생과 눈이 맞아 이혼하시고, 홀어머니랑 셋이 살았는데..., 어머님은 알코홀릭에, 도박 빚도 있고...., 하나 있는 여동생은 클럽 죽순이...그래도 부모님이 남긴 이름 석자가 자랑 스러운가?’
면접도 아닌 것이, 서 있던 내 무릎이 휘청하며 풀려가고 있었다. 그저 몇 초의 주절거림으로 대변되는 우리 가족사의 찌질함...
‘언니...이기 무쉰....’
선배는 나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질 않고 그 중앙의 국장이란 남자에게 대답을 날렸다.
‘수현이니까...수지가 어떨까요? 어르신 들끼리는 수지라는 명칭에 향수 같은 것이 있지 않으신지요?’
‘오호, 그래.....수지...수지 좋아....수지 큐 하면 바로 남자들의 로망이기도 했지.’
아무래도 난 이곳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고 있었다. 이 호화스런 밀담의 장소를 채우는 인간들이, 현재 상종가를 때리고도 모자란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빗댄 것도 아니고, 이제는 전설이라며 TV에서 흑백다큐의 한장면에서나 외쳐지던 어느 코메디언의 그 수지 큐우.....으이그...
‘역시 조실장의 센스는 알아줘야 해. 그럼 수지양, 오늘 미팅 전에 업무브리핑을 받고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 국장이란 자 역시 대대한 인물인 걸로 보이고 있었고, 끊임없이 서면 결재와 핸폰 통화로 무언가를 진행시키고 마무리하는 모습은 여느 대기업의 상황실을 방불케 하고 있었으나, 정작 어르신 들이 입실하고 나면 그 국장은 어디론가 자리를 비우는 것이 통례적이었다.
‘선배....도대처 여기 뭐하는 곳이유?’
‘알면 다친다...모르면서 너 할 일 정신 없이 하다보면 쌓이느니 바우쳐요, 바꾸다 보면 돈 된다는 말씀...’
‘근데, 그 바우쳐는 뭐유? 이건 뭐 방송국도 아니고 설랑....’
‘여긴 일터야, 개목걸이는 없어도 네가 이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는 너의 모습이 인공지능으로 컨트롤 되는 인식 프로그램에 의해서, 모든 행동과 업무결과에 따라 바우쳐의 액수가 산정되어서 네가 이 방을 나가는 순간, 네 손에는 오늘의 근무비가 정산되어 바우쳐로 주어지는 거지. 넌 그걸 들고 은행이나 그 어떤 금융기관을 가도 특A급으로 환산해 줄거야. 외화로 받고 싶으면 외화로 받아도 되고, 안전금고에 바우쳐만을 따로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환전해도 되고....뭐 그런거지.’
‘그럼 내가 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이력서에 한 줄 집어넣을 수 있다는 말이우?’
‘호호호, 아마, 넌 이제 더 이상 레쥬메(이력서)가 필요치 않을 걸?’
자신만만한 선배의 설명은 나의 모든 질문을 흡입하면서 압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자. 여기서는 어르신들의 눈길에 부담을 주는 옷을 입어서는 안돼. 그리고 네가 이 방안에 들어선 순간 부터는, 어르신들의 질문이 영어면 영어, 일본어면 일본어, 서반아어면 서반아어로 대답해야 한다는 점...잊지말고...네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바닥이 다 드러날때 까지 학술적이고 심도있는 질문이 가해지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열정적으로 답변할 것....쉽지?’
그러나, 그건 쉽다고 대답할 꺼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뭐에 홀린듯이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는 본능도 접어둔 채, 스스로 입고 온 옷을 개인 옷장에 넣으며, 복장을 바꿔가고 있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만하면 됐수?’
‘옷빨 하고는....정말 바디가 탱글탱글하니 실밥 하나 잘 못 엮었으믄 다 터지겠다.’
선배는 나의 엉덩이를 탱하며 때리더니 앞장서서 중앙홀의 옆에 있는 소 회의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나와 같은 복장의 여성 9명이 스튜어디스 뺨치는 각선미로 무릎을 모아 앉아있었다.
‘자, 여러분... 주목하세요. 오늘 부터 앱세션의 열명 인원이 동시에 서비스에 들어갑니다. 다 여러분 하기 나름이지만, 참석하시는 어르신들의 클레임이 있다거나 컴플레인이 접수되면, 오늘 산정된 바우쳐 만큼만 지급되고, 고용계약은 자동 해지 되는 점... 잘 숙지하고 계시죠?’
‘네...’
모두가 깎듯하고, 대답들조차 어느 누구 하나 튀는 법도 없이 일치된 성량으로 대답하는 그녀들...
소름마저 돋고 있었다.
‘질문이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질문은 언제나 저에 대한 호칭, 조실장님을 꼭 호명한 뒤에... 아셨죠?’
난 당황한 어조로 다시 실문을 했다.
‘네....저....조실장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여, 이곳에서 일하는 것 이외에 다른 지역은 없나여? 뭐출장이나, 사외 연장 근무지 같은거...’
‘질문은 언제나 명료한 내용과 정리된 어순, 단어들을 사용하시고, 딱딱하지 않게 응대하셔야 합니다. 군대는 아니지만, 질문하시는 분이 다나까를 원하시면 거기에 부응하는 것은 바람직 하여도, 고딩이나 덜 떨어진 중딩들처럼 그랬는데여, 어쩌구 하는 혀짧은 소리나 오버된 애교언어 등은 금기 입니다. 아셨죠?’
난 요즘 유행하는 귀싱꿍꿔떠 같은 말은 어떨까요 라고 물어 보려다 꼴깍 침을 삼켜 버렸다.
‘사외 근무라....,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을 벗어난 자발적 근무 의지는, 모두 여러분의 개인적인 선택일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도 여러분이 져야 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 어르신과 관련된 목격담, SNS유포 및 가쉽발동 등이 보고되면 가차없이 고용계약이 해지된다는 점, 유념 하셔야 할 겁니다.’
나를 이 자리로 데리고 오기까지, 예전과 다름 없이 여유있고 친근해 보이던 선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내 앞에는 서슬이 시퍼런 기숙사 여사감이 한명 버티고 훈시를 하는듯이 보이고 있었다.
‘난 도대체 여기 왜 와 있는 거지?’
글쎄...나 스스로도 알 수는 없었다.
-제 2 부 : 그들의 존재 -
열명의 인원은 어디서들 뽑아 왔는지, 앱세션 서비스가 시작되고 나서, 속으로 나 같은 년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르신들의 대화 도중에 뜬금없이 이태리의 가곡을 주문하면 그 중에 어느 하나는 반드시 그에 화답 하듯이, 장렬한 목청으로 토해내는 아리아 한자락....TV에서 뻑하면 튀어 나오는 걸그룹의 섹시댄스를 주문해도 곧바로 이어지는 춤사위와 고혹적인 바디라인들...역사면 역사, 의학이면 의학, 인문학이면 인문학, 그녀들이 나누어 제공하는 모든 지식들은 정말 방대하고 치밀하기 이를데 없었으며, 중앙홀에서의 근무는 이름하야 피를 말리는 면접의 연장선상과도 같았다. 그러나, 더더욱 신기한 것은 그런 요구가 행하여 질때, 어디 숨겨놓은 표시도 없는 곳에서 배경음악이 자동으로 흘러 나온다는 것이 었다.
‘근데, 요즈음 살인이 만연하는 사회행태에 대해서 무슨 조치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요?’
3 번에 앉으신 분의 질문 이었다.
‘항상 있어오던 건데.....무슨 조치가 필요할까? 누구 빅데이터 전문가 없나?’
그건 내 분야 였다.
‘살인에 대한 사회상의 집단적 의사흐름은 어떻게 변하고 있나?’
난 그런 고차원 적인 주제는 몇 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데이터를 취합해야 하는데, 한 며칠 걸릴 거라는 대답을 하려다가, 저 멀리서 눈총을 날려대는 선배의 으름장 때문에, 기어이 학부 리포트에 삽입했던 부분을 머릿속에서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살인이라는 키워드로 연상되어지는 대중의 의사흐름은 대표적으로 열 두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분포범위를 나타내는 것이 불안, 욱조절, 호신술, 말세론, 치안력 부재, 싸이코패스....’
‘아, 그런 거 밖에 없나?’
뭐 빅데이타가 그렇지 않나 말이다. 사람들의 손과 귀를 통해, 혹은 버튼과 마우스질을 통해 축적된 데이타들은 그 숫자와 통계의 미묘함이 나타내 주는 변주곡임에는 분명했지만, 그 안에서 절세의 진리나 해결법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기에 말이다.
‘그렇게 궁금하시면 핸폰에 다 있는 인터넷을....’
난 그 말을 할뻔 했다. 그러나, 선배는 이미 나의 의중을 꿰뚫고 있기에, 건너편에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난 멍청하게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르신이란 분들이 그 흔한 핸펀을 하나도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중요하고 대단해 보이는 일들을 처리하는 분들은 정작 핸드폰이 없었고, 그 주변의 떨거지인 우리들만 문명의 이기에 노예처럼 살고 있는듯 보였다.
‘자넨 오늘 새로 온 친구 같은데, 이름이 뭐지?’
‘네, 수혀, 아니 수지 입니다.’
‘오, 그래? 수지...좋아...입에 착착 붙는군...하긴 내 입에 붙어봐야...’
둘러선 어르신들의 입가에 미소가 돌고 있었고, 나는 나에게 붙여진 수지라는 닉네임이 어느 정도 반은 먹어주고 들어가는 구나 하면서 내심 기쁘기까지 했다.
‘잠시, 세션을 멈추지...중요한 전언이 들어와서...’
그 사이 핸폰 통화를 하면서 홀을 열고 들어오는 국장이, 서비스걸 들과 선배를 향해 나즈막한 명령을 날렸다. 우리들은 또다시 홀 옆의 소회의실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러 옮겨갔고...
‘여기서 오래 일했어요?’
난 뻐근한 어깨를 뒤틀어 스트레칭을 해보면서, 옆에 앉은 다른 서비스걸에게 나즈막하게 물어보았다.
‘오늘 처음이죠? 서로 개인의 신상에 대해서는 일체 질문금지에요. 외부에서도 우연히 마주친다 해도 아는 척 해서는 안되고요. 그럴 일도 없겠지만....간단히 요약하자면, 저희들 할 일은 살아있는 앱지원 서비스에요. 참석하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전자관련기기를 소지하실 수가 없어요. 좌석 앞의 노트북도, 반은 저분들 감시기능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이 오피스를 앱세션이라고 하는 거에요. 고3이 따로 없어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공부는 또 얼마나 해야 하는데요. 아까 그 3번분 있잖아요? 질문이 뭐 교수님들 오픈북 시험은 저리 가라에요...’
‘수현아,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니?’
선배는 홀 안에서와 다르게 부드러운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그 서비스걸도 선배의 친근한 태도에 놀랐다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옆자리를 비워버렸다.
‘선배, 아니 조실장님...이거야 원....난 알다가도 모르겠수....이걸로 뭐가 돈이 된다는 건지...’
‘얘, 생각해 보렴, 남들이 쓴다고 하니까 어르신들도 덩달아 들고는 다니셨을 줄 몰라도, 핸폰의 앱들을 자기 손으로 직접 깔고 기능을 활용하는 분들,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인터넷 서핑? 웃기시네, 트위팅? 너 영화나 드라마에서 거물들이 지가 썰 푸는 것처럼 나불대면, 속기사들이 좇같은 문구도 이쁘게 고쳐설랑은 졸나 적어대는 거 본 적있지? SNS도 그딴식으로 하고 있다는 거 아니니? 그저 오만 년 보지 그림이나 젖퉁이 사진에 매달려 핸폰이 핸폰이 아닌거지. 게다가 모르는 사람이랑 이권에 관련되어 전번이락두 주고 받다가 스파이 앱이나 깔려서, 나중에 세무조사나 디지게 걸려대고...암튼 그거에 호되게 당하시고들 만든 게 앱세션이야. 이 오피스 보기보담 대단해. 유리창은 아무리 밖에서 도청용 초음파를 때려도, 소용이 없는 특수 유리로 되어 있고, 그 홀 안에서는 도감청이 거의 불가능한 기기들로 꽉 차 있어. 다만 서비스 걸들만이 그 대대한 정보를 듣고 있는 셈이구....그러니 불미스런 조짐이 보였다 싶으면 바로 자르는 거, 당연한 거 아니겠니?’
난 듣는 것 만으로도 어안이 벙벙했다.
‘선배, 난 별루 아는 것두 없는데, 왜 여기루 불렀수?’
선배는 눈매를 살그머니 지그리며, 답했다.
‘넌 머리랑 몸매가 좋잖니? 깔깔깔...’
하긴 내가 머리는 잘 몰라도, 한 몸매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확실히 안다. 남친이 언제나 헉헉대며, 너는 더이상 감당이 안된다며, 풀곤죽이 된 채, 내 위에 엎어지더라도 내 골반은 남친의 좇물을 끝까지 털어 빨려는 심사처럼, 한도 끝도 없이 털럭댔으니까.
‘너..휴우...언젠가 그 태권브이 강철보지로...휴우... 체크카드는 고사하고 큰일 한번 낼거다’
라며 혀를 차던 일은 난 정확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소회의실에 다시 램프가 번쩍였다. 세션 서비스가 다시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나도 다른 서비스걸들 처럼 복장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자니,
‘넌 그냥 앉아 있어. 그리고, 나를 따라와.’
조용한 어조로 내 귀에 속삭이는 선배의 명령에, 방을 나가며 나를 힐끔대는 다른 이들을 그냥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비우고 국장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수지양, 기본 검증점수?!...아주 좋아....유니폼에 주름이 안지는 유일한 인원이라고 점수들을 아주 높게들 주셨네. 하긴 남의 떡이 커보이긴 하지....하여간 조금 있다가 조실장의 지시에 따르도록...’
국장이란 자식은 핸폰 통화가 습관인 듯, 고새 통화를 트고 쪼로록 방을 나가는 것이었다. 난 선배에게 이끌려 복도 끝의 방으로 인도 되었다. 방안은 대낮인대도 불구하고 침침한 조명으로 가득했고, 저 멀리 한 사람이 돌아선 자세로 창밖을 응시한 채,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데려왔습니다. 그럼....’
훅 하니, 내 앞에서 자리를 비우는 선배 덕에 나는 뻘쭘 그 자체였다.
‘긴장하지 말고, 앉아요.’
‘네’
그는 부드러운 저음의 소유자 였고, 그 목소리에는 강인한 결단력 같은 것이 느껴졌으며, 훤칠한 키는 인식이 되었어도, 방안의 조명 덕분에 적당한 나이를 가늠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매우...혼란스럽죠?’
‘아니, 뭐...’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저런 일들은 뭐하러 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또 누구 이기에 특별히 뽑혀 왔나 뭐 그런....’
‘네, 사실 그렇습니다.’
‘말 편하게 해요. 이건 앱세션 서비스가 아니니까.’
난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 했다. 나의 의문 사항에 대한 공감도가 일치한다는 것에 혹시나 같은 편이 아닌가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 나의 긴장감을 위로하고 있었다.
‘쉽게 가 볼까요?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권력과 보이지 않는 권력, 두개가 있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힘이라고 믿고 있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보면 정의가 쉬우려나? 가끔 우리의 실체에 대해서 음모론이 들썩일 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입니다. 좀체로 우리와 일반이 접촉하는 일은 드무니까. 어떤 이는 비밀첩보 요원을 빗대어, 우리의 존재를 영화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건 영화일 뿐이다 라고 사람들의 사조를 유도하는 드라이빙도 알고보면, 우리의 할 일이기도 합니다. 우습죠? 이런 이원화된 세상에 그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저 밖의 서비스 걸들은 아직 이 일의 실체를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보여줄까요?’
그는 음성으로 무언가를 지시하자, 벽에 숨에 있던 대형 디지털 TV가 스르륵 내려오고, 화면이 켜졌다.
‘보이죠?’
난 입이 쩌억 벌어졌지만 곧바로 다물지 못했다.
‘밖에 있는 어르신들, 어려운 일들을 하고 계시긴 하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인간이고, 남자들이고, 숫컷들인데...일분 일초가 아깝고 안전한 배출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들이니, 앱세션 안에 저런 서비스도 기본인 것입니다. 수현양은 저런 서비스에 적합치 않은 것 같아, 일부러 이런 세션에서는 제외시킨 겁니다. 아시겠어요?’
난 대답을 못하고 화면에 눈길이 박힌 채, 꼼짝 못하고 있었다. 아홉 명의 서비스 걸들은 모두 탁자 밑에 들어가 있었고, 예전과 다름 없이, 어르신들은 앉아 있는 자세로 토의 하고, 지시하고, 결정을 내리고 있었지만, 아랫도리가 벗겨져 있는 것은 모두가 동일 했다. 게다가 펠라치오만 해주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옆으로 기어 나와 바디라인을 통째 내주며, 쭈물탱이도 과감하게 지원하고 있었으며, 가끔 원탁에 엎드리게 해서 뒤치기를 하며 회의를 하는 분들도 눈에 띄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세션서비스가 끝난 뒤에는 복장정비가 이루어지고, 다시금 평상적인 앱세션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놀랄것 없어요. 이런 상황과 장소에서 섹스가 빠진 앱세션은 뭔가 기능적 미비를 의미하는 거 아니겠어요? 핸폰으로 야동보는 거나 섹스팅의 제의같은 거...그대도 잘 알고 계실테니....젊은 사람들도 이제는 섹스가 인생을 좌우하는 모멘트가 아니라고 빅데이타에 나오고 있지 않나?’
그건 맞는 말이었다. 손 한번 잡으면, 입술 한번 훔치면, 내 인생 책임져 하며, 온 생애를 무모하게 올인하던 윗세대와 다르게, 우리들은 이제 섹스는 일종의 맛집 기행처럼 변형된 것이 사실 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상대를 옭아맬수도, 상대가 나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섹스의 문제는, 그 중요도가 결혼과 연애에 있어서 빅데이터의 분포에서조차 점차 하향 추세로 가고 있었으니까....
‘저를 여기 따로 부르신 이유는....’
난 그게 제일 궁금했다.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 내 성격 때문이었다.
‘홀에서 뭐 느낀 거 없나요?’
‘한 좌석이 비는 것 같던데여...’
‘네, 맞아요.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분이 사사로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우습잖아요? 항상 회의 모습을 모니터링 하시긴 하지만....조 실장이 천거한 분을 보고 싶다고도 하시고...’
‘그럼, 그 분을 제가 옆에서 보필해야 하나요?’
‘보필까지야....그냥 그 분께서 가장 힘들어 하시는 상황에서 말동무나 되어 드리면 되죠.’
‘제까짓게 무슨 말동무를....’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작업입니다. 자신의 뒤에는 아무도 버티고 있지 않고, 내가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그 순간의 고통을 무마시켜주는 것은, 의외로 곁에 있는 사람과의 편한 일상적인 대화라고 그러시더군요.’
‘저 같이 어린 사람의 얘기가 무슨 도움이.....’
‘그럼 그냥 추임새라고 할까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어떤 내용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은 휘발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말로 한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뭐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오늘.....중요한 얘기는 충분히, 차고 넘치도록 들은 것 같은데요.’
‘여기서 들은 것들은 이미 보통의 사람들도 예측 가능하고, 당연히 그리 될 것이다 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 뿐이지만, 그 분의 문제는 다릅니다.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문서화 되고, 사실화 되어 가는 프레임은 극적이고 드라마틱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금기사항들 뿐이지요.’
나는 이 오피스란 곳에 오고 나서 느껴지는 두려움보다, 그 분이라고 하는 존재 앞에서 더더욱 외소화되는 나 스스로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아, 아, 너무 겁먹을 거 없어요. 그렇게 위험한 분도, 저 홀에 있는 어르신들처럼 동물적 욕구로 점철된 분도 아니니까.’
난 사실 섹스로 야기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왠지 자신이 있었다. 똥꼬가 다수의 좇대가리로 벌창이 나거나, 소화불량이 되도록 배부르게시리 부카케를 당한다랄지, 돌림빵으로 인해 씹구녕이 너덜거린다든가 하는 저급한 섹스와류에 피해를 당하지 않고서야, 완타치 맞짱에는 상대를 내 보지로 때려누일 자신이 평소에도 만만했기 때문 이었다.
‘알겠습니다.’
난 뭘 알았는지도 말할 자신이 없었지만. 당돌하게 알았다는 대답을 했다.
‘그 인지상태가 변함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제 작은 소망입니다.’
그 자는 톤의 변화도, 감정의 굴곡도 없이, 건조한 어조로 내 말을 받았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나는 그의 뜻하지 않은 존대에 찬물을 끼얹은 듯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제 3 부 : 개미지옥 -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기계음만이 가득하고, 더욱 어두운 방이었다. 방안에는 이름도 모를 생명유지 장치가 가득했고, 삑삑대는 확인음이 연속적으로 흘러나와 리듬을 맞추는 것처럼 들렸다. 커다란 침대에는 상반신을 벗고 있는 한 남자가 입 안에 호스를 물고 방안에 들어서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모셔왔습니다.’
‘퓌휴....수고했네...부를 때까지는.....퓌휴...’
침대 위의 인물은 입 안에 물고 있던 호스를 뱉어내면서 말을 잇더니, 다시 호스를 물고 호흡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목 밑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인 모양 이었다.
‘도와드릴까요?’
‘퓌휴...괜찮아요. 훈련이 되어 있어서.....내가 실측을 해보니, 내 폐가 다시금 호흡곤란을 느끼는 최대치가 1분 17초 정도 되더군요. 그 이상, 씨부렸다가는.....퓌휴....뇌에 산소공급이 문제가 되어 기절할 것이고, 그 다음이야....뭐...도움은 필요 없어요...퓌휴...’
‘제 이름은...’
‘퓌휴.....알고 있어요. 수현양이라고 했죠?......퓌휴....나는 닉을 별로 않 좋아해서.....퓌휴...’
난 그 사람과의 대화에 적응해가고 있었던지, 그가 입에 문 호흡 관을 뱉고, 다시 물면서 숨을 고르는 그 과정에 맞추어, 머릿속의 단어를 축약해서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고 있었다.
‘다스베이더 같네요....아참....제가...실수를.’
‘퓌휴....다스베이더?.....퓌휴....좋아요....누가 나에게 농담을 거는 사람은 당신이 첨인데?...퓌휴...’
한 동안 웃음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인지, 그 미소는 썩을대로 썩은 버전, 그 자체였다.
‘제가 할 일을 말씀해 주시면...’
‘퓌휴....할 일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하죠. 간병인도 다섯명이 넘죠...퓌휴....내가 보기보다 깔끔을 떨어서....퓌휴....똥꼬에 똥이 낀채로 1분도 못 있어요...퓌휴....느끼냐구요?...퓌휴...코는 아직 활동하니까....퓌휴...’
‘그래도 이렇게 놀면서 돈 벌면 보지털 빠진다고 누가 그래서...’
‘퓌휴...조실장이 참 좋은 분을 데리고 왔네....퓌휴....잠시만요...저 일 좀 하구요....퓌휴...’
그는 호스를 다시 입에 물고 허공을 향해 눈을 서너번 깜빡이는 듯 싶었다. 그러자, 그의 시선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각도로, 천장에 스파이더 맨처럼 붙어있던 모니터 세개가, 동시에 덤블링을 하는 것처럼 회전하며 그의 앞으로 자리하고, 그는 그 놈의 퓌휴를 몇십번이나 하면서도 답답해 하는 표정도 없이 무엇인가를 녹음하고, 결정하고, 마무리 했다. 그러한 과정이 어느 정도 수행되고 나서, 몇번의 눈 깜박임이 이어지고, 다시금 눈 앞의 모니터는 멋진 회전을 거쳐 천장으로 다시 들러 붙었다.
‘피휴....별일 아니에요....그냥 소설 같은 거죠....퓌휴....이제는 스토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된겁니다...퓌휴....스토리를 실제처럼 만드는 기술과 제작진은...퓌휴...얼마든지 있어요. 그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퓌휴...이미 남들 것을 베껴쓰다 사라진 지 오래고...퓌휴...난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하 소설을 집필 한다고 보면 되요...퓌휴....아무도 하지 않은, 한 적이 없는...퓌휴.....’
전신이 마비된 소설가의 비상한 광기에 세상의 흐름이 놀아나고 있다고? 난 믿을 수가 없었다.
‘퓌휴...난 그렇다고 작가는 아니에요....퓌휴....완벽하게 구사하는 언어는 5개 정도....퓌휴....참...언어는 그 구조를 이해하면 새롭게 배워도...퓌휴...별로 어렵지 않아요.....세상의 모든 언어는 동일한 모체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퓌휴...그 동질적인 기능과 구조를 알고 있다면 다 거기서 거기에요....퓌휴...멘사 아니냐는 눈초리네?...퓌휴....그게 자신의 지식에 대한 절대적 보증이 되나요?...퓌휴....’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었으며, 그는 쉼없이 얘기하면서도, 끝없이 침착했고, 연속적으로 나를 감동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퓌휴....서비스걸들을 자르는 건 내가 하죠...퓌휴...그들이 저 무지한 어르신들을 향해...진짜 인 것처럼 거짓 정보를 진짜처럼 들이대는 것을 내가 알았을 때...퓌휴....’
그가 평소에도 모니터링 한다는 말은, 자신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되는 과정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걸들의 앱세션이,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진솔한 정보의 제공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는 선생님께 드릴 게 별로 없는데...’
‘퓌휴...선생님.......퓌휴..퓌휴..퓌휴..질문 하나 할게요....내가 수현 양에게 선생님으로 지칭되어야 하는 이유 세가지만 말해 줄 수 있어요? 퓌휴...’
그는 선생님이란 고리타분한 단어에 발끈 했던지, 연거푸 호스를 물었다 놨다 하며, 호흡을 골랐다.
닝기리, 븅신 새끼가 성질 머리 하고는...아참, 머리만 살았댔지?
‘퓌휴....당신의 선생님이란 호칭은...퓌휴....나의 신체적 제약 상황에 대한 적절한 호칭을...퓌휴... 이 상황에서 신속하게 탐색하지 못한...퓌휴....당신 능력의 미천함 때문 입니다...퓌휴...’
난 슬슬 따분해 지고 있었다. 그래, 니기미 그 조둥아리로 씨부려 봐라, 니가 대갈빡만 살았지, 사지육신 돌땡이 되서 뭐 할 수 있겠냐? 난 그가 조금씩 우스워지고 있었으니까.
‘퓌휴....할 일은 별로 없어요...퓌휴...나의 의사결정이 어땠는지...퓌휴...솔직하게 말해 주면 되니까...퓌휴....방금 전에 무슨 일을 지시했는지 알아요?....퓌휴....아까의 앱서비스 장면 중에....퓌휴...뒷치기 좋아하는 양반의...퓌휴...상대역을 수현씨로 바꿨어요....퓌휴...도저히 조작이나 포샵질이라고 알 수 없는 ...퓌휴....최고 경지의 고수의 손에 의해....퓌휴....’
‘그건...범죄에요....범죄...당신은 쏘시오 패스에다...정신병자, 똥깨, 멍청이, 멍게, 해삼...’
그러나, 난 그 순간, 나의 핸폰을 찾았지만 별 무소용 이었다. 이 오피스에 들어서면서 퇴근시에 돌려주기로 하고 반납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퓌휴....자 보세요...수현씨의 핸폰 화면을...퓌휴...’
어느새 천장에서 곡예를 하며 들쳐 내려온 모니터에는 내 핸폰의 화면이 대문짝하게 보이고 있었다.
‘%너 그럴 줄 알았다%
%노상 인터뷰 어쩌구 할때 너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 이제사 하는 말, 어디 보지가 너 하나 뿐인줄
알았나 본데, 웃기셔..나두 너 말고 지금도 꿰차고 있다이.^^;%
%벌창 보지를 못 알아본 내가 븅시인..%
%다신 연락 때리지 마라, 잉?%
%너랑 한 톡질이 아깝다고라%
%쒸발, 마징가 강철보지, 일낼 줄 알았다....끄읕%’
정신없이 나를 향해 털어내는 남친의 독설....과연 남친의 핸폰으로 전송되었을, 그의 모조 동영상이 범죄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싶은 후회와 함께, 남친의 치부가 바로 수면 위로 부상하는, 그 적나라함이 나의 입을 다물게 하고 있었다.
‘퓌휴...이건 장난이죠...퓌휴...내가 하는 일은 이런 일이 아닙니다....퓌휴...’
‘그럼 더 큰 범죄를 저지르시나요?’
‘퓌휴....아뇨....수현씨를 위해서 한 일이죠...퓌휴...저런 인간은 벌 줄 가치도 없어서...퓌휴...’
그건 맞는 말 이었다. 개립?..나 하나도 감당이 안된다고 하던 쒸발넘이 나 말고도 기집년들과 씹빠빠를 돌린다고? 난 기가 막혔다.
‘퓌휴...이제 저를 위해 뭘 돕고 싶으세요?...퓌휴...아무것도 하실 수 있는 건 없어요....퓌휴...’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 알면서도, 저를 지목하셨죠? 왜죠?’
‘퓌휴...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억지로 만들 수는 있지만...퓌휴...그 영속성은 보장할 수 없죠...퓌휴...제가 수현씨에게 부탁하는 것은 진실입니다....퓌휴....보시다시피....퓌휴..저는 제 머리로 할 수 있는 것 밖에는 모든 것이 정지된 환자죠...퓌휴...그나마 제 머리가 없었다면..퓌휴...이미 관으로 들어갔겠죠....퓌휴....제가 하는 일도 많은 짐이 존재하죠....퓌휴....스트레스라고 불러도 좋고...퓌휴...죄책감 같은 것일수도 있고....퓌휴...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죠...퓌휴...제가 만든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어..퓌휴...굴러가고 난 후의 결과를..퓌휴...0.1프로도 틀림이 없이 예측하고 있다는 점이죠....퓌휴...저를 점장이나 예언자 처럼 보는 어르신도 있지만....퓌휴...그것은 통계학이고, 물리학이자, 더 나아가 수학의 일부일 뿐입니다...퓌휴...경제와 역사와 문화, 기술등이 혼재되어 있어도...퓌휴...아인슈타인도 찾고자 했던....퓌휴..만물의 공통 방정식의 해법을 제가 알고 있다는 것 말고는...퓌휴...제가 일반인과 다를 것은 없다고 봐야죠...퓌휴....걸그룹이요?...퓌휴...저도 참 좋아합니다....퓌휴....수현씨의 몸매....퓌휴,퓌휴,퓌휴...갖고 싶죠...퓌휴..얼마전에 수술도 했습니다...퓌휴..보형물을 넣어서....제 음성신호에 따라 발기가 됩니다....퓌휴....정자는 생산이 되지만 항상 뇨관이 삽입되어 있어서...퓌휴...그걸 맞춰 섹스하기는 불가능하고...퓌휴...그냥 오줌처럼 배출되기에....퓌휴...그걸 도와 주신다면...퓌휴...영광일 겁니다....퓌휴...’
‘그럼, 섹스가 필요하단 말씀이세요, 아님, 뭐 그 잘나신 머리를 대신해 줄...이를테면 종족보존 이런 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퓌휴.....퓌휴....퓌휴....그냥 저는...퓌휴.....사람 냄새가 그리운 겁니다.....퓌휴...’
난 순간, 조금은 창피함을 느꼈다. 그 자를 불구자로 몰아가며, 나의 사고 자체가 경직되고,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똥덩어리 보듯 했던 나의 치졸함이 갑자기 스멀대며 등줄기를 기어갔기에....
‘전 아무래도 여기가 잘 않맞는 것 같아요. 어차피 남친도 쫑 났고....오늘 일당이나 잘 쳐주시면, 입 닫고 조용히 살죠 뭐...’
‘퓌휴....세상은 독을 먹고 살아가고...퓌휴...그 독으로 망해가기도 하죠....퓌휴....사람들은 그 독에 목숨을 걸고 있고....퓌휴....수현씨가 어서 취직이 안되면...퓌휴...지금의 가계부채는...퓌휴...정확히 이십칠일 후에는 신용불량의 딱지가 붙게 되죠...퓌휴....그러나, 돈으로 당신의 의지를 사고 싶진 않습니다....퓌휴....’
난 일어서려고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가 다시 털썩 의자에 눌러 앉고 말았다. 여기서 더 이상 벗어날 길은 없는 것 같았다. 이미 내 발목이 깊숙히 빠져들어 가는 걸 느끼고 있었음에도, 난 도망갈 생각을 잊고 있던 멍청함이 우습기만 했다.
-제 4 부 : 인연의 끈-
그 사람과의 섹스는 간혹 나를 혼돈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나의 표정을 귀신 같이 읽고 있었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때면, 그 타이밍을 절묘하게 일치 시키면서, 발기력을 서서히 누그러뜨리는 것이 바로 그것 이었다. 마치 몇번의 경련과 더불어 내 안에서 서서히 몰락해 가는 왕국의 처절함을 맛보는 듯한 그 마무리...
‘좋았어?’
난 나날이 그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고 믿는 바보가 되어 가는 듯 했다. 섹스는 나에게 구원이었고, 동아줄 이었으며, 현실을 잊게 해주는 극약 처방 이었다. 선배의 말처럼 나에겐 이미 레쥬메를 써야할 대상도 시시해져 버린지 오래고, 골치 덩어리 엄마는 최고급 요양 시설로 보내 졌으며, 클럽 죽순이 였던 동생은 아무 걱정 없이, 지랄나게 돈만 쓰고 살면 되는 놈팽이 벼락부자의 세컨드 자리를 꿰차고 앉아 연락을 끊어 버린지가 한참 전이었다.
그는 내가 그의 좇을 빨아 주는 장면을 바라보며 좋아했다. 그것도 직접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방 안의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카메라로 제 3 자의 시각처럼 보여지는 좇빨기 영상을 좋아했다. 천장에서 내려온 모니터에는 내 타액에 번들 거리는 그의 좇이 화면 가득히 채워졌고, 그의 미묘한 음성신호는 세세한 기술과 훈련을 통해, 흡사 진짜 건강한 좇이 빨림으로 인해 서서히 발기되는 것 같은 보형물의 작동기법을 보이며 나를 감탄하게 했다. 그의 사기빨 이긴 했어도...
‘난 항상... 자세가 이거... 한개 라는 게 불만이야...’
그 사람도 그 의견에는 동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익숙해 졌고, 나름 그에게도 오르가즘 같은 형태의 떨림이 온 몸을 관통하는 상황도 있어 왔다. 그저 시체 처럼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 두 손 이었지만, 그가 극도로 나와의 합일점에 맹추격을 해올 즈음이면, 부르르 떨리는 경련이 그를 더욱 행복하게 하는 걸 보게 되기까지, 횟수가 그 원동력이라고 기억되지는 않았다.
‘퓌휴....그걸 사람들은....퓌휴....사랑이라고 하지...퓌휴...’
난 이제 그의 목소리보다 그 사이 사이에 추임새처럼 연이어진 그의 호흡을 더 사랑한다고 느껴왔다. 그의 일은 어려운 세상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과감한 결단력으로 환부를 칼로 난자하는 듯한 처절함도 엿보였다. 그러나, 나와 그와의 묘한 어울림은 일상적이었으며, 평범했고, 그로 인해 그는 또다시 어려운 세상과의 싸움에서 그 몸을 해가지고도 분연히 나가 싸우는 것이었다.
‘퓌휴....퓌휴....퓌휴...’
‘왜, 오늘은 이렇게나 빡빡하게 힘을 주실까?’
평소와 같은 유연한 보형기의 리듬이 오늘은 그냥 강직함으로 이어지고만 있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퓌휴...키스.....키스.....퓌휴...’
몇번 해보지 않았던 그 와의 키스...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어쩐 일로....
‘퓌휴....더 가까이...퓌휴.....더.....더...퓌휴.....’
그와 길게 키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1분 17초의 환상 인지도 모른다. 그가 짧지만 단호한 어조로 내 귀에 전한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난 그와의 키스가 평범하지 않아서 느낌이 별로 였다라든가, 아니면, 입술과 입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호흡관이 거추장스럽다든가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퓌휴....배가 부르기 전에 어서 도망가야 할거야....퓌휴.....그들이 나와 당신의 애기는 살려 줄 수 있어도, 당신은 아닐거야..퓌휴...퓌휴....퓌휴....어서....’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어르신 이란 인사들의 장기계획에는 나와의 적합성 여부도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에게 보형물 시술을 권하고, 나에게 그의 씨를 잉태시킨 후에, 역사의 흐름속에서 권력을 승계했던 추종자들이 저질렀던 옹립과 추대라는 짓거리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그 자들의 밑에서 수족처럼 움직이는 수 많은 조력자들은 자신들이 떠 받드는 그 사람의 혈족이 건재하다는 믿음이 보증수표처럼 필요했을 것이고, 나는 그것에 이용된 씨받이 였을 뿐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그 사람의 배려는 단 한가지, 나에게 밀담처럼 전할 수 있는 도망권유가 유일한 방법이었고.... 하지만, 도망? 어디로? 어떻게?.......
‘괜찮아요...이미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저들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저들에 의해 사육되고 있었다는 사실....’
난 평소와 다르게 그의 좇을 한번 더 입 안에 머금었다. 정말 건강 했더라면 평생을 내 입에 담은 채, 놀고 싶을 정도로 어여쁜 그의 좇이었다. 그는 내가 입안 가득히 그의 좇을 삼킬듯이 물고 웃어대는 키득거림을 향해, 썩은 미소이긴 해도 끊임없이 날려대고, 난 허리를 완곡하게 돌리면서 그의 호흡관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허릿짓으로 그의 눈 앞에 내 엉덩이를 활짝 열어 질질 흐르는 내 씹물을 보여주었다.
‘오늘은 그만...여기까지....내일 일찍 올게요....’
난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피스를 나왔다. 밖에는 평소처럼 나를 위한 승용차와 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가 바뀌었네?’
‘네, 사모님의 건강 때문에 뒷좌석이 좀더 넓은 모델로 바꾸라는 지시가 있어서요. 타시죠.’
기사가 열어 주는 뒷좌석은 어제 까지 타던 것보다 2배는 넓고 훌륭했다. 난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소음이 극도로 조절된 훌륭한 실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깅................’
역시나 운전석과 분리되어 내 좌석의 앞을 가로막는 방탄유리...난 당황하지도 않았고, 발버둥도 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머리 뒤켠의 스피커에서 그 3번 의자의 주인공 새끼가 너덜대는 음성으로 주절대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여자는 많아. 수지양이 아니더라도.....주인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사냥개는 필요가 없지. 그 사냥개를 그렇게 만든 암놈 사냥개를 죽여서라도 다시 사냥에 나갈 수만 있다면 말이야. 역시나 계집은 사람을 변화시킨단 말이야. 근데 평범한 것들은 변화를 시키고, 천재는 타락을 시켜버리니 그게 문제야. 묘비는 두개로 세워주지. 뱃속의 씨까지 추모해주는 의미로...그 동안 우리 위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줘서 고마웠네, 수우우우지이이....’
그래도 난 그들의 배려가 조금은 감사했다. 온몸이 뒤틀리는 맹독성 개스보다 수면 개스를 첨가해 주었으니 고마운 일 아닌가? 난 온 몸의 힘이 빠지고, 시력마저 흔들거리는 와중에 창밖을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잘 있어요. 내 사람....당신도 조금 있으면 뒤따라 오겠네........’
그 자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의 입 안으로부터 혀로 전달 받은 작은 바늘을, 그의 보형물에 출혈이 없도록 세로로 깊숙히 박아넣은 사실을....아마도 그들의 계획에 의해 또 다른 여인이 천거되고, 씨받이의 노력봉사를 이루고자 할 즈음, 보형물의 내부가 터지면서 그 유동액이 그의 혈관을 타고 흘러, 결국 천천히 안타까운 광경속에, 자신들이 애지중지 하던 사냥개가 죽어가는 광경을 목도하고 말 것이란 것을....
난 그 사람의 결심이 옳았다는 것을 지금 숨이 막혀오는 이 순간에도 믿고 있기에...
-完-
P.S.:환타지로 패러디 해본 정인숙 살해사건 이었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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