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즈막히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선선한 바람이 들어온다. 무더웠던 8월이 지나가고 어느새 9월이 되어 가을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선풍기나 에어컨도 못돌리는 상황에서 여름을 지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다행이도 입추가 오고 날씨가 시원해지고 있었다.
"벌써 열시네..."
문득 시계를 보니 제법 늦은 시간이었다. 원래는 일곱시에는 일어났는데 오늘따라 늦잠을 잔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하루가 지나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몸을 일으켰다. 몸이 찌뿌둥한게 왠지 잠을 잘 못잔것 같다.
냉장고를 열어서 먹을게 있나 본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냉장고가 작동할리 없다. 습관이 무서운거라고 통조림, 건빵이나 육포, 쥐포 등의 실온 보관해도 되는 음식들도 모두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냉장고에는 파인애플이나 참치 같은 통조림들이 수북히 들어가 있었다. 옛날이라면 손도 대지 않았을 음식이지만 세상이 좆같이 되어버린 후에는 내게 최고의 만찬이 되었다.
오늘은 상콤한게 꼴리는 날이다. 파인애플을 하나 꺼내서 땄다. 유통기한을 보는 것을 깜빡했다. 다행이도 유통기한 한참 남아있었다. 숟가락으로 무식하게 파인애플을 꺼내먹었다. 배가 고프니 뭘 먹어도 맛이 있었다. 한통을 먹고나서도 배가 차지 않아 파인애플 한통을 더 먹었다.
"이제 좀 움직여볼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본다. 이곳에 산지도 어언 한달이 다되간다. 이곳은 원래 내 집이 아니다.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이 집은 대략적으로 부지로만 오십평은 된다. 게다가 지하포함해서 3층 정도의 단독주택이다. 서울에서 이런 집을 사려면 최소 몇십억은 있어야 된다고 들었다. 당연히 내가 이런 집에 살만한 금수저일리는 만무하고, 세상이 좆같이 변해버린 후에 여기살던 좀비 일가족의 대가리를 다 부셔버리고 내가 차지한 것이다. 일가족은 총 4명이었는데, 지금은 집 밖에 머리가 박살난채 버려져 있었다.
실제 내가 살던 하숙집은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나는 금수저, 은수저도 아닌 똥수저도 태어났다. 부모님은 전라도 외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였고, 난 운이 좋게도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어서 서울에서 이름을 제법 들어봤을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하였다. 입학을 한다고 해서 모든게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가난한 농부들이었기에 내 생활비 보태주는 것조차 버거워 하셨다. 나는 부모님이 어렵게 모아서 보내주신 돈과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자취생들로 발디딜틈 없는 구리구리한 하숙집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다섯평 남짓의 원룸에서 의식주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일이년을 생활을 하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군대에 가게되었다. 군대 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좆같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좆같은 군 생활을 그 힘들다는 전방 수색대대에서 보내고 23살에 전역을 했다. 하지만 전역을 하자마자 세상은 더 좆같이 돌아갔다. 불과 몇개월 만에 대한민국은 미쳐버린 개새끼들의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복학생으로 풋풋한 신입생들과의 대학생활을 꿈꾸던 나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마 모든게 좆같이 변해버린 날은 한달 전이었을거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술 한잔 걸치고 하숙집에 돌아와 쉬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우당탕 소리와 함께 요란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밖에 나가보니 바닥과 벽은 온통 피로 범벅이었다. 옆방에 살고있던 창수형은 눈알이 휘까닥한 상태에서 주인 아주머니의 머리통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그때 사람의 머리뼈가 그렇게 약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뇌를 감싸고 있는 뼈들은 생각보다 약하다. 창수형은 아주머니의 두 눈알을 손으로 뺀다음에 양손가락을 텅비어버린 그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마 머리통을 부셔버리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부셔지지가 않자 옆에 있던 아령으로 머리통을 내리쳤다. 몇번 내리치자 수박 으깨지듯이 머리가 으깨진다. 나는 군대에서 사고가 몇번 나는 것을 본적 있지만 이렇게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의 광경을 본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충격을 받게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도망치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지만 몸은 그 말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크아악...!"
결국에 아주머니의 머리통이 으깨졌다. 안에 있던 뇌가 와르르 흘러내려 바닥에 퍼졌다. 머리에는 뇌와 피만 있는게 아니다. 뇌수도 같이 있다. 하얀 액체도 핏물에 섞여서 진득한 피냄새를 풍겼다. 창수형은 미친듯이 그것을 주워먹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부드러운 가슴살도 마구 뜯어먹었다. 부드러운 가슴살이 깨무는 힘에 의해 가볍게 찢어져 나왔다. 그렇게 십분이 지났을까 아주머니는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렸다. 창수형이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머리와 몸이 알아서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창수형의 미쳐버린 눈깔이 나를 향한다. 내 발은 움직이지를 않았다. 가까스로 한두걸음 움직였을때 이미 창수형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입에는 피를 잔뜩 묻히고 말이다.
"창수형! 정신차려! 나 지헌이야. 송지헌!! 우리 친하잖아!! 우리 술도 자주 먹었잖아!!"
"크아악...! 카악!!"
하지만 내게 돌아오는 답변은 괴상한 비명소리뿐이었다. 그 반응을 보고나서야 이 새끼가 말이 통하지 않는 병신이 됐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제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았다. 처음으로 눈에 띈것은 구석에 나뒹구는 소화기였다. 내 방문에서 나와 2미터 정도 거리에 소화기가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되다니... 재빨리 달려가서 소화기를 들었다. 창수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달려왔다. 일단 소화기 바닥으로 대가리를 내리찍었다. 역시 한번 맞고는 쓰러지지 않는다. 잠시 멈춰섰지만 다시 달려들었다. 이제는 안면을 강타했다. 한번도 이런 무기로 사람을 때려본적이 없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은 무슨 행동이든 하게 만들었다. 소화기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무기었다. 두번정도 대가리를 맞자 대가리가 깨졌는지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크르릉..."
낮게 깔리는 창수형의 울음소리. 그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길에서 본능에만 의지하는 한마리 짐승을 느낄수 있었다. 창수형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지 내게 몇번이나 달려들었다. 그때마다 소화기는 형의 머리통에 작렬했다. 몇번 맞자 눈알이 터져버린다. 눈앞을 가리는 피로 인해 앞을 보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어떻게 알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가슴팍을 발로 걷어차버렸다. 형은 전혀 작지 않은 덩치임에도 바닥에 쓰러진다. 난 이때가 도망치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쓰러진 창수형을 버려두고 나는 하숙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가 본 것은 지옥도가 되어버린 세상이었다. 집에 들어간지 불과 몇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이미 마을 사람 대부분이 창수형처럼 미친년놈으로 변한 상태였다. 나처럼 정상인 사람들은 도망치다가 미쳐버린 사람들에게 붙잡혀 살점을 뜯어먹히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은 온통 피로 범벅이다. 흘러내린 내장으로 인해 걷는 발걸음마다 물컹물컹하고 미끈한 느낌이 그대로 느껴진다.
한창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는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 이삼백미터 달렸을까. 내가 도착한 것은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집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곳에 들어올 생각은 없었다. 미친새끼 두명이 미친듯이 나를 공격해왔고, 그들을 피해서 집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집은 이 못사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이었다. 이렇게 잘사는 놈들이 왜 이런 동네에 집을 짓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담벼락과 충분히 넓은 마당은 옛날에 지나가면서 볼때마다 내 부러움을 사곤했다.
미친놈들을 피해서 집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또다른 미친년놈 네명이었다. 일가족이 모두 감염이 되었는지 나를 공격해온 것이다. 다행이도 한꺼번에 공격하지 않아온 탓에 거실 난로 옆에 있었던 해머로 차례대로 그들의 머리통을 모두 박살냈다. 어디서 그런 잔인함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살고자하면 못할게 없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 평소에 알던 자신보다 더 과감해지고 잔인해지는 것이다.
일가족의 시체를 집밖으로 내던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곳을 이 국난을 피해갈 잠깐동안의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이곳은 보금자리로서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높은 담벼락으로 인해 저 미친 새끼들이 담벼락을 넘어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고, 문은 부숴질 일 없는 강철 재질로 만들어져있었다. 게다가 다행이도 집안에는 혼자 먹으면 일년 정도는 살수있을 정도의 비상식량이 있었다. 원래 부자놈들은 이렇게 사재기를 해놓는 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집에 있은지도 어언 한달이 지나갔다. 아직 나는 집밖으로 나가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매일 3층 베란다를 통해서 바깥을 바라본다. 너무 조용하고 적막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 세상에 남은 것은 좀비들 뿐이었다. 그 핏덩이들은 항상 길거리, 골목길을 배회하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항상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자신들의 먹이가 될만한 희생자들을 찾고 있었다. 이 집 주변만 해도 족히 십수마리 정도의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끔씩 나처럼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까봐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아직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괜히 좀비들의 이목을 끌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한달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는 제법 이런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통조림과 마른 건빵이나 육포로 식사를 떼웠다. 전기는 전부 끊겼지만 다행이도 물은 끊기지 않은 상태다.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식수가 나온다는 점에서 내가 이 지옥에서 살아남을수 있다는 희망이 들었다.
식사를 하고나서 내가 해야되는 것은 특별히 없다. 할게 없으니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그 시간을 이용해 나는 혹시라도 모를 좀비들의 공격에 대비해 좀비들이 들어올 만한 곳에 나무판자를 이용해 막기 시작했다. 1층이나 2층 정도 높이에 있는 창문은 모두 막아놓은 상태고, 출입구는 오로지 지하에 있는 작은 문 뿐이었다. 항상 사용할 수 있게 무기도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층마다 망치나 낫, 불쏘시개 등 무기가 될만한 것은 모두 비치를 해둔 상태였다. 그런 준비 외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평소에 안하던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동안 좀비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본 결과 저들은 본능에만 의지해 움직이기 때문에 지치지않고 오래 달릴수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저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뛰어난 운동 신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꾸준히 운동을 해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전히 땀을 흘리며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십개도 힘들었던게 지금은 칠팔십개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얼마나 운동을 했을까. 땀을 흘린탓에 차가운 물로 가볍게 샤워를 하고나서 거실로 나왔을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열시네..."
문득 시계를 보니 제법 늦은 시간이었다. 원래는 일곱시에는 일어났는데 오늘따라 늦잠을 잔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하루가 지나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몸을 일으켰다. 몸이 찌뿌둥한게 왠지 잠을 잘 못잔것 같다.
냉장고를 열어서 먹을게 있나 본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냉장고가 작동할리 없다. 습관이 무서운거라고 통조림, 건빵이나 육포, 쥐포 등의 실온 보관해도 되는 음식들도 모두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냉장고에는 파인애플이나 참치 같은 통조림들이 수북히 들어가 있었다. 옛날이라면 손도 대지 않았을 음식이지만 세상이 좆같이 되어버린 후에는 내게 최고의 만찬이 되었다.
오늘은 상콤한게 꼴리는 날이다. 파인애플을 하나 꺼내서 땄다. 유통기한을 보는 것을 깜빡했다. 다행이도 유통기한 한참 남아있었다. 숟가락으로 무식하게 파인애플을 꺼내먹었다. 배가 고프니 뭘 먹어도 맛이 있었다. 한통을 먹고나서도 배가 차지 않아 파인애플 한통을 더 먹었다.
"이제 좀 움직여볼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본다. 이곳에 산지도 어언 한달이 다되간다. 이곳은 원래 내 집이 아니다.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이 집은 대략적으로 부지로만 오십평은 된다. 게다가 지하포함해서 3층 정도의 단독주택이다. 서울에서 이런 집을 사려면 최소 몇십억은 있어야 된다고 들었다. 당연히 내가 이런 집에 살만한 금수저일리는 만무하고, 세상이 좆같이 변해버린 후에 여기살던 좀비 일가족의 대가리를 다 부셔버리고 내가 차지한 것이다. 일가족은 총 4명이었는데, 지금은 집 밖에 머리가 박살난채 버려져 있었다.
실제 내가 살던 하숙집은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나는 금수저, 은수저도 아닌 똥수저도 태어났다. 부모님은 전라도 외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였고, 난 운이 좋게도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어서 서울에서 이름을 제법 들어봤을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하였다. 입학을 한다고 해서 모든게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가난한 농부들이었기에 내 생활비 보태주는 것조차 버거워 하셨다. 나는 부모님이 어렵게 모아서 보내주신 돈과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자취생들로 발디딜틈 없는 구리구리한 하숙집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다섯평 남짓의 원룸에서 의식주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일이년을 생활을 하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군대에 가게되었다. 군대 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좆같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좆같은 군 생활을 그 힘들다는 전방 수색대대에서 보내고 23살에 전역을 했다. 하지만 전역을 하자마자 세상은 더 좆같이 돌아갔다. 불과 몇개월 만에 대한민국은 미쳐버린 개새끼들의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복학생으로 풋풋한 신입생들과의 대학생활을 꿈꾸던 나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마 모든게 좆같이 변해버린 날은 한달 전이었을거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술 한잔 걸치고 하숙집에 돌아와 쉬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우당탕 소리와 함께 요란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밖에 나가보니 바닥과 벽은 온통 피로 범벅이었다. 옆방에 살고있던 창수형은 눈알이 휘까닥한 상태에서 주인 아주머니의 머리통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그때 사람의 머리뼈가 그렇게 약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뇌를 감싸고 있는 뼈들은 생각보다 약하다. 창수형은 아주머니의 두 눈알을 손으로 뺀다음에 양손가락을 텅비어버린 그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마 머리통을 부셔버리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부셔지지가 않자 옆에 있던 아령으로 머리통을 내리쳤다. 몇번 내리치자 수박 으깨지듯이 머리가 으깨진다. 나는 군대에서 사고가 몇번 나는 것을 본적 있지만 이렇게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의 광경을 본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충격을 받게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도망치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지만 몸은 그 말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크아악...!"
결국에 아주머니의 머리통이 으깨졌다. 안에 있던 뇌가 와르르 흘러내려 바닥에 퍼졌다. 머리에는 뇌와 피만 있는게 아니다. 뇌수도 같이 있다. 하얀 액체도 핏물에 섞여서 진득한 피냄새를 풍겼다. 창수형은 미친듯이 그것을 주워먹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부드러운 가슴살도 마구 뜯어먹었다. 부드러운 가슴살이 깨무는 힘에 의해 가볍게 찢어져 나왔다. 그렇게 십분이 지났을까 아주머니는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렸다. 창수형이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머리와 몸이 알아서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창수형의 미쳐버린 눈깔이 나를 향한다. 내 발은 움직이지를 않았다. 가까스로 한두걸음 움직였을때 이미 창수형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입에는 피를 잔뜩 묻히고 말이다.
"창수형! 정신차려! 나 지헌이야. 송지헌!! 우리 친하잖아!! 우리 술도 자주 먹었잖아!!"
"크아악...! 카악!!"
하지만 내게 돌아오는 답변은 괴상한 비명소리뿐이었다. 그 반응을 보고나서야 이 새끼가 말이 통하지 않는 병신이 됐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제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았다. 처음으로 눈에 띈것은 구석에 나뒹구는 소화기였다. 내 방문에서 나와 2미터 정도 거리에 소화기가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되다니... 재빨리 달려가서 소화기를 들었다. 창수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달려왔다. 일단 소화기 바닥으로 대가리를 내리찍었다. 역시 한번 맞고는 쓰러지지 않는다. 잠시 멈춰섰지만 다시 달려들었다. 이제는 안면을 강타했다. 한번도 이런 무기로 사람을 때려본적이 없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은 무슨 행동이든 하게 만들었다. 소화기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무기었다. 두번정도 대가리를 맞자 대가리가 깨졌는지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크르릉..."
낮게 깔리는 창수형의 울음소리. 그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길에서 본능에만 의지하는 한마리 짐승을 느낄수 있었다. 창수형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지 내게 몇번이나 달려들었다. 그때마다 소화기는 형의 머리통에 작렬했다. 몇번 맞자 눈알이 터져버린다. 눈앞을 가리는 피로 인해 앞을 보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어떻게 알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가슴팍을 발로 걷어차버렸다. 형은 전혀 작지 않은 덩치임에도 바닥에 쓰러진다. 난 이때가 도망치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쓰러진 창수형을 버려두고 나는 하숙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가 본 것은 지옥도가 되어버린 세상이었다. 집에 들어간지 불과 몇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이미 마을 사람 대부분이 창수형처럼 미친년놈으로 변한 상태였다. 나처럼 정상인 사람들은 도망치다가 미쳐버린 사람들에게 붙잡혀 살점을 뜯어먹히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은 온통 피로 범벅이다. 흘러내린 내장으로 인해 걷는 발걸음마다 물컹물컹하고 미끈한 느낌이 그대로 느껴진다.
한창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는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 이삼백미터 달렸을까. 내가 도착한 것은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집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곳에 들어올 생각은 없었다. 미친새끼 두명이 미친듯이 나를 공격해왔고, 그들을 피해서 집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집은 이 못사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이었다. 이렇게 잘사는 놈들이 왜 이런 동네에 집을 짓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담벼락과 충분히 넓은 마당은 옛날에 지나가면서 볼때마다 내 부러움을 사곤했다.
미친놈들을 피해서 집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또다른 미친년놈 네명이었다. 일가족이 모두 감염이 되었는지 나를 공격해온 것이다. 다행이도 한꺼번에 공격하지 않아온 탓에 거실 난로 옆에 있었던 해머로 차례대로 그들의 머리통을 모두 박살냈다. 어디서 그런 잔인함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살고자하면 못할게 없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 평소에 알던 자신보다 더 과감해지고 잔인해지는 것이다.
일가족의 시체를 집밖으로 내던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곳을 이 국난을 피해갈 잠깐동안의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이곳은 보금자리로서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높은 담벼락으로 인해 저 미친 새끼들이 담벼락을 넘어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고, 문은 부숴질 일 없는 강철 재질로 만들어져있었다. 게다가 다행이도 집안에는 혼자 먹으면 일년 정도는 살수있을 정도의 비상식량이 있었다. 원래 부자놈들은 이렇게 사재기를 해놓는 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집에 있은지도 어언 한달이 지나갔다. 아직 나는 집밖으로 나가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매일 3층 베란다를 통해서 바깥을 바라본다. 너무 조용하고 적막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 세상에 남은 것은 좀비들 뿐이었다. 그 핏덩이들은 항상 길거리, 골목길을 배회하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항상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자신들의 먹이가 될만한 희생자들을 찾고 있었다. 이 집 주변만 해도 족히 십수마리 정도의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끔씩 나처럼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까봐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아직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괜히 좀비들의 이목을 끌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한달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는 제법 이런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통조림과 마른 건빵이나 육포로 식사를 떼웠다. 전기는 전부 끊겼지만 다행이도 물은 끊기지 않은 상태다.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식수가 나온다는 점에서 내가 이 지옥에서 살아남을수 있다는 희망이 들었다.
식사를 하고나서 내가 해야되는 것은 특별히 없다. 할게 없으니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그 시간을 이용해 나는 혹시라도 모를 좀비들의 공격에 대비해 좀비들이 들어올 만한 곳에 나무판자를 이용해 막기 시작했다. 1층이나 2층 정도 높이에 있는 창문은 모두 막아놓은 상태고, 출입구는 오로지 지하에 있는 작은 문 뿐이었다. 항상 사용할 수 있게 무기도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층마다 망치나 낫, 불쏘시개 등 무기가 될만한 것은 모두 비치를 해둔 상태였다. 그런 준비 외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평소에 안하던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동안 좀비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본 결과 저들은 본능에만 의지해 움직이기 때문에 지치지않고 오래 달릴수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저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뛰어난 운동 신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꾸준히 운동을 해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전히 땀을 흘리며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십개도 힘들었던게 지금은 칠팔십개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얼마나 운동을 했을까. 땀을 흘린탓에 차가운 물로 가볍게 샤워를 하고나서 거실로 나왔을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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