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왜 이렇게 일찍 나와? 뭘 바라는 거야?”
“바기는 요... 무슨...”
“바라는 것 같은데?”
“설마요.”
“정말 그런 것도 없이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일하는 거야?”
“전 그냥...”
“그냥 뭐?”
“그냥...”
“퍽!”
“아야! 사... 사장님!”
“너, 이상해. 내가 말하는데 시선은 왜 자꾸 내 딸한테 가있는 거야? 너 도대체 원하는게 뭐야?”
“......”
아침부터 사람 머리를 쥐어박는 사장이 야속했다.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남자에게 머리를 자존심과 같은 부위이지 않은가. 그보다 더 야속하게 느껴진 것은...
“아빠, 태수 씨 좀 그만 때려요.”
“이 녀석이 자꾸 너만 쳐다보잖아!”
“아이 참... 저를 본 게 아니고 제가 있는 쪽을 봤겠죠.”
“그런 것 같지가 않아!”
“......”
그녀, 바로 보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를 맞아서였다. 씨...
“사... 사장님! 저는 이곳저곳 쳐다볼 권리도 없나요?!”
“뭐?!”
“아... 아니요. 그냥... 그렇다고요.”
“자꾸 이상한 눈빛으로 내 딸을 쳐다보니까 그렇지! 사무실에서 당장 나가. 마당이나 쓸어.”
“네...”
사장에게 쫓겨나듯 고물상 사무실을 나서며 입을 실룩거렸다. 그 모습을 사장이 보라는 듯이 더욱 거세게 실룩거렸고 이런 모습을 사장이 아닌 보라가 쳐다본다. 미소를 짓는 보라의 얼굴에 나의 서운함이 녹아드는 듯하다.
“아... 보라 씨...”
“오늘 하루도 파이팅하세요.”
작은 주먹을 쥐며 나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보라는 정말 천사다. 이제 곧 어제 왔던 재벌 집 사모님이 고급 승용차를 끌고 나타날 것이다. 그 차에 나와 보라는 단 둘만의 여행을 떠날 것이고 우리는 이미 해안 도로를 질주하며 서로의 사랑을...
“퍽!”
“아...”
“너 또 눈깔이 응큼해!”
“사장님 도 참...”
“어서 마당이나 쓸어!”
“네...”
왜 하필 아름다운 상상의 결말 끝에는 현실에서 느끼는 사장의 뒷통수 공격이 있는 것일까. 젠장...
“끼이익!”
“응? 저 여자... 어제 그 여자인데?”
우리 고물상 앞에 드디어 재벌 집 사모님이 도착했다. 사장은 그런 사모님의 차를 확인하고 왜 또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이유를 당연히 알고 있다.
“제가 전해주고 올까요?”
“그래. 이곳에 자꾸 오니 기분이 이상하네.”
“알겠습니다.”
차에서 내린 운전기사가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모님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는 나를 찾으며 다가온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운전기사의 모습에 벌써부터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태수 씨.”
“네.”
“저희 사모님께서 준비한 약소한 선물입니다. 받아 주십쇼.”
“뭔... 뭔데요?”
그냥 예의상 묻는 인사말 같은 물음이었다.
“저희 사모님께서 어제 상속포기 각서에 지장을 찍어주신 것에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은 잠시 후 도착할 것입니다.”
“작은 선물?”
“아, 저기 오는 군요.”
“부우웅...”
캬... 독일 산, 벤츠 S클레스 최신형... 저걸... 내가 언제 끌어보겠는가.
“그럼, 수고하십쇼.”
“네. 네? 저... 저기... 요?”
“왜 그러시죠?”
“저 차가 선물인가요?”
“네, 그럽습니다만... 혹시 마음에 드시지 않는 건가요?”
“그... 그럴 리가요! 가장 중요한 것을 주시지 않았는데요.”
“중요한 것? 그게 뭐죠?”
“아...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세요? 차를 주셨으면 저에게 또 뭘 주셔야 하죠? 상식이잖아요.”
“......”
“답답하시네. 차만 주시면 어떻게 해요?! 열쇠를 주셔야죠!”
“농담... 하시는 거죠?”
“......”
무식하면 개만도 못하다고... 나는 정말 몰랐다. 우리 사장이 내 뒤에서 날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하기 전까진 말이다.
“저런 고급 승용차는 스마트키잖아.”
“스... 스마트...”
“무식한 자식.”
“......”
도둑질을 해도 뭘 알아야 한다고 나는 정말...
“무식한 자식은 평생 고물상이나 해야 하는데... 이 자식은 뭘 잘 했길래 저런 선물을 받는 거지?”
“콜록, 콜록...”
“그럼, 저는 선물을 전달했으니 돌아가겠습니다. 꾸벅...”
운전기사는 돌아간다. 내가 적은 오늘의 소원 첫 번째가 이루어진 건데... 뭔가 찜찜했다. 왜 그런 찜찜함이 들었을까...
“저... 저기... 잠시만요!”
“또 뭡니까?”
“이거 말고... 다른 것은...”
“네? 다른 것?”
나는 계속해서 떠나려하는 승용차를 잡고 뒷좌석 유리를 쳐다본다. 분명 오늘의 두 번째 소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내심 그걸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던지 운전기사는 나를 올려다보며 인상을 쓰기 시작했고 기가 죽은 나는 그냥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시 승용차의 우렁찬 엔진소리가 들려오며 그들이 떠나가기 시작한다. 고개를 숙이고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 고물상을 떠나던 승용차가 멈춰 후진을 한다. 그렇지... 그래, 아직 두 번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어.
“위이잉...”
뒷좌석의 창문이 열렸다. 그건 곧... 돈 많은 재벌 집 사모님이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증거다.
“이보세요. 이태수 씨.”
“네. 사모님.”
“이거... 받으세요.”
“이건 뭐죠?”
“신용카드에요. 자동차에 기름 넣으실 때 이걸로 결제하세요. 한도가 없으니 마음 것 주유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아 참, 그리고... 오늘 이태수 씨 시간이 어떤가요?”
“저야 뭐...”
나의 개인적 시간을 묻는 사모님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돌려 고물상 사장을 바라본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오라는 신호를 준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 무슨 일로...”
“그럼, 잠시 저랑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 하고요.”
“어... 어디를?”
“일단 타시죠. 곧 우리 회사 주주총회가 있는데 지분을 10%나 가지고 계신 분이니 저랑 할 얘기도 있고...”
빙고를 외쳤다. 내가 바라는 꿈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고급 승용차를 선물 받고 그 다음은... 흐흐흐... 그래... 바로 이거다.
“저도 긴 시간을 보낼 수는 없고 잠시 얘기 할게 있으니 우리 회사 소유의 호텔에서 얘기 좀 하시죠.”
“아이고... 제가 그런 대화가 될는지 모르겠네요.”
“안 타세요?”
“아, 타야죠. 얼릉 타겠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사모님의 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나는 어디를 봐야할지 몰랐고 도도한 표정의 사모님은 앞만 주시할 뿐이었다. 적막을 깨고자 내가 먼저 입을 연다.
“저... 저기... 저랑 무슨 얘기를 나누실...”
“쉿, 자세한 얘기는 도착해서 하죠.”
“......”
모든 질문을 원천 봉쇄하는 사모의 차가움에 나도 입을 함구한다. 그렇게 도착한 호텔. 으리으리한 형태와 모습에 입이 쩍 벌어지고...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이분이랑 긴이 할 얘기가 있으니 VVIP룸 하나 비워줘.”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또각, 또각...”
내 앞으로 먼저 지나가는 사모님의 모습을 보면 외모의 나이는 적어도 50대 초반에서 중반... 단정하게 말아 올려 진 꽁지머리에 검정색 정장, 체형보정 속옷을 입은 건지 자연산 몸매인지 아직까지 모르지만 30대라고 해도 믿을 만한 S라인의 뒤태. 무릎까지 오는 치마에 뾰족 구두... 괜찮은 스타일이다. 저 정도면 나와의 하룻밤을 보낼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뭐하세요? 따라오셔야죠.”
“아... 네...”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안은 적막만이 흐르고...
“띵동~”
엘리베이터가 도착음을 알리며 슬라이드로 열리는 문을 지나 큰 문이 있는 곳으로 우리 둘이 향한다. 물론, 함께 동행 한 일행이 있다. 그는 바로 운전기사다.
“김 기사, 아무도 이방에 출입을 금해주고... 와인이나 한 병 가져다 줘.”
“알겠습니다. 사모님.”
“아 참, 프랑스 산 치즈도 가져다주고.”
“준비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땡큐.”
“탁!”
드디어 문이 닫혔다. 이제 이 넓은 방안에는 나와 사모만이 있게 되었다. 나는 멀뚱멀뚱한 자세로 문 앞에 그냥 서 있었고 사모는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편하게 소파에 앉아 탁자 위에 있는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라 마신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네...”
“우리 회장님과는 어떤 관계셨죠? 그분이 이렇게 많은 돈을 자식도 아닌 외인에게 상속할 분은 아닌데... 뭔가 특별한 관계의 사연이 있나보죠?”
“글... 글쎄요... 그분이 절...”
“비밀스런 거래라도 있었던 모양이네요. 쉽게 말씀을 하시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까. 사실... 회장님이 고용한 산업스파이였다고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킬러? 훗... 나도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이다.
“어떻게 우리 회장님 눈에 드셨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일로 저희 회사와 인연이 닿았으니 우선 툭 터놓고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정보를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호구산업이 이번에 중국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어요. 엄청난 자금을 들여 짓는 공장이다 보니 다른 이사님들을 설득해야 하죠. 물론 사외 이사들이 모두 하나 같이 저희 편이어서 어느 정도 찬성지분이 확보가 된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를 보험을 들어 놓고 싶네요.”
“보... 보험이요?”
“지분의 10%를 저희 쪽으로 활용해주세요. 물론 찬성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가능... 하시겠어요?”
뭔... 뭔 소리야? 내가 그런 것을 어떻게 알고 반대하고 찬성을 하겠나.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흘러가야 하는 것 아닌가. 연기가 필요했다. 뭔가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단 번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내가 무식하지 않고 회사 운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보일 것이란 판단이 섰다.
“괜... 괜찮은 사업이군요.”
“사업?”
“네. 중국에 엄청 큰 공장을 짓는다는 말씀인데... 그만큼 이익이 회사에 많이 발생할 듯하네요.”
“이익? 호호호!”
“응?”
나의 말에 사모는 크게 웃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이지... 잘 못 대답을 한 것인가. 아... 복잡하다. 나는 그냥 이곳에서 빨리 사모와 섹스를 하고 나가고 싶을 뿐인데... 내가 먼저 사모의 옷을 벗길까? 그대로 침대에 눕히고 사모의 얇은 다리를 만져야 할까? 어떻게... 어떻게 하지...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
“저희가 이번에 짓는 중국의 공장은 저희 회사의 생산품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어려운 아동들에게 옷과 식료품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자선 공장을 짓는 거죠. 이익이 남을 리 없지 않습니까?”
“자... 자선 공장?”
“우리 회장님은 화교세요. 오랜 세월 동안 중국에 투자를 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 꿈을 이번에 이룰 수 있게 일을 진행하는 것뿐입니다.”
“화교...”
중국 화교인은 돈이 많다고 했다. 그런 뜻이 있었는지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방의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린다.
“똑똑똑.”
“들어 와.”
“사모님, 아까 말씀하신 와인과 프랑스 산 치즈입니다.”
“고마워. 거기 놓고 가.”
“알겠습니다.”
와인을 잔에 따는 사모의 모습은 나름 섹시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 나를 향해 의미를 모를 미소를 짓던 사모가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묻는다.
“태수 씨는 올해 몇 살이죠?”
“저... 저는 올해 27살입니다.”
“아, 27살... 한창 때인데 와인 한 잔 정도는 괜찮겠죠?”
“주... 주신다면 야...”
“호호호.”
“제가 회장님께 시집온 나이가 27살이었어요. 회장님은 그 당시 나이가 50세였죠.”
“23살의 나이차를 극복한 아름다운 사랑이시네요.”
“사... 랑? 훗... 사랑처럼 보이시나요?”
“아닌가요?”
잠시 뜸을 들이는 사모의 행동이 묘했다. 뭔가 일어 날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사모가 와인이 담긴 잔을 나에게 전달한다.
“쌍떼!”
“응? 쌍... 쌍떼?”
쌍떼라... 쌍노무 새끼의 줄임말인가... 저 말은 무슨 외계어란 말인가.
“호호호, 프랑스어로 건배라는 뜻입니다.”
“아, 쌍떼... 건배...”
잠시 오해가 있었다.
“쨍!”
“음... 와인의 맛이 상당히 부드럽네요?”
“하드한 와인보다 이런 와인을 제가 참 좋아하죠. 아까 저에게 사랑이냐고 물어보신 거... 맞죠?”
“네.”
“회장님을 만나고 내 삶은 지옥과 같았어요. 사실... 우리 회장님 여자가 저 말고도 참 많죠. 그걸 다 이겨내고 참아내야 지금의 제 자리가 있는 것이니까요.”
“......”
“하지만 상관없어요. 일 년에 한 번... 두 번... 저에게 사랑을 주시죠. 그 사랑을 갈망하며 혼자 참아 온 긴 밤이... 일 녀... 이 년... 삼 년...”
“힘... 힘드셨겠네요.”
“지독한 기다림 속에 회장님이 저를 사랑해 주시는 시간은 10분 만에 끝이 나죠. 어머, 제가 취했나 보네요. 별 소리를 다 하고...”
별소리는 아니지만 그 사모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년을 기다리고 찾아온 남편이 10분 만에 사랑의 행위가 끝이 나다니...
“취하셨는데 괜... 괜찮으세요?”
“아, 머리가...”
“밖에서 운전기사 분, 오시라고 할까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하자 사모는 나를 올려다보며 내 손을 꼭 잡는다. 이 또한 나의 모든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나를 향해 불타오르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잠... 잠깐만요.”
“네? 왜... 그러시죠?”
“부르지 마요. 그냥... 잠시만 제 앞에 앉아 주시겠어요?”
“앉아 달라고요?”
“와인을 마셨더니 덥네. 아유... 더워라.”
“......”
취기가 올라서인지 덥다며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 외투를 살짝 살짝 들어 올리는 사모의 행동에 나의 물건이 조금씩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그 반응을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더 보여주고 싶은 갈등이 피어난다.
“죄송한데 여기 제 등 뒤에 있는 지퍼 좀 내려주세요.”
“네? 지퍼를?”
“더워서 그래요. 부탁 좀 드릴게요.”
“그... 그러죠.”
“찌이이익...”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아유... 더워.”
“......”
사모의 행동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걸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 연기를 하기에 바빴다.
“바기는 요... 무슨...”
“바라는 것 같은데?”
“설마요.”
“정말 그런 것도 없이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일하는 거야?”
“전 그냥...”
“그냥 뭐?”
“그냥...”
“퍽!”
“아야! 사... 사장님!”
“너, 이상해. 내가 말하는데 시선은 왜 자꾸 내 딸한테 가있는 거야? 너 도대체 원하는게 뭐야?”
“......”
아침부터 사람 머리를 쥐어박는 사장이 야속했다.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남자에게 머리를 자존심과 같은 부위이지 않은가. 그보다 더 야속하게 느껴진 것은...
“아빠, 태수 씨 좀 그만 때려요.”
“이 녀석이 자꾸 너만 쳐다보잖아!”
“아이 참... 저를 본 게 아니고 제가 있는 쪽을 봤겠죠.”
“그런 것 같지가 않아!”
“......”
그녀, 바로 보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를 맞아서였다. 씨...
“사... 사장님! 저는 이곳저곳 쳐다볼 권리도 없나요?!”
“뭐?!”
“아... 아니요. 그냥... 그렇다고요.”
“자꾸 이상한 눈빛으로 내 딸을 쳐다보니까 그렇지! 사무실에서 당장 나가. 마당이나 쓸어.”
“네...”
사장에게 쫓겨나듯 고물상 사무실을 나서며 입을 실룩거렸다. 그 모습을 사장이 보라는 듯이 더욱 거세게 실룩거렸고 이런 모습을 사장이 아닌 보라가 쳐다본다. 미소를 짓는 보라의 얼굴에 나의 서운함이 녹아드는 듯하다.
“아... 보라 씨...”
“오늘 하루도 파이팅하세요.”
작은 주먹을 쥐며 나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보라는 정말 천사다. 이제 곧 어제 왔던 재벌 집 사모님이 고급 승용차를 끌고 나타날 것이다. 그 차에 나와 보라는 단 둘만의 여행을 떠날 것이고 우리는 이미 해안 도로를 질주하며 서로의 사랑을...
“퍽!”
“아...”
“너 또 눈깔이 응큼해!”
“사장님 도 참...”
“어서 마당이나 쓸어!”
“네...”
왜 하필 아름다운 상상의 결말 끝에는 현실에서 느끼는 사장의 뒷통수 공격이 있는 것일까. 젠장...
“끼이익!”
“응? 저 여자... 어제 그 여자인데?”
우리 고물상 앞에 드디어 재벌 집 사모님이 도착했다. 사장은 그런 사모님의 차를 확인하고 왜 또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이유를 당연히 알고 있다.
“제가 전해주고 올까요?”
“그래. 이곳에 자꾸 오니 기분이 이상하네.”
“알겠습니다.”
차에서 내린 운전기사가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모님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는 나를 찾으며 다가온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운전기사의 모습에 벌써부터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태수 씨.”
“네.”
“저희 사모님께서 준비한 약소한 선물입니다. 받아 주십쇼.”
“뭔... 뭔데요?”
그냥 예의상 묻는 인사말 같은 물음이었다.
“저희 사모님께서 어제 상속포기 각서에 지장을 찍어주신 것에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은 잠시 후 도착할 것입니다.”
“작은 선물?”
“아, 저기 오는 군요.”
“부우웅...”
캬... 독일 산, 벤츠 S클레스 최신형... 저걸... 내가 언제 끌어보겠는가.
“그럼, 수고하십쇼.”
“네. 네? 저... 저기... 요?”
“왜 그러시죠?”
“저 차가 선물인가요?”
“네, 그럽습니다만... 혹시 마음에 드시지 않는 건가요?”
“그... 그럴 리가요! 가장 중요한 것을 주시지 않았는데요.”
“중요한 것? 그게 뭐죠?”
“아...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세요? 차를 주셨으면 저에게 또 뭘 주셔야 하죠? 상식이잖아요.”
“......”
“답답하시네. 차만 주시면 어떻게 해요?! 열쇠를 주셔야죠!”
“농담... 하시는 거죠?”
“......”
무식하면 개만도 못하다고... 나는 정말 몰랐다. 우리 사장이 내 뒤에서 날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하기 전까진 말이다.
“저런 고급 승용차는 스마트키잖아.”
“스... 스마트...”
“무식한 자식.”
“......”
도둑질을 해도 뭘 알아야 한다고 나는 정말...
“무식한 자식은 평생 고물상이나 해야 하는데... 이 자식은 뭘 잘 했길래 저런 선물을 받는 거지?”
“콜록, 콜록...”
“그럼, 저는 선물을 전달했으니 돌아가겠습니다. 꾸벅...”
운전기사는 돌아간다. 내가 적은 오늘의 소원 첫 번째가 이루어진 건데... 뭔가 찜찜했다. 왜 그런 찜찜함이 들었을까...
“저... 저기... 잠시만요!”
“또 뭡니까?”
“이거 말고... 다른 것은...”
“네? 다른 것?”
나는 계속해서 떠나려하는 승용차를 잡고 뒷좌석 유리를 쳐다본다. 분명 오늘의 두 번째 소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내심 그걸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던지 운전기사는 나를 올려다보며 인상을 쓰기 시작했고 기가 죽은 나는 그냥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시 승용차의 우렁찬 엔진소리가 들려오며 그들이 떠나가기 시작한다. 고개를 숙이고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 고물상을 떠나던 승용차가 멈춰 후진을 한다. 그렇지... 그래, 아직 두 번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어.
“위이잉...”
뒷좌석의 창문이 열렸다. 그건 곧... 돈 많은 재벌 집 사모님이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증거다.
“이보세요. 이태수 씨.”
“네. 사모님.”
“이거... 받으세요.”
“이건 뭐죠?”
“신용카드에요. 자동차에 기름 넣으실 때 이걸로 결제하세요. 한도가 없으니 마음 것 주유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아 참, 그리고... 오늘 이태수 씨 시간이 어떤가요?”
“저야 뭐...”
나의 개인적 시간을 묻는 사모님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돌려 고물상 사장을 바라본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오라는 신호를 준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 무슨 일로...”
“그럼, 잠시 저랑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 하고요.”
“어... 어디를?”
“일단 타시죠. 곧 우리 회사 주주총회가 있는데 지분을 10%나 가지고 계신 분이니 저랑 할 얘기도 있고...”
빙고를 외쳤다. 내가 바라는 꿈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고급 승용차를 선물 받고 그 다음은... 흐흐흐... 그래... 바로 이거다.
“저도 긴 시간을 보낼 수는 없고 잠시 얘기 할게 있으니 우리 회사 소유의 호텔에서 얘기 좀 하시죠.”
“아이고... 제가 그런 대화가 될는지 모르겠네요.”
“안 타세요?”
“아, 타야죠. 얼릉 타겠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사모님의 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나는 어디를 봐야할지 몰랐고 도도한 표정의 사모님은 앞만 주시할 뿐이었다. 적막을 깨고자 내가 먼저 입을 연다.
“저... 저기... 저랑 무슨 얘기를 나누실...”
“쉿, 자세한 얘기는 도착해서 하죠.”
“......”
모든 질문을 원천 봉쇄하는 사모의 차가움에 나도 입을 함구한다. 그렇게 도착한 호텔. 으리으리한 형태와 모습에 입이 쩍 벌어지고...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이분이랑 긴이 할 얘기가 있으니 VVIP룸 하나 비워줘.”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또각, 또각...”
내 앞으로 먼저 지나가는 사모님의 모습을 보면 외모의 나이는 적어도 50대 초반에서 중반... 단정하게 말아 올려 진 꽁지머리에 검정색 정장, 체형보정 속옷을 입은 건지 자연산 몸매인지 아직까지 모르지만 30대라고 해도 믿을 만한 S라인의 뒤태. 무릎까지 오는 치마에 뾰족 구두... 괜찮은 스타일이다. 저 정도면 나와의 하룻밤을 보낼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뭐하세요? 따라오셔야죠.”
“아... 네...”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안은 적막만이 흐르고...
“띵동~”
엘리베이터가 도착음을 알리며 슬라이드로 열리는 문을 지나 큰 문이 있는 곳으로 우리 둘이 향한다. 물론, 함께 동행 한 일행이 있다. 그는 바로 운전기사다.
“김 기사, 아무도 이방에 출입을 금해주고... 와인이나 한 병 가져다 줘.”
“알겠습니다. 사모님.”
“아 참, 프랑스 산 치즈도 가져다주고.”
“준비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땡큐.”
“탁!”
드디어 문이 닫혔다. 이제 이 넓은 방안에는 나와 사모만이 있게 되었다. 나는 멀뚱멀뚱한 자세로 문 앞에 그냥 서 있었고 사모는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편하게 소파에 앉아 탁자 위에 있는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라 마신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네...”
“우리 회장님과는 어떤 관계셨죠? 그분이 이렇게 많은 돈을 자식도 아닌 외인에게 상속할 분은 아닌데... 뭔가 특별한 관계의 사연이 있나보죠?”
“글... 글쎄요... 그분이 절...”
“비밀스런 거래라도 있었던 모양이네요. 쉽게 말씀을 하시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까. 사실... 회장님이 고용한 산업스파이였다고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킬러? 훗... 나도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이다.
“어떻게 우리 회장님 눈에 드셨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일로 저희 회사와 인연이 닿았으니 우선 툭 터놓고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정보를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호구산업이 이번에 중국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어요. 엄청난 자금을 들여 짓는 공장이다 보니 다른 이사님들을 설득해야 하죠. 물론 사외 이사들이 모두 하나 같이 저희 편이어서 어느 정도 찬성지분이 확보가 된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를 보험을 들어 놓고 싶네요.”
“보... 보험이요?”
“지분의 10%를 저희 쪽으로 활용해주세요. 물론 찬성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가능... 하시겠어요?”
뭔... 뭔 소리야? 내가 그런 것을 어떻게 알고 반대하고 찬성을 하겠나.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흘러가야 하는 것 아닌가. 연기가 필요했다. 뭔가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단 번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내가 무식하지 않고 회사 운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보일 것이란 판단이 섰다.
“괜... 괜찮은 사업이군요.”
“사업?”
“네. 중국에 엄청 큰 공장을 짓는다는 말씀인데... 그만큼 이익이 회사에 많이 발생할 듯하네요.”
“이익? 호호호!”
“응?”
나의 말에 사모는 크게 웃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이지... 잘 못 대답을 한 것인가. 아... 복잡하다. 나는 그냥 이곳에서 빨리 사모와 섹스를 하고 나가고 싶을 뿐인데... 내가 먼저 사모의 옷을 벗길까? 그대로 침대에 눕히고 사모의 얇은 다리를 만져야 할까? 어떻게... 어떻게 하지...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
“저희가 이번에 짓는 중국의 공장은 저희 회사의 생산품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어려운 아동들에게 옷과 식료품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자선 공장을 짓는 거죠. 이익이 남을 리 없지 않습니까?”
“자... 자선 공장?”
“우리 회장님은 화교세요. 오랜 세월 동안 중국에 투자를 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 꿈을 이번에 이룰 수 있게 일을 진행하는 것뿐입니다.”
“화교...”
중국 화교인은 돈이 많다고 했다. 그런 뜻이 있었는지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방의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린다.
“똑똑똑.”
“들어 와.”
“사모님, 아까 말씀하신 와인과 프랑스 산 치즈입니다.”
“고마워. 거기 놓고 가.”
“알겠습니다.”
와인을 잔에 따는 사모의 모습은 나름 섹시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 나를 향해 의미를 모를 미소를 짓던 사모가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묻는다.
“태수 씨는 올해 몇 살이죠?”
“저... 저는 올해 27살입니다.”
“아, 27살... 한창 때인데 와인 한 잔 정도는 괜찮겠죠?”
“주... 주신다면 야...”
“호호호.”
“제가 회장님께 시집온 나이가 27살이었어요. 회장님은 그 당시 나이가 50세였죠.”
“23살의 나이차를 극복한 아름다운 사랑이시네요.”
“사... 랑? 훗... 사랑처럼 보이시나요?”
“아닌가요?”
잠시 뜸을 들이는 사모의 행동이 묘했다. 뭔가 일어 날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사모가 와인이 담긴 잔을 나에게 전달한다.
“쌍떼!”
“응? 쌍... 쌍떼?”
쌍떼라... 쌍노무 새끼의 줄임말인가... 저 말은 무슨 외계어란 말인가.
“호호호, 프랑스어로 건배라는 뜻입니다.”
“아, 쌍떼... 건배...”
잠시 오해가 있었다.
“쨍!”
“음... 와인의 맛이 상당히 부드럽네요?”
“하드한 와인보다 이런 와인을 제가 참 좋아하죠. 아까 저에게 사랑이냐고 물어보신 거... 맞죠?”
“네.”
“회장님을 만나고 내 삶은 지옥과 같았어요. 사실... 우리 회장님 여자가 저 말고도 참 많죠. 그걸 다 이겨내고 참아내야 지금의 제 자리가 있는 것이니까요.”
“......”
“하지만 상관없어요. 일 년에 한 번... 두 번... 저에게 사랑을 주시죠. 그 사랑을 갈망하며 혼자 참아 온 긴 밤이... 일 녀... 이 년... 삼 년...”
“힘... 힘드셨겠네요.”
“지독한 기다림 속에 회장님이 저를 사랑해 주시는 시간은 10분 만에 끝이 나죠. 어머, 제가 취했나 보네요. 별 소리를 다 하고...”
별소리는 아니지만 그 사모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년을 기다리고 찾아온 남편이 10분 만에 사랑의 행위가 끝이 나다니...
“취하셨는데 괜... 괜찮으세요?”
“아, 머리가...”
“밖에서 운전기사 분, 오시라고 할까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하자 사모는 나를 올려다보며 내 손을 꼭 잡는다. 이 또한 나의 모든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나를 향해 불타오르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잠... 잠깐만요.”
“네? 왜... 그러시죠?”
“부르지 마요. 그냥... 잠시만 제 앞에 앉아 주시겠어요?”
“앉아 달라고요?”
“와인을 마셨더니 덥네. 아유... 더워라.”
“......”
취기가 올라서인지 덥다며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 외투를 살짝 살짝 들어 올리는 사모의 행동에 나의 물건이 조금씩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그 반응을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더 보여주고 싶은 갈등이 피어난다.
“죄송한데 여기 제 등 뒤에 있는 지퍼 좀 내려주세요.”
“네? 지퍼를?”
“더워서 그래요. 부탁 좀 드릴게요.”
“그... 그러죠.”
“찌이이익...”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아유... 더워.”
“......”
사모의 행동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걸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 연기를 하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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