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는 매우 간결했다. 황궁 씩이나 되는 주제에 식사가 형편없던 이유는 단연 황태자의 사망 소식 탓이었다. 황실의 체면인지 뭔지 때문에 황태자가 저지른 죄는 모조리 무시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급사했다고 알려버렸다. 그 과정에서 내 눈치를 많이 본 것은 사실이나, 그 정도는 나도 이해해줬다. 이건 황태자의 명예 따위가 아니라 황실의 체면이 걸린 문제라고 극구 변명하는 것이 가상해서다.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제는 황태자의 사망을 알림과 동시에 2황자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쯧쯧, 불쌍한 녀석. 나이도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이 일었다.
이렇게 황실 전체가 들썩이고 있을 때, 나는 여유롭게 라이아를 옆에 끼고 휴린에게 말을 가르치고 있었다. 매우 한가롭게, 따분할 정도로 여유롭게 말이다.
- 똑똑
내 평화를 깨는 노크다. 그러나 나는 이 침울한 황궁에 제발 뭔가 사건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방문자를 반겼다. 아니, 반기려고 했다.
"누구~?"
휴린이 앙증맞은 목소리로 외쳤다. 말꼬리를 살짝 늘어뜨리는 것이 미치도록 귀여운 어투다. 라이아의 교육의 효과 덕분에 휴린은 자칫 로리타 컴플렉스(유아성욕자)들을 불타오르게 할 만큼 가공할 귀여움을 갖춰나가고 있다.
"지고하신 분께 객이 찾아왔나이다."
내가 위대하다 못해 이제 지고할 정도였나? 조만간 황제한테 일러 좀 간소하게 부르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객이다. 손님이란다. 내게 "손님"이라고 할 만한 존재가 있던가? 기척을 보아하니 문 밖에 있는 것들은 분명 인간인데.
"들어와요~!"
또 선수를 놓쳤다. 생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휴린이 입실을 허락하고 말았다. 밖에 있는 멍청이는 내 허락인지 어린애의 허락인지 판단도 안 하는지 대뜸 문을 열어버렸고.
나는 그 멍청이에게 기분 나쁜 마음을 가득 담아 소리쳐줬다.
"누구냐!"
"이런! 기분이 나쁘셨습니까?"
들어온 인간은 3명이었다. 3명, 무려 3명. 내가 느낀 기척은 1명뿐이었는데! 말이나 되는 일이가, 드래곤의 감각을 속이다니!
"소드 마스터들인가?"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내가 드래곤 치고 모자라는 놈도 아니고, 내 감각을 속였다면 나 이상의 실력을 지닌 마법사이거나 마스터급의 검사 또는 어쌔신 정도가 아니면 생각하기 힘들다. 마법이야 드래곤 이상의 실력을 지닌 인간이 있을 리 없으니까 제외하고, 눈앞의 3명이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을 감안하면 결론은 하나다.
"바로 맞추셨습니다. 저희가 쥬리안트 제국의 공작들입니다."
그나마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가 대답했다. 셋 모두 그렇게까지 나이들어 보이지는 않는 외모였다. 듣기에 인간도 마스터급에 이르면 신체가 마치 드래곤처럼 전신이 마나로 충만하게 되어 항상 최적의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더니.
그렇기에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가 드래곤이라고는 하지만 저 3명이 죽기살기로 덤비면 죽음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긴장했다는 것을 내색해서는 절대 안 된다. 드래곤 위엄을 깎아먹는 짓을 스스로 할까보냐.
"왜 찾아왔는가?"
"감사를 청하려고 왔나이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말투를 들어보니 노크를 했던 남자인 모양인데, 그는 인간의 군대에서나 쓰일 법한 기묘한 손동작을 해보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나야 알지도 못하지만, 그의 말대로 감사의 의미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감사라니. 대체 무엇이?
"무엇이 감사한지 모르겠군. 설명하라."
"예. 지고하신 분이여, 사실 황비와 후궁들은 모두 저희들의 여식이옵나이다."
아. 아? 그러니까, 황제한테 딸린 아내 셋이 다 공작들의 딸이란 말인가? 공작도 3명, 황비 하나에 후궁 둘을 합치면 3명. 숫자도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알만하다. 인간의 역사책을 보면 자주 나오는 그것이다. 정략결혼을 통한 지위 강화.
"이해했다. 그러나 황태자를 죽인 것에는 원한이 남지 않는가?"
적어도 그들 중 1명은 죽은 황태자놈의 할애비일 텐데. 외손자가 황위를 이으면 면 세력강화 차원에서라도 좋아할 일 아닌가?
"추호도 없습니다. 듣자하니 개새끼라 하셨다더니, 그 말이 틀림 없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하거늘, 인간들은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역시 의도적으로 섭리를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 족속들은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그런데 한놈은 정말 끔찍할 떠받들어주고 있고, 황태자 할애비라는 놈은 그래도 꽤나 예의 차리고 있는데, 나머지 한놈은 왠지 상태가 삐딱하다. 풍기는 분위기가 어째 영 나쁘다. 나한테 뭐 맺힌 거라도 있는 것일까?
"너는 무엇인데 내 앞에서 기분이 상해 있는 것이냐?"
처음 들어오면서 나한테 기분 나빴냐고 능글거렸던 그놈이다. 3명 중에 가장 덜 들어보이는 놈인데, 매끈한 얼굴이 여자 꽤나 울리고 다녔을 법한 생김새였다. 게다가 머리카락은 조금 옅은 파랑색, 여자들 못지 않게 길게 길러 치렁치렁하게 빗어내린 멋들어진 모습이다. 잠깐... 파랑색? 파란 머리칼이라, 분명히 최근에 봤는데?
"어젯밤에 재미는 좋으셨습니까?"
기분 나쁠 정도로 능글거리는 모습이다. 재수 없다. 안면을 걷어 차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만큼 말수작이 위험한 놈이다. 아니, 그것보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엉뚱하게 반문까지 했다. 아... 잠깐,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결이 고운 파란 머리칼, 그리고 저 반문하는 짓거리. 그렇군, 그 아이들인가.
"세르네린과 네르세린의?"
"예. 그 아이들의 조부 됩니다."
저 얼굴로 할애비라니,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엉뚱한 생각도 잠시, 곧 놈이 기분이 상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손녀들이 내 노예가 된 탓일 테지. 그것이 아니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디 내 이유를 들어보겠나?"
나는 휴린을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휴린은 이렇게 해주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만큼은 더없이 얌전하게 굴었다.
나는 휴린을 쓰다듬으며 공작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내 동생이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국에 의해 사육당하던."
나는 실버 드래곤, 그런 내가 화가 났을 때 절로 일어나는 기운이 방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필시 내 표정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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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도 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제는 황태자의 사망을 알림과 동시에 2황자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쯧쯧, 불쌍한 녀석. 나이도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이 일었다.
이렇게 황실 전체가 들썩이고 있을 때, 나는 여유롭게 라이아를 옆에 끼고 휴린에게 말을 가르치고 있었다. 매우 한가롭게, 따분할 정도로 여유롭게 말이다.
- 똑똑
내 평화를 깨는 노크다. 그러나 나는 이 침울한 황궁에 제발 뭔가 사건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방문자를 반겼다. 아니, 반기려고 했다.
"누구~?"
휴린이 앙증맞은 목소리로 외쳤다. 말꼬리를 살짝 늘어뜨리는 것이 미치도록 귀여운 어투다. 라이아의 교육의 효과 덕분에 휴린은 자칫 로리타 컴플렉스(유아성욕자)들을 불타오르게 할 만큼 가공할 귀여움을 갖춰나가고 있다.
"지고하신 분께 객이 찾아왔나이다."
내가 위대하다 못해 이제 지고할 정도였나? 조만간 황제한테 일러 좀 간소하게 부르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객이다. 손님이란다. 내게 "손님"이라고 할 만한 존재가 있던가? 기척을 보아하니 문 밖에 있는 것들은 분명 인간인데.
"들어와요~!"
또 선수를 놓쳤다. 생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휴린이 입실을 허락하고 말았다. 밖에 있는 멍청이는 내 허락인지 어린애의 허락인지 판단도 안 하는지 대뜸 문을 열어버렸고.
나는 그 멍청이에게 기분 나쁜 마음을 가득 담아 소리쳐줬다.
"누구냐!"
"이런! 기분이 나쁘셨습니까?"
들어온 인간은 3명이었다. 3명, 무려 3명. 내가 느낀 기척은 1명뿐이었는데! 말이나 되는 일이가, 드래곤의 감각을 속이다니!
"소드 마스터들인가?"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내가 드래곤 치고 모자라는 놈도 아니고, 내 감각을 속였다면 나 이상의 실력을 지닌 마법사이거나 마스터급의 검사 또는 어쌔신 정도가 아니면 생각하기 힘들다. 마법이야 드래곤 이상의 실력을 지닌 인간이 있을 리 없으니까 제외하고, 눈앞의 3명이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을 감안하면 결론은 하나다.
"바로 맞추셨습니다. 저희가 쥬리안트 제국의 공작들입니다."
그나마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가 대답했다. 셋 모두 그렇게까지 나이들어 보이지는 않는 외모였다. 듣기에 인간도 마스터급에 이르면 신체가 마치 드래곤처럼 전신이 마나로 충만하게 되어 항상 최적의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더니.
그렇기에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가 드래곤이라고는 하지만 저 3명이 죽기살기로 덤비면 죽음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긴장했다는 것을 내색해서는 절대 안 된다. 드래곤 위엄을 깎아먹는 짓을 스스로 할까보냐.
"왜 찾아왔는가?"
"감사를 청하려고 왔나이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말투를 들어보니 노크를 했던 남자인 모양인데, 그는 인간의 군대에서나 쓰일 법한 기묘한 손동작을 해보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나야 알지도 못하지만, 그의 말대로 감사의 의미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감사라니. 대체 무엇이?
"무엇이 감사한지 모르겠군. 설명하라."
"예. 지고하신 분이여, 사실 황비와 후궁들은 모두 저희들의 여식이옵나이다."
아. 아? 그러니까, 황제한테 딸린 아내 셋이 다 공작들의 딸이란 말인가? 공작도 3명, 황비 하나에 후궁 둘을 합치면 3명. 숫자도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알만하다. 인간의 역사책을 보면 자주 나오는 그것이다. 정략결혼을 통한 지위 강화.
"이해했다. 그러나 황태자를 죽인 것에는 원한이 남지 않는가?"
적어도 그들 중 1명은 죽은 황태자놈의 할애비일 텐데. 외손자가 황위를 이으면 면 세력강화 차원에서라도 좋아할 일 아닌가?
"추호도 없습니다. 듣자하니 개새끼라 하셨다더니, 그 말이 틀림 없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하거늘, 인간들은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역시 의도적으로 섭리를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 족속들은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그런데 한놈은 정말 끔찍할 떠받들어주고 있고, 황태자 할애비라는 놈은 그래도 꽤나 예의 차리고 있는데, 나머지 한놈은 왠지 상태가 삐딱하다. 풍기는 분위기가 어째 영 나쁘다. 나한테 뭐 맺힌 거라도 있는 것일까?
"너는 무엇인데 내 앞에서 기분이 상해 있는 것이냐?"
처음 들어오면서 나한테 기분 나빴냐고 능글거렸던 그놈이다. 3명 중에 가장 덜 들어보이는 놈인데, 매끈한 얼굴이 여자 꽤나 울리고 다녔을 법한 생김새였다. 게다가 머리카락은 조금 옅은 파랑색, 여자들 못지 않게 길게 길러 치렁치렁하게 빗어내린 멋들어진 모습이다. 잠깐... 파랑색? 파란 머리칼이라, 분명히 최근에 봤는데?
"어젯밤에 재미는 좋으셨습니까?"
기분 나쁠 정도로 능글거리는 모습이다. 재수 없다. 안면을 걷어 차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만큼 말수작이 위험한 놈이다. 아니, 그것보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엉뚱하게 반문까지 했다. 아... 잠깐,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결이 고운 파란 머리칼, 그리고 저 반문하는 짓거리. 그렇군, 그 아이들인가.
"세르네린과 네르세린의?"
"예. 그 아이들의 조부 됩니다."
저 얼굴로 할애비라니,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엉뚱한 생각도 잠시, 곧 놈이 기분이 상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손녀들이 내 노예가 된 탓일 테지. 그것이 아니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디 내 이유를 들어보겠나?"
나는 휴린을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휴린은 이렇게 해주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만큼은 더없이 얌전하게 굴었다.
나는 휴린을 쓰다듬으며 공작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내 동생이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국에 의해 사육당하던."
나는 실버 드래곤, 그런 내가 화가 났을 때 절로 일어나는 기운이 방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필시 내 표정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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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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